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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검이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할 해답인가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던 50대 공무원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양평군 5급 공무원인 그는 양평 군청에서 아파트 개발사업의 개발부담금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친정어머니가 하던 양평 공흥 지구 개발사업에 특혜를 주지 않았느냐고 추궁당했다고 한다. 숨진 공무원이 남긴 유서는 참담하다. 그는 “치욕을 당하고, 직장 생활도 삶도 귀찮다. 정말 힘들다”라고 적어놨다. 그는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특검이 기억에도 없는 진술을 받아 억지로 조서를 꾸몄다” “모른다고 해도 계속 다그친다.”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특검이 당시 양평 군수였던 국민의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의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9월 검찰은 없어진다.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남는다. 검찰이 수사권을 마구 휘두르며 전횡해 왔다는 이유다.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최 상병 특검 등 세 가지 특검을 만든 것도 검찰 수사를 못믿겠다는 뜻이다. 수사를 경찰도 아닌 특검에 맡겼다. 모든 정부 조직을 장악한 집권당이 축하면 특검을 만든다. 야당마저 양평 공무원 죽음과 관련해 특검을 만들자고 하 니, 가히 특검 공화국이다. 특검은 본래 ‘국민 의혹 해소’와 ‘성역 없는 수사’라는 사법 정의의 ‘해결사’ 로 고안된 제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은, 정쟁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극한 대립을 증폭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단순히 수사 대상의 문제만 아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병폐인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 사법 화’가 악순환하게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는 수사기관이 정치적 의도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무기력하고, 권력자의 정적을 표적 수사한다는 의심이 검찰 개혁의 명분이 되고 있다. 같은 행위를 해도 권력자는 무죄, 야당 정치인은 유죄로 몰아간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이런 의심에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특검은 정권의 지휘를 받는 검찰과 경찰이 할 수 없는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게 애초의 취지에 맞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오히려 거꾸로다. 정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지만, 검찰에서 거세한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게 허용하는 게 다를 뿐이다. 양평 공무원의 죽음은 그 흔적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 무리한 수사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특검에는 다 주어졌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해결할 문제를 사법에 떠넘기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역할을 던져버리고, 정치를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다. 우리 편은 선이고, 정치적 경쟁자는 악이고,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뿔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가짜뉴스와 선동, 선전매체를 부추긴다. 검·경 등 수사기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오직 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수사기관을 정치 투쟁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일 사람을 요직에 앉혀, 그 조직을 장악한다. 이런 사법의 정치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특검이다. 원래 특검은 여야가 정치적 협상을 통해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를 비난하고, 검찰과 경찰조차 못 믿어 특검을 임명한다면, 그보다 더 중립적이라는 믿음을 주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오히려 정치적 색깔이 검·경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특검이 최근의 현상이다. 공수처도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가정 위에 만들 었다. 고위공직자,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할 때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검찰과 경찰보다 더 정치 중립적이었는지 의문이다. 이제 특검이 그 질문을 받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나쁘지, 사법, 수사 기관이 나쁜 건 아니다. 사법은 사법답게, 정치는 정치답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9

‘북극항로 개척’의 거점은 영일만항이 최적지

지난 15일 열린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는 ‘북극항로 개척’이 쟁점이 됐다. 국민의힘 정희용(고령·성주·칠곡) 의원은 이날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내년도 북극항로 관련 예산안에 배정된 금액이 충분치 않다. 북극항로가 자칫 선거용 청사진으로만 쓰이고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내년도 북극항로 개척 관련 예산이 미미한데다 구체적 사업도 제시되지 않은 데 따른 걱정이다. 전 장관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절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3대 항로인 북극항로를 방치할 수준의 나라는 아니다”라면서 “내년부터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실시할 방침이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항은 컨테이너 중심으로, 포항 영일만항은 특수성에 맞게 거점항만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달 주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포항 영일만항을 철강, 물류·에너지 등 벌크화물 처리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전 장관도 지난달 영일만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극항로 경제권역 핵심 거점인 영일만항이 환동해 관광 거점 항만으로도 도약할 수 있도록 국제여객터미널 2단계 사업을 조속히 시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다. 북극의 풍부한 자원과 항로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도 123개 국정과제에 북극항로 개척을 포함시키면서 적극적인 로드맵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해양수산부 산하에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TF를 가동하고 있으며, 조만간 대통령 직속 ‘북극항로위원회’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역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북극항로 개척은 경북도가 일찌감치 기획하고 있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지난해부터 북극항로 상용화에 대비해 포항 영일만항을 거점항만으로 건설하는 내용의 용역을 발주해둔 상태다. 국제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춘 영일만항은 누가 봐도 북극항로 ‘관문항’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영일만항이 북극해 개척의 거점 역할을 하려면 정치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2025-10-16

꽁꽁 얼어붙은 지방 부동산, 맞춤형 대책 필요

정부가 수도권 지역의 집값 안정을 위해 초강력 부동산 규제책을 지난 15일 발표했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출을 강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특히 25억원 초과 등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갭투자 방지를 목적으로 대출 상한선을 대폭 줄였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부에서 빠르게 상승하는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불가피한 정책이란 평가도 있으나 부동산 거래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실수요자가 집 사는 것을 막았다” “진짜 부자만이 집을 살 수 있다” “청년층과 신혼부부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한편으로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지방의 부동산업계는 정부의 이번 정책 발표에 지방에 관한 내용이 빠진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수도권과 달리 대구와 경북 등 지방도시들은 오랜 부동산 경기침체로 정상적 거래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꼭 이사를 해야할 형편임에도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구의 경우 집값은 9월 5주차 기준으로 97주 연속 하락해 매번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주택건설시장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주택용 공사 착공면적도 전년보다 70%나 감소하고 지역 건설사의 폐업이 줄을 잇는다. 이재명 정부 들어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방에 대한 내용은 한번도 없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수도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방은 아예 정부의 관심 밖이다.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도 가격만 안오르면 그만이라는 뜻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부동산 시장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핵심적 요소다. 대구시 등 지방정부는 이런 지역사정을 감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부동산 정책을 실정에 맞게 이원화해 달라는 요구를 지속 건의해 왔다. 정부는 지방자치 정신에 맞게 지방실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넘기거나 지역 사정에 맞는 맞춤형 부동산 대책을 내놔야 한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2025-10-16

똘똘한 괴물

수도권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이달 15일 주택시장 규제에 나서면서 똘똘한 한 채에 집중 몰리는 투자 수요를 잡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똘똘한 한 채는 입지와 가치, 실수요 등이 뛰어난 주택을 이르는 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단순히 고가주택을 이르는 표현이 아니고 내재 가치가 뛰어난 주택을 뜻한다. 서울에서는 강남과 용산, 마포, 성동구 등지의 도심 역세권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본래는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강화와 대출규제 등을 피하는 방법으로 여러 채보다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투자 전략에서 나온 말이다. 시세 차익보다 장기 보유 시 절세 효과가 높고 자산상품 가치가 기대되는 주택이다. 그러나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자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시장의 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고 지방에서도 똘똘한 한 채를 사기 위한 자금이 서울로 쏠리면서 똘똘한 한 채는 똘똘한 괴물로 불리기도 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후 수도권 일대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25억 초과 고급주택은 주택담보 대출이 2억까지만 허용되고 반면 15억 이하 주택은 기존 한도인 6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담보가치가 역전된 현상이 생겼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력한 규제책으로 똘똘한 한 채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6

