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트럼프 관세 정책은 폐기되어야

“평균 관세가 미국보다 4배가 높다. 군사적으로 한국에 다른 방법으로 매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나라에 대해 트럼프는 말한다. 심지어 미국에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들이밀며 힘으로 자신의 관세 정책을 추진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우리 경제가 요동친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성장률을 2.0%에서 1.0%로 수정하여 발표했다. 국내 다른 기관은 0.6~0.7% 정도로 더 낮은 성장률을 보고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트럼프 발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를 저성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미국 경제 전문가 짐 폴슨은 “거의 모든 기업 CEO가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며 기업 경영 환경 악화를 말했다. 미국의 높은 소비자 물가에 국민의 불만도 높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저성장 혼돈 상태로 만든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에 다른 나라들의 대응도 만만찮다. 145%라는 고율의 일방적인 관세에 대해 중국은 즉각적인 행동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맞불 관세를 부과하며, 여기에 더해 희토류 제품의 수출도 막았다. 또한 관세에 무관심하게 대응하며, 자국의 소비 촉진과 다른 국가와 경제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대응에 답답한 건 미국이다. 계속 중국과 협상 중이라는 기대 섞인 정보를 흘리며 기다리다 지쳤다. 트럼프의 예상과는 다르게 중국은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제네바협상을 통해 상호 관세를 115% 내린 10%로 조정했다. 90일 간의 유예기간을 두지만, 협상이 트럼프의 예상을 빗나가고 있다. 대만 정부 관계자는 “TSMC가 미국에 첨단 공정 기술을 그대로 가져가면 대만의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미국에 반도체공장 짓기를 바라는 트럼프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다.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치르는 트럼프의 계획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낸다. 예상치 못한 대만의 반격에 미국도 당황하였으리라.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83개국에 대한 관세 시행이 90일간 유예됐다. 미국 스스로 90일의 시간을 가지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세계 경제가 한 강대국의 이익 때문에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생명을 가진 유기물과 같은 경제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고 하면 제대로 될까. 트럼프의 관세 인상은 미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 이런 정책이 지속된다면 미국의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미국 경제 문제는 내부적인 원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더 이상의 경제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트럼프의 설익은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문제가 지속될수록 트럼프는 사면초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으로 경제 흐름을 바꾸려는 건 혼란과 어려움만 줄 뿐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민을 포함한 모두가 힘들어하는 정책은 굳이 왜 하여야 하는가. 작은 것을 얻으려다가 더 많은 것을 잃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김규인 수필가

2025-05-18

홀리데이 포퓰리즘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수경기 진작에 있다. 설날이 있은 1월도 임시공휴일을 하루 지정하면서 6일이 연속 쉬는 날이 됐다. 가정의 달인 5월도 어린이날이 석가탄신일과 겹치는 바람에 다음날이 대체공휴일이 되고, 중간에 낀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네티즌 간 논란이 있었다. 징검다리가 낀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길게는 일주일 정도 황금연휴가 만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임시공휴일을 내수경기 활성화의 촉매제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연휴 지정 효과가 나타난 사례는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연휴를 기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내수경기는 오히려 엉망이 되고 만다. 시중의 상인들도 연휴가 이어지는 게 오히려 더 두렵다고 말한다. 작년 12월 계엄선포 이후 우리나라 내수경기는 최악이다. 올들어 트럼트 발 관세전쟁이 시작되면서 수출까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밝힌 경제 동향에서 5개월 연속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도 먹고 입고 마시는데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유통경기가 전례 없이 불황이다. 백화점업계는 올 1분기 매출이 역성장했다고 울상이다. 이런 가운데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후보들이 주 4.5일 근무제를 공약으로 꺼냈다. 나아가 주 4일제 근무까지 하겠다고 한다. 저출생 극복과 노동시간 단축을 핑계로 주 4.5일제 정책을 내세우나 아직은 우리 경제가 주 4.5일제를 수용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심성 포퓰리즘은 국민 경제를 멍들게 할 뿐이다. 유권자인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옥석을 가려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8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경북이 선점해야

작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지역단위에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분산에너지에 대한 자치단체의 관심이 지대하다. 분산에너지란 “지역에서 쓰는 전력은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등 대규모 발전설비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변전설비 등을 이용해 지역에 전력을 보내는 중앙집중형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에너지의 청정화가 요구되면서 지역단위에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전력시스템 개발이 불가피해졌다. 산업통산자원부도 분산에너지 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분산에너지 특별법 제정과 동시 특화지역 지정에 나섰다. 올 상반기 중에는 특화지역 지정도 마무리할 계획이라 한다. 현재 전국 11개 광역 시도에서 25개 사업자가 산자부 공모에 신청해 놓고 있다. 경북도도 산자부의 지정을 앞두고 지자체, 분산에너지 사업자, 유관기관 등 경북형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 및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에 나서는 등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되면 전력 수요자 인근에서 생산된 전력을 한전을 통하지 않고 직접 공급받을 수 있어 값싼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특히 반도체, 이차전지 등 전력 수요가 많은 대기업 등을 유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전국 1위인 제주도를 포함해 부산과 울산 등 전국 주요 도시들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북은 전력 자급률이 강원과 충남 등과 함께 전국 최고 수준이다. 송전비용이 많이 드는 수도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자력과 풍력,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자원도 풍부하다. 포항의 철강, 이차전지와 구미의 반도체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과 기업들이 집중해 있어 분산에너지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북도의회는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단순한 정부 정책의 변화로 생각지말고 지역경제 붕괴를 막을 마지막 기회로 알고 사활 건 노력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경북도의 분발 노력이 필요하다.

2025-05-18

인간과 시간

날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으로 80억 인류는 오늘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가 인간을 자유롭게도 하지만, 확증편향으로 왜곡된 인간을 강철 족쇄로 압박하기도 한다. 남는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는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올바르고 유용한지, 확인할 정도의 지적-정신적 수준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지구 생명체 가운데 인간보다 더 많은 지적 호기심을 가진 존재는 없다. 알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인간은 심해(深海)를 탐사하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목숨 걸고 남극과 북극을 탐험했다. 사랑과 명예, 돈과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을 충족하겠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걸고 장정에 나선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언제부턴가 ‘시간의 화살’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이론에 대한 회의(懷疑)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138억 년 전 이른바 ‘대폭발(빅뱅)’이 일어나 시공간이 생겨났고, 그 결과 우리은하와 태양계도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이론. 그것에 기초하여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질주한다는 것이 ‘시간의 화살’이다. 지질학자들은 시간의 화살 이론을 입증하는 유력한 근거로 지층(地層)을 거명한다. 오래된 지층이 아래쪽에 자리하고, 시간 연대기 순서로 층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전개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가 맨눈(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나는 정반대되는 생각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리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출발한 시간이 현재를 거쳐 과거로 향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사라져 버린 과거는 되부를 수 없이 완전 소멸했지만,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미래는 오늘의 우리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란 시점은 내일이나 모레의 미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간이역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의 뿌리는 과거의 심연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으며, 그것이 현재라는 중간 정거장을 통과한다는 게 내 생각의 요지다. 이런 생각에 기초한다면, 시간 기계(타임머신)로 갈 수 있는 곳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 것이다. 영원히 사멸하여 무화(無化)되어 버린 과거가 아니라, 생성되고 있는 미래만이 우리가 도달할 시간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대면하는 지나간 역사의 근간도 실상은 미래에 기초한 현재를 만드는 과업이다. 현재의 시공간에서 지나간 시간과 사건과 인과율을 들여다보는 일의 함의(含意)는 오지 않은 미래를 예비하고 기획하는 데 있다. 철면피하고 극악무도한 인간 집단의 무수한 악행을 낱낱이 통찰하고, 그것에 유의함으로써 미래세대의 안녕과 복지를 준비하는 것이 역사다. 1980년 5월 18일 광주가 어언 45년 지나갔다. 지나간 45년은 오늘의 우리뿐 아니라, 다가올 세대까지 구원함으로써 시간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과거와 미래의 교차점인 현재에서 양자를 성찰하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는 위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5·18 광주항쟁을 예찬(禮讚)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5-18

