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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자, 한문, 문해력

갑자기 한자 교육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지난 12일 교육부 대상 업무 보고 자리에서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이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엉터리 국어 사용의 문제를 언급하자 그 원인이 한자 교육의 문제에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꾸준히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두 사람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조갑제 대표는 엘리트 교육을 위해, 김언종 원장은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한자 교육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두 교과 과정에 한자 교육을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한자 병용이나 제도 도입에는 회의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예로 들면서 한자 학습 자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SNS에서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한자 교육을 하지 않아도 문해력 교육이 가능하다는 입장과 그래도 한자 교육을 하는 것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통령이 언급한 국어 사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대인배에서 배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한자를 알지 못해도 배울 수 있고, ‘저희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는 것 역시 한자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자를 알면 어휘력이 좋아지는 것은 어느 정도 맞기 때문에 논란이 커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한자 교육과 한문 교육은 다르다. 현재 교과 과정에서 배우는 한문 수업은 한자 교육이 아니다. 한문은 한자로만 이루어진 글, 또는 중국 고전의 문장이라고 어학 사전에 나온다. 실제로 교과서 이름도 한문이고 내용도 한시나 산문 같은 문학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한자 교육을 하는 것은 엘리트 양성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문해력 향상을 위한 한자 교육론과는 거리가 있다. 단어의 난이도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로 판가름되는데 일상에서 자주 쓰지 않는 단어 중에 한자어가 많고, 한자어는 음이 같아도 뜻이 다른 경우가 많다. 고유어 ‘배’에는 먹는 배, 타는 배, 사람 배 등 뜻이 많지만 맥락을 알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인명재천’ 같은 사자성어는 한자 하나하나를 익히더라도 한문은 우리말과 어순이 달라 해석하기 어렵고 국어 문해력 향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1천 자나 1천 8백 자 낱글자로 한자를 익히는 것도 효과는 없다. 단어는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뜻을 모르는 어휘를 검색해보면, 한자어든 고유어든 단어마다 여러 가지 뜻이 나온다. 문해력을 향상시키려면 사전에서 문장의 맥락과 관계있는 의미를 찾아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자어에 동음이의어가 많아 한자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사람은 한자, 아니 한문까지도 배우면 된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28

‘책을 펼치자 십자가들이 쏟아졌다’

이 책의 바깥에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 으깨어진 꽃잎을 한 줌 가득 쥐고서 우리는 기록될 수 없는, 사랑에 불탔으므로 이 책의 문장은 번제보다 참혹하다 재처럼 흩날리리라 참회조차 사라진 고백이 검붉은 불티를 내 눈에 흩뿌렸으니 이 책의 바깥에서 엎드린 자 나뿐이다 두건을 쓴 양들이 통성기도를 올릴 때 시뻘건 십자가들이 몸 밖으로 쏟아졌다 ―이토록, ‘책을 펼치자 십자가들이 쏟아졌다’ 전문 (‘이후의 세계’ , 가히) 제목에서부터 결구까지 시종일관 강렬하다. 이 시의 십자가가 표상하는 핵심 이미지는 몇 가지의 상징적 층위를 거느리고 있다. 우선 ‘책’을 중심으로 책의 ‘안’과 ‘바깥’에 관해 사유해 본다면, 여기서 책은 기록으로서의 율법인 정전의 공간일 텐데, 문제의 초점은 이 책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절로 말이 약해진다. 내 신념이 보잘것없어서이기도 하고, 거기에 대고 강하게 말했다가는 튕겨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되지 못한 것은 ‘말’이기에 말로 할 수 있는 건 책의 공간으로부터 추방된 번제의 자리가 될 것이다. 종교적 상징을 떠나서 십자가가 표상하는 바는 무엇보다 죄의 대속이며 구원의 약속과 다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 지점에서 구원의 진실은 책의 안과 밖의 공간에서 선명하게 대별된다. 이 시의 핵심은 바로 책의 ‘바깥’이라는 화자의 위치에 있다. “이 책의 문장은 번제보다 참혹하다”라는 언표에서 알 수 있듯 십자가는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폭력과 잔혹함으로 전도되어 있다. 그 어떤 희생이나 번제보다 말과 문장이 더 잔인한 폭력이 된다는 것을 이 시는 참회의 방식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우리는 기록될 수 없는 사랑에 불탔으므로”라고 했을 때, 과연 기록으로 남는 것과 기록되지 않고 휘발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화자가 고백하는 사랑은 죄이자, 신성모독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진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화자는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십자가는 구원의 표식이 아니라 몸 밖으로 쏟아지는 상처가 된다. 그렇다면 “불”“재”“검붉은 불티”가 표상하는 것은 결국 정화가 아니라 훼손으로 인해 잔존 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사랑은 타오르지만, 남는 것은 구원도 속죄도 아닌 상처일 것이기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와 연계하여 읽어보자면, 이 시는 개인적 고백을 넘어 구원 서사의 붕괴 이후에 남은 잔해의 독백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가령 “두건을 쓴 양들이 통성기도를 올릴 때”라는 언술은 ‘사탄탱고’의 마을 사람들과 겹친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목소리를 합창함으로써 책임을 지우는 존재들이다. “시뻘건 십자가들이 몸 밖으로 쏟아졌다”라고 했을 때, 집단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통성기도는 사랑이 아니라 소음이고 군중 심리의 대리라고 볼 수 있다. 집단은 기도하고 고백하지만, 진짜 상처를 짊어진 자는 기록되지 못한 바깥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도입부 “이 책의 바깥에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라는 고백은 끝끝내 독백이 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 해도, 비록 기록되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이 세계의 바깥에서부터 ‘네’가 올 것이라는 소망에 연약한 기도를 얹어보는 것이다. “이 책의 바깥에서 엎드린 자 나뿐이다” /이희정 시인

2025-12-28

‘더하기 빼기 하듯’···AI교육 생활화한다

정부는 지난 24일 일반 국민의 AI 기본교육을 위해 전국에 ‘AI디지털배움터’ 32곳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취약계층으로까지 교육 대상을 넓혀 AI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새해 들어 구체적인 운영 방향을 발표하고 3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구는 수성구 파동우체국과 동구 강동노인복지관이, 경북은 구미시 평생학습원과 안동시 복합문화센터가 AI디지털배움터로 새로 지정됐다. 우체국과 행정·문화시설 등 지역 생활SOC(사회기반시설)를 중심으로 선정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과기정통부는 내년부터는 기존 ‘상설 디지털배움터’ 37곳도 AI디지털배움터로 전환한다. 앞으로 읍·면·동 단위로 촘촘하게 AI 교육을 시행하겠다는 게 정부 의지다. 상설 디지털배움터는 현재 대구에 2곳, 경북에 3곳이 운영중이다. 이곳에서는 금융 피싱 예방, 본인 및 공공인증, 온라인콘텐츠 제작 등 실생활에 유용한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체험존에서는 키오스크나 멀티테이블, 디지털 혈압측정기 등을 통해 실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기기를 직접 다루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수학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는 것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AI교육을 시작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과기부가 발표한 올해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서비스 경험률(최근 1개월 이내 1회이상 이용)은 2021년 32.4%에서 지난해 60.3%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 10명 중 4명은 AI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태다. AI교육은 확산 초기에 기회를 놓치면 배우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교육열이 높고 교육 네트워크도 비교적 잘돼 있다. 노트북 같은 디바이스 보급률도 아주 높다. 이처럼 교육 여건이 좋아서 AI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 앞으로 AI디지털배움터가 널리 홍보돼서 전 국민 AI 기본교육의 거점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

2025-12-25

경북도 여성공무원 인재 활용시대 열어가야

경북도는 내년 상반기 실 국장, 부단체장, 4급 이상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승진 규모는 2급 1명, 3급 12명, 4급 22명 등 모두 35명이다. 특히 승진자 35명 중 14명을 여성으로 발탁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승진한 여성 공무원 중 일부는 시군의 부단체장으로 나갈 예정이어서 경북의 여성 부단체장은 역대 최다인 14명으로 늘게 된다. 이번 인사 단행으로 경북도의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수는 2022년 민선 7기 때 10명의 4배인 41명으로 늘어났다. 경북도는 “이번 인사는 성별이나 연공 서열보다 성과와 전문성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여성 간부 공무원 비율이 하위권이다. 행안부에 의하면 작년 기준 경북의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중은 24.1%다.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며, 전국 평균 26.7%에도 못 미친다. 대구시 41.5%와 비교하면 큰 격차가 있다. 한국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빠르게 늘면서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국가 평균보다는 다소 낮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늘어나 현재 50%를 상회하고 있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의 참여가 늘면서 교직의 경우 남성이 오히려 여성보다 수적으로 적어 양성평등 기준을 못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중 여성 비중이 2023년을 기점으로 남성을 추월했다. 다만 간부급 이상 공무원의 여성 비중은 아직 20%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경북도 간부 인사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남녀 간의 비율을 떠나 바람직한 변화다. 남녀 구별 없이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고 이것이 업무성과에 반영되는 것이 바로 양성평등 사회로 가는 길이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여성 인재의 활용은 필수”라 했다. 경북도의 능력에 의한 여성 발탁인사는 시군 인사에 미치는 효과도 적지 않다. 동시에 여성공무원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준다. 경북도가 앞장서 여성 인재 활용시대를 열어가길 바란다.

