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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미워킹그룹 이대로는 안 된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한미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협의 기구이다. 그룹이 창설된 이후 12회의 공식 회담이 개최되고 수차례 비공식 회의를 통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은 지난 6월 17일 김여정의 담화를 통해 한미워킹그룹을 ‘친미사대주의적 굴종’이라고 비난하고 나셨다. 국내에서도 이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워킹그룹은 존치해야 할 것인가 폐기해야 하는가.한미워킹그룹의 작동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었다. 북한 경제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우리의 독감 치료제 타미풀루까지 북한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인도적 견지에서 약품의 북한 반출은 가능하지만 수송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엔의 대북 제재와 무관한 금강산 개별 관광이나 개성 공단 출입까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 배경에는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불만도 크게 작용했다.이런 상황에서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국내의 여론은 찬반양론으로 갈라져 있다.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워킹그룹은 폐지해야 한다는 진보적 입장과 한미 동맹을 이유로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전자는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한미워킹그룹의 역할이 남북관계를 뒤틀어지게 하는 상황에서 즉각 폐지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후자는 한미 방위 조약을 튼튼히 유지하기 위해 존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한미워킹그룹은 그간 대북관련 모든 문제를 워킹그룹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평양 9·19 군사합의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워킹그룹을 통해 해소하려고 했다. 그 결과 한국의 안보는 미국에 더욱 의존되고 남북관계는 한층 경색되었다. 워킹그룹의 해체론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북한의 공동 사무소 폭파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의 ‘보류’라는 긴급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이 기회를 북한의 대외협상력을 높이려는 기회로 삼고 있다. 북한의 계산은 미국에 대해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협상력을 높이려는데 있다. 북한은 비핵화에 상응하여 체제 안전 보장과 북미 평화 협정체결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조금도 진척되지 못하기 때문 초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한미워킹그룹은 해체보다는 그 역할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마침 우리의 대북 담당 행정 팀이 전면 교체되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이미 한미워킹그룹에 올려야 할 사안과 올리지 말아야 할 사안은 구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차제에 워킹그룹의 운영 방식을 전면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미 협상은 과거처럼 우리가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시대는 아니다. 인도적인 대북 지원 문제가 결코 유엔 제재의 범위에 포함될 수 없다.대북 공동 제재 문제뿐 아니라 한미 합동 군사 훈련, 한미 전작 권 이전, 주한 미군 방위비, 미국 첨단 무기 구입 문제 등에도 우리의 자주적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2020-07-20

몸과 마음을 하나로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어정거리다 보니 벌써 7월 하순, 시간이 흐르고 세월의 바퀴가 굴러갈수록 일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이다. 전혀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모르다가 갑자기 알게 되어 의아스럽고 생뚱맞기만 하다. 그래서 세상은 알쏭달쏭 요지경이라 했던가.‘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水深可知 人心難知)’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겉으로 비치는 얼굴 표정이나 말씨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양심이나 진정성 따위의 속 마음은 대부분 알 수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생각은 복잡미묘하며 표리부동한 언행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본다.시대의 양심가로 비견되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듯 세상을 떠났다. 한 치의 의심도 일말의 의혹도 가질 수 없었던 고관대작의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남을 비관하여 절세(絶世)한 듯 보인다.명망 높은 변호사로 희망제작소를 통해 시민사회 활동을 하고 서울시장도 3선까지 지내며 차기 대권 잠룡으로도 존재했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춘사(椿事)로 한 순간에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마음과 양심의 본질이 어디까지 미치고 훼절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지불식 간에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극단적일 수 있는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마음은 몸의 주인이다. 몸의 주인인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갈팡질팡하면 이내 몸은 곤고함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이 몸에 주인이 없는 것은(此身無主) 집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如屋無人)고 한다. 대체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몸도 따라서 움직이게 되지만, 상황에 따라선 무의식적이거나 자율신경계에 의해 스스로 몸이 작동하기도 한다. 마음은 몸보다 더 미세하고 치밀하여 뜻대로 움직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각의 흐름, 감정, 판단, 의욕 등의 대부분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하기란 쉽질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수련이나 명상 등을 통해 마음을 갈고 닦으며 다스리는 마음강화 훈련을 하기도 한다.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해야 몸이 튼튼해진다. 또한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상보적이면서도 상호 의존적이기도 하다. 마음과 몸이 일치되는 노력을 통해 몸의 각 부분이 원활하게 움직이고 기능이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부지런히 운동도 하고, 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울 때는 노래도 부르면서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유의하는 건전한 생활습관으로 심신을 수양해 나가면 어떨까?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마음을 먹은 이상 최소한 몸과 합작(?)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다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양심과 적실성(適實性)을 살려 언행일치를 보이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2020-07-20

모든 날들이 아침 기도 같기를… 김천 고방사(古方寺)

문득, 새벽 기도가 하고 싶은 날이다. 한 시간 반을 달려 산사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의 산사는 싱그러웠다. 비가 올 듯 흐린 하늘, 바람에 적당히 몸을 흔드는 7월의 숲에 싸인 주차장, 단정한 어깨를 자랑하는 일주문, 그 안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지는 길, 모든 게 사랑스러운 아침이다.일주문을 들어서는 마음도 여느 때보다 정갈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 계곡을 따라 누워 있고, 바람 소리에 깨어나는 나뭇잎들의 은밀한 아침 인사가 높은 곳에서 들려온다. 세월이 낸 흔적 사이로 쭉쭉 뻗은 참나무들이 무리지어 살아가는 곳, 떨어진 나뭇잎과 채 익지 않은 도토리를 보니 굴참나무다. 내 영혼도 함께 깨어나는 아침 산길, 그곳에는 절제와 균형, 고요하면서도 부산한 은혜로움으로 가득하다.이내 하늘을 가리던 숲이 환해지며 고방사가 보인다. 팽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끌며 분위기는 달라진다. 아주 작은 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다. 천왕문을 지나 높은 계단 위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대광보전, 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도 모두 기도가 된다. 지은 지 오래 되지 않은 전각들은 여느 절과 다름없이 평범하고, 절에 비해 큰 삼층 석탑이 시선을 모으고 있다.고방사는 직지사의 말사이다. 경내의 현판 기문에는 418년 아도가 창건했다고 적혀 있지만 일설에는 신라 법흥왕 13년(526년)에 창건했다고도 한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지만 45동에 이르는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여러 차례 중창하였지만 숙종 45년(1719년) 수천이 절을 새로 옮겨 지었다. 보광전만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나머지 전각은 빈대가 많아서 모두 태웠다고 한다. 보물 제 1854호 고방사 아미타여래 설법도는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보광명전 법당문이 활짝 열려 있다. 비가 올지도 모를 날씨에 불자를 맞는 스님의 세심한 정성이 보인다. 누군가 새벽이슬을 털며 들어섰을지도 모를 법당, 신발을 벗고 문턱을 넘는 무심한 행동에도 아침공기가 떨며 일어선다. 목조 아미타삼존불의 평온한 시선을 의식하며 백팔 배를 시작한다. 호흡은 여느 날보다 더 차분하다.손녀가 태어나던 날, 한 편의 잘 빚어진 서정시처럼 아이의 인생이 펼쳐지길 얼마나 숨죽이며 기도했던가. 인생은 고행이라 하지만 아름답고 호기심 가득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가끔은 전쟁 치르듯 긴장과 아픔으로 숨죽일 때도 있지만 삶은 분명 축복이다.작은 소리에 반응하고 시선이 옮겨갈 때는 또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어느 별에서 저토록 고귀한 생명이 흘러와 나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아이가 순수한 눈빛을 보내올 때마다 나는 수많은 다짐들로 화답하곤 했다. 너무 높지도 허술하지도 않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겠노라고. 하지만 인생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생후 10개월을 넘긴 손녀는 발육이 늦은 편이라고 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언어와 대근육 발달이 늦다며 젊은 의사는 두어 달 지켜보다 정밀검사 받아보기를 권유했다. 그토록 총명해 보이던 아이를 방점처럼 찍혀 따라 다니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억지로 아이를 세워보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눈빛 속에 스며드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힘들었던 며칠이 그대로 아침 기도에 실린다. 절을 거듭할수록 법당문을 드나드는 아침 공기는 더욱 상쾌해지고, 점점 보이지 않던 내가 보인다. 아이의 든든한 울타리는 경제력도 지성적인 잣대도 아니다. 아이를 믿고 지켜볼 수 있는 무한한 긍정의 힘이다. 그런데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얹어 사랑이라 둘러대며 허우적거렸으니, 저토록 순수한 영혼이 모를 리 없다. 벌써부터 또래와 비교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향해 아이는 어찌 첫발을 용감하게 뗄 수 있으랴.손녀의 양육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본다. 체력적인 한계와 주변인들의 만류, 미련을 버리기 힘든 것들과의 단절, 그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아침, 훌륭한 양육자로서의 내적 성장이 절실함을 깨닫는다. 확신 없이 심은 꽃씨가 어찌 건강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으랴.조낭희 수필가스스로를 믿고 사랑하지 못하면 어떠한 성공과 행복도 무의미하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나 밝고 꿋꿋한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다. 타인을 향한 시선에도 이해와 사랑이 실릴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어둡고 불안했던 마음들이 아침 기도에 쓸려 나가고 내 안에는 젊고 의욕적인 기쁨들로 채워진다. 그것은 새로운 목표가 되어 가슴이 설렌다.법당 밖으로 펼쳐진 참나무 숲이 유난히 아름답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한 몸이 되어 움직인다. 참나무는 결코 송백(松柏)의 절개를 꿈꾸거나 탐하지 않는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나무들이 제각각 어울려 숲은 풍요롭다.한 때의 어둠을 토해내고 아침이 잉태한 숲의 언어들이 나를 격려하며 배웅한다. 내려올 때 바라본 숲은 훨씬 깊고 거룩했다.

