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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잠시 멈춤의 힘

예전에 코카콜라 광고에 나온 ‘상쾌한 이 순간’이라는 카피를 기억하는가,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그렇게 상쾌함을 되찾는 순간이 온다. 잠깐 멈추는 법을 배우면 성장이 따라올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되돌아보기의 법칙이다. 살면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은 성장에 4가지 영향을 준다. 첫째, 되돌아보면 경험이 지혜로 발전한다. 오랜 역사 이전부터 사람들은 경험을 최고의 스승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은 최고의 스승은 아니다. 최고의 스승은 ‘평가를 거친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데, 이는 잠깐 멈춰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는 그만큼 중요하다. 마차용 채찍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생산 공정을 개선해 뛰어난 품질의 채찍을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갔고 업계 선두에 섰다. 어느 날 자동차가 시장에 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말채찍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만약, 말채찍 회사 리더들이 잠깐 멈춰 경험이 주는 의미를 이해하고 진로를 바꿨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둘째, 잠깐 멈춰 되돌아볼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새벽 명상이 주는 가치는 경험한 사람은 안다. 잠시 멈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격려나 동기부여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걸음을 멈추면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하루를 몹시 바쁘게 살아간다. 많은 경험을 하지만 정리가 안 된다. 되돌아 볼 시간과 장소가 있고, 습관화 되면 하루 일어나는 경험들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고 더 나은 삶이 된다. 셋째, 의도적으로 멈추면 더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친 위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업의 리더들은 보통 사람보다 바쁘게 살아간다. 1분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한 시간 동안 말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경우가 있다. 대학은 교수에게 가르치는 시간 외에 생각하고 연구하고 저술할 시간을 준다. 그것은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면 지식과 경험을 뜯어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 내일을 계획할 수 있다. 넷째, 잠깐 멈출 때 활용하면 좋은 것들이 있다. 생각 속 내용은 탐구, 숙성, 각성, 실증 등 네 가지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움의 추구는 탐구에서 시작된다. 경험에서 지혜와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인생의 경험을 마음의 솥에 넣고 얼마 동안 찌는 것이 숙성이다. 이것은 명상과 비슷하다. 하루를 마칠 때 자신이 한 일을 되새겨보라.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자극하게 될 것이다. 각성이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이나 지혜를 얻는 순간을 뜻한다. 실증은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뼈와 같다. 뼈는 살이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잠시 멈추고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수많은 지식과 경험들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미래 삶의 질로 연결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9-02

잘못된 만남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얼마나 듣기 좋은 구절인가. 듣는 순간 따뜻한 사랑이 엄습해 온다. 이웃이 정겨워진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와 이웃은 서로를 사랑하는 따뜻한 사이인 것 같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보자. 내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의 이웃사랑이 진정한 헌신인지, 아니면 자기 위안 인지를. 이웃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숨겨진 동기와 욕망은 따로 있지나 않은지. 우리는 수시로 이웃(지인)을 찾는다. 우리가 이웃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서? 이웃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서? 어쩌면 우리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여 이웃에게 달려갈지 모른다. 고독이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자기애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이웃들에게 달려간다. 이웃을 만나서 그 이웃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 이웃의 잘못을 핑계 삼아 나 자신을 합리화한다. 우리의 이웃을 통하여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이웃에게 나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이웃사랑은 위장된 자기애일지 모른다. 자기 내면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타인과 관계 맺고, 관계를 꾸며댄다. 이때의 이웃사랑은 진정한 베품이 아니라, 자기 결핍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고독과 권태, 자기 상실감에 떠밀려 이웃에게 달려간다. 이웃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나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지는 않은지. 진정한 이웃사랑은, 이웃의 인정이나 위로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견디고 그 힘으로 타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다. 이웃을 내 결핍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존재로 존중하는 태도가 진정한 이웃사랑이다. 나의 고독을 견딜 줄 알고 타인의 고독을 존중할 때, 비로소 이웃사랑은 실천된다. ‘타인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타인을 얽어매고 동시에 자신을 정당화하는 장치일지 모른다. 좋은 말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이웃사랑은 도덕적 미사여구로 소모된다, SNS의 ‘구독’과 ‘좋아요’처럼. 형식적 기부,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은 타인 속에서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자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타인을 끌어들이는 교묘한 위장 전술이다. 이런 것들이 이웃사랑이라면, 나는 이웃사랑을 거부한다. 이웃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이웃과 통화를 하고, 이웃의 SNS에 좋아요 누른다. 커피숍을 나설 때, 전화를 끊을 때, 좋아요를 누른 후에도 나의 이웃사랑은 그대로 인지 궁금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한마디가 이웃사랑의 시작일지 모른다. 이웃을 통해 나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웃은 없다. 말 안해도 다 안다. 나도 알고, 이웃도 안다. 내가. 그대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공봉학 변호사

2025-09-01

극우와 극좌

사전적 의미로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나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과 세력’을 극우(極右)라고 한다. 극우에 대한 학술적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20세기 들어 파시즘과 나치즘이 대표적 극우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제정치학에서 확립된 개념이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급진적 보수주의(반자유주의), 극단적 국가주의(권위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원리적 종교주의 같은 특징을 갖는다. 정리하자면 극우란 한 사회에서의 다양성을 거부하며, 사회적 순수성을 강조하고, 자기 집단이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상적인 공동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을 배척하려는 정치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극우는 외국인·이민자를 배척하고 인종적·문화적 우월주의 성향이 강하고, 의회 민주주의보다는 강력한 지도자, 국가 권력, 질서를 우선시하는 경향도 있다. 이는 단순히 ‘강경한 보수’와는 구분되며, 민주주의 제도와 자유권을 위협할 수 있는 배타적·권위주의적 정치사상을 가리킨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난민·이민 문제, 세계화의 충격, 안보 불안 등이 극우적 정서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극좌(極左)는 극단적인 좌파성향을 말한다. 일반적인 극좌사상의 공통점은 급진적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학자나 국가,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사회민주주의나 급진적 자유주의를 포함하는 급진좌파(Radical left)가 있고, 사회민주주의 좌파로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지만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 강성좌파(Hard left)가 있다. 확고한 반자본주의를 지지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나 트로츠키주의처럼 노동자 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설립하려는 극좌파(Extreme left)가 있는가 하면, 노동자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정당체제를 거부하며 아나키즘·평의회공산주의 등이 해당하는 초좌파(Ultra left)도 있다. 한국에서는 종북주사파들로 구성이 되어 비밀혁명조직을 결성하는 등 폭력·혁명적 활동을 하다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으로 판정되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인 극좌세력이었다. 그 밖에도 민노총이나 전교조 등 각계각층에 침투한 극좌세력에 의해 대다수 국민들까지 좌경화가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에 비한다면 마땅히 극우로 지목될 정당이나 단체의 활동은 전혀 없었다. 좌파들이 극우프레임으로 몰아가는 소위 ‘태극기부대’도 비민주적이거나 폭력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 극좌는 있어도 극우는 없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모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따라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벌이는 시위를 극우로 몰아가는 것은 사악하고 교활한 극좌적 프레임일 뿐이다. 극좌세력이 폭력적으로 쟁취하려는 목표는 물론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가 아니다. 그들은 전체주의나 공산·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9-01

안동댐에 쌓인 중금속 퇴적물, 정부가 나서야

경북도 안동시 낙동강 상류에 건설된 안동댐은 총저수량 12억4800만t으로 국내 4위 규모의 다목적 댐이다. 연간 18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댐 수질 오염과 지역개발 등 복합적인 문제점으로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선다. 중금속 퇴적과 녹조 확산, 축산 폐수의 유입 등으로 환경이 위협을 받는가 하면 주민들도 댐으로 인한 교통단절, 생활 불편 등을 자주 호소한다. 특히 봉화지역 폐광산과 석포제련소 등에서 유입된 카드뮴, 비소 등의 중금속이 퇴적물로 쌓이면서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는 학계의 지적은 심히 우려스럽다. 퇴적물이 이미 독성화돼 날씨에 따라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안동댐 상류 지역에서는 준설 등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나돌 정도로 2차 오염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 29일 열린 ‘안동댐 중금속퇴적물 문제해결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충남대 최만식 교수는 “안동댐 상류 퇴적토에서 카드뮴, 수은, 아연, 비소 등 주요 중금속이 법적 기준을 6-10배 이상 초과해 검출됐다”고 밝혀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일부 지역에서는 “저서생물의 생존율이 50% 이하로 떨어져 생태계 붕괴 수준에 도달했다”고도 설명했다. 같은 날 국립경국대 김영훈 교수도 “퇴적토 속 중금속은 안정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홍수기와 갈수기 등 수위 변동기가 되면 재용출 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댐 수질을 악화시키는 악성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안동댐에 대한 기존의 수질관리가 수중 오염에만 집중돼 퇴적토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도외시되고 있다는 학자들의 설명이다. 대구시의 제안으로 안동댐 물을 대구시민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논의가 지금은 흐지부지 되었지만 안동댐 물의 식수원 사용은 부적절해 보인다. 안동시가 많은 예산을 들여 공공처리시설을 설치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생태 보존을 유지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다.

