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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년 후에 받은 엽서

윤영대수필가온종일 내리던 장맛비가 살짝 그치고 창 넘어 들어오는 바람이 왠지 시원해서 오랜만에 마을 뒷산을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려다가 우편함을 보니 엽서 같은 것이 있기에 뭘까? 하고 꺼내보니 색다른 엽서다. POST CARD 글자 옆에 전자우표가 붙어있고 보내는 사람은 ‘外洞휴게소에서 河78A4’(하영-나의 아호)이고 받는 사람도 우리집 주소에 내 이름으로 되어있다. 내 글씨, 내가 보낸 엽서다. 어! 내가 언제 경주 외동휴게소를 갔었지? 이상하여 뒷면을 보니 휴게소 사진 옆에 간단한 글이 있다. ‘비 내리는 남해여행, 고속도로 위 휴게소가 예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동행하는 친구들도 좋고, 모두 즐겁다. 2019년 7월18일’어! 작년이네. 그런데 왜 1년 후 이제야 오지? 아, 생각난다.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남해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포항-울산 고속도로를 달려 남해 독일마을을 돌아보려는 여행이었지. 휴게소에 잠깐 들러 커피 한잔하며 둘러보니 마침 입구 쪽에 ‘1년 후에 받아보는 편지함’이 있기에 엽서 한 장을 얻어 간단히 적어 넣은 기억이 났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뜻밖의 엽서를 받고 보니 그날이 새롭다. 소인(消印)을 살펴보니 발송일이 2020.07.08.이고 470원의 요금도 찍혀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는 마음으로 써넣었는데 그것을 모아두었다가 잊지 않고 돈 들여 1년 후에 보내 주다니 외동휴게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그러고 보니 이러한 1년 후 받은 엽서의 기억은 또 있다. 몇 해 전 거실 탁자 위에 제주도 풍경의 그림엽서가 한 장 있기에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선전물이겠거니 하고 제쳐 두었는데 다음날 다시 정리하다가 언뜻 보니 나의 글씨였다. 그 해는 제주여행이 없었는데 의아했다. 세계자연 경관 7대 명소를 돌며 서귀포의 물결을 본다는 찬사에, 보내는 사람은 ‘제주올레길7번’이고 받는 사람은 ‘아내에게’로 적혀있었다. 그 당시도 1년 전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서 한 바퀴 돌았었는데, 그때 보낸 엽서가 집안 구석 어디 돌아다니다가 이제 나타났구나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엽서를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쓴 날짜는 11월13일인데 소인은 11월6일로 되어있다. 우체국 소인은 틀림없을 텐데 내가 1주일을 잘못 알았나? 다시 뒷면을 보았더니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있었다. ‘1년 후에 보내는 편지-서귀포 대륜동 주민자치위원회’.그제야 또렷이 생각났었다. 서귀포 7번 올레길을 걸어 외돌개를 지나 내려오는 개울 옆에서 만난 빨간 우체통과 안내판, 그곳에 비치된 엽서에 사연을 써넣으면 1년 후에 보내 준다는 설명을 읽고서 설마 하면서 써넣었던 기억이 새로웠었던 적이 있다.1년 후 받아보는 느린 엽서가 아니어도 여행지에서 나에게 보낸 또 다른 엽서들도 내 기억 속의 여정을 되새기게 한다. 울산 간절곶에서 일출을 보고 해변 바위 위의 커다란 빨간 우체통에 넣었던 행복엽서도,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가 지친 몸을 쉬며 장터목 산장에서 부친 단풍엽서도 받아보았고, ‘토지’의 숨결을 찾아 원주문학기행을 갔을 때 박경리문학공원 북카페에서 적어 보낸 감사엽서도 있다.이러한 엽신(葉信)을 보내는 취미는 해외여행 때도 만끽하고 있다. 관광하는 도시마다 거리의 기념품점이나 우체국이 보이면 그림엽서를 사서 그날의 여행에서 본 것 느낀 것들을 간단히 적어 부치고, 어떨 땐 호텔카운터에 부탁하거나 가이드에게 맡겨두면 고맙게도 잘 보내 주었다. 내가 즐기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러한 나의 취미를 잘 알고 있는 딸과 아들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가끔 삽화까지 그려서 그곳의 관광엽서를 보내온다. 그러면 나의 마음도 따라서 그 여정을 훑어가곤 한다.‘1년 후에 받아보는 편지’를 보내 주는 느린우체통은 누가 어떻게 매일매일 써넣어지는 엽서를 모아두었다가 꼭 1년 후에, 그것도 우편요금을 부담하고 보내 주는 것인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받아보는 한 장의 타임캡슐은 지난 흔적을 따라 두 번째의 여행을 하게 한다.해 질 무렵 조용한 산길을 내려오는 나의 손에는 1년 전에 찾은 남해 보리암의 석불이 조용히 미소짓고 있다.

2020-07-15

버리기 어려운 것

저는 뭐든 잘 버립니다. 안 그래도 좁은 집, 그리 필요치 않은 물건이 여기저기 쌓이는 걸 참아내지 못합니다. 틈 날 때마다 뭐 떠나보낼 게 없나 살피곤 합니다. 보내는 입장에선 홀가분해서 좋고, 떠나는 물건 입장에선 사랑 받을 새 주인이 생겨서 좋고. 버려야만 하는 자로서 저런 변명이나 합니다. 어쨌거나 버리지 못하는 것보다는 잘 버리는 편이 낫다고 말하곤 합니다.우리가 잘 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알뜰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와 동시대를 지나온 이들은 아껴야 잘 산다,라는 말을 캠페인 문구처럼 듣고 자랐습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놓아준다고 해서 가난뱅이가 되는 것도, 그것을 품고 간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레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쌓아두는 건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잘 버리는 자들은 처음부터 잘 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을 알기에 될 수 있으면 물건을 잘 들이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버릴 물건이 원래부터 그다지 없는 편에 속하지요. 최소한의 물건으로 버티다가 그마저 필요치 않게 되면 떠나보내는 것이니까요. 둘 자리가 넉넉했다면 이런 습관은 들지 않았겠지요. 마당 없는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공간을 규모 있게 활용하고픈 맘에서 생긴 습관입니다. 코로나 핑계로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올해 들어 새 신발이나 새 옷을 산 적이 없습니다. 알뜰해서가 아니라 뭔가 쌓이거나 넘치는 걸 경계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내친 김에 유행하는 미니멀리즘까지 나아가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특정 물건에 대한 은근한 애정이나 감성적 회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책방 청소를 하는데 구석 밑자리에 있던 엘피판들이 청소기에 걸려 쏟아집니다. 이때다 싶어 와르르 부려내 한 컷 담았습니다. 삼십여 년 묵은 사연들이 먼지 낀 표지 위로 풀썩입니다. 버릴까 말까 숱한 망설임 끝에 살아남은, 저에겐 골동품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힘겨운 십대와 이십대를 건너는 동안, 감성적 물결로 제 곁을 지켜준 친구입니다. 그때의 청춘들은 라디오나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엘피 디스크로 음악 감상을 하곤 했지요. 추억을 소환하고 시간을 경작한 그 물건들을 누군들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요.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부피가 큰 오디오 시스템 기기를 가장 먼저 버렸습니다. 턴테이블과 카트리지 바늘만은 따로 빼둘까 하다가 몽땅 버렸었지요. 새로운 밀레니엄이 온다고 매체들은 떠들었고, 그 예라도 되듯 엘피판이나 테이프로 된 음원 기기가 속절없이 무너지던 시대였으니까요. 와중에 엘피판들만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발품을 팔아 사거나 선물로 받은 그 디스크 안에는 청춘을 감내하던 풋것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버리기 좋아하는 선수라 해도 이어질 듯 끊어지는 한 시절을 소환하는 매개물 앞에서는 망설이게 되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잠시 그 시절을 환기해 봅니다. 카트리지 바늘이 엘피 홈에 스치면서 원판이 돌아갑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게 뻔한 소식을 기다리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사념을 가눌 길 없어 모차르트의 미사곡에 카트리지를 얹곤 했지요. 쓸데없이 성찰하고 불필요하게 막막해하던 스스로를 음악 속으로 유폐시키던 시간들이었지요.이제껏 버리지 않아서 거추장스러웠던 적은 있어도, 버리고 나서 후회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버리지 않아서 다행인 게 세상엔 얼마나 많은지요. 그간 너무 쉽게 추억이나 향수를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부터 복고의 풍경이 아슴아슴 떠오르더니 턴테이블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꼼꼼한 남편은 이게 나아, 저게 좋아 하면서 검색만 열심입니다. 쉽사리 들일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제게 있습니다. 기왕의 물건들은 자리가 정해져 있고, 아무리 둘러봐도 턴테이블이 놓일 만한 맞춤한 장소가 없습니다. 걸리적거린다고 버림당할 것을 저어해 확실한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 주저하게 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하나를 위해 기존의 무언가를 비워야 하는 우리집의 한계, 아니 제 품의 한계만 실감합니다. 그 공간을 만들 때까지는 옛 친구가 해준 말로 위안이나 삼아야겠습니다.그 시절, 서울로 유학 간 친구에게 엘피판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 왈, 자취 살림에 잦은 이사가 성가셔 턴테이블을 없애버렸답니다. 제가 건넨 음악을 들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이런 위트 있는 회답을 보내왔었지요.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나요. 저 음반들 역시 지금은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짜릿할 테지요.

