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의 가슴에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서구 사회에도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이 있지만, 부모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는 어버이날은 한국식 정서이자 전통이다. 그러나 올해 어버이날을 맞이하는 마음은 예년과 달리 무겁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하나뿐인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발현된다는 데 있다. 몇 년 전부터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악성 민원을 제기하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각종 민원들의 홍수에 현장체험학습과 체육활동은 위축되어 유명무실해졌다. 급기야 감당하기 힘든 학부모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초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대로는 공교육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자녀들이 이를 배운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교사를 불신하고, 정당한 교육행위를 문제 삼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 역시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잘못된 행위를 해도 부모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왜곡된 확신을 자녀에게 심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인지 냉정히 물어야 한다.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보호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구입한 손수건을 곱게 포장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부모님과 같은 분이니, 선생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그 한마디는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부모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는 지금까지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부모들은 교사를 신뢰했고, 교사들은 그 신뢰에 책임으로 응답했다. 그 믿음 위에서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를 오가며 성장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하나라는 뜻이다. 오늘날 군주는 사라졌지만, 스승과 부모가 한 사람의 성장을 함께 이끈다는 본질적 가치는 시대를 초월한다. 5월에 어버이날(8일)과 스승의 날(15일)이 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놓인 것도 이 같은 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두 기념일이 같은 계절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는, 부모와 스승이 결국 같은 뿌리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와 스승은 대치하는 존재가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여야 한다. 가정과 학교가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할 때, 아이는 비로소 건강하게 자란다. 과잉보호의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는 실패를 견디는 힘을 잃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길러주는 데서 더 깊어진다.
어버이날에 다시 묻는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아이들에게 물려줄 값진 유산은 무엇인가?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아는 아이, 실패 앞에 타인을 탓하지 않는 아이, 부모와 스승 모두의 은혜를 함께 간직하는 아이 — 그것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남겨야 할 유산이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