2025-12-25

목조름 범죄

방송인 김주하 씨가 토크쇼에서 과거 자신이 당한 가정폭력을 고백했다. 전 남편은 9년간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하며 김주하 씨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이후 점점 심해져 간 가정폭력은 살해 위협으로까지 이어졌고, 어린 자녀들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처럼 목조름 폭력은 단순한 폭행과 다르다. 살인 등 중대한 범죄로 이어지는 전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목조름 행위를 가정폭력범죄의 유형으로 추가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발의안은 기존 가정폭력범죄의 유형에 ‘목조름 행위’를 추가하였다. 목조름 행위를 별도 유형으로 추가한 것은 가해자의 살해 고의나 상해 발생에 대한 입증 없이도 피해자가 목이 졸린 사실만으로 빠르게 공적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개정법안에 따르면 목조름 행위가 있었음이 확인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격리되고, 응급조치나 접근금지 등의 긴급조치도 바로 시행될 수 있다. 목조름 폭력은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의 한 형태로 빈번히 발생한다. 여러 해외 연구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 비치명적 목조름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렇지 않은 피해자에 비해 살해당할 위험이 훨씬 높았다. 한 연구 결과에서는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비치명적 목조름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그렇지 않은 피해자에 비해 살인미수 위험이 6.7배, 살인 위험이 7.5배 높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 중 30%가 목조름 피해를 겪은 바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가정폭력을 넘어 중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군이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다. 목조름 행위를 살인 위험을 내재한 중대한 범죄행위로 인식하지 않으면 단순 폭행으로 처벌되는 데 그치고 만다. 특히 정당방위의 요건을 엄격히 보는 우리 법 해석에 따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목조름에 대항한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처벌되는 일도 발생한다. 2023년에는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목을 졸리던 여성이 가까스로 상황에서 벗어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자를 주방용품으로 가격했는데, 가해자와 같은 형량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폭력의 유형으로 목조름 행위를 고위험군 행위로 별도 규정한 이번 법 개정안의 발의는 중대 범죄의 발생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폭력의 범주에 한정되어 있어 경미한 수준의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있고, 가정폭력만큼 빈번한 데이트 폭력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북아일랜드 등에서는 목조름 행위를 아예 독립된 범죄로 규정해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북아일랜드는 비치명적 목조름 행위를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는 별도의 독립 범죄로 규정했고, 영국은 목조름을 중범죄로 처벌함은 물론 목조름 행위를 담은 포르노의 소지와 유포까지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경찰에 수차례 신고하고도 결국 살해당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 역시, 살인의 강력한 전조로 작용하는 목조름 폭행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25

호날두식 수면법

옛 속담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활동하는 시간의 3분의 1을 잠으로 소비된다. 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긴 시간을 잠으로 채워야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수면과 신체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수면이 신체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수면학회는 성인의 경우,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7~9시간 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6시간 미만 수면자는 심근경색, 뇌졸중, 심부전증 위험이 높아지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치매 위험까지 높인다고 한다. 인간은 잠을 충분히 잠으로써 낮에 활동하며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고 어린이들의 성장을 돕고 뇌에 축적된 노폐물을 청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충분한 수면을 바탕으로 한 최상의 컨디션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잠을 자며 휴식할 수 있는 수면캡슐이나 수면공간을 사무실에 마련했다고 한다. 불혹의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와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전설의 축구선수 호날두의 최고 건강비법으로 다상수면(多相睡眠)이 화제다. 분할수면이라고도 부르는 이 수면은 90분씩 짧게 나누어 하루에 5번 정도 잠을 자는 방식이다. 규칙적 생활을 하는 직장인과 일반인이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또 이 방법이 일반수면법보다 낫다는 의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고 한다. 몸 관리의 끝판왕이란 별명처럼 호날두의 건강은 수면보다 그의 끊임없는 체력 관리의 결과물 아닐까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25

‘강변여과수’

지난 12월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구 상수도의 핵심 취수 대안으로 ‘강변여과수’와 ‘복류수’ 활용안이 제안되었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 해평취수장 공동 활용이나 안동댐 원수 확보를 둘러싸고 지속된 지자체 간의 극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물은 생명줄이자 지자체 간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그간 합의의 길은 매우 험난했다. 이제 시민들은 이 대안이 과연 우리 가족이 마실 물의 수질과 수량을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지, 그리고 조속히 대구의 새로운 취수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강변여과수’는 하천 인근의 모래와 자갈층인 대수층을 통해 하천수가 자연적으로 여과된 물을 채수하는 방식이다. 강물이 수 미터에서 수백 미터에 이르는 지층을 통과하는 동안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정화 과정을 거치며 탁도와 병원성 미생물, 유기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제거된다. 이 방식은 사고 발생 시 오염 물질의 도달을 늦추는 완충 능력이 탁월하고 연중 일정한 수온을 유지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 취수 시 주변 농경지의 지하수위 저하나 환원 상태의 대수층에서 철과 망간이 용출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대구 취수원으로서의 도입 가능성을 타당성 있게 검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질적 불확실성과 환경적 영향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변여과수’는 독일 라인강이나 미국 루이빌 등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며, 국내에서도 창원과 김해시가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수질 개선과 정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대구에 이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타당성만큼이나 ‘유역 공동체 상생’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강변여과수’가 만능 해결책이 아니기에, 대구 상류 지역인 경상북도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원수인 낙동강 본류 수질이 개선되어야 여과수의 안전성도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류 산업단지의 폐수 관리 강화와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 등 경북의 선제적 환경 정책이 병행되어야만 대구와 경북이 함께 맑은 물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취수 지역 주민들의 지하수 고갈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시범 플랜트를 통한 충분한 사전 검증과 투명한 데이터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낙동강 ‘강변여과수’ 도입은 대구 시민에게는 안전한 식수를, 취수 지역 주민에게는 상생 발전을 제공하는 ‘유역 공동체 모델’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특별법’과 ‘상생 발전 기금 조성’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지자체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우리는 2026년 예정된 시범 사업부터 철저한 기술적 보완과 정밀 조사를 거쳐 도입 가능성을 확고히 검증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상호 신뢰 속에 낙동강 본류 수질 개선에 힘을 모으고 ‘강변여과수’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낙동강은 마침내 갈등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2-25

검사에 이상 없다는 말이 왜 환자를 더 아프게 만들까

검사를 다 해봤는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안도하기보다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분명히 아프고 불편한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통증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증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원인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의료 검사는 매우 정교하다. MRI, CT, X-ray는 뼈와 디스크, 인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찾아내는 데 탁월하다. 디스크가 튀어나왔는지 골절이나 종양이 있는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의 모든 원인이 구조적인 이상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검사상 정상 판정을 받았음에도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한다. 이런 경우 통증의 원인은 구조가 아니라 기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신경이 미세하게 압박을 받고 있거나 근육과 근막이 비정상적으로 긴장되어 있거나 혈류 순환이 떨어져 조직 회복이 지연된 상태일 수 있다.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져 통증 신호가 과도하게 증폭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들은 환자에게는 분명히 느껴지지만 일반적인 영상 검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만성 통증 환자에게서 이런 양상이 흔하다. 처음에는 가벼운 통증이었지만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이 반복되면서 통증이 고착화된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근육은 긴장된 상태로 굳어가며 몸은 통증을 하나의 패턴으로 기억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검사에 이상이 없어도 통증은 계속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몸 전체의 흐름과 균형의 문제로 본다. 통증 부위 하나만이 아니라 그 부위로 이어지는 신경과 근육, 혈류, 자율신경의 조절 상태를 함께 살핀다. 통증은 결과이지 항상 원인 그 자체는 아니다. 어깨 통증이 반드시 어깨 관절만의 문제는 아니고 허리 통증 역시 허리뼈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초음파로 살펴보면 MRI에서는 보이지 않던 미세 염증이나 신경 주변 압박 근육층 사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은 작고 미묘해 놓치기 쉽지만 통증과는 매우 밀접하다. 약을 먹고 쉬면 잠시 나아지는 듯해도 기능 이상이 남아 있으면 다시 아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율신경의 역할도 중요한데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몸은 회복 모드로 전환되지 못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통증은 더 쉽게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검사에서는 정상인데 통증이 계속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 상태를 함께 가지고 있다. 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말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단지 구조적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몸은 구조물의 집합이 아니라 신경과 혈류 긴장과 이완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통증은 다른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같은 부위가 계속 아픈지 왜 쉬어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지를 차분히 풀어봐야 한다. 통증은 결코 상상이 아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에 실재하는 통증까지 지워질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는 문제는 없는 문제가 아니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25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