2020-07-15

독도, 한국의 ‘실효적 지배 강화’ 시급해졌다

일본 정부가 올해 발간한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영유권 억지 주장을 폈다. 올해로 16년째 되풀이된 치졸한 도발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다. 일본은 해마다 도발하고, 우리는 해마다 일본공사 불러놓고 사진 찍는 일의 반복이다. 언제까지 이 재미없는 연례행사를 봐줘야 하나.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 일본의 흑심을 깨부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일본은 올해 백서에서 자국 주변의 안보 환경에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일본) 고유 영토인 북방영토(쿠릴 4개 섬의 일본식 표현)와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한다”고 억지 주장을 반복했다. 이 백서를 작성한 일본 방위성은 여러 지도에서 독도를 없애고 버젓이 다케시마를 넣었다. 백서의 국가 간 방위협력에서는 한국의 기술(記述) 순서를 호주·인도·아세안 뒤로 밀어냈다.일본이 방위백서에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의 자국 영유권을 명기하는 도발을 시작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시절인 2005년부터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일본공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보도자료 하나 내고는 지나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분쟁 지역화’ 흉계를 의식한 물러터진 대응이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최근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소개하거나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분류하는 나라까지 생겼다. 독도는 지정학·국제법·역사적으로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각국 지명위원회 등에 끈기 있게 홍보해야 한다.지금 시점에 우리가 과감하게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해양경찰의 소수 경비대만 배치해 놓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숱하게 나왔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해양 연구시설이나 특별 관광시설 등을 구축해 명실공히 우리의 땅임을 세계에 알릴 때가 됐다.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려면 ‘우리 땅’처럼 써야 하지 않는가. 분쟁지역이 되면 불리할 것이라는 예단에 발이 묶여 우물쭈물 아무것도 못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2020-07-15

차세대통신기술 6G

5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초기단계에 들어서기 무섭게 6세대 이동통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삼성전자가 차세대 6G(6세대) 이동통신 비전을 제시하고 나섰다. 6G에서는 최대 전송속도 1000Gbps, 무선 지연시간 100μsec로, 5G 대비 속도는 50배 빨라지고, 무선 지연시간은 10분의 1로 줄어드는 등 획기적 성능 개선이 예상된다.6G는 모바일 단말기의 제한적인 연산 능력을 극복하기 위한 네트워크 구성 요소들의 최적화 설계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 구성요소들이 실시간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AI가 기본 적용되는 ‘네이티브 AI’ 개념이 적용된다.6G는 내년부터 개념 및 기술 요구사항 논의를 시작으로 표준화가 착수되고, 이르면 2028년부터 상용화에 들어가 2030년 본격적인 서비스가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6G 시대에는 △초실감 확장 현실 △고정밀 모바일 홀로그램 △디지털 복제 등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부터 5G 국제 표준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기술 제안과 표준화 완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5G 상용화에 기여했다. 2019년 4월 대한민국의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이어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 통신사들에 5G 상용화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5세대 이동통신은 최대 속도가 20Gbps인 이동통신 기술로, 4세대 이동통신인 LTE에 비해 속도가 20배 가량 빠르고, 처리 용량은 100배 많다. 특히 CDMA(2세대), WCDMA(3세대), LTE(4세대)가 휴대폰과 연결하는 통신망에 불과했고, 5G는 휴대폰을 넘어 모든 전자 기기를 연결한다. 눈부신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15

대학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한동대 교수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학에 치부가 드러났다. 교육부가 벌인 주요 사립대 감사에서 이 대학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직교수 자녀를 부당하게 합격시켰으며, 입학전형자료를 보존하지 않았고, 교원채용 과정도 적절하지 않았으며, 직원채용에도 출신 대학을 부당하게 차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에서 여든도 넘는 교수들이 징계를 받았으며 사백도 넘는 사람들이 인사 조치됐다. 해당 대학에 수치스러운 일임은 물론이지만, 이제 첫발을 뗀 교육부의 대학감사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학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것인지 알 수가 없다.코로나19로 ‘교육’이 몸살을 앓는다. 초중고 공교육이 감염의 우려와 함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이에 대학은 약간 비껴선 느낌이다. 지난 학기 대학들은 온라인 강의역량을 강화하고 비대면 교육을 주로 하면서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다음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많은 일들 가운데 대학의 강의는 후보군 앞순위를 맡아놓았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과 교수와 학생 사이의 교감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강의는 이제 기계적이지만 수려한 외양을 한 ‘콘텐츠’로 변모해가고 학사일정은 디지털과 온라인으로 호흡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간다.대학에게 묻는다. 대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오늘 대학이 가진 모습에서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 세상과 함께 숨 쉬며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바뀌는 세상에도 대학이 고집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대학은 새로운 세상에 앞서가는가 아니면 겨우 따라나 가는가. 지난 세기 대학이 젊은 양심과 소중한 인재를 길러냈다면, 앞으로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대학은 누구를 가르치고 무엇을 나눠야 하는가. 사회를 향하여 던지는 답변보다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 차고 넘친다. 대학은 21세기에도 필요한 것일까.지식소매상으로 대학이 설 자리는 없다. 백과사전과 지식충전소는 온라인을 이미 점령했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배달할 새 지식은 없다. 이미 세상은 대학보다 복잡하고 일들은 전공별로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길러야 할 인성은 좁은 전공지식에 갇힐 수가 없다. 한 가지 분야에서 평생을 구가할 보장도 없다. 백세시대지만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같은 것을 보고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으로 살아야 한다. 매일 대하는 일상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습관에 익숙해야 한다. 현상유지로는 버틸 수가 없다. ‘비판정신’으로 충만한 사람을 길러야 한다.대학은 너무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관심을 덜 쓰는 사이에 구태에 물들어 있었다. 바뀌지 않고는 죽어야 하는 길목에서 대학은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부끄러운 모습을 앞서가는 열정으로 바꾸어 가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대학 스스로 결정하고 달려야 한다.

2020-07-15

내달 문 열 포항 하늘길 이번에는 지키자

지난 5월 황금연휴 기간 중 잠시 운항한 것을 마지막으로 운휴에 들어갔던 포항공항이 빠르면 다음 달 중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다. 포항시에 따르면 포항 하늘길 재개를 위한 지자체와 항공사간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8월 중 포항-김포와 포항-제주 2개 노선의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현재 협의가 진행 중인 항공사는 대한항공 자매회사이자 저가항공사인 진에어로 알려졌다. 구체적 협의가 진행 중에 있으나 운행횟수는 확정을 지었다고 한다. 포항-김포 하루 1왕복 2편, 포항-제주 노선은 하루 2왕복 4편이다. 포항을 거점으로 한 민간항공기 운항은 포항시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영일만항 개항과 KTX 포항역 통과와 함께 하늘길까지 열린다면 포항시는 명실공히 사통팔달하는 환동해 중심도시로서 성장을 꿈꿀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포항시와 경북도는 포항거점의 항공사 유치를 위해 그간 숱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역거점의 에어포항이 출범해 2017년 시험운항을 거쳐 2018년 대망의 첫 취항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항공수요의 부족 등 지방항공사로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산소재 베스트에어라인에 넘어갔으나 이마저 성공하지 못했다.이번 포항의 하늘길 개항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제선 수요가 급감한 저가 항공사가 국내선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지역항공사 설립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저가항공사를 통한 하늘길이 열린다면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포항공항 활성화는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특히 동해안지역 100만 주민의 편의 도모는 물론 경주와 동해안 일대의 관광산업을 진작할 계기가 된다. 코로나 사태로 찾아온 포항공항 활성화 기회를 잘 활용하는 전략이 있어야겠다. 울릉공항이 공사에 들어가면서 포항공항의 활용도는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다. 포항을 거점으로 인천, 여수 등 전국 곳곳이 항로가 될 수 있는 장래성도 있다.향후 도시경쟁력은 도시의 물류기능과 접근성이 얼마나 잘 확보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 포항은 도내 유일의 항만을 소유하고 있는 도시인데다 하늘길까지 열 수 있다면 이게 바로 금상첨화다.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20-07-15

고(故) 박원순 시장을 추모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박원순 시장은 지난 10일 북악산에서 자살로서 한 많은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 풍토에서 시민운동의 대부였으며 최장수 서울 시장인 그의 갑작스런 자살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서울 시정을 개혁적으로 이끌고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그의 자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비극이다. 항상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의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그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그는 평소 ‘꿈을 가진 사람은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는 이제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유언만 남기고 고향의 부모님 곁으로 내려가 버렸다.박원순은 고시 합격 후 검사직을 포기하고 스스로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87 민중 항쟁 후 참여연대를 창설하여 시민운동의 토대를 굳건히 다졌다. 당시 하향식 공천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낙천 낙선운동’을 통하여 매니페스토 운동을 정착시키려 무던히 노력하였다. 당시 시민운동을 하던 나는 그를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권력이라는 꽃길을 버리고 스스로 택한 그의 고난의 길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그의 유언장은 이를 잘 입증한다.2018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우리 일행은 서울 시장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 시청 그의 집무실은 예상과 달리 무척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의 집무실 책상 정면에는 서울 시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 상황판이 비치고 있었다. 서울의 교통, 소방, 치안뿐 아니라 의료, 복지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치였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차림으로 서울 시정을 소개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3선 시장으로서 관록이 쌓였는데도 그는 권위주의적 모습은 티끌만큼도 찾아 볼 수 없고, 대중 친화적 그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다.박 시장은 생을 마감하기 전날까지 착실히 공무를 수행하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자살 전날까지 분초를 다투는 일정을 충실히 소화하였다. 전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부동산 대책관련 회의를 가졌고, 서울 판 그린 뉴 딜 정책까지 직접 발표하였다. 며칠 전 CBS ‘김현정의 뉴스 쇼’에는 직접 앵커로 출연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살 당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오찬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통화까지 하였다. 그는 2명의 자녀 결혼도 시키지 못하고 6억여 원의 부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원순 시장이 비극적 선택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의 자살은 여직원의 형사 고소 사건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론을 맡아 배상판결을 이끈 적도 있다. 평생 인권 운동가로 더구나 여성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하던 그였지만 성추행 피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 앞에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결국 그는 노무현, 노회찬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인 박원순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

