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삼천리 무궁화 강산이 포화에 얼룩져버린 지 벌써 71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칠순 후반을 넘은 노인들이다. 국가를 위기에서 건지고 민족중흥을 이룬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풍요로워진 삶의 꿈에 젖은 젊은이들에게는 기억의 뒤편에 묻힌 역사가 될까 염려된다.
6·25전쟁의 날, 맑은 햇살 아래 7번 국도를 따라 해파랑길을 기웃거리며 장사해수욕장의 전승기념관을 찾았다. 솔밭 사이 바닷가 모래밭에 배 모양의 조형물이 있기에 바다 카페인 줄 알았는데, 작년 6월 개관한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전시관 ‘문산호’라는 것을 알고는 한번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어 온 터다. 1997년 장사 갯벌에서 LST문산호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 잊혀진 기억 속에서 건져내어 세운 실물 크기 전시관이다. 모래밭 위에 세워진 긴 데크를 걸어 상륙함을 타듯 열린 입구로 들어갔다. 첫 전시실에 들어가니 유리모래판에 쓰는 ‘샌드 디지털 방명록’이 있어 서툰 솜씨로 ‘잊지 말자 6·25’를 썼더니 큰 화면에 나의 샌드아트가 나타났다.
1층으로 내려가 화살표를 따라 처음부터 2층까지 살펴본다. 전쟁의 배경과 학도병의 결성, 출동 그리고 작전과 참여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사진과 영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장사상륙작전은 낙동강까지 밀려난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상륙선은 태풍으로 좌초됐으나 나이 어린 대원들의 강인한 정신으로 상륙에 성공하여 6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적 제2군단의 보급로 차단과 후방 교란의 임무를 완수한 후 구조함을 타고 철수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투였다.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않고 전투경험도 없는 학도병들로 제1유격대대를 결성하고 작명174호를 수행하며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했지만 적군 270명을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로 만들어져 2년 전 개봉되었다.
‘영웅’ 전시실은 전체가 유리 바닥이고 그 아래 모래판에는 이 작전에 참전한 772명의 이름표가 하나하나 놓였고, 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는 학도병들의 모습을 하얀 조각물로 꾸민 곳도 있다. 이때 구조선을 타지 못했던 39명의 영령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을까. AR 증강현실 체험과 소총 사격 게임도 오락 삼아 해보고 넓은 갑판으로 나가니 탁 트인 바닷가에는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가까운 갯바위 위의 낚시꾼들과 소나무숲 아래 캠핑족들의 평화로운 모습들…모두 문산호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는지? 무심한 듯 오늘을 즐기고 있다.
전승기념공원으로 나와 해변에 있는 영웅들 군상 조각의 손도 잡아보고 ‘전몰용사위령탑’ 앞에서 손 모아 참배했다. 마침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오늘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멍한 모습이다. 6·25날인 줄 몰랐단다. 이날 밤 KBS ‘다큐on-70년의 기억’을 보니 6·25전쟁 발발연도를 모르는 젊은이가 53%나 된다. 잊혀져 가는 전쟁의 기억이 안타깝기만하다. 숲에 앉아 옥수수빵을 한 입 먹으니 어릴 적 맛있던 강냉이떡의 기억이 가물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