변호사 공장

변호사는 공익을 위한 직역인가, 사익을 위한 직역인가.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 변호사는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사법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공적 전문가이다. ‘법’은 우리 사회가 약속한 정의의 최소 단위이고, 변호사는 그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로서 법을 수호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사사건은 성공보수를 못 받는다. 대법원은 형사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의 인권보호와 형사사법의 실현에 있는데, 유·무죄의 결과를 기준으로 한 보수 약정은 변호사의 직무윤리에 반하고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시했다. 한편 변호사는 사익을 위한 대변자이다. 변호사는 개별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가 주는 수임료를 받아 생계를 꾸린다. 나라에서 나오는 공익 수당 같은 건 없으므로 개업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많이 하고 수임한 사건 의뢰인에게 승소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변호사의 사익 추구가 공익적 역할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의 절차적 방어권을 보장하며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누군가 떼인 돈을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법과 권리를 지키는 공익적 행위이기도 하니까. 결국 변호사는 사익을 매개로 공익을 실현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겠다. 매달 사무실 운영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 변호사의 입장에선 사실 이런 역할의 구분이 쉬운 것은 아니다.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난 요즘은 특히.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되, 법질서와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유형의 로펌, 변호사들이 등장해 많은 부분을 흔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법률서비스 피해 구제 신청 건수가 최근 4년 사이 5배 급증했다. 피해 사유는 주로 위임 계약의 불성실 이행, 법무법인의 미흡한 대응으로 인한 계약 해제 및 환불 요구, 불성실한 법률 대리에 따른 착수금 전액 환급 등이었고, 신고된 곳들의 대부분은 소위 마케팅 펌, 네트워크 펌이었다. 이런 펌들의 기본 방향은 법을 잘 모르고 변호사 인맥이 없는 사람들이 변호사가 필요해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포털사이트 상단에 뜨게 하고, 전관이나 대단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사건에 관여하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이다. 광고의 가장 큰 목적은 수임이다. 승소보다는 대량 수임에 광고 목적이 맞추어져 있기에 매년 엄청난 광고비를 포털사이트에 지불한다고 한다. 의뢰인들은 대형 로펌에 맡기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실제 사건 처리는 고용된 각 지점의 어쏘 변호사들이 한다. 그렇기에 사건과 변호사와의 연결성, 애착관계가 없다. 변론 때마다 출석하는 변호사가 다르고, 사건 때문에 의논할 게 있어 전화를 해도 담당변호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는 경우도 많다. 장인인 것처럼 광고하나 실질은 공장인 것이다. 이런 변호사 공장, 공장형 변호사의 등장은 과연 변호사의 공익성에 맞는 것일까. 오늘도 법원에서 마케팅 펌 변호사의 변론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김세라 변호사

2025-10-16

‘기후테크’

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 내내 내리던 비가 이후에도 계속 내렸다. 늦장마처럼 이어지는 비와 한여름 같은 더위는 이제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한반도 기후는 이미 과거와 달라졌다. 대구의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경북의 겨울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렇게 체감되는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 결국 ‘탄소중립’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기후테크(Climate Tech)’라는 새로운 해법에 주목하고 있다. ‘기후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모든 기술을 말한다. 단순한 환경기술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의 길이다. 예컨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AI 기반 에너지 효율 시스템, 스마트팜, 탄소포집(CCUS) 등이 모두 ‘기후테크’에 속한다. 핵심은 환경과 경제의 균형이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테크’는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닌 ‘미래산업 전략’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테크’는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기술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제도적 규제도 여전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부는 탄소가격제와 녹색금융을 확대하고, 기업은 ‘기후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형 기후테크’, 예를 들어 AI 분리수거기, 에너지 절약형 스마트홈, 시민 리빙랩이 늘어나면서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기후테크’의 필요성이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다. 대구는 폭염과 열섬이 심각해 쿨루프, 그늘막, 제로에너지건축 등 냉방 수요를 줄이는 기술이 필수다. 반면 경북은 가뭄과 폭우가 반복되며 농업 피해가 커지고 있다. 기후적응형 스마트팜, 물 재이용 기술, 아열대 작물 재배기술은 이 지역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포항·구미 같은 산업도시는 탄소다배출 공정을 바꾸기 위해 수소환원제철, 탄소포집·저장 기술(CCUS)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도시의 에너지를 농촌이 공급하고, 농촌의 자원을 도시가 순환시키는 ‘도농 순환형 기후테크’ 모델은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덴마크는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풍력도시를 세웠고, 핀란드는 도시 전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해 에너지 소비를 30% 줄였다. 일본 나고야는 폐기물 재활용 산업단지를 통해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구경북 역시 국가물산업클러스터와 연계한 ‘물관리 기후테크’, 경북의 자원순환 산업단지, 대구의 탄소중립산단 조성을 통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기후테크’는 위기의 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대구·경북이 ‘기후테크’라는 혁신의 파도에 올라타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후 회복탄력성 선도 지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0-16

큐피드의 화살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시집을 안 가고 개기는 딸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나서 한 번씩 쏘아붙인다. 어릴 땐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좀 컸다고 이젠 말대꾸를 자주 한다. 말로선 못 이겨 눈만 흘기고는 머리를 돌리고 만다. 첫째는 안 그런데 둘째 놈은 제 아비 속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강사가 부모와 자식 세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금촉 화살과 은촉 화살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은촉이 아니라 납촉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납촉이 맞았다. 하지만 납촉보다는 은촉이 더 이해도를 쉽게 만드는 요인이 있고 납이든 은이든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문학적 표현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납인데 왜 은이라고 했느냐며 따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여지없는 꼰대 기질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에로스라고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만 큐피드라고 하면 ‘화살’을 바로 생각할 것이다. 큐피드의 그리스 말이 에로스다. 동양 신화는 마치 무당 굿하는 이야기처럼 여기고 서양 전설을 이렇게 이름까지 헷갈리면서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튼 큐피드 화살은 단 하나였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어 사랑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면서 화살이 사랑의 아이콘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인 작가가 나타나 재미있게 만들어 버린다. 그가 바로 유명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이다. 그가 쓴 ‘변신 이야기’에서 큐피드가 두 종류의 화살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금촉으로 사람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하나는 납촉으로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아폴론에게 금촉을, 다프네에게는 납촉을 쏘아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미치도록 빠지지만, 다프네는 오히려 도망치게 되고, 결국 다프네는 월계수(로렐)로 변해 아폴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 명작품이 나온 것이다. 빛나는 금을 ‘불타는 욕망·신성한 매력’의 이미지를 주고 납은 무겁고 둔탁한 성질로 인해 ‘냉각· 무관심· 거부’의 효과를 줌으로써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 후 화살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 납이 아니라 은(銀)이 등장하고 철(鐵)까지 나오게 된다. 작가들이 이 재미있는 사랑의 작동 방식을 그냥 두지 않았고, 고대·르네상스 이후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이 강사는 이것을 부모와 말 안 듣는 자식 간의 관계를 금촉과 은촉이라는 화살 이야기를 가져와 설명한 것이다. 당연히 강의를 듣는 이들은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고 강의의 목적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연애·욕망을 제어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로 은촉의 화살을 맞은 것이고 자식들은 금촉 화살을 맞아 ‘불타는 청춘의 사랑’ 운운하며 무모하게 자신을 불태우려 한다. 아마도 둘째 놈은 금촉 화살을 잘못 맞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말려도 지지리 말을 안 듣는 걸 보면. 근데 멍청한 큐피드가 나에게도 금촉을 쏜 거 아냐? 왜 자꾸 미운 자식에게 미련을 두는 거지? /노병철 수필가

2025-10-16

교사 임용 응시자 급감···우려되는 교단 기피

각급 학교 교사 임용시험 응시자가 최근 4년 새 2만 명 이상 줄고, 교직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서 걱정이다. 과거 교대와 사범대가 수능 1등급 대여야 합격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유·초·중·고등학교 교사 임용시험 응시자는 5만8608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7만9779명과 비교하면 2만1171명이나 줄어든 규모다. 교대와 사범대 재학생 중에는 임용시험 응시를 포기하고 아예 교단의 길을 접는 사례도 계속 늘고 있다. 전국 10개 교대와 이화여대·제주대·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자퇴생 수는 지난해만 경인교대 101명, 서울교대 82명, 전주교대 55명, 공주교대·대구교대 각 47명 등 모두 516명으로 집계됐다. 임용시험 응시자 감소와 자퇴 증가는 ‘교권 침해’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5월 전국 교원 5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교사 90%가 “저연차 교사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는데, 첫손에 꼽힌 이유가 교권 침해였다. 재작년 서이초 교사 사망으로 심각성이 드러난 교권 침해의 현실이 교단에서 아직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교권 침해 행위는 비단 어느 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 학교에서 일상이 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교권 침해 상황이 벌어져도 이를 교사 개인이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모욕·수업방해가 만연하지만, 교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정부가 말로만 ‘교권보호’를 외친 것이다. 이러고도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교사 임용시험 응시자 감소와 교대생 자퇴 증가는 결국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젊은 교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교단에 설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정부·정치권·사회 모두가 한마음이 돼 무너진 교권 확립과 교사 처우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25-10-15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