2020-07-20

우리의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의 ‘인간다움’이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오직 인간만으로 이뤄진 사회에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자질들이란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러니 오히려 인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체감하기는 어렵다. 특별히 그것이 어떤 것인가 규정할 필요도 없다.하지만, 우리가 인간다움에 대해 물어야 하는 순간은 늘 어떤 계기를 통해 찾아온다. 인간이었음에도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이들의 자기 호소를 발견하는 때가 그러하다. 전쟁 같은 완전한 탈인간성의 시대에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행위들에 대한 규정을 통해 역으로 ‘인간다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피해를 받은 인간의 절망에 가까운 호소가 우리로 하여금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이른바 휴머니즘의 기원이다.우리가 인간다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는 두 번째 순간은, 주로 인간 능력의 연장으로만 간주되던 ‘도구’들이 하나의 자기 존재로서 눈앞에 드러나는 때에 도래한다. 최근 A.I와 로봇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인간은 어쩌면 지금까지는 도구로만 간주해왔던 컴퓨터가 하나의 존재로서 자기 주장을 하려는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이 순간을 통해 본격적으로 ‘인간다움’에 대해 물어야 하는 가장 치명적인 계기를 마주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중에 A.I나 로봇이 대신하겠지, 라는 자조 섞인 말들은 바로 컴퓨터라는 도구가 인간이 영위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인간다움’에 균열을 낼지 모른다는 공포와 관련돼 있다.미국의 가장 뛰어난 SF작가인 필립 K. 딕(The Philip K. Dick·1928~1982)은 이미 1968에 쓴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속에서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가 도래한 세계에 대한 공포를 제시했다. 핵전쟁이후 지구가 몰락하면서 방사능 오염으로 살아있는 동물들이 거의 멸종되고 난 시대에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화성에서 탈출한 안드로이드를 사냥해서 그들을 퇴역시키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며, 현상금을 모아 자신이 갖고 있는 ‘전기양’ 대신에 살아 있는 ‘진짜 양’을 갖고 싶어한다.이 소설을 통해 필립 K. 딕은 바로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의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주인공 릭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소설 속의 검사법 중 하나인 ‘보이트-캄프 테스트’는 다름 아니라 감정이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테스트였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안드로이드인지 모르는 레이첼을 검사하면서 바로 감정이입 유무를 평가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자신의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인간다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남기며 이 작품은 끝나게 되는 것이다.인간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것, 즉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감정 속으로 들어가 그 감정을 자기화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인간다움에 대한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물론 강아지나 고양이도 어느 정도는 감정적인 동조가 가능하지만, 인간은 좀 더 고차원의 감정이입이 가능한 동물이다.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우리가 갖는 인간다움에 대한 규정이나 집착은 다름 아니라 인식적 폭력은 아닐 것인가. 마치 유색인종과 섞이게 된 백인들이 자신의 백인다움을 규정하고자 애썼던 제국주의 시대의 교훈처럼, 인간다움에 대한 필사적이고 우악스러운 규정 속에는 대상에 대한 어떤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그것에 뒤쳐져 인간됨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이다.A.I가 상용화되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화성 진출을 시작한 중요한 변화의 시대에, 출판된지 벌써 50년이 넘은 이 소설은 디지털 우리가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인간다움’에 대한 태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7-20

황금알을 낳는 케이블카, 코로나 시대 후의 관광산업 선도

이청수(사)지방자치발전연구원장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는 언제 진정될는지 유행 기간을 예측할 수 없고 2차 유행이 도래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맞이하게 될 변화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지방자치단체가 주안점을 두어야 할 분야는 바로 지역경제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간 중단, 지연됐던 사업을 정상화하고 위축된 소비를 활성화하며 특히 각종 건설 사업을 추진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여야 한다. 포항시도 코로나19 이후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동해와 영일만의 지역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그동안 급속한 세계화로 해외여행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었으나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고 해외관광이 막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억제된 관광욕구 해소와 휴양 및 건강 증진을 위한 국내관광 수요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포항시의 경우 관광특구로 지정된 영일만에 해상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국의 케이블카는 155기 이상 운행 중에 있고 현재 34곳에서 신규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블카는 해당 지역의 특색있는 관광시장을 활성화 시키고,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창출할 뿐만아니라 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특수한 시설이다. 혹자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케이블카를 염려하고 있는데 버스, 택시 등 교통수단이 서울, 부산, 광주에만 있지 않듯이 케이블카 역시 관광지역에 반드시 필요한 교통수단이다.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등 관광 선진국이 주변 관광 콘텐츠와 연계해 케이블카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경우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스키장을 포함하여 5천 개소, 오스트리아 스위스에는 각 2~3천 개소의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한다. 정부가 성공 사례로 꼽는 국내 근래 케이블카 사업은 여수, 사천, 송도, 목포 해상케이블카, 통영 케이블카가 있다. 통영 케이블카는 통영 인구의 10배에 달하는 연간 128만 명 규모의 이용객을 유치하여(작년기준 누적 탑승객 1천420만 돌파)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케이블카는 설치지역마다 접근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여 지역적 특색을 살리고 장점을 최대로 활용하도록 하는 시설이다. 예를 들자면 스위스가 ‘세계의 공원’인 알프스의 경승지마다 케이블카를 설치해 3천m대 알프스 고봉을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점을 배워야 한다.코로나 시대 이후 국내관광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침체된 관광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포항 영일만 해상케이블카 사업에 포항시 정부와 주요 건설사들이 적극 참여해 발 빠르게 추진하여야 한다. 건설사 쪽으로 봐서는 미래를 대비한 기술축적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케이블카는 관광지 이동 수단으로 증가 추세에 있고, 기술발전으로 교량 설치 대신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각종 차량 이동수단으로 활용과 동시에 이동식 설비로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케이블카는 이용객뿐 아니라 주변 관광콘텐츠까지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설이다. 케이블카로 인해 관광객이 유입되면 주변지역 경제까지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 포항시와 관련 중앙부처는 환태평양 관문인 포항 영일만에 해상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적극 지원하여 코로나 시대 후의 관광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참여 건설사는 케이블카 설치 기술발전 기회를 선점하여야 한다.또한 케이블카 우리말로 삭도는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여러 용도로 활용 해왔던 수단이었다. 예를 들자면 전통 민속놀이 중 하나인 외줄타기도 여기에 속할 수 있고 산, 바다의 돌과 장비와 식용품을 나르는 이동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케이블카는 미래 성장사업이며 전 세계적인 관광지 교통수단으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을 확신한다. 현재 코로나19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여수, 목포, 통영, 사천, 송도케이블카는 평일에도 탑승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우리 건설사들이 세계시장 참여를 위하여 관광복지 교통수단이고 성장산업인 케이블카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실적과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2020-07-20

자전거 산책

어스름 해질녘에 길을 나선다. 물 한 병 챙기고 작은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자전거에 오르면 길 나설 채비는 끝났다. 오늘 하루의 시름은 잠시 내려놓고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나서는 나만을 위한 나의 길이다. 자전거는 동네 어귀에서 불 밝힐 채비를 하는 가로등을 지나 포항 형산 강변 자전거 전용 길로 접어든다. 강바람의 익숙한 인사는 오늘도 새롭다. 해 질 녘 하늘은 짙푸른 미소로 내 몸을 감싸 안고 오늘의 노고를 위로한다. 매일 아침 서둘러 지났던 넓고 빠른 시커먼 출근길은 저 멀리서 이방인처럼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형산강의 자전거 길은 오늘도 익숙하게 그리고 새롭게 나와 하나가 된다.오늘은 형산강 에코 생태전망대에서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목을 축인다. 형산강 프로젝트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7년에 개장한 에코 생태전망대는 철새를 주제로 한 ‘증강현실(AR)영상관’과 ‘철새전시실’ 그리고 형산강을 찾는 철새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탐조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나는 목을 축이고 숨을 고르며 나의 내면에서 존재하는 고정 관념적 시각을 비우고 지금 감성에 충실한 셔터를 누른다.‘자전거 산책’의 사진 작업은 20세기 초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과 이미지에서의 선, 형태, 색채 등은 표현가능성 만을 위해 사용하는 ‘표현주의(Expression ismus)’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왜곡과 강렬함, 그리고 강한 과장은 최소화하고 즉흥적이며 순간적인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여 철저히 여행자 시각으로 대상과 마주하려 한다. 이러한 나의 사진 작업은 내 삶에 중요한 힐링 포인트가 된다./정태용(사진작가)

