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낙은 기타 레슨을 받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첫 앨범을 낸 것이 2010년. 벌써 데뷔한지 1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은 새로운 부분들이 많다. 블루스 기타 솔로 연주를 중점적으로 배우다보니 내가 사용하지 않는 음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다소 틀에 박혀 있다고 느꼈던 나의 멜로디가 자유롭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선생님은 우연히 알게 된 후배 뮤지션 남경운. 그는 나보다 13살이나 어리고 음악 경력도 짧지만 기타 연주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해내는 발군의 연주자이며 재능 넘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서른여덟 살의 내가 스물다섯 살의 그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고, 그것은 최근에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되었다.
사실 음악을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형준이 형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같이 활동하던 뮤지션 중 한 명이었는데, 음악만큼 사랑하는 일이 바로 복싱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복싱 체육관의 관장님께서 노환으로 별세하시고, 그가 체육관을 인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복싱을 해온 터라 누군가를 가르칠 실력은 충분했으나 복싱선수로서의 타이틀이 없었던 형준이 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복싱 신인왕전에 원서를 넣었고 결국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그 때 형의 나이가 마흔이 넘은 시점이었다. 지금까지 불혹의 복서로서 2전 2승 1KO라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사실 삼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배워서 늘 수 있는 가능성이 몹시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정도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나 문학의 분야에서 만큼은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는 정도를 목표로 해야지, 지금보다 실력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닫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형은 마흔에 신인으로 데뷔를 하였고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 더 높은 랭킹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니.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또 어느 날은 TV를 보는데 가수 이효리씨가 나왔다. 이효리씨는 요즘 들어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사실 뛰어난 보컬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미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차트 1위를 경험한 유일무이한 가수가 된 그다.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그가 데뷔 26년차에 자신의 보컬에 부족함을 느끼고 일주일에 세 번씩 학원에 다니고 있다니. 그 열정과 용기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에 들은 그의 라이브는 예전보다 훨씬 훌륭해져 있었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생각도 났다. 나의 이름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던 작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러시아문학과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형이자 가장이었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대적인 이유로 공산권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시는 바람에 포기하고 교사 생활을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신 뒤에 60대의 나이로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을 하셨고 기어이 학위를 받아내시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시고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그 시간이 아마 작은할아버지께서 가장 행복하셨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고 이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고작 마흔도 안 된 내가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제는 더 나아질 수 없다며 징징대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공연에서는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에 다른 연주자에게 맡기곤 했던 기타 솔로 연주를 한 두 곡 정도는 내가 시도해보기도 한다.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처럼 지판 위를 날아다니듯 테크닉을 뽐낼 줄도 모르지만, 그럭저럭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하는 솔로 플레이 비슷하게는 소리를 내는 나 자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한 분야에서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나니 또 다른 도전들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음악 영역에서도 여태껏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분야들에 발을 담가보고 싶어졌고, 문학적으로도 여태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더 도전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래, 그런 게 없다면 남은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