2025-09-01

TK정치권, 지역현안 예산확보에 총력 쏟길

국회가 어제(1일) 정기회 개회식을 열고 10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민생·성장·개혁·안전 4대 과제를 중심으로 224개 중점 법안 처리를 서두르는 반면, 국민의힘은 ‘입법 폭주’를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정기국회가 ‘지뢰밭’임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후, 쟁점법안(검수완박법, 언론징벌법, 대법관 증원법, 특검수사확대 등)과 국비 예산안 등이 처리된다. 대구·경북(TK)이 주목하는 것은 각종 현안 사업비가 반영돼 있는 국비예산안 처리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규모를 728조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보냈다. 민주당은 필수적인 확장재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포퓰리즘 예산안’이라며 대대적인 삭감을 벼르고 있다. TK지역 주요 국비사업은 대구의 경우 TK 신공항 건설과 지역거점 AX(인공지능 전환)혁신기술 개발, 대형산불 대응역량 강화, 국립뮤지컬 콤플렉스 조성 등이고, 경북은 포항영일항만 복합항만 개발, 영일만 횡단구간 고속도로 건설, 울릉공항 건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개발사업 등이다. TK정치권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국비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쟁에 매몰돼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지 말고 지역현안 해결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TK 신공항 건설 관련 예산은 이해 충돌과 쟁점이 적지 않아 지역정치권이 역량을 집중하지 않으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신공항 건설 사업비 확보를 위한 ‘공공자금관리기금 (공자기금) 확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시는 현재 신공항 사업을 위해 정부에 내년부터 5년간 11조5393억원의 공자기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해 둔 상태지만, 주무 부처인 기재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대구시, 경북도는 물론이지만 지역 정치권도 여당 의원과 정부를 설득할 치밀한 논리를 개발해서 TK 현안과 관련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5-09-01

김건희, 이번엔 금거북이?

10년 전쯤이다. 소장한 유물을 정리하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가 흥미로운 걸 발견한다. 세칭 ‘임치표(任置票)’. 누군가에게 금품을 맡겼다는 걸 증명하는 문서였다. 임치표의 내용은 안태환이란 자가 현재 돈으로 8000만원에 ‘참봉’ 벼슬을 팔았다는 것. 안씨는 조선 말기 고종 때의 관료였다고 확인됐다. 참봉은 종9품의 보잘것없는 하위직. 그럼에도 그게 적지 않은 돈에 거래된 것이다. 이는 뇌물로 벼슬을 사고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조선시대에 분명히 존재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종9품 벼슬이 그만한 가격에 팔렸으니, 큰 권력을 가진 자에게 큰 벼슬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바친 뇌물은 얼마만한 거액이었을까? 우리가 근대 공화정 이전의 봉건시대를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공공연한 매관매직 행태. 김건희 특별검사팀은 최근 압수수색 과정에서 금거북이 하나를 찾아냈다. 함께 발견된 건 금거북이를 건넨 사람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게 쓴 편지다. 김건희 씨는 이미 고가의 목걸이와 시계 등을 뇌물로 받았다는 의심 속에 있다. 그런데, 연이어 뇌물용으로 추정되는 금거북이까지 등장한 것. 이에 특검은 김씨가 다수에게 비싼 귀금속을 받고 인사 청탁에 응했다는 혐의를 집중 수사 중이라고 한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서민들은 뇌물은 고사하고, 과일 한 박스 선물로 받는 것도 나중에 문제가 될까 싶어 조심스러워 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그것도 엄연한 공화제국가에서 영부인이었다는 사람이 매관매직을 의심받고 있다. 한심하다. 남편이 통치하던 시절, 그녀는 자기 혼자 전근대를 살고 있었던 것일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01

2025 경주 APEC의 성공을 위하여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 정상회의(10월 31일∼11월 1일)는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APEC은 아·태지역의 경제성장과 공동번영을 목표로 한 협력체로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을 포함하여 총 21개국이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GDP의 60%, 세계무역의 50%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다. 이처럼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APEC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다자정상회의다. 이번 회의는 대통령이 역설해 온 국익중심 실용외교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인 동시에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서는 인공지능(AI) 활용, 인구구조 변화 대응, 디지털 무역 촉진, 기후변화가 핵심의제로 논의될 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등 통상환경의 급변 속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장국으로서의 리더십은 물론, 국익을 위한 정교한 외교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두 정상의 참석이 경주 APEC의 성패를 가를 것이기 때문에 외교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중국은 2026년도 의장국이라는 점에서 시진핑 주석의 참석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미국도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 두 정상이 참가할 경우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중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탐색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가능한 많은 회원국들과의 양자 정상회담을 통하여 자원·공급망·방산·원전·조선 등 전략산업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에 미리 실무급에서 의견조율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경주 APEC은 ‘지방의 세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주시와 경북도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함으로써 ‘세계 속의 경주’로 한층 더 도약시킬 수 있어야 한다. K-POP, K-드라마, K-푸드 등 한류열풍이 부는 시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이자 문화의 보고인 경주시와 경북도가 직접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참가국 대표와 관계자들에게 양질의 역사문화체험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경주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원국 정상과 대표단, 그리고 20000명 이상의 관계자들을 수용할 숙소·회의장·프레스센터·도로·교통·통신망 등 관련 시설도 중요하다. 물론 경주시와 경북도는 정부의 APEC준비기획단과 협력하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준비위원장인 국무총리도 직접 경주에 내려와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정치 불안으로 인한 시간 낭비로 여전히 우려가 적지 않다. 2년 전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의 파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서 APEC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9-01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다

요즘 집권 여당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전 이재명 대통령은 ‘반탄(탄핵 반대)파’가 국민의힘 대표가 돼도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악수는 사람과 한다”라면서 “헌법을 파괴하고 실제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 데 대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 있지 않고서는 그들(국민의힘)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에서 강경파 지지를 얻으려고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바뀌지 않는다. 지난달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는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바로 옆자리에 앉았으나, 악수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일단 내뱉은 말이 있으니 쉽게 물러서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는데도 바뀌지 않는다. 정 대표는 국회에서도 아예 야당은 배제하고, 일방적인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 검찰, 언론 등과 관련한 법안들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청 폐지 법안과 관련해 “민감하고 핵심적인 쟁점 사안의 경우 국민께 충분히 그 내용을 알리는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최대한 속도를 내더라도, 졸속이 되지 않도록 잘 챙겨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정청래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이 대통령을 만나 이달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도 “어떤 명령, 네이밍보다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안을 내놓는 게 좋다”면서 검찰 개혁과 관련한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그런데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정성호 장관조차 검찰에 장악돼 있다”라며 직속상관인 정 장관을 직격했다. 최근 “중대범죄수사청·경찰·국가수사본부가 행정안전부 밑으로 들어가 면 1차 수사기관 권한이 집중된다”라고 한 정 장관의 말에 당내 강경파들이 반발한 연장선이다. 대통령 대변인은 방송법에 대해서도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송법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통령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6시간 만에 민주당은 방송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그날 저녁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이 대통령은 “(방송법 처리는) 내 뜻과 같다”라고 자기 말을 바로 뒤집었다. 대통령은 포용적이고, 너그러운 말만 하고, 손에 오물을 묻히는 궂은일은 정 대표가 하는 ‘굿캅, 베드캅’ 쇼라도 하는 건가. 지난주 29일에는 이 대통령이 워크숍을 마친 민주당 의원들을 모두 대통령실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가 다수당이기 때문에 강자가 너무 세게 하면 국민의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정청래 대표가 너무 강하게 나가지 않도록 걱정하는 말로 들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말이 백번 옳다. 이 대통령은 속도를 조절하고 싶은데, 정 대표가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건지, 두 사람이 역할을 나눈 건지 헷갈린다.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을 추동하는 것이라면 이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은 이재명의 역사이지, 정청래의 시대가 아니다. 정당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을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이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강성 지지층의 의견과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라크 파병 부분을 회고하며 “지지층의 소망과 주장을 거역한 데 따른 정치적 손실과 배신자라는 비난을 각오했다”라며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 한미 공조를 이 대통령도 실천으로 보여줬다. 국내 정치도 누구에게 떠넘겨버릴 수 없다. 대통령은 당 대표와 달리 특정 정파의 유불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미래를 볼 수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31

