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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보수의 품격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혐의에 대해 1심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우리 헌정사의 뼈아픈 기록으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세부적인 판결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중형 선고는 다수 국민들이 이미 예상했던 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책임 있는 공당의 당대표는 1심 판결일 뿐이라고 판결을 폄하하고, 윤 전 대통령 측은 법원의 선고에 대해 법치 파괴라고 주장한다. 보수 정권의 대통령과 보수 정당의 대표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현실은 기묘하다. 법치란 내가 이길 때뿐 아니라 질 때도 작동하는 일관된 시스템이다. 제도 안에서 다투되, 결과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법치다. 법치주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뼈대다. 법치를 부정하니 보수도 분열하는 모양새다. 어떤 조직이든 존재 이유와 철학을 부정하면 그 집단은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근본적으로 묻고 싶다. 한국 보수 정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을 외치지만, 실상은 반공주의와 발전국가 담론이 한국 보수주의의 중심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지난 수 십년간 보수 집회에서 나온 구호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90년대 말부터 등장한 새로운 보수주의 - 일명 뉴라이트가 보수의 혁신을 시도했지만, 참여민주주의와 평등을 불신하는 엘리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맹신으로 변질되었다. 결과적으로 뉴라이트는 보수 진영에서도 버림받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민주당 정권동안 한국의 보수주의는 철학적 사유를 잃어버린 채 적대적이고 자극적인 언어에 압도되었다. 영국의 보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보수주의를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훼손과 폭력으로부터 지키려는 성향’으로 정의한다. 그러한 보수주의의 실천은 구호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나타나며, 그 책임은 법과 제도에 대한 존중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영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자발적으로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고 해외 파병까지 자원하는 것은 보수적 가치의 표현이다. 이러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법치 파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의 품격은 ‘우리 편 무죄’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판결을 존중하며, 제도 안에서 책임지는 태도다. 상대를 빨갱이라는 언어로 규정하는 쉬운 길 대신, 우리 사회의 일자리·교육·돌봄·산업 전환 같은 어려운 의제와 관련해서 어떤 정책이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인지 고민하고 길을 제시하는 자세다. 보수가 진짜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제도의 권위다.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보수를 ‘극우’라 부른다.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2025년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점거 폭동의 공통점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극우주의 집단의 반민주적·반사회적 폭력행위였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보수 진영의 철학과 문법을 바꿔야 할 때다. 보수는 품격이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2-26

행정통합, 속도보다 방향이다

행정통합이라는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원과 각종 특례를 약속하자,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인들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대구·경북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무리하게 과속 페달을 밟는 듯 하다. 행정통합은 속도전이 되어서는 안된다.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숙의 과정 없이 추진되는 행정통합은 지역 경쟁력을 높이기는커녕, 새로운 갈등과 지역 간 양극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광역단체의 외형을 키우는 문제가 아니다. 행정 권한의 재배분, 재정 구조의 변화, 지역 공공서비스의 재편 등 주민의 일상과 직결된 사안이다. 한 번 추진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인 만큼, 그 파급 효과는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재 논의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 서둘러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합의 실질적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냉정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경북 내 여론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북의 여러 지역에서는 통합 이후 대구 중심의 행정 집중화, 경북 북부 지역의 소외, 재정 배분의 불균형, 지역 정체성 약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 이후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 공론화 과정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지방자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 지원과 특례 보장은 분명 매력적인 유인책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일 수 밖에 없다. 통합 이후 재정 부담을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 행정 효율이 실제로 개선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별개의 문제다. 준비되지 않은 통합은 불필요한 비용 증가, 행정 혼선, 조직 비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대했던 시너지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 책임과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현재의 행정통합 논의가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 일정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 정치적 일정에 맞춰 졸속으로 진행될 위험에 놓여있는 것이다. 특히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경우 대구시장의 부재로 이철우 도지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행정통합은 선거용 구호로 소비될 사안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결정이 정치적 계산에 좌우된다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은 담보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세밀한 설계다. 통합의 필요성, 단계별 추진 방안, 통합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까지 투명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충분한 정보 공개와 숙의 과정 없이 추진되는 통합은 명분을 얻기 어렵다. 발묘조장(拔苗助長). 급한 마음에 식물의 싹을 억지로 잡아당겨 말라죽게 한다는 의미로 성급함이 일을 그르치게 한다는 고사성어다. 이미 국회로 넘어간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는 지금이라도 속도를 늦추고, 차분히 절차와 내용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신중하지 못한 통합은 오히려 지역의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2-12