2020-07-20

바위에 새긴 얼굴

금장대 암각화에 얼굴이 있다.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생식기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나는 어머니와 동네에 위치한 금장대와 암각화 근처로 자주 산책을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어머니는 바위에 새겨진 사람 얼굴과 발자국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신기해하셨다. 긴 세월동안 암각화는 점점 닳았고, 어머니도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생을 마감하셨다.어머니 방에는 늘 약봉지가 많았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의 역할을 하시느라 골병이 들었던 것이다. 통증이 심한 날은 약을 한줌씩 털어 넣었다.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갔을 때, 백혈병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나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부작용은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마냥 병원에 있을 수 없어 퇴원을 했다. 그 무렵 치매도 심해져 내게 걸려오는 전화는 일을 못 할 정도로 잦았다. 결국 ‘세상에 오직 한 분’이라는 번호를 차단하기에 이르렀다.어쩔 수 없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매달 몇 번씩 수혈을 반복했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심신이 지칠 때면, 암각화 앞에서 합장하며 병을 낫게 해달라고 소원했다.시간이 흐르면서 병세는 급성기로 전환되었다. 수혈빈도가 잦아지자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어린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밥을 굶기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처럼 절박한 심정이었다.어느덧 황금빛 들판도, 붉은 단풍도 사라져갔다.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마음에 바위를 매단 듯 무거웠다.바람이 세차게 불던 저녁 무렵, 병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임종으로 가는 힘든 순간을 버티며 막내를 기다렸던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미 삶의 마지막 고개를 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차가워지는 어머니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제 마음을 내려놓으세요’라고 달랬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어머니와 병원을 오가던 시간은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일을 핑계로 걸려오던 전화를 차단한 죄스러움은 오히려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어머니께서 마지막 한 줌 재로 이승을 떠난 후에도 자주 암각화를 바라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바위에 새겨진 얼굴을 어루만지고 발자국을 따라 금장대를 거닌다. 내 마음 속에는 암각화의 얼굴처럼 어머니가 깊이 새겨져 있다./배만식(경주시 현곡면 안현로)

2020-07-20

화성탐사선 ‘아말’

아랍에미리트(UAE)의 화성 탐사선 ‘아말’이 화성으로 향하는 첫발을 순조롭게 내디뎠다. UAE 우주청은 아말을 실은 일본의 우주발사체 H2A가 20일 오전 6시 58분 14초 일본 큐슈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고 밝혔다.아랍어로 희망이라는 뜻의 아말은 UAE 건국 50주년인 2021년에 맞춰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에미리트 화성 탐사 프로젝트(EMM)’의 일환으로, UAE는 2014년 7월 화성 탐사 계획을 처음으로 밝힌 이후 6년 만에 발사에 성공했다. 아말은 발사 1시간 후인 7시 58분 H2A와 분리하고, 태양전지판을 펼쳐 지구 궤도에 순조롭게 안착했다.아말은 화성 궤도로 향하기 전 임시로 지구를 도는 궤도인 ‘지구 대기 궤도’에서 기다린 후 약 7개월간 시속 12만1천km의 평균 비행속도로 날아 2021년 2월 화성 궤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아말 탐사선은 작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 크기에 무게는 1천305kg이다. 아말에는 화성 대기층의 얼음이나 오존 흔적을 찾는 고화질 카메라와 화성 대기권 아래 수증기를 분석하는 적외선 분광기, 대기 내 산소와 수소 포화도를 확인하는 자회선 분광기가 실려 있다. 55시간마다 고도 2만~4만3천km 타원 과학 궤도를 돌며 세계 최초로 화성의 기후도를 그릴 계획이다.화성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UAE는 옛소련과 미국, 유럽연합(EU), 인도에 이어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데 성공한 5번째 국가가 된다.일본은 1998년 탐사선 ‘노조미’를 보냈으나 화성 궤도 진입에 실패했고, 중국은 2011년 러시아와 함께 ‘잉훠 1호’를 보냈으나 지구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달 탐사선도 쏘아올리지 못한 우리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20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당나라 때 문인 한유는 율량 현위로 떠나는 지인 맹동야를 전송하는 글 ‘송맹동야서’에서 ‘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고 했다. 이 글에서 한유는 초목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쇠나 돌은 두드리면 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 원래의 평정한 상태가 깨졌기 때문이라면서, 사람이 말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것도 마음이 평정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올해 여름은 유난히 소리를 내고 싶을 정도로 흔들리는 일이 많다. 큰 사건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이다. 김종철 선생님은 삶의 기준을 찾지 못해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 분이다. 1991년 어느 날 신문에서 김종철 선생님이 쓴 칼럼을 보고 녹색평론을 구독하면서 이웃과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만들고 한살림 생협 활동까지 시작했다.박원순 서울시장은 개인적 인연은 없으나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숙제를 안겨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죽음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죽음을 둘러싸고 사회 구성원들의 거친 소리에 마음이 더 흔들린다.자연물은 흔들리는 대로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는 그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때로는 애써 소리 내지 않기도 한다. 김종철 선생님의 죽음에는 지금 나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는 감정의 과잉 때문에 소리 내기가 어렵다. 평정을 잃고 내는 소리가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SNS에 쓰는 글들은 즉흥적이어서 특히 그렇다. 발끈해서 쓴 내 글 역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지우기도 한다.한유는 음악이란 마음이 답답할 때 소리 잘 내는 재료로 내는 소리이며, 아름다운 문장이란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미학적 의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정성, 도덕성, 책임감, 시의성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내 글이 고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소리를 낼 바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 좋겠다. 문제는,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장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인기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한유 역시 아름다운 글은 인기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하면서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싫어하는 문장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순환론에 빠진다. 선하다는 기준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똑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수백 수천 년 이어지는 고전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다.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 그러나 사람은 평정을 잃었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마음을 심하게 흔드는 큰일일수록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다. 아름다운 소리만이 평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7-20

미심쩍은 행태 거듭하는 국가보훈처 ‘왜 이러나’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5주기 추모식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추모사 내내 ‘박사’로만 지칭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처장은 이 전 대통령을 소개할 적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라고 소개한 부분이 전부였고 시종일관 ‘박사’라는 표현만을 사용했다. 초대 대통령인 이 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 정부의 의지가 투영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이날 추모식엔 여당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조화만을 보냈다. 논란이 일자 보훈처는 “통상적으로 박사와 대통령 모두 이 전 대통령을 칭하는 맞는 표현이기 때문에 박사·대통령 호칭을 함께 사용했다”며 “향후 박사와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국가보훈처가 미심쩍은 행태를 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식에 서해해전과 연평도 포격 도발 유가족·생존자를 초청대상자에서 제외했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뒤집는 해프닝을 벌였다. 6·25 7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싣고 온 비행기를 바꾼 일로 “쇼를 위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유해가 이리저리 옮겨졌다”는 비난을 샀다.‘민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홍보물에 독일 나치군의 철모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쓴 것도 논란거리다. 보훈처는 그물망을 씌운 국군 철모 사진으로 급히 교체한 새 포스터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잘못된 이미지를 사용한 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다”, “해명이나 사과 없이 슬그머니 이미지를 교체하면 다냐”는 등의 날 선 지적이 나왔다.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분명히 존재했다. 정권의 이념에 맞춰서 역사를 새롭게 판별해 예우하는 것은 보훈처의 몫이 아니다. 정부 부처가 역사 속에 엄존하는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협애한 가치판단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인정하지 않는 패륜적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건듯하면 일 저지르고서 사과·해명하고 넘어가는 보훈처의 행태는 ‘치고 빠지는’ 얄미운 정치행태와 똑 닮았다.

2020-07-20

대구·경북 신공항 물거품 만들 수는 없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무산을 막기 위한 지역사회의 총력전이 본격 시작됐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20일 대구시청에서 신공항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신공항 공동후보지(군위 소보·의성 비안)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후 두 단체장은 군위군에 대한 현장 설득에도 나섰다.이보다 앞선 19일 이 지사는 도청에서 비상간부회의를 열고 “군위 소보 신청이 없으면 사실상 사업이 무산되는 만큼 공직자는 사즉생(死卽生)의 심정으로 임해 달라”고 했다.오는 31일까지 군위군의 공동후보지 중 한 곳인 소보면에 대한 신청이 없으면 4년간 공들여왔던 군공항(K-2) 이전사업은 사실상 무산된다는 절박함으로 지금 지역사회는 대구경북 신공항사업의 성사에 집중하고 있다. 국방부는 군위 우보 단독후보지는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31일까지 공동후보지에 대해서 신청을 유예해 놓고 있다. 이는 국방부가 최종 시한을 사실상 못 박은 것이라 열흘 안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신공항 사업은 무산된다고 보아야 한다.제3후보지가 거론된다고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지역발전을 도모해야 할 절박함 속에 시간적 손실이 너무 크다.지난 17일 대구시의회 장상수 의장과 일행이 의장 취임 후 첫걸음으로 김영만 군위군수를 만나 대구경북 상생을 위한 결단을 요구했다. ‘경북 범도민 추진위’도 군위군에 사무실을 내고 군민 설득에 나섰다. 경북도내 시장군수협의회서도 최근 신공항 조속 이전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는 등 신공항 합의를 여망하는 기관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홍준표 국회의원(대구 수성을)도 자신의 SNS에서 “신공항은 대구경북 100년의 미래가 걸린 역대급 사업”이라며 “군위군수의 대승적 양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부겸 전 의원도 “대구경북통합은 ‘엔진’ 신공항은 ‘액설러레이터’”라고 했다.만약 신공항 사업이 무산된다면 이로 인한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질 것이 뻔하다. 지역사회의 합의를 이끌지 못한 단체장에 대한 비판과 책임 문제가 떠오를 것이다.무엇보다 신공항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지역사회가 바라봤던 희망의 빛이 사라진 데 대한 상실감은 지역사회의 역동성까지도 흔들게 될 것이다.

