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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언어, 무너지는 정치

등록일 2026-03-26 15:59 게재일 2026-03-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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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한동대 교수

정치의 위기는 정치인들의 말에서 비롯된다. 말이 거칠어지면 생각과 행동이 과격해진다. 그렇게 정치는 전쟁이 된다. 전쟁의 언어는 정치의 기본 요소인 ‘대화’와 ‘타협’을 ‘나약함’과 ‘배신’으로 평가절하한다. 정치를 잃은 사회는 설득의 방법을 망각한다. 어느 순간 우리 정치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잃었다. 

최근 보수 정치인 장예찬 씨가 유튜브 방송에서 보수 논객 조갑제 대표와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등을 겨냥해 “늙은이들이 제정신인가”라고 비난해 논란을 키웠다. 정치적 입장 차이를 논리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닌, 연령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치인들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공격 방식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의 배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세대·성별·국적·지역·학력·직업 등이 그것이다. 정치적 공세의 초점이 논리나 사실이 아니라, 상대의 배경으로 이동하는 순간 그 말은 혐오의 언어가 된다. 

정치인들의 민망한 언어 수준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현 정부의 정동영 장관도 과거 노년층을 향해 투표장에 가지 말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다. 노인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말은 비단 특정 집단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늙음’을 모욕의 무기로 쓰는 사회는 결국 모든 시민에게 “당신이 속한 집단도 곧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보낸다. 이렇게 공동체의 안전장치는 해체되고, 사회적 갈라치기는 확대된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정치에 스며들면 정치의 목표가 바뀐다. 상대를 설득해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악마로 만들어 제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악마를 상대할 때는 예의도 팩트체크도 필요 없다. 과장과 조롱, 능멸과 낙인이 오히려 쾌감을 준다. 정치는 논증이 아니라 감정적 비난의 경연장이 된다. 그 결과 물가·일자리·교육·돌봄·지역 소멸 같은 민생 이슈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정치적 진영 논리 뿐이다.

문제는 이 언어가 정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막말이 유튜브와 SNS에서 소위 ‘잘 팔리는 언어’가 되면, 종교인·연예인·지식인들도 여기에 합류한다. 특히 유튜브 쇼츠로 대표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영상의 호흡이 짧아질수록 말은 독해지고, 정치는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들을 악마화할수록 조회수는 증가하지만 사회적 신뢰는 고갈된다. 무너진 정치 언어의 품격은 공동체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오늘날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팬덤 정치는 종종 막말을 솔직함이나 사이다로 포장한다. 그러나 막말은 가장 값싸고 빠른 동원 기술에 불과하다. 혐오로 얻는 지지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정치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정치인의 말은 공동체의 표준어다. 여야 할 것 없이 공당이라면 말의 품격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논쟁적 발언이 아니라 인격 모독과 집단 비하적 발언에 대해서는 즉시 책임을 묻고 사과해야 한다. 

결국 마지막 책임은 시민에게 있다. 정치인의 막말은 조회수와 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혐오의 말로 무너지는 것은 상대 진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품격이다. 우리 편이라는 이유로 정치인의 막말을 눈감아주면 다음 막말의 대상은 내가 될 수 있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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