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대형산불의 교훈
봄이 되면 상춘객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새봄 즐기기에 야단법석일 때, 반면에 강원도와 경상도 임업직을 비롯한 상당수 공무원들은 주말도 반납한 채 긴장된 날들을 보내야 한다.
2000년엔 강원 삼척 등 동해안 일대를, 2005년엔 낙산사를 전소시키며 보물 동종까지 녹여 버리고, 2019년엔 강원 고성 속초 일대를, 2022년엔 울진 삼척 일대를 휩쓸면서 3만여 ha를 불사르고야 막을 내린 참담한 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3년 만인 을사년 3월 22일 의성에서 발화된 역대 최악의 산불이 동해에 이르도록 초토화한 대참사가 발생했었다.
강풍 따라 불꽃 휘저으며 수백미터 먼곳까지 불덩이 날아가
산불에 강하고 구황 식량 제공하는 참나무
가을 금수강산 연출
한국인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편애 임업 정책 이제는 대변환을
작은 불씨가 7~8일간에 걸쳐 10만여 ha(994.9 ㎢)를 태우면서 사망 28명 부상 32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5개 시군의 산야를 휩쓸었다. 주택 4458채 피난민 3만 6674명, 국가 유산 31건, 피해액 1조 8300억 원을 기록한 대재난이었다.
주로 인간의 잣대로 조성한 산림들이 일으킨 재난이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그간의 임업 정책에 대 변환점을 찍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독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서 발생하는 수관화(樹冠火·Crown Fire)는 폭발음 없는 소이탄(燒夷彈)이다. 마른 잎에다 화력이 강한 송진을 함유한 생 솔잎까지 버무려서 고열을 내며 강풍 따라 이리저리 불꽃 휘저으며 하늘을 날아다닐 때의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형과 바람 따라 회오리칠 때는 거대한 불기둥이 70m 이상 치솟기도 해 불덩이를 비행시켜 수백 미터 떨어진 먼 곳까지 마구 퍼 나른다. 웬만한 소방 기법으로서는 불가항력이다. 송림이 다 태워질 때까지, 아니면 흡족한 비가 내릴 때까지는 속수무책이다.
◇ 소나무를 유독 좋아하는 국민성의 문제점
소나무는 보통 12월부터 4월까지 2~3년 묵은 잎을 말려서 떨구는데 상당수는 수관층에 끼어얹처서 싱그러워야 할 봄 산색(山色)을 흐릿하게 퇴색시키는가 하면 불이 나면 수관화로 옮겨 번져 대형산불을 유발한다.
녹색 결핍 시대를 겪은 탓인지 2014년 한국갤럽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나타났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국민성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데다 고가의 송이버섯 생산 욕구로 사유림 소유자들의 청원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작년의 대재앙은 소나무 단순림 분포가 지나친 탓이다.
가장 건전한 산림은 혼효림(混淆林)이라고 학술적으로도 결정된 이론이다. 이는 다양한 품종의 식물들이 저희들 개개의 조건에 적합한 지형지물에서 왕성하게 생존하면서 저들끼리의 유대를 형성해 건실하게 공존하는 것이다.
식물세계든 인간세계든 다양성 속의 공생과 상생으로 건실한 세상을 창조 유지할 수 있음이다. 이쯤에서 이러한 점들을 교훈 삼아 대오각성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들은 한국이 행운국(幸運國)으로 변하고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 여겨진다. 대규모 소나무밀림들을 불과 재선충으로 축소 제거하고 있는 작금의 이 현상은 하늘의 깊은 뜻이요 자연의 섭리라 판단된다.
과다한 푸른색을 줄이고 다양하고 은은한 색상으로 금수강산이라는 이 나라 국토 본색의 아름다운 산천을 재현하게 되는 계기인 것이다.
