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도시에서 인구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50만, 100만이라는 숫자는 도시의 체급이었고 자존심이었다. 그 안에는 “우리 도시는 아직 괜찮다”는 믿음도 들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산업화 이후 도시는 정주인구를 중심으로 짜였다. 주택지구와 도로, 학교와 상업시설, 산업단지와 행정체계도 모두 그 감각 위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역소멸이 현실이 된 지금, 그 시스템의 빈틈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청년층은 떠나고 인구는 계속 빠져나가며, 도심은 활력을 잃고 있다. 임대 표시가 붙은 빈 상가와 쓰임을 잃은 시설도 늘어난다. 문제는 단지 인구가 줄어드는 데만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낡고 고정된 인구 개념으로 도시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의 도시에는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근무자, 한달살기 체류자, 5도 2촌처럼 여러 지역을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과 기후에 따라 거주지를 바꾸는 사람들도 있고, 이민자와 재외동포처럼 둘 이상의 언어와 문화, 생활권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기술의 발전과 이동성의 확대는 20세기에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던 삶의 방식과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아도 지역에 머물고, 일하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도시의 공기와 흐름을 바꿔놓는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 시스템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생활인구와 관계인구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재인구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존재인구는 단지 잠시 체류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다. 한 장소에 반복적으로 존재하며 관계를 만들고, 소비와 기억, 문화적 가능성과 활력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주민등록 여부가 아니다. 누가 이곳에 실제로 존재하고, 무엇을 남기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존재인구를 중심에 놓고 보면 도시와 건축이 해야 할 일도 달라진다. 도시는 더 이상 주민만 붙잡아 두는 시스템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머물고, 만나고, 섞이면서 새로운 일과 관계가 생겨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원격근무자를 위한 일터, 유연한 체류형 주거, 지역민과 외부인이 함께 쓰는 문화교류 공간, 프로젝트형 방문자를 위한 실험의 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가깝다. 장기 체류자를 위한 작은 작업 공간,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공유 거점도 중요해진다. 빈 상가와 유휴시설도 더 이상 쇠퇴의 흔적만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쓰임을 만드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존재인구의 관점은 도시 안에 다름과 차이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감각과 지식, 네트워크와 수요가 들어오면 교환과 실험이 시작된다. 기존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산업이 태어날 수도 있다. 이제 지역소멸의 해법은 정주인구를 붙잡는 데만 있지 않다.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결하고, 머물게 하며, 지역의 동력으로 바꿀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도시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주민을 붙잡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도시와 건축도 정주인구만이 아니라 존재인구까지 함께 품는 방식으로 다시 짜여야 한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