2020-07-20

솔로 경제(Solo Economy)가 돌파구다

현대 산업사회는 지금까지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로 발전해왔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각 산업에서 생산시스템은 자동화되고 대량유통과 소비를 담당하는 백화점, 마트 등도 규모의 대형화를 경쟁하는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처럼 대량화나 자동화로 비용을 절감하거나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오직 혁신과 창의를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 기술, 제품을 내어놓아야만 한 발자국 앞서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과거에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표준화되고 다 같이 비슷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이제는 개성적이고 다양성이 보장되며 조금이라도 남과 다른 소수를 선호하며 작지만 강한 것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유독 경제부문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인구사회구조도 인간의 수명이 점차 연장되는 한편 저출산이 일반화되면서 무조건 남녀가 흔히 ‘결혼적령기’를 맞이하면 어떻게든 결혼을 하고, 결혼한 부부라면 아이가 있어야만 했으며, 노부모를 모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던 시대는 교과서에나 실리는 상황이 되었다. 은퇴 이후 ‘황혼이혼’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하지 않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현상이 1인 세대 또는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총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데도 총 세대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대수의 증가는 결혼으로 인한 분가도 있겠지만 청년, 고령자를 불문하고 1인 세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최대 원인이다.이처럼 1인 가구 속칭 ‘싱글족’이 증가하는 것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구 대국인 중국의 경우에는 내년쯤이면 1인 가구가 1억 명에 근접한 9천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의 총인구(약 14억4천만 명) 대비 1인 가구 비율은 약 6.4% 정도에 불과하나, 이 수치는 우리나라 인구 전체의 2배가 넘는다. 중국의 1인 가구의 존재감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다. 일본도 현재 총 5천300만 가구 가운데 3분의 1이 1인 가구로 파악되고 있으며 2035년경에는 이 비율이 40%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현재 총 2천34만 가구 가운데 1인 가구는 약 30.3%에 해당하는 616만 가구로 추계되고 있다. 경북도는 전국 평균보다도 높아 전체 110만 가구 중 37만 가구가 1인 가구로 약 33.4%를 기록하고 있다.이처럼 세계적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됨에 따른 인구구조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외에도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등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결혼연령이 점차 늦어지는 만혼율의 증가, 과거와 같은 백년해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정도로 증가하는 이혼율 등 인구요인 외적인 요소를 꼽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1인 가구의 증가 요인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인간이 장수하게 되면서 1인 생활의 확률이 높아졌다. 1인 생활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가 된 경우가 많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리츠메이칸 초빙교수는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장수할수록 홀로되기 쉬우며,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마지막에는 혼자가 된다면서 고령자가 1인 생활을 어떻게 실용적으로 해낼 것이며, 어떻게 체면을 차리고 우아함을 유지할까를 다루기도 하였다.둘째,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상호 인정되면서 홀로 생활하는 것이 전혀 특이하지 않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적령기에 혼자 생활하고 있는 ‘노총각, 노처녀’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사별하여 홀로 생활하는 ‘일편단심’의 고령자에게도 그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홀아비, 과부’와 같은 표현으로 무언가 부족한 사람인 양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혼자만의 생활을 전혀 꺼리지 않는 이들을 과거에는 ‘독신주의자’라는 별칭이 있었을 정도로 특이한 취급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셋째, 과거와 달리 홀로 지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시장이 존재하고 서비스가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 뉴욕대 교수는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혼자 살기의 매력’이라는 저서에서 솔로 경제(solo econom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과거와 달리 시장에서는 발 빠르게 1인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다양한 제품, 서비스가 출시된 지 오래다. 1인용 밥솥과 같은 주방 도구, 싱글족 대상 보험상품, 편의점과 마트에서 제공하는 간편하고 다양한 1인 가구용 식료품, 작지만 혼자 지내기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원룸 등 주거공간의 다양화 등이 솔로 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다.포항의 최근 흐름도 이와 비슷하다. 포항시 인구가 감소하는 데도 가구 수 자체는 늘어났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분양 세대수는 포항시 전 가구 수를 넘은 지 오래다. 물론 그 차이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수도권 등의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른 지역 거주 투자가들이 그동안 큰 폭 하락하였던 포항지역 아파트를 매집하여 단기간 내 높은 수익을 노리는 갭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일부 요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 내에서 최근 수년간 쏟아진 은퇴 인력들이 자녀들 명의로 아파트를 마련해주기 위해 분가시킨 영향도 적지 않다. 포항지역 소비경제가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데는 그동안의 부동산 가격 하락 등에 따른 역자산효과와 더불어 몇 년 전 가장 높은 시세를 보였던 부동산 구매에 큰돈이 묶여 있는 데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자금 집행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포항의 인구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는 데는 20∼30대 인구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주민등록을 부모의 거주지에 두었던 자녀들에게 아파트청약자격을 갖추도록 수도권으로 주소를 이전하여 1인 세대로 분가시키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앞으로 포항경제 전반에 걸친 주요 산업이나 다양한 업종의 소상공인들이 이 ‘솔로 경제’ 시대에 얼마나 순응해 나가는가에 따라 회복의 속도도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여 비대면 비접촉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리모델링을 생각하는 지역의 식당, 호텔 등은 절대적으로 이 흐름에 순응해야만 한다. 지역 농수산물 유통, 가공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굳이 포항, 경북이라는 좁은 지역적 영역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영일만항의 주요 노선에도 솔로 경제는 있다. 1억 명 가까운 중국의 솔로 시장은 보너스다. 포항의 모든 업태와 업종이 지역은 물론 외국시장까지 염두에 둔 1인용 먹거리를 생산, 유통하고 수출까지 하였으면 한다. 포항경제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솔로 경제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7-19

표리부동의 ‘협치(協治)’

안재휘 논설위원“군주가 고집이 센 성격으로 간언은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여 제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중국 전국시대 말기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와 그 일파의 논저인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소위 ‘망국 십계명’ 한 구절이다. 민주주의를 거론할 여지라곤 없었을 그 시기에 승부에만 집착하는 지도자의 소아병적인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확하게 설파한 대목이 신비롭다.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협치(協治)’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 개원 축하 연설에서 “협치도 손바닥이 서로 마주쳐야 가능하다”며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른 게 없다. ‘저를 포함한’이라는 수식어는 반성의 기미까지 읽힌다.그런데 두렵다. 그동안 청와대에 여야 지도부를 불러 대화를 할 적에도 문 대통령은 ‘협치’를 기대할 수준의 ‘공자 말씀’을 많이 했다. 그러나 돌아서면 곧바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치행태가 강공 일변도로 흐르곤 하던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소리장도(笑裏藏刀)의 정치술수가 구사되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쩍은 형편이다.문 대통령은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내우외환의 협곡에 처박히고 있는 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그 황당한 모순의 중심에 ‘승자독식(勝者獨食)’에 찌든 집권당이 있다.‘협치’는 무조건 승자의 아량과 양보에서 출발한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굴종하게 만들 요량이라면 ‘협치’의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지난 4·15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통합’이나 ‘협치’의 미덕과는 멀어도 너무 먼 정치행태를 보여왔다. 전통적으로 야당 몫인 국회 법사위원장을 군사 작전하듯이 점령했고, 급기야는 18개 상임위를 모두 독점하고 있다. 그래놓고 매사를 야당의 비협조가 원인이라고 욱대기는 내로남불의 남 탓만 읊어대고 있다.집권세력의 의도적 오독(誤讀) 감염은 중증이다. ‘정치보복’이라고 써 놓고 ‘적폐청산’이라고 읽는다. ‘검찰 장악’이라고 써놓고 ‘검찰개혁’이라고 읽는다. ‘언론 장악’이라고 써놓고 ‘언론 개혁’이라고 부르댄다.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협치’를 강조했다. “공동 책임”이라고도 했다. 이런데도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토해내지 않는다면 이건 확실한 ’레임덕 현상’이다. 백선엽-박원순 사망을 기점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념 갈등을 해소할 방책도 없이 지금처럼 지지자 결집만을 줄기차게 추구한다면 ‘협치’ 타령은 썩은 솜사탕이다. 그런 노래는 한낱 신기루요 공갈빵이다. ‘승부에 집착하여 제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는’ 권력자들의 표리부동에 국운이 날로 위태롭다.

2020-07-19

천박한 확증편향… 나라를 쪼개고 있다

한국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미국의 전현직 고위당국자들이 화상세미나로 고인이 된 백선엽 장군을 추모했다. 국가보훈처는 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정보에 백 장군을 ‘국가기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다’로 등재했다. 백 장군의 삶을 도무지 입체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속물적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이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는 형국이다.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장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장만한 추모세미나에서 마크 내퍼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는 “그(백선엽 장군)는 한국의 최고, 한미동맹의 최고를 상징했다”고 평가했다. 백 장군을 ‘친일인사’로 비판하는 쪽에서는 ‘간도특설대’ 경력을 넘어서 과거 사학비리 연루·아들과 강남빌딩 소송전까지 소환하면서 고인을 깎아내리고 있다.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낙동강 전선이 240㎞를 지킨 건 8개 사단이었으니 백선엽은 그 중 8분의1의 역할을 한 것”이라며 공을 평가절하하고 있다.백 장군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그가 ‘간도특설대’에 부임한 1943년에는 만주 독립군 모두 러시아나 중국 내륙으로 이동해 없었다는 상황을 부각한다. 백 장군 역시 “독립군은 구경도 못 했다”고 증언했었다. 이 증언에는 귀를 막은 채 ‘독립군 토벌’이란 오명만 덧씌우려 한다는 것이다.김원웅 광복회장이 “(백 장군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며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을 본국으로 소환해 달라는 서한을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일은 어이가 없다. 노영희 변호사가 방송에서 “백선엽, 우리 민족 북(한)에 총을 쏴 이긴 공로로 현충원에 묻히느냐”고 한 말은 아적(我敵)을 헛갈린 망언이다.여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일이 문제가 되자 자살한 것으로 정리되고 있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서울특별시장(葬)을 치르자고 욱대겨서 시민 조문까지 받게 했던 민주당의 이중적인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공과를 평가해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악한 확증편향이 국격을 떨어뜨리고 온 국민을 자꾸만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2020-07-19