말과 헤어질 결심

여전히 덥지만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 분다. 소나기 그친 저녁, 빗물 고인 거리에 비친 가로등 불빛에서 단풍을 예감하는 지금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떠올리는 건 박해일과 탕웨이의 트렌치코트 차림이 근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여름 그리스와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나는 언어의 한계를 체감했는데, 언어의 불완전함 속에서 비언어는 오히려 언어보다 더 풍요로운 소통의 도구가 되어주곤 했다. ‘헤어질 결심’은 비언어 소통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커뮤니케이션에는 비언어에 의한 소통도 있다. 재밌는 것은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보다 비언어에 의한 소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웃음, 울음, 표정, 눈빛, 몸짓, 스킨십, 노래, 춤 등이 모두 비언어에 해당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언어 소통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비언어적 신호는 언어적 표현에 비해 의식의 검열이나 통제가 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언어는 때때로 감정과 생각, 정서를 언어보다 더 진실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극중 한국인 엘리트 형사 해준과 중국인 여성 서래의 첫 만남은 형식적인 대화로 시작된다. 사망자의 유족으로 경찰 조사에 응하는 서래와 수사관으로서 그녀를 대하는 해준은 의례적인 문답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서래가 일반적인 어법에서 벗어난 엉뚱한 한국어 “마침내 죽을까 봐”를 발화한 순간 해준의 사무적인 태도는 해제되고 둘의 거리는 급격히 밀착된다. 언어적 세계에 있는 해준이 비언어적 세계의 서래에게 이끌린 이 사건은 상징계의 질서에 길들여진 주체가 자기 앞에 불현듯 열린 비언어적 상상계를 경험하고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환상인 실재로서의 사랑을 욕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서래는 한국어가 질서로 작용하는 언어적 세계에서 눈빛, 표정, 몸짓 등의 비언어를 활용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앞서 말했듯 소통은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언어보다 비언어를 통해 훨씬 풍부한 소통이 가능하다. 이성적 존재인 해준과 감성적 존재인 서래는 서로에게 비언어에 해당하는 한국어(해준에게는 서래의 어눌한 한국어, 서래에게는 해준의 유창한 한국어)를 통해 가까워진 후 표정과 몸짓, 숨소리, 침묵을 통해 농밀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의 모티프가 된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의 윤희중과 하인숙이 노래라는 비언어를 통해 가까워진 것과 닮아 있다. 해준은 언어소통이 원활한 아내와 감정 없는 잠자리를 갖지만, 대화가 쉽지 않은 서래와는 스킨십 없이도 풍부한 감정적 교류를 한다. 언어적 세계에는 상징계의 의미질서, 논리, 이성, 합리성, 제도, 사회적 규범 등이 있고 비언어적 세계에는 상상계의 몽상, 감성, 비합리, 자유, 초월, 위반 등이 있다. 언어적 존재인 해준이 비언어적 존재인 서래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기도수 사망사건’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의 감정이 깊어질수록 서래의 정체 또한 짙은 안개와도 같은 불확실성을 점점 더해가게 된다. 김승옥의 고향이자 무진의 모티프가 된 장소인 순천의 송광사에서 펼쳐지는 해준과 서래의 데이트 장면에서 두 사람은 말보다 몸짓과 표정, 침묵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한다. 해준이 서래의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서래가 해준의 입술에 립밤을 칠해주는 행위는 언어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감정을 전한다. 이러한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 서래의 세계에 적응하게 된 해준은 서래가 기도수 살인사건의 범인임을 알면서도 무마해버리며 자신이 원래 속해있던 언어적 세계를 망가뜨리게 된다. 이때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라는 해준의 대사는 환상을 쫓느라 현실을 파괴한 자의 고백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해준이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어색한 한국어 문법으로 자신의 절망감을 발화하는 장면은 그가 서래의 세계, 즉 어눌한 한국어로 함의되는 비언어, 감성, 환상의 세계로 완전히 동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나이 들수록 옛날 광고 카피처럼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이가 소중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 속에, 의미와 개념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지 않나. 수다스러운 매미 울음이 귀뚜라미의 나지막한 허밍으로 바뀌는 이 계절, 말없이 그냥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함께 노을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그냥 일어나 걸으면서 말없이 헤어지는 사람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가을엔 말과 헤어질 결심을 세워본다. /이병철(시인·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2025-08-31

행복에 대해서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과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는 와중 자꾸만 이 질문을 떠올렸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 앉아 비슷한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며 비슷비슷한 생각에 갇혀 숨 막힌 이 기분. 대체 언제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냈었지? 라는 생각에 겁이 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꾸준히도 행복해지고 싶은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행복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단순한 즐거움은 쾌락에 더 가깝다. 맛있는 음식, 좋은 음악, 웃음, 휴식 같은 것은 쾌락에서 얻을 수 있다. 지속성이 짧고 반복하지 않으면 금세 허무하게 사라진다. 행복은 쾌락보다 더 넓고 지속적인 상태다. 삶 전체에 대한 만족감과 충만감을 반영하기에 개인의 삶에서 만족감이나 의미 있는 성장에 연결된다. 힘든 때를 극복하고 성취감을 느끼거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될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렇기에 행복은 어렵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종종 놓이지만 때때로 그 상태를 불행하다고 착각한다. 쇼파에 심드렁하게 누워 행복은 무엇이기에 현재 내게 없느냐는 불만을 토로하면서 스스로를 자꾸만 불행의 편에 놓는다. 그러면서 요즘 하는 고민에 더욱 깊게 빠져 든다. 때때로 타인은 나의 아주 일부분만 보고 쉽게 속단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기준을 통해 타인을 해석하려 하지만 여기에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할수록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기본값으로 두게 된다. 결국 자신의 기대나 가치관에서 벗어난 타인을 쉽게 ‘틀린 사람’으로 단정 짓고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불안과 통제욕에서 발현될 수도 있고 또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타인의 다름을 위협적으로 받아 들여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재단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나와 타인의 다른 지점을 자각하고 이를 넘어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성숙의 과정이지만, 이 과정은 꽤나 고단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선으로 통제하고 재단하려는 쉽고 간단한 루트를 선택하려 한다. 옳지 못한 방식으로 관여하는 일들에 때때로 견디기 힘든 날들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사회에서 어리기 때문인걸까? 그들의 능력치와 다르게 나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미숙함을 내비칠수록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부족한 부분을 애써 가르치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올바른 피드백보다 판단이 앞서는 관계는 무척 아쉽지만 관계 자체를 개선하는 일은 한계가 있으므로 심리적인 거리 유지와 회복 루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5박 6일동안 일본의 작은 소도시 속에서 마주한 적막 속에서 행복은 완벽하게 기쁘거나 즐거운 상태가 아닌,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맞닿아 있을 때에 오는 충만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새롭게 도전한 음식이 입맛에 맞을 때의 기쁨, 숨이 막힐 정도의 더위 속에서도 내게 우선 그늘을 내어주려는 사람과 마음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 속에서 아주 작은 인간이 되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 등등. 내 기준의 행복을 정의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행복을 쌓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방향임을 느끼게 됐다. 그러므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발견하고 계속해서 행복을 쫓으려는 과정 속에서 형태가 갖추어진다. 단순한 쾌락만을 추구해 살아남는 삶의 방식이 아닌 살아가려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에선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아들이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가 처음엔 ‘넌 못할 거야’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스스로 깨닫고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뭔가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남들도 못한다고 말하지. 절대 그런 말에 휘둘리지 마.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해내야 해.” 이 대사는 행복과 가능성은 타인이 규정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믿고 붙잡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내가 원하고, 내가 믿는 것’을 붙들 때 삶은 비로소 나아갈 힘을 얻는다. 붙잡고 싶은 삶의 의미를 믿고 가는 용기에 달려 있는 것. 나는 그것이 내가 가진 젊음과 행복의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윤여진(시인)

2025-08-31

“차기 대구시장 자리를 조롱거리로 삼지말라”