‘김문수·이준석 단일화’ TV토론이 결정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가 18일 첫 경제 분야 TV토론을 했다. 후보들은 이날 ‘저성장 극복과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 후, 국가현안(트럼프 시대 통상 전략, 국가 경쟁력 강화 방안)과 관련한 공약검증 기회도 가졌다. 어제 TV토론회는 6·3 대선의 판세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문수·이준석 후보는 향후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후보단일화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범보수 진영에선 이번 대선 판세의 최대변수로 일찌감치 후보단일화가 거론돼왔다. 오는 23일 예정된 사회 분야 TV토론까지 끝나면 후보 간 지지율에 큰 변동이 생길 수 있다. 중도·무당층은 선거막판 TV토론을 지켜본 후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 변화다. 두차례 TV토론 후 그의 지지율이 15%(선거비용 전액보전)를 넘어서면, 완주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후 보수정당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선거비용 최소 보전 기준인 10% 정도만 나와도 단일화 협상 주도권을 쥘 확률이 높다. 반면, 두 차례 방송토론 후에도 이 후보 지지율이 지금처럼 7~8% 대로 지지부진하고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50%를 넘을 경우, 국민의힘이 협상을 주저할 수 있다. 단일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후보와 이 후보의 숨 막히는 단일화 신경전은 투표용지가 인쇄(25일)되기 전날까지 진행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주말부터 ‘빅텐트 추진단’을 가동시키며 적극적인 단일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둘 중 누가 최종후보가 될지 예상할 수 없다. 토론에 강한 이 후보가 김 후보를 누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이번 대선의 판세를 바꾸기 위해 후보 세대교체를 단행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2025-05-18

대구고등법원은 정의롭고 공정한 판결을 했는가?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이가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미국 대법관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의 말이다. 법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공정하고 신중하라는 메시지이다. 며칠 전 포항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민사 소송 결과를 보고서 새삼 이 문구가 생각났다. 물론 재판관들은 양심에 따라 재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선고 결과에 의견을 달리하고 수용을 거부한다. 나의 평가가 편견에 기반 한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를 재판부로부터 들을 수도 있지만 백번 양보 해 생각해도 판결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200~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뒤엎고 이번에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왜 이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180도 정 반대의 판결이 나왔으면 그 이유도 타당해야 하고 받아들이는 측도 수긍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난 판결문을 몇 번에 걸쳐 읽어보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쪽으로 결론 낼 수밖에 없었다. 50만 포항시민들을 충격으로 빠뜨린 이 판결은 과연 정당했는가. 그동안 포항지진특별법 제정 등에 앞장서며 포항촉발지진의 전 과정을 목도했던 필자가 판결문을 입수,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품었던 의문이었다. 안타깝게도 판결문 그 어디에도 시민의 간절함과 고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간의 활동을 토대로 도저히 반론을 하지 않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 정부의 예산으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통상적으로 ‘갑’은 정부의 공무원이 된다.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사업 감시와 감독 권한이 해당 공무원에게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 지진 안정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 대표로 활동한 경험을 통해 이 시스템을 체득했고 실감할 수 있었다. 포항지진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공무원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그들은 권한을 행사했다. 포항지열발전기술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진 발생 위험에 대한 사실을 해당 공무원이 몰랐다고도 할 수 없다. 사업 제안서를 살펴보면, 한국어로는 ‘미소진동’이라고 표현했지만, 영어로는 지진을 의미하는 ‘micro-seismicity’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2심 판결문에서 ‘미소지진’이라는 용어 대신 ‘미소진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미 피고 측 주장을 대변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지진 위험이 있는 사업임을 고려할 때, 정부 관계 공무원들은 사업 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한 경각심과 긴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재판부는 공무원들이 적절히 감시하고 감독했는지를 검토하고, 책임 차원에서 확인해야 했다. 재판부가 밝힌 과실 내용을 여러 번 읽어볼수록, 원고 측의 주장보다 피고 측 공무원의 과실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담론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 점도 씁쓸했다. 백번 양보해 부지 선전에서 활성 단층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생산정과 투입정을 시추하는 과정에서 머드로스(mud loss)가 발생한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 머드로스 현상은 단층이 존재한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재판부는 공무원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증언을 통해 검증했어야 했다. 포항지진은 감사원 등 정부기관을 통해서도 인재였음을 인정받았다. 관계 부처와 관계자들의 과실만 20여 건이나 적시됐다. 정부를 대변하는 피고 측 변호사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큰 과실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인용했다. 너무나 너그러운 판결이다. 지열 사업을 진행한 넥스지오 콘소시엄 관계자와 정부 관계 공무원들이 지진 발생 위험을 차단하고 방지하기 위한 행동도 단발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업 전후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발생하는 지진 위험을 초래하는 과실을 검증해야 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미소진동 관리 방안과 관련, 정부 관계자들과 상의할 법적 내용이 아니라는 피고 측 변호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미소진동 관리 방안을 당국의 허가 없이 변경한 점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지진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가볍게 해석한 점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지진계의 부실 운영도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 필자를 놀라게 했다. 지진 위험을 관리하는 전 과정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분리하여 큰 과실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피고 측에 유리한 입장에서 판결문이 작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소진동 관리 방안, 즉 교통신호등 체계의 운영에서는 지진 규모 2 이상이 발생할 경우 포항시에 통보하는 조항이 있다. 사회적 수용성이다. 그러나 지진 진행 정부 관계 공무원들은 이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는 정부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3차 수리자극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정부 공무원들이 포항시와 포항 시민들에게 지열 발전소가 일으킨 지진이라고 통보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따져야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고의로 은폐하지 않았다고 하며 면죄부를 줬다. 정부 공무원들의 감시 및 감독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에 대한 평가가 고의성의 기준으로 이루어지니, 평가의 잣대가 너그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내용도 있다. 피고 측은 지열발전소 운영 측은 많은 양의 물을 투입하지 않았으며, 외국 사례에 비해 매우 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어느 나라의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이 또한 피고 측에 유리한 학자인 맥가(A.McGarr)이론의 범위 내에서 진행,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는 원고 측인 정부 조사단과 정부 진상위원회의 주장, 그리고 세계 지열학회와 지진학회, 세계적으로 저명한 논문의 입장과 이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포항 지진은 단순히 물 투입량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물 투입에 따라 지하에서 지진이 발생할 응력이 축적된 상태에서 일어난 촉발 지진으로 규정되었다. 1차부터 4차까지의 수리 자극을 하는 동안 지진을 일으킬 응력이 축적된 상태에서 5차 수리 자극이 촉발하여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주장이 맞선다면 시민 50여 만명의 고통이 걸린 재판이었던 만큼 재판부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불러 이 조항을 더 세밀하게 들여 봤어야 했다. 무엇 때문에 1차례 변론과 3여 개 월 만에 서둘러 선고했는지 난망하다. 이번에 재판부는 인간의 잘못으로 발생한 촉발 지진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잘못이 크지 않다고 했다. 이걸 모순이라고 하지 않으면 뭘 모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재판부는 판결이 100% 완전하지 않으니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을 받아보라는 친절한 안내를 제공하는 자비로운 모습까지 보였다. 자신감이 결여된 판결이므로 지진으로 인한 상처와 억울함을 치유하기 위해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됐다. 포항지진으로 50여 만명이 고통을 받았고,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위로받아야 하는가, 항소심 재판부에 묻고 싶다.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박사

2025-05-18

육상·해상풍력, 기본계획 수립이 먼저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개별 사업 위주의 접근으로 인한 갈등과 비효율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은 입지, 환경, 주민 수용성 등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어 체계적인 기본계획 수립 없이는 사실상 실효성 있는 추진이 어렵다. 육상풍력은 주로 산지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아 산지관리법 등의 관련 법령이 적용되는 개발행위허가와 환경영향평가 등 엄격한 인허가 절차를 요구한다. 해상풍력 또한 해역 이용, 어업권 보장, 생태계 보호 등 다양한 고려사항이 존재해 단순한 민간 주도의 개별 추진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실제로 많은 풍력 사업이 주민 반대, 행정절차 지연, 경관 훼손 등의 문제로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기본계획이나 경관기본계획 등 처럼 풍력발전 역시 상위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풍력발전 기본계획에는 적정 입지의 사전 확보, 인허가 기준과의 정합성 검토, 지역 여건에 맞는 추진 전략이 포함돼야 하며, 주민 갈등을 예방하고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참여 기반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특히 해상풍력은 해양공간의 공공성, 어업권 침해 문제, 생태계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계획 수립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발전 사업 허가, 산지전용허가, 해양환경영향평가 등 주요 인허가 절차를 계획 단계에서 통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불필요한 행정 중복과 시간 낭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기본계획은 정책이나 사업을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도시기본계획, 경관기본계획, 에너지기본계획 등에서 지역의 공간 구조, 환경 여건, 사회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중장기적인 방향성과 원칙을 제시하면 개별 사업 간 충돌을 줄이고, 행정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와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분야에서는 기본계획을 통해 입지, 인허가, 주민 수용성, 환경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있으면 행정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사업자는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지금처럼 현장에서 계획 없이 추진되는 개별 풍력 사업은 갈등, 중복 투자, 계획 부재 등으로 그 비효율이 상상을 초월한다. 풍력발전사업은 단순한 시설 설치를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 에너지 수급까지 고려한 복합 조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과학적 분석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풍력발전 기본계획 수립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그렇게 하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개별 사업도 없어질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 탄소중립 실현 등을 구호와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 선제적 대응을 해줘야 한다. 그게 규제 타파이자 개혁이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5-18