부동산 불패론

부동산 불패론이란 아무리 경기가 나쁘고 위기가 닥쳐도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투자처로서 부동산만 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불패론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서울 강남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내리고를 말할 때 강남을 빼고 설명할 수는 없다.정부의 집값 안정조치에는 강남이 반드시 포함되지만 지금까지 강남 집값을 추월한 여타지역은 없다. 그래서 강남 불패론이란 말도 일찍부터 생겨났다.강남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중심부에 서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백두대간의 기가 모이는 곳이라는 풍수적 평가 말고도 사통팔달의 지리적 입지가 서울에서 최고다. 교통과 교육, 편의시설과 같은 생활 인프라가 이곳을 능가할 만 곳이 없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속에 형성된 인프라라는 점에서 서울의 어느 곳도 강남을 대체할만한 곳은 없다는 것이 이유다.역대 정부가 여러 번 강남을 타깃으로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을 펼쳤으나 현재까지 강남은 부동산 불패지역으로 건재하고 있다.몇 년 전 한 금융연구소가 10억 이상 현금을 보유한 금융자산가를 대상으로 그들이 보유한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을 살펴봤더니 85%나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동산을 자산증식의 중요 수단으로 여긴다는 반증이다.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반발하는 일부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이다.부동산 불패론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정부의 즉흥적 조치로 불패론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코를 다치는 것이 당연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19

코로나 막는 마스크 착용, 실천이 방역성패 가른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국내로 유입된 지 6개월이 지났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 때 우리지역은 거의 아수라장처럼 변했다. 그러나 지역의료진과 시민들의 헌신적 노력 덕분으로 지금은 확진자 발생이 거의 없을 만큼 안정적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는 여전히 하루 20만 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는 대유행의 길목에 서 있다. 미국과 브라질, 인도의 경우 누적 확진자수가 300만, 200만, 100만 명을 각각 넘어선 실정이다. 국내서도 대유행은 아니지만 집단감염의 여파로 수도권과 광주, 대전에서 산발적 환자발생이 이어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올 가을 2차 대유행의 우려가 있다는 의료계의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기온이 내려가고 건조해지는 가을철이 되면 바이러스는 더 오래 생존하고 번식하기 쉬워진다. 특히 독감까지 함께 유행할 경우 구분이 어려워 사태가 더 악화되면서 의료계의 방역 부담이 훨씬 커질 수 있다고 한다.중앙방역대책본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의 유행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어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감염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5배나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인용,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코로나19 감염률을 85% 정도 감소시켜 준다”고도 했다. 그는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확진자 모녀가 세 차례 예배에 참석했지만 전 교인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덕분에 전체 교인 9천여 명 중 추가 감염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사례도 발표했다.광주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일행 3명과 함께 한 시간 이상 같은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는 바람에 추가 감염자가 없었다고 한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모범적 사례다. 코로나19는 백신 개발이나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는 지금과 같은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예방수단이다.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데 결정적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모두 잘 인식하고 이를 지켜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0-07-19

염라대왕 당부말씀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이승에 계신 인간제위께!여러분을 사후 세계로 여행시키는 저승사자 주식회사 대표이사 염라대왕이요. 회사 창립 이후 최초로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은 현 인간 세상의 사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오. 이대로 둘 경우 저승사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리며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며 파업을 할까 우려 때문임을 이해해주기 바라오. 잘 알다시피 금년 초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이곳의 저승사자들이 밤잠을 설치며 새 여행객을 맞이한다고 밤을 밝혀 일하고 있소. 근래 보기 드문 여행객의 증가로 이곳 저승사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이 없어졌다며 특단의 대책을 세울 것을 나 염라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는 실정이라오. 물론 전 지구촌 인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처음보다 저승여행객이 많이 줄어들고 있음은 높이 평가하고 있소. 빨리 끝나서 정상적인 업무처리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을 당부하오. 이런 저승과 이승의 협업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 인간세계에서 잊을만하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기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소.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저승을 찾는 기본 계약을 어기고 급행열차에 몸을 싣는 인간이 심심찮게 있는데 제발 자제해주기를 당부하오. 지구 동쪽 끝 인간들의 급행열차 탑승인원이 지구촌에서 제일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소.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어떤 연유인지 급행열차를 선탑하는 사례로 완행열차를 타야 될 승객들을 술렁이게 함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오. 저승으로의 여행은 언제 되돌아갈지 모를 여행으로 인간세상의 복잡하고 힘든 일을 잊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혹에 흔들릴 수 있을 거요. 하지만 생업을 책임진 가장이, 나라를 책임진 정치지도자가 불쑥 기약도 없이 여행을 떠나 남은 가족과 국민들이 걱정의 나날을 보내게 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도리가 아니요.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기본이요 가족과 나라를 내팽개친 무책임의 극치라 생각하오. 인간 세상에는 ‘실수’라는 좋은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신이 아니기에 인간이 자신의 기본적 의도와 달리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잘못을 저지를 때 짐짓 용서하고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승세계의 환상에 젖어 급행열차를 타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로 밖에 볼 수 없소. 인간생활 향상을 위해 일하는 정치지도자들의 급행열차 승차는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음을 감안하면 급행열차 새치기 승차는 절대해서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인간들이 만든 말이 맞소. 여기 저승생활은 만만찮소. 아울러 그쪽 일부에서 급행열차 승차한 일을 미화하여 너도나도 동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코로나 종식으로 이곳 저승사자 업무도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면 하오.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계속 밀려오는 여행객들 때문에 이만 줄이오. 명이 다할 때까지 이승에 있길 바라오.

2020-07-19

유 선생님과 당신

김현욱시인‘유튜브’를 ‘유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보통 선생님이 아니다. 가히 팔방미인, 박학다식, 모르는 게 없고, 안 해본 게 없는 선생님이다. 그동안 유 선생님께 배운 실력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6살 소녀는 5개 국어를 유 선생님께 사사(?)했다. 10대 드럼 천재도 유 선생님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개별레슨으로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나도 유 선생님께 주역과 바둑, 통기타, 연필 스케치, 집짓기, 기업 재무제표 보는 법, 스포츠마사지, 전원주택 분석 등의 강의를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듣는다. 물론,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클릭해야하는 작은 수고가 있지만, 강의의 수준도 괜찮고 커리큘럼도 체계적이다. 근자에는 김지윤 박사와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의 강의를 유 선생님의 도움으로 듣고 있다. 나는 김지윤 박사와는 일면식도 없고, 홍익대는 가본 적도 없지만, 두 사람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뛰어난 안목과 식견에 그저 감탄하며 들을 뿐이다. 자연스레 김지윤 박사와 유현준 교수의 책을 구입했고, 밑줄을 그으며 그들의 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무엇보다 유 선생님께 고마운 것은 명상에 대한 폭넓은 가르침이다. 개인적인 병고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절에, 명상을 만났다. 명상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찾아 읽었지만, 실천과 수행의 영역에서 언제나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유 선생님께서 거창 붓다선원 진경 스님과 춘천 제따와나선원 일묵 스님의 영상을 보여주셨고, 전현수 박사의 강의를 소개해주셨다. 붓다선원은 방학을 이용해 다녀오기도 했고, 일묵 스님과 전현수 박사의 책은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살면서 명상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든 명상은 여기에 속한다. 계(戒), 정(定), 혜(慧).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아직은 까마득하고 아득하고 범접할 수 없는 진리의 법이지만,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통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유현준 교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의 특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다. 아픈 마음들이 너무 많다. 몸은 성인인데 마음은 아직 유년기에 머물러 불안과 회피를 되풀이하는 어른들도 많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히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 지도자 고엔카는 “진리를 직접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외부로 향한 시선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을 보라는 뜻이다.내 나이 마흔 중반. 서원(誓願)을 세운다. 상담 공부와 명상 수행을 통해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힘닿는 데까지 가보련다. 여러 가지로 유 선생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유 선생님은 다름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의 선배, 동료들이다. 바로 당신이 나의 소중한 유 선생님이다. 정말 고맙다.