동지가 다가온다. 해가 가장 짧아지는 날, 어둠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순간을 앞두고 나는 엄마의 팥죽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팥죽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었지만 중년을 지나오면서 왜 팥죽이 유독 그리워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시절 겨울은 엄마가 새벽부터 불 앞에 서 있던 등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팥이 끓는 냄비에서는 김보다 먼저 오래된 평온이 부엌을 채웠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더 이상 예전처럼 오래 서 있을 힘이 없고 팥을 불리고 삶아 체에 거르는 반복의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팥이 타지 않게 저어 주었던 아버지의 손길조차 부재했다. 부재는 때로 가장 정확한 요청이 되었다. 여전히 팥죽은 먹고 싶었기에 마침내 혼자서 팥죽을 해보기로 했다. 기억을 따라 하는 요리는 늘 실패를 동반하지만, 실패마저도 한 시절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팥을 씻는 일부터 오래 걸렸다. 검붉은 콩알 하나하나가 제 몸의 먼지를 놓지 않으려는 듯 물 위에서 굴렀다. 몇 번이고 헹구며 깨달았다. 엄마의 팥죽에는 맛보다 시간이 먼저 들어 있었다는 것을. 팥은 오랜 시간을 삶아야 물러졌다. 엄마가 말하던 ‘기다림의 맛’이 이런 것일까 이해가 되었다. 팥은 붉은색으로 재앙을 막는 상징이었다. 동짓날 조상들이 팥죽을 먹는 풍습은 잡귀를 물리치고 새해의 기운을 맞이하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러한 상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팥죽은 주술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해마다 반복하던 어떤 기억의 몸짓, 믿음 대신 사랑을 남기는 행위에 가까웠다.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내기 삼킨 것은 재앙을 막는 붉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견뎌온 방식이었다. 새알은 이름처럼 새해의 알, 탄생의 은유다. 지역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먹는 수만큼 알을 세기도 했다. 나는 나이를 세지 않았다. 다만 하나하나 지나온 겨울과 건너갈 겨울을 포개어 넣었다. 엄마의 손에서 태어났을 알들을 대신해 서툰 내 손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 질서는 능숙하지 못했다. 동일한 모양으로 들어갔던 알들은 익는 속도도 제각각이었고 어느새 일그러져 있었다. 그 불균형이야말로 나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고르게 익지 않았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가라앉았으며 또 어떤 기억은 끝내 형태를 잃지 않았다. 팥죽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던 새알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엄마가 매년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은 액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힘겹고 흩어졌던 시간을 한데 모아 한 그릇으로 건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팥물에 간을 맞추는 순간, 소금을 넣을지 설탕을 넣을지 망설여졌다. 단맛은 이 음식에 익숙한 타협처럼 느껴졌고 소금은 어딘가 고집스럽고 불친절한 선택처럼 보였다. 엄마의 팥죽을 떠올려보니 달지도 않았고 무미하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소금을 집어 들었다. 단맛으로 덮지 않고 팥이 가진 고유한 깊이를 남기고 싶었다. 삶을 지나치게 달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선언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처음 해보는 일은 늘 과해진다. 나는 그릇에 나누어 담아 이웃들에게 건넸다. 겨울 저녁의 문 앞에서 팥죽은 인사말이 되었고 안부는 숟가락보다 먼저 오갔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경계를 낮추는 일이었다. 팥죽이 잡귀를 막는다면 나눔은 고립을 막았다. 나눔을 끝내고 팥죽을 다시 데웠다. 혼자 먹는 그릇 앞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더 이상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어갈 수 없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며 엄마를 기억해 낼 수 있으니 괜찮다. 기억은 반복될 때가 아니라 변주될 때 살아남는다. 올해의 팥죽은 엄마의 것과 닮지 않았지만 엄마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동지가 지났다. 해가 길어졌다.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팥죽은 그렇게 나의 겨울을 통과시키는 한 그릇의 문학이 되었다. 어떤 음식은 배를 채우지 않고도 사람을 살게 한다는 따뜻한 문장과 말로 하지 못한 엄마의 온기를 품은 문장이 되었다. /김경아 작가

2025-12-23

내년도 경기도 비관적이라는 경제계의 경고

연말을 맞아 매년 일어나는 연말특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없다. 작년에는 계엄 여파로, 올해는 소비 부진으로 연말특수가 나타나지 않아 시중의 경기는 겨울 추위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모임 등으로 예약이 쏟아져야 할 시기임에도 조용한 연말 경기에 상인들의 속은 타들어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 경제단체가 내놓는 내년 경기전망마저 암울하다. 경제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경제는 고물가와 고환율 등의 악재가 지속되는 영향으로 대·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가릴 것 없이 내년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6년 기업경영환경 인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 기업의 52%가 내년 경영여건이 어려울 것이라 답했다. 특히 매우 어렵다고 답한 기업은 18%이나 매우 양호는 3.4%에 불과했다. 경영환경이 악화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업황부진과 경기침체 지속이 58%다. 대내리스크 요인도 내수부진과 회복 지연을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의가 전국 소매유통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유통산업 전망조사에서도 내년도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은 0.6%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5년 내 가장 낮다. 성장둔화 요인으로는 소비심리 위축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중기중앙회가 도소매업 및 소상공인 600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소상공인 경영실태 조사에서도 원자재비 및 재료비 상승과 내수침체로 내년도 경영환경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악화될 것으로 본 응답이 가장 많았다. 우리 경제는 원달러 환율이 반년 가까이 오르면서 시중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수입원가 부담이 커지고 이 영향으로 생산자물가가 올라 결국은 소비자물가로 전가된다. 여기에 환율상승에 따른 기름값이 물가부담을 가증시키고 있다. 경제단체 실물경제 조사에도 나타났듯 고물가 고환율의 장기화가 내수경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의 환율 안정에 대한 특단조치와 내수진작이 있어야 내년도 경제에도 희망이 보일 것이다.

2025-12-23

與 ‘영남특위’ 가동···TK정치 구도 변화올까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22일 ‘영남인재육성 및 지역발전특위’ 설치를 의결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험지’로 꼽히는 대구·경북(TK) 지역과 부산·울산·경남(PK)지역 민심 공략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영남권에 어떤 인재를 공천할지, 그리고 어떤 공약을 내걸지 주목된다. 특위 위원장은 4선 중진인 민홍철(경남 김해시갑) 의원이 맡았다. TK에서는 임미애(비례, 경북도당위원장) 의원과 허소 대구시당위원장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특위는 말 그대로 인재 발굴과 지역현안 해결, 비전 제시 등의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월 경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영남 인재들이 민주당에 영입되는 구조가 막혀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빠른 시일 내 영남권 특위를 출범시키겠다”고 언급했었다. 이미 가동중인 ‘호남지역 발전특위’에 비해 시간적 격차가 나긴 하지만, 여권의 TK·PK지역 싱크탱크 역할을 할 구심체가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민주당은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TK 25개 지역구 중 7곳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평소 인재영입을 등한시한 탓이다. 특위의 역할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영남권에서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특히 대구시장 선거에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홍의락 전 의원, 구윤철 기재부 장관 등 중량급 인사들이 민주당 후보로 거론돼 벌써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의 선거캠페인 방식에 따라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홍 전 의원은 최근 대구언론인 모임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유력후보들과 경선에서 함께 겨뤄봤으면 한다”면서 선거흥행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보수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TK정치 구도는 도시경쟁력 차원에서 아주 불행한 일이다. 도시는 정치적 다양성이 있고 광장처럼 열려 있어야 살길이 생긴다. 여당 프리미엄을 가진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TK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2025-12-23

