얼마 전 실천문학사에서 시행한 설문조사가 화제다. ‘출판의 자유권에 대한 설문조사’와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가 그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 실천문학사측은 여론의 압력으로 인해 출판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세태 속에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소 억울한 듯 들리는 이 이야기는 고은 시인의 작품이 최근 계간지 실천문학에 실린 것과 그의 신작 시집 ‘무의 노래’가 마찬가지로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실천문학사는 ‘이전부터 성폭력을 비롯한 추문에 깊이 휩싸여 있었으며, 2017년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와 같은 추태가 폭로당한 고은 시인이 어떠한 인정이나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없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올해 초, 실천문학사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분들께 출판사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음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공식적인 사과문을 내놓고, 또 자숙의 의미로 계간지를 한 해 휴간하겠다고 밝혔던 실천문학사가 다시금 본인들을 향한 여론을 정면 반박하며 이와 같은 설문조사를 시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실천문학사의 공지사항에서는, 이러한 입장의 변화가 문학 전문 인터넷신문인 ‘뉴스페이퍼’와 이승하 교수의 왜곡 기사가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들의 잘못된 기사가 자사의 이미지를 실추하였으며 이로 인해 여타 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왜곡이 여론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인 출판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자신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설문조사를 시행하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는 어딘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2차로 시행된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의 문항을 예로 들자면, 여기에서 실천문학사는 고은 시인을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로 비유하며, 그러한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을 복역하고 나와서 다시 농사에 종사하는데 주위에서 평생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아울러, 그 “농부가 수확한 벼”를 도정한 “정미소에 대해 범죄인을 도와준 사악한 정미소라며 판매중단을 압박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어지는 설문에서는 위의 이야기를 “시만 쓰던 모 시인이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감금 당하듯 살았고”라고 바꿔 물으며 그 본의를 전달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의 마지막에서는 지록위마의 고사를 인용하며, 일부 언론 기관과 그에 관련된 인사들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례가 옳은 것이냐고 묻기까지 하고 있다.
궁금한 건, 과연 실천문학사가 ‘설문조사’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문인, 일반 독자, 언론인들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적극적인 의견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상 그 문항들은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해 작성하고, 그걸로 모자라 고은 시인과 관련된 사태를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이 설문조사를 대체 무엇이라 생각해야 되는지. 자신들이 이미 ‘범죄를 저지른 농부’에 비유하고 있듯이, 그는 분명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어떠한 법적 처벌도, 범죄 행위에 대한 인정도,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은 그가 과연 무슨 대가를 치렀단 말인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잠적을 하고, 가짜가 자신을 사칭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일관해왔던 그가 치른 대가란 대체 무엇인가.
과연 실천문학사의 이같은 설문조사를 정상적 행위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들의 첫 설문조사에는 이런 문항이 존재한다. 고은 시인의 5년 만의 신간 시집 출간을 두고 언론사의 객관적이지 못한 보도 행태가 프레임을 조작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은이 저지른 어떠한 범죄 행위에 대한 시인도, 그의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지 않다. 과연 프레임을 조작하고, ‘지록위마’를 행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그들이 한국 문학에서 ‘실천문학’이라는 사명이 갖는 의미에 걸맞게 스스로의 권위를 더는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