바닥 공사

관행(慣行)이란 말은 ‘오랜 기간 똑같이 하던 것들’이라는 의미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꿰맞추며 이상한 짓을 할 때 붙이는 용어이다. 여직원이 커피 타는 것은 관행이라는 말을 대놓고 한 적도 있다. 이런 여직원이 커피 타려고 회사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면 여태 그런 관행에 익숙했던 사람들 눈엔 그 여직원은 완전 ‘또라이’로 보인다. 세상은 변하고 ‘페미’라는 새로운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 그런 여직원이 있다면 여직원을 욕할까 아니면 커피 타라고 시킨 그 누구를 욕하게 될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관행이란 미명 하에 이상하고 어색한 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 바닥이 원래 이래.” 공무원 회의하는 데 한번 가본 적이 있다. 고위공무원이 들어오면 갑자기 다 일어난다. 나도 덩달아 영문도 모르고 일어났다. 아마 조직의 어른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판 구경을 가보면 기가 막힌다. 판사 들어오면 다 일어나야 한다. 여긴 일어나라고 말을 한다. 한번은 방청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판사가 나를 째려보더니 자기 앞에서 다리 꼬지 말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관행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난 죄인이 아니다. 왜 판사 앞에서 다리 모으고 두 손 가지런히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 듣고 싶다. 민주공화국에는 모든 권력자는 견제를 받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 바로 검사, 판사이다. 이들은 죄를 지어도 99% 기소를 당하지 않는다. 미국은 24시간 내 완전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판결문도 우리나라에선 겨우 0.3%밖에 밝히지 않는다. 이러니 판결이 판사 마음대로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 관행이다. 기자가 기사에 ‘핏짜, 커리’쓴다. 물론 허접한 잡지사 기자 나부랭이가 본배 없이 쓰는 것이다. 피자나 카레라고 글을 쓰면 밋밋해 보여서 그렇게 썼다고 항변할지는 모르지만, 외국어와 외래어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얼뜨기 기자이리라. 구제역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익산 춘포역이나 군위 화본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구제역은 입구(口), 발톱제(蹄), 돌림병역(疫)이다. 따라서 소나 돼지 등의 동물의 입이나 발굽에 생기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병을 가리켜 구제역이라고 쓰고 말한다. 가축들이 구제역에 걸리면 입의 점막이나 발톱 사이의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흘리다 죽게 되는데 이게 전염성이 강하다. 상당히 위험한 병이기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사람들이 쉽게 잘 알아듣지 못한다. ‘신병을 확보하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군대에서 신병(新兵)이 새로 들어왔나 싶었다. 하지만 그 신병이 아니다. 범인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신병(身柄)이란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도 못 봤다. 물으면 전부 얼버무린다. 자루 병(柄)자가 해석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왜일까? 물어보니 이 바닥 관행이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관행으로 치부하고 이런 짓을 묵인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묻고 싶다. 날 잡아 바닥공사 제대로 한번 해야 할 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5-15

50만 포항시민 기대 저버린 대구고법의 판결

2019년 3월 20일 포항촉발지진이 인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포항시민들이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에 나서 약 5년여 년을 고생한 끝에 법안을 통과시켜 일부 지원을 받았긴 하지만 포항지진이 남긴 후유증은 아직 진행형이다. 포항의 수많은 피해 건물은 아직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제정된 포항지진 특별법은 건물 피해에 한정된 법률이었고, 정신적 피해 소송은 이후 일부 변호사와 시민단체가 동참, 제기했다. 3년여의 심리 끝에 1심 법원인 포항지방법원은 피해 주민에게 1인당 200~300원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이 재판은 무려 50만 포항시민이 들불처럼 일어날 동참할 정도로 우리나라 사상 최대의 집단 민사소송이었다. 그러나 2025년 5월 13일 대구고등법원 재판부는 2개월의 졸속 심리를 통해 1심 결과를 뒤집는 판결로 50만 포항시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지금 포항시민들은 허탈감 속에 분노하고 있다. 정부 진상조사단은 분명 촉발지진이라 판명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건만 포항지진에 관련된 공무원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이번에는 대구고등법원 재판부마저 예상 외 판결로 또 한 번 우리 50만 포항시민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고등법원 판결을 주도한 판사가 어이없게도 대법원을 운운하며 다시 한 번 판결을 받아보라고 주문한 사실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참담한 판결을 직면한 포항 50만 시민은 이제 현명한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 상고를 통한 법률 심판이 남았지만, 2심 판결을 다시 뒤집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포항시민의 현명한 판단과 단결이 필요하며 앞으로 지혜와 뜻을 모아 다시 한 번 행동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포항촉발지진의 피해는 대구고등법원 판결이 끝이 아니다. 아직 대법원이 남아 있다. 이제 시민 모두가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지진특별법 제정에는 혼신의 힘을 다했건만 이번 정신적 피해소송에는 소송 변호사들을 지켜보는 선에 머물렀던 점도 지금 반성하고 있다. 무려 2조여원 대의 시민집단소송이었다면 이 일에 관여한 지역 지도자들이 사전에 하나하나 치밀하게 챙겼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소홀했었다. 물론 1심 판결이 순조로웠기에 2심 판결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참담한 결과표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2심 버스는 지나갔다. 돌아올 수도 없다. 3심에는 지난 5년 간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경험을 되살려 최선을 다할 각오다. 이 길은 혼자 갈 수가 없다. 시민과 함께 가야한다. 성원을 당부 드리며, 그리고 이번 대구고등법원 판결을 50만 포항시민과 함께 규탄한다. /공원식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2025-05-15

수상한 비행기 선물

중동의 부호 카타르 왕실이 트럼프 정부에 4억 달러짜리 보잉 747-8 비행기를 선물로 전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정가에 온갖 추측들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을 앞둔 가운데 갑자기 왜 이런 발표가 나왔고, 비행기를 선물한 카타르의 저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비행기를 대통령 전용 비행기로 사용하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소유권을 트럼프 도서관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특히 카타르가 국방부를 통해 기증한 만큼 대통령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국 헌법에는 현직 대통령 등 공직자는 국회의 동의 없이 외국 정부로부터 선물을 받아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많은 비난 여론에도 정작 트럼프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거래”라며 대응하고 있다. ‘하늘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비행기 가격은 우리 돈으로 무려 56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정부가 외국에서 받은 선물 가운데는 역대 최고 가격이라 한다. 미국의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해충돌 발생” “노골적 부패”라는 비난을 쏟아붓고 있으나 트럼프는 “공짜 선물을 거절할 이유 없다”는 식의 반응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탄핵 소추감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독일의 총리를 지낸 메르켈은 그의 회고록에서 트럼프를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혹평했다. 트럼프 취임 후 그의 관세 정책과 일련의 행동들은 이미 세계인의 눈밖에 난 바 있다. 그들은 카타르의 비행기 선물을 대가 없이 전달된 거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정가에 갈등이 불씨가 켜진 것이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5

글로벌 친환경도시 선포에 나선 포항시

포항시가 주최한 2025 세계녹색성장포럼(WGGF)이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15일) 막을 내렸다. ‘미래를 위한 녹색전환, 도전 속에서 길을 찾다’란 주제로 모처럼만에 국제적 포럼이 포항에서 열려 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 포럼은 철강제조업 중심도시인 포항시가 산업구조 다변화를 추진하고,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응해 녹색도시로 전환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수십 년 동안 탄소배출이 많은 철강산업 도시에서 성장해온 포항시가 친환경 녹색도시로 과감하게 전환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행사란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포항시는 내년 말 완공 예정인 포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가 개관하면 포럼이 본격적인 녹색성장의 국제적 담론장으로 자리를 잡아 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내년부터는 포럼 일정을 1주일 정도 개최할 것도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포항시는 철강 중심의 단일 산업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 확보에 전력 투구했다. 그 결과, 글로벌 탄소 중립에 부합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산업인 이차전지와 수소,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신산업 생태계 조성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차전지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포항에 유치되고, 포항이 정부의 이차전지 특화도시로 지정되는 등 산업구조 변화에 획기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또 지속 가능한 친환경 녹색도시 종합계획인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현재 축구장 107개 규모인 76만㎡에 달하는 녹지공간도 확보했다. 지자체 최다인 도시숲 5곳이 환경부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승인을 받는 성과도 냈다. 포항시가 국제적 녹색포럼을 기획 주최한 것도 이런 성과들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포항시는 지금 도시의 산업구조 개편 등으로 빠른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녹색도시 전환 역시 그 변화의 하나로 꼽아야 한다. 포항시가 지향하는 녹색도시 전환이 기대보다 큰 성과를 올려 포항시가 글로벌 녹색도시의 선도도시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2025-05-15

