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트라이건’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신을 정복자라고 자신하는 어리석은 인류는 멸망하는 게 나아”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이지만, 찬찬히 생각하면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구의 많은 것은 인간과 대립하고, 나아가는 발자국마다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되어 왔다. 거기에는 생존을 향한 특유의 집념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아름다운 것. 손에 넣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울창한 나무 대신 빽빽한 아파트가, 숲에 서식하는 동물 대신 명품 가방이. 여행을 위해 올라탄 비행기에선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배출되고 멋들어진 기념일 식사 한 끼에 과도한 양의 쓰레기가 생성된다.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을 정복하겠다던 투지를 불태우던 인간은 이제 인간을 넘어선 인간을 만들겠다는 포부까지 내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은 이토록 이기적인 인간과 공생하고 싶어 할까? 아니면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인간 존재를 말살하고 싶을까? 그러한 상상력에서부터 애니메이션은 출발한다.
‘트라이건’의 세계관은 이러하다. 지구는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남은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우주선은 폭발하여 어떤 별에 추락하게 되고 생존한 사람들로 인해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지게 된다. 황폐한 별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인 생태 동력 에너지였다. 이 에너지에 자아가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에너지는 인간 형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동시에 태어나고 함께 자랐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형은 에너지들이 인간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하면서 인간을 말살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동생은 에너지는 인간이 없이는 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인간과 공생하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말한다.
형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과 공생하기를 선택한 동생은 어떤 자를 죽일지 말지 선택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형은 동생을 “입만 산 몽상가”로 치부하며 그런 순간에도 우리들의 동포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트라이건’ 세계관에서의 인간은 놀라우리만치 잔인하다. 처음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얻는 데 급급했으나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끔찍한 고통을 받는가에 관해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생명체의 입장에선 ‘우리가 고통받은 만큼 너희들도 느껴보라’는 논리가 이상하지만은 않다. 어떤 면에선 이들의 인류를 말살하겠다는 계획이 타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듯 많은 영화나 만화에서 인간을 어떠한 바이러스처럼 다루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멀쩡한 지구에 갑자기 나타난 병균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 지구는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이상 기후, 전쟁, 학살, 상상도 못 한 범죄, 세상의 온갖 나쁜 일은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보자면 인간 존재는 무자비하고 어리석은 파괴자처럼 여겨진다.
애니메이션을 떠나 현실에서, 인간 아닌 존재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지구를 망친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회를 주고 싶다. 우리가 너희를 말살해야 하는가? 우리는 너희와 공생할 수 있는가?” 그때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어놓아야 할까. 우리는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파괴하는 인간뿐만 아니라 살리려는 인간도 본다. 누군가가 손짓 한 번으로 수백만 명을 죽이는 폭탄을 터트릴 때, 누군가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우는 아이를 구하려 뛰어든다. 누군가가 죄책감 없이 동물을 유기할 때, 누군가는 열악한 보호소에 기꺼이 발을 디디고 한 마리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망치는 것도 인간이고, 살리는 것도 인간이다. 우리는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되기를 택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관해선 답은 완벽하게 정해져 있다. 우리 안의 선함을 믿고 행동할 때, 공생하는 세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트라이건’의 어떤 인간이 외쳤듯이. “함께 살아가는 거야. 아니, 함께 살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