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열정을 불태우고 싶을 때가 있다. 붉게 타오르는 마음을 일으켜 무엇을, 모든 것을, 더 많은 것을 이루려 두 주먹 꽉 잡는다. 마음과 달리 팍팍한 오늘 하루를 살다 심장의 박동이 느려지고 현실과 자주 타협한다. 뜨겁던 마음이 재처럼 사그라질 때, 배롱나무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배롱나무를 쓰다듬으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배롱나무를 만지면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나무의 수피는 상처가 났다가 아물어 딱지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각과 다르게 나무는 매끈하고 부드러워 자꾸 만져보고 싶을 정도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고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제아무리 예쁘고 향기로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짧은 시간 동안 제 할 일을 다 하고 떨어지고 만다. 예쁜 꽃은 예쁘게 피워 사람의 발길을 들게 하고, 향기로운 꽃은 나름의 향기를 뿜어 나비와 벌이 찾게 한다. 배롱나무는 붉은 정열을 타고 나지 않았을까. 며칠도 아니고 백일동안 붉은 꽃을 피워 사람을 끌어당기니 말이다.
옛 선비들은 뜰에 배롱나무를 심어놓고 수시로 가까이했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어 그 붉은 꽃의 정열을 삶에서 배우고 싶어서이다. 배롱나무는 주로 서원의 뜰이나 성인들이 살았던 마당 한쪽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선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습관처럼 찾는 곳이 있다. 안동 병산서원에 피어난 배롱나무꽃을 보기 위해서다. 배롱나무의 꽃이 내 눈에 든 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는 잊을 수가 없다. 봄이면 파릇한 기운으로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푸른 물결로 출렁이고 붉은 꽃망울이 흔들렸지. 가을이면 저다운 색깔로 익어가는 것을.
서원의 복례문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늘과 땅의 진리를 해독하고자 숱한 날을 공부에 정진하고 가끔은 배롱나무 곁에서 시 한 수 읊고 마음의 영역을 넓혔을 것이다. 천자문을 읽을 줄 안다고 세상을 다 깨우친 것이 아니듯 삶을 학문만으로 다 여물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마음을 풀어놓으니 걸음마저 느릿해진다.
백일동안 피고 지기를 마친 배롱나무를 다시 보러 갔다. 병산서원이 아닌 경주시 현곡면 용담정이다. 숲길이 아담하고 가파르지 않아 두어 시간 나들이로 제격이다. 이곳은 동학의 발생지이며 천도교의 성지다. 용담정 마루에 앉아 오감을 열어놓고 배롱나무를 멍하니 바라본다. 고요가 깊어지면 마음 한 곳에서 부싯돌이 일어 뜨거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맞잡고 용담교를 건너 작은 폭포를 휘감아 내게로 온다. 점점 더 크게 요동하며 지난여름에 붉게 꽃피운 배롱나무에 닿는다. 다음 꽃을 더 붉고 정열로 피우고자 배롱나무를 붙든다.
성삼문 ‘백일홍’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
서로 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
숲길을 돌아 한적한 카페에 머문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 창밖에는 배롱나무 가지가 가을바람에 살랑거린다. 지난여름 뙤약볕에 백일동안 붉은 꽃을 피운 나무는 이제 내 찻잔에 들었는가, 그동안 식어버린 정열을 다시 불태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