캄보디아에서 우리 청년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 구출된 피해자들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으로 국내 취업이 막혀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 나섰던 이들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폭행과 감금, 협박, 불법행위의 강요였다. 이른바 ‘해외고수익 알바’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불법조직의 덫이었다. 피해자들은 브로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캄보디아로 향했다. ‘월 천만원을 벌 수 있다’, ‘간단한 컴퓨터 업무만 하면 된다’는 말은 사실상 인신매매에 가까운 사기였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불법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업무에 동원되었다. 저항하면 폭행당하고, 탈출하면 살해협박에 노출되었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문제를 ‘해외범죄’나 ‘취업 사기’로만 볼 수는 없다. 배경에는 청년 노동시장의 구조적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통계상 실업률은 낮지만 청년층의 상당수는 불안정한 플랫폼노동과 단기계약직에 내몰려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주거와 교육, 생계비용은 끝없이 오른다. 악순환 속에서 청년들은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기회를 잃고, 해외의 불확실한 제안에 기대게 된다. 정부가 신속하게 피해자 구출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대증적 반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교부와 고용노동부, 경찰청과 정보기관이 공조하여 해외취업과 알선의 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율등록제’로는 불법 브로커와 인신매매 조직을 걸러내기 어렵다. 해외 구인 구직 알선업체에 대한 사전인증제 도입, 피해 발생 시 즉각적인 외교 보호 절차 가동, 현지공관 내 긴급 보호센터 상시 운영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정부의 해외 취업 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 ‘청년 해외 진출’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안전한 일자리 보증제도와 사후 관리시스템을 장착해야 한다. 청년들이 현지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근로조건과 체류비자 상태를 공증받도록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본국 정부와 연결되는 디지털 연락망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노동시장, 안정된 일자리, 실질적 주거와 생계지원 정책이 없으면, 해외 취업 사기와 범죄행태 유입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청년층의 절망을 걷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국내에서 ‘괜찮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불운한 피해자의 불행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기회의 실종’과 ‘정책의 부재’가 맞물려 만들어 낸 구조적 사고다. 우리는 청년실업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일시적 실수로 치부해 왔다. 그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청년의 기본적 생존은 개인의 과제를 넘어 ‘국가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구출 작전과 함께 해외에서 실종, 감금된 한국인 피해자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 피해자 지원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귀국 후 심리적, 경제적 회복을 돕는 통합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 그 자체다. 단기적 위기관리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보아야 한다. 청년이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15

지참금 4000만원과 신랑의 죽음

젊은 세대의 혼인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등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의 처녀·총각들도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은 최근 10년 사이 혼인율이 절반으로 꺾였다고 한다. 한국 역시 지난해 결혼 건수가 22만2422건으로 2023년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21세기 청년들의 결혼 포비아(phobia)’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왜일까? 어째서 요즘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보통의 월급쟁이가 10~20년을 저축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궁여지책으로 결혼할 두 사람이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려 해도 마찬가지. 집값 상승은 필연적으로 전세 가격도 올린다. 여기에 중국은 아직도 악습으로 남아있는 ‘지참금’ 문제가 더해진다. 최근 외신은 중국 산시성에 거주하던 29세 남성이 결혼식 당일 지참금 문제로 신부와 다투다가 강물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참금 4000만원이면 충분하다, 아니다. 적다”며 신랑과 신부가 웨딩카 안에서까지 싸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약속된 결혼이 중간에서 깨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돈 문제로 인한 다툼이 파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결혼을 앞둔 신랑 혹은, 신부가 “돈보다 중요한 건 둘의 사랑”이라 말하면 “넌 결혼이라는 현실을 모른다”고 조롱당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씁쓸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5

포항시 이차전지 1등 도시에 사활 걸어라

포항시가 지역 주력 신산업으로 부상한 이차전지산업에 대한 대규모 육성 계획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이차전지산업 분야 매출 100조원, 일자리 1만5000개, 국내외 산업비즈니스 방문객 3만명 유치를 실현해 포항을 명실공히 이차전지 1등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일시적 전기차 수요둔화(케즘)로 지역의 이차전지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지금의 도전을 기회로 삼아 포항시가 도약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포항시의 이차전지산업은 2016년 에코프로 유치를 시작으로 포스코퓨처엠 등 관련기업들이 줄줄이 입주하면서 이차전지산업 도시로서 전국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투자유치 금액도 2020년 6000억이던 것이 2020년에는 1조 6000억원, 2024년에는 5조원으로 급증했다. 정부가 배터리 리사이클링규제 자유특구로 지정하고, 또 양극제 특화단지, 기회발전특구 등의 지원에 힘입어 이차전지산업 도시로 순항을 거듭했다. 다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면서 수요부진에 따른 관련 업계의 경영위기가 포항에도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고환율과 경기침체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일부 관련 기업들은 투자 유보는 물론 가동률도 크게 낮추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환율과 수요 변동성 등이 상존하고 있어 이차전지업계의 어려움이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다. 포항시는 이차전지업계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절묘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포항은 이차전지산업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미 이뤄져 있고, 연구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도 잘 갖춰져 있다. 포스텍을 통한 인력공급과 나노융합기술원,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등과 같은 기업지원 인프라도 뛰어나다. 포항시는 철강을 중심으로 반세기 동안 국가경제를 견인해온 경험이 축적된 산업도시다. 이차전지산업 육성으로 또 한 번 도약을 시도하겠다는 포항시의 설계는 충분한 명분과 설득력이 있다. 이차전지 1등 도시 달성에 사활을 거는 각오가 중요하다.

2025-10-15

입동(立冬)

냇물이 얼기 전에 세상으로 나갈 때 신을 보시 받은 저 나이키 운동화 잘 씻어놔야지 개털고무신 한 벌 더 장만하고 나머지 너덜너덜한 신발들도 꿰매놔야지 보랏빛 곱던 싸리나무 빗자루 손질도 하고 지붕도 덧대어 눈 내릴 때 대비해야지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약점 보완하고 상처나 흠집도 메꿔야지 눈이 내려 길이 끊기면 죽을 수 있다 생각하면 그 무엇도 미룰 수 없지 혹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후학(後學)을 위한 궁극(窮極)의 미덕이 무엇인가 설사 죽는다 해도, 마당에서 눈 맞고 죽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설장(雪葬)이라 말하고 싶은데‘ 가당치도 않겠지 마음 다잡아 하얗게 잊혀질 것 그 이상의 꿈을 꾸며 장작을 팬다 생애에 걸친 악업을 쪼갠다 아궁이와 굴뚝청소도 한다 그 누구를 위해서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겨울이 온다. …… 중구난방, 다방면으로, 무작위로, 치명적으로 인간의 겨울이 온다. 경제적이든, 기후적이든, 인간적이든, 좌와 우에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가리지 않는다. 차라리 얼어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후세에 명징하게 교과서로 남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도 살아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0-15

