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포항 원도심에서 ‘다시 육거리’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한동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오래 비어 있던 공간을 빌려 건축 전시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학생들이 기획과 기록의 주체로 나섰고, 지역 상인과 시민들도 적막했던 공간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언론과 기관의 주목도 받았다. 무엇보다 대학이 지역재생의 관찰자가 아니라 실행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였다. 동시에 공실이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기대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그 공간은 다시 공실로 남아 있다. 잠시 활력을 되찾았던 거리는 다시 적막해졌다. 이 경험은 지역의 여러 축제와 이벤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행사가 성공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언론에 몇 줄 나고 사람들이 잠시 모였다 가면 충분한가, 아니면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공간과 상권이 다르게 작동해야 진짜 성공인가. 전국의 지방 도시마다 축제가 있다. 포항에도 축제와 행사는 많고, 경북 전체로 보아도 적지 않다. 잘 설계된 이벤트는 지방도시에 필요하다. 조용하던 거리에 사람이 모이고, 밤에는 조명이 켜지며, 음식과 음악과 만남이 도시의 공기를 바꾼다. 행정이 예산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축제가 얼마나 화려했는가 보다, 지역 안에 어떤 구조를 남겼는가를 물어야 한다. 방문객이 어느 상점에 들어갔는지, 빈 공간이 다음 사용으로 이어졌는지, 청년 창업팀이 시장을 검증했는지, 상인과 주민이 다음 행사의 주체가 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축제 예산은 지역 안에서 순환되는 투자여야 한다. 본래 이벤트의 목적은 ‘차별화’였다. 그러나 지금 많은 지역 이벤트는 서로 닮아가고 있다. 비슷한 무대, 부스, 푸드트럭, 체험 프로그램이 반복된다. 잠깐의 활력은 만들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기 어렵다. 일시적 다름이 구조적 다름으로 바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다름은 남들과 다른 행사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역의 상점, 음식, 청년, 빈 공간, 학교, 주민, 방문자가 연결되어 다른 도시가 복제할 수 없는 작동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축제는 지역의 이름과 이미지는 사용하지만, 정작 이런 생태계는 만들지 못한다. 사람은 많지만 기존 소상공인은 주변부에 머물고, 방문객은 잠시 소비하고 떠난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야시장도 마찬가지다. 외부 야시장 업체가 내려와 한몫 챙기고 떠나는 구조라면 아무리 인파가 몰려도 지역 상권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야시장은 하루 장사판이 아니라, 지역의 식재료와 청년 브랜드가 시장성을 검증받는 ‘테스트베드(실험장)’가 되어야 한다. 좋은 축제는 결과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준비 과정부터 축제여야 한다. 상인이 메뉴를 개발하고, 학생이 안내 지도를 만들고, 주민이 골목을 정리하고, 청년이 콘텐츠를 만들고, 방문자가 올 이유를 갖게 해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이다. 단순 이벤트는 도시를 잠시 깨운다. 그러나 구조적 다름과 생태계를 만든 축제만이 도시를 실제로 바꾼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