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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그리움 되다

등록일 2026-03-16 18:28 게재일 2026-03-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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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3월 초순, 이웃 아파트의 정문 앞, 텅 빈 느낌이다. 아릿한 슬픔이 강물의 윤슬처럼 마음에 도진다. 
 

지난해 이맘때 한 아침이었다. 볼일로 이곳을 지나는데,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쳐다보는 순간, “아뿔싸! 라일락이 사라졌네! 어, 겹벚꽃나무 두 그루도 없어지고···.” 절로 나온 탄식이다. 해마다 나의 봄은, 라일락 보랏빛 꽃봉오리로 찾아와 꽃피며 내뿜는 향기에 홀려 겹벚꽃 고운 자태로 마무리되었었다. 그런 봄이, 잔인한 톱날에 댕강 잘려버렸다. 슬픔의 파도가 가슴속을 헤집었다. 


 이웃 아파트도 우리처럼 두 동에 같은 이름을 붙여 가, 나동으로 부른다. 우리는 두 동 모두 현관이 마당으로 나 있는데, 이웃은 나동만 현관이 마당 쪽이고 가동은 반대편 길 쪽에 있다. 그러니, 이웃 가동은 마당이 있고도 없다. 베란다가 마당 쪽이니 마당이 있다고 할 수가 있고, 현관이 반대편 길 쪽이니 마당은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웃은 지난해 이맘때 마당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했다. 그때, 가동은 동쪽 벽 옆의 봄 전령사 라일락 나무 한 그루와 남쪽 화단의 두 그루 아름다운 겹벚꽃나무를 잘라냈다. 더해, 현관 좌우의 향나무들도 모조리 베었다. 또, 겹벚꽃 곱던 화단의 화초들도 모두 없애고 폐콘크리트 자갈로 메웠다. 황량했다. 법에 따라 만든 조경을 무참히 없앤 집단심리의 작동 현장이었다. 
 

도대체 왜, 이웃 가동주민은 수십 년을 식구처럼 함께 살아온 라일락 나무와 그 친구들을 모조리 베내고 뽑아버렸을까. 의문과 원망이 몰아쳤다. 달려가 따져보고 싶었으나 닿지 못할 일이라 그만두었다. 나동은 조경이 온전한 걸 보면, 가동은 반장이 바뀌었거나, 말발 센 사람들의 주장이 이겼거나, 둬 봐야 나동만 좋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작년 이맘때의 나라 꼴이 이웃 가동주민 심성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국민이 12.3 비상계엄 대통령탄핵 찬, 반으로 갈라져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타협보다는 막무가내 주장과 선동이 난무하여 국민 마음이 메말라가고 어두운 안개가 드리우게 했었다. 안개가 주민 분별심을 덮어 애꿎은 조경 식물에 화가 미쳤을 수도 있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으로 몰린 것을 국민이 다 아는데, 헌재는 탄핵을 인용했고 형사재판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웃 아파트와 닮았지 싶다. 70여 년을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이 정당성을 의심하는 세력에 의해, ‘사법개혁 3법’에서 보듯 전체주의적 법제화의 길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실이 웬일인지 내겐,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라일락과 겹벚꽃나무와 조경 식물들을 매정하게 베어 버린 이웃의 심사와 맞닿아 보인다. 해방 이후, 걸출한 지도자들과 부지런한 국민이 함께 심고, 가꾸어, 꽃피운 위대한 선진 대한민국. 그 근간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라일락 나무처럼 잘려 나가는 것만 같은 걱정이 파도치는 요즈음이다. 
 보랏빛 라일락꽃과 향기가 그립다.

/강길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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