장동혁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선출된 직후 김광진 전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 대구시장에 이진숙(방송통신위원장)과 전한길(보수 유튜버) 중 누가 공천을 받게 될지...”라는 글을 올렸다. 대구시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나온 이 메시지는 적잖은 반향을 낳았다. 하지만 대구시민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왜 보수의 심장 대구 대표를 뽑는 선거에 민주당 인사가 나서서 왈가왈부하느냐는 것이었다. 김 전 부시장이 두 사람을 거론한 것은 대구가 그만큼 ‘골통 보수’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희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기사 댓글에 ‘대구시는 전한길도 과하다’, ‘전한길, 대구를 먹어라! 대구는 완전포로가 된 시’라는 등의 조롱과 함께 대구를 폄하하는 문구가 잇따랐고, 대구시민들은 공분했다. 그래도 이 논란은 여기까지만이었다면 ‘한 정치인의 지나가는 헛소리’로 치부돼 그냥 끝날 사안이었다. 그러나 전한길씨가 그 메시지에 응답하면서 묘한 상황이 돼 버렸다. 전씨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제 경북대 선배다. 이 위원장이 대구시장으로 나온다면 무조건 양보한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전 씨가 이번 대표 선거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점에서 이 발언은 곧바로 지역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런 판에 이번에는 대통령실에서 이 위원장을 직권 면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위원장은 만약 파면이라도 된다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대구의 정서상 오히려 체급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 희한하게도 최근 대구 정치판이 이 위원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이진숙 위원장은 지난 지방선거 때 대구시장 예비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홍준표라는 거물이 있어 벽을 넘지 못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 위원장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을 터다. 더욱이 여당은 이 위원장에게 대구시장으로 가는 꽃길을 깔아주고 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최근 상임위 회의에서 “이 위원장이 대구시장을 꿈꾸며 새로운 대통령과 일부러 각을 세운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지난 30일 이 위원장을 향해 “대구시장 출마 의사가 있다면 그만두고 나가는 게 맞다”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직권면직 또는 파면을 당하기만 하면 금상첨화다. 실제 그렇게만 된다면 이 위원장은 곧바로 대구시장 판에 뛰어들 것이다. 마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당시 현 여권으로부터 엄청난 공세를 받은 후 대권 판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 것 처럼. 그 경우 이 위원장 입장에선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대구 정치의 한복판에 설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 위원장 옆에서는 꺼지던 불도 확 살아나게 한다는 전한길씨가 있다. 대구시장을 향해가는 이 위원장에게는 여러 갈래 길이 있다. 그중에서도 현 위치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버티면서, 또 민주당 등 여권으로부터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공격을 받는 모습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다. 현 정부 출범 후 TK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은 더욱 미약해졌고, 일부는 수사 반열에 올라 움직이기도 어렵다. 이 위원장은 이 상황의 빈틈을 잘 비집고 들어가 집권 여당과 각을 세워 싸우고 있다. 지역의 정서적 흐름을 적확하게 읽고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앞으로도 이 위원장은 대구시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마지막 단계는 정부와 집권 여당으로부터 끌려나오는 그림과 장면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쓸쓸히 돌아서는 그 한장의 사진이 대구시장 선거에서 얼마나 필요한 것임을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대구시민들은 이 위원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런 대구 정치판이 다소 불안하고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대구는 지금 신공항건설을 비롯 해결해야할 현안들이 태산 같다. 지역을 잘 아는 인사가 시정을 맡았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시민들은 그동안 시정이 정치 한복판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많이 봐왔다. 이제 국민의힘 공천을 바라는 예비후보들이 나설 때도 됐다.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대구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 자천타천 설이 떠도는 국회부의장인 주호영(6선)의원과 원내대표를 지낸 윤재옥(4선)·추경호(3선)의원, 그리고 연임 제한에 걸린 3선 기초단체장인 배광식 북구청장과 이태훈 달서구청장, 대구시교육감과 영남대·대구가톨릭대 총장을 지낸 우동기 전 지방시대위원장 등은 확실하게 의사표시를 해주는 것이 시민들에 대한 도의다. 이리저리 재고 살피기만 한다면 다른 인사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일임을 각성할 필요도 있다. 지금의 눈치 보기 정치를 지속한다면 이진숙 위원장의 가능성만 더 높여 줄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면 한다. 국힘 대구시장 선거흐름을 들여다보는 민주당의 의지도 예사롭지 않다. 내년에 첫 대구시장을 배출하겠다는 각오 또한 남다르게 읽힌다. 대구발전을 앞세운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차출설은 민주당이 대구에 거는 기대를 엿보게 해준다.

2025-08-31

이게 뭐예요?

가방의 앞지퍼를 연다. 손가락을 넣어 이리저리 더듬더니 만화 그림이 그려진 작은 사탕을 꺼낸다. 슬그머니 들고 와 이거 뭐예요 하고 묻는다. 이미 자신의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확인하는 것이다. 껍질을 벗기려다 잘 안되는지 들고 와 내 손에 건넨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린다. 까서 입에 넣으라는 신호다. 매일 가방을 뒤져 좋아하는 사탕을 꺼내며 조금씩 능청스러워지는 표정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아무래도 내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사랑이 원래 이렇게 쉬웠던 걸까?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고 밤에 침대에 누으면 낮에 함께 한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까르르 웃는 모습도, 내 손에 들어오던 작은 손도 생각나 혼자 비죽비죽 웃는 일이 늘어났다. 잠이 오지 않으면 엄마들이 올린 육아 블러그를 들락거린다. 늦바람은 대책도 없다는데 바람이 들어도 크게 든 것 같다. 일찍 손주를 본 친구가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손주를 본 친구와의 대화는 거의 육아에 대한 것이다. 육아휴직을 쓰고 있던 며느리의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화두로 떠올랐다. 일단 돌 지나면서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너무 어려 걱정스러워 처음엔 1시간, 2시간 이렇게 시간을 늘려갔다. 다행히 아이는 생각보다 잘 적응하여 재미있게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4시에서 4시반 사이 하원을 해야 하는데, 아들내외는 6시 반이나 되어야 집에 도착하니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비어버리는 것이다. 아들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그 시간 동안만 아이를 봐줄 수 없냐고? 규칙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는데 어느 부모가 거절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온종일 봐주는 것도 아닌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인데. 아이를 돌보기로 했지만 걸리는 문제는 계속 생겨났다. 두 집이 멀어 가고 오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 염려되었다. 이사를 하기로 했다. 집근처 강변을 수시로 산책했던 나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아이와 내가 많이 만나지 않아서 익숙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끔씩만 보아 낯가림이 있는데다가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는 말을 잘 하지 못하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도 않았다.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지고 간 것이 만화가 그려진 사탕이었는데, 이것이 의외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 라는 말이 있다. 한 아이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가족뿐 아니라 이웃, 지역사회 등 온 마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속담이다. 지금은 다 핵가족이고 맞벌이가 많다 보니 아이 양육은 오로지 부모의 손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그것이 만만치 않은 문제임을 이번 일로 더 느끼게 되었다. 경제적인 문제나 주거의 문제, 기타의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거나 아이 낳기를 미루는 젊은 세대가 이해가 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해결해야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요즘 아이를 돌보면서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폭 빠진 굉장히 행복한 할머니가 되었다. 이 한 달 남짓한 동안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고 표정도 다양해졌다. 어느 날 사탕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알려주었다. 곧잘 빈 껍질을 들고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군인 같은 절도 있는 걸음으로 쓰레기통으로 간다. 페달을 꾹 눌러 뚜껑을 열고 껍질을 버린 뒤 발을 뗀다. 그리고 돌아서서 짓는 그 표정이란. 엄청난 일을 해 냈다는 자부심이 얼굴 가득 들어있다. 물론 늘 예쁜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떼를 쓰기도 한다. 이 더운 여름에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도 한다. 그런 모습마저도 예쁘기만 하니 중증 짝사랑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오늘도 가방에 사탕을 챙겨넣고 어떻게 재미있게 데리고 놀까를 생각한다. 같이 미끄럼틀을 타볼까?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8-31

