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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개관하는 솔올미술관

등록일 2024-04-23 19:18 게재일 2024-04-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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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올미술관

미술관 건축은 건축 이상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미술을 담는 공간이지만 미술관 건축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전시를 기획하는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술관의 첫 인상은 미술관 건축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미술관에 대한 기억에 있어서도 다름 아닌 건축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파리의 루브르하면 유리 피라미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하면 나선형 계단, 파리 퐁피두센터하면 외부로 노출된 설비시설이 떠오를 정도로 미술관의 기억은 곧 미술관 건축에 대한 기억이다.

예술성, 기능성, 상징성, 공공성 등 다양한 측면이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미술관 건축이다. 그런 만큼 건축가들에게 미술관 건축은 큰 도전이지만 또한 건축가 개인이 일생동안 맡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프로젝트일 것이다. 미술관 건축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권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건축가에게 미술관 건축이 맡겨지지만 미술관 건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건축가는 손에 꼽힐 정도다. 지난 세기 미술관 건축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건축가는 ‘백색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이다.

마이어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는 ‘백색’이다. “백색은 모든 색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색이라고 생각한다. 무지개의 모든 색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리처드 마이어). 백색에 대한 그의 고집은 그것이 지닌 ‘절대성’ 때문이다. 백색은 건축의 순수한 시각적 형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마이어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백색은 모든 기하학적 형태의 미학적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 하나 더함이나 덜함 없는 정갈함과 명료함. 백색과 간결한 선 그리고 형태의 완벽한 조응은 마이어 건축의 고유한 ‘백색 미학’이다.

마이어를 상징 짓는 또 다른 건축 요소는 유리파사드이다. 마이어 건축의 보임새를 지배하는 것은 백색의 정렬된 패널과 그로부터 생성된 격자형 그리드이다. 반복된 사각 패턴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자칫 과도할 수 있는 엄격함은 유리라는 투명한 재료와의 접목을 통해 변주되어 한층 경쾌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넓은 유리창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마이어의 공간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지속성과 연결성을 강조한다. 공간과 공간의 연결성, 공간과 사람의 연결성, 주변 환경과 건축의 연결성. 연결성에 대한 마이어의 건축적 해석은 항상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나 연결성은 미술관 건축의 본질과 밀착된 문제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미술과 미술, 미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재료적 특징, 형태적 특징과 함께 마이어 건축에서 빠트릴 수 없는 조형 요소는 빛이다. 공학적 기술이 건축을 완성한다면, 빛은 건축을 미학적으로 완결 짓는다. 빛은 마이어의 백색 건축에 변화와 움직임을 부여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건축 공간 곳곳으로 스며들어 예상하지 않은 움직임을 유발함과 동시에 절제된 조형미를 극대화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도시 강릉에는 현재 마이어의 건축디자인을 계승한 마이어 파트너스의 솔올미술관이 지난 2월 14일 개관했다. 솔올미술관의 건축 역시 마이어의 순수한 백색 미학과 간결한 형태가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 되었다. 솔올미술관은 국내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외 추상미술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며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이 만나는 미학적 담론의 장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 같은 미술관의 방향성을 충분히 건축에 녹여내기 위해 계획 단계에서부터 긴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미술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솔올미술관의 비전이 장소와의 관계성,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마이어의 건축 철학으로 조화롭게 시각화되어 국내미술관 생태계에 의미 있는 좌표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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