장동혁의 ‘尹어게인 人事’···극우의 길 가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제1야당 대표로선 헌정사상 첫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주자로 나섰지만, 당내 반응은 차가웠다. 그가 토론을 시작하자 여당 의원들은 단체로 의석을 떠났고, 국민의힘 의원들마저 20여 명만 자리를 지켰다. 장 대표의 이러한 당내 입지는 그가 최근 단행한 인사 탓이 크다. 그가 취임한 후 발탁한 사람은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과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김민수 국민소통특위 위원장이다. 이들 세 사람은 ‘윤석열 어게인(again)’ 스피커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비상계엄에 찬성하고 친한(한동훈)계 공격의 전면에 나서 당내 갈등을 주도하고 있다. 이호선 위원장은 지난달 한동훈 전 대표 일가와 관련된 당원게시판 사건 조사에 착수했으며, 지난 16일에는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친한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이란 중징계를 당 윤리위에 요청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나오자 그는 “들이받는 소도 임자도, 돌로 쳐 죽일 것”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이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온 인물이다. 최근 임명된 장예찬 부원장도 대표적인 친윤계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부산 수영)을 받았지만, 과거 있었던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자 한 전 대표를 집중적으로 비난해왔다. 지난 15일에는 한 전 대표를 겨냥해 “당내 오래된 고름 같은 문제”라고 했다. 얼마 전 국민의힘 국민소통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민수 최고위원은 초강경 ‘윤어게인’ 인사다. 그는 지난 8·22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후 장 대표와 함께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도 했다. 장 대표의 이러한 인사에 대해 한 전 대표는 “윤 어게인 세력이 당 정체성을 더럽히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대표의 ‘윤 어게인 노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장 출신인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이 노선으로는 선거 못 치른다는 말이 곧 나올 것”이라고 했고, 여상원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은 “정당에서 말(언로)을 막으면 히틀러 중심으로 똘똘 뭉친 나치당처럼 된다”고 했다. 당내 최다선(6선)인 주호영(대구 수성갑) 국회 부의장은 “‘윤 어게인 냄새’가 나는 그런 방식은 맞지 않다”고 평가했다. 현재 장 대표의 강경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이 상태로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당 40%, 국민의힘 26%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우세했지만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양당(민주당 30%, 국민의힘 33%)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 중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최근 비대위 전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장 대표가 발탁한 ‘국민의힘 스피커’들이 거침없는 극우 목소리를 내면서 당 내분이 임계점을 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23

일본의 핵무장론

현재 세계에서 핵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중국, 소련,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을 손꼽을 수 있으나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 이후 국제적 안보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핵보유국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핵무장론이 나온 배경도 트럼프 외교 정책의 영향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일본, 독일, 폴란드, 한국 등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등장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총리 관저의 안보정책 담당 간부가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밝힌데 이어 일본의 방위상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선택 사항을 배제하지 않고 논의한다”고 말해 일본의 핵 무장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능력 등 핵무기를 6개월 내 만들 수 있는 능력의 나라로 알려지면서 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또 일본 수상 다카이치의 발언으로 중국과 심각한 갈등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핵무기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일본의 핵무장론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유일한 핵무기 피해국가다. 범국민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자국 안보를 위해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 시대적 이치다. 문제는 한국의 입장이다. 중국, 북한, 일본 등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가정할 때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하다. 만약 핵 경쟁력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면 한국의 안보는 치명적 위험에 빠질 게 뻔한 것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5-12-23

“단순하고 천천히”

알람 소리에 깬다. 그러나 눈을 뜨지도 않고 몸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누운 채로 양손을 양쪽 귓속에 넣어 위아래로 당긴다. 뒷목에서 어깨까지 훑듯이 마시지 한 후 발끝 마주치기 30번. 이명 치료에 좋다는 운동이다. 그렇게 하면 몇 분 후 눈이 떠진다.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제일 먼저 물을 마신다. 공복에 마시면 좋다는 게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들기름도 먹어 보고, 미지근한 음양수도 마시다가 최근엔 거기에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라고 해서 아예 정수기 옆에 작은 소금통을 가져다 놓았다. 이조차도 자주 잊으니 아직 몸에 배려면 멀었다. 두유기에 콩을 계량해 넣어 버튼을 누르면 32분 후에 두유가 만들어질 거다. 그 사이 다시 방으로 가서 TV를 켜기도 한다. 아니면 냉장고에서 몇 가지 채소를 꺼내 씻고 썰고, 빵 한 조각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아침 식사 준비는 거의 다 된 셈이다. 그즈음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한다고 예고를 한 후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나는 남편을 부른다. 은퇴하고 4년 정도 지나니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들은 이렇게 어느 정도 정돈이 된 듯한 루틴이다. 4년 전, 은퇴 후의 삶을 꽤나 거창하게 계획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었고, 메모해 두고 실행하려고 애썼다. 주위에도 알리고 칼럼까지도 썼다. 스스로의 다짐을 공표하여 실천력을 높이려는 얄팍한 의도였겠다. 가끔씩 메모를 체크해 보기도 하는데, 실천한 것도 많고, 변경한 것도 있고, 추가한 것도 있으나 포기한 것도 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니 스스로 변명하고 위안하며 토닥인다. 인생이 목표를 정하고 아등바등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성취도 좋고 만족감도 짜릿하긴 하다. 그러나 거창하지도 별스럽지도 않은 매일의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것, 매일매일의 아침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순간의 평온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일본의 93세 할머니의 하루를 손자가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이불 털고 점심 만들어 먹고 밭에서 일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또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잠자리에 드는 기노에 할머니의 하루는 마치 할머니 자신을 위한 경건한 의례 같았다. 할머니의 일상에서 감명을 받은 건 자신의 삶에 대한 최고의 예의라는 인상 때문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쓴 좌우명이 생각난다. “여전히 나답게 살자.” 아마도 ‘나다운 나’에 집중하는 한 해를 살아보자고 한 다짐이었다. 매사에 열심히 살며 충실하자는 의미였을 텐데, 이제 일 년 지나 되돌아보니 글쎄다 싶다. 어떤 제안도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도 즉흥적인 약속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겹친 일정을 조정하고 헤쳐 나가면서 야릇한 쾌감마저 느꼈다. 성취도 있었으나 그러다 보니 몸에 부쳤는지 난치성 이명을 얻게 되었다. 얻은 만큼 잃었다. ‘여전히 나답게’ 살았을진 몰라도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음을 깊이 뉘우친다. “단순하고 천천히.” 내년을 위한 새로운 좌우명으로 정했다. 그렇게 일 년을 살아보자. 나의 일상을 바지런한 기노에 할머니처럼 충만하게 꽉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23

조직문화와 관계 원리

조직 문화 혁신의 본질은 ‘제도‘가 아니라 ‘관계의 균형‘이다. 수많은 기업이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규정부터 고치고, 평가제도를 손보고, 회의 방식을 바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왜일까? 조직문화는 제도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방식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기업 대부분은 50:50의 조직 문화로 운영된다. 회사는 급여를 지급하고, 직원은 상응한 일을 한다. 정해진 만큼만 책임진다. 이는 공정성과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하지만, “제 역할이 아닙니다. 규정에 없는데요“ 등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50:50의 문화는 조직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지, 조직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아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에는 60:40의 온도가 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 항상 조금 더 내어주는 관계가 존재한다. 리더가 먼저 책임지고, 조직이 신뢰하며, 말 한마디에 배려가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60:40의 문화이고, 손해가 아니라 신뢰에 대한 선투자다. 사람은 계산보다 태도에 반응한다. 그래서 60:40의 조직에는 말이 적어도 사람이 남는다. 가령, 콩 하나를 두 조각으로 쪼개면 어느 한쪽이 작을 수 있다. 이때 내가 40, 상대가 60이 될 때 내 주위로 사람이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60:40을 적용하면 성실한 사람만 지치고, 모든 관계를 50:50으로 관리하면 조직은 냉각된다. 성숙한 조직문화는 50:50 원칙, 60:40 태도의 원리가 존재한다. 원칙과 평가는 공정하게, 소통·기회·존중은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제조업 조직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제조 현장은 말보다 관계의 체감 온도가 중요하다. 불합리한 지시는 규정이 아니라 신뢰 부족에서 반발이 나오고, 개선 제안은 제도가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나온다. 현장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현장의 관계 공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S사는 연초부터 긍정조직 문화를 조성하고자 ‘조직문화 개선‘ TFT를 구성하고, 제도 개선, 본사 스텝 전원이 솔선활동에 참여하는 등 많은 시도를 해왔다. 교대실, 휴게실, 운전실에 ‘디지털 S뉴스’로 회사 소식을 실시간 전하고,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직책보임자 1인 1 프로젝트 수행으로 성과도 있었지만, 긍정 조직 현장의 온도는 미미했고 변화된 제도만 남았다. 조직 문화 혁신은 슬로건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오늘 회의에서 누가 먼저 책임을 졌는가, 문제 발생 시 누구를 보호했는가, 성과보다 태도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등의 선택이 쌓여 조직문화가 된다. 조직 문화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 ‘운영방식’이다. 50:50은 조직을 공정하게 유지하고, 60:40은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공정함으로 조직을 지키고, 배려로 조직을 성장시킨다. 어디서 공정해야 하고, 어떤 때 내어줄 것인가를 리더가 분명히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조직 문화의 시작이고, 공정과 배려의 균형 있는 조직문화가 좋은 기업문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23