보수후보에 대한 ‘TK민심’이 흔들린다

한국갤럽이 지난 14일 발표(12~13일 조사)한 대선후보 지지율은 민주당 이재명 51%, 국민의힘 김문수 31%, 개혁신당 이준석 8%였다. 국민의힘 후보가 최종 확정되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처음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세 후보의 성적표가 상·중·하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주목되는 부분은 대구·경북(TK)지역 민심 변화다. 이 지역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45%로 1위, 이재명 후보가 29%로 2위, 이준석 후보가 13%로 3위를 차지했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30%에 육박하고,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이 10%대를 넘어섰다. ‘보수 텃밭’인 TK지역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는 비상이 걸렸다.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대구에서 75.14%(민주당 21.6%), 경북에서 72.76%(민주당 23.8%) 득표율을 기록했다. 단일화 내홍으로 인한 민심 이반 현상으로 보인다.(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TK지역 득표율 목표를 30%대로 잡고 있다. 현재의 지지율 추세가 이어진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난 14일 대구 동화사를 찾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TK 민심이 예전과는 다르다. 벽이 무너지는 듯한 변화를 체감한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가 TK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것은 안동 출신이기도 하지만, 중도층 표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갤럽 조사에서도 이 후보에 대한 중도층 지지율이 56%에 달했다. 이번 대선의 최대변수는 중도층 외연 확장이다. 국민의힘도 현재 중도층 민심을 잡기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김 후보는 강성지지층을 의식해 “윤 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했지만, 당내에서는 자진 탈당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계엄과 탄핵의 늪’에서 벗어나야 중도층 확장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도층 민심 변화로 일단 김 후보의 지지율이 일정 수준 올라가야 이준석 후보와의 빅텐트 여부도 모색해 볼 수 있다.

2025-05-15

우리가 뽑아야 할 대통령

대통령 선거가 불과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정치가 잘못될 때 치자(治者)만을 탓할 수는 없으며, 이는 치자와 피치자(被治者)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상하관계의 지배·복종보다는, 보다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지원하고 고취하는 관계로 변화했지만, 유교 전통의 한국 사회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인과 사회, 국가의 발전은 무엇보다 바라는 바의 크기와 강도에 달려 있다. 이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모든 운명은 생각에서 비롯되며, 이 생각은 말과 행동으로 이어져 결국 운명을 결정짓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각의 흐름이 윗자리에서부터 시작되므로, 국민이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을 잘 뽑는 일은 자신과 이웃, 사회를 위한 중요한 책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내적으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중고에 자영업 붕괴, 지역·이념·세대·성별 갈등, 청년실업·연금·의료·노사·국토 일극화 등 산적한 개혁과제가 놓여 있고, 최저출산율·최고자살율의 비애를 안고 있다. 외적으로는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북핵 문제 등으로 공존과 평화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무엇보다 닥쳐올 거품경제 파고와 여파를 헤쳐 나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세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는 경제적 안정, 둘째는 부정부패 척결, 셋째는 분열과 증오의 정치 넘어 공화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가 발아한 유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스웨덴에는 1946년부터 23년간 총리로 재임한 타게 에를란데르가 있다. 에를란데르는 재임 중 스톡홀름 시내 관공서 밀집 지역의 작은 공관에 입주해서, 퇴임할 때는 돌아갈 개인 집조차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웨덴 국민들은 그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대화와 타협’, ‘검소한 삶’, ‘특권 없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봉직했다. “겸손하고 정직하다” 가 스웨덴 국민의 눈에 비친 정치인 이미지다. 정치 목적은 국민 행복에 있고 국민 섬기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탄생했으면 한다. 독일에는 최초 여성 총리로 4선 연임한 메르켈이 있다. 그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국민들의 삶속에 함께 하는 것이다. 24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스캔들이나 부패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 총리 관저 대신 평범한 개인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며 살았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소통과 경청’, ‘협치와 상생’, 그리고 ‘위기에 더 강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분은 프랑스의 마크롱이다. 프랑스는 최근 ‘유럽의 시한폭탄’에서 ‘경제 모범국’으로 변했다. 악명 높았던 강성노조 철밥통을 깨뜨렸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과감한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유연성을 강화하고 노동인력 고급화라는 투 트랙 접근법으로 기업들의 자발적 고용을 늘렸다. 부유세 폐지 등 감세로 자산가와 서민 모두를 붙잡았다. 파리 13구역 기차화물 기지를 개조해 ‘프랑스판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 국가’로 만들었다. 2025년까지 유니콘 기업 25개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번 대선에 이런 정치지도자가 탄생하길 빈다.

2025-05-15

데칼코마니

봄기운이 만연한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 바람은 따뜻하고, 꽃나무들은 봉오리를 터뜨렸다. 길에 꽃잎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어 벚꽃, 개나리, 철쭉 꽃잎을 주워 모았다. 집으로 돌아와 도화지를 반으로 접은 뒤 한쪽 면에 꽃잎을 배치하고 움직이지 않게 풀로 붙였다. 손가락 끝으로 꽃잎을 살짝 눌러보았더니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던 까닭에 도화지에 색이 번졌다. 그 위에 또 다른 꽃잎을 올리자 색들이 서로 스며들었다. 꽃잎은 하나의 색만 지닌 것이 아니었다. 벚꽃은 가장자리가 하얗게 바래 있었으나 안쪽으로 갈수록 미세한 핏줄처럼 분홍이 서서히 퍼져 있었다. 개나리는 단순한 노랑이 아니라 햇살에 물든 금빛을 머금었고, 철쭉은 연분홍 속에 짙은 선홍빛 결을 품고 있었다. 꽃잎에 물감을 두껍게 칠한 다음, 나머지 면을 덮어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눌렀다. 도화지를 펼쳤을 때 나비 한 마리가 있었다. 한쪽 면에 놓인 색과 형체가 다른 면에 대칭적인 무늬로 찍혀 나오는 데칼코마니 기법이다. 여고 시절, 데칼코마니로 작품을 만든 때가 기억났다. 내 손끝에서 태어난 마법이었다. 똑같은 물감을 칠했어도 같은 색으로 다시 찍히는 법이 없었다. 매번 미세한 차이가 있었고,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선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데칼코마니의 묘미였다. 두 면은 서로 대칭이었지만, 종이를 누르는 손의 힘에 따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색깔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물감을 짜서 문질렀어도 좌우 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채도와 명도가 다르게 표현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날 때 언제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말투나 행동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내 마음에 짙은 색으로 찍혔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어 흐릿해졌다. 또한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옅은 색처럼 여겨졌던 존재가,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 점점 더 진한 무늬를 남기며 선명해졌다. 우리 반 친구들의 데칼코마니 작품을 비교했을 때였다. 선이 강한 것도 있었고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된 것도 있었다. 내 짝의 작품은 그녀의 신중한 성격 탓에 연한 선으로 나타났다. 물감을 짤 때도 신중했고, 손끝에 힘을 주어 누를 때도 너무 세지 않도록 조절했기에, 그녀의 데칼코마니는 다른 친구들의 작품보다 훨씬 부드러운 선을 가졌다. 어느 날, 나는 짝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했다. 좀 더 과감하게 짙은 색의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망설였다. 그러나 내가 재촉하자 진한 색 물감으로 색을 칠하고 도화지를 덮은 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눌렀다. 나는 종이를 펼치는 순간에 이제껏 만들었던 색과 선과 형태가 아닌 새로운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진한 선의 작품이었다. 나는 강한 선을 보며 그녀의 도전을 기뻐했다. 짝이 짙은 물감을 선택했을 때 자신의 평소 이미지도 변경하려고 잠시나마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평소에 내가 해오던 방식대로 살아가면 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내가 원한다고 익숙한 길로만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껏 생활하면서 낯설고 불편하고 어긋난 길을 수없이 지나왔다. 익숙한 선택이 아닌 낯선 경험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날의 장면을 종종 떠올렸다. 내가 만든 데칼코마니를 들여다본다. 어쩌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의 데칼코마니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나에게 남긴 색과 내가 상대에게 남긴 흔적이 모여 하나의 무늬를 이룬다. 처음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지만, 결국은 나 또한 타인이 남긴 색에 물들어간다.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도화지 위에 펼쳐진 나비의 날개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번지고 스며들며 하나의 무늬를 남길 것이다. /정미영 수필가