2020-07-14

제철소의 오리가족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제철소 조업현장에 오리가족이 살고 있어 화제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어미오리 한 마리에 새끼 아홉이 딸린 10마리의 대가족이다. 오리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포항제철소 내 혁신적인 쇳물 제조공정인 파이넥스(FINEX)공장 철광석 원료야드 입구의 침전조 내부다. 언제부터 오리가족이 살게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조업현장 근무자의 제보에 따라 필자가 직접 현장을 확인, 촬영한 결과 흰뺨검둥오리 10마리가 살고 있음을 목격했다.척박한 공장지대에서 오리가 산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 같지만 실제 상황이다. 야드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철광석이나 석탄, 부원료 등의 파일(Pile)이 바람으로 인해 날려가는 먼지를 줄이기 위해 필요에 따라 살수를 하게 된다. 이 때 살수된 물이 파일 내부로 스며들었다가 야드 측면의 배수로를 타고 입구에 조성된 침전조(Settling Pond)로 흘러들어 침전물을 가라앉힌 후 폐수처리장으로 흘러가도록 설계돼있다. 이렇기 때문에 침전조 한쪽에서는 야드에서 살수한 물이 미량의 분진을 머금은 채 유입되고, 대각선 방향의 반대쪽에서는 물이 가득 넘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내부 바닥에는 진흙 같은 슬러지가 조금씩 쌓이고 더해져 물 속에 작은 퇴적층이 형성된 것이다.그러한 상태에서 몇 년 새 풀씨가 날아들고 수초와 갈대 등이 자생하면서 침전조 가장자리에는 작은 수초숲이 저절로 생겨났다. 소량의 물이 계속 흘러들어와 서서히 맴돌이 후 빠져나가니, 마치 내나 강의 물굽이가 치는 곳의 주위가 여울의 천탄(淺灘)에 따라 모래흙이 퇴적되면서 수변 식물이나 동물이 서식하는 환경이 되는 것처럼, 폰드 내부에서도 미생물은 물론 수중, 수상 동식물이 서식할 여건은 어느 정도 되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육중한 공장지역에서 과연 동식물이 장기간 서식하고 살아남는지는 의문스럽기만 할 것이다. 철광석 가루와 석탄 먼지가 조금씩 날아들고, 주변에 벨트 컨베이어나 집진기 설비가 돌아가는 소음 등으로 인해 생육환경이 상당히 열악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오리가족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으니 경이롭기만 하다. 더욱이 폰드의 수초숲에는 잠자리와 나비가 찾아들고 무당벌레 같은 곤충도 보이는가 하면, 야드 주위에 조성된 방풍림에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날아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거의 제철소의 이색적인 생태서식처(?)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만큼 공장환경이 깨끗해졌고 파이넥스가 청정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함께 환경보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요즘이다. 사람은 자연의 생태계 속에서 자연환경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보다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최근 포항제철소는 1조원 규모의 환경개선 투자사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함께 환경개선의 실효성을 더하기 위한 산·학·연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환경변화에 발맞춰 기업시민 포스코가 지향해야 할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고 지역 환경현안에 대한 올바른 인식 개선과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020-07-14

신공항 이전,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경북도가 대구경북 신공항 이전지를 둘러싼 군위군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를 냈다. 신공항 이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군위군에 대한 일종의 압박카드라 할 수 있다. 경북도는 반박 자료에서 총 13개 항목에 걸쳐 군위군의 주장을 문답형식으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자료에서 도는 공동후보지를 처음부터 반대했다는 군위군의 주장을 논박했다. 그 근거로 2018년 1월 19일 작성한 합의문 안에 예비이전지 두 곳 모두 이전후보지로 선정해 줄 것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고 자료와 함께 공개했다.또 군위 군민 74%가 반대하는 소보에 대해 신청이 불가하다는 군위군의 입장도 반박했다. “주민투표 결과가 곧 유치신청의 의미”라 했다. 그밖에도 군위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며 군위군의 단독후보지 주장을 반박하는 등 강력한 메시지를 냈다. 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선정은 누가 보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정당성은 공동후보지에 있다. 군위군과 의성군이 공동으로 주민투표를 마친 상태에서 이제와 반대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군위군이 국방부를 상대로 단독후보지 부적합 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승산이 낮고 이기더라도 실익이 없다는 경북도의 생각이 옳은 것이다.군위군이 끝까지 단독후보지인 군위 우보를 고집한다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은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군위군이 주장하는 단독후보지는 더 이상 논의 대상도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각종 인센티브 기회마저 놓쳐 군위군은 소탐대실의 결과를 안을지 모른다.벌써 군위군의 일방적 주장을 “몽니”니 “억지”라고 하는 여론이 나온다. 지난 3일 국방부는 군공항(K-2) 이전선정위원회에서 군위 우보를 탈락시키고 공동후보지인 군위소보·의성비안은 지역사회의 합의를 전제로 31일까지 유예 조치를 했다. 불과 열흘이면 신공항 문제는 가부가 결판이 나게 된다. 지역사회의 결단이 더욱 다급해지고 있다. 옳다 그르다는 공방만 주고받고 있을 시간이 없다. 군위와 의성의 대타협이 있거나 아니면 대구시와 경북도가 합당한 결심을 내려야 한다. 수차례 언급했지만 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한 매우 엄중한 결정이다. 지역 소이기주의에 때문에 대의를 그르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2020-07-14

보신탕보다 삼계탕

보신탕은 개고기로 만든 보양 음식이다. 개고기를 푹 삶아 살은 수육으로 하고, 뼈로 푹 고은 육수에 배추, 시래기, 파, 토란 등과 갖은 양념을 하여 만든 탕이다. 본래 개장국이라 했다. 그러나 1984년 서울시가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개장국을 혐오식품으로 지정 판매를 금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보신탕, 영양탕, 사계절탕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단고기탕이라 부른다.조선 순조 때 문신인 조운종이 우리나라 사계절의 세시풍속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세시기속’에는 “복날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개를 삶아 국을 만들어 먹었으며 중복과 말복에도 마찬가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이로 봐선 보신탕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먹었던 음식 중 하나로 보인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개고기가 속되다는 이유로 임금께 올릴 수 없으니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끓여 개장국을 육개장이라 불렀다고도 한다.요즘처럼 몸보신할 음식이 많지 않은 옛 시절에는 개고기가 몸보신에 으뜸 대접을 받았던 모양이다. 특히 삼복더위로 체력 소모가 많은 여름철에는 개고기를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 속담에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은 여름철 복날 몸보신용 개가 마구 도살되던 것을 보고 나온 말로 풀이된다.삼복(三伏)은 7∼8월 사이 여름철 중 가장 더운 때를 뜻한다. 지금처럼 냉방시설이 없었던 우리 선조들은 이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 여러 노하우를 쌓았다. 그 중 하나가 보신탕 먹기다.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즐비하던 보신탕집이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먹거리가 많아지는 등 세태 변화에 따른 현상이다. 16일은 초복이다. 삼계탕으로 몸보신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14

