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사진의 보급은 보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인물화나 풍경화를 그리던 미술가들은 기계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대상을 모방하는 사진기술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기로 다가왔겠지만 다른 미술가들에게 사진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사진기술의 발달과 예술의 변화를 이론적으로 통찰한 철학자로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있다. 그는 1936년에 출판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본이 발산하던 아우라가 사라지고 예술의 기능이 달라졌으며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과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진이 렌즈를 통해 복제해 놓은 현실 앞에서 미술가들과 이론가들은 회화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회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진은 미술가들에게 다르게 보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빛과 빛의 시각적 효과를 그리려고 했던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빠르고 거칠게 하지만 자유분방한 붓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매순간 변하는 색을 그리기 위해 대상이 지닌 고유한 색을 버렸고, 계산된 밑그림이나 드로잉 없이 색과 빛에 용해된 윤곽선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대상과 형태는 대기 속으로 용해되어 갔다.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관습과 지식 그리고 편견에서 벗어나 오로지 보는 것에 집중해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서 심오한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보는 것 자체로 시각적 즐거움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인상주의 미술이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끌로드 모네(1840∼1926)는 본 것을 그리기 위해서 연작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제작방법을 선택한다. 연작 혹은 시리즈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동일한 소재를 유사한 구도로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모네가 처음으로 연작으로 그린 것은 1877년 무렵으로 파리의 기차역 생-라자르의 광경을 열두 점에 이르는 작품에 옮겼다. 파리 생-라자르 역은 1837년에 설립된 기차역으로 철도의 발달은 변모하는 근대적 삶을 상징한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역사상 최초로 제작한 영화에서 소재로 다루었을 만큼 철도와 열차는 단순한 운송수단 이상을 의미했다.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철도는 이동 시간을 단축해 주었고, 그와 함께 삶의 속도 또한 빨라지게 된다. 열차 시간이 일상의 시간적 기준이 되어 막연했던 시간개념이 시계를 통해 분과 초로 나누어졌고, 삶의 움직임 역시 시계 바늘의 움직임을 따랐다. 시간의 분할은 건축적 변화에서도 읽혀진다. 예컨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에펠탑은 면으로 이루어진 닫힌 공간의 전통 건축과는 전혀 다른 철이라는 첨단재료를 통해 선적인 요소들의 결합이 만들어낸 열린 공간을 창조했다.
생-라자르 기차역에서 화가 모네는 열차가 뿜어내는 힘찬 증기가 만들어낸 광경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스펙터클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생-라자르를 시작으로 모네는 본격적으로 그의 대표 연작들을 제작한다. 1881년에서 91년까지 스물네 점의 건초더미를 그렸고, 1892년에서 94년까지 루앙 대성당을 그린 서른세 점의 그림을 남겼고, 1891년에서 1900년까지 일곱 점의 포플러 나무 연작을, 1900년에서 1905년까지 런던 국회의사당이 있는 풍경을 열다섯 점, 1908년에는 베네치아를 방문해 무려 서른일곱 점의 작품을 남겼다.
모네의 연작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수련’이다. 화가는 1896년부터 생을 마감한 1926년까지 30여년의 세월 동안 자그마치 250여점의 수련을 그렸다. 그렇다면 화가는 어떤 이유로 동일한 대상을 그린 이처럼 많은 수의 작품을 남긴 것일까? 화가의 관심은 대상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상에 반사되는 빛과 그 빛이 만들어 내는 색과 분위기를 그림에 담으려고 했다. 화면에서 이야기를 제거하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려고 했고, 대상을 관찰하는 시간과 그리는 시간, 그리는 과정과 시간의 흐름, 연작으로 제작된 각각의 그림과 그림 사이의 시간적 관계를 실험했던 것이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