2025-05-14

탁발-옛날 중앙로 우체국 풍경

부처와 가섭 존자가 중앙로의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오늘 탁발한 것을 적당하게 분배하고 있다 가서 보니 기껏해야 햇빛과 먼지 몇 개의 동전과 비웃음 몇 줌, 생각해 보니 그 보시는 오히려 중생에게 강탈한 진짜 보리(菩提)였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헌신하자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주고받는 거 없어도 그냥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남는 장사라는 거, 부처와 가섭은 동의했다 하이파이브 했다 노동의 결실의 소주잔에 잠기는, 오늘의 노을이 좋다 카아, 목줄 땡기는 이런 소리는 아무나 뱉지 못한다 풍부한 하근기(下根機)에 배부르고 아늑하다. …. 무던하다고 섬세하지 않을 리 없다. 금(金)은 은(銀)을 이기지 못한다. 남몰래 벼린 칼날 초승달로 내뱉고, 생업(生業) 이루고 나서 돌아서서 말하리라. 참 따스한 세상이라고. 별로 내밀 거 없어도 나에게 헌신(獻身) 했다고 말하리라. 그 마음씀씀이가 너울물결로 이어졌으면 한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5-14

책임없다는 정부, 대법원은 응답하라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강타한 지진은 단지 한 도시의 재난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 중이던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도시는 깊은 공포에 빠져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소 시추작업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데 있었다.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정부는 지열발전소 시추 과정에서 고압수를 지하에 주입했고, 단층이 자극을 받아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사사례는 해외에도 있었고 국내 학계에서도 촉발 지진 위험이 수차례 경고된 바 있었다. 정부는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무너뜨린 재난이 무지나 실수를 넘는 정책적 책임의 결과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포항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최근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부정하며 ‘예측할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 판단은 타당한가. 이미 유사한 지열 사업에서 지진이 유발된 사례가 있었고 국내 전문가들 또한 가능한 위험을 경고해 왔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무시된 채 사업이 강행되었다면 이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예견된 결과에 가깝지 않은가.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삶의 토대를 잃고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이 침묵하고 있다. 어느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복구는 아직도 미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부정하는 모습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포항 시민들은 여전히 무너진 삶을 복구하지 못한 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역 경제는 장기간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짓는다면, 이는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국가인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국민의 삶을 인위적으로 뒤흔든 재난 앞에 ‘책임이 없다’며 뒷짐지는 모습은 모욕적이다. 법적 책임을 포함하여 도의적, 정치적 책임도 면탈할 수 없다. 정부가 연루된 인적 재해의 결과를 바로 보아야 하며 이에 관련된 책임을 분명히 감당해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만 남았다. 사건은 법리 다툼을 넘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어떤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헌법적 쟁점을 내포한다. 대법원은 사건의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상고심은 절차적 기회일 뿐 아니라 사법부가 사회적 정의를 최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는 정당한 권력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책임 있는 기반 위에 서야 하며 국민의 신뢰는 책임의 이행으로부터 비롯된다. 포항지진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당한 질문에 적절한 응답을 끝까지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실책에 관한 물음에 응답해야 할 시간이 이제 대법원 앞에 온 것이다. /장규열 고문

2025-05-14

TK, 6·3대선에서는 누구 손을 들어줄까

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13일 일제히 대구·경북(TK)을 찾아 6·3대선 첫 유세를 했다. 김문수 후보는 ‘보수안방’을 지키려 했고, 이재명· 이준석 후보는 틈새를 노렸다. 이재명·김문수 후보는 이번 유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집중 거론했다. 이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나라 산업화를 이끌어 낸 공이 있다”면서도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몹시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했던 이 후보의 발언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젊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에 반대했지만 철이 들어서 가만히 보니까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이 지역을 자주 찾는 이유는 안동이 고향이기도 하지만, TK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50%에 육박한다. TK지역 지지율도 대부분 30%대다. 과거 진보진영 대선 후보의 지지율과는 큰 격차가 난다. 이 후보가 만약 이번에 TK지역에서 30%대의 득표율을 기록할 경우 당선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당연히 ‘텃밭 수성’을 해야 하는 김문수 후보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뿐 아니라, 이준석 후보까지 ‘신(新)보수적자’라고 주장하며 TK 득표전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TK지역은 국민의힘이 후보 교체 내홍을 겪으면서 이번 대선에서 민심이 예전과는 달리 요동치는 경향이 있다. 올해 74세인 김 후보가 13일 하루에만 영남권 3개 도시를 돌며 힘겨운 공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 탓이다. 이번 일요일(18일)부터 시작되는 TV토론회 등을 거치면 아마 판세는 보수·진보 2파전으로 압축될 가능성이 크다. TK 유권자들이 이번에 과거처럼 보수후보에게 몰표를 줄지, 아니면 진보후보에게 30%대 이상의 표를 분산시킬지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2025-05-14

대구취수원 이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

대구시민의 먹는 물 개선을 위한 취수원의 안동댐 이전사업이 제대로 추진될지에 대해 걱정하는 시민이 많다.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후 대구 취수원을 낙동강에서 안동댐으로 이전키로 계획을 변경하고 사업 추진에 나섰으나 홍 시장의 중도 사퇴와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 등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구취수원 안동댐 이전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를 수용키로 공식화 한 바 있다. 작년 12월에는 낙동강 유역 물관리위원회의 안건으로도 상정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일부 지자체의 반대 의견도 있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대선을 치르고 나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새 정부의 정책과 조율의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 대행은 지난 13일 안동을 방문해 권기창 안동시장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두 기관장은 취수원 이전에 대한 향후 추진 계획을 공유하고, 현재 진행되는 상황이 정치적 여건의 변화와 상관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계기로 대구시민의 가장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다. 30년 넘은 숙원이지만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다. 홍 전 시장 재임 때 안동댐을 취수원으로 사용한다는 공동의 의견을 도출했지만 안동댐 직·하류에서 대구 문산·매곡 정수장까지 110km 길이의 도수관로를 묻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어서 국가 지원이 필수다. 국가가 주도하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사실상 어렵다. 때문에 관련법을 만들고 국가사업의 핵심 절차인 물관리위원회의 심의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 취수원은 맑고 안전한 물을 먹어야 하는 대구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위한 사업이다. 정치적 변수와 무관하게 반드시 마무리돼야 한다. 갈등을 이유로 또다시 논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선 유력후보들의 공약에 반영시켜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취수원 이전은 대구 숙원을 해결할 뿐 아니라 신공항 배후도시의 용수 공급 등 대구경북 상생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이다.

2025-05-14

벌써부터 더위가 무섭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국가’라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요즘엔 안 추우면 덥다. 이제 이 나라엔 겨울과 여름만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봄과 가을은 다람쥐 꼬리처럼 짧아졌다. 지난해 여름 극악했던 더위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6월 중순에 시작된 폭염이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말까지 계속됐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종일 돌아갔고, 냉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에 사는 취약계층은 무더위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으니 “더위가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기억하는 지인은 “시집 제목이 지난해와 올해 한국의 더위를 예언한 것 같다”는 농담까지 던진다. 실제로 그렇다. ‘올여름 더위도 무시무시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기상 전문가들은 초여름부터 끈적이는 땀을 쏟아지게 만들 무더위가 올 것이라 예보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인도 해양과 열대 서태평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 때문에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질 것이다. 서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면 한국 여름철 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한다. 그렇기에 이번 여름은 시작부터 폭염이 심할 것”이라 부연했다. 지난해 겪은 더위가 무서웠던 탓일까? 벌써부터 에어컨 구매를 예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은 5월 중순임에도 거리엔 반팔 셔츠를 입은 직장인과 반바지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다시 ‘공포스런 여름’이 오고 있다. 너나없이 모두들 준비 단단히 해야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4