터무니없는 발코니 확장비와 유상옵션 비용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최근 대구 신규 아파트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뜨거운 청약률을 보인 대구의 신규 아파트는 최근 1년간(2019년 5월∼2020년 4월) 3.3㎡당 평균 가격은 1천510만800원으로 1년 전 (2018년 5월∼2019년 4월) 평균 가격 1천324만9천500원 보다 13.9%(185만1천300원)나 상승했다.수성구 신규 분양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2천55만6천원으로 2천만원을 넘어섰고 달서구는 1천844만원을 기록하는 등 분양가 상승을 주도했다.경북지역 최근 1년간 신규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 가격은 880만7천700원으로 1년 전 864만2천700원보다 1.9% 상승하는데 그친 것과도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상은 우선 땅값이 비싼 대구 도심지역 재개발을 통한 신규 분양이 많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건설업체들이 유독 대구에서 발코니 확장비와 시스템 에어컨, 냉장고, 바닥재 등 유상옵션 가격을 올린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발코니 확장비는 최고 3천만원을 넘었고 유상옵션비도 최고 4천437만원까지 치솟아 결국 소비자들은 추가로 7천만원 이상을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올해 남구와 달서구 3개 단지가 1천만원 전후의 발코니 확장비 책정한 것 이외에 나머지 5개 단지는 평균 2천500만원을 웃돌았다.특히 지난 4월 중구에서 전용 면적 84.08㎡ 타입의 한 아파트 확장비는 3천180만원을 기록한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달서구 같은 면적의 한 아파트는 850만원이었다.또 다른 원인은 고분양가 관리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인 중구와 수성구에 대한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통제도 한 몫을 하고 있다.시세만큼 분양가를 높일 수 없자 건설업체들이 인허가 과정에서 분양가에 포함되지 않는 발코니 확장비 및 유상옵션을 늘이는 것으로 정부 규제 회피 수단으로 삼고 있다.발코니 확장 전문업체들도 최고급 자재만을 고집하면 3천만원대 발코니 확장비가 나오겠지만, 기본적으로 1천∼1천500만원이며 충분히 시공하고도 남는다고 했다.건설업체들은 열선과 온돌 마루판 및 벽 도배 추가 비용 등도 만만찮다고 항변하지만, 신규 아파트는 철거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데다 벽체와 거실 미닫이문을 만들 필요가 없어 오히려 공사비가 감소할 수 있어 별도의 확장비가 들지 않는다.최근 대구지역 청약 열기에 편성해 발코니 확장비와 유상옵션 비중을 늘리는 것은 결국 건설업체들이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횡포에 가깝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정부의 각종 규제가 발표되면 이를 피할 다른 방법을 찾는 건설업체들의 꼼수를 계속 봐 왔다.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인허가 관청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편법으로 분양가 상승을 이끄는 건설업체들을 제지할 수 있는 최일선이기 때문이다. 이어 대구 소비자들도 눈을 크게 뜨고 분양 공고문 한쪽 귀퉁이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터무니없는 발코니 확장비와 유상옵션 가격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시점이다.

2020-07-14

‘실업급여 중독’ 차단, 더 미룰 일 아니다

실업자의 생활안정과 구직활동을 돕기 위해 마련된 실업급여제도의 빈틈을 노리는 일부 구직자들이 ‘실업급여 중독’에 빠져서 ‘놀고먹는’ 잔꾀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가 이런 상습적인 실업급여 반복수급을 막기 위해 1인당 실업급여 수령 횟수 제한을 검토하기로 하고도 시행을 미루기로 한 것은 옳지 않다. 건전한 근로의욕을 망가뜨리는 일부의 행태는 잠시라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은 모두 1조1천103억 원이었다. 두 달 연속 1조 원대로서 5개월 연속 사상 최대를 경신한 수치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실업급여 재정 소요 전망’ 보고서는 올 연말까지 실업급여 수급자를 184만 명, 지급 총액은 12조6천억 원으로 추산해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전액 소진될 것으로 분석했다.그런데 작년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은 110만7천여 명 중 급여지급 기간(90~240일) 안에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불과 25.7%(28만4천여 명)였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월 실업급여(최저 181만 원)도 최저임금(179만 원)보다 높았다니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올 4월까지 실업급여 수급자 중 지난 3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이 2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018년 3만 4천516명, 2019년 3만 6천315명이었는데, 이 속도라면 올 연말까지는 무려 6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7개월 정도만 일한 뒤 그만두고 4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으면 1년 중 5개월은 일하지 않고 놀면서도 연봉 2천만 원 수준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법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실상을 면밀하게 분석해 효과적인 개선방안을 실행해야 한다. 실업급여가 ‘눈먼 돈’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그릇된 풍토를 바로잡을 정밀한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취업시장이 어려우니 당분간은 그냥 두겠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허점을 악용해서 빼먹은 빈 곳간 때문에 정말 급박한 국민이 구제받지 못한다면 그게 더 큰 불합리 아닌가.

2020-07-14

마음아, 넌 누구니?

‘마음아, 넌 누구니?’ 책 표지.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도덕주의적 판단을 내리고 타인을 비판하기 일쑤인 사람이 가까이 있는가?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본인은 욱하지만 뒤끝 없는 쿨 한 성격일 뿐이라고 하며, 감정을 쏟아 붓는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은 감정 쓰레기통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화를 잘 내거나, 타인을 비판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두어 이러한 괴로운 인간관계를 멀리 하여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반복될 고통의 관계가 남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비판과 화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거나, 스스로 화를 추스르기 어려워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잦다면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 작가의 ‘마음아, 넌 누구니?’와 마셜 B.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이들 책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은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왜곡된 표현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다’라고 한다. 비판받는 사람도 폭력에 노출되지만, 비판하는 사람도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표현하여 부정적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고 부정적 단어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 ‘말은 마음의 창, 아니면 벽’이라는 루스 베버마이어의 말이 참으로 와 닿는다. 화 잘 내는 것도 성격이라 생각하는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감정을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감정소통을 하려면 상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성숙되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 훈련을 해야 한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인간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고, 디딤돌로 작용하도록 비폭력대화의 방법을 익혀야 한다. 비폭력은 우리 안에 잠재한 긍정적인 면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비폭력대화법을 익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삶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긍정적인 행동 언어를 사용하는 비폭력 대화법과 슬기롭게 화내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불편한 인간관계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데 이 두 책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김예원(경주시 양북면)

2020-07-13

할머니와 SNS

자정이 넘은 밤, 할머니의 SNS 장례식이 있었다. 할머니가 해외에서 고인이 되었기 때문에 캐나다 현지 시간에 맞춘 일정이었다. 한국에 있는 우리부부는 평소 같으면 잠든 시간이었지만 검은색 옷으로 예를 갖추어 앉았다. 식탁 위 십오 인치 노트북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남편과 나는 긴장했다. 전날부터 인터넷 환경을 점검하고 음향 테스트도 했다. 단정한 손수건 두 개도 준비했다.인터넷 와이파이 망으로 현지 장례식장이 연결되었다. 고인의 생애와 작별 인사가 노트북 화면으로 전파되었다. 누워 깊은 잠이 든 할머니가 보였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였다. 구십팔 세가 되도록 장수하셨던 할머니는 태블릿 피시를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길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명절에는 음성 채팅 서비스를 이용하여 고국에 사는 자손들을 축복해 주셨다.“할머니가 늘 기도한단다. 우리 손녀내외 감사하고 즐겁게 살아라.”할머니는 당신의 수명이 다할 것을 직감했다. 냉동고에 유언서와 현금을 밀봉해 놓고 잠드셨다. 나는 봄이 오면 할머니를 찾아뵙겠다고 다짐 했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몇 달 후 전염병이 퍼져 국가와 국가뿐 아니라 미주 지역 내에서도 출입이 통제될 줄 몰랐다.일 초의 순간, 한 번의 손가락 터치로 COVID-19의 장벽을 넘었다. 소설 페스트가 발표될 이십 세기 초 무렵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육대주가 링크되어 시공간을 공유하는 날이 예측되었더라면 카뮈의 소설 플롯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이십 년 후 화성에서 내가 조카 결혼식을 어떤 방식으로 축하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인류의 문화가 이십억 년 동안 변화했지만 소시민으로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상상할 수 있다. 이십 년 후 얼리어답터 고모할머니가 된 내가 화성에서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는 순간을./김정희(포항시 남구 SK3차아파트)

2020-07-13

강낭콩을 키우며

강낭콩 씨앗을 심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봄 아이의 원격 수업에서 강낭콩의 성장 과정 이야기가 나왔다.‘그래, 이거다!’ 싶었다. 베란다에 다육이로만 가득 채웠었는데 올 봄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심어보고 싶다하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아이도 좋아라고 했다. 머릿속에는 벌써 콩꼬투리 속의 콩들을 그리면서.그렇게 심은 강낭콩은 일주일이 되지 않아 초록 초록하며 머리를 밀어 올렸다. 그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던 게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꽃을 피우고 콩꼬투리도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아이와 번갈아 물을 주고 정성을 쏟은 결과이리라.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런 세심한 보살핌과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강낭콩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자니 문득 육아로 유독 힘들어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기다려 주기보다는 아이보다 한 발 먼저 내딛는 성격 급한 엄마였다.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 시작한 방통대 공부는 늘 ‘빨리’를 외치게 했고 주말이면 시험과 출석 수업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싫었고 아줌마라는 말은 더 더욱 밀어내고 싶었다.아이들이 어서 자라기를 바랐고 겨울 같은 이 시간들이 지나고 새봄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의문이 들면서도 말이다.지금 강낭콩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는 시간들이 부족했다. 늘 초봄에 일찍 열매 맺기를 꿈꾸며 내달리던 마음이었다. 매일 물을 주고 마음을 써 준 덕일까 지친 내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아이들이 ‘엄마. 사랑해’라고 하는 말, 따뜻한 손, 깔깔 웃음소리는 잊어버렸던 일상을 다시 반짝이게 했다. 서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시간 안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강낭콩에게 물을 주듯,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눈빛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삶도 조금 더 단단해진다.아직도 엄마 역할이 힘들지만 그 단단해진 힘으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리라. 그 안에서 자라는 멋진 열매를 꿈꾸며.베란다에는 어느 새 콩꼬투리 속의 콩들이 무르익고 있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87-2)