스마트팜 혁신밸리, 청년과 함께 여는 미래 농업의 길

상주시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며, 쌀·누에·곶감을 비롯한 다양한 농산물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농업과 농촌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기후변화는 농작물 생산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농산물 시장 개방과 농자재 가격 상승은 농업인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제 농업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혁신 없이는 농업의 내일을 담보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스마트농업’이다. 스마트팜은 정보통신기술(IC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여 농작물의 생육 환경을 원격·자동으로 제어하는 첨단 농업 시스템이다. 상주시는 농식품부가 지정한 전국 4곳의 스마트팜 혁신밸리 중 하나로 선정돼 대한민국 농업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 2021년 12월 준공된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부지 42.7ha, 첨단온실 17ha 규모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단순한 농업시설이 아닌, 교육·실습·창업·연구가 융합된 종합 농업혁신 플랫폼이다. 핵심 시설인 청년창업보육센터는 매년 전국에서 선발된 18~39세 청년 52명을 대상으로 20개월간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입문교육(2개월)에서 기초를 다지고, 교육실습(6개월)을 거쳐, 경영실습(12개월)을 통해 실제 영농과 경영을 체득한다. 교육 작목은 오이, 토마토, 딸기, 메론 등 수익성과 시장성이 높은 품목이다. 특히, 수료생 가운데 우수팀은 팀별 0.5ha 규모의 임대형 스마트팜에 3년간 입주할 기회를 얻는다. 초기 창업자금과 운영 경험을 함께 지원받음으로써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발판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6기 과정을 통해 212명의 청년이 배출됐고, 상당수가 스마트팜 창업가로 활약하며 농촌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청년 교육에 그치지 않고, 미래 농업 기술의 실험장으로도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실증단지에서는 유리온실, 비닐온실, 노지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율주행 로봇, 자동화 관수 시스템, 환경 제어 장치 등 최첨단 장비가 시험·검증된다. 이를 통해 기업은 기술의 효과를 확인하고, 농업인은 현장 적용 가능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빅데이터센터에서는 온도, 습도, CO₂ 농도, 일사량, 병해충 발생 등 농업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는 인공지능 기반의 농업 경영 솔루션 개발에 활용되어, 생육 최적화, 병해충 예측, 에너지 효율 개선으로 이어진다. 이는 상주가 단순한 농산물 생산지를 넘어, ‘데이터 농업’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징표다. 청년농업인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생활·문화 인프라 확충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청년농촌보금자리 28호에 65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영유아와 초등학생 17명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청년 개인의 정착을 넘어 가족 단위 유입으로 이어져, 농촌 마을의 활력을 되살리는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아울러 청년과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도 조성 중이다. 북카페, 도서관, 체력증진시설 등을 갖춘 이 공간은 2025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농촌에서도 도시 못지않은 생활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 농업인을 위한 임대형 스마트팜도 운영되고 있다. 1단지에는 19명이 이미 입주했으며, 2025년 8월 준공 예정인 2단지에는 새로운 입주자가 합류할 예정이다. 세대와 세대, 청년과 기존 농업인이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총 6기 과정을 통해 212명의 청년농업인이 배출되었으며, 교육생 모집 경쟁률은 최근에도 4.1 대 1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만 약 4000여 명이 혁신밸리를 방문했으며, 그중 600여 명은 네덜란드, 호주, 필리핀, 베트남 등 해외 관계자들이다. 상주시장으로서,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단순한 농업시설을 넘어 청년의 꿈을 키우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거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다. 앞으로도 상주시는 청년농업인들에게 최신 시설과 최적의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생활·문화 기반을 확충하며, 글로벌 농업 교류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방침이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통해 청년이 돌아오고, 농촌이 살아나며, 대한민국 농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것이다.

2025-08-31

나라도 빚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재정이 회복과 성장을 견인하고 선도 경제로 대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총지출을 대폭 확대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2026년 예산은 올해보다 54조7000억원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대폭 확대했다. 8.1%가 늘어난 수치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전체 예산의 37%에 달하는 269조1000억 원을 배정한 보건·복지·고용 예산이다. 더 큰 문제는 2025~2029년 동안, 이 기간 복지 예산은 연평균 6.0%씩 늘어나며 전체 총지출 증가율(5.5%)을 넘는 점이다. 여기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채 이자를 감안한 지출은 향후 매년 6.3%씩 늘어난다. 복지 관련 예산은 한 번 늘리면 쉽게 줄이기 어렵고, 수혜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형평의 문제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이미 진입했고, 생산인구도 소비를 진작할 국민도 줄어든다. 통계청은 2072년 총인구가 약 3622만 명으로 줄어들고, 100년 후에는 현재의 15% 수준인 753만 명까지 감소한다고 전망한다.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다. 국내 세수가 더 이상 늘어날 구석이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AI와 첨단기술에 예산을 집중해 경제체질을 바꾸어 정책 목표인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하여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장밋빛 계획이다. 경제의 주체는 기업과 국민과 정부다. 기업에서 물건을 생산하고 국민이 이를 소비하고 이러한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정부는 도와야 한다. 그런데도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노란봉투법과 상법을 개정하여 기업을 옥죄면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노란봉투법은 노조 활동에 따른 손해배상을 하지 말라고 하고, 개정된 상법은 주주 이익 확대 규정을 두어 회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정부는 회사에 대한 간섭을 되도록 줄여야 한다. 지난 정부가 3년간 이룩한 건전재정은 사라졌고, 트럼프의 등장으로 나라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와 공약 이행이라는 명목하에 별 효과도 없는 선심성 정책으로 재정 건전성을 해칠 필요가 있을까.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면 우리나라 국채에 대한 이자는 오르고 국가의 신용등급은 떨어지고 외자 유치는 힘들어지고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빚은 개인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빚을 진 국가도 파산한다. 파산한 국가는 채무국에 모든 걸 내어주어야 한다. 일제 치하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왜 일어났으며 일제는 왜 이를 막았는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나라는 독립 국가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조국 근대화를 이룬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저축을 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빚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누군들 빚을 마다할 것인가. 빚을 짐으로써 감당하지도 못할 뒷일이 무서운 것이다. 나라도 빚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나라 경제는 그냥 해보는 놀이가 아니다. 온 국민의 모든 삶이 달린 문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8-31

사법권은 어디에 속해야 하나?

굵직굵직한 사건이 재판에 회부될 때마다 온 국민의 관심도 재판부에 쏠린다. 대통령 파면에서부터 사연 많은 형사 사건까지 어떤 판결이든 국민 여론이 나뉜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무섭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SNS에서는 법관만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법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법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세상이 쉬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로봇이 수술하는 세상이 왔어도 여전히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판결을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위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도라도 보완해야 한다. 헌법에서는 입법권에 대해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41조 ①국회는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라 하고, 행정권에 대해서는 ‘제66조 ④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법권은 다르다. ‘제101조 ①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로 되어 있어 ‘법관으로 구성된’ 일곱 글자가 도드라져 있다. 국회와 정부는 선출직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법관은 선출직이 아니므로 굳이 ‘법관으로 구성된’을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법관의 전문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소수의 법관에게 판결의 전권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미국의 경우,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되어 있어 시민이 의무적으로 평결에 참여한다. 1957년에 나온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고전 영화다. 가난한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었는데 유죄 판결이 확실하다. 그러나 12명의 배심원이 열띤 토론 끝에 ‘죄 없음’이라고 판결한다. 미국 배심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배심원들’이라는 국민참여재판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역시 가난한 가정의 아들이 엄마를 죽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어 유죄가 확정적이었지만 배심원들의 토론으로 만장일치로 ‘죄 없음’을 선언하고 재판장이 이를 받아들인다. 다만, 영화에서는 재판장이 배심원 의견을 따랐지만, 우리나라는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따를 의무가 없다. 두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배심원들이 자기 판결이 가져올 결과의 엄중함을 의식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법관만이 평결의 권리를 가질 때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고, 권력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소수의 법조 권력에 의해 판결이 좌우되지 않도록 배심원 제도를 두는 것이다. 배심원 방식과는 다르지만, 독일, 일본 등도 시민이 재판에 큰 비중으로 참여한다. 이제 우리 헌법에서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구성된’이라는 일곱 글자를 삭제하여 사법권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31

대구권 광역환승제, 대구경북 하나로 묶었다

대구시가 지난해 대구권 광역철도(대경선) 개통과 함께 시행한 대중교통 광역환승제가 대중교통 촉진과 시도민의 생활권 연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단위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개통된 광역철도 대경선은 개통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생활 편의성 측면에서 만족감을 표시하는 시도민을 주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시간 단축 효과는 물론 하루 100회 운영에 따른 수시성이 좋은데다 교통비가 절감되는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이용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평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가 교통카드 데이터를 활용해 광역환승제 시행 전과 시행 후를 특정해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올해가 총 통행 발행량만 7.8%가 증가했다. 이를 건수로 따지면 174만8000건에서 188만5000건으로 10.3%나 증가했다. 또 광역환승제 시행 후 올 상반기 중 대구 전체 통행량을 살펴보니 대구권 유입.유출 통행량이 모두 증가했고, 그 수가 하루 평균 1만8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경북권에서 인구유출을 걱정했지만 구미시의 경우 오히려 구미를 찾는 방문객이 더 늘어나 금오산 관광지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증차했다. 지방 최초 광역철도인 대경선은 대구시와 9개 시군 352만 시도민이 함께 혜택을 보는 광역환승제를 시행하면서 시도민의 만족도를 높인 정책이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광역철도까지 환승하게 됨으로써 생활인구 및 유동인구 증가 효과도 기대 이상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광역환승제 확대가 단순히 요금할인 효과를 넘어 대구경북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말하고 “정부가 추진할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대구경북 통합론이 대구시장 부재로 더 이상 논의의 진척은 없으나 대구와 경북이 상생하는 방안 마련에는 지속적인 공동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 광역환승제를 이용한 광역철도 대경선의 운영 효과를 바탕으로 대구와 경북을 연결하는 광역교통망의 확대 등 광역환승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광역교통망 확보만큼 지역을 연결하는 좋은 수단은 없는 것이다.

