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라벤나에는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재위 488∼526) 통치시절인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에 지어진 ‘아리안 세례당(Arian Baptistery)’이 있다. 세례당 천장은 의례 이 시기 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색 입힌 작은 돌이나 유리조각을 배열해 이미지를 만드는 모자이크는 환상적인 방식으로 빛을 반사시켜 실내공간에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장 전체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반원형의 둥근 천장 가운데 부분에 크기가 작은 또 다른 원형 하나가 더 들어간 구조를 보인다. 가장 중심의 원에는 세례당에 잘 어울리도록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바깥 원에는 고대 로마 남성들이 입었던 토가를 두른 열 두 명의 사도들이 왕관을 손에 들고 등장한다.
그런데 모자이크를 제작한 미술가가 표현한 세례 장면은 상당히 흥미롭다. 특히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렇다. 미술가는 물 속에 들어 간 사람을 실감나게 그리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미숙하지만 순수함이 느껴진다. 유기적인 선들의 흐름이 강조된 훈데르트바서의 평면적이지만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연상되기도 한다. 예수는 수염 없는 매끈한 얼굴의 젊은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동물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은 덮수룩한 수염의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머리에 손을 올려 세례를 준다. 성령을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가 예수의 머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 그려진 예수, 세례자요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는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곳 천장 모자이크에는 흰 머리와 흰 수염을 한 나이든 남성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오히려 이교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피해야할 강의 신이다. 교회미술에서 흔치 않은 일이지만, 기독교 도상이 확립되지 않았던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는 종종 관찰되는 현상이다.
모자이크를 제작한 미술가는 어떤 이유에서 예수의 세례 장면을 묘사하면서 성서가 전하고 있는 장면과 전혀 무관한 강의 신을 구태여 그려넣었던 것일까? 오히려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인물에 대해 어떤 설득력 있는 설명이 가능할까?
기독교적 내용과 이교적 이미지가 혼영되어 나타나는 이런 미술현상은 기독교 교리나 기독교 도상이 아직 정립되고 확립되지 않았던 이 시기, 로마미술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결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술자나 노동자에 가까웠던 당시 미술가들이 익숙하게 보아왔던 미술은 고대 로마가 남긴 유산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아온 것들은 인물이나 건물 혹은 자연을 묘사할 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고대 로마미술에서 기독교 미술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자주 관찰된다.
라벤나의 아리안 세례당 모자이크 보다 100년 앞서 제작된 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을 장식하는 부조(359년경)나 비슷한 시기 제작된 라벤나의 갈라플라치디아 영묘당(425∼450년경) 벽면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나 로마 산타푸덴치아나 교회 앱스 모자이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작품이 묘사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성서로부터 온 것이거나 기독교적 상징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로마미술을 따랐다. 그래서 로마 미술에서 익히 등장하는 태양신 아폴론의 모습이 예수의 모습에 입혀졌고, 기적을 행하거나 제자를 가르치는 예수의 모습은 토가를 입은 로마 철학자와 매우 유사하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