끝과 시작 사이, 아홉 번째 파도

러시아 화가 아이바조프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를 들여다본다. 바다는 뒤집어질 듯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조각난 배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부표처럼 남은 파편에 매달려 간신히 생을 붙들고 있다. 사람들은 거센 물결에 삼켜질 듯 위태롭지만 기묘하게 붉게 빛나는 하늘은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스며들게 한다. 수평선 너머 붉게 번지는 태양빛은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을 동시에 일깨운다. 문득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떠올린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홉 번째 파도’라는 표현은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끝내 마주해야 하는 죽음과 맞닿은 고독의 절정을 상징한다. 죽음은 끝이면서 동시에 삶의 모든 고통이 멈추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고 우리는 첫 번째에서 아홉 번째에 이르는 물결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 속 인물에게 파도에 휩쓸리고 싶은 충동과 끝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공존하듯, 죽음은 두려움이면서도 해방의 욕망을 품은 여행일지 모른다. 아홉 번째 파도는 유럽 바다 문화에서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최후의 물결이자 신화에서는 가장 거세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 숫자 9는 완성을 뜻하고, 동양에서는 끝과 시작의 경계라 여겨진다. 그래서 아홉 번째 파도는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이자 새로운 시작을 품은 상징처럼 다가온다. 끝이면서도 시작이고 절망이면서도 희망이다. 아이바조프스키의 그림과 로맹 가리의 소설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역설 속에 있다. 붉은빛으로 번져오는 하늘은 단순한 태양의 광휘가 아니다. 인간이 끝내 붙잡고 싶어 하는 마지막 빛줄기이자 소멸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파도를 맞는다. 때로는 예고 없이 덮쳐오는 고난의 물결 앞에서, 때로는 지독한 상실의 소용돌이 앞에서 흔들린다. 대부분의 파도는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고 우리는 다시 숨을 고르며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은 피할 수 없는 아홉 번째 파도가 다가온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지인의 친정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처음에는 이름을 잊고 그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오랜 세월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인의 얼굴에는 지친 그림자가 짙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묻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무력감에 빠졌다. 그녀가 혼자서 슬픔을 삭인다고 생각하니 내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지인의 어깨 위에 아홉 번째 파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그녀 아버지의 육신은 살아있지만 기억이라는 바다는 이미 무너져 내린지 오래되었다. 지인은 무너져 내린 바다에서 작은 널빤지를 붙잡듯 아버지의 손을 애절하게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언젠가 아홉 번째 파도를 건너갈 때, 그것이 두려움의 파도가 아니라 평화의 파도이기를 기원했다. 삶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파도의 연속이다. 내게 아홉 번째 파도는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은밀한 기다림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종말이라면 나는 무엇을 놓아야 하고, 무엇을 끝내 붙들어야 할까. 파도의 거품 속으로 스러지는 순간 나는 과연 소멸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나는 이제 파도를 두려움만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아이바조프스키의 붉은 바다처럼, 로맹 가리가 새들의 죽음을 페루라는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은유했듯이 죽음은 절망만이 아니라 희망의 길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아홉 번째 파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이전의 수많은 파도를 나는 정면으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게 다가올 아홉 번째 파도는 내 삶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아니라, 나를 더 넒은 바다로 이끄는 빛의 물결이 되기를 바란다. /정미영 수필가

2025-10-15

신라의 베짜기 전통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 여성들이 길쌈 내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3대 유리왕 9년에,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두 편으로 나누고, 임금의 두 딸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하였다. 이들 두 편은 7월 16일부터, 매일 새벽에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 시경에 끝냈다. 한 달이 지나 8월 15일이 되면 길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헤아려서, 이기고 진 편을 가리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회소, 회소!’라고 하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가배는 추석의 우리 고유어인데, 이 기사에서 유래한다. 추석에 하는 중요한 행사가 바로 길쌈이었다는 기록이다. 신라시대에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길쌈을 장려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물인 삼국유사에서 여성의 길쌈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찾아보았다. ‘선도산성모’조에는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동국의 첫 번째 임금인 혁거세를 낳았을 것이라고 했고, 하늘나라의 여러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하여 붉은색으로 물들여 관복을 지어 주었다고도 했다. ‘연오랑세오녀조’의 세오녀는 이름부터가 베짜는 여성이다. 동해안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차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본래 해와 달의 정령이었기에 기들이 신라를 떠나자 신라에서는 태양과 달이 사라져 빛을 잃고 말았다. 신라의 왕이 급히 일본에 사신을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의 귀국을 종용했다. 하지만 연오랑은 하늘의 의지로 일본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신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사신에게 주고,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태양과 달이 빛을 되찾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사신이 가지고 돌아온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자 태양과 달은 빛을 되찾았다. 신라의 왕은 이 불가사의한 비단을 나라의 보물로 정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린 장소를 영일현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세오녀는 비단을 짜는 여성이었고, 잃어버린 빛을 찾아준 여성이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만 봐서도 전통적으로 길쌈, 즉 베짜기는 여성의 신성한 역할이었다. 베 짜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한 여성은 왕녀이거나, 신모이거나, 빛의 정령이었다. 실제로 신라에는 직물 제조와 수공업을 관장하는 모(母)라는 관직이 있었고, 그 우두머리는 여성이었다. 또한 당시 신라는 직물을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그 유물이 일본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요소인 의식주의 가장 앞선 요소를 담당한 이는 여성이었다. 경주의 동해안 가까이 있는 동네 두산리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비단을 짜는 여성들이 있어 두산손명주짜기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령화와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도 전통으로 이어가는 그들을 추석 즈음에 기려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0-15

가을철 관절과 순환

가을이 되면 공기가 건조해지고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누적이 되면 근육이 점점 굳기 시작한다. 여름 동안 땀을 많이 흘리며 열이 많던 몸은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혈액순환이 느려지고 관절과 주변의 근육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허리가 묵직하고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날 때 삐걱대는 느낌이 든다. 멀쩡하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느새 힘들고 밤이면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다. 찬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이 시기의 관절통은 단순한 일시적 냉증이 아니라 몸 전체 순환의 경고음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가을철 통증을 한습(寒濕)으로 인한 기혈순환 장애로 본다. 찬 기운이 몸속 깊이 들어오면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통증이 생긴다. 여기에 습기나 노폐물이 더해지면 관절 주위에 딱 달라붙듯 뭉치며 통증이 깊어진다. 특히 허리와 무릎처럼 체중을 많이 받는 부위는 냉기에 취약해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뻣뻣하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관절 안의 윤활이 떨어지고 염증이 반복되면서 퇴행성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통증을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고 치료하지 않으면 계절이 바뀌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만성 상태가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일시적인 진통제가 아니라 순환을 되살리는 근본 치료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와 혈이 원활히 돌아야 통증이 풀린다고 본다. 가을철에는 체온이 떨어지면서 기혈의 흐름이 약해지기 때문에 따뜻한 약재를 이용해 해당 부위를 따뜻하게 해주고 순환을 시켜주는 약재를 추가하면 도움이 된다. 육계로 따뜻하게 해주고 작약으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다. 강활 독활로 관절에 쌓인 습기를 추가로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약재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복용하면 잘 낫지 않는 관절통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활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관절을 덮는 게 첫 번째다. 얇은 옷 여러 겹을 겹쳐 입고 무릎이나 허리에 핫팩을 붙이는 것도 좋다. 찬바닥에 오래 앉거나 무리하게 쪼그려 앉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아침 운동은 조심해야 한다. 밤새 식은 몸은 근육이 수축돼 있기 때문에 바로 운동을 시작하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스트레칭을 하고 걷기나 가벼운 근력운동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저녁에는 따뜻한 물로 반신욕을 하거나 무릎 주변을 온찜질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관절이 뻣뻣해지는 건 단순히 노화의 신호가 아니라 몸이 균형을 잃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을의 관절 관리는 따뜻하게 하고 소통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혈류가 살아나고 기운이 원활해지며 통증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국 관절 건강은 계절의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무릎과 허리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제때 풀어주는 습관을 들이면 겨울에도 몸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유지된다. 한 번 굳은 관절은 풀기 어렵지만 꾸준히 순환을 지켜주면 다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가을의 냉기가 시작될 때 그걸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따뜻하게, 부드럽게, 느리게 돌보는 일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0-15

