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살갑고 다정하게 구는 게 언제부터 새삼스러웠더라.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을 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충만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유효기간이 짧으니 최대한 빨리 섭취해야 한다. 머리카락 방향, 셔츠 깃의 빳빳함 정도, 양말 끝이 바지 기장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까지 마음에 드는 그런 날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친구처럼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춘다. 한쪽 눈을 찡긋, 손가락을 탁 튕기면 위풍당당해 보이는 것을 넘어 사랑스러워 보이기에 이른다. 이런 호들갑도 잠시,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폭염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이 문제였을까. 어깨 위에 내려앉은 묵직한 습도에 결국 당하고 만 것인가. 상가 유리창에 비친 낯선 행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구보다 당당하게 거리를 가르고 있다고 믿었건만, 어깨는 구부정하고 입술은 굳은 채로 어색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에.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제발, 아닐 거야….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역시 그렇다. 거울 앞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낯설고 불만족스러운 현실 속의 나만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써보려 했을 뿐. 이렇듯 장황하고 횡설수설하는 나 자신도 참 부끄럽다. 어째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을 이렇게 어려워하는 것일까. 어떤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기 신뢰가 있으면 좋겠건만, 그건 거울 속에서 완벽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특히 타인에게서 비난조의 말을 듣게 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실이 적나라하게 확인된 기분이다. 내 딴엔 환하게 웃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비아냥처럼 보이고, 별생각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순간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실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스친다.
때때로 나는 내 안에 거울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나를 점검한다. 사진 속의 표정, 영상 속의 걸음걸이, 심지어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까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애쓰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러닝머신 위의 거리감과 비슷하달까.
내가 아는 나는 언제나 빛을 한 번 돌려받은 뒤의 형상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반사와 왜곡은 필연적으로 함께 간다. 빛이 표면에 부딪혀 돌아오는 순간, 경로를 통해 형태는 틀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발생하는 변형이 현실을 아름답게 보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의 비극적 사실 중 하나다. 오히려 숨기고 싶은 지점을 더욱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비추는 창이 항상 불편하게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어긋남 속에야말로 내가 모르는 나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을 확인하는 기회가 숨어 있다. 때로 어떤 틈새는 그 자체로 나를 지켜주는 완충 장치이기도 하다. 낯설면서도 나를 확장하는 여백으로 존재하며 그 틈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 완벽한 스스로가 아니라, 변하고 비틀린 모습을 포함한 나 자신이다. 다른 측면의 나를 보는 일은 물론 괴롭겠지만, 내가 상상했던 내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도 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은 채 흘린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 바꿔놓을 수도 있고 툭 던진 작은 선의에 뜻밖의 인사를 받기도 한다. 세상이 비춰주는 나는 생각보다 종종 쓸 만하고 가끔은 내가 믿는 나보다 더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면 거울 앞에 서는 일은 일상에 흩어진 나를 거두어 모아 정리하는 의식처럼 여겨진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나를 차곡차곡 주워 담는 일. 그렇게 펼쳐진 내 모습은 분명 완벽할 수 없겠지만, 가끔은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던 내 안의 심판관을 잠시 쉬게 해도 괜찮겠다. 어차피 왜곡된 형상을 봐야 한다면 내 편인 쪽이 당연히 낫지 않겠는가. 유난히 어깨가 처지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날이면 셔츠 깃을 쓱 고쳐 세우며 중얼거려 보는 것이다.
나, 조금 귀여울지도?
/문은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