사라진 문명에서 배우는 웰니스의 지혜

어제, 나는 마추픽추의 가파른 돌계단을 묵묵히 올랐다.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 짙은 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대 도시의 흔적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발 2400미터, 태양의 신전에서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은 숨 막힐 듯 고요하고 장엄했다. 잉카인들이 이곳을 ‘신의 집’이라 칭송하며 신성시했던 이유를 가슴 깊이 이해하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질문이 있었다. “왜 그토록 찬란하고 위대했던 문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한때 지구에는 잉카, 마야, 아스텍과 같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문명들이 존재했다. 철기 문명의 도움 없이도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어 농사를 지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시대를 구현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했던 제국은 이제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그 몰락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단순한 탐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구조적인 균열 때문이었을까? 잉카 사회의 근간은 ‘아이유(Ayllu)’라는 독특한 형태의 공동체였다. 혈연과 깊은 신뢰로 굳게 묶인 그들은 사적인 이익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도왔다. 그들은 땅을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숭배하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했다. 마야인들은 정교한 천문 관측을 통해 별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 리듬에 맞춰 농사를 지었으며, 천상의 질서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세계관 중심에는 언제나 ‘조화(調和)’라는 핵심 가치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조화는 문명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성공의 함정’이었다. 잉카는 뛰어난 군사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안데스 산맥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은 점차 소수 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되고 공동체의 정신은 점차 약화되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마야 문명 역시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을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복잡하고 화려한 제례 의식과 과도한 토목 공사는 사회 전체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끊임없는 전쟁과 환경 파괴는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했고, 결국 외부의 침략은 이러한 내부의 균열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제국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공 편향(Success Bias)’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지나치게 도취된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맹신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갇혀 새로운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는 외부의 강력한 적에 의해 강제로 패망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오만과 경직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어떤 문명보다 훨씬 강력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손 안의 작은 기기 하나로 전 세계와 소통하고,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며, 유전자 기술은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주 탐사는 인류의 지평을 넓혀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지고 있다. 심각한 환경 오염,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 질환 등, 눈부신 기술 발전의 뒤편에는 어둡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눈부신 기술 발전만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인간 내면의 균형을 잃고 자연과의 조화를 파괴한다면, 아무리 위대한 문명이라도 결국에는 쇠퇴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웰니스는 단순한 신체적 건강 이상의 훨씬 더 깊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몸과 마음,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잉카인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갔던 이유, 마야인들이 천체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 조화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잉카의 현자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 말을 건넨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너희는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너희 문명의 중심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너희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웰니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다. 그것은 멈춤의 지혜, 성찰의 여백, 그리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맹목적인 경쟁과 끝없는 효율성 추구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린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적인 몰락은 우리에게 과거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과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가 속한 문명을 깊이 성찰하고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멸망이 아닌 성숙으로, 붕괴가 아닌 지속적인 성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2-23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무섭다

‘세상에 안 오르는 건 월급 뿐’이란 샐러리맨의 하소연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를 반영하고 있다. 점심 한 끼가 1만원을 넘어선 건 이미 오래전이고, 저녁에 동료 서너 명이 삼겹살이라도 구워 술자리를 가지려면 최하 10만원은 필요하다. 이제는 한국인이 숭늉처럼 마시게 된 커피 값도 갈수록 만만치가 않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한계점 없이 올라갔다. 특히 18~24세 젊은이들과 25~39세 직장인이 그 상승을 견인했다. 국제커피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405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미국인(400잔)의 커피 소비량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한국인이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좋은 향과 고급스런 맛을 강조하는 고가의 커피도 한국에선 잘 팔린다. 그러나, 그건 일부 호사가들의 경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만 개에 육박한다는 커피전문점 가운데 비교적 가격이 낮은 곳을 찾아다니곤 한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 나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앞으론 커피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돈을 주고 사도록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컵 가격은 100~200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오염을 막겠다는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저가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대략 1500~2000원쯤임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커피 값 상승률은 10%가 넘는다. 이래저래 마음 편히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부담되는 세상이 온 것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22

권력의 폭주를 멈추게 하려면

집행권력(정부)과 입법권력(국회)이 폭주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집권세력의 ‘권력도취병’이 재발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이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집단 퇴정한 검사들에 대해 감찰을 지시하고, 정부는 ‘내란 청산’을 명분으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핸드폰 조사를 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위헌 소지와 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내란을 빙자하여 ‘정의를 독점하는 정치’로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나는 정의, 너는 불의’라는 권력의 독선은 ‘정의를 수호하는 정치’가 아니라 ‘힘으로 정의를 포장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정부여당이 사법부까지 장악하기 위해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삼권분립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있으니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장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괴물이 되며, 괴물이 된 권력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이러한 권력의 폭주를 누가,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당의 역할이다. 정부여당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야당에게 있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은 극우 팬덤들에 휘둘리고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 지지율은 지난 6개월 동안 20%대(민주당은 40%대)에 멈추어 있으며, 장외투쟁으로 여론에 호소해보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반성하고 혁신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국민과 함께해야 권력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한편 언론의 역할과 책임 또한 무겁다.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보수 또는 진보 정권에 관계없이 정론직필(正論直筆)해야 한다. 언론이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지지 또는 비판한다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겠는가? 보수정권이 잘못하면 보수언론도 비판하고, 진보정권이 잘못하면 진보언론도 비판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상식이 아닌가?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지지 또는 비판하는 ‘정파적 해바라기 언론’은 결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국론의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이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주권자는 시위·청원·캠페인 등 조직화된 압력으로 권력의 폭주를 저지할 수 있으며, 선거를 통해서 권력 자체를 교체할 수도 있다. 아무리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시민의 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주권자는 진영논리에 빠지거나 편파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깨어 있는 시민’이란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다. 전 정권의 계엄을 거부했던 것처럼,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도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정의롭고 공정한 주권자의 이성적 판단만이 권력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2-22

‘전기료 인하’가 철강산업 정상화의 선결과제

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고위 당정 협의회를 열고 석유화학 및 철강 산업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대로 두면 관련 중소업체를 시작으로 도산 도미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철강도시인 포항으로선 지역경제의 충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회는 지난달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탄소중립 전환 특별법)을 통과시켜 구조조정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협의회에서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일자리 감소나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보면, 우선적인 구조조정 대상 품목은 철근이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 없는 철근의 경우, 현재 중소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어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고부가 품목인 특수강·전기강판 등에 대해선 과감한 선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생존 가치와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중점 지원해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구조조정 원칙이다. 정부의 철강산업 구조조정과 지원 방향에 대해 철강업계는 수긍하는 분위기다. 업계에도 기업 자율에 맡기는 구조조정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철근 가격을 더 받을 것이냐, 덜 받을 것이냐의 문제를 기업들끼리 협상해서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문제가 이날 당정협의회에서도 논의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최근 3년간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70% 가까이 인상됐다. 중국의 경우 산업용 전기를 정부가 보조해줘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에 더 싸게 전력을 공급하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하루빨리 시행해 철강회사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simct12@kbmaeil.com

2025-12-22

불붙은 대전·충남 통합···대구·경북은 어디로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대전·충남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오찬 자리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 뒤 대전·충남 행정통합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통령 발언 다음 날 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발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발 빠른 행보를 시작했다. 특위 공동위원장인 박정현 의원은 내년 1월쯤 법안을 만들고 3월쯤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설명도 했다. 대전·충남 통합 논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정부가 서두르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비수도권의 행정통합은 수도권 일극체제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필수 방법이지만 지방선거 6개월을 두고 이렇게 서둘러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대구와 경북은 2019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행정통합 시도를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합의 추진한 행정통합을 다음 시장인 홍준표 시장도 이어받았다. 2024년 12월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동의안이 대구시의회를 통과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대구시 동의안의 통과에도 경북 일부 지역 반대와 도의회의 동의가 나오지 않아 지금은 논의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부산·경남·울산도 부울경 메가시티를 추진하다 좌초된 경험이 있다. 행정통합은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본다는 주민의 생각이 존재한다. 또 대도시로 혜택이 쏠리면서 작은 지자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통합 명칭, 통합 방향, 통합청사, 주민투표 등을 놓고 많은 갈등이 생긴다. 주민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아 대전·충남의 행정통합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다만 대전과 충남 통합이 일사천리 진행된다면 성사 여부를 떠나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 지역 단체장과 정치권은 대답을 해야 한다. 야당은 대전·충남 통합에 대해 정략적 의도가 숨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성공에 대비한 대구·경북의 준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2025-12-22