나를 위해, 나를 바꾸자

본지는 10월 15일부터 ‘김상국의 Wellness와 삶의 질'을 격주로 연재한다. 이 칼럼은 건강지식과 필자의 경험, 여행 체험 등을 함께 담아낸 하이브드리 에세이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웰니스’란 단순한 건강 정보가 아니라,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 균형을 아우르는 통합적 삶의 철학을 의미한다. 필자인 포항 청하면 출신의 김상국은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정년퇴임 때까지 세종대 교수로 일했다.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좋은 습관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조용한 혁명과 같다. 혁명이라고 하면 흔히 깃발과 함성, 피와 땀의 투쟁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혁명은 삶 속에 스며 있는 작은 반복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선택, 술 한 잔 대신 동네 산책을 택하는 선택, 짧은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선택 등이 있다. 바로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큰 흐름을 바꾼다. 결국 인생은 ‘나다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무거운 책임과 일상의 굴레가 커질수록 우리는 간절히 꿈꾸던 모습과 점점 멀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끝내 자신이 바라던 삶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또 역사의 무대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을 보며 깨달았다. 성공은 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뇌는 익숙한 습관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벽을 넘어서는 순간, 습관은 우리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명상하며 자신을 지켜냈다. 그러한 습관들이 그녀를 미국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세웠다. 한국 축구의 자랑 손흥민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발 훈련, 수천 번의 슛 연습, 철저한 식단 관리라는 습관을 지켜왔다. 지금의 손흥민은 타고난 재능보다 꾸준한 습관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내 곁의 제자들 역시 이를 증명한다. 매일 영어 일기를 쓰던 학생은 훗날 교수가 되었고, 또 다른 학생은 글로벌 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천재성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지속적 실천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메타인지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 그리고 노력하면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는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반대로 실패하는 이들은 대체로 고정된 마인드셋(fixed mindset)을 갖고 있었다. “타고난 능력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변화의 문을 스스로 닫는 것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단순한 다짐을 넘어 몸과 마음을 거듭 단련하는 과정이다. 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타인의 단점을 먼저 지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1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완전히 달라졌다. “걸으면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했다“라는 그의 고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그의 얼굴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머문다. 습관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오늘은 그냥 한잔할까?”와 “밖에 나가 걸을까?”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내일의 나를 만들고, 결국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삶의 질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에서 갈린다. 워런 버핏은 세계적인 부호이지만 검소한 습관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는 여전히 중고차를 타고, 햄버거와 체리 콜라를 즐기며,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이웃에게는 관대하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매일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까지 지켜왔다. 지금의 워런 버핏을 만든 것은 돈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최근 나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습관의 힘을 다시금 떠올렸다. 잉카 문명의 길을 따라 홀로 떠나는 여정은 내게 하나의 문답식 여행이다.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은 결국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힘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일상의 껍질을 깨뜨리고, 낯선 나와 마주하게 한다.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습관의 씨앗이 싹트고, 돌아와 일상 속에 심어진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재정비하는 습관의 연습장이 된다. 좋은 습관은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분명한 목표, 전략적인 계획, 그리고 “될까?”가 아닌 “반드시 된다“라는 결심이 있으면 충분하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는 한, 습관은 반드시 우리를 바꾼다. 나를 위해, 나를 변화시키자. 그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과 발걸음 속에 내일을 바꿀 혁명이 숨어 있다. 습관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우리 인생을 새롭게 일으켜 세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0-14

걸음을 멈추고서야

세상은 늘 걷는 자들의 속도에 맞춰 돌아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재촉하며 살아왔다. 지난 금요일, 평범한 계단 한 칸이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헛디딘 발목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시커먼 멍이 자리를 잡았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뼈에 금이 갔고 인대가 파열된 상태였다. 깁스를 하고 3주 동안은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계단 몇 칸, 문턱 하나, 식탁 의자 하나가 이렇게 높은 장벽이 될 줄은 몰랐다. 혼자 병원에 가는 길,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일, 진료비를 수납하고 다시 택시를 호출하는 과정이 하루치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했다. 택시가 오기까지 목발에 의지하여 기다려야 하는 그 몇 분이 유난히 길었고 내 발끝은 사무치게 땅을 그리워했다. 깁스에 갇힌 발을 보며 나는 묘한 고립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는데 나만 정지된 듯했다. 가장 서운했던 건 사람보다 내 마음이었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기다리던 나는 정작 아무에게도 내 고통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근황과 자신의 힘든 상황만 이야기했고 나는 ‘그래, 그랬구나’하며 웃어 보였다. 웃음 뒤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배려해 주리라는 기대는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갔다. 내가 청소하고, 챙기고, 잔소리하던 일들을 대신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사 시간이 되어도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분리수거를 비롯한 많은 집안 일들은 쌓여갔고 더뎌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만 내 발은 꽁꽁 묶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손과 발이 되어주던 일상은 나 혼자 만들어 낸 순환이었구나, 결국 아프면 나만 손해구나 하는 자조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발목은 좀 어때?’라며 문자를 보내오는 친구, 뜬금없이 반찬을 가득 사서 건네주는 친구, 그들의 짧은 안부는 놀랍게도 진통제보다 나를 더 깊이 진정시켰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 한편은 포근하게 데워졌다. 인간관계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행동 하나, 작은 관심 하나, 작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움직이지 못하니 오히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너머로 스치는 햇살의 각도, 마룻바닥을 따라 번지는 먼지의 그림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며 감사하는 내 목소리, 나는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렸고 너무 많이 여기저기 챙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돌볼 시간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없이 타인들만 챙기며 너무 많이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까지 챙기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가 보였다. 3주라는 시간은 짧지만 나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아직 나는 깁스에 갇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을 내려 딛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지만 통증이 주는 무게가 그것을 막는다. 멈춤 속에서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물 한 컵을 먹기 위해 애쓰는 손끝의 섬세한 의지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걷는다는 것은 그저 이동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깁스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이 자유롭다는 것. 두 발이 동시에 땅을 딛는다는 것, 식탁까지 걸어가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평범한 동작들이 이렇게도 눈부신 행위였다는 걸. 몸이 멈춘만큼 시선은 깊어졌고 불편함은 감사의 형태로 변해갔다. 세상이 내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사실을 지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깁스를 풀면 나는 다시 자유로워지겠지만 예전처럼 무심히 걷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이 발끝을 스치는 감각,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숨소리, 길가의 사람들과 스치는 짧은 인사마저 새롭게 느낄 것이다. 아픔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삶을 다시 배운다. 걸음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보게 된 것들, 그것은 나의 쉼이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다. /김경아 작가

2025-10-14

철강산업,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고 회복에도 타이밍이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쌀 생산지 ‘철(鐵)의 도시’ 포항이, 한국 철강산업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미국의 고율 관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추가 관세, 중국의 무차별 저가 철강 물량 공세까지 대외 악재는 중첩되고 있다. 여기에 국내 건설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철강업계의 시름은 바닥을 모르고 깊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철강산업고도화방안을 마련중에 있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까지 추진하면서, 업계는 경영 전략 전반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도 업계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철강산업은 포항 지역경제와 일자리의 핵심 축이다. 최근 생산량이 10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일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역 상권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조업의 디딤돌인 철강이 흔들리면 자동차·조선·건설 등 전방에 있는 연관 산업 모두 타격을 입게 된다. 지역적으로도 경주-울산까지 포함한 해오름동맹부터 넓게는 전국적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와 주요 산업 도시들의 경제까지 흔들리게 된다. 업계는 “이미 포항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NDC 상향까지 더해지면 아예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한다. 최근 배출권거래제 등 각종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반면 일본 등 주요국은 단계적 전환과 대규모 지원을 병행하며 자국의 산업 기반을 붙잡고 있다. 독일 총리도 최근 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을 공개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다. 각국 모두 경기 침체 속에서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한 ‘속도 조절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철강을 ‘관리 대상 산업’으로만 보는 시각이 강하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접근하는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목표는 유지하되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 산업 보호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에서도 철강 경쟁력과 녹색 전환을 동시에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논의 중이다. 지역 정치권과 산업계 역시 제도적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다. 한 지역 재계 관계자는 “산업 기반을 잃고 달성한 탄소중립은 공허한 성과일 뿐”이라며 “현실에 기반한 실용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의 생존은 단순한 지역 현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 나아가 안보까지 직결된 문제다. 탄소중립과 산업 생존이라는 두 목표를 병행하려면, 속도 조절과 대규모 기술 투자·정책 지원도 동반되어야만 한다. 과거 포스코의 철강재로 ‘중화학공업’을 뒷받침해 고도성장을 일궜던 한국이 다시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려면, 환경 목표와 산업 기반을 동시에 지키는 ‘현실적 전환’의 유연성과 더불어 K스틸법 제정 등 국가차원의 철강에 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산업이 버티는 것도 무기한이 아니며, 회복하는데도 타이밍이 있다. 바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0-14

