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친해지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우선 나무의 이름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다. 다음은 수시로 나무 아래 어슬렁거린다. 나무 아래 의자가 있다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퍼질러 앉아도 무방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으면 나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이제는 나무의 몸피를 살핀다. 안아보고 만져보며 나무의 시간을 읽어낸다.
생태공원 오솔길을 걸으면 나무를 많이 만난다. 나무의 생김이나 모양을 보고는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잘 가꿔진 공원에는 친절하게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너의 이름이 뭐니? 궁금해서 나무 가까이 가서 이름표를 들춰본다. 거기에는 이름과 꽃피는 때와 열매 맺는 시기가 적혀있다. 이름을 알고 나면 한결 친해진 듯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꽝꽝나무를 찾아보았다. 두꺼운 잎을 불길 속에 던져 넣으면 잎 속의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여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난다. 야무지고 단단한 것을 두고 나무의 자생지인 남도 사투리로 ‘꽝꽝하다’고 한단다. 실제로 꽝꽝나무는 잎이 사방으로 빈틈없이 돋아나 단단해 보인다. 그래서 꽝꽝나무라고 한단다.
꽝꽝나무를 찾으러 생태공원에 갔다. 회양목과 꽝꽝나무가 비슷해 이름표를 찾아 근처를 헤맸다. 공원 중턱을 다 헤매도 보이지 않던 꽝꽝나무가 공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꽝꽝나무라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나무를 발견했다면 이제는 어슬렁거리기다. 나무의 키가 작아 가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잎이 푸르고 가지들이 빈틈이 없다. 가지에 달린 잎 하나를 만져보았다. 이파리가 푸름을 그득 물고 있다. 꽝꽝하게.
어릴 적에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 살았다. 촘촘히 울타리가 쳐져 있어도 듬성듬성 집안이 보였다. 어두워질 때까지 노느라 부모님께 혼나는 날이 많았다. 탱자 울타리 사이로 부모님의 상황을 지켜보다 마당에 들어설 기회를 엿보았다.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할 때다. 구판장에서 집에 오기까지 노란 주전자 속에 찰랑거리는 막걸리를 한두 모금 마셨다. 줄어든 주전자를 들고 탱자 울타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탱자나무는 촘촘히 돋아난 가시가 있다. 향기도 은은하고 하얀 꽃과 동그란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신맛이 강해 잘 먹지 않았다. 탱자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는 지(枳)인 데, 선비들의 문집에 귤의 종류로 감귤, 유자와 등자(橙子)가 언급된다. 등자는 신맛이 강한 광귤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탱자의 다른 이름이다. 등자가 열리는 나무로 부르다가 탱자나무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자귀나무는 생태공원 안쪽에 있다. 새끼손톱 반 크기의 자잘한 자귀나무 잎은 해가 지면 서로 닫히는 수면운동을 한다. 남녀가 사이좋게 안고 잠자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야합수(夜合樹), 합혼수(合昏樹)라 하여 부부의 금실을 상징한다. 또 자괴목, 좌귀목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좌귀나무, 자괴나모를 거쳐 자귀나무로 변한 것이다. 자귀나무의 상태를 살피려고 자주 공원에 갔다. 나뭇잎이 닫히는 그 모호함의 경계에서 관찰하고 싶어 저녁때 가 보았다. 매번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자귀나무를 알아가는 길이 멀다. 자귀나무는 이른 아침과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에 보아야 한다.
댕강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댕강’ 부러진다고 하여 댕강나무라 지었다. 꽃이 핀 댕강나무를 보면 연분홍 꽃이 새 가지 끝에 모여 핀다. 꽃 하나하나는 긴 꽃자루를 가지고 있고 서로 떨어져 있어서, 꽃이 동강동강 피어 있다는 뜻으로 ‘동강나무’라 하다가 댕강나무로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오월에 피는 댕강나무꽃은 가지처럼 댕강거리며 떨어지지 않는다. 향기를 뿜으며 살포시 내려앉는다.
층층나무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가지를 살펴야 한다. 층층나무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는 방식은 마주나기, 어긋나기, 돌려나기로 뻗는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거의 수평으로 여러 개가 한꺼번에 돌려나기로 자란다. 마디마다 규칙적으로 층을 이루기 때문에 ‘층층이 나무’라 하다가 층층나무가 되었다. 숲에서 다른 나무를 제치고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어 폭군 나무라는 이름도 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인식이다. 생태를 안다는 것은 관심이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친구 맺기이다. 어루만지고 보듬어 준다는 것은 사랑이다. 나무 앞에 서면 나는 나무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