2020-07-13

양성평등정책 진단 및 향후 과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2020년은 북경행동강령이 채택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북경행동강령 이행에 있어서 양성평등 증진과 여성의 대표성에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그 성과가 충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간 양성평등 증진을 위한 제도적 성과로는 성별영향평가 컨설팅을 통한 정책개선안이 제고됐다. 성별영향평가 업무담당자 실무교육과 1:1 맞춤형 대면 컨설팅 확대·실시로 성별영향평가 보고서 작성 실무역량을 강화하고, 실현가능한 정책개선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다양한 각도로 개선방안이 제시됨에 따라 정책개선 사례가 증가하고 개선의견 수용률 및 반영률도 높게 나타났다. 성인지력 향상 및 성별영향평가 실행의지가 향상됐다. 정책업무를 추진하는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성인지 교육, 실무역량강화교육 등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해 업무담당자의 전반적 이해도가 점점 향상되고 있으며, 양성평등 의식 및 성주류화 정책 실행의지가 뚜렷하게 보인다. 성별영향평가 결과 정책이 개선된 사례를 발굴해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통해 성별영향평가 제도 추진동기를 강화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성주류화 정책 홍보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지역 차원의 양성평등 정책 성과를 돌아보면서 향후 과제에 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첫째, 성별영향평가 내실화를 위한 정책개선 성과 도출이다. 성별영향평가 양적 과제 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장감 있는 제도의 정착을 위해 질적 성장이 필요하며, 정책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성별영향평가서의 내실화를 기하고, 과제선정과정에서부터 정책개선안을 도출할 수 있는 정책개선 가능 과제를 발굴해 컨설팅 강화 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둘째, 정책개선 이행점검 확대이다. 성별영향평가 결과 도출된 정책개선안이 실제로 추진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이행점검은 지속적인 정책개선의 실천과 새로운 정책개선 방안의 마련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도출된 정책개선안이 실행을 통해 정책개선으로 이어져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이행점검 확대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세분화된 성별영향평가 모니터링을 통해 정책개선 사항에 대한 환류 강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셋째, 특정성별영향평가 예산 수립 및 확대이다. 성별영향평가 과제 수가 양적으로는 일정 수준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정책개선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지자체 특정성별영향평가를 추진하여 이에 대한 성인지 예산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넷째,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연계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 예산제도의 연계는 필수적이므로 성인지 예산에 대한 컨설팅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성인지예산제도 실효성을 위한 조례 제정을 통해 지자체의 실행 의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관리직 공무원 대상 맞춤형 교육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성별영향평가 업무는 다른 부서 업무담당자의 협조가 있어야 원활히 추진되므로 기관장, 부서장 등 관리직 공무원이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관심, 지원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2020-07-13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강희룡 서예가삶의 여정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바른길도 있고 그릇된 길도 있다. 대개 그릇된 길은 개인 욕심이나 집단의 그릇된 목표로 인해 본의 아니게 택함으로서 패가망신하거나 목숨까지 던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창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실학자인 김정희의 완당집(阮堂集)에 ‘천 리 길을 가는 말(適千里說)’에, 갈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아는 사람이 바른길과 잘못된 길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잘못된 길은 가시밭길이고, 바른길은 반드시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라고 성심을 다해 알려줘도 의심과 욕심이 많은 자는 이를 믿지를 못해 딴 사람에게 묻고,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고 한다.결국 ‘남들이 모두 옳다하여 내가 감히 따를 수 없고, 남들이 모두 그르다 해서 그것이 과연 그른 줄 모르겠으니 내 직접 경험해 보리라,’ 라는 생각으로 가다보면 결국 함정에 빠져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거나, 설령 끝에 가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되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이미 시간과 심력을 다 소모해 버린 터라 돌이킬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바른길을 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여기서 완당이 말하는 천 리 길은 단순히 먼 노정만을 뜻하지는 않기에 우리 삶의 긴 여정에 비추어 보면, 인생의 여정에도 수많은 갈림길이 나타나기에 그때마다 어느 길로 갈지 신중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당은 이러한 갈림길을 만나서 헤매지 않는 해답을 이미 행간에 암시하고 있다. 모르는 길은 마음대로 가지 말고 남들이 일러 준 것을 믿고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완당은 선현들은 진리와 지혜를 고전을 통해서 가보지도, 겪어보지도 못 해 미로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욕심이나 위선을 앞세운 삶의 결과는 반드시 망양지탄(亡羊之歎·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서 길을 잃음)으로 돌아온다는 교훈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조선 인조 때의 학자인 홍만종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이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풀이된다. 오늘날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공(公)과 사(私), 정(正)과 사(邪)는 함께 할 수 없다고 검찰총장을 향해 법무장관이 내뱉은 말이다. 명언이다. 허나 여기서 누가 공과 정이고 누가 사란 말인가? 장관 입장에서 보면 본인이 공과 정이고, 검찰총장이 사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로 풀이됨을 아는가! 추 법무장관의 임무는 임명부터 조국 전 장관 비리와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같은 패거리의 각종 권력형 비리 등을 수사 중인 검찰지휘부를 장관직을 이용해 와해시키고, 임무에 충실한 윤 총장을 찍어냄으로서 검찰개혁이라는 포장으로 정치검찰화 시키려는 의도를 국민들이 읽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닌가.

2020-07-13

숱한 오류들의 연속… 청도 적천사(碩川寺)

적천사의 은행나무를 보러 떠나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초입에서 펼쳐지는 소나무 숲에 한껏 부풀어 있는데 느닷없이 8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와 마주 선다. 시간을 벗어난 존재의 환희, 푸르고 깊은 눈빛과 마주친 이상 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은행나무의 오랜 침묵과 장엄한 자태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화석, 나무에게서 서늘하도록 도도한 기운이 흐른다.천연기념물 제 402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수형이 곧고 반듯하며 큰 상흔 없이 자랐다. 고령의 몸으로 유주를 늘어뜨린 채 손톱만한 은행들을 품고 본분을 다하는 모 앞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성의 젖가슴처럼 자라는 유주가 남근처럼 길게 자란 탓에 이것을 끓여 먹으면 남자아이를 잉태한다는 속설이 전한다. 은행나무와 옛 여인들이 재워둔 아픔들이 쿨럭이며 깨어날 것만 같다. 그 지난한 시간들이 먹먹하다.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유유히 은행나무를 돌아 산 아래로 내려가는 고급 승용차의 뒷모습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은행나무를 올려다본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젊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은행나무 연시 한편이 떠오르고, 유난히 은행잎이 노랗게 슬픔으로 차오르던 바이마르에서 몇 달만이라도 머물고 싶던 낭만어린 나의 꿈들도 살아난다. 숱한 꿈들은 현실에 치여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젊은 날 문학과 감수성에 불을 붙이던 은행나무가 오늘은 성스러울 만큼 외경스럽다.동양에서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학을 즐겨 한 까닭에 유학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졌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곳을 행단(杏壇)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릴 적 고향 집 앞에도 은행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회화나무가 지성적인 나무라면, 은행나무는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나무라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허기진 시간들이 그리움이 되어 몰려온다.고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돌아보는 지난 세월은 허무하도록 짧고 애틋하다. 찰나에 불과했던 시간들이 푸른 잎 사이에서 여전히 서성일 것만 같은데, 나무 아래에는 괴테의 연시나 나의 짧았던 청춘은 간곳이 없다. 촛불 밝히며 빌었던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들이 삶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부처님 계신 극락정토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천왕문이 앞을 막아선다. 탐욕과 오염된 마음 내려놓고 들어서라며 사천왕상이 눈을 부라리는데 그 표정조차 친근하다. 사천왕의 발밑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온갖 악귀와 축생, 잘못을 저지른 중생들, 천국와 지옥이라는 말도 낯설기만 하다. 오늘 하루의 생각과 행동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합장한다.적천사는 문무왕 4년(664년) 원효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지으면서 창건되었다. 828년 심지왕사가 중창했으며 고승 혜철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175년 고려 명종 5년에 지눌이 크게 중건 했을 때 참선하는 수행승이 오백 명이 넘었으며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토록 유명했던 절은 인기척이 없고 쓸쓸하다.커다란 괘불을 걸고 위엄을 갖추었을 당간지주, 명부전 지붕 위로 보이는 잘 생긴 소나무, 영산전 앞의 수국의 침묵과 허공을 닮아가는 눈빛들, 흐린 날씨 탓인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인다. 천천히 대웅전 법당에 들어가 백팔 배를 한다. 온몸이 젖어들지만 마음은 고요하지가 않다.원음각 뒤로 곧게 뻗은 길은 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풀들 사이로 시(詩)가 자랄 것만 같은 길, 걷다보니 도솔천이 부럽지 않다. 시원한 소나무 숲길이 나를 편안하게 이끈다. 수풀 우거진 부도밭이 보이고 길은 울창한 대숲 사이로 이어진다.아름다운 길이다. 새로 올라온 대나무의 푸른빛이 매혹적이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빛깔들이 묵은 대나무들 사이에서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줄기는 이미 단단한 마디가 생겨 대나무로서의 손색이 없다. 푸른빛에 홀려 수없이 셔터를 눌러대는데, 지나치게 현상에 이끌려 실체를 놓치지 마라는 말씀 한 자락이 대숲에서 들린다.조낭희 수필가길이 끝나는 곳에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하나 열려 있다. 암자는 아닌 듯하다. 정성스럽게 꾸며진 정원과 집 한 채가 숨어 있듯 앉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 덩치 큰 외제 차가 사천왕상보다 더 무섭게 지키고, 잘 가꿔진 나무들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곳은 무슨 용도로 쓰여질까? 급하게 사립문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에 온갖 의구심이 실린다.내 발길은 대나무 사립문 앞에서 그쳐야 했다. 무심코 넘은 선이 애써 찾은 마음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선(線)을 넘지 않는다는 것, 중용의 도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마음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소나무 길을 내려올 때쯤 마음이 고요해진다. 환경에 이토록 민감해지는 내 마음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부처님은 법당을 고집하지 않는다. 혼자서 걷는 길이나 무심코 만나는 나무와 풀, 낮게 부는 바람에도 부처님은 계신다. 우리가 무언가에 한눈을 팔거나 부처님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오류들의 연속, 그것이 삶이다.

