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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하는 길

등록일 2025-10-01 18:06 게재일 2025-10-0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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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희 수필가

몇 년 만에 온 지인의 문자다. 잘 지낸다는 것도 잘 지내느냐는 말도 아닌 단체에게 보낸 부고장이다. 나는 시아버지상이라는 글자를 다시 보았다. 그녀의 남편 얼굴도 모르는데 그 남편의 아버지라니.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아버지의 그날을 떠올렸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문밖출입을 꺼려하던 때였다. 설 명절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를 배웅할 친구는 남아있지 않았다. 설령 있었다 해도 소식을 전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부고장을 보낼 친척들과 형제들의 지인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코로나를 핑계 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식을 궁금해 할 몇몇 친척들에게만 연락했다.

그날, 아이들에게는 설 명절을 앞당긴 것 같았다. 외사촌 이종사촌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둘러앉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냈던 날들을 되새김질 했다. 맞아 맞아 그때 그랬어. 사진으로 남은 어린 시절 이야기가 웃음소리와 함께 퍼졌다. 나는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조문객도 없는 장례식장이 낯설었다. 오든 안 오든, 부고장이라도 다 보낼걸. 그동안 이리저리 낸 부조금이 얼만데.

이십 여 년 전 여름, 엄마의 장례식장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복도에는 꽃들이 줄을 서고, 조문객은 남편의 업무와 연관된 거래처부터 친구들까지 연줄에 연이 걸리듯 했다. 우리는 손님 맞이 하느라 엄마의 영정사진 한번 제대로 바라볼 틈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여기저기 빈자리를 찾아 쓰러지곤 했다. 봉분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엄마를 보냈다는 현실이 다가왔다. 그땐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자 연락하지 않아도 올 사람은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반갑고 고마웠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코로나보다 더 먼저인 것처럼 보였다. 형제들은 찾아온 조문객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나는 그들을 온 마음으로 눈에 담았다.

저녁 늦은 시간, 뒷정리를 하는데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낯선 얼굴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하던 남동생이 그녀를 보자 당황해 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너, 우리 아버지 한 번도 뵌 적 없잖아”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면서 왜 왔느냐고 다그치듯 해서, 나는 얼른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자, 동생은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했다. 듣는 내가 무안해 얼른 올케를 불렀다.

나는 쓰레기를 정리하며 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흘낏 보았다. 내 뒤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깜짝 놀라 상갓집이라는 사실을 잊었냐고 주의를 주었다. 맥주잔을 소리 없이 부딪친 아이들은 자주 만나려면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아직은 어린 막냇동생의 휴대폰에 게임머니를 보내주는 선심을 쓰고 있었다.

남동생 내외가 그녀를 배웅하고 들어왔다. 나는 동생의 등을 치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야단쳤다. 너는 얼굴 아는 사람만 문상하느냐고 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조문이라는 게 돌아가시는 분을 배웅하는 것도 있지만, 상주를 위문하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되받아쳤다.

동생이 되물었다. 오랜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위문 받아야 할 만큼 우리가 슬플까? 갑작스런 사고도 아닌, 그렇다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도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잘 아는 사람은 부고장이 안 와도 기꺼이 찾아가 마지막 길 잘 가시라고 인사한다는 말에 할 말을 잊었다. 옆에 섰던 올케가 변명하듯이 거들었다. 제자인 그녀가 이 늦은 시간에 진주에서 경주까지 혼자 운전해 와서 놀랐을 거라고 했다. 동생은 자리를 피해 슬며시 조카들 얘기 속에 끼어들었다.

마른세수를 한 나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동생의 말처럼 나는 위문을 받아야 할 만큼 슬플까. 고개가 저어졌다. 언젠가부터 이제 편안하게 가시길 기도하지 않았던가.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의 옛 이야기에 같이 웃지 않았을까. 곡은 제 설움에 한다는데, 형제 누구도 아버지 앞에서 곡을 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아버지를 편히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배웅일지도 모른다.

/윤명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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