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보고 즐기는 것은 중요한 문화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지난 20년 사이 한국에도 많은 미술관들이 지어졌고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미술관 설립을 추진하거나 개관을 앞두고 있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 곳곳에 미술관이 있는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처럼 우리도 생활공간 가까운 곳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반비례해 높게만 느껴졌던 심리적 장벽은 한 층 낮아지고 있다.
미술관은 소장한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개하거나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나 특정한 맥락으로 묶어 전시의 형태로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에게 미술은 미술관이라고 하는 장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비교적 현대에와서 생겨난 것인데 그 뿌리는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16세기 이후 독일어권 귀족사회에서 유행한 이른바 ‘분더캄머(Wunderkammer)’에서 찾을 수 있다. 분더캄머는 개인이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을 모아 놓은 방으로 영미지역에서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고 불렀다. 모으고 수집한 물건들을 진열하고 보여주는 분더캄머가 박물관으로 진화했고 소장품을 미술작품으로 한정지어 보여주는 곳이 미술관인 셈이다.
우리가 미술작품 감상을 위해 미술관을 찾듯이 미술작품을 창작하는 미술가들 역시 전시를 목적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19세기 무렵 공공 미술관이 활성화된 것과 맞물려 미술가들은 전시를 위해 미술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현대미술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종종 전통미술에 맞선 진취적인 미술가들의 과감한 실험이 관찰되기는 하지만 현대미술의 태동을 가속화한 주요 사회적 변화는 무엇보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다. 현대미술은 전통미술이 고수해온 거의 모든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다. 작품의 주제와 표현방식, 미술의 목적과 감상 그리고 소비되는 방에 이르기 까지 미술 전 영역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현대미술과 함께 나타나는 여러 변화들 중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전시를 통해 소개된 미술작품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등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대미술 이전 시대의 미술작품은 전시를 위해 제작되지 않았다. 미술작품은 성격에 따라 크게 종교미술과 세속미술로 분류되는데 어느 경우에 속하든 개별작품에는 분명한 기능과 목적이 있었다. 종교적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은 교회를 비롯해 종교적 장소에 설치되어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세속적인 목적의 작품은 권력과 관계된 장소 혹은 누군가의 사적공간 어딘가를 장식했을 것이다. 이렇듯 미술작품은 장소와 공간, 기능과 목적으로 부터 분리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작품은 장소와, 장소는 작품과 연결되어 밀접하게 있었고, 작품과 장소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했다. 미술관이 나타나고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미술관의 전시공간은 중성적이고 중립적이다. 가급적 드러나지 않도록 흰색으로 칠해진 벽면은 무표정한 큐브형태의 공간을 만든다. 그래서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 부르기도 한다. 배경이 되는 흰색벽에 작품이 걸리게 되면 어떤 작품이라도 그것이 지녔던 원래의 맥락은 공간에 희석되고 만다. 모든 작품은 창작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완성되고 소장자의 손에 넘어간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맥락과 관계하며 그 의미를 확장시켜나간다. 그런데 미술작품이 미술관의 벽에 걸리는 순간 그러한 개별적 맥락성이 희미해 진다. 또한 작품이 지나온 개별적 시간성 역시 흐려진다. 대신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이웃하는 다른 작품들과 복잡다단한 미학적 관계를 맺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김석모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