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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은 누구인가

등록일 2023-06-27 19:47 게재일 2023-06-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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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SIBF)’이 강남 코엑스에서 진행되었다. 6월 14일부터 5일간 진행된 행사는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 샤르자를 주빈국으로 하여 ‘비인간(非人間, nonhuman)’이라는 주제 하에 이루어졌다. 전시장 규모가 작년에 비해 축소된 것을 감안하자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도서출판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고려하자면 성공적인 국제도서전 개최는 나름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계에 종사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SIBF은 여러모로 씁쓸함이 많은 행사였다. 일단 홍보 대사 위촉에서부터 좀 의아한 구석이 있었는데, 국제도서전이라는 명함이 무색하게 모든 홍보 대사가 소설가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SIBF에서 다루는 도서의 종수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홍보대사가 위촉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기까진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쨌거나 위촉된 홍보 대사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인선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적이었던 것은 홍보 대사 가운데 한 명인 오정희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오정희가 SIBF의 홍보대사로 선정된 것이다. 당연히 위촉 사실이 알려진 때부터 각계각층의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는 침묵했다. 심지어 협회의 정책팀장이었던 홍태림 미술평론가에 따르면, 내부 차원에서 오정희의 홍보대사 해촉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작성된 블랙리스트가 특정 분야의 인사들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책을 통해 소외시키고 배제시키기 위해 작성된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자면, 이와 같은 리스트의 선정에 관여한 것은 국가 주도의 구조적 폭력에 가담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즉, 오정희라는 소설가는 단순히 국가 정책의 협의에 참여한 예술가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의 실행자였던 셈이다. 그런 그를 SIBF의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은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이러한 위촉 과정에 문체부의 개입 여부가 의심되는 상황인지라, 해당 논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지난 14일 SIBF의 개막식에 앞서 코엑스 동문에서는 각계각층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대한출판문화협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송경동 시인을 필두로 하여 모인 이들은 블랙리스트의 실행자인 오정희 소설가가 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것은 “국가 주도 폭력을 실행한” 이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반성을 촉구했다. 그 후 이들은 행사장 내부로 이동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각계의 문화예술가들로 구성된 이들이었지만, 코엑스 내부 진입에서부터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를 받아 자신들이 작가임을 해명해야 했다. 행사장에 가까워질수록 경호원들의 제지는 거세졌고, 결국 이들은 들고 있던 종이 피켓(“부패한 문학권력 앞에서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힌)마저 보이지 않도록 말아들어야만 했다. 이들은 국제도서전에서 독자만큼이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작가들이지만, 행사의 주최측에서 보기엔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이 처참한 사태는 개막식 장소에 가까워져 더욱 처참한 몰골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개막식장 앞에서 진입을 저지당한 이들은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었다. 수십여 명의 작가들의 팔 다리를 여러 명의 경호원들이 강제로 붙잡아 프레스룸으로 밀어 넣었다. 연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작가들은 왜 연행되어야 하는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이루어진 마구잡이식 연행이었다. 이들은 거듭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윤철호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외쳤으나, 주최측은 이들을 서둘러 해산시키곤 개막식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하여 대통령 경호법 때문에 연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에서야 밝혀진 사실에 불과하다. 더욱 당혹스러운 사실은 김건희 여사의 방문으로 인해 심지어 각 신문사의 문학 기자들마저 출입이 제한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들은 문학 기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개막식 장소에 김 여사가 갈 때까지 들어갈 수 없었고, 사진조차 제대로 촬영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작가들과 기자들은 불청객에 불과했던 걸까? 과연 불청객은 대체 누구인걸까? 이것이 정부의 문학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된다면 너무 과한 생각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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