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자전거를 배우며 운동장에서 넘어졌던 기억이 있다. 무릎은 땅에 부딪혀 생채기가 나고 손바닥은 모래에 쓸려 몹시 아팠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친구들 중에 자전거를 못 타는 이는 나뿐이었기에 혼자 뒤처지고 싶지 않아 오기가 생겼다.
바퀴는 나를 끝내 일으켜 세웠다. 몸의 균형이 잡히는 순간 세상은 갑자기 가벼워졌다. 속도가 붙을수록 귀 옆을 스치는 바람은 내 가슴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다. 길 위를 달리는 바퀴 소리는 청량감마저 들게 했다. 흙길에서는 투박한 울림을 주기도 했지만 빗길에서는 물살을 가르는 리듬감을 느끼게 했다. 길에서 나는 소리들은 매번 달랐는데 삶의 소리도 바퀴를 닮았다. 하루하루는 비슷해 보여도 매번 다른 음색을 내며 흐른다.
바퀴는 흔적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때때로 바퀴가 남긴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곤 한다. 흙길의 바퀴자국이나 눈 위의 바퀴무늬, 모래 위의 어지러운 흔적이 눈에 들어오면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것들은 대부분 금세 사라지지만 잠시 남겨진 자국만으로도 바퀴의 여정을 읽을 수 있다. 바퀴가 남긴 흙먼지나 젖은 눈 위의 얇은 흔적은 마치 마음속 기억의 파편과 같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지워지는 듯하다. 하지만 흔적은 금세 사라지는 듯해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또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여운으로 남는다. 어떤 만남은 스쳐 지나간 것 같아도 상대의 마음에 조용히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흔적이 모여 역사가 되고 관계가 되고 한 사람의 삶을 증언한다.
작년 겨울, 두바이에 있는 사막을 찾아갔다. 샤르자의 붉은 노을이 수평선을 물들이는 곳에서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잠시 멈추었다. 사막 초입에서 운전기사는 차의 바퀴에서 공기를 뺐다. 바퀴는 공기가 가득 차야 평지에서는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지만 모래 위에서는 오히려 덜어내야 한단다. 그래야 모래 속에 빠지지 않고 사뿐히 미끄러지듯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단단히 채워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기 때문이다.
공기가 꽉 찬 바퀴는 평지에서는 강점이다. 하지만 사막에서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도 같다.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은 쉽게 지치고 무겁게 멈추지만, 잠시 비우고 숨을 고르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 나는 여러 번 그 사실을 잊었다가도 바퀴를 보며 다시 떠올리고는 한다.
바퀴는 내게 삶의 무게를 견디는 힘과 비울 때 비로소 얻는 자유를 가르쳐 주었다. 열정과 목표로 가득 채워야 할 때가 있지만 내려놓고 비워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공기를 채운 채 사막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려 한다면 오히려 모래 속에 발이 묶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평지인지, 사막인지, 내 삶의 지형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흔적을 남기되 집착하지 않는 겸허함과 순환 속에서 연결되는 의미를 찾는 것을 바퀴는 내게 조용히 일러주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바퀴의 바람을 덜어내듯 마음을 고르는 것이다.
/정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