강자 VS 약자

불어 ‘르상티망’의 사전적 의미는,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나 아등바등한들 늘 제자리 걸음하기도 벅찬 삶의 허무함에 대한 억압적 감정이다.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르상티망은, 질투나 시기심, 원한 감정 또는 분노다. 강하다는 것은 도달하고 싶은 것이면서,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강자와 약자 사이를 방황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다. 강자는 스스로를 증명한다. 그는 비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힘을 세계로 흘려보낸다. 그 힘은, ‘폭력적일 필요도 없고, 지배적일 필요도 없다.’ 창조하고, 책임지고, 감당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강함이다. 그러나 강함이 드러나는 순간 세계는 조용히 갈라진다. 약자는 증명할 꺼리가 없다. 그는 타인과 비교하며, 변명하며, 자신이 가진 원한 감정을 세계로 흘려보낸다. 겉으로는 강자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정의를, 공정을, 평등을 말한다. 창조하지도, 책임지지도, 감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약함이 드러나는 순간 강자는 조용히 지배당한다. 약자는 강자를 직접적으로 쓰러뜨릴 힘이 없다. 그래서 강함 자체를 문제 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약자에게 강함은, 위험한 것, 부도덕한 것이다. 약자의 르상티망은 격렬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며,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칼을 갈 일이 없다. 르상티망은, 찌르지 않아도 깊이 스며든다. 경쟁을 악으로, 탁월함을 의심의 대상으로 바꾼다. 약자는 묻는다. “왜 저 사람은 저 자리에 있는가?”라고. 때로는 정당한 이 질문에 르상티망이 개입되면 질문의 의미는 강자에 대한 단죄로 바뀐다. 약자는, 강자를, 아니 강함을 약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약자 스스로 강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약자가 원하는 것은 ‘아무도 강하지 않은 세계’다. 이곳에서는 비교할 필요도 없고,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약자의 르상티망 속에서 강자는 서서히 지쳐간다. 이것이 약자가 강자를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강자의 힘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강함의 의미를 소진시킨다. 약자가 결국은 승리한다. 그러나, 승리의 축배를 들어도 약자는 행복하지 않다. 여전히 약자이기 때문이다. 르상티망은 단순한 원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지’다. 르상티망에 공격당한 강자는 끊임없이 사과해야 한다. 이유 없이 미안해야 한다. ‘왜 더 가졌는지’ ‘왜 더 빨리 갔는지’ ‘왜 더 잘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 끝나면 또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 르상티망은 교묘하다. 언제나 선한 얼굴을 한다. 그러나 그 선함에는 기쁨, 웃음, 여유, 삶을 긍정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약자들이 무너뜨리고 싶은 강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폭력적이지도 않고 지배하지도 않지만, 그토록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강함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강자의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돈 한 푼 없었고, 아무런 지배를 하지 않았던 부처와 예수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부처가 약자라면, 그가 강자에 대한 원한 감정이 있었을까. 예수가 약자라면, 그에겐 아무런 창조하는 힘도,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을까. 그대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5-12-22

국가와 국민

민주주의 국가의 성립에 대한 근거로 흔히들 사회계약설을 든다. 사회계약설은,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의 합의(계약)에서 나온다는 이론으로, 개인들이 자연 상태의 불안정함을 벗어나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약속(계약)하여 국가를 만들고, 이 계약을 통해 형성된 국가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사상이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이 주창한 이론으로, 핵심은 국가를 개인의 자연권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국가의 형태와 흥망성쇠는 그 시대를 사는 개개인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전제군주 국가의 백성은 통치자의 자비에 의존하며 자유와 인권을 제한받는 삶을 살았고, 식민지 백성은 주권을 상실한 채 민족적 정체성의 위협과 억압, 경제적 착취 등의 고통을 받았다. 후진국 국민은 빈곤과 불안정한 정치, 낮은 사회 인프라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반면에 선진국 국민은 잘 갖춰진 사회 안전망,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의료 혜택, 그리고 법치주의 속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된다. 21세기의 국가는 과거의 단순한 통치 체제를 넘어 글로벌 경쟁 시대의 주체이자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경의 의미는 약화되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소프트 파워‘와 ‘안전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백성‘이 아니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주권자이며, 투표와 정치 참여를 통해 국가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능동적인 주체다. 국가는 국민의 봉사자로서, 국민의 의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괄목할 만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다. 지구상에 완전무결한 이상국가는 없을진대, 온갖 우여곡절과 끊임없는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 80년사는 눈부신 성장의 역사였다. 하지만 통탄스럽게도 그런 역사를 폄훼하고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이 지금 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6·25전쟁 이래 국가 체제가 이토록 위태로운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의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한 좌파세력들에 의해 법치가 무너지고, 반공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다. 건국 이전부터 끊임없이 준동하고 암약해온 불순분자들과 그들과 결탁한 정치세력과 사회단체, 또한 그들에 의해 좌경화된 국민들이 합세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위기감이나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국민들이 과반수인 실정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없이는 지금의 사태를 수습하고 국가 동력을 회복할 전망이 어두워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의 불씨라면, 상당수 젊은이들이 각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봄의 새싹처럼 밀치고 올라오는 이 새로운 기운이 불의한 세력을 평정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2-22

이분법과 양비론

오늘은 24절기의 22번째인 동짓날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에서 동짓날은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여름의 정점인 하지(夏至)와 비교하면 대략 5시간 정도 낮의 길이가 짧은 날이 동지(冬至)다. 어둠을 꺼리는 만큼 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생의 약동을 꿈꾸기 시작한다. 밤이 가장 깊은 시각은 동시에 동트는 새벽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새삼 이분법을 돌이키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생의 여러 모습이다. 한여름 소나기 지나간 자리에 찬연하게 빛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삶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천변만화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인생의 고빗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과 사연이 자리한다. 그러하되 우리는 명쾌하고도 특정한 시각으로 인간과 세상을 재단한다. 이분법은 우리가 의지하는 매우 친근한 관점이자 행동 방침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처럼 단순하고도 강력한 분별과 차이가 이분법의 고갱이다. 예를 든 대상 가운데 전자는 우리의 영원한 벗이자 우방이며, 후자는 원수이자 악마로 화한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충돌, 대립과 갈등, 불화와 반목(反目)이 발원한다. 양자택일의 관점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분법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중간지대를 포기하기에 포용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야’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찔러 맹인(盲人)으로 만들어버리고 시칠리아를 탈출한다. 폴리페모스처럼 하나의 눈으로만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분법과 달리 양비론(兩非論)은 제3의 시선을 전제한다. 양비론은 너희 둘 다 틀렸다는 관점에 기초한다. 양비론자들은 자기네의 관점만이 옳다는 전제 아래 이분법에 기초한 자들을 비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의 관점이 변증법적인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 한, 양비론도 사태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다. 회색의 중립지대에서 그들은 지적인 유희에 탐닉한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내란 정국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이 상호 충돌하면서 여론 매체가 들끓는다. 여론을 추동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대고 있으며, 일부 현학적인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포장만 그럴듯한 양비론을 제시한다. 양자를 넘어서는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안의 출발점은 역사 인식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의 근저에 지나간 날들의 오류와 실패가 자리해야 한다. 성공과 승리가 아니라, 실패와 패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위인전의 쓸모는 위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이 겪은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출구 모색과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강렬한 의지의 발현에 있다. 동지는 음기(陰氣)가 절정에 이르는 날이지만, 양기(陽氣)가 소생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선인들은 동짓날을 ‘일양(一陽)이 생겨나는 날’이라 보았다. 장쾌한 시각에 기초하여 이분법과 양비론을 넘어서는 위대한 통합과 전진을 염원하는 동짓날 아침이 환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2

동지팥죽

오늘은 동짓날이다. 1년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날로 양력으로 대개 12월 22일이 해당된다. 이 날은 세시풍속으로 가정마다 팥죽을 끓여 먹는다. 우리의 선조들은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작은 설로 여길 정도로 동짓날을 의미 있는 날로 대접을 했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도 했다. 팥죽 속에 찹쌀로 만든 새알을 넣고 나이만큼 새알을 먹는 풍속이 있다. 팥을 고아 팥죽을 만들고는 가장 먼저 동네 사당을 찾아간다. 사당에서 동지고사를 지낸 다음, 집안의 각방과 장독대 헛간 등 곳곳에 팥죽을 놓아둔다. 팥죽이 식으면 가족들이 모여 죽을 먹는데, 팥의 붉은 색이 악귀를 쫓아내는데 효능이 있다고 믿은 탓이다. 새해에도 농사가 잘되고 가족들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의례기도 하다.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를 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불렀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비유해 “동지섣달의 해는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또 우리 속담에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는 말이 있다. 동지가 지나면 온 세상이 새해를 맞을 준비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우리의 선조는 자연의 변화를 경험으로 관측하고 동지 이후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올 한해도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지혜를 생각하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12-21