2020-07-13

팔이 없어 더 아름다운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부분.프랑스 왕들의 거처였던 루브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대중들에게 개방된 박물관이 되었다. 루브르가 세계 최고의 소장품을 수집한 역사의 이면에는 침략과 약탈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힘의 논리가 예술의 세계마저 지배하고 있다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방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루브르이며, 루브르를 방문하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몇몇 작품들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 고대 그리스 미술의 정수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리고 또 다른 여신이 있다. 바로 사랑과 미의 여신 ‘밀로의 비너스’이다.기원전 100년경에 제작된 비너스는 헬레니즘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비너스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다름 아닌 몸에 흐르는 유려한 곡선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각은 평면적인 회화와 달라서 공간과 입체 그리고 인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작용하는 방식을 잘 읽어야 한다. 서 있는 조각의 경우 무게가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몸의 균형을 이루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면밀히 관찰하면 아주 흥미롭다. 특히나 조각은 입체 작품으로 우리와 같이 볼륨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훨씬 생동감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다수의 비너스가 있지만 특히나 ‘밀로의 비너스’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거의 유일하게 머리 부분이 온전히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비록 두 팔은 망실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밀로의 비너스’는 왜 팔이 없이 전시되고 있을까? 프랑스의 복원 기술이라면 충분히 원형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사실 비너스의 두 팔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팔이 없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과 방향성을 분석해 두 팔이 어느 위치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에 따르면 비너스는 왼팔을 들어 머리에 장신구를 꽂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혹은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커다란 거울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비너스 옆에 기둥이 하나 서 있었고 그곳에 팔을 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여러 가지 제안들 중 아주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비너스의 배 부분을 보면 자그마한 둥근 모양의 흔적이 있다. 이것이 복원을 위한 결정적 단서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부분은 비너스의 오른팔이 붙어 있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비너스의 오른팔은 몸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반대편인 왼쪽 허리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왼쪽 팔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조금 더 쉬워 보인다. 왼쪽 어깨의 근육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비너스는 왼쪽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있었을 것 같은데 팔꿈치에서 손 부분은 앞을 향해 뻗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비너스는 왜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비너스가 밀로 섬에서 발굴되었을 때 다른 파편들과 함께 출토됐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출토된 파편들 중에는 왼팔의 일부로 추정되는 조각이 있었는데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여러 다른 작품들에서 관찰되듯 비너스는 사랑 혹은 타락의 상징인 사과를 들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루브르의 복원 전문가들은 비너스가 사과를 든 왼팔을 앞으로 뻗으며 서 있었을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내려졌지만 복원 작업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왜일까?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복원된 팔은 비너스를 완성 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것이 지닌 신비한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간 속에 소멸된 요소들을 인위적 손길을 가해 복원하는 것 보다 불완전한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불완전은 감상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고, 그 상상력으로 인해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들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

2020-07-13

지열발전소 시추기 매각, 정부 방관해도 되나

포항지진 피해 배·보상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정부가 포항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의 아픔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자연재해가 아니고 국책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의 방심으로 지진이라는 막대한 인재가 발생했는데도 정부의 수습 태도가 너무 안일하다. 먼저 인재로 밝혀진 포항지진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 사과가 여태 없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정부의 예산지원으로 국가투자기관이 수행한 사업에서 지진을 유발한 것이 정부 조사단에 의해 밝혀졌음에도 정부는 공식적 사과를 않는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처사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낸 포항지진을 두고 정부 여당이 중심이 돼 특별법을 만드는데도 2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야당과의 협의가 필요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의 적극적 의지가 없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은 정부 부처의 조사와 감사원 감사 등의 과정을 거쳤지만 책임 있는 관계자의 어떠한 처벌도 없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말로만 알겠다고 할 뿐이다.최근 포항지진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포항지열발전소 시추기 매각이 초읽기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면서 포항지역 사회가 또 한차례 술렁인다고 한다.포항지진의 배·보상 문제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포항지진의 결정적 증거가 될 시추기를 매각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시추기를 서둘러 매각하는 것이 지진발생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고 한다.포항지열발전소 시추기의 법적 소유권자인 신한캐피털의 담보력 행사라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그냥 방관만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시추기가 피해 배·보상과 관련해 존치가 필요한지 여부를 따져 필요하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증거를 확보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서다. 특히 정부예산 68억원을 포함 96억원에 사들인 시추기를 19억원에 매각하면서 발생하는 예산 손실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포항지진을 바라보는 정부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포항시민의 정당한 권리요구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2020-07-13

‘어용(御用)’들의 행진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어용’이 판치는 세상이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대쪽’은 없고 모두가 소리 높여 ‘문비어천가’를 부른다. ‘가물에 콩 나듯’ 보이는 대쪽들의 직언은 이른바 ‘문빠’와 ‘대깨문’들의 왜곡과 공격으로 무용지물이다. 대쪽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어용 검찰간부는 항명(抗命)하고 법무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가 하면, 어용국회의원과 어용언론이 총동원되어 ‘어용검찰 만들기’에 혈안이다. ‘절대화 된 권력의 필연적 부패’ 조짐이다.누가 권력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권력 해바라기’가 된 어용지식인들이다. 어용교수·어용언론인·어용시민운동가들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권력을 가지려는 속내는 숨기고 마치 정의의 투사처럼 행세한다. 연구와 교육에 거리가 먼 ‘어용교수들’은 정부여당의 외곽단체에 참여하거나 방송에 출연하여 교활한 궤변으로 정권을 비호하면서 권력에 접근한다. ‘외눈박이가 된 어용언론인들’은 진영논리를 펴면서 권력과 밀착되었고, 그 공로로 청와대 대변인·국회의원 등 스스로 권력이 되었으니 언론의 사명을 잊은 지 오래다.‘어용권력이 된 시민단체들’의 병폐도 심각하다. 지식인들의 시민운동이 권력과 밀착됨으로써 출세의 지름길로 변질되었다. 문재인정부에서 참여연대·민변·정대협 출신들이 장관·청와대비서관·대법관·헌법재판관·국회의원 등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렸으니 시민단체의 사명인 권력에 대한 감시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까지도 대통령의 40년 지기가 총재에 취임함으로써 그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바야흐로 ‘어용의 시대’를 주름잡는 ‘어용들의 행진’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비난받아 마땅한 어용들이 오히려 목에 힘을 주고 ‘어용이 명예’가 된 어지러운 세태이다. ‘어용을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위장’하면서 요설(妖說)을 펴는 지식인까지 등장했다. 어용은 사익(私益)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지만, 대쪽은 공익(公益)을 위해 권력을 비판한다. 권력의 속성상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권력에게 ‘어용의 감언(甘言)은 독(毒)’이고 ‘대쪽의 고언(苦言)은 약(藥)’이다. 권력이 약을 싫어해서 독을 계속 복용하면 마침내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된다. 괴물이 된 권력은 판단력이 흐려져서 ‘어용은 내편, 대쪽은 네편’이라고 착각한다. 권력이 저지른 불의는 정의로 둔갑하고, 권력의 폭주는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독재의 길을 걷게 된다.‘괴물이 된 권력’이 성공한 경우는 없으며 그 끝은 언제나 불행하였다.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많은 어용들을 만들었지만, 바로 그 어용들 때문에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용들의 행진’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어용이 된 지식인은 개인적 불명예이자 국가적 손실이다. 사익을 위해 권력에 접근하여 스스로 권력이 되기보다는 ‘공익을 위해 권력을 비판하고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참된 지식인의 역할이요 사명이다.