수명 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가리키는 말의 뜻을 가진 빈부격차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데 반드시 극복돼야 할 과제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구성원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빈곤이 심화되면 사회 전체의 불행이 커진다는 의미다. 10여 년 전 한 조사에서 전국 200여 시군구에서 소득 하위 20% 집단의 기대수명이 소득 상위 20% 집단보다 짧다는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72.6세(2023년)다. 남성 69.1세 여성 73.8세며 선진국인 일본, 스위스, 호주 등은 80세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가의 평균수명은 60세 미만이다. 아프리카의 차드는 52.7세, 나이지리아는 54.6세다.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나라에 따라 약 20년 가까이 더 오래 살고 더 빨리 죽는다는 뜻이다. 외국의 사례로 짚어 본 결과여서 실감이 덜 나겠지만 국내서도 이런 수명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의료격차가 수명 격차로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기대수명은 90.11세로 나타난 반면 경북 영덕군은 77.12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의사 수의 절대 부족과 대형병원 등 의료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이 원인이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수명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4

대구시 신청사 설계 논란, 최선의 해법 찾아야

대구시 신청사 설계를 두고 대구시와 대구 달서구청이 갈등을 빚고 있다. 대구시 신청사가 들어설 예정지인 달서구청은 대구시가 공모로 결정한 신청사 설계안이 “대구의 자존심과 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채 전형적인 공공건물에 그쳐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13일 대구시 동인청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신청사는 단순한 공공청사가 아니라 대구 정신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2·28 민주운동의 자유정신, 국채보상운동의 애국정신, 근대화 개척정신 등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시민정신을 담아내야 하나 현재 대구시가 선정한 공모작은 이에 못 미친다”는 주장을 했다. 달서구청은 이보다 앞서 지난 9월 대구시가 공모작을 발표하자 “기대보다 무거운 실망감”이라는 입장문을 내고 신청사 설계 추진 과정에 공론화가 없었음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공공청사는 설계업무 과정이 국토교통부 지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고 설계안 선정도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달서구청이 제시하는 내용이 추상적이고 공공청사 건립의 특성과 행정 절차상 반영이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달서구청장이 신청사 설계안을 문제 삼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내년 대구시장 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이 청장의 정치적 행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대구시민의 오랜 숙원인 신청사를 대구의 정신과 시민의 자부심으로 채우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신청사가 또 다른 관공서 건물로 세워진다면 대구시민이 가지는 실망감도 클 것이다. 공공건물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계는 있겠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구시민이 만족하는 청사를 완성한다면 대구시 행정은 많은 박수를 받을 것이다. 대구시는 설계 공모에 앞서 대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담는 랜드마크가 되도록 짓겠다고 여러 번 약속한 바도 있다. 두 기관은 대립관계가 아닌 대화와 협력의 관계다. 더 좋은 신청사 건축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시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2025-10-14

치의학연구원 입지, 투명한 공모절차 거치길

국민의힘 이인선 대구시당위원장이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 박주민 위원장을 만나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 선정을 ‘단독 지정’이 아닌 ‘공모’ 방식으로 추진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치의학연구원은 치과산업 연구개발의 핵심 기관인 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공모방식)를 통해 입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을 여권 핵심인 박 위원장에게 당부한 것이다. 만약 입지 선정 과정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할 경우 공정성 논란이 일 우려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요청이다. 박세호 대구시치과의사회장은 “치의학연구원 입지는 고도의 과학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공모 없는 지정 방식은 누구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치의학연구원 유치전에는 대구 외에도 부산·광주·천안 등이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현재 ‘치의학연구원 설립 타당성 및 기본계획 수립’을 용역기관에 맡겨둔 상태이며, 이달 중 최종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연구원 후보지와 공모방식을 확정해 내년 초 사업공고를 낼 예정이다. 대구시는 지난 2023년 8월부터 대구시치과의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치의학연구원 유치추진단을 구성해 활동해 왔다. 대구는 과거부터 ‘덴탈시티’라는 명성을 유지할 정도로 비수도권 최고의 치과 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국내 매출 10대 치과 기업 중 메가젠임플란트와 덴티스가 대구에 있고, 전국 의료기기 수출의 18.4%를 대구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치의학연구원이 경북대 치과대학과 병원,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수성알파시티, 한국뇌연구원과 연계할 경우 기초연구부터 임상, 산업화를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치의학연구원의 설립 목적이 ‘치의학 기술의 산업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구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다. 정부는 치의학연구원을 어디에 설립해야 국가 치의학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공모 절차를 통해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입지 선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2025-10-14

마치 ‘범죄도시’ 영화 같은 캄보디아 비극

캄보디아 범죄 단체에 의한 경북도민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충격적이다. 예천 출신 한 대학생이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돼 고문을 당하다 살해된 사건에 이어, 13일에도 캄보디아에 간 상주 출신 30대 청년이 범죄 조직에 납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그저께 “지난 8월 19일 캄보디아로 출국한 상주출신 A(30대)씨와 연락이 끊겼다”는 가족 신고가 지난 8월 22일 접수됐다고 밝혔다. A씨는 출국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가 닷새 뒤인 24일 텔레그램 영상 통화로 가족에게 “2000만원을 보내주면 풀려날 수 있다”고 말한 뒤 다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경찰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이 그를 감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한 예천 출신 대학생은 출국 2주 만에 범죄 조직에 납치돼 고문을 당한 끝에 숨졌다. 그와 함께 붙잡혔다 구조된 한국인 B씨는 “학생이 너무 맞아서 걷지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였다.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고 증언했다. 숨진 대학생은 현재까지 시신조차 송환되지 못하고 있으며, 경찰은 가해자들이 ‘대치동 마약 사건’과도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캄보디아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보이스피싱, 온라인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캄보디아 범죄도시’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이를 두고 마치 ‘범죄도시’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 의원은 최근 SNS를 통해 “이재명 정권이 정치보복에 몰두하는 동안 해외에서는 우리 국민이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올들어 8월까지 330건으로 폭증했다. 이들은 대부분 ‘고수익 해외취업’에 속아 범죄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예상된다. ‘캄보디아 범죄도시’ 사건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대통령실은 13일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에는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 국정원 등 관계 부처 관계자가 참여한다. 경찰도 캄보디아 대사관에 경찰 영사를 확대 배치하고, 국제 공조수사 인력도 보강할 계획이다. 특히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 사망자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코리안 데스크’ 설치 문제는 주권 문제가 얽혀있어 상대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리안 데스크는 해외 경찰에 파견 간 한국 경찰로 현지에서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전담한다. 한인 살인사건 피해자가 가장 많은 필리핀에 2012년 처음 만들어져 현재 3명이 활동 중이다. 태국 경찰에도 한국 경찰관 2명이 파견돼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늦게라도 정부가 ‘캄보디아 범죄도시’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우리 국민이 국제 범죄조직의 주 타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국민의 피해실태를 상세하게 파악해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0-14