장마철에 심해지는 관절통

비가 오거나 장마철이 오면 진료실엔 관절이 쑤시고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는 환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기압이 내려가면 바깥 공기가 팽창해 조직 내부의 액체가 상대적으로 밀려 올라오고, 이때 관절낭과 근막 사이에 미세한 부종이 생겨 신경 말단을 압박한다. 서양의학 연구에서도 10헥토파스칼 이하의 급격한 기압 하강은 관절통 발생률을 두 자리 수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고된다. 한의학은 이런 현상을 풍·한·습 사기가 기혈 순환을 막아 ‘비증(痺症)’을 일으킨 것이라 설명한다. 특히 여름 장마에는 ‘습’이 주도권을 쥐는데, 습기는 묵직하고 끈적거려 상하를 막고 근육을 곤하게 하며, 관절액과 윤활막에 고여 둔중한 통증을 만든다. 비가 올 듯 흐린 날에는 무릎뿐 아니라 손가락·발목처럼 작은 관절까지 욱신거린다는 호소가 잦다. 이는 외부 습기가 모공을 통해 몸속으로 스며들어 이미 존재하던 내부 습담과 뒤섞이며 배출 통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창출·강활·독활 등이 들어간 강활승습탕이 교과서적인 선택이다. 약재들이 풍·습을 몰아내 관절 주위를 말끔히 건조시키기 때문이다. 부종이 뚜렷하고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면 방기황기탕으로 기표를 열어 수분 배출을 도와주고, 관절액이 많아 뻣뻣하면서 무거운 경우에는 의이인과 창출·복령을 주약으로 한 의이인탕 가감으로 수분 배출을 돕는다. 이런 처방들은 몸의 수분을 배출시키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는 덤이다. 한약 처방만큼 중요한 것이 치료다. 장마에 고여 있는 습은 관절 주위 미세 공간을 막기 때문에 먼저 습부항으로 어혈과 습기를 제거해 아픈 부위를 풀어주고 관절에 침을 놓아 기혈 순환을 촉발하면 관절 내부 압력이 자연스레 떨어진다. 특히 초음파 가이드 약침으로 정확한 곳의 인대와 힘줄 근육을 풀어주면 무릎 통증엔 특히 효과적이다. 특히 반복적 부종으로 관절 간격이 좁아진 중증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겐 효과가 아주 좋다. 수술을 하기 전에 한번 시도해볼만한 치료다. 치료 효과를 오래 유지하려면 생활도 중요하다. 생강·대추·의이인을 넣어 은은하게 끓인 따뜻한 미음은 몸을 따듯하게 하고 습을 제거하니 아침 식사대용으로 먹을 만하다. 땀을 살짝 내는 것은 효과적이니 40도 이하의 반신욕으로 땀구멍을 부드럽게 열어 체표 습기를 날려주는 것도 좋다. 짠 음식은 조직액 저류를 악화시키므로 소금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다. 운동은 체내 펌프 작용을 유지하되 관절 압박을 줄이는 가벼운 걷기가 좋다. 이때도 땀을 살짝 내자. 날씨는 우리가 바꿀 수 없지만, 내부 습도 관리는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 장마철마다 찾아오는 묵직한 관절통은 기압 변화라는 자연 조건 위에 습기가 겹쳐 발생한다는 점을 이해하면, 치료의 관건이 ‘배수’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습을 걷어내는 한약과 습부항·침·초음파 가이드 약침을 활용하고, 생활 속에서 땀구멍과 소변·배변의 길을 활짝 열어주면 관절의 무게감과 통증은 눈에 띄게 가벼워진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내 몸속 물길부터 정비해 두면, 관절 건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5-14

가난한 제자의 선물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단정하고도 조용하신 담임선생님은 피아노를 잘 치시는 음악선생님이셨다. 공부는 제법이지만 가난한 형편인 나를 무던히도 챙겨주려 애쓰셨다. 학급 간부임을 핑계로 학교 가까이 있는 선생님 댁으로 종종 부르시곤 하셨다. 학기 초에는 국어, 영어, 수학 선생님께 새로 나온 참고서를 얻어서 챙겨주셨다. 선생님 어머님께서 챙겨주신 귀한 귤과 크라운산도의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첫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를 차린다고 소리 내지 않고 녹여 먹으니 깨물어 먹어야 더 맛있다며 웃으시던 선생님이셨다.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월사금을 내지 못한 나였다. 가난한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속수무책이니 아침 조회시간에 이름이 불리면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에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그해 사월에는 3학년이 모두 수학여행을 갔으나 난 가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비용을 대 주시겠다고 했지만 아프다고 핑계댔다. 3박4일 수학여행 떠난 휑한 교실에 평소와 같이 왔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죽어라 공부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신 선생님은 날 부르시더니 그 부드럽고 고운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자그마한 거울을 쥐어주셨다. 그달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여 수학여행 못 간 부끄러움과 슬픔을 보란 듯이 상쇄했고 선생님께 환한 웃음과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개교 기념일 즈음이었을 것이다. 운동장 전교 조회 시간이었다. 내 이름이 크게 호명되자 얼떨결에 나갔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동창회장님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전과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장학금을 내게 주려고 교장 선생님께 여러 번 곡진한 부탁을 하시더라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훗날 들었을 뿐이었다. 고마우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밀린 1분기 월사금을 바로 낼 수 있었고, 그러고도 남은 돈을 엄마에게 드리면서 엄마의 눈물 바람을 슬쩍 훔쳐보았던 것도 같다. 아 그러나 그때 난 참으로 어리석었다. 한 달 뒤 스승의 날이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고, 선생님께 드릴 카네이션 한 송이 살 돈을 챙기지 못한 거였다. 스승의 날 아침,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서 모은 돈으로 산 선물을 들고 학교에 갔다. 개인적으로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자책으로 간밤에 잠을 설쳤기에 평소보다 일찍이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등나무 덩굴에 뒤덮인 쉼터가 있었다. 너무 이른 등교라 잠시 앉아도 되었다. 나무 벤치에 털썩 앉아 위를 쳐다보는데, 연보라색 등꽃이 포도송이마냥 주렁주렁 흐드러져 있었다. 예뻤다. 선생님같이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이었다. 벤치 위에 올라 까치발을 하고 꽃을 한 아름 꺾었다. 아찔하고 향긋한 내음이 교복에 묻었다. 교실에서 예쁜 꽃만 다시 추렸다. 선생님 책상 위 둥근 꽃병 가득 등꽃을 꽂았다. 축축 늘어져 처졌지만 꽃병을 가리고 덮을 정도로 가득 꽂으니 뭐 그런대로 볼만했다. 무엇보다 선생님 책상 주위에서 교실 전체로 번진 진한 향기가 선생님께 대한 미안함에 짓눌렀던 내 마음을 감추어 주는 듯했다. 교실로 들어오시면서 무슨 향기지? 라며 환히 미소 띠시는 선생님께 나는 꽃향기보다 더 짙고 진한 감사 인사를 마음속으로 올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5-14

삭발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좀 시원하네.” 손에 엉성하게 쥔 이발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선 어머니는 오히려 덤덤했다. 그날의 햇살이 괜스레 따뜻해서, 나는 어머니의 대머리를 보며 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강해 보여서가 아니라 그 덤덤한 미소가 너무나 익숙한 얼굴에 걸려 있어서. 강인한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느꼈다. 몇 해가 흘렀다. 어머니는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다시 예전처럼 꽃무늬 스카프를 매고 시장을 누비셨다. 어느 날은 나보다 더 바삐 돌아다녔다. 삶이 어머니를 다시 일으켰고 어머니는 그 안에서 늘 그렇듯 묵묵히 견디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내 아들이 거울 앞에 섰다. “좀 웃기지 않아?” 고개를 돌린 아들의 눈동자엔 어색한 웃음이 떠 있었다. 미용실에서 막 돌아온 아들의 머리는 말끔하게 민머리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머니와 겹쳐 보였다. 면도날을 따라 사라져간 머리카락들이 어딘가 아득히 먼 기억처럼 떠올랐다. 아들의 민머리를 보니 눈물이 났다. 말없이 아들을 쳐다보다가 어느새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은 당황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울어? 군대 가는 건 당연한 거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터질 것 같은 감정이 목구멍에 차올랐다.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어머니의 삭발 앞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아들의 삭발 앞에서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살아야 하기에 했던 삭발과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삭발. 그 무게는 다르지만 내게는 둘 다 불균형하게 무거웠다. 내가 엄마가 되고서야 어머니의 깊은 주름이 보였다. 주름 속에는 늘 눈물 한 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그 시절 삶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어온다. 어머니는 우연히 발견한 가슴의 혹이 악성으로 나와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항암 치료를 받은 어머니는 점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맞벌이로 바빴던 자식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늘 어머니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냈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이 도리어 아이에게 해로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머리를 밀었던 날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눈은 많이 부어 있었고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눈을 깜빡이면 물방울이 똑 떨어질 것처럼 하루 종일 물기가 가득했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머리는 또 기르면 된다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전했다. 병과의 외로운 싸움을 가족들은 알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를 밀고 들어온 아들의 머리를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샘처럼 터져 나왔다. 주위에서는 잘하고 올 아들이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엄마인 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들의 빨래를 개면서도, 아들 방을 청소 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몇 년 전 어머니의 민머리가 생각났다. 누구나 겪는 아들의 삭발을 보며 이리도 마음을 못 잡으면서 어머니의 삭발 앞에서 너무나 덤덤했던 나의 무관심이 죄스러웠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손익계산서는 언제나 적자다. 몸의 구석구석 하나씩 저당 잡히면서도 엄마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이익이 없다 해도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지출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엄마의 외사랑이 너무나 긴 세월이 지나고서야 자식의 눈에 들어왔고 자식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삭발은 단지 머리를 미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병과 싸운 세월이 있고, 홀로 서기 위한 의지가 있다. 누구는 그것을 담담히 이겨내고 누구는 그것 앞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말 안에 녹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때때로 머리카락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것을 얻게 한다. 그래서 그 빈자리는 아픔이 아니라 사랑이 머문 자리로 남는다. 부모가 없고서야 그 머문 자리를 깨닫는 자식은 결국 뒤늦게 사랑의 깊이를 배운다. 자신도 누군가의 머문 자리가 되어야 함을 알아가며. /김경아 작가

