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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온다

등록일 2026-03-11 16:04 게재일 2026-03-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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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온 세상에 별 일이 다 있었다. /필자 제공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잔 생각이 나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궂은 날씨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모처럼 봄맞이 음식을 준비했다. 먼저 나름 자신 있는 돼지고기 수육. 앞다리살을 사서 된장과 커피, 통후추를 푼 물에 통마늘과 함께 푹 삶았다. 

 

그렇지만 술상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봄나물. 보통은 수육을 맛있게 먹기 위해 채소류를 준비하지만 이날만큼은 오히려 봄나물을 맛있게 먹기 위해 수육을 삶았다. 달래, 미나리, 냉이를 사다가 차가운 물에 정성스레 씻었다. 달래와 미나리는 그냥 적당한 크기로 숭덩숭덩 썰었고 냉이는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쳤다. 달래는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무쳤고 냉이와 미나리는 각각 된장과 고추장 양념으로 맛을 냈다.

마치 호리병처럼 작았던 친구의 딸은 내일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고 했다. 새로운 학급에서 어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등교하던 새학기 첫날이 생각났다. 그날의 감각은 포근한 듯 하면서도 조금 서늘한 것이 봄 날씨와 닮았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기도 하고 친구 딸이 벌써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해서 참 세월 무섭게 흐른다는 얘기를 하며 준비해간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친구 딸이 자기가 쓴 동화 자랑하는 소리와 세 살 배기 아들이 엄마 찾는 소리로 조금 소란한 가운데 은은한 취기가 돌았다.

대리기사님이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제법 추웠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과 아내를 먼저 올려 보내고 편의점에 들러 마실 것을 좀 샀다. 아파트 통로 문을 여는데 뜻밖의 기척을 느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앙증맞은 고양이 두 마리의 동그란 눈 네 개가 두려운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랑 한참 같이 살다가 지금은 아버지 댁에서 나 대신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 삼봉이와 같은 치즈색 털이 예쁜 두 녀석은 아마도 따뜻해진 날씨를 믿고 밖으로 나섰다가 갑자기 만난 비와 추위를 피하려 아파트 안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녀석들이 무거운 유리문을 열지 못해서 거기 들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계속 거기 있을 작정인지를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내보내 주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문을 닫고 거기 하룻밤 머물도록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한 녀석이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둘을 생이별 시킬 수는 없으니 하는 수 없이 그냥 문을 열어둔 채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은 아들이 새로 다닐 어린이집의 입학식에 다녀왔다. 아직 아기 냄새를 지우지 못한 채 엄마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기들에게서 어제 먹었던 봄나물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짧은 행사를 마치고, 이번에도 아내와 아들을 먼저 집으로 올려 보내고 편의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거기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다. 바로 어제 만난 고양이 두 녀석. 이번에는 어둡고 습한 지하실 계단이 아니라 아파트 화단에서 드러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장난을 치다가를 반복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다행스러운 장면이었다. 어제를 잘 견디고, 그보다 압도적으로 길었을 겨울을 잘 견디고 따스한 오늘을 맞이한 녀석들이 대견했다.

사실 내게도 겨울은 순탄치 않다.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안 타는 나에게 겨울은 원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는데, 공연과 강연 같은 행사가 생활에 있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뒤로는 여러모로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 되어 버렸다. 매년 같은 계절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만 일 없는 한 철의 초조함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봄이 오면 날이 따뜻해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나를 찾아주는 연락도 오기 마련일 텐데, 올해는 작년 만큼 벌이를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해지곤 한다. 그런데 나보다 혹독했을 그 추운 계절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저렇게 한가로이 놀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니, 나의 사정도 어떻게든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여유가 조금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봄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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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시인

겨우내 온 세상에 별 일이 다 있었다. 오늘 뉴스에도 온 세상의 힘든 이야기가 가득했다. 지난번에 칼럼에 쓴 것처럼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나처럼 언제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황기를 힘겹게 버텨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떻게든 봄은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버린 겨울 추위처럼 모두의 힘든 이야기들도 멀리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강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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