걱정이 삶에 주는 의미

‘걱정에 대한 전략을 모르는 사업가는 요절한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 알렉시 까렐(Alexis Carrel) 박사의 말이다. 현대인의 열 명 중 한 명꼴로 신경쇠약 증세를 갖는 경우가 많고, 그 중 대부분은 걱정과 심리적 갈등이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가정주부, 수의사, 건설 현장 벽돌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원 내과 의사를 찾아오는 70퍼센트는 불안감이나 걱정만 없애도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신경성 소화불량, 위궤양, 심장질환, 불면증, 여러 가지 두통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걱정에 대해 조명한 또 다른 책은 칼 메닝거 박사가 쓴 ‘내 안의 적’이다. 근심, 좌절, 증오, 원한, 저항, 불안에 의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에 대해 뜻밖의 사실들을 보여준다. 걱정은 완고한 성격의 사람마저도 병들게 할 수 있다. 북군 그랜트 장군은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그의 병을 발견했다. 그랜트 장군은 남부 수도 리치몬드 시를 아홉 달 동안 포위하고 있었다. 남군 리 장군의 부대는 기진맥진하고, 굶주리고, 녹초가 되었다. 리 장군의 부대원들은 리치몬드 시내의 면화와 담배 창고에 불을 붙이고 무기고를 태우고서 치솟는 불길이 어둠을 밝히는 동안 그 도시에서 탈출했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로 편두통과 정신적 혼란을 겪었던 그랜트 장군은 불면, 우울감 등으로 전시 외상 증후군에 시달렸다고 한다. ‘걱정은 우리 마음의 그림자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내일의 일, 사람 관계, 건강, 돈, 일의 성과까지 걱정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 감정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걱정은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게 하는 인간 본연의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걱정은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생각의 반복’으로 정의된다. 문제는 그 양과 지속 시간이다. 걱정이 일정 시간을 넘어서면 불안, 스트레스, 불면, 위장장애 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생산성과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리더나 조직 책임자일수록 걱정이 많다.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걱정이 통제 불가능한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 리더십의 힘은 약해진다. 토마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실패가 걱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생각했다. 걱정을 배움의 신호로 바꾸는 태도가 그를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었다. 우리의 걱정도 마찬가지다. 걱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을 ‘준비의 동력’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걱정은 미래를 대비하는 경고등이지만, 그 불빛에만 매달리면 시야를 잃는다. 걱정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경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걱정은 그림자처럼 따라 오지만 우리가 방향을 잃지않는 한 그 그림자는 우리를 삼키지 못한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꿈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걱정은 피해 갈 수 없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만드는 지혜로 내 마음을 경영해 나가면 건강한 삶이 될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0-14

참새와 제비

참새와 제비는 같은 참새목으로 분류되지만 그 생태는 아주 다르다. 그러면서도 수천 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생 조류이긴 하지만 우리의 생활반경 안에 들어와서 삶의 일부처럼 된 새들이었다.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은, 더구나 도시에서는 참새나 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관심거리도 아닐 터이다. 그들에 대해 애틋한 정을 가진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참새도 제비도 그냥 보통의 조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비는 한국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여름 철새였다. 통계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옛날에 비해 10%도 안 되게 개체수가 줄어든 것 같다. 흔할 때는 무심히 보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제비가 보이면 옛 동무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예부터 제비는 길일인 삼짇날(음력 3월3일)에 와서 중양절(음력 9월9일)에 강남으로 간다고 해서 길조로 여겼다. 야생조류이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함께 살아왔다. 매나 뱀으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받는 대신 농작물에 해가 되는 벌레를 잡아먹어서 공생관계를 형성해온 셈이다. 새끼를 기르는 제비가 하루 종일 잡아 오는 벌레가 350마리 정도라고 하니, 한 쌍이 두 번 번식할 동안 필요한 벌레의 수는 상당한 정도인 것이다. 귀소본능이 강한 제비는 작년에 왔던 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우리가 보는 제비는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진 셈이다. 찬바람이 불면 흔히들 강남으로 간다고 하는데, 겨울 동안의 서식지는 주로 동남아 지역이고 더러는 호주까지도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악천후를 만나 죽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흐리고 바람 거친 가을 날 제비들이 많이 나는 것은 아마도 먼 여정을 대비한 비행연습인 것 같다. 참새는 마을 근처나 들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텃새다. 귀엽게 생겼지만 농민들에게는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며 벼나 조, 수수 같은 농작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모택동은 참새 소탕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새들을 모조리 잡아버리자 병충해가 창궐해서 오히려 농사를 망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참새는 잡식성이라 곡식만 먹는 게 아니라 해충도 잡아먹는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참새들이 공짜로 곡식을 먹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참새라는 이름은 참 친근감을 준다.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지만 그런 이름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기 때문에, 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참새가 아닐까. 참새 말고도 까치나 비둘기 같은 여러 종류의 텃새들이 있고 철새들도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가장 가까운 참새를 그 모든 새의 표준으로 인식했던 게 아닐까 싶다. 시국이 몹시도 불안하고 암담하다. 건국 이래 나라의 정체성이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린 적이 없었다. 시국만큼이나 흐린 날씨에 비행 연습을 하는 제비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0-14

한국 청년 무덤 된 캄보디아

‘통장을 개설해 가져가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8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며 1인1실 호텔 숙소를 제공한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청년들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장기간 계속된 경기 침체와 각종 스펙을 갖춰도 넘기 힘든 취업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가 적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학업을 마치면 직업을 찾아 독립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 처한 20대에게 외국생활도 체험하고 거기서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이 온다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렇기에 인터넷 공고와 지인의 권유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국 청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떠나기 전 그렸던 희망적인 미래는 캄보디아에 도착하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 고액 임금과 쾌적한 숙소, 큰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통장은 미끼였다. 현실은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가담하라는 강요와 협박, 이를 거부하는 순간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최근 예천 출신의 대학생이 위와 같은 과정 속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단 이 청년만이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2000여 명 안팎의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 곳곳에 독버섯처럼 들어선 ‘범죄공장’에 감금된 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종 불법행위를 강요받고 있다. 늦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현황 파악과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니, 경찰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물론 관련된 국가기관이 모두 나서 위기에 빠진 청년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건 방기해선 안 될 국가의 책무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4

중소도시 유통업 벼랑끝 위기 대책은 없나

포항에서 가장 큰 유통점의 하나인 농협 하나로유통 하나로마트 양덕점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2012년 사업비 650억원을 들여 지상 6층 건물을 짓고 영업을 시작한 양덕점은 포항 창포·두호·장성·양덕동 일대를 아우르는 농협 직영 매장이다. 신선한 지역농산물의 직거래 매장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인기 매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흑자 운영을 했던 처음 출발 때와는 달리 온라인 시장 확대 등 유통 플랫폼의 변화가 일면서 최근 수년간에 걸쳐 연 25억~3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누적 적자가 400여 억원에 이르면서 본지 보도에 의하면 지금은 폐업을 심각히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소도시의 유통업이 위기를 맞이한 것은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다. 하나로 유통점과 같은 마트들이 폐점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포항뿐 아니라 중소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최근 전국 17개 매장을 철수키로 결정한 홈플러스의 폐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홈플러스는 대구 내당점 폐점에 이어 동촌점 페점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구에서 동아백화점을 인수한 이랜드리테일도 자산유동성 확보를 위해 부동산 매각에 나선 것으로 소문 나 있다. 대구백화점도 동성로 소재 본점을 52년만에 폐점 결정한데 이어 최근에는 경영권을 포함한 부동산 매각을 공개했다. 이러한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위기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온라인 쇼핑의 등장과 즉시 배달, 구독서비스 등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가운데 부동산 등 시장경기 침체까지 겹친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불과 10여 년전 만해도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규제에 나섰던 일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시장의 환경변화를 넘어 소비자 행동의 변화로 인한 새로운 유통구조의 대전환기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그에 맞는 정부 정책이 나와야 한다.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을 경쟁구도로 보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대형마트, 전통시장, 온라인시장 등이 상생할 정부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2025-10-13