2020-07-19

맑음으로 ‘맑은 미래’ 여는 영덕

이희진 영덕군수코로나19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다. 하지만 국난 속에서 우리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알 게 해줬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사돈에 팔촌, 친구의 친구까지 발품을 팔아 마스크를 확보해 각 가정에 배부하고, 신속한 재난 지원금 지급을 위해 밤잠을 설친 영덕군 공직자들. 또, 그 와중에 국회의원 선거 준비까지. 코로나19 속에서 영덕군 공직자들은 빛을 발했고, 현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생활치료센터 제공에 동의한 주민, 자발적 방역에 나선 사회단체, 소중한 성금을 기부한 군민, 그리고 착한 임대인까지.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채운 우리 군민들도 있었다. 코로나19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공직자와 군민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다면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 확신한다.이제 우리 영덕군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자원인 맑은 공기와 바다, 오랜 시간 품어온 역사와 문화 등 값진 자원을 활용해 가장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로컬(global+local) 관광산업을 선도하고, 이를 통해 미래 100년의 먹거리를 만들 것이다.그 중심엔 ‘맑음’이 있다. 청정이라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맑은 공기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영덕의 맑고 청량함을 더욱 부각시킬 생각이다. 맑은 바람을 맞으며 자란 복숭아와 송이, 맑은 바다를 머금은 수산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어놀 수 있는 해변과 체험시설 등 맑음을 다양한 분야로 확신시켜 깨끗한 영덕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혀나갈 것이다.최우선 과제 ‘맑은 생활 프로젝트’는 주민이 행복하고, 주민중심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영덕읍에는 놀이터, 도시공원, 로컬푸드센터, 키즈카페 등이 들어서는 ‘다함께 행복청사’가,영해면에는 소규모체육관, 공공도서관을 갖춘 ‘예주행복드림센터’, 강구면은 키즈카페, 북카페, 작은 도서관이 있는 ‘강구건강활력센터’가 생긴다. 또, 영덕의 맑은 미래를 여는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인재양성도서관’도 생겨 주민 중심의 맑은 정주여건을 만든다. 해당사업은 국비 및 도비 확보, 부지 등이 순조롭게 진행돼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위한 ‘맑은 미래 만들기’도 진행된다. 통합공공도서관, 청소년수련관을 통해 지역복합문화의 장을 마련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여성·아이 친화도시도 조성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맑은 도시’를 목표로 어린이놀이터 확충, 영유아 실내놀이터 등을 통해 영덕만의 특색 있는 아동·보육 정책도 추진한다.미래 100년 먹거리는 ‘맑은 산업’이 이끌어 나간다. 지난 6월 대한민국 대표 웰니스 관광지로 인문힐링센터 ‘여명’이 선정됐다. ‘여명’이 중심이 돼 영덕군에‘명상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맑은 공기가 있는 우리 영덕이 대한민국 대표 명상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또, 코로나로 달라진 가족형 휴(休) 문화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여름 한 시즌 운영하는 현재의 해수욕장을 4계절 관광객이 찾는 맞춤형 해변으로 재탄생 할 계획이다.‘뉴노멀’과 ‘비대면 시대’에도 적극 대응한다. 유통단지와 산지유통센터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로컬푸드 직매장, 프리마켓, 드라이브 스루 판매, 라이브 커머스 1인 미디어를 활용한 농수산물 온라인 판매도 진행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군민의 안전과 행복일 것이다. 우리 영덕군은 취약계층 생계지원 및 일자리 사업의 꾸준한 추진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복지 관련 기금들을 복지기금으로 통합해 복지 상생모델로 삼을 것이다.또, 우수기 전 태풍 피해 복구와 방지 대책을 마련해 군민 안전을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다.맑은 도시 이미지에 부합하는 청렴하고 깨끗한 조직 문화, 군민 중심의 적극행정,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열린 행정으로 불투명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고 맑은 미래를 여는 영덕군이 되겠다.

2020-07-19

담장

세상에 나올 때부터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처음부터 담장이 익숙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햇볕이 따뜻하게 데워 놓은 담장에 기대 놀았고, 친구와 담 밑에서 숨바꼭질하며 키를 늘였고, 부지깽이를 든 엄마에게 쫓겨 줄달음치다가 잠시 흙담 모퉁이에서 가쁜 숨을 고르기도 했다. 담장은 골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우리에게 안겨주었다.청송 덕천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햇살에 바랜 흙담이 맨 앞에 서서 구경꾼들을 안내한다. 홍살을 단 솟을대문을 슬며시 밀자 ‘꿔이익’ 닭 울음 닮은 소리를 낸다. 근방에 송소고택만큼 품 넓은 집이 없다고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아흔아홉 칸 기와집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렸다는 심호택이 1880년경 호박골에서 본래 살던 덕천리로 이전하면서 지어졌다.너른 마당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헛담이 우릴 반겼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외출이 잣지 않던 여인들이 뭇 남정네가 앉아 있는 앞을 지나 안채로 가는 게 상당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아녀자를 배려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내외벽인데, 바깥주인이 머무는 사랑채에서는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짝 가려 보이지 않게 했다. 병풍을 두르듯, 가리개를 세운 듯 ‘ㄴ’ 자 모양으로 돌아앉은 모습이 수줍은 새색시 같다.이집에는 담이 유독 많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높은 담이 행랑채를 끼고 집 전체를 휘감았고, 남자는 사랑채에 여인네들은 안채에 따로 살게 나누는 흙담이 있고 노소 또한 구분해 놓았다. 남자아이는 일곱 살이면 어미가 사는 안채에서 나와 아버지가 기거하는 작은사랑채와 할아버지 슬하인 큰사랑채에서 글을 배워야 했다. 여자아이는 별채를 따로 두고 신부수업을 시켰다. 별채 담장에 달린 문이 특이하다. 보통의 대문이 집안으로 열리는데 비해 이 대문은 밖에서 잠그고 열 수 있게 설계했다. 시집가기 전에 그 담장 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다.조선의 여성들이 풍성한 치마아래 고쟁이에 속속곳까지 여러 겹의 속옷을 받쳐 입었듯, 이 고택의 솟을대문에서 안방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문을 거쳐야 한다. 그런 여인에 대한 배려인가, 만석꾼의 여유인가. 사랑채와 안채를 가르는 담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사랑채에서 보면 여섯 개의 구멍이고 안채에서 보면 세 개의 구멍이다. 셋이 여섯을 이기는 기적이 이 담장에서 일어난다. 여섯 개의 구멍에도 불구하고 사랑채에서는 안채가 보이지 않지만 안채의 세 개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망원경처럼 사랑채 마당을 살펴볼 수 있다. 옛날 이곳에 살았던 안주인은 세 개의 구멍으로 비껴서 여섯 개의 구멍 앞을 거니는 사돈댁에 다니러 온 아비의 뒤태를 보고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지척에 친정아비를 두고도 부르지 못하니 고된 시집살이에 대해 넋두리를 담장에게 털어 놓으며 수많은 계절을 보냈을 것이다.담을 생각해낸 이들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서민들 속의 담은 그들과 달랐다. 분명 ‘내’와 ‘네’는 겉모습이 다르지만 써 놓고 읽으면 같은 소리가 난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우리는 내 집 네 집 구분 없이 드나들었다. 울타리 때문에 친구 집에 못 가는 일은 없었다.김순희수필가공간을 나눈 담장이 많아 자칫 답답하게만 느껴질까 봐 송소고택의 주인장은 지혜를 발휘해 흙담에 꽃을 그려 숨통을 터 주었다. 꽃담은 보면 볼수록 소박하고 은근한 맛이 배어난다. 해의 양기와 달의 음기를 불어넣어 꽃을 피우고, 새를 불러들이며, 풍성하게 열려있는 과실을 표현하여 담이 곧 정원이 되었다. 깨진 기와와 돌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조선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설치미술이다. 담장이 긴 이야기책이라면 꽃담은 신윤복과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첩을 닮았다.고택 마당을 돌아 나오니 어느새 배추흰나비 한마리가 담장에 찾아왔다. 기와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날개로 여름을 접었다 폈다하기를 쉼 없이 반복한다. 오래 간직한 고택 담장에 내가 다녀간 이야기를 한켠에 그려 넣는 듯하다.

2020-07-19

장관 이름을 꼭 넣어야 했을까?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몇 년전 모 대학교의 국제화 자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문기간이 끝나 감사패를 받게 되었는데 감사패에는 일반적으로 수여자인 총장의 이름을 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수여자 이름에는 총장 이름 대신 ‘oo대 교수단’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대학총장은 총장 전용 주차장도 없애고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공을 가운데 세우는 겸허하면서도 구성원에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최근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 명패석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포함된 사실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경북 김천에 위치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가 지난달 30일 세워졌다. 1970년 준공된 경부고속도로의 5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그런데 그 기념비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명의로“본 고속도로는 5000년 우리 역사에 유례없는 대토목공사이며,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되고 국가발전과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국민정신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엔 발주처였던 건설부 관계자와 시공 업체 직원 등 531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그리고 헌정인으로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라고 쓰여져 있다.경부고속도로는 독일 아우토반(고속도로)을 보고 온 박정희 전 대통령 구상에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뒤인 1968년 착공, 1970년 개통을 이뤘다. 야당인 통합미래당과 보수권 국민들은 “왜 박 대통령의 이름이 없는가”라고 항의하고 기념비를 다시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또 준공기념비에 대통령 이름이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하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 이름이 들어간 것은 국토부를 대표하는 장관이름을 쓴 것이라고 강변한다. 건설공사 참여자의 명단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기념비의 헌정인은 자연인 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 장관은 고속도로 건설에 아무런 공헌을 한 것이 없다. 헌정인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현 정부의 원천이 되는 당시 야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하며 ‘차도 없는 나라에 고속도로가 웬말이냐’, ‘고속도로 만들어봤자 돈 많은 자들이 놀러 다니기만 좋게 할 거’라고 비판 하면서 고속도로에 눕기도 했었다.어제 누군가가 기념비에 새겨진 ‘국토교통부 장관’ 글자를 훼손하여 다시 복구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한다. 왜 그렇게 이름을 알리지 못해 안달일까? 김 장관에게 앞서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모 대학의 총장으로부터 배우라고 주문하고 싶다. 필자도 최근 이임하는 교수에게 재임기념패를 주면서 학장이름을 안쓰고 ‘교수일동’이라고 써넣었다. 이임하는 교수나 축하해주는 교수들이나 모두 흐뭇한 표정이었다. 국토부도 그 기념비에 ‘대한민국 국민 일동’이라고 썼다면 오히려 장관의 겸손함이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다.