2020-07-13

사이토카인 폭풍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있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코로나 중증 환자에서 발견되는 과잉염증 반응의 원인을 밝혀냈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때문이란다.사이토카인 폭풍은 바이러스 등 외부 병원체가 인체에 들어왔을 때 체내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과잉반응 현상을 일컫는다. 즉, 인체 내에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사이토카인의 지나친 분비로 대규모 염증 반응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들의 DNA가 변형되어 일어나 신체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다.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경증 질환만을 앓고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으나, 어떤 환자들은 중증 질환으로 발전해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한다.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에 중증 코로나가 유발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어떤 이유로 과잉 염증반응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중증 코로나 환자의 치료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내 연구진은 중증·경증 코로나 환자로부터 혈액을 얻은 후 면역세포들을 분리하고 ‘단일 세포 유전자발현 분석’이란 기법을 적용해 특성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일종인 종양괴사인자(TNF)와 인터류킨-1(IL-1)이 공통으로 나타났고, 특히 인터페론이라는 사이토카인 반응이 중증 환자에게서만 특징적으로 강하게 나타남을 확인했다.지금까지 인터페론은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는, 인체에 유익한 사이토카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구진은 인터페론 반응이 코로나 환자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염증반응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한시라도 빨리 코로나가 퇴치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13

故 박원순 추행 피해 호소인 고통 살필 차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논란 속에 마무리됐다.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박 시장에게 오랜 기간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장을 냈던 피해호소인의 모진 고통이 숙제로 남았다. 서울특별시장이라는 고위공직의 무게로 볼 때에서도 이 사건은 그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혼돈이 오더라도 제대로 정리해야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박원순 시장 빈소를 취재하던 기자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노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라고 쏘아붙였다. 기자를 노려보던 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쁜 (놈) 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내뱉었다. 이 짤막한 한 장면에 민주당의 처지와 심리가 상징적으로 들어있다. 기자의 으뜸 사명은 ‘예의’가 아니라 국민 알권리를 위한 ‘취재’다.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과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 전우용의 부적절한 발언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현상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친여 성향의 네티즌들은 피해호소 여성을 향한 잔인한 2차 가해를 일삼고 있다. 보복성 발언에다가 심지어는 시장실 여비서를 관노(官奴)에다 비유해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다고 제사를 안 지내냐”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니 말문이 막힐 노릇이다.희대의 살인바 ‘이춘재 사건’도 공소권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졌다. 박원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뭔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게 분명한 이 나라 지도층의 천박한 성인지감수성(性認知感受性)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피해자 측 변호인과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사실을 상세히 공개했다. 피해호소인을 조롱하는 악당들의 무참한 행위를 반박하는 “네 누이나 딸이 당했어도 그런 소리를 할래?”라는 일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해호소 여성의 처지가 딱하다.

2020-07-13

자살에 대해

한국사람의 자살률은 2003년 이래로 OECD회원국 중 줄곧 최고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6.6명으로 OECD평균 11.3명보다 월등히 많다. 하루 평균 37.5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한햇동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수가 3만 명을 넘는다. 전국 응급실로 들어온 응급환자를 통해 집계한 수치다.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정도 더 많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세계 1위라 평가 받지만 우리나라 노인층의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1위다. 문제는 한국이 비교적 잘 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자살률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살에 대한 원인이야 많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회 양극화문제와 노인층의 빈곤률 등 경제적 문제가 주 요인이다.사회학자 E.뒤르켐은 자살을 세 가지 형태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붕괴적 자살 등이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과 사회와의 결합력이 약해질 때 생긴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높을 때 일어난다. 민족을 위해 논개처럼 생명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붕괴적 자살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못해 일어나는 자살이다.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자살은 또다른 자살을 부르고 자살 자체가 문제의 해결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종종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이 그러했고 비리와 연관된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의 자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극단적 선택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경우는 없다.오히려 가족에게 평생 잊지 못할 크나큰 상처만 안겨주고 사회적으로도 부정적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어느 누구도 자살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동정이나 미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죄악시하고 우리사회가 경계할 일인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7-12

‘외눈박이’ 거인들의 나라

안재휘 논설위원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빅브라더(Big brother)를 등장시켜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 ‘1984’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표현을 등장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끈 윈스턴 처칠 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진실만이 오롯이 담겨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그 무서운 역사조작의 징후는 오늘날도 끊임없이 감지된다.지난 주말에 유명인사 두 사람이 사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느닷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도 향년 100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하루 사이에 잇달아 일어난 두 거물 인사들의 죽음이 또 한 번 민심을 두 쪽으로 갈라내고 있다. 걸핏하면 청백전을 벌이는 대한민국의 고질병이 또 한차례 도지고 있다.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박원순 시장의 자살은 시장실 여비서가 장기간 성추행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게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이 유력하다. 장례형식을 서울시장(葬)으로 치르는 일에 대한 저항이 심각하다. 공무상 순직도 아닌 ‘자살’에 요란을 떠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흐드러졌다.백선엽 장군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으로 장지가 정해진 일을 놓고 말이 많다. 이 논란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논쟁을 일으켜 왔었다. 백선엽 장군은 6·25 한국전쟁에서 낙동강까지 밀린 국군을 수습해 기적적인 반격을 지휘해낸 전쟁영웅이다. 그러나 젊은 날 소위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 토벌 활동을 했다는 전력이 질긴 꼬리표로 달려 있다.안희정, 오거돈이 미투(Me too) 폭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상황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급서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민주당은 파장을 끊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같은 입에서 호국영웅 백선엽 장군 사망에 대한 애도의 말 한마디도 안 나오는 행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문득,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해 한동안 여론을 달구었던 항일 무장투쟁 영웅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이 떠오른다. 그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을 지휘한 일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거셌다. 약산 선생에 대한 서훈 당위성이 주장되자 시중에는 “김일성에게도 훈장 주자고 하게 생겼다”는 걱정까지 나왔었다.마치 독립운동하다가 흉탄에 맞아 죽은 애국지사마냥 치러지고 있는 박원순 시장 장례 모습을 선뜻 공감하기란 어렵다. 어떻게 똑같은 사고체계를 갖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그렇게 야박할 수 있는지, 그 지독한 편견과 모순에 찌든 열광적 ‘순수주의’의 테러리즘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영락없이, ‘외눈박이 거인들의 나라’에서 철저히 무시당하는 난쟁이들 신세다. 평생 나랏돈의 낭비를 걱정해온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지금의 이 거창한 야단법석을 과연 즐거워할까. 삼가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시장 두 분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2020-07-12

경북문화재단, 찬란한 경북문화 세계화에 앞장서길

경북문화재단이 10일 본격 출범했다. 경북문화재단은 경북도 문화재연구원과 한복진흥원을 산하기관으로 두는 등 조직을 새롭게 확대 개편하면서 앞으로 경북의 문화예술을 총괄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된다.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문화재단 중 가장 늦게 출범을 했지만 가장 야심 찬 활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초대 대표이사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을 초청했다.경북문화재단은 앞으로 문화 및 예술의 산업화와 해외마케팅 등 모두 15개 핵심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른바 문화산업을 미래 신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까지 포함하고 있다.경북문화재단의 출범을 계기로 지역문화를 보다 활성화하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문화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경북의 문화가 경북의 경제를 견인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특히 경북은 찬란한 신라문화와 유교문화의 중심지여서 그 가능성이 높다. 경북은 경주 문화유산도시와 서원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유교정신과 호국정신의 본향이기도 하다. 문화적 가치로 말하면 경북만큼 풍부한 곳도 없다.이희범 대표도 이런 점을 고려 이곳을 “대한민국 정체성의 발원지”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경북문화재단은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해 나가야 한다.먼저 경북문화의 정체성을 더 확고히 해야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신라문화와 유교문화에 대한 집대성을 이뤄 이 고장의 독특한 정체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서 경북문화를 알리고 글로벌화해 세계인이 찾는 도시로 성장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도내 곳곳에 남아있는 지역의 문화예술을 찾아 진작시키고 활성화 시켜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제 전 세계가 문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문화를 소재로 한 기업의 생산 활동이 확대되고 문화 콘텐츠의 대량생산으로 주민들의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지역의 문화를 특성화시키고 널리 알려 문화적 가치를 선도하는 것이 곧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다.한류문화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듯이 지역의 문화예술을 발굴하고 가꾸어 제2의 한류 문화운동은 경북에서 먼저 일어나길 기대한다.

2020-07-12

근절 안 되는 ‘직장 내 괴롭힘’ 심층 대책 시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 1주년을 맞았지만, 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최근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 강화, 예방교육 의무화 등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어제오늘의 현상을 볼 때 기관이나 직장에서의 갑질 문화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이 많다. 훨씬 더 정교하고 심층적인 대책이 시급하다.‘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6개월 동안의 통계를 보면, 고용노동부에 신고·접수된 건수가 103건이다. 연간 200건 남짓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직장갑질119’에는 올해 6개월 동안 무려 1천588건이 제보돼 월평균 265건 꼴이다. 주로 모욕·명예훼손(27.3%), 폭언·폭행(16.1%), 따돌림·차별(15.9%), 강요(12.4%), 부당지시(11.4%)가 많았다. 업무와 무관한 지시나 인격 모욕이 주를 이룬다.험담, 따돌림, 강요, 폭언·폭행, 성희롱과 부당인사까지 그 유형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최근 연예계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매니저를 향한 갑질 사례들이 그 심각성을 대변한다. 쓰레기 분리배출과 배달 생수통 운반 등 가족의 허드렛일부터, 신발 수선이나 강아지 수발까지 시킨 사례조차 확인된다.‘직장 내 괴롭힘’을 빚는 근원적 요인은 ‘우월적 지위’다. 부당 인사 위협이 상존하는 직장인들은 문제 제기조차 힘들다. 특히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에서는 더 심각하다. 낡은 사고방식은 세대 차이로 현격히 드러난다. 조사결과 2030세대의 갑질 감성지수는 71점인데, 50대 이상은 66.3점에 불과했다. 남성(66.8점)과 여성(72.4점)의 지수 차이도 크다. 과학적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제3자에 의한 가해도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특히 가해자 처벌 및 조치 미이행 시 처벌조항 보완, 괴롭힘 금지 교육의 법정 의무교육 조항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광역 단체장 등 사회지도층의 성범죄 등도 이 문제와 연결돼 있다. 보다 효율적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0-07-12

