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죄송하다. 스스로 떠난다’는 내용의 유서로 보아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엘리트 판사의 자살은 세간에 적잖은 충격과 의문을 남겼다. 자살 충동의 가장 핵심적인 심리는 극심한 고통과 ‘출구가 없다’는 절망감이다. 실패, 상실, 질병, 경제적 파탄, 관계 단절, 사회적 수치심, 외로움 등이 누적되면 삶 전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인간은 미래를 상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느끼면, 지금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가 자살충동을 일으키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살에는 몇 가지 공통된 메커니즘이 있다. 첫째는 고립감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고 느낄 때 존재의 기반이 흔들린다. 둘째는 무가치감과 자기혐오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실패나 실수를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존재 전체의 부정으로 확대한다. 그래서 작은 사건도 치명적인 절망으로 연결되곤 한다. 셋째는 인지의 협착 현상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상태에서는 사고가 좁아진다.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것처럼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해결책이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죽음만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진다. 넷째는 충동성과 절망의 결합이다. 자살은 장기간 계획되는 경우도 있지만 순간적 충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한 감정폭발, 음주, 수면부족, 만성스트레스는 자기 통제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잠깐의 절망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물학적 측면으로는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중독 문제 등 뇌의 감정조절 기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은 충동조절과 절망감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자살에 대한 병리학적인 접근과 처방이 요구 된다. 반대로 같은 어려움이라도 좌절하지 않고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으로는, 첫째가 관계형성이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은 강력한 보호요인이다. 둘째는 의미부여다. 종교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 사회적 사명감, 실현하고 싶은 목표 등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버틸 가능성이 높다. 셋째는 회복탄력성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 타고난 성격과 기질, 반복된 극복경험 등이 어려움을 견디는 힘을 만든다. 넷째는 사고의 유연성이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나아질 수도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는 2023년 한 해 무려 1400여 명이 자살을 했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라고 한다. 10~40대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라고 한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죽을 각오로 달려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더구나 사회적 책임이 있는 자리의 사람이라면, 난관에 부딪쳤다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다는 건 비겁하고 나약한 도피가 아니겠는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