2025-08-31

포항시의 천원주택

전국에서 쏟아지는 저출생 극복전략 가운데 1000원주택이란 아이디어는 매우 강력하고 매력이 있는 정책으로 돋보인다. 1000원주택이란 결혼을 앞둔 청년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하루 1000원 임대료, 즉 한달로 치면 3만원의 월세만 내고 거주하도록 하는 저렴한 비용의 주거복지 정책이다, 대도시에서 실제로 소요되는 주거비용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정책이라는 점에서 젊은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인천시가 처음으로 1000원주택 공급을 계획하고 입주자를 모집했다. 올 상반기 중 입주자 선정을 끝내고 하반기부터는 입주를 한다. 공모과정부터 청년층, 신혼부부들의 응모 문의가 폭주했다고 한다. 인천시는 청년층의 호응이 좋으면 지속 가능한 주거복지 정책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하루 1000원의 가격으로 비록 소형 아파트지만 내집처럼 살 수 있다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의 생활기반 정착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기초 지방자치단체로서 처음으로 포항시가 1000원주택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주거난 해소와 지방소멸 대응, 취업과 연계한 주거복지지원 정책으로 추진되는 포항시의 1000원주택은 인천시와 조건은 비슷하다. 일차적으로 청년층, 신혼부부 등이 대상이다. 인천과 달리 포항은 인구소멸의 위험성이 큰 지역이다. 파격조건으로 젊은이들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1000원주택이 주거의 안정을 제공하고 일자리와 연계돼 지역에 남게되는 전국에서 가장 매력있는 정책으로 인식시켜 가야 한다. 청년층을 붙잡는 포항시의 특색있는 핀셋정책이 되길 바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31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사람은 딱 한 번 살다 간다. 이것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필연적인 공통 운명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숱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러 차례 경험했거나, 안정적이고 익숙한 상황이라면 비슷한 실패와 좌절과 만나지 않을 터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특혜나 행운을 거머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아주 젊었던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던 모양이다. 이번 여름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 나한테 들었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런저런 실망과 실패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 말이 적잖은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전언에 귀 기울이다가 당시 정황이 떠올라 잠시 뭉클했다. 인생도 학문도 깊지 못한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어느 날 문득 교수가 되고 보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세상과 인간, 우주와 자연, 문학과 예술에 얕은 지식과 재주만 가지고 있던 터여서 감당이 불감당이던 시절. 그리하여 내게 닥친 시련과 고난을 어찌할 바 몰랐던 시절의 치기(稚氣)가 떠오른 게다. 천방지축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면서 전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았던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어리석은 자화상에 새삼 낯이 뜨거워진 것이다. 내가 그 시절 ‘두려워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은 실상 나한테 던진 말이었을 공산(公算)이 크다. 물어볼 사람도 조언을 청할 사람도 하나 없는 천애고아(天涯孤兒) 같은 처지에서 실상 자기를 위로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항용 내뱉는 모든 말의 첫 번째 수신자는 우리 자신이다. 나의 입에서 발화(發話)되는 말을 가장 먼저 내가 듣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지하게 혹은 서둘러서 상대방에게 던지는 말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터를 잡고 있거나, 잠재의식 근저(根底)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평소에 그나 그 여자가 무슨 말을 자주 하는지 경청해 보면 그나 그 여자의 관심사를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했다면, 분명 당시에 나는 두려워하고 있던 사정이나 사람, 혹은 헤쳐 나가기 어려운 지경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자기를 위로하고자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복잡다단하고 막연하며 어쩔 줄 모른 채 20대와 30대를 살아가야 했던 청춘들이 그 말에서 위로를 찾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가장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지경의 젊은 시절을 통과하는 방편의 하나로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경구를 골랐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 역시 마음이 푸근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어언 50줄에 접어들어 귀밑머리가 조금씩 하얘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는 것이다. 그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건너온 세월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적신다. 이젠 동료나 친구처럼 여겨지는 그들과 함께할 앞날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화사한 아침나절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31

포항 철강산업 지원, ‘골든타임’ 놓치면 안된다

정부가 지난 28일 벼랑 끝에 몰린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포항을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철강업계 경영악화와 지역경제를 조금이나마 돕겠다는 취지다. 철강산업의 거점인 포항에는 현재 779개 철강기업에 2만1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철강산업은 최근 미국의 50% 고관세와 중국산 저가 철강의 시장 잠식,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등으로 ‘3중고’를 겪고 있다. 포스코 등 주요 철강사들은 중국·일본산 철강제품 반덤핑 조사를 정부에 요청하거나 공급망 현지화 등으로 자구책 마련에 총력을 쏟고 있다. 선제대응지역 지정으로 포항에 있는 철강업계는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방투자촉진 보조금, 중소기업 정책금융 지원을 받게 됐다. 국민의힘 김정재(포항북)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지정으로 지역 맞춤형 산업 다각화 지원, 고용안정 및 청년 일자리 확대, 신성장산업 육성 및 기업 투자 유치,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강화 지원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항은 포항제철소 용광로가 멈춰 섰던 지난 2022년 태풍 ‘힌남노’ 홍수 피해 이후 2년간 각종 지원 대책이 시행됐지만, 계속된 글로벌 경기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정부는 금융지원과 함께 산업단지 개조·복구사업을 시행하고 약 1700억원 수준의 지원금도 집행했지만, 태풍 피해가 워낙 컸던 탓에 현장 복구 외에 철강업계 경영지원에는 손쓸 틈이 없었다. 힌남노 사태 이후 또다시 포항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역경제계에서는 지원방안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강산업의 근본적 위기 극복과 지속 가능한 자립을 위해서는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철강 경쟁국인 미국과 EU, 일본은 현재 자국 철강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도 하루빨리 철강기업의 가장 큰 부담요인인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와 함께 ‘K스틸법’ 조기제정 등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정부 지원대책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2025-08-31

영덕군산림조합, 눈앞의 부패-사라진 책임

영덕군산림조합은 더 이상 ‘협동’이나 ‘상생’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내홍과 비리가 신문지면을 채우는 일이 일상화했다. 직원들은 허위 서류를 만들어 인건비와 장비비를 빼돌리고, 해외여행과 접대성 지출을 반복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회식 자리 마다 여성 도우미를 부르고 조합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도 반복됐다. 송이 공판 감량률 조작, 직원 출장비 절반 상납, 동일인 한도대출 부정 의혹까지 겹치면서 조합은 스스로 ‘비리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쌓아 올렸다. 최근 드러난 행태는 더욱 뻔뻔하다. 업무추진비와 사업비를 활용해 관공서 직원을 접대하고, 송이를 선물하며 술잔을 돌렸다. 관공서와 조합, 그 뒤에는 사실상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정황이 이어진다. 뇌물과 유착의 그림자가 지역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단순한 조직 내부 문제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관계 당국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산림청과 중앙회 감사, 경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고발과 인지 사건은 깜깜이 처리된다. 공직자윤리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은 사실상 묵살되고 있으며, 감사는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반복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말은 이미 허울 뿐이다. 조합 내부 문제와 함께 관계기관의 무책임이 맞물리면서 지역사회에는 냉소가 번졌다. 대의원회와 조합은 싸움터가 되었고, 조합원들의 복리와는 무관하게 조직은 흔들리고 있다. 주민과 조합원들은 “신뢰할 수 없는 조직”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내부 비리가 아니라 조합과 관공서, 그리고 일부 관계기관이 얽힌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조합원들은 예산과 인력 운용이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일부 조합원은 “이대로라면 조합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신뢰 회복을 위해선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혁만이 답이다. 감사 시스템 강화, 예산 집행 투명화, 외부 감시기구 설치 등 구체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영덕군산림조합을 지켜보는 지역사회와 조합원들의 시선은 이미 날카롭다. ‘법과 원칙’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8-31

칭찬 외교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칭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무기라는 뜻이다. 개인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나라 간 외교에서도 칭찬의 효과는 크다. 특히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세계 지도자들의 칭찬 릴레이가 쏟아지면서 칭찬 외교가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란 폭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가끔 자식에게 따끔한 매를 들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든 것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한술 더 떠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의 적임자”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이 추천한 문서 사본까지 꺼내 든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 지난 7월에는 아프리카 5개국 수장들이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해 세계가 또 한 번 주목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서도 미국 언론들은 칭찬 공세가 외교 성과에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했다. 가끔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정책 후 트럼프와 눈을 마주치면서 아첨하는 외국 지도자가 늘고 있다는 칭찬 외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칭찬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 같다는 분석이다.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국익을 챙기려는 세계 지도자들의 칭찬 릴레이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현대화의 상징인 등소평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인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며 ‘흑묘백묘론’을 펼친 바 있다. 칭찬이든 아부든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28