소나무는 녹화 사업의 1등 공신으로서 장수, 생동, 절개라는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 반면에 망국수(亡國樹)라는 나쁜 이미지도 있다. 나라가 망했을 때를 전후해 산에는 소나무가 주림을 이루는가 하면 그 품성이 제왕적 기질을 갖기 때문에 국민성에 미치는 유감주술적 악영향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변 환경의 위력, 즉 양과 질에 따라서도 그러하려니와 자기가 선호하는 인간이나 동식물 등 그 대상의 성품을 은연중에 닮아간다고 한다. 따라서 소나무 위주의 산림이 되면 독선적인 풍조가 만연돼 국론분열이 심하고 비민주주의적 정치가 종식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소나무는 통섭(通涉)할 줄 모르는 독선적 성품의 수종이다. 이 나라 산림의 25%가 소나무인 데다 조경 현장마다 소나무 일색이라 국민들은 무시로 보게 돼 있다. 이에 더해 소나무를 국목(國木) 취급하는 정제되지 않는 풍조 때문으로 판단된다.
독일이 참나무를 국목으로 정해 패전국의 후유증을 신속히 떨쳐버리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재 군림한 것을 예의 주시해야겠다. 임정(林政)은 정치지도자의 몫이요 ‘政治정치의 최고의 道도는 治山治水치산치수’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 서서히 참나무 주림 시대로 가고는 있다
옛사람들은 참나무를 진목(眞木)이라 칭송하면서 귀한 나무로 다뤘다. 참나무림이 무성하면 그 나라의 문물(文物)이 황금기를 맞는다는 이론이 있다.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천년왕국의 번영을 누린 신라시대의 산림은 참나무가 주림을 이루고 있었다고 유추된다.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서라벌 건축자재 중 서까래를 비롯한 중요 자제로서 참나무가 주류를 이뤘다 한다. 석유에너지시대 이 전까지는 참나무로 만든 참숯이 최고급 열에너지로도 사용됐다.
참나무림은 대형산불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풍성한 낙엽과 구황 식량도 되는 도토리는 산천을 비옥하게 살찌우고 강과 바다의 수질을 정화시켜 마침내 어종(魚種)의 질까지 상향시킨다는 사실도 일본에서 밝혀진 지 30여 년이 지났다.
참나무림은 사철 변화하면서 갈참나무나 졸참나무 같은 품종은 아름다운 적갈색 단풍으로 물들어 산을 금수강산답게 연출하기도 한다.
조선조 말기부터 6·25를 겪으면서 보릿고개는 절정기에 이르렀고, 동반해 민둥산의 극한 시대를 맞았을 때 소나무는 산림녹화의 1등 공로수였다. 반면에 세월이 흘러 어느덧 대형산불 원흉목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이 곧 세상사요 자연의 섭리이다. 이제는 시대적으로도 임업 정책부터 변화할 때다. 소나무는 집약적으로 관리 보호가 가능한 특별한 명수(名藪)나 마을 숲이라던가, 혹은 특수 조경용으로나 만족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것 같다.
◇ 포항은 지금 안전한가?
촘촘히 자리 잡은 소나무들이 세월 따라 뭉청 자라서 서로가 수관을 비비대고 있는 도시 주변 산들을 볼 때면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건조 피해가 심하다. 작년 11월부터 금년 1월까지 강수량이 모두 합해도 50~70mm 정도로서 이 나라에서 가장 비가 적은 지역이다.
10수년간 송림도 엄청나게 자랐기 때문에 2013년도 그때의 규모보다 더 큰 산불이 언제 또 발생할지, 산불은 그 규모와 때를 예고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선충감염이 되지 않은 구역의 소나무 단순림들을 수관이 서로 닿지 않게 과감히 솎음질하는 등 특별관리해야겠다. 간벌로 수관화 발생을 최소화하고 잔존 수목들이 영양분을 넉넉히 확보할 수 있게 생육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발화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선택해 은행나무 풍향수 참나무 아외나무 등 내화성 강한 수종으로 방화림대를 조성해 나가야겠다.
GNP가 상승할수록 미려한 숲으로 비단에 수놓은 듯 재창출된 금수강산(錦繡江山)은 국보(國寶) 그 자체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이삼우 노거수회명예회장·기청산식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