포항의 인공지능에 팔, 다리도 달아주자

코로나 시대(with corona)와 그 이후 다가올 뉴노멀(post corona)에 대비하여 주요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화, 온라인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5G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예상외의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실례로 그동안 안면인식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스웨덴의 비지쥐 테크놀로지(Visage Technologies)사가 기존의 안면인식(face tracking) 기술을 기반으로 화상 속 얼굴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인공지능기술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화상 속에 나타난 얼굴을 구성하는 눈이 전하는 감정, 코와 입술 주변의 움직임에서 추출 가능한 감정 등을 종합하여 인간의 7가지 감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화면에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감정분석 인공지능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판단하는 핵심 데이터는 얼굴을 구성하는 눈과 코 주변, 입술과 턱 라인의 움직임이다.그동안 안면인식 기술로 수집한 감정 데이터를 활용하여 화상의 얼굴에서 추출되는 7가지 감정 즉 행복(Happiness), 슬픔(Sadness), 분노(Anger), 공포(Fear), 혐오(Disgust), 놀람(Surprise), 중립(Neutral)을 실시간으로 수치화해 화면에 보여주는 기술이다. 물론 인간의 감정이 중립을 제외한 6개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실제 비즈니스나 복잡한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면서 이루어지는 화상 대화에서 이 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음성만으로 분석하는 기술에서는 평안, 분노, 기쁨, 슬픔이라는 4가지 감정만을 나타내고 있어 아쉽다. 앞으로는 화상의 감정분석기술에 음성분석을 통합한 복합적인 감정분석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비대면 비접촉이 주류로 자리매김하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음성 전화나 문자 이메일보다는 영상통화와 화상회의, 동영상 자료 등이 더욱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직접 대면하는 의사소통에 비해 작은 크기의 영상화면에서 상대측의 감정을 이해하는 비대면 방식이 훨씬 비효율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감정분석 인공지능기술은 앞으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직접적인 대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고 인식할 때 자신의 감정변화가 심하면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무딘 남성들은 여성으로부터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눈빛이나 표정만으로 감정을 왜 알아차리지 못하냐며 혼이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포착하여 인간보다도 더욱 객관적이고도 냉철하게 상대방의 감정변화를 수치화하여 알려주는 이 인공지능 기술은 많은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앞으로 중요한 비즈니스와 관련한 고객대응 콜센터는 영상전화센터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거나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중요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영상이 보여주는 상대의 얼굴이 나타내는 분노 수치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함께 맞장구치며 상대방에 공감해줌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 슬픈 상태라면 단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거나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도 있다. 앞으로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활약할 기술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기술이 탄생하더라도 역시 그 핵심은 얼마나 기계적인 분석시스템이 인공지능기술을 통해 융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만큼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의 확장성은 매우 크다는 이야기다.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7월 1일 포항공과대학(postech)에서 인공지능대학원과 인공지능연구원을 출범시킨 것은 시대적 흐름에 100% 동기화되는 최적의 사건이다. 사실 포항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인공지능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상당히 알려졌지만, 2005년 국내 최초로 포항에 지능로봇연구소가 들어설 때만 해도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지 않았다.당시 국내에서는 로봇이라고 하면 자동차 등과 같은 대량생산시스템에 적용되는 산업용 로봇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 출범한 포항의 지능로봇연구소는 우리나라 초기의 지능형 서비스 로봇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산불감시로봇, 의료보조로봇, 견마로봇 등 다양한 지능형 로봇들을 연구 개발하고 생산, 실용화하였다. 그러한 성과로 설립 7년 후인 2012년에는 우리나라 6대 국책로봇연구기관의 하나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으로 재탄생하였다. 포항의 KIRO는 국내 유일의 실용로봇 전문생산기술연구소로서 수중안전로봇과 같은 국가 로봇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포항이 2007년경 ‘로봇시티 포항’을 선포했던 것도 단순한 구호는 아니었던 셈이다. 미래의 지능로봇이 더욱 정확하게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다. 그런 까닭에 로봇의 두뇌를 담당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자들을 배출하기 위한 인공지능대학원이 포항에 설립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공지능대학원과 KIRO가 적극 협업하여 포항의 로봇산업 발전에도 큰 시너지를 발휘하였으면 한다.사실 이번에 출범한 인공지능대학원에 기대하는 것은 따로 있다. 사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특정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만 한다. 지금 포항경제가 어려운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철강산업의 생태계가 완전체로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일종의 소재다. 이 소재를 활용하여 기계산업이 형성되고 또 그 기계들의 조립, 연계로 자동차, 조선, 중장비 등 최종재로 탄생하는 것이다. 포항이 이러한 순환과정을 모두 아우르는 진정한 철강 생태계를 갖추고 있었다면 외부충격이 발생하였을 때 포항경제가 받는 침체의 강도는 지금보다 훨씬 완화될 것이다. 이처럼 포항이 과거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던 경험들을 이제는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앞으로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비대면, 비접촉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문에 걸쳐 기술이 진전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인공지능이 특히 큰 역할을 할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굳이 산업생태계에 비추어 본다면 이 또한 일종의 소재에 해당할 뿐이다. 인공지능이라는 두뇌(소재)를 이용하여 그것에서 파생될 완성형의 최종적인 모습은 의료진단기기가 될 수도, 화상회의시스템이 될 수도, 국가재난예보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따라서 인공지능기술이라는 소재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공지능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최종형태가 무엇이든 사람의 눈과 코를 대신할 초정밀 카메라와 센서를 갖추고 보다 정확한 정보데이터를 수집해야만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활약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항은 앞으로 인공지능대학원을 기반으로 그와 연계되는 각종 센서기술의 연구와 생산, 초정밀 카메라와 같은 정밀기계, 로봇의 내구성을 보장할 특수금속 소재와 정확한 관절 기능을 제어할 로봇공학 등 다양한 파생, 동반 기술들도 함께 연구하고 생산할 수 있는 복합적인 인공지능 기반 산업도 함께 키워야만 한다. 머리만이 아니라 팔, 다리도 필요하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12

글기지개의 기적

김현욱 시인코로나19로 가장 안타까웠던 건 우리 반 아이들과 글기지개를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3월 2일에 시작해 이듬해 종업식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글기지개를 써야하는데, 코로나19로 문을 닫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혹자는 온라인이나 유선으로 해보면 어떠냐고 했지만, 글기지개의 핵심은 대면(눈맞춤)이고 댓글(관심)이다. 대면(눈맞춤)과 댓글(관심) 없이는 1년 동안 꾸준히 쓰기 어렵다. 다행히 6월 8일부터 반 아이들이 격일제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현재 설레는 마음으로 글기지개를 하루하루 채워나가고 있다.글기지개는 ‘아침 10분 글쓰기 활동’을 가리킨다.매일 아침 학교에 와서 어제부터 오늘아침까지의 겪은 일이나 감정을 공책에 서너 줄로 짧게 쓰는 것이다. ‘아침에 쓰는 일기’라고 할 수 있다. 그걸 뭐라고 부를까 궁리하다가 ‘글, 기지개’를 떠올렸다. 매일 아침 ‘글로 기지개를 켠다’라는 의미다. 글기지개를 시작한지도 벌써 9년째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쓰는 글기지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자신도 모르게 글 쓰는 습관이 잡힌다. 글기지개를 안 쓰면 뭔가 찝찝할 정도다. 무엇보다 서 너 줄 쓰는 게 별로 두렵지 않다. 어느 순간, 글쓰기를 겁내하지 않는다는 건 참말로 대단한 일이다.대해초 5학년 1반 친구들과 글기지개를 쓴지 한 달이 넘었다. 글기지개를 한 달 동안 빠짐없이 써온 몇몇 아이들의 소감을 소개한다.“학교에 첫 등교해서 글기지개를 썼는데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솔직히 벌써 한 달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잘 쓰게 된 것도, 우리가 글을 잘 쓰게 된 것도 다 글기지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은 더더욱 잘 써질 것 같다. 글을 쓰는 게 귀찮기만 했지만 이젠 맨날맨날 글기지개를 쓰니깐 익숙해져서 귀찮지가 않은 것 같다. 우리 담임 샘을 안 만났다면 글을 이렇게 쓰진 못할 것 같다.”“벌써 글기지개가 한 달이 됐다. 나는 벌써 한 달이 됐나, 생각했다. 와우! 나는 글기지개가 너무 재미있다.”“왠진 모르겠지만 글기지개가 무려 한 달이 지났다. 뭔가 뿌듯하다. 처음엔 손이 부러질 듯 귀찮았는데, 이젠 괜찮다. 귀찮은 것보다 이젠 재미있다. 이번년도 선생님은 우리가 귀찮게 생각하는걸 많이 없게 만들어주는 선생님 같다.”“글기지개를 한 달 써보니 뭐 그럭저럭(?)도 있지만, 스트레스 푸는 거에 도움이 된다. 나도 저번에 동생, ‘그놈의 동생’ 때문에 글기지개에 적었는데 진짜, 스트레스가 잘 풀린다.”“오늘도 아침부터 글기지개를 쓴다. 글기지개 쓴지 어느덧 한 달, 좋은 점은 뭔가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학교 가는 날에는 글기지개를 아침에 쓴다. 그런데 꼭 학교 나와서(끝나고)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아이들의 글기지개를 읽으면 행복하다. 두 달, 세 달, 일 년…. 꾸준히 글기지개를 써나갈 것이다. 모든 기적은 ‘꾸준히’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202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