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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虎尾串)등대

등록일 2021-06-30 20:10 게재일 2021-07-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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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비 개인 해수면은 평온하다. 비바람과 씨줄날줄 설피창이로 엮였던 그 많던 빗방울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물의 윤회 속에서 어쩌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바닷물로 거듭 되풀이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

빗물에 사라진 길의 경계를 더듬어 걷다가 등대박물관에 다다른다. 그 곳에서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젖어 있는 등대를 만난다. 호미곶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등대로 1908년에 신설 점등되었다. 등탑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벽돌만으로 조적된 팔각형으로, 18세기 중반 르네상스식 건축물이다.

포항에 살면서 자주 찾아가는 것이 등대다. 무미건조한 현실에서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고, 등대는 내게 삶이라는 고해에서 희망의 해원을 향해 불빛을 비추는 이상향의 손짓으로 각인되는 연유 때문이다. 20년 전, 등탑 내부의 108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표상하는 오얏꽃 문양(李花紋)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역사 속의 한 시절을 가늠하자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아릿한 것이 올라왔다.

등대는 배들을 안전하게 항구로 안내하는 구원자다. 등대의 불빛은 선박들에게 희망의 빛이요, 구원의 빛으로, 12초마다 한 번씩 40㎞까지 뻗어나간다. 호미곶 등대도 114년이나 된 오랜 세월 동안 칠흑 속에서 등명기를 깜박였다. 어선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부지런히 빛으로 타전(打電)을 부치면, 그 뿜어지는 불빛을 보고 멀리 고기잡이를 떠났던 배가 항구로 줄지어 돌아왔다. 가족을 위해 바다와 사투를 벌이고 돌아오는 피로한 어부들을 위로하듯 불빛은 포근하고 따스했다.

등대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떠오른다. 예전에 아버님을 모시고 등대에 불이 켜지는 풍경을 자주 감상했다. 젊은 시절부터 아버님의 삶에는 무시로 태풍이 불었다고 들었다. 세상 바람은 모두 몰려와 아버님의 삶 속을 흔들고 다녔다. 큰집 형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부탁한 조카 다섯과 당신의 자식 넷까지 건사하느라 생활에는 늘 짙은 해무가 끼였다.

산골짜기의 급류도 종착지인 바다에 다다르면 잔잔한 법이다. 그러나 아버님의 시련은 끝이 없었다. 이제껏 굴곡진 생활을 견뎠으니 남은 생은 완만하고 순탄하게 흐를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한동안 편찮으셨던 아버님이 병원 검사를 받은 결과, 담낭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님은 마치 오래되어 기능을 멈춰 버린 등대처럼 보였다.

아버님은 한 때, 가족들의 든든한 등대였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아버님이 계셨기에, 자식들은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이라는 바다를 누볐다. 잦은 포말을 만들며 바다가 울어도, 마음이 온통 슬픔으로 쟁여 있어도, 어부들은 바다로 나간다. 그들이 갯내음 비릿하게 풍기는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까닭은 등대가 집으로 오는 길을 변함없이 비춰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등대가 직접 고기를 잡아 만선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부들의 마음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처럼.

등대를 바라보며, 문득 내 삶의 언저리를 돌아본다. 나는 등대처럼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주위 사람들이 때때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맬 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는지, 궁금하다. 살면서 문득문득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등대가 되어도 좋을 성 싶다. 그러면 삶의 무게가 버거워 쓰러질 것 같은 사람도, 등대로부터 위안을 얻어 세상을 향해 힘차게 항해할 수 있으리라.

아버님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달빛에 부서진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어우렁더우렁 달빛 윤슬을 잡으려고 바닷물에 손을 담근다. 해조음과 어우러진 손이 일정한 가락을 타고 중모리장단에서 휘모리장단으로 급물살을 타니, 내 가슴에서 눈이 시리도록 검푸르고도 깊은 그리움이 연신 토해진다.

고요히 흐르던 호미곶등대 불빛 하나가 방향을 틀어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내 가슴에 아버님의 화신인양 등대 불빛이 환하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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