2020-07-16

역사의 한 페이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며칠 전 별세했다. 그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불굴의 투혼으로 지켜낸 구국의 영웅으로 길이 청사에 남을 군인이었다. 일제치하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한 전력이 있어 좌파 진영에서는 친일파로 매도를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공적에 비하면 옥의 티에 불과한 것이었다. 김일성이 얼마간 항일운동의 전력이 있다지만 북한의 전 주민을 꼭두각시 노예로 전락시키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것과는 참으로 대비가 되는 일이다. 굳이 공과를 따지자면 백선엽 장군은 과 하나에 공이 아홉이요, 김일성은 공 하나에 과가 천이고 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백 장군의 타계 하루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을 했다. 지난 몇 년간 비서로 있으면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경찰에 고소장을 낸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오거돈 부산시장이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할까. 아마도 오랜 세월 인권변호사로, 특히 여성인권의 대변자를 자처해온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상반된 행각이 탄로나자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심정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성추행범들과는 달리 박 시장의 경우 선도적 페미니스트로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입장이었기에 죽음 말고는 도피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두 죽음에 대한 이 정권의 태도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될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이 즉각적으로 애도를 표하고 서울시장(葬)으로 시청 앞에 빈소를 차리는 반면, 백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뭉그적거리다가 비난이 일자 마지못해 국군장도 아닌 육군장으로 하고 뒤늦게 조문을 하는 행태를 보였다. 광화문의 분향소도 일부 뜻있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것이라 한다.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의 사투가 아니었으면 한반도는 김일성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지금쯤 우리는 김정은을 절대존엄으로 떠받들며 살고 있을 것이다.잘못을 저지르고 궁지에 몰려 선택한 자살은 비겁한 도피일 뿐이다. 박 시장이 남긴 짤막한 유서에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는 것으로 보아 양심의 가책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로지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업적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걸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이 있다면 죽음으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위선과 가식과 죄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양심이고 도리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죽음을 미화하고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가려는 자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두 사람의 죽음을 두고 극명하게 엇갈린 민심이 양쪽 분향소 앞에 줄지어 선 모습은, 이 정부가 조장하는 극단적인 대립 양상의 단면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행여 망국의 조짐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2020-07-16

비서(秘書)

조선시대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곳이다. 도승지는 승정원의 우두머리로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당상관 벼슬이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을 보좌하는 자리는 업무의 특수성으로 보아 반드시 필요했던 모양이다. 15세기 영국에서도 왕의 문서를 취급하는 사람을 비서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서의 영어 표기인 Scretary가 비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산업화와 더불어 사회구조가 복잡화되면서 전문비서의 역할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의 경우 그룹 회장을 모시는 비서실의 비중이 크게 부상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비서직의 중요성을 고려, 비서학과가 등장한다. 이화여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비서학과를 개설했으며 지금은 전국 대학에 20여 개 학과가 개설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위층의 비밀업무를 취급하는 비서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모시는 분과 생활패턴을 같이해야 한다. 상사의 요구에 순종해야 하며 상사의 요구를 기록하고 미리 예측하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 업무 파악력도 좋으며 영어나 타이핑도 잘해야 비서직에 발탁될 수 있다.그러나 상사보다 항상 먼저 출근해야 하고 퇴근도 늦다. 상사의 일에 보조를 맞추다보니 사생활이 많이 제약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비서직은 외견 화려해 보이나 개인적인 고통도 적지 않은 자리다.비서직이 연이은 고위직의 성추행 사건에 휘둘려 수난을 맞고 있다. 비록 짧지만 사회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비서학이 전문직 영역에서 대접을 못 받는 꼴이다. 비서직이 기관장의 사적업무나 돕는 사람 정도로 보는 그릇된 사회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7-16

故 박원순 성범죄, ‘진실 매장’ 음모 시작됐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숱한 의혹들이 폭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당 대표가 ‘통절(痛切)’이라는 수식어까지 동원해 사과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진상규명에는 발을 뺐다. 민주당 여성의원들도 뒤늦은 입장문에서 ‘서울시 차원의 진상조사’라는 맥빠진 주문만 내놨다. 미적거리는 경찰 수사를 비롯해 항간에는 박원순 성범죄에 대한 ‘진실 매장’ 음모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무성하다. 초미의 관심사는 박 시장에게 누가 피해자의 고소 사실을 누설했느냐는 부분이다. 성범죄의 경우 피고소인의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 고소인 성명까지도 익명으로 처리할 정도로 보안이 필수다. 그런데 모든 정황으로 보아서 박 시장은 고소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서 마지막 선택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누설자가 경찰인지, 청와대인지, 또는 정치권 등 제3의 인사인지는 반드시 밝혀내야 할 숙제다.민주당과 서울시청, 여당 정치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쓰고 있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의혹도 불이 붙었다. 공개사과를 한 이해찬 대표가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을 썼고, 민주당 여성의원들도 같은 말을 사용했다. 특히 서울시 대변인 역시 ‘피해 호소직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야당으로부터 공격대상이 됐다. 미래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집단 창작’이라며 ‘우아한 2차 가해’라고 통박했다.피해자에 대한 진보 인사들의 노골적인 ‘2차 가해’도 심각하다. 민주당 현직 의원의 “상징조작”이라는 막말, 라디오 진행자의 “미투는 숨어서 하는 것 아니다”라는 험담, 현직 여검사의 ‘성추행 자수’ 장난질에 이르기까지 고약하기 짝이 없다. 박 시장의 성범죄를 방조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서울시가 나서서 ‘민관합동 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셀프조사’를 발표하는 건 악랄한 차단막이다. ‘2차 가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서울시 공무원 전원에게 내린 수사 비협조 함구령에 불과하다. 성범죄 고소 사실 누설 혐의 선상에 있는 경찰도 조사자격이 없다. 검찰을 비롯해 보다 공정성·독립성이 담보된 기관 조직에서 조사해야 한다. 박원순 성범죄 ‘진실 매장’ 음모는 분쇄돼야 한다.

2020-07-16

숙명론적 자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사건이 여의도 정치판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사회운동가이자 여권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자살론’을 저술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 및 유형을 4가지로 나눴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약해졌을 때 일어나는 이기주의적 자살은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강화됐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카미카제 등은 이타적 자살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로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이다.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은 숙명론적 자살로,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다.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라는 절망감이 자살에 이르게 한다.뒤르켐의 분류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숙명론적 자살에 해당할 듯하다. 그가 자살한 이유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추행 피소가 엄청난 충격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가 성추행으로 피소된 지 하루만에 자살한 채 발견된 것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에 맞닥뜨리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리란 추측이다.무엇보다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이 성추문으로 하차하게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장례식장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며 욕설까지 퍼부었던 이해찬 대표도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다.야당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 특검과 국정조사를 거론하며 여당에 대해 맹공을 펼치고 있다.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그어 자살하는 행위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는 고결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한국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 천 년 전부터 죽음에 대한 금기가 심하다. 유교의 정신 역시 죽음을 금기시한다.박 전 시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로 목숨을 끊었지만 어쨌든 피해 진상규명 절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민여론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쪽이 많다. 그래야 제도적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구제가 가능해질 것 아닌가.

2020-07-16

수도권 주택 확대로 지역균형발전은 묵살하나

정부가 22번의 주택안정정책을 펼치고도 수도권의 집값을 잡지 못하자 이번에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다.정부와 여당은 지난 15일 7·10 부동산 대책 후속점검 회의를 열고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주택공급 확대정책을 펼치는데 합의를 모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3기 신도시 등 공공주택 32만 가구를 포함해 77만 가구를 수도권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특히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 서울지역 그린벨트 해제까지 언급하는 등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였다.주택가격 안정을 위해선 주택공급 확대는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르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주택공급 중심으로 펼쳐지다 보면 자칫하면 지방의 투자 수요까지 수도권에 몰려 지방의 경제가 더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지역 집값이 치솟자 서울과 수도권지역 투자를 노리는 지역 투기자금이 적지 않은 상태다.수도권지역의 주택공급 확대가 나약한 지방의 경제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나타날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금 지방은 지속적인 청년인구의 유출과 노화로 소멸대상 지역이 늘어난다.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구호에만 그치고 있어 지역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 없는 한 지방의 인구유출은 지속될 전망이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 간 대구를 떠난 인구가 15만 명을 넘어섰다. 그 중 20대 청년층 인구가 절반을 넘는 52%에 달했다. 수도권보다 낮은 임금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주원인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지역경제가 더 나빠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화돼 가고 있다.경북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청년의 80%가 일자리 감소와 창업의 어려움 등 경제적 문제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문제는 정부의 눈에는 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 시각에서 보면 중앙정부는 지방의 경제야 쪼그라들든 말든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을 지어 보겠다는 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겠다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이 옮겨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만으로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을 잡을 수는 없다.