예천 대학생 ‘캄보디아 참극’, 국가는 뭘했나

캄보디아에서 경북 예천 출신 한 대학생이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돼 고문을 당하다 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살인 혐의로 중국인 3명이 기소됐다고 하지만, 피해자 시신은 아직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유족은 피해자의 시신 인도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이달 중 본청 과학수사대와 함께 캄보디아 현지에서 공동 부검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천 집에는 현재 피해자 아버지와 형이 사고 처리를 위해 며칠째 집을 비워 할머니 혼자 있다고 한다. 엄마가 없어 어릴 때부터 피해자를 키워온 할머니는 손자의 사망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웃 주민들은 “평소 한없이 착한 청년이었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돈을 벌기 위해 친구의 꾐에 빠졌던 것 같다”며 슬퍼했다. 피해자는 지난 7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다녀온다며 출국했고 2주 만에 현지 범죄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가족은 범인들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고 현지 경찰과 대사관에 신고했지만 끝내 구명하지 못했다. 캄보디아는 치안이 불안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위험 국가다.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교민사회는 자경단(천마)까지 꾸려 맞설 정도라고 한다. 이 나라에는 우리 교민 1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외교부가 박찬대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취업 사기 이후 감금당했다는 신고가 지난해 220건으로 폭증했다. 올해는 지난해 수준을 이미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손을 쓰지 않고 방관하다시피 했다. 현지에서 위험에 처한 국민이 도움을 요청할 곳은 대사관인데, 현재 캄보디아 대사 자리도 수개월째 공석이며 대사관 근무 경찰 인력은 고작 3명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대학생 참극 사건에 외교적 총력 대응을 지시했지만 아직까지 별 성과는 없다. 늦었지만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피해자 시신만이라도 하루빨리 유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5-10-13

백세시대, 노년의 공부

백세시대의 명암(明暗)이 교차되고 있다.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이 개선된 것은 축복이지만, 사회적 변화·경제적 빈곤·정신적 고독 등은 커다란 도전이다. 백세시대의 노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관심과 지원 못지않게 개인의 노력, 특히 ‘노년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는 평생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첨단과학기술이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다. 청년과 노인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문맹(digital illiteracy)’은 단순한 불편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적 소외를 초래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실질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디지털 문맹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우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이 나이에 뭘 배우겠느냐’는 생각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며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다. 청년들에게 인생의 멘토(mentor)가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독선에 빠진 꼰대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민주주의·개인주의·수평질서가 지배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사고와 능력을 가질 수 있을 때 노년의 삶도 행복해진다.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첨단지식을 배울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다. 노년의 공부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마음공부’이다. 노년의 품격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피할 수 없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신체건강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신건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노인이 되면 몸이 유연성을 잃듯이 생각도 점점 더 굳어진다. 노년의 ‘신념’은 자칫 ‘아집(我執)’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을 ‘싸가지 없다’고 비판하면서 ‘꼰대가 되어있는 자신’은 왜 돌아볼 줄 모르는가? 여기에 노욕(老慾)까지 겹친다면 구제불능이다. ‘인생의 가을’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이다. 하이데거(M. Heidergger)는 “죽음이 삶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고 했고, 톨스토이(L. Tolstoy)는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갈 때 삶의 성장과 초월이 일어난다”고 했다. 영안실에서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명복을 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죽은 자도 산 자에게 “제대로 살다가 오라”고 충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의 본래성’을 회복함으로써 거짓된 삶으로부터 진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 노년의 삶은 평화로워야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공부 여하에 달려 있다. 마음공부를 위해서는 자연과의 대화도 좋고, 명상을 통한 자기성찰도 좋으며, 책을 통한 성현들과의 만남도 좋다. 마음공부를 일상화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자유인으로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0-13

질투는 나의 힘

칼 융(Carl Jung)의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가면’을 뜻한다.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나’이자, 사회 속에서 나의 여러 역할을 상징한다. 직장인, 연인, 친구, 부모···. 이러한 각 관계마다 우리의 얼굴은 다른 가면을 쓴다. 내가 착용한 가면은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진짜 나’를 점점 억압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그 가면을 진짜로 착각하기 시작할 때다. 가면에 억눌린 진정한 자아는 ‘그림자(shadow)’로 밀려나 무의식의 어둠 속에서 분노와 질투, 열등감의 형태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어둠의 그림자로 밀려난 나의 자아가 형성한 것 중 ‘질투’가 있다. 질투는 타인의 존재 앞에서 드러나는 자기 결핍의 자각이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고 불편해지는 이유는, 내 안에 그것을 향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페르소나를 깊게 쓴 사람은 질투를 강하게 느낀다. 겉으론 완벽한 척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불안’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이 바로 질투의 연료인 셈이다. 질투를 떠올릴 때, 우리는 불안과 부끄러움을 함께 경험한다. 불안의 연료를 태우고 피어나는 질투라는 연기는 우리에게 부정적 감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만든다. 이런 질투 감정을 다르게 맞이하게 해준 사람이 시인 기형도이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입속의 검은 잎, 1989)을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질투가 삶을 살게 하는 힘이었다니! 질투는 가면이 깨질 때 나는 소리이며, 아픔 속에서 나타나는 진정한 자아이다. 질투가 병든 감정이 아니라, 나의 참모습임을 기형도는 자신의 입속의 검은 잎을 통하여 말해 주었다. 그렇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내가 다시 일어나서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게 해주는 그 무엇인 셈이다. 질투를 온전하게 내 것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질투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명절을 지내고 나면 보통은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 무기력증의 상당 부분은 질투로 소비한 감정의 후유증 때문일 수 있다. 간만에 만난 지인, 친척, 친구들이 늘어놓은 자랑질로 인하여 온통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력증이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질투의 감정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마음껏 질투를 하자. 불안을 태우지 말고, 이제는 질투를 연료 삼아 태우자. 아래는 ‘질투는 나의 힘’의 전문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니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굿바이 형도! /공봉학 변호사

2025-10-13

높은 관세와 비자 폭탄이 제거되기를

지난달 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직 단기 취업(H-1B) 비자 제도 개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문직 비자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의 100배인 10만 달러(1억4000만 원)로 올리는 행정명령을 지난달 21일부로 발효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취업 중인 해외 기술 전문가와 기업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조지아주 사태로 개선된 비자 정책을 기대했던 국내 기업과 기술자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과 직원들은 급하게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고, 이는 미국 내 자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용 불확실성은 미국 내 투자와 고용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미국 내 기업과 해외 취업자의 축소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 정책으로 애플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구글 등 외국 전문 인력을 많이 고용한 업체에서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해 기업마다 수천에서 1만 건 이상의 전문직 단기 취업(H-1B) 비자를 활용하는 글로벌 기업체는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지금도 인력 충당이 어려워 인도, 중국 등에서 수만 명의 인력을 공급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실정이다. 아마존은 전문직 단기 취업 비자 소지 직원들에게 “해외 출장을 자제하고 현재 해외에 있는 직원은 21일까지 반드시 미국으로 복귀하라”고 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사도 “H-1B 비자 소비자는 미국 내 머물라”며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내 전문직 단기 취업 비자를 활용하는 여타 기업체로 확산할 조짐이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정책을 추진한 정부조차 파장이 너무 커 부랴부랴 “해당 수수료는 오직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며 기존 비자 소지자나 갱신 신청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발표하며 수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수수료가 존재하기에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비자 폭탄을 틈타 중국은 발 빠르게 해외 인재 영입에 나섰다. 미국 정부의 비자 조치와 연구비 삭감에 따라 하버드대 류쥔 교수와 왕르야오 교수 등 중국인 학자들이 잇달아 귀국하고 있다. 영국도 “세계 5대 명문대 출신 또는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인재를 대상”으로 전문직 비자 수수료 면제를 검토하고 나섰다. 이러한 추세는 우수 인재가 필요한 국가로 확산할 것이다. 미국의 관세를 포함한 비자 정책은 다른 국가들은 산업체만 짓고 미국이 필요한 시설에 돈만 투자하고 일하는 곳에는 미국 사람만 쓰고 그 이익금은 미국이 갖겠다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망상의 발로다. 미국에는 전문 기술자가 없는데, 이러한 정책으로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미국이 바뀔 수 있을까.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임을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관세나 비자 정책은 트럼프 2기의 수명을 단축하는 법안들이다. 자유와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 미국 법원에서 판결로 높은 관세와 비자 폭탄이 제거되기를 희망한다. 힘을 가졌다고 함부로 휘두르면 자신이 다친다. 트럼프의 정책으로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공정한 룰에 따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