여름철 급증하는 동물유기, 돌봄 대책 나와야

우리나라도 반려동물 1500만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구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반려인인 셈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노령화로 자녀없이 지내는 노인가구가 늘고, 젊은 세대 중심의 1인 가구도 급증하면서 반려동물 수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면서 반려동물로부터 외로움을 달래고, 그를 통해 생활의 활력소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요즘의 세태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반려인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러나 늘어나는 반려동물만큼 버려지는 반려동물도 적지 않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 되면 반려동물의 유기가 피서지 등에서 빈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1년 중 반려동물 유기가 일어나는 시기를 보면 여름철이 전체의 30% 정도 달한다고 한다. 농림축산부 동물보호복지실태 조사에 따르면 매년 10만 마리 내외의 반려동물이 유기되고 있으며 이중 약 40%는 입양되거나 소유주에게 반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유기 동물 보호소로 옮겨지거나 안락사 등으로 처리된다. 반려동물 보호소는 지역마다 설치돼있지만, 대부분이 포화상태라 유기동물 관리가 쉽지 않은 형편이라 한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려동물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절반의 반려동물은 등록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려동물 가구의 인식 전환 등을 통해 반려동물의 등록률을 높이는 것도 반려동물 유기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 전문가들은 동물등록 때 외장 칩 대신 내장 칩을 의무화해 유기를 원천적으로 막자는 의견도 있다. 반려동물이 유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이에 대한 당국의 해법 모색도 필요하다. 서울시의 경우 동물등록 시 금액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반려동물에 대한 공동체로서 사회적 인식 제고도 있어야 한다. 스위스 등 선진국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소양 시험까지 치른다고 하니 반려동물 유기가 죄악시되는 풍토 조성도 필요하다.

2025-08-28

혼전계약(프리넙)에 관하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의 이혼을 했다. 지금의 영부인 멜라니아는 세 번째 결혼의 상대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혼을 할 때 늘 혼전계약, 그러니까 나중에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 재산분할에 대해 미리 정해두는 계약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을 혼전계약, 흔히 프리넙(prenuptial agreement)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은 원하지 않았으나 나는 프리넙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것이 결혼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프리넙의 효력을 인정한다. 과거엔 미국도 혼전계약이 이혼을 조장하고 혼인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혼전계약이 부부 사이의 분쟁을 예방하고 혼인관계의 보호와 가정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민법에 혼인 전 부부재산계약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긴 하다. 민법 829조는 부부가 혼인 전 서로의 재산 귀속, 관리 방식, 이혼 시 재산분할 방식에 대해 합의할 수 있고 혼인 후엔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이 있긴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혼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원이 이혼 시 혼전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혼전계약을 규정한 민법 829조는 사문화된 규정으로 평가된다.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긴 해도 이혼소송에서 혼전계약서는 판결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따라서 재산이 많거나 복잡하다면, 혹은 상속재산이나 차명재산 등 특정 재산이 부부공동재산으로 혼입되는 것을 막고 이혼할 때 재산분할에서 빼고 싶다면 미리 혼전계약을 체결해 두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우리도 차차 혼전계약 체결 사례와 관련 판례가 누적되며 프리넙 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이혼전문 변호사로 많은 이혼 사건을 다루고 있는 필자는 혼전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여전히 결혼 전 모은 재산, 부모에게 받은 재산은 재산분할을 안 해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은 특유재산이라도 혼인 기간이 어느 정도 지속되었다면 배우자도 그 재산을 유지 보존하는데 기여했다고 보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데, 그것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재산분할을 대비하고 있지 않다가 이혼을 하며 예상치 못한 난관을 겪고 재산 문제로 치열하게 싸우곤 한다. 이혼하고도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사람들이 재산 문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떤 법률관계도 처음 관계를 시작하며 계약을 할 때 계약 내용을 철저히 정하고, 문구와 단어 하나하나까지 치열하게 고민해 계약서를 쓰는 것이 더 큰 분쟁을 예방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계약서를 썼다간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싸움부터 날 수 있다. 일이 시작되어도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가 잦아질 것이고, 관계를 청산해야 할 땐 더 큰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서로 가장 호의적인 시기, 관계를 시작하는 시기에 합의 내용을 철저하게 정해두는 것이 관계의 안정적 유지와 본업의 집중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결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혼전계약의 효력을 점차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28

국민의힘, ‘찬탄파’ 내쫓는다고 민심 회복될까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에서 벗어나 장동혁 새 대표가 선출됐지만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다. 장 대표가 취임한 첫날부터 사실상 ‘찬탄파(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인 친한(한동훈)계의 탈당을 요구하고 나선 게 주원인이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내내 지지층을 의식하면서 “내부 총질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결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왔다. 장 대표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히틀러에 비유했던 조경태 의원을 겨냥해 “우리 당에 내란 동조 세력이 있다는 (조 의원의)말은 우리 당을 너무나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먼저 결단을 하시라”고 말했다. 자진탈당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레밍신드롬(맹목적인 집단행동)을 경계해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장 대표가 지난 27일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김민수 최고위원이 “안으로부터 시급한 개혁은 내부를 향한 총격, 해당 행위를 근절하는 것”이라며 한 전 대표의 ‘당원게시판 논란’을 언급했다. 그는 “당원게시판 조사는 당무감사와 함께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면서 ”지금 이 순간부터 방송 패널들의 해당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했다. 방송에 출연하는 친한계 원외인사들도 싸잡아 겨냥한 말이다. 당원 게시판 조사는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글에 한 전 대표와 가족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전당대회 후폭풍이 이처럼 거세지면서 국민의힘 분당설도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의힘은 다음 선거에서 중도층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당이 소멸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당 지도부가 강성당원을 의식하며 ‘찬탄청산’에 나선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전당대회 당 대표 결선투표 결과를 분석해보면, 장 대표는 책임당원을 제외한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39.82%를 얻어 60.18%를 얻은 김문수 후보에게 큰 표차로 졌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거대여당의 입법독주에 맞서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민심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당 내부의 의견 차이는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순리다.

2025-08-28

바뀔 때가 된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늙은이 말이다. 마치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8

‘플라스틱 방앗간’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극한 폭염이 9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근본적인 해답은 ‘탄소중립’에 있으며, 실천 방안으로 ‘자원순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의 ‘업사이클링(새활용)’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당장 2030년부터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는 만큼,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지역의 과제다. 이 문제에 대한 흥미롭고 혁신적인 해법으로, 우리 동네 ‘플라스틱 방앗간’을 소개한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이름 그대로, 우리가 분리배출한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모아 분쇄하고 가공하여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만드는 시민 참여형 공간이다. 방앗간에서 쌀을 빻아 떡을 만들듯, 버려질 플라스틱을 잘게 빻아 치약 짜개, 비누 받침, 열쇠고리 등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수십만 톤에 달하며, 이는 소각·매립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우리의 강과 토양, 심지어 몸속까지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단순히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직접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자원순환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자, 즐거운 경험을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지역 문화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미 국내외에서는 ‘플라스틱 방앗간’과 유사한 성공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 프로젝트는 누구나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계 설계도를 온라인에 공개하여 전 세계적인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플라스틱 방앗간’이 시민들로부터 택배로 작은 플라스틱을 기증받아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보내주면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지역 특색을 살린 소규모 공방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구경북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도시와 농촌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모델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심에서는 주민센터에 소규모 설비를 갖춰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농촌 지역에서는 영농 폐기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거점형 방앗간’을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물론 ‘플라스틱 방앗간’을 대구경북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안정적인 플라스틱 수거 체계 구축, 초기 설비 투자 비용, 그리고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낼 운영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는 관련 조례를 정비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기업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고, 환경 단체와 시민들은 적극적인 참여로 자원순환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플라스틱 방앗간’의 조기 도입과 확산은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구경북이 선제적으로 ‘플라스틱 방앗간’ 모델을 성공시켜,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선도하는 자원순환 모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8-28