2020-07-16

조선작 단편소설 ‘영자의 전성시대’

김유정 문학촌에 터줏대감이신 전상국 작가를 만나러 간 적 있다. 그때 전상국 선생의 작품을 ‘문학의 오늘’에 싣고자 할 때였다. 참 섬세해 보이시는 전상국 선생께서 당신의 작가 수업 과정을 말씀하시는 중에 조선작이라는 작가가 당신 학창시절인가 사는 데서 만났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비로소 조선작을 문학사의 작가로서 인식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이 작가의 대표작은 아직은 설익은 내 생각일 뿐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영자의 전성시대’일 것이라 생각한다. 1973년에 ‘세대’ 잡지에 실린 것을 1975년에 김호선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서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던 모양이다. 1975년이라면 내가 열 살쯤 되었을 때인데, 선정적이라 여겨지던 영화 포스터를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있다.다시 읽어 보는 ‘영자의 전성시대’는 영화로 된 것과는 스토리가 달라도 아주 다르다. 영화도 나쁘지는 않지만 굳이 손을 들어 보자면 확실히 소설 쪽이 작품성이 좋다. 이는 영화감독을 폄하함이 아니라 조선작 소설의 우수성을 말함이다.여기에는 ‘창수’라는 화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월남전 참전용사로 현 직업은 목욕탕 ‘때밀이’,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세신사’라 한다. 창수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지 돈이 생기면 젊은 욕망을 사창가를 찾아가 몸 파는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때우곤’ 한다. 이 창수의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경험이나 세계인식으로 곧장 환원하는 것은 작품 연구의 기본에서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해 두고, 이렇게 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게,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창녀로 ‘전락한’ 바로 영자다. 나는 지금 ‘전락’이라는 말에도 작은 따옴표를 쳐 놓았는데 함부로 ‘전락’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골에서 상경한 몸으로 식모가 되었다가 버스 차장이 되고 그때 버스에서 떨어져 삼륜차에 치이는 바람에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말았다.이 영자를 위해 창수가 나무 팔을 만들어 주는 장면, 그리고 청량리 588의 화재와 영자의 죽음 같은 극적인 스토리는 두고두고 이 작품을 시대의 문제작으로 만든다. 월남전 참전용사와 시골 상경 여성의 만남과 사랑, 그 비극적 결말은 이 작품이 얼마나 정교한 상징적 의도 아래 쓰여졌는지 말해준다.조선작은 1940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사범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밖에 이 작가에 대해서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 앞으로 내가 성장한 대전에서 나온 이 작가에 관해 한 번 이것저것 알아볼 생각이 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7-16

대통령 만수무강(大統領 萬壽無疆)

탄탄 스님 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이 시대의 정치체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라는 상징적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직이 안정이 되어야 한다.물론 투명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롭고 공평해야 그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우리네 삶의 안정에 연관되는 대통령의 의사 결정은 우리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뒤틀어 놓을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고용이며 노동조건과 소득, 재산, 부동산, 건강, 교육, 사회보장, 세금과 공공요금, 삶의 인프라 등 그 어떤 막강한 힘 아래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바뀔 수 있는가.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 대통령이 장악한 정부와 관료 체제이고, 그러한 체제를 움직이는 최고의 사령탑에 앉아 있는 존재가 대통령이며 대통령직이 흔들리면 온 나라의 불안감은 증폭된다는 사실이다.정치는 일상적 잡사에까지 힘이 미치면서 동시에 일상의 잡동사니를 초월하는 정연하고 투명한 공간을 구성한다.잡다한 일상사에서 삶의 위엄을 그 나름으로 직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공간이다. 그러나 근자에 정치 공간에서의 위엄의 소멸은 세계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수준 낮은 발언이나 인종차별, 이민자의 박해 등 공공의 공간에서 결코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지만 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정치쇼에 우매한 유권들은 열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시기에 트럼프의 권력누수는 미국 사회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작금에 시진핑 주석의 마음도 상당히 급해졌다. 아예 ‘지쟁조석(只爭朝夕)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지쟁조석은 마오쩌둥 주석의 말인데, 1963년 1월에 지은 시 ‘만강홍·궈모뤄 동지와(滿江紅·和郭沫若同志)’에서다. 당시에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도 지지와 중국 반대를 외칠 때였다. 당시 대약진운동 열기의 그늘 속에서 중국인민 약 2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던 시기에 마오는 남의 나라에서 1만년 단위로 역사가 전개될지라도 중국에서는 한 시간, 한나절 단위로 급박하게 역사가 전개되어야 한다며 조급해 했다. 지난 가을 현대판 로마제국인 미국 추월을 선언한 시 주석의 조급함이 문화대혁명 직전 마오를 닮고 있다. 중국의 원로 역사학자 장카이위안은 “조급 의식이 무한하게 팽창하거나 남용되면 민족을 풍광(瘋狂)케 하여 민족의 재난 또는 세계의 재난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음에도 말이다.우리 대통령도 조급해 하지 말고 차분히 민생을 챙기고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길 바랄 뿐이다. 홀로 독주만 하려 말고 야당과 동반하여 레임덕 없이 남은 기간을 잘 마무리하고 무탈하길 바라며 골깊은 산사에서 통령각하 만수무강을 애타게 불전에 기원한다.

2020-07-15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0일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경북대와 전남대 인문대학이 함께하는 제2회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다. 작년 10월 18일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주제로 처음 열린 학술대회에 이어 ‘기억과 기록: 대구와 광주’를 주제로 두 번째 학술대회가 열렸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거점 국립대학인 전남대와 경북대가 동서화합과 미래지향의 가치를 내걸고 개최한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이번 대회에서는 대구와 광주의 근현대사에 나타난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뤘다. 그런 까닭에 대구에서 발원한 국채보상운동, 2·28 운동과 대구 3·1운동, 광주의 5·18 민중항쟁과 제주 4·3항쟁 같은 의미심장하고도 뼈아픈 한국 현대사가 소환됐다.코로나19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70여 청중이 모여 열기를 보여주었다.작년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에게 지역감정을 묻다’는 주제로 발제했던 나는 올해는 대담 진행을 맡았다.대구의 이창동 감독과 광주의 황지우 시인을 대담자로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 주지하다시피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해 1997년 ‘초록 물고기’로 영화에 입문한다. 황지우 시인은 1983년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한다.작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30년 넘도록 친교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올해 두 분을 모시고 문학과 영화 그리고 광주와 대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는 터였다. 객석을 웃음바다로 인도한 것은 19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두 사람이 경험한 어긋나는 기억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던 황지우 시인의 기대와 달리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모양이다.문인들이 들락거리던 술집에서 황지우는 홧김에 술집의 육중한 아크릴 입간판을 이창동 부근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신과 뜻을 같이할 것이라 믿었던 친구를 향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두 사람은 술집의 위치와 입간판의 색깔과 소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기억을 소지하고 있었다.87년 대선판 ‘라쇼몽’의 재연이 33년 만에 성황리에 이뤄진 셈이다.두 분의 대담에서 청중은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이창동의 영화 ‘시’에서 낭송되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추억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나, 우리나라 감독 가운데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서사가 가장 탄탄하다는 언명을 황지우 시인이 여러 번 강조했다. 두 분의 우정과 예술혼의 교류가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이철수 판화가와 도종환 시인이 친구인 것처럼 황지우 시인과 이창동 감독이 친구인 것은 한국문학과 예술에 유용한 자양분이다. 지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도정에 있는 우리의 문학과 예술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하겠다.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계속 이어지기 바란다.

2020-07-15

코로나19와 자유학년제 금단 현상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자연의 자리바꿈이 시작되었다. 개망초와 금계국이 일가를 이루던 6월이 갔다. 그리고 자귀 꽃을 필두로 자연의 공생이 시작되는 7월이 왔다. 자귀 꽃의 화려함에 들꽃 무리에서 달맞이꽃이 소소하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안다, 그 소소함이 단순한 소소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먼저 핀 꽃들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그러기에 다른 들꽃들도 기쁘게 달맞이한테 자리를 내어준다. 그 마음을 아는 달맞이는 달이 세상을 품듯 노랗게 세상과 사람을 품는다.“(….) 공벌레도 떠난/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하얀 마음으로 뭉게뭉게/피어오른 개망초가/더 넓고 더 큰 꿈을 꾸라며/달맞이를 노랗게 노랗게 밀어 올린다//달을 맞이하는 이들의 마음가짐보다/달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먼저 생각하라는/개망초의 마음을 뿌리로 읽은 달맞이는/공벌레가 끌고 간 길 끝에서/또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 (졸시 ‘달맞이꽃 마음’)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좀처럼 자리바꿈을 하지 못하고 있다.의료진과 국민의 노력으로 코로나 19 상황이 잡히는가 했는데, 최근 들어 소규모 집단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나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글쎄다.코로나19 사회의 핵심어를 두 가지만 들라고 하면 필자는 “거리 두기”와 “온라인”을 든다.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되었다. 물론 거리 두기에 민감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이 규칙은 꼭 지킨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말을 들었다. “사람이 죄다.”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간의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위협 대상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의 거리 두기 모습은 “온라인 수업”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일부 유형의 온라인 수업은 학교 수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 이야기를 할 때 핵심으로 나오는 것이 온라인 수업이라니 참 슬프다.“요즘은 매일 매시간이 수행평가야! 이게 무슨 자유학년제야! 차라리 시험이나 보면 쓸데없는 과제 같은 것은 안 해도 되지!”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야. 좋은 마음 가지고 해.”이웃집에 사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과 어머니의 대화다. 휴일 저녁 집으로 가는 시간대와 길이 겹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다. 아이의 냉소적 어조에 필자는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자유학년제란 학생들이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진로 탐색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도입된 (….) 선생님은 학생의 교과 성취도보다 개별적인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 자유학년제,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이 의미도 찾지 못하는 수행평가가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로 자행되고 있는 학교 모습에서 자유학년제 금단 현상에 고통받을 우리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벌써 들린다.학교는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뻔뻔한 죄를 지을까?

202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