iM뱅크 행장 확정, 새로운 도약의 시작되길

iM뱅크 금융그룹은 iM뱅크 최고경영자 후보에 강정훈 현 부행장을 추천했다. 강 부행장은 주주총회를 거쳐 올해 중 iM뱅크의 새로운 수장이 된다. iM뱅크 그룹 황병우 회장은 지난 9월 “연말까지 iM뱅크 은행장을 새로 선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거"라 밝힌 바 있어 그 약속이 지켜진 셈이다. iM뱅크는 신임 행장 선출을 두고 그동안 그룹 임추위를 구성하고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고난도 면접 등을 통해 은행장 최종 후보를 확정했다. iM뱅크는 지난 5월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전환됐다. 정부가 은행권 경쟁 촉진과 지역경제 변화에 대응할 목적으로 32년만에 지방은행의 시중은행을 허용한 것이다. 시중은행으로 전환은 됐지만 은행의 규모 면에서 기존 시중은행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자본금이나 직원 수, 점포망 등이 5분의 1 수준인 지방은행이 단숨에 은행권 경쟁을 촉진시킬 수도 없다. 오히려 시중은행과 경쟁을 벌이다가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 건전성과 자본비율이 약화될 우려도 없지 않다. 또 급성장하는 인터넷 은행도 또 다른 경쟁자다. 물론 저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전국으로 점포망을 확대할 수 있는 큰 장점도 있다. 그러나 지방은행서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큰 기대를 거는 건 무리다. 하지만 전국을 무대로 나서는 iM뱅크에 대한 지역민의 기대는 여전히 크다. 60년 가까이 지역경제와 공생관계를 가져온 iM뱅크가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전국은행으로 잘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전국에서 낸 이익을 지역에 재투자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길 희망하는 것이다. iM뱅크는 지역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다. 오랫동안 지역과 희로애락을 같이해 온 지방은행의 근본을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이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새로운 행장에게는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시중은행 전환이란 과제만 해도 벅찬데 금융환경도 급변한다. 지혜롭게 대처해 iM뱅크의 시중은행 전환이 새로운 도약점이되는 의미 있는 역사로 남게 하여야 한다.

2025-12-21

메타세쿼이아 숲의 정수, 익산 아가페 정원

우리나라 국민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민간정원은 어디일까. 공신력을 인정받은 국가기관 산림청이 선정해 발표한 곳 중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결정의 언저리에는 대국민 온라인 선호도 조사와 전문가의 현장심사를 통해서 선정되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북 익산에 있는 아가페 정원은 색다른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통영 동백커피식물원, 정읍 들꽃마당, 제주 생각하는 정원, 울주 온실리움, 구례 천개의 향나무숲정원 등과 함께 선정되었다. 고흥 쑥섬, 해남 문가든, 괴산 트리하우스, 제주 생각하는 정원 등도 포함된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 중의 한 군데이기도 하다. 참고로 ‘민간정원’은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정성을 다해 가꿔온 정원을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개방하는 정원이다. 전국에 150여 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아가페 정원의 소유자는 천주교재단이다. 1970년 고(故)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수목 정원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2021년 3월에는 늘 푸른 숲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휴식과 정서함양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민간정원으로 등록하였다. 수선화, 튤립, 목련, 양귀비 등 아름다운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 찾는 이의 마음을 은혜로움으로 만들어 버리는 장소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1970년이라면 무척이나 척박했던 시절이다. 거처도 보호자도 없던 노인 30여 명을 모아 무료 양로원을 세웠으나 문제는 운영비였다. 기부금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려워 고민 끝에 생각해 내었던 게 지금의 정원이다. 정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를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호미와 삽을 들고 흙을 일구었다. 나무들이 자라는 만큼 자부심도 양로원도 조금씩 커나갔고 그 기간이 무려 50년에 달했다. 쌓였던 세월의 연수만큼이나 나무의 수종도 점점 늘어나 지금은 17종 1416주다. 아가페 정원의 산책로는 1670m에 달한다. 계절마다 펼쳐지는 꽃과 나무의 향연을 고스란히 두 눈으로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평안한 길이다. 정원 곳곳에 스며 있는 메타세쿼이아, 공작단풍, 섬잣나무, 잣나무, 향나무, 백일홍 등 수많은 수종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봄의 목련을 시작으로 영산홍과 튤립, 수선화가 축제를 열고, 가을의 초입에는 꽃무릇과 맨드라미가 붉은 기운의 물결을 일으키고 공작단풍이 화려함의 극치를 장식한다. 아가페 정원의 초입은 좌우에 두 개의 대리석이 있고 붉은 벽돌담이 이어지는 형식이다. 좌측 대리석에는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정양원”이란 글자가 눈으로 들어오면서 전방에는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게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서 우측의 향나무 사이로 진입로가 연결되는 데 화장실과 정원의 휴게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방문객들은 진입로를 따라 조용히 걸으면 되는데, 첫 번째 맞이하는 숲이 향나무 숲이다. 향나무 아래에는 8월과 9월에는 맥문동이 피어나고, 10월에는 맨드라미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조금 느리게 걷는 것도 괜찮아”라는 흰 팻말이 시선을 끈다. 산책로는 좌측으로 꺾이면서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들이 나타나고 길은 아기자기하게 연결이 된다. 조금은 너른듯한 공터가 나타나면서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라 적힌 팻말이 지시하는 지점에, 마치 병풍을 친듯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하늘을 반 정도 가리면서 서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아가페 정원의 정수다. 정원의 설립 초기에 심어두었던 500여 그루가 어느새 높이 40m에 이르는 장대한 나무로 성장해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 서면, 지나간 세월에 녹아들었을 수많은 어르신의 피와 땀들이 오롯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여 괜히 가슴이 짠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일렁이며 소리를 내면서 격하게 흔들린다. 그들의 마지막이 영원한 안식으로 구원받았음을 증명하는 날갯짓이리라. 마음마저 정화되는 듯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어본다. 더는 표현하기 어려운 벅참의 연속이다. 수런수런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히고, 정갈하면서도 정적인 느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영원히 진한 여운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아가페 정원의 중심은 유럽식 정원의 전형이라는 영국식 포멀가든(Formal Garden)이다. 정교하게 대칭을 이루는 화단에 고전적 조형물, 대리석 분수, 그리고 계절마다 바뀌는 색색의 꽃들이 그것을 대변한다. 어느 누군가는 고요한 품격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람을 위한 사랑의 공간이라는 말이 저절로 가슴에 와닿는다. 사계절 내내 언제 찾아도 좋은 민간정원이다. 봄에는 유채와 데이지, 여름에는 루드베키아와 라벤더, 가을에는 상사화와 공작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정원을 온통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곳이다. 아가페 정원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인 황등석산과 12분 거리의 미륵사지를 연계할 것을 권한다. 황등석산은 한 세기 동안 돌을 캐던 거대한 채석장이, 요즘 들어 MZ세대들이 일부러 찾아드는 힙한 ‘감성 핫플’로 재탄생한 곳이다. 지난 10월 25일에 일부분이 개장되었는데 약 1개월여 만에 약 2만 명을 돌파하며 전북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예전 이곳에서 채굴되었던 황등석은 국회의사당, 대법원, 청와대 영빈관의 13m 기둥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터다.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아가페 정원의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이며 정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주말 및 공휴일 방문 시에는 방문 2주 전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주말의 예약전화는 (063)843-7294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12-21

