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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몰락이 우리에게 던지는 침묵의 질문

등록일 2026-01-20 15:52 게재일 2026-01-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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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이 대성당. /필자 제공

아마존 정글에서 돌아온 다음 날, 몸은 휴식을 원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쿠스코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웅장한 대성당 석벽과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도시는 여전히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리마와 키토에도 같은 이름의 광장이 존재한다. 스페인 식민 시대, 도시 건설 당시 가장 먼저 조성된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르마스(Armas)’는 무기를 의미한다. 군사 훈련과 권력의 상징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대성당과 주교관, 통치 기관이 위치했다. 신과 칼, 믿음과 권력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그 이전 시대의 흔적 또한 간직하고 있다. 광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잉카 시대의 돌벽들이 곳곳에 말없이 서 있다. 손바닥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이 정교하게 맞물린 거대한 석벽 앞에 서면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문명을 아로새겼다. 말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벽이다.

잉카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제국을 통치했고, 도로를 건설하고 농업을 체계화하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여전히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문명은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붕괴했다. 

 

마지막 황제의 죽음 이후 벌어진 형제간 권력 투쟁은 제국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내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낯선 언어와 무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외부 세력이 국경을 침범했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Pizarro)의 총칼은 이미 균열이 깊어진 제국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잉카의 몰락은 비극적이지만,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소통이 단절되고 신뢰가 무너질 때, 그 어떤 공동체도 오래 존속할 수 없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의 한계는 과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 역시 말은 넘쳐나지만, 진정한 소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듣기를 거부하는 귀, 확인하려 하지 않는 마음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도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

잉카를 붕괴시킨 것은 외부의 침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부 분열은 언제나 가장 파괴적인 요인이다. 공동체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는 선택, 미래보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판단은 제국을 내부로부터 갉아먹었다. 이는 과거 문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조직,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는 변화에 대한 자세이다. 잉카는 자신들의 방식이 완벽하다고 맹신했고, 외부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과 전략, 질병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문명은 결국 쇠락했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거부된 변화는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이 대목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떠오른다. 그는 잉카 제국의 멸망 원인을 특정 민족의 열등성이나 단순한 패배에서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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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제국 9대 황제 파차쿠티의 동상. /필자 제공

유럽인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총과 쇠와 같은 군사 기술, 가축과의 공존을 통해 얻게 된 면역력, 그리고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역사는 개인의 역량보다 환경과 구조적인 차이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쿠스코의 돌벽 앞에 다시 서면, 또 다른 진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총, 균, 쇠와 같은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더라도 내부 결속력이 강했다면 몰락의 시기를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환경은 특정한 조건을 형성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공동체의 내적인 결속력과 성숙도에서 비롯된다.

쿠스코의 돌벽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은 텅 비어 있지 않다. 그 침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변화에 대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르마스 광장을 떠나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다.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잉카의 침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문명의 몰락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쓰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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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세종대 명예교수

돌벽은 말이 없고, 시간은 흐른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잉카의 침묵은 질문이 되어,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린다.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는가? 넘쳐나는 말들 속에서 진실을. 개인의 욕망에 가려진 공동체의 외침, 외면하지 않았는가? 

 

변화의 바람 앞에, 굳게 닫힌 문은 쇠락을 부른다. 총, 균, 쇠,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의 분열이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오늘, 우리는 어떤 문명을 써 내려갈 것인가?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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