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는 마추픽추의 가파른 돌계단을 묵묵히 올랐다.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 짙은 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대 도시의 흔적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발 2400미터, 태양의 신전에서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은 숨 막힐 듯 고요하고 장엄했다. 잉카인들이 이곳을 ‘신의 집’이라 칭송하며 신성시했던 이유를 가슴 깊이 이해하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질문이 있었다. “왜 그토록 찬란하고 위대했던 문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한때 지구에는 잉카, 마야, 아스텍과 같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문명들이 존재했다. 철기 문명의 도움 없이도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어 농사를 지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시대를 구현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했던 제국은 이제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그 몰락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단순한 탐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구조적인 균열 때문이었을까?
잉카 사회의 근간은 ‘아이유(Ayllu)’라는 독특한 형태의 공동체였다. 혈연과 깊은 신뢰로 굳게 묶인 그들은 사적인 이익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도왔다. 그들은 땅을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숭배하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했다. 마야인들은 정교한 천문 관측을 통해 별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 리듬에 맞춰 농사를 지었으며, 천상의 질서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세계관 중심에는 언제나 ‘조화(調和)’라는 핵심 가치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조화는 문명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성공의 함정’이었다. 잉카는 뛰어난 군사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안데스 산맥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은 점차 소수 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되고 공동체의 정신은 점차 약화되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마야 문명 역시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을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복잡하고 화려한 제례 의식과 과도한 토목 공사는 사회 전체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끊임없는 전쟁과 환경 파괴는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했고, 결국 외부의 침략은 이러한 내부의 균열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제국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공 편향(Success Bias)’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지나치게 도취된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맹신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갇혀 새로운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는 외부의 강력한 적에 의해 강제로 패망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오만과 경직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어떤 문명보다 훨씬 강력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손 안의 작은 기기 하나로 전 세계와 소통하고,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며, 유전자 기술은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주 탐사는 인류의 지평을 넓혀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지고 있다. 심각한 환경 오염,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 질환 등, 눈부신 기술 발전의 뒤편에는 어둡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눈부신 기술 발전만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인간 내면의 균형을 잃고 자연과의 조화를 파괴한다면, 아무리 위대한 문명이라도 결국에는 쇠퇴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웰니스는 단순한 신체적 건강 이상의 훨씬 더 깊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몸과 마음,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잉카인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갔던 이유, 마야인들이 천체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 조화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잉카의 현자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 말을 건넨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너희는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너희 문명의 중심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너희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웰니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다. 그것은 멈춤의 지혜, 성찰의 여백, 그리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맹목적인 경쟁과 끝없는 효율성 추구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린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적인 몰락은 우리에게 과거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과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가 속한 문명을 깊이 성찰하고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멸망이 아닌 성숙으로, 붕괴가 아닌 지속적인 성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