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사무실이 조용하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냉동실에서 백설기 하나를 꺼내 전자렌지에 돌렸다. 막 데워진 떡 냄새가 사무실을 채우는데, 옆 사무실의 소장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 따끈한 떡을 꺼내어 같이 먹자고 하니, 그녀는 느닷없이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한다. 나는 어리둥절해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안 왔는데?”라고 했다. 그녀는 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하며 빨리 전화해 보라고 재촉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니, 내 딸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뒤로 들려온 딸의 울먹임이 가슴을 서늘하게 쓸었다.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묻자, 왜 통화가 안 되느냐며 울음보가 터졌다. 분명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불안해 지금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에게 전화했더니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고 태평스레 말해서 더 속이 상했다나. 전화기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엄마가 통화가 안 되는데 어떻게 그리 태무심할 수 있느냐며 아빠를 원망한다. 제 나름 온갖 방법을 찾았던 모양이다. 인터넷 지도를 찾아 로드뷰로 찾아낸 옆 사무실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빨리 아빠한테 연락부터 하라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끊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색도 하고 음악도 들려주던 내 휴대폰은 어째서 갑자기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린 걸까. 이유를 살필 겨를도 없이 남편에게도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딸에게까지 전화가 오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가까이 사는 친구 부인에게 가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나는 추수 하느라 바쁜 그녀가 괜한 걸음을 할 것 같아 다시 또 전화했다. 움직일 입장이 되지 못한 그녀는 옆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딸에게 전화를 해서 대신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감기 걸린 손자 추슬러서 나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며 얼른 전화를 끊었다.
더는 사람들을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가족 단톡방에 ‘살아 있다’는 문자부터 보냈다. 곧바로 아들이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통화 안 되면 얼마나 불안한지 아느냐고 투덜거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한 나절 연락 안 된다고 이리 부산스러우냐고 하자, 아들이 바로 받아친다.
“엄마! 요즘은 휴대폰이 심장이야”
심장? 그 한 단어가 이상하게도 오래 울렸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심장이 멎는 듯,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느낌을 말하는 걸까.
문득 지난해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매일이다시피 전화하는 아들이 며칠 째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아침 일찍 전화를 눌렀지만 신호만 길게 갈 뿐이었다. 출근하느라 바쁜가 싶어 넘겼다가 점심시간에도 받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녁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불안감은 더 증폭되어 온갖 상상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혹시 쓰러진 건 아닌지, 혼자 사는 집에 누가 찾아와 줄 사람이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잠시 가 봐 달라고 부탁할 이가 없었다. 출근은 했는지 알아보려 해도 사무실 번호조차 내 휴대폰에 저장돼 있지 않았다.
딸에게 전화했다. 이야기를 들은 딸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방법이라는 말에 기대어 기다리는 동안 불안은 점점 더 짙어졌다. 차라리 직접 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차키를 찾아드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들의 목소리였다. 전화기가 고장 나 수리 중이라 했다. 누나가 카톡을 연달아 보내 노트북이 불나는 줄 알았다는 말에 그제야 딸이 말한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가족 단톡방에 미리 올렸으면 걱정하는 일이 없지 않냐”고 쏘아붙였다.
그때는 나도 그리 될 줄 몰랐다. 오전 한나절 동안 받지 못한 전화번호들을 일일이 찾아 눌러가며 다 설명하느라 바쁜 하루다.
예전에 혼자 사는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친구들 전화번호를 주고, 친구들에게는 자식들의 전화번호를 줬다던 이야기.
오늘은 그 말이 와락 마음에 안긴다.
/윤명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