내연산 산신 할무당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끔찍이도 산신을 섬겨 왔다.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서 시신을 매장하거나 묘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부터 지내는 풍습이 있다. 사찰 뒤편엔 으레 산신당이 있을 정도다. 산신 중에서도 문헌에 전하는 이름난 산신이 더러 있다. 삼국유사에는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한다. 또 제2대 남해왕의 부인 운제부인(雲帝夫人)은 운제산(雲梯山) 성모가 되었다고 한다. 성모는 신모(神母), 즉 여신을 말한다. 지리산 산신은 지리산 성모이다. 석상으로 새겨져 오랫동안 천왕봉을 지키고 있던 중 수난을 받아 조각난 채 흩어져 있다가 현재 경남 산청군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포항을 대표하는 산, 내연산에는 어떤 산신이 있는가? 바로 ‘할무당 할매’다. 물론 지리산 산신처럼 여신이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2리(산령전) 마을 뒷산 중턱에는 백계당(白啓堂)이라는 현판이 붙은 신당이 하나 있다. 바로 내연산 밑에서 오랫동안 내연산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온 송라면, 청하면 일대의 주민들이 신봉하는 산신인 할무당(姑母堂) 할매를 모시는 신당이다. 신당 안에는 조성 연대가 불분명한 석조 신상을 모셔 두었다. 얼굴이 경주 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을 조금 닮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이 삼화령 미륵불을 연상케 하는데, 신격으로서의 할무당 할매의 좌정담을 담은 신화가 있다. 옛날 보경사에 박씨 성을 가진 보살이 한 분 있었다. 가족도 없이 보경사에 들어와 주로 공양간에서 스님들의 공양 준비를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한 번씩 부처님께 호랑이 밥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해 눈이 조금 내린 겨울날 아침, 공양간에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방으로 가보았는데, 신발만 보이고, 방문이 열린 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덮인 마당엔 호랑이 발자국이 보였다. 사람들이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 가니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에서 할머니 옷가지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평소 할머니의 소원을 부처님이 들어주셨고, 산신인 호랑이가 업고 갔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사당을 지어 모셨다. 이 신당은 원래 현재의 신당 위치에서 위쪽으로 약 4km쯤 떨어진 내연산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 할무당재에 있었으나, 약 100년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때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상이 산기슭에 버려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할무당 할매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제자리에 모셔지게 되었다. 할무당 할매를 신봉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내연산에서 풀을 베거나 땔감을 얻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인근 14개 마을의 주민들이다. 이들 주민들은 일찍이 백계당숭봉계를 조직하여 할무당 할매를 모셔 왔다. 할무당 할매가 모셔진 백계당 앞에서 우마를 타고 지나가면 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든지, 조사리의 장모 씨는 환갑이 되도록 무자식이었는데 할매한테 공을 들인 후 60세가 넘어 자손을 봤다든지, 6·25 전쟁 때 격전지였지만 이 신당만은 폭격을 면했다든지, 1986년, 이곳에서 산판 사업을 하던 사람이 산판길을 뚫는다며 이 신당 앞에 있는 아름드리 노송 세 그루를 베어내고 길을 냈다가 신당 앞에서 차가 전복되어 현장에서 즉사했다든지 하는 영험담들은 할매에 대한 신앙심을 강하게 떠받치고 있다. 할무당 할매를 모시는 곳은 내연산에 위치한 백계당 신당을 중심으로 여러 곳이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 방향 약 500m 지점에 위치하는 첫달목이란 곳에도 신당이 하나 있다. 첫달목 신당은 바위 밑에 위패(姑母堂神之位)만 모셔져 있는 형태인데, 매년 사월초파일 새벽에 내연산 계곡 하류에 사는 주민 대표로 조직된 연산계에서 제사를 받든다. 그와는 별도로 또 중리(중산1리), 학산(중산2리), 덕곡(중산3리), 두곡(대전1리)에서는 동제당에 입향조 외에 할무당 할매 위패를 모셔 두고 마을제사 때 잔을 올리는 전통이 이어내리고 있다. 포항은 동해안에 위치한 지역의 특성상 그 동안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전하는 일월신(日月神) 연오랑·세오녀가 주목을 받아 왔다. 포항시에서는 이를 지역의 정체성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고, 상당한 성과도 냈다. 포항이 긴 해안선을 끼고 있는 임해지역이지만, 북서쪽엔 고봉준령들에 둘러싸인 산악지역도 넓게 분포돼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전통문화도 잘 전승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제 시야를 넓혀 내연산 산신 할무당에도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할무당은 포항의 정신문화사에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할무당 할매는 오랜 세월 동안 내연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온 신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재도 광범위한 지역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포항을 대표하는 산신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12-21

환단고기 논란을 보다가

지난 12일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받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다. ‘환단고기’는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역사서이고, ‘환빠’는 ‘환단고기’ 맹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때 대통령이 ‘환단고기’가 문헌이다,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비판의 소리가 크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환빠’라고 한 것만 봐도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다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인지하는지, 역사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이냐의 질문 과정 중 하나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단군 관련 이슈에 특별한 관심이 가는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1909년 나철이 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중광했는데 대종교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 한얼님이라고 하여 모두 믿는다. 중광(重光)은 한국에 단군과 천신을 모시는 전통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나철이 그것을 재건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종교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 아버지가 만주에서 사실 때 대종교 3대 도사교였던 윤세복이 이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몇 번 방문한 적도 있다. 대종교의 경전은 ‘삼일신고’와 ‘신사기’인데, 특이한 것은 대종교에서는 1917년에 발견된 ‘천부경’도 경전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삼일신고’는 온전히 수행에 관한 책이고 ‘신사기’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지만 ‘환단고기’처럼 실재 사실처럼 서술했다기보다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천부경’ 역시 수행과 관련이 깊다. 대종교가 ‘환단고기’를 수용하거나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극단적 민족주의 경향을 띠는 것과는 달리, 대종교에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관점은 수행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대종교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종교 신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은 일제 탄압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자결하였고, 2대 도사교 김교헌은 1919년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3대 도사교 후보였던 서일은 독립운동을 위해 도사교를 마다하고 대한정의단을 발족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많은 대종교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지향한 활동이 아니다. 대통령이 왜 ‘환단고기’와 ‘환빠’를 언급했는지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지금도 ‘환단고기’를 실제 역사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 제대로 대응해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 옳다. 다만, 엄밀한 역사학이라는 명분으로 고대에 대한 상상력까지 말살하지 않기를 바란다. ‘환단고기’는 수용하지 않더라도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 관련해서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21

어린이의 질문에, 포항이 답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아동센터에 다니는 ○○입니다.” 얼마 전 의회로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다. 포항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직접 쓴 편지였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또박또박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가끔 생각해보면 어른들은 참 좋지 않은 것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건강에 나쁘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욕하지 말라고 하면서 운전할 때 욕하는 어른들도 봐요. 어린이들이 보는 곳이든 안 보는 곳이든, 우리에게만 하지 말라고 하면 될까요?" 그리고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을 배웠다며, 도대체 누가 윗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규칙 같은 법도 있다는데, 어른들이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로 편지는 마무리돼 있었다. 어린이의 문제의식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건물임을 알면서도, 바로 아래층이나 주변에서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현실, 그로 인해 겪는 간접흡연의 고통을 또렷이 짚어냈다. 이 편지를 읽으며 ‘민원’이라는 말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떠올랐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어린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는 어른들이 정작 자신에게만은 지나치게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을 향해 단호하게 질문을 던지는 어린이들의 태도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포항시의 대부분 행정은 지역 현안과 개발, 예산 논의가 중심이고, 아동과 청소년의 생활환경을 세밀하게 살피는 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아동, 청소년들은 민원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자신의 불편을 제도로 연결할 통로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의정활동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편지를 받은 뒤 해당 지역아동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직접 찾아가 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여 년 동안 많은 민원인을 만났지만, 이렇게 정성스러운 민원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가장 어린 민원인들의 민원이라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안전한 공간에서 신나게 놀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라는 동네. 그것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기본 조건이다. 어린이들이 잘사는 동네는 결국 모두가 살기 좋은 동네가 되고, 그런 동네가 모여 포항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정활동 4년을 마무리해 가는 지금, 어린 민원인의 목소리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도시를 잘 만든다는 것은 거창한 개발계획 이전에, 가장 작은 시민의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 포항시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내준 나의 첫 어린이 민원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2-21

TK신공항 건설, 영호남 연대로 해법 찾아라

대구경북(TK) 신공항 기본계획이 지난 19일 확정됐다. 지난 2023년 국회에서 ‘TK신공항 특별법’이 제정된 지 2년 만이다. TK신공항은 총사업비 2조7000억원을 들여 기존 대구국제공항보다 7.8배 규모(133만 7000㎡)로 건설된다. 주요 시설은 3500m 길이 활주로와 유도로, 계류장, 여객터미널, 화물터미널 2곳(군위·의성) 등이다. 활주로는 중장거리 국제선과 대형 항공기 운항이 가능하게 했다. 조류 탐지 레이더도 설치할 계획이다. 공항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교통망도 함께 갖춰진다. 중앙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진입도로가 신설된다. 서대구에서 시작해 공항을 거쳐 의성으로 이어지는 ‘대구경북 광역철도’와 구미~군위간 고속도로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TK신공항이 토지보상이나 설계 등 실질적인 건설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신공항 특별법에는 민간 공항 사업은 정부가, 군 공항 사업은 대구시가 맡게 돼 있다. 이번에 민간 공항 건설 기본계획이 확정됐지만, 대구시가 추진 중인 군 공항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신공항 건설은 어려워진다. 활주로를 예로들면 전체 3500m 가운데 2744m는 군 공항 건설사업으로 먼저 조성하게 돼 있다. 군 공항 활주로 건설이 진행되지 않으면 민간공항 사업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대구시는 군 공항을 지어 국방부에 기부하고 옛 군 공항 터를 넘겨받아 개발한 뒤 사업비(11조 5000억원)를 충당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대구의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고려하면, 이러한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단독으로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는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 역시 대구시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두 도시는 “군 공항은 군사시설이니만큼 국가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재명 정부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이제 군공항 도심이전이 성사되려면 영호남을 대표하는 두 도시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