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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주나무를 찾아서

등록일 2021-06-23 20:03 게재일 2021-06-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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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영 사진작가의 노간주 작품.
우종영 사진작가의 노간주 작품.

책장을 넘기다 산비탈 바위틈에 있는 노간주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도저히 자라지 못할 곳에 뿌리를 내리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더구나 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었다. 하늘이 내려 주는 빗물만으로 지탱하며 사시사철 푸름을 지키고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자꾸 마음이 갔다.

때마침, 봄장마가 물러가고 말간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무작정 나무를 찾아 떠났다. 초록이 연두를 품고, 진분홍이 연분홍의 꽃들을 모두 삼켰다. 하늘과 산이 맞닿아 초록이 머무는 곳, 햇살과 바람, 구름이 쉬어가는 곳, 경상북도 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에는 나무와 풀 냄새가 자욱하다. 흠 하나 없는 무결점의 하얀 꽃들도 뒤질세라 화르르 가지를 흔든다. 무방비로 열려 있는 감각에 예고편도 없이 사방에서 맑고 푸름이 들어온다. 온몸의 세포가 자연스레 열린다. 나무 터널이 낸 길 따라,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얼마 가지 않아, 하늘을 담은 연못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어제 내린 비에 하늘이 연못에 들었나 보다. 구름도 따라 내려와 올챙이와 벗하며 한낮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하양과 파랑만 있으면 단조로운가, 꽃창포와 노랑꽃 창포가 연못 주변을 맴돌며 배시시 웃고 있다. 나도 꽃 인양, 벤치에 앉아 이들과 함께 풍경 하나가 된다.

얼마나 머물렀을까, 노간주나무를 보러 왔다가 잠시 풍경에 취해 넋을 놓았다. 이제 나무를 찾아갈 생각이다. 짐작하건대 노간주나무는 평지보다는 산등성이에 있을 것 같다. 오르막을 따라 산을 오른다. 나무마다 걸어 놓은 이름표를 들춰가며 생김생김의 모습에 눈을 맞추며 올라갔다. 한 골짜기를 훑어도 노간주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건너편에서 천천히 올라 가 보았다. 또 헛걸음이다. 덜컥거리며 내려앉는 마음을 바로 세웠다. 노간주나무는 측백나뭇과이기에 비슷한 모양의 군락지에서 찾아야겠다.

노간주나무는 고향 마을 뒷산에 많이 있었다. 송아지에 코뚜레를 만들 때 노간주나무의 가지를 이용한다. 나뭇가지가 부드럽고 잘 부러지지 않아 제격이다. 고향 집, 소 우리에서 목 놓아 울던 그렁그렁했던 송아지의 눈빛과 그 옆에서 일손 늦어 겁먹은 아버지의 눈빛이 오버랩된다.

농사일에 소는 든든히 살림 밑천이다. 거친 땅을 보드랍게 갈아엎을 때, 논에 물을 가둬 모내기 준비할 때도 소를 이용했다. 그만큼 소는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가까이 있는 순한 동물이다. 그런 소였지만, 소도 사람을 보고 일을 하는지, 일손이 없거나 느린 사람에게는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어렵게 장만한 송아지도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만에 아버지와 기 싸움을 했다.

책 속의 사진 한 장을 보고 무작정 길을 나선 게 잘못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고산 식물원이라 당연히 노간주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산등성이를 몇 번 오르다 지칠 때쯤, 노간주나무를 못 찾아도 숲속에서 어슬렁대도 좋겠다 싶었다. 마음을 그렇게 다잡는데, 눈은 이 골짜기를 훑었고 분명 저 골짜기에는 노간주나무가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을 찾아갔다. 노간주나무를 보러 왔다고 하니 담당 직원이 “노간주나무요?”라고 되묻는다. 경북수목원에는 노간주나무를 일부러 심지는 않았다고. 그런데 자생한 한 그루가 있다는 골짜기를 말해 주었다. 나무의 이름표는 달지 않았으니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그루가 있다는 소식에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웠다. 천천히 산을 훑어가며 나무를 찾았다. 그곳을 찾아 헤맸지만, 노간주나무는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순혜​​​​​​​수필가
이순혜​​​​​​​수필가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 돌아가기는 너무나 아쉽다. 마지막으로 문화해설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분도 노간주나무를 본 것 같지만, 그냥 지나가며 본 터라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무실 직원이 말한 곳을 대략 설명하니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근처를 다시 수색했다. 찾기가 어려워 수색이라는 말이 맞는다. 한참을 헤맸다. 수목원의 어둠은 빨리 달려들어 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일반인의 발길이 드문 수목원 뒤쪽 초소를 찾았다. 자연생태계의 식물을 찾아 연구하는 분이 계시기에 여쭈었다. 경주 남산 이무기 능선에 노간주나무 군락지가 있다고 한다.

오늘은 노간주나무를 만나기는 힘든가 보다. 나무를 찾아 헤매다 지칠 때쯤, 우리 집 송아지가 코뚜레를 하며 눈물 흘리던 슬픈 눈과 어머니의 잔소리에 코가 꿴 아버지가 밭으로 가며 속으로 울었을 그 눈망울이 겹친다.

더 비켜날 곳도 없어 보이는 사진 한 장이었다. 옛사랑을 찾아 먼 길 갔는데, 못 보고 발길을 돌린 것처럼 허전했다. 내일은 이무기 능선으로 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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