2025-05-13

츠타야 쥬자부로를 낳고 기른 요시와라 유곽

지난번에는 에도(도쿄의 옛날 이름)의 출판왕이었던 츠타야 쥬자부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데요. 고아같은 처지로 요시와라 유곽(吉原遊廓)에서 나고 자란 츠타쥬가 어떻게 당대 최고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을 거느리고 그토록 대단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츠타쥬는 다름 아닌 요시와라에서 나고 자랐기에 ‘에도의 출판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시와라는 분명 유흥가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습니다. 아사쿠사 북쪽의 밭 가운데에 흙을 쌓아 건설된 요시와라는 가로 약 360미터, 세로 약 270미터인 사각형의 인공도시였습니다. 요시와라 유곽 앞에는 新자가 붙기도 하는데요. 이유는 1617년 닌교초 부근에 처음 생겼던 요시와라 유곽이 화재로 인해 1657년 아사쿠사 북쪽으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대로에서 S자로 휘어 있는 90미터 길이의 고짓켄미치를 지나면 요시와라 정문이 나타났습니다. 요시와라에는 수천명의 유녀(遊女)를 포함해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으며, 유녀와 남성들을 연결하는 찻집과 유녀들이 머무는 기루 이외에도 각종 장신구나 화장품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요시와라는 에도에서 불야성을 이루던 유일한 곳으로서, 일종의 별천지였습니다. 이 곳에서는 각종 퍼레이드나 공연 등의 이벤트가 벌어졌고, 거리나 시설도 최고로 화려하게 꾸며졌습니다. 이 곳의 번성함은 당시 막부(무신 정권의 통치기구 또는 그 체제)가 에도에서 걷는 세수의 8%가 요시와라에서 나온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시와라에는 문학, 음악, 예능, 다도, 춤 등 에도 문화 거의 전부가 집결되어 있었으며, 그렇기에 호세이대학 총장을 지낸 다나카 유코는 ‘유곽과 일본인’(고단샤, 2021)에서 “요시와라 유곽의 소멸은 역시, 에도 문화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또한 요시와라는 살롱이 없던 에도에서 살롱의 역할을 떠맡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는 다이묘, 무사, 상인, 쵸닌과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에도 시대의 엄격한 신분 질서도 엄격하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요시와라말이 따로 있을 정도의 독특한 문화적 별천지였던 것입니다. 유녀들도 단순한 창부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전설적인 오이란(최상위 지위의 유녀)이였던 다카오를 모신 다카오이나리 신사가 지금도 도쿄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 요시와라에서 나고 자라며, 츠타쥬는 에도의 첨단적인 유행과 감각 등을 익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화의 첨단지 요시와라가 츠타쥬를 기른 것처럼, 츠타쥬 역시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요시와라의 이미지를 더욱 풍요롭게 창조했는데요. 츠타쥬는 1773년에 요시와라 정문 앞에 경서당(耕書堂)이라는 서점을 내고 처음에는 책 대여를 했지만, 곧 본격적인 출판에 나섭니다. 이 시절의 서점은 단순하게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의 출판, 유통, 판매를 모두 겸하는 일종의 출판사였습니다. 츠타쥬가 출판업에 처음 뛰어들어 만든 것은 요시와라 가이드북으로서, 츠타쥬는 이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의 안내서가 정보의 전달에만 치중했던 것과 달리, 츠타쥬는 요시와라 안내서에 약도 등을 집어넣어 현장감을 극대화하였으며, 첫번째 출판하는 책에서부터 다재다능한 유명인 히라가 겐나이(1728~1780, 에도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림)의 서문을 수록해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책에서는 최고의 화가를 고용하여 유녀들을 꽃으로 표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츠타쥬가 출판한 책으로 샤레본(洒落本)이 있는데, 샤레본은 요시와라에서의 놀이와 익살을 묘사한 풍속책이었습니다. 또한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인 우키요에가 가장 많이 제재로 삼은 것도 역시나 요시와라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요시와라가 이상적이거나 바람직한 공간일 수는 없습니다. 요시와라는 쿠가이(苦界, 괴로움이 끊임없는 세계)로 불렸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유녀들의 삶은 화려한 만큼이나 비참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녀들의 기본적인 고용조건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나는데요. 유녀들은 일단 업주들에게 거금의 빚을 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유녀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선지급된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유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 조건으로도 이들은 요시와라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요시와라를 벗어나기 어려웠숩니다. 요시와라에는 출입문으로 ‘요시와라 정문’ 하나가 있었을 뿐이며, 유곽 주변에는 높은 담과 해자까지 설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처우도 열악하여 영양실조나 성병으로 요절하는 유녀들도 많았습니다. 유녀들 사이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었으며, 화대의 차이도 아주 컸습니다. 그렇기에 유녀들은 자주 목숨을 건 방화사건을 일으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츠타주는 요시와라의 이러한 어둠까지 깊이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가 만들어낸 콘텐츠에는 사회를 향한 불만과 풍자도 적지 않습니다. 요시와라와 츠타쥬의 관계는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는 발터 벤야민의 명제를 곱씹어 보게 합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5-13

세월의 속도감 줄이기

연초록 위에 진초록 잎새가 겹쳐지며 신록이 짙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잎차례를 벌여가며 연록의 진영을 넓혀가더니 어느새 온통 초록의 숲을 이루고 있다. 마치 스밈과 번짐처럼 봄이라는 생장의 여울 속에 잎새들의 앞다투며 줄기차게 변화하는 양상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듯하다. 잎새뿐만 아니라 언덕배기의 풀이나 들판의 농작물들도 돌아서고 나면 아찔한 정도로 몸짓을 불려가며 빨리 자라 생동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 어느 때나 한결같고 공평한, 영원한 세월 속의 나그네(光陰者 百代之過客)일텐데, 유독 봄날만큼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며 발걸음이 빨라 보인다. 그것은 기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생기다 보니 봄날의 시간이 빠르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에서도 시간의 완급이 느껴지듯이, 외부의 환경이나 자극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껴짐은 대체로 보편적인 일로 여겨진다. 어릴 적에는 한 해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길게만 다가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빠르게 지나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것이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의 뇌가 시간 인식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비롯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신경 가소성(可塑性)이 줄어들고 뇌는 정보를 적게 처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 형성을 줄여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0대는 시속 10km, 60대는 시속 60km로 달려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어린 시절 대부분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아 신선함과 흥미, 긴장감을 일으키며 이러한 경험은 뇌가 더 많은 인식과 정보를 처리하도록 만들어 시간을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반면 성인이나 중년·노년기가 되면 새로운 경험보다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일상이 더 많아지면서 뇌의 활동량이 줄어들게 되어 시간의 흐름이 단조롭고 빠르게 느껴지게 된다. 어쩌면 이같은 일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경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도 세월을 더디 느껴지도록 하는 방법이나 루틴이 얼마든지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며 보다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거나 현재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시간의 흐름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일상의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취미나 학습, 봉사, 여행 등으로 낯선 곳과 마주하게 된다면 늘 흥미롭고 호기심 가득한 나날이 세월의 속도를 꾸준한 각도로 줄여줄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5-13

