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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등록일 2023-07-11 18:22 게재일 2023-07-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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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언스플래쉬

우리 집의 구성원은 단출하다. 나, 동생 그리고 강아지 보리. 우리 셋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집안에 큰 어른답게 대소사, 이를테면 생활비 정산이나 집의 관리 및 수리, 청소, 요리, 빨래 그리고 보리의 산책을 맡아서 한다. 동생은 그런 나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내 눈치를 보면서 이리저리 사부작대는데 하나같이 내 성엔 차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나의 감정적인 부분을 잘 보듬어 주고 늘 최고의 조언을 내어놓는다.

우리는 일곱 살 터울이 있는 자매다. 외형이나 성격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다르다. 동시에 서로만 아는 약한 부분이나 공유하고 있는 많은 면면이 있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교육자인 부모님을 두었으며 스무 살에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다. 나는 소설을 쓰고 동생은 그림을 그린다. 최근 동생은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매일 같이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오고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도 부지기수다.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을 잡는 동생을 상상해 본다. 백지 위로 깜박이는 커서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나의 마음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곤 한다. 최근 우리의 화두는 예술로의 진입을 알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작품이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든가 책을 출간하고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으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결론이 난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인간은 인간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발끈 소리친다. 이러다 이 집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생명은 강아지밖에 남지 않을 거야! 죽지도 아프지도 않는 애완 로봇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기사는 보리의 귀여움마저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인공지능이 두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로봇은 삶의 고난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경제적 곤궁에서 허덕이거나 세상에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나 하는 것 없이 나이만 먹고 있다는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인간은 저마다의 속박에 사로잡혀 필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현실의 문턱에 좌절하며 주저앉기는커녕 계속해서 꾸준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생산해 내는 로봇이 어쩐지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이다.

처음 사진기가 발명되었을 때도 그랬다. 사진기의 발명과 더불어 회화는 본격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그간 화가들이 그렸던 전원풍경이나 정물 사진을 짧은 시간 내에 또렷하게 찍어낸 사진은 그림보다 훨씬 정교했으며 실용적이었다.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고 주장하는 화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진의 등장은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회화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 그중에서도 신조형주의의 화가 몬드리안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시각적 충격을 주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우주의 진리와 근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겉모습을 떠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던 예술가들로 인해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이 탄생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럼에도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가끔은 동생과 내가 가로등을 향해 돌진하는 나방처럼 느껴진다. 빛나는 것에 매료되어 날개가 타는 것도 모르는 존재. 그건 예술에 투신하겠다는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면에서 순진무구한 천진함에 가깝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인공지능이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작품을 써내든, 피카소보다 더욱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만들어 내든, 그런 것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몬드리안은 말했다. “나 역시 꽃의 겉모습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하지만 더 깊은 아름다움은 바로 그 안에 있다.” 나와 동생은 ‘더 깊은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한 해맑음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새근새근 자는 동생과 강아지를 보면서 나는 그런 것들에 관해 생각한다. 올해 월세 계약이 끝나면 어디로 이사해야 할지, 집필 중인 소설이 완성되기 전까지 모아둔 돈으로 버틸 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괜찮다. 어떤 미래가 찾아오더라도 서로가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지금처럼 손을 잡고 그 시간을 통과해서 가면 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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