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이 건물을 대변해 ‘변명‘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변명이 필요한 것은 건물보다 우리의 평가 방식이다. DDP에 던져지는 질문은 대개 두 갈래다. 하나는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 “상업적 가치가 있나”라는 계산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적 논쟁을 가장한 채 정당한 비평을 넘어 혐오에 가까운 시선이다. 이 두 시선이 결합하는 순간, 건축의 진짜 가치는 보이지 않게 된다. 도시는 그렇게 ‘해석’ 대신 ‘판결’만 남는다.
공공건축을 손익계산서로만 재단하면 문화의 본질은 언제나 패배한다. 문화는 단기간 매출이 아니라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이며 형성되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운영과 지속가능성은 따져야 하지만 ‘수익=가치’로 환원할 수는 없다. 가동률, 반복 프로그램, 체류시간, 주변 상권과의 교환 구조 같은 지표로 성과와 결함을 분해해야 한다.
대표적인 DDP 비판 가운데 ‘문맥과의 단절’은 형태만 놓고 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동대문은 원래 생산·유통·야간 이동이 겹치는 ‘시장-도시’다.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고, 다양한 동선이 교차하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머물다 빠져나가는 경험이 동대문다운 방식이다. DDP의 다중 진입과 비정형 동선은 그 복잡한 도시성을 공간으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길을 잃고 싶은 공간’은 낭만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과 재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또 하나의 유산은 산업적 파급력에 있다. DDP 외피는 4만5000장이 넘는 패널을 ‘대량 맞춤’으로 제작·설치해야 했고, 특히 이중곡률 패널 성형은 기존 표준 커튼월처럼 반복 생산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설계-제작-시공을 디지털 데이터로 연결해 품질과 오차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강화되며 국내 시공 역량이 한 단계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랜드마크는 ‘시간의 지연’을 겪는다. 에펠탑도 초기에 거센 비난을 받았고, 모파상이 탑이 보기 싫어 “탑 안에서 식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은 낯섦을 상징으로 바꿨고, 에펠탑은 결국 파리의 얼굴이 되었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릿츠커상을 받은 여성 건축가다. 그의 작품을 보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도시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준다. DDP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원인은 대개 형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운영·연결·거버넌스를 보완하고 수정해 채워야 한다. K-pop 공연장 같은 대형 시설은 지방 도시 활성화에 더 직접적인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필요도 기존의 문화적 실험을 ‘지우는’ 방식으로 충족될 필요는 없다. 공연장은 새로 지을 수 있지만, 논쟁적 유산은 해석과 개선을 통해서만 성숙한다. 피카소의 그림이 내 취향과 다르다고 해서 버리지는 않듯, 불편함은 삭제가 아니라 진단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건물을 부수는 결단보다 어려운 일은, 건축을 도시 속에서 작동시키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파괴가 아니라 정밀한 비평과 시스템 업그레이드다. 논쟁을 ‘호불호’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도시적작동을 함께 따지는 다각적 평가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DDP를 대하는 최소한의 품격이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