준비되지 않은 김 부장들에게

바야흐로 지방선거의 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각종 현수막들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지역 정치인들의 문자 세례와 각종 여론조사 전화가 휴대폰을 괴롭힌다. 각자가 ‘준비된 일꾼’, ‘검증된 후보’, ‘지역의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들이 왜 지방선거에 나오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대부분이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정책들을 나열하지만, 정작 지역의 미래와 장기적 성장 전략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다. 지방선거를 약 4개월 가량 앞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작년 연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가 화제를 모았다. 많은 직장인들이 극 중 김 부장이라는 캐릭터에 격한 공감을 표했다. 대기업 임원이 되기 위해 평생 직장에서 헌신했지만, 결국 임원이 되지 못하고 조직에서 버림받는 김 부장에 대해 시청자들의 동정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 드라마를 분석해보면 극 중 김 부장은 대기업 임원이라는 자리에 대한 욕망이 있을 뿐, 회사의 장기 전략이나 조직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비전을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는 꼰대형 리더십으로 그려진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는 김 부장이 임원을 달지 못한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 지방선거에도 수많은 김 부장들이 출사표를 던진다. 자신이 지역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기본이고, 과거의 치적을 열거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어필한다. 물론 그동안 정말 애썼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역사회의 리더십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갈수록 벌어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양질의 일자리 부족, 청년 인구 감소, 지방 소멸 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지역의 난제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농경시대의 경험이 산업사회에 도움이 될 수 없듯이 지금까지의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미래 성장 전략이다. 비전 없는 지도자가 위험한 이유는 이들이 지역의 장기적 발전과 무관한 일들을 마구잡이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무능력한데 부지런한 리더가 얼마나 최악인지 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드라마 속 김 부장처럼 지역의 리더십들은 언제나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각종 준공식과 행사 참석, 주민 간담회 등 쏟아지는 보도자료로 성과를 연출하는 동안 지역의 미래 비전은 서서히 동력을 잃는다.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역 청년들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지역의 권력 집단과 기성세대들의 입맛에 맞춘 공약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혁신이 어렵다. 준비되지 않은 김 부장들에게 묻고 싶다. AI가 노동을 대체하고, 디지털 플랫폼이 모든 산업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 지역의 미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상권 활성화’, ‘청년 유입’, ‘기업 유치’ 등 허황된 공약이 아닌,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궁극적인 체질개선 방안이 비전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김 부장을 임원으로 만들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1-30

인서울 대학 경쟁은 공정한가?

‘공정’은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였다. 이 단어는 경쟁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되었고, 평가의 잣대가 되었다. 선거에서, 학교에서, 채용과 승진의 장에서 공정은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해졌는가.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격차는 더 벌어지고, 분열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왜곡된 공정이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노력과 능력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승자에게 정당화된 우월감을, 패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치심을 남긴다. 성공은 자격이 되고, 실패는 낙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서열은 고착화되고 공동체의 연대는 느슨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영역은 교육 분야다. 그중에서도 대학 입시는 극도로 민감한 공정의 최전선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문자 그대로의 계급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오늘날 ‘서연고서성한’으로 시작되는 대학 서열은 ‘태정태세문단세’로 암기되는 조선왕조 계보보다 더 유명하고 확고한 계급 체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학 서열화는 공정한 입시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인서울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의 격차에서 공정의 허상은 보다 명확해진다. 대학의 소재지는 능력과 가능성을 대신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교육 수준이 아닌 대학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인서울 여부는 능력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지방 대학은 2등 시민을 양산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감춰진 공정 담론은 지역과 서울 간 교육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애써 정당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채용과 승진을 넘어 삶의 경로를 결정한다. 한 번 형성된 서열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사람들은 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오늘날 사회 구성원들이 인서울 대학, 인서울 직장, 인서울 아파트 구입을 목표로 경쟁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서울 경쟁에서 승자의 명예와 패자의 수치는 간극이 너무 크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거의 없다. 공정 담론이 쉽게 분노와 혐오의 언어로 변질되는 이유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려면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인서울 대학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교육의 질보다 대학의 위치를 먼저 따지는 사회는 건강한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우리는 공정한 민주 시민인가. 공정은 과소 평가되는 존재들에 대한 차별없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지리적 위치가 삶의 서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역과 학교를 넘어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공존의 문법이어야 한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