리더십과 소통이 성과를 결정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리더십이 필요하다. 좋은 리더십은 부드러운 조직문화와 성과를 말한다. 기업에서 보면, 인력, 설비, 자재, 시스템 등의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생산성, 품질, 납기, 비용 등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성과와 성장을 함께 이끌어내는 영향력이다. 단순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개인과 조직을 동기부여’ 시키며, ‘문제 해결 중심으로 이끄는 것이다. 기업의 생산관리 리더십 조건은 첫째, 공장의 장기적인 방향성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비전 제시 능력이다. 이것은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조건이다. 둘째, 생산, 품질, 공정, 설비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본질을 꿰뚫는 현장 통찰력과 문제해결력이다. 문제의 본질을 못 보면 의사결정에 오류가 생겨 시간이 지연되고 손실을 가져온다. 불량, 납기 지연, 원가 상승 등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현장 작업자부터 관리자까지 다양한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 관리, 데이터와 경험 기반으로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 능력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넷째, 기술력과 현장력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 팩토리, 자동화 등 변화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원칙과 일관성 있는 리더십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여 모범적인 태도와 신뢰를 얻는 행동력이다. 구성원에게 신뢰를 얻어야 리더십이 완성된다. 필자가 P사의 해외법인 태국을 지원할 때 일이다. 2개 공장의 공장장 리더십은 차이가 있었다. 언어 소통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A공장장, 통역을 거쳐 일을 추진하는 소심한 성격의 B공장장이다. 둘은 공장 생산관리 방식과 조직문화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B는 태국어를 몰라 상황 분석과 의사 결정력이 약하고 올바른 추진력과 직원과의 소통 및 공감대를 쌓아가는 것이 어렵게 보였다. 통역 없을 때는 오프라인 소통이 안 되어 일에 한계가 있었다. 이 후 공장장 대상 리더십 교육, 대화와 토론을 통한 올바른 상황 인식과 대안을 찾아갔다. 조직과 사람의 변화관리는 해당 나라의 종교, 사회 문화, 성격 등 국민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태국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자부심이 있고 인구 7천만명, 국민의 94%가 불교를 믿는다. ‘괜찮아, 문제없어’라는 ‘마이 팬 라이(Mai Pen Rai)’ 정신이 있어 작은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긍정적으로 넘기려는 태도가 있다. ‘미소의 나라’로 불리고, 사람들과 부드럽고 따뜻하게 소통한다.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실용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태국 문화를 이해하고 내 관리 스타일보다 상대 관점에서 문화의 차이를 인증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언어의 한계가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생각과 습관을 이해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오프라인 소통을 이어갔을 때 건강한 조직, 시너지를 창출하는 모습으로 거듭 난 것이다. 리더의 신뢰 수준만큼 조직문화와 성과는 달라진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5-13

10대공약 실천가능성, 후보 토론회서 검증을

6·3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10대 공약’이 공개됐다. 공약의 핵심은 민생과 경제였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창출’을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두 후보 모두 AI 분야 3강 진입과 1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대통령 힘 빼고 일 잘하는 정부’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세 후보 모두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정책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5극 3특’ 추진으로 국토균형발전, 김문수 후보는 GTX 전국 5대 광역권 확대 추진, 이준석 후보는 법인세 자치권 부여로 지방 경쟁력 강화를 제시했다. 공약의 세부적 실천 계획과 효과 검증은 TV토론회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 후보는 첫날 유세장소도 약속이나 한 듯 경제현장을 선택했다. 이재명 후보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IT기업 개발자들을 만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규모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김문수 후보는 새벽 5시에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순대국밥을 먹으며 “농업과 자영업자, 식당을 운영하는 상인들과 시민이 우리 경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준석 후보는 이날 0시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금호피앤비화학 여수2공장을 방문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의 공약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의 국정운영 청사진이다. 아쉽게도 우리 국민은 선거일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선후보들이 어떤 정책이나 공약을 준비해 나라를 이끌어 가려는지 알지 못했다. 6·3 조기 대선이 확정된 이후 주요 정당들의 행태는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오로지 상대 당을 헐뜯으며 당리당략에 매몰된 모습을 보였다. 각 후보는 이제 3차례 TV토론회나 유세를 통해 10대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과 이행 로드맵을 제시하며 당당하게 승부를 겨뤄야 한다. 유권자들도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진영논리를 떠나 각 당과 후보의 주요 공약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지지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2025-05-13

포항지진 원고패소…50만 시민 충격에 빠졌다

대구고법이 13일 모성은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공동대표 등 지진 피해 포항시민 111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포항 지진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2017년 11월과 2018년 2월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이 지열발전 사업 때문이라는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물 주입에 의해 (촉발)지진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원고들의 주장 중에서 그 과실 부분에 대해서 입증이 부족하다”면서 “원고들이 주장하거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 지적한 업무의 미흡으로 인해 이 사건 지진이 촉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앞서 2023년 11월 대구지법 포항지원 1심 재판부는 2017년 11월 15일(규모 5.4) 본진과 2018년 2월 11일(규모 4.6) 여진이 정부의 지열발전사업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피해 주민 1인당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같은 1심 판결에 대해 정부(피고)는 배상금이 과하고 다툴 여지가 많다며, 포항시민(원고)들은 당초 청구액인 1000만원 지급을 요구하며 각각 항소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한 포항시민들이 충격은 크다. 2심 소송인단은 무려 49만9881명에 이른다. 지진 발생 당시 인구(51만9천581명)의 96%에 해당한다. 즉시 상고하겠다고 밝힌 범대본은 성명서를 통해 “포항지진은 명백히 인재(人災)였다. 이로인해 수천 명의 시민들이 집을 잃고, 수년째 심리적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서 “판결과 무관하게 정부는 포항시민에 대한 실질적인 정신적 피해 회복 방안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제 포항지진은 여러 과학적 조사와 국가 조사보고서를 통해 정부 산하기관이 주도한 지열발전사업의 부실한 관리와 넥스지오 컨소시엄의 무책임한 시추작업이 원인으로 이미 밝혀졌다. 범대본이 밝힌 것처럼, 포항시민들로선 이번 대구고법의 판결이 끝이 아니라 긴 싸움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5-05-13

빅텐트 成事, 김문수 후보 역량에 달렸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일요일(11일) 경남 창녕 전통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치는 이익을 노리고 막 움직이다 보면 반드시 걸려 자빠지게 돼 있다. 어느 집단을 보니까 그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말을 인용했지만, 누가 들어도 국민의힘 후보 강제 교체 과정을 비웃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당 대선후보를 김문수 후보에서 한덕수 전 총리로 강제 교체하려던 시도를 당원들이 바로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이 후보 말대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선주자로 확정된 김문수 후보가 당권을 잡자마자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당 이미지를 쇄신시킨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가장 주목되는 인사는 초선의 김용태 의원을 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하고, 자신에게 험악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권성동 원내대표를 유임시킨 것이다. 1990년생인 김 지명자는 당내 최연소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에도 참여했다. 지난 10일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는 7명의 비대위원 중 유일하게 한덕수 전 총리로 후보를 강제 교체하는 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가 개혁·포용 인사로 난국 수습에 나선 모습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워 당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포용력 있는 인사를 통해 당내 화합을 도모한 것은 국민의힘 이미지를 전격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금 국민의힘 중도층 외연 확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공식선거운동 직전까지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김 후보가 전면에 나서 이 후보 대세론을 깨야 한다. 그러려면 최우선 선결과제가 이번 조기 대선의 원인을 제공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대선이 민주당의 전략인 ‘윤석열과 이재명’ 대결 구도로 이어지면 국민의힘은 필패한다. 김 후보가 더 넓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윤 전 대통령 울타리 속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했던 양향자 전 의원이 말했다시피, ‘후보자와 배우자만 빼고 다 바꾼다’는 심정으로 당과 자신을 새롭게 변신시켜야 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이낙연 전 총리 등과의 빅텐트 추진도 당의 외연확장 후에나 가능하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10일 대선 후보로 가장 먼저 등록을 하고 부동층 지지자를 흡수하기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지금으로선 이 후보가 자진해서 빅텐트에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단일화 테이블에 앉히려면 우선 김문수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오는 29일이면 21대 대선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사전 투표일 전에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빅텐트가 구축되려면 18일, 23일, 27일 예정된 3차례 TV토론 등을 통해 김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수밖에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2025-05-13

“전쟁은 이제 그만”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는 전 세계에 보내는 첫 공식 메시지로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자주 말했던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는 메시지로 그의 뜻을 전승했다. 1945년 종전된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군사전쟁으로 기록됐다. 전쟁으로 인한 직접 사망자가 5000만~5600만명, 전쟁관련 질병이나 기근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람이 추가로 1900만~28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뒤끝은 항상 눈물과 상처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란 말로 전쟁의 비극을 표현했다. 전쟁은 군사력을 동원해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권력을 잡은 자들의 욕심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반복 돼온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가 전쟁이다.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는 가장 원시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인류는 여전히 비극적 방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전쟁은 당사자 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 경제적으로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심각한 타격을 입게 하고 세계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간다. 가자지구 내 전쟁 또한 세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이 종전 협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닌 듯 하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지구촌에서 조각 조각 벌어지는 분쟁을 두고 “사실상 3차 세계대전 상태”라고 말했다. 영국의 한 여론조사 보도에 의하면 미국 등 서방국의 국민 45%가 5~10년 내 3차 세계대전 발발을 우려한다고 했다.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레오 14세 교황의 간절한 기도가 전쟁 종식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