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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의 비극, 2차 세계대전의 서막

등록일 2026-05-12 17:30 게재일 2026-05-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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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발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세르비아 대표단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크로아티아 대표단은 하나의 통합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카라조르지예의 왕가의 지도아래 한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며 발표했다. 드디어 하나의 나라로 합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전개될 폭력의 서막에 불과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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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 /퍼블릭 제공

결국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의 폭정을 피해 이탈리아 등지로 망명길에 오른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극우단체 ‘우스타샤’를 조직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이 뒤에는 무솔리니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우스타샤의 최종목표는 순진하고 바보스럽기만 했던 과거, 세르비아에 나라를 헌납한 치욕적인 역사를 뒤집을 크로아티아 독립이었다. 그 과정이나 방식은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의 지원 하에 세르비아인 학살의 선봉에 선다. 알렉산다르 역시 이들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와는 하등의 관계없는, 권력의 단물을 단 일도 빨아본 적이 없는 단지 크로아티아 땅에서 세르비아인이란 이유로, 즉 오래전 피폐해진 삶을 벗어나고자, 아니면 오스만제국의 압정을 피해 고향을 떠나 크로아티아에 정착한 뒤, 그것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던 세르비아인들은 프레차니란 이유로 죽어야 했던,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의 주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각설하고, 유고슬라비즘의 완성, 즉 세르비아의 왕이자 유고슬라비아의 왕으로 등극한 알렉산다르의 대세르비아주의는 일단의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알렉산다르는 탁월한 외교술을 발휘하면서 문화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프랑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국제사회는 모든 것이 국방과 경제적 논리만 통하는 법이다. 이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고 뭐를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제사회다. 
 

그러니까 유고슬라비아 친 프랑스 정책은 반 이탈리아라는 의미를 갖는다. 원래가 발칸반도 여러 민족은 이탈리아라면 이를 갈았다. 아드리아해에 대한 지배권을 위해 이탈리아의 집요한 침략에 대한 반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도에서 국경을 찾아보면 발칸반도 서북쪽 끄트머리 발칸반도에 살짝 굽어진 땅이 여전히 이탈리아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1934년 10월 알렉산다르는 강대국 프랑스의 사랑을 확인받고, 더불어 대내외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방문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을까? 그도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과연 그가 그따위 독재정을 비롯해 차별적 정책을 버젓이 펼칠 수 있었을까. 
 

알렉산다르는 의기에 넘치는 마케도니아 출신 슬라브인에게 암살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암살자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지만, 이탈리아 사주를 받았거나 아니면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극우단체 우스타샤 조직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것이 이탈리아나 우스타샤들에게 변명의 빌미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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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타르 2세. /퍼블릭 제공

알렉산다르가 암살당하자 11세의 그의 아들 페타르 2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자 사촌 폴(파블레)이라는 왕자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수렴 뒤에 신임 총리가 또 대리청정하고 있었다. 신임 총리에 밀란 스토야디노비치가 오르면서 마치 조선 영조대의 탕평책을 쓰듯 세르비아급진당을 비롯해 보스니아 이슬람과 슬로베니아 국민당 등 여러 계층과 민족을 껴안으려 노력했다. 
 

그 역시 건국 초기에는 외교에 치중했다. 그러나 알렉산다르와는 반대로 프랑스 사랑을 뿌리치고 이탈리아와 독일에게 사랑을 구걸했다. 그에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나치가 상당하게 매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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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총리 밀란 스토야디노비치. /퍼블릭 제공

신임 총리 밀란 스토야디노비치는 히틀러 친위대 SS단(검은 셔츠단)을 벤치마킹해 ‘녹색 셔츠단’을 만들어 세르비아극우민족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 시위라는 뜻의 폭력조직 ‘즈보르(Zbor)’를 창설해 대세르비아주의를 지상과제로 설정했다. 더 나아가 휘하에 ‘흰독수리’단을 만들어 마치 어린이들 병영놀이처럼 청년조직을 꾸렸다. 알렉산다르에 의해 괴멸된 ‘블랙핸드’ 사생아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때 국제사회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임에도 밥그릇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로 재무장을 하면서 독일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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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재래시장. 번화가 답게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박필우 제공


기세를 올린 독일은 순식간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좋던 싫던 독일군에 합병되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사실 1차 세계대전 전쟁 패전국으로서의 독일의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은 독일 국민을 히틀러, 나치의 깃발 아래 모여들게 만들었다.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연합국 중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는 프랑스에 대해서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나라라며 날을 세웠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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