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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의 교훈

등록일 2026-04-09 17:37 게재일 2026-04-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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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한동대 교수

‘벌거벗은 임금님’, 누구에게나 친숙한 안데르센의 동화다. 권력의 위선을 이보다 더 쉽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우화는 드물다. 임금의 허영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허구적 상상력에 매료되고 마침내 벌거벗은 채 행진을 감행한다. 모두가 임금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권력 앞에서 사람은 진실보다 먼저 안위를 택한다. 위선과 침묵은 그렇게 새로운 질서가 된다. 


마침내 한 아이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임금님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그 한마디는 권력 앞에 길들여진 침묵을 깨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오늘날 국제정치에도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군사행동에 나서고, 그 여파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누군가는 생명을 잃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시민들조차 유가와 환율, 금융시장의 동요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전쟁은 총성이 닿는 곳을 넘어, 평범한 일상과 오랜 기간 형성해 온 국제질서까지 함께 허문다.


그런데도 세계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사라지고, 외교적 차원의 공식 논평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힘센 국가의 일방적 폭력을 잘못이라 부르지 못한다. 냉혹한 국제 질서에서 국가의 힘은 곧 명분이 되고, 침묵은 생존 전략이 된다. 


물론 국제정치는 냉엄하다. 국가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 특히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모든 사안을 도덕적 언어로만 재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안보와 외교, 경제가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 있는 자의 행동에는 관대하고, 약한 자의 저항에는 엄격한 국제질서는 정의롭지 못하다. 원칙이 국력에 따라 달라지고, 도덕이 진영에 따라 변한다면, 그 세계는 오래 버틸 수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사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권력은 늘 화려한 언어와 장엄한 명분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사람들은 거기에 압도되고, 침묵은 신중함으로 포장되며, 비겁은 현실주의라는 합리적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 장식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 분명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임에도 전 세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진을 바라보는 군중들처럼 숨죽이며 다음 행보를 지켜본다. 지금 우리에게는 잘못된 전쟁 앞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동맹이라는 이유로 판단까지 위탁하지 않는 이성, 힘 앞에서도 원칙을 접지 않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벌거벗은 임금의 행렬은 늘 성대하다. 주변은 간신들의 아첨과 박수로 가득하고, 침묵은 충성으로 오인된다. 그러나 그 행렬을 멈추는 것은 대포도, 군대도 아니다. 단 하나의 진실한 외침이다. 지금 전 세계가 기다리는 말도 결국 그것일지 모른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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