뒤끝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이 핼쑥하다. 한 달 전, 시골에 혼자 지내던 시어머니가 일사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전한 뒤였다. 그녀는 불볕더위 속에서 상을 치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숙제가 남았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 간 자리에 이렇게 많은 게 남을 줄 몰랐어.” 그 말 속에는 지친 한숨이 섞여 있었다. 시어머니가 시집와서 평생 살아온 집은 자식들을 키우고, 조상 제사를 모시던 살림살이로 가득 했다. 벽장에는 자식들이 집을 떠나면서 나중에 가져가겠다며 놔둔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딸들은 엄마가 서랍 밑바닥에 넣어둔 금반지와 통장에나 관심을 가질 뿐, 자기 물건은 고사하고 손때 묻은 살림에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창고는 더 심각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녹 쓴 고추 건조기와 나무 자루가 갈라진 곡괭이, 속이 반쯤 남은 비료 포대들이 거미줄로 포장되어 있었다. 언젠가 필요한 날이 있을 거라며 쟁여두던 시어머니였다. 친구는 녹이 쓴 연장들을 발로 모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심정에 찬물을 두 컵이나 연거푸 마셔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올려다보시던 자식들과 손자 사진부터 벽에서 거두고, 개인정보가 담긴 종이들을 모아 불태웠다. 끄집어내면 낼수록 물건은 더 불어났다. 뒷방 한쪽, 이불덮개로 싸 놓은 솜이불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눅눅해진 이불에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순간,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정리 전문 업체를 불렀지만,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시어머니의 손 때 묻은 것들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래전 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던 날을 떠올렸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를 원했고, 집의 크기만큼 살림은 줄어들었다. 서너 번의 이사로 아버지의 물건들은 한눈에 다 보일만큼 남았다. 혼자 지내기 힘들어지자, 아버지는 요양원을 택했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고집을 끝내 꺾지 못한 나는 필요한 것들로 가방을 챙겼다. 정장을 한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깨끗한 양복 한 벌과 구두를 함께 넣었다. 그리고 가족사진 액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내게 남은 것은 그 가방 하나뿐이었다. 닳아진 지갑 속에는 자식들의 전화번호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내 뒤끝도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혼잣말처럼 내 뱉은 말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살다 보면 추억으로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지난 번 이사 때를 떠올렸다. 이삿날을 앞두고 나는 옷장 문부터 열었다. 자주 입는 옷은 몇 벌 뿐이고, 나머지는 몇 년째 그대로 걸려있었다. 버려야지 하는 건 마음뿐,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그 책을 살 때의 기억들이 손목을 잡았다. 책마다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다시 원래 자리에 꽂았다. 대신 굽 높은 구두와 발이 불편하던 운동화를 과감히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싱크대 구석에서 오래 묵은 냉면 그릇이 나왔다. 몇 년 전에 이사 올 때 넣어둔 그대로다. 지난 이사 때도 버릴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났다. 연꽃 모양의 그릇은 본래의 색을 잃어갔다. 행주로 닦자, 하얀빛이 살아나 한 번은 사용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다시 집어넣었다가, 결국은 쓰레기장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자, 빈틈없이 채워진 뭉치들 속에 아이스 팩까지 들어 있었다. 국이라도 끓여서 소비하자는 생각에 데쳐서 넣어둔 얼갈이배추를 꺼내 녹였다. 국이 한 솥이다. 두 식구가 먹기에는 많다. 결국 통마다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몸에 밴 채우는 습관이 또 속을 꽉 채웠다. 체증(遞增)처럼 불어나는 물건 앞에서 체증(滯症)이 올라오는 날이다. 소유보다 비움에 무게를 두어야 할 나이임을 입으로만 말하고 있다. 욕심으로 채워진 것들이 결국은 짐이 되는 순간, 가방 하나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게 소중했던 것들이 자식들에게 쓰레기가 되게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옆에 두고, 책상 서랍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윤명희 수필가

2025-08-27

앙팡 테리블, 혹은 소외에 대하여

앙팔테리블, 혹은 소외에 대하여 -새마을이 아니라 새마음, 기계 문성리에서 학교가 끝나도 나는 갈 곳이 없어 응원석에 혼자 앉아 있네 나를 응원할 수는 없네 노을은 타고 있지만, 춥네 구멍 난 운동화가 나를 보네 오늘은 무얼 먹어야지 모든 게 뒤죽박죽, 열 살 무렵 조금 불편하며 보편적이지 않지만, 내성(耐性)을 키우면 돼, 버티고 견뎌야지, 나처럼 아픈 아이들이 아마 무작정 있을 걸 우리의 부작용과 무작용의 시간 창피와 모멸의 시간을 넘어 그래도 지금 삶은 대체로 지탱해야지, 살아가야지 운동장 너머의 세상을 향해 나는 걸어가야지, 그 자발적 활력을 위해 새마을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몰라, 다만 살기 위하여 혹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나쁜 아이라도 되어야 하나? 모르겠다, 그러나 알아야겠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중심적으로 살아야겠다 꽃잎과 강철(强鐵)을, 강물과 바람을 생각했다 마을과 마을은, 강과 강은 햇빛과 바람으로 자강(自彊)한다는 것을 알았다 연약의 소외가 오히려 힘이 되니, 그것들의 힘, 흩어진 힘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그렇게, 무엇이라도 무엇을 위해 몰라서, 돌진하여 목숨의 끝에 다다른다 추궁은 불허(不許)하며 변명하지 않음으로 살고자 한다. … 독재와 팽창의 시대를 살면서 훈련된 삶을 살았지만 문득 어떤 개념에 집착하면서 혼돈의 시대를 버티며 살았다. 독서와 글쓰기의 무용함을 응시하면서도 그것마저 포기하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변명과 핑계로 버텼다. 그런 삶이 어쩌면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겠지만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다만 아내에게 미안하다. 당분간 유지될 무용한 시간 앞에서.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8-27

소림사 파계승의 성적 타락

50대 이상의 중년이라면 ‘소림사(少林寺)’라는 중국 사찰을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 같다. 1980~1990년대 허난성 숭산에 자리한 소림사가 공간적 배경이 되고, 그곳 승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우후죽순 한국에서 개봉됐다. 머리칼을 박박 밀고 노란색 승복을 걸친 승려들은 하나 예외 없이 쿵푸와 봉술의 절정고수였다. 그 시절 한국 중고생에게 소림사는 약자를 핍박하는 악당으로부터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됐다. 돌아보니 낭만적인 옛날이야기다. 바로 그 소림사가 최근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소림사의 30대 주지 스융신(釋永信)이 성적 방종과 부정한 방법의 축재로 중국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구금됐다는 뉴스. 나라가 커서일까? 부정과 타락의 스케일도 엄청나다. 외신에 따르면 승려 스융신이 해외에 숨겨놓은 재산은 한국 돈 2조 원으로 추정된다고. 관계를 가진 여성이 50명을 넘고 그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174명이란다. 속세와는 거리를 둬야 할 승려임에도 11개나 되는 회사를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리 운영했다는 추문까지 있었다고 한다. ‘소림사의 실력자’ 스융신이 여론의 돌팔매를 맞고 자유를 박탈당하자 최근 소림사 승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환속(還俗)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짐작하건대 부끄러움을 견디기 힘들어서였을 터. 쉽지 않은 수도의 과정과 고행을 기꺼이 감내해야 할 승려가 돈과 여자라는 세속적 욕망을 이기지 못해 오물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니 삼가는 자세로 겸양하게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려울 일인 듯하다. 그게 승려이건 필부(匹夫)건.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7

공직자로서 기본이 안 된 윤석준 청장의 자세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의 업무 공백으로 인한 불성실한 직무 수행 논란이 지역사회에 번진 게 2년 가까이 된다. 건강상의 이유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개인적 사정이므로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건강상으로 공적인 일 그것도 35만 구민의 행정을 총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1년 넘게 업무 수행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거취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행정 집행에 지장이 생기고 이로 인한 주민 피해를 생각하면 공직자로서 주민에게 할 도리가 아닌 것이다. 그는 건강상 문제로 업무 공백이 길어지자 작년 11월 기자 간담회를 갖고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연말까지 건강을 회복해 구정 업무를 비롯한 모든 부분에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구정의 주요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이전에 못 한 업무까지 포함해 더 많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모습은 없다. 그는 공직자로서 한 말에 대한 신뢰도 잃었다. 그의 공백으로 구청 안에서는 구청장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이 미뤄지면서 제때 진행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불평도 조금씩 새어 나왔다. 의회도 그의 업무 공백 장기화를 문제 삼았고, 그를 공천한 국민의힘 대구시당도 그의 거취 문제를 거론했지만 그는 2년 가까이 버티고만 있다 특히 지난 7일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했지만 구청장으로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그의 거취에 대해 시민단체와 언론 등이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주민이 선출한 공직자로서 이제는 그에 대한 본인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주민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거취 문제를 명확히 밝혀서 구정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주민이 선출한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다. 그를 공천한 국민의힘도 그를 비호하는 듯한 태도를 거두고 책임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