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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

캄보디아에서 우리 청년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 구출된 피해자들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으로 국내 취업이 막혀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 나섰던 이들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폭행과 감금, 협박, 불법행위의 강요였다. 이른바 ‘해외고수익 알바’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불법조직의 덫이었다. 피해자들은 브로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캄보디아로 향했다. ‘월 천만원을 벌 수 있다’, ‘간단한 컴퓨터 업무만 하면 된다’는 말은 사실상 인신매매에 가까운 사기였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불법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업무에 동원되었다. 저항하면 폭행당하고, 탈출하면 살해협박에 노출되었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문제를 ‘해외범죄’나 ‘취업 사기’로만 볼 수는 없다. 배경에는 청년 노동시장의 구조적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통계상 실업률은 낮지만 청년층의 상당수는 불안정한 플랫폼노동과 단기계약직에 내몰려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주거와 교육, 생계비용은 끝없이 오른다. 악순환 속에서 청년들은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기회를 잃고, 해외의 불확실한 제안에 기대게 된다. 정부가 신속하게 피해자 구출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대증적 반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교부와 고용노동부, 경찰청과 정보기관이 공조하여 해외취업과 알선의 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율등록제’로는 불법 브로커와 인신매매 조직을 걸러내기 어렵다. 해외 구인 구직 알선업체에 대한 사전인증제 도입, 피해 발생 시 즉각적인 외교 보호 절차 가동, 현지공관 내 긴급 보호센터 상시 운영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정부의 해외 취업 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 ‘청년 해외 진출’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안전한 일자리 보증제도와 사후 관리시스템을 장착해야 한다. 청년들이 현지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근로조건과 체류비자 상태를 공증받도록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본국 정부와 연결되는 디지털 연락망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노동시장, 안정된 일자리, 실질적 주거와 생계지원 정책이 없으면, 해외 취업 사기와 범죄행태 유입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청년층의 절망을 걷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국내에서 ‘괜찮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불운한 피해자의 불행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기회의 실종’과 ‘정책의 부재’가 맞물려 만들어 낸 구조적 사고다. 우리는 청년실업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일시적 실수로 치부해 왔다. 그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청년의 기본적 생존은 개인의 과제를 넘어 ‘국가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구출 작전과 함께 해외에서 실종, 감금된 한국인 피해자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 피해자 지원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귀국 후 심리적, 경제적 회복을 돕는 통합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 그 자체다. 단기적 위기관리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보아야 한다. 청년이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15

지참금 4000만원과 신랑의 죽음

젊은 세대의 혼인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등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의 처녀·총각들도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은 최근 10년 사이 혼인율이 절반으로 꺾였다고 한다. 한국 역시 지난해 결혼 건수가 22만2422건으로 2023년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21세기 청년들의 결혼 포비아(phobia)’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왜일까? 어째서 요즘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보통의 월급쟁이가 10~20년을 저축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궁여지책으로 결혼할 두 사람이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려 해도 마찬가지. 집값 상승은 필연적으로 전세 가격도 올린다. 여기에 중국은 아직도 악습으로 남아있는 ‘지참금’ 문제가 더해진다. 최근 외신은 중국 산시성에 거주하던 29세 남성이 결혼식 당일 지참금 문제로 신부와 다투다가 강물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참금 4000만원이면 충분하다, 아니다. 적다”며 신랑과 신부가 웨딩카 안에서까지 싸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약속된 결혼이 중간에서 깨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돈 문제로 인한 다툼이 파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결혼을 앞둔 신랑 혹은, 신부가 “돈보다 중요한 건 둘의 사랑”이라 말하면 “넌 결혼이라는 현실을 모른다”고 조롱당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씁쓸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5

입동(立冬)

냇물이 얼기 전에 세상으로 나갈 때 신을 보시 받은 저 나이키 운동화 잘 씻어놔야지 개털고무신 한 벌 더 장만하고 나머지 너덜너덜한 신발들도 꿰매놔야지 보랏빛 곱던 싸리나무 빗자루 손질도 하고 지붕도 덧대어 눈 내릴 때 대비해야지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약점 보완하고 상처나 흠집도 메꿔야지 눈이 내려 길이 끊기면 죽을 수 있다 생각하면 그 무엇도 미룰 수 없지 혹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후학(後學)을 위한 궁극(窮極)의 미덕이 무엇인가 설사 죽는다 해도, 마당에서 눈 맞고 죽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설장(雪葬)이라 말하고 싶은데‘ 가당치도 않겠지 마음 다잡아 하얗게 잊혀질 것 그 이상의 꿈을 꾸며 장작을 팬다 생애에 걸친 악업을 쪼갠다 아궁이와 굴뚝청소도 한다 그 누구를 위해서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겨울이 온다. …… 중구난방, 다방면으로, 무작위로, 치명적으로 인간의 겨울이 온다. 경제적이든, 기후적이든, 인간적이든, 좌와 우에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가리지 않는다. 차라리 얼어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후세에 명징하게 교과서로 남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도 살아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0-15

끝과 시작 사이, 아홉 번째 파도

러시아 화가 아이바조프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를 들여다본다. 바다는 뒤집어질 듯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조각난 배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부표처럼 남은 파편에 매달려 간신히 생을 붙들고 있다. 사람들은 거센 물결에 삼켜질 듯 위태롭지만 기묘하게 붉게 빛나는 하늘은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스며들게 한다. 수평선 너머 붉게 번지는 태양빛은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을 동시에 일깨운다. 문득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떠올린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홉 번째 파도’라는 표현은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끝내 마주해야 하는 죽음과 맞닿은 고독의 절정을 상징한다. 죽음은 끝이면서 동시에 삶의 모든 고통이 멈추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고 우리는 첫 번째에서 아홉 번째에 이르는 물결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 속 인물에게 파도에 휩쓸리고 싶은 충동과 끝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공존하듯, 죽음은 두려움이면서도 해방의 욕망을 품은 여행일지 모른다. 아홉 번째 파도는 유럽 바다 문화에서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최후의 물결이자 신화에서는 가장 거세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 숫자 9는 완성을 뜻하고, 동양에서는 끝과 시작의 경계라 여겨진다. 그래서 아홉 번째 파도는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이자 새로운 시작을 품은 상징처럼 다가온다. 끝이면서도 시작이고 절망이면서도 희망이다. 아이바조프스키의 그림과 로맹 가리의 소설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역설 속에 있다. 붉은빛으로 번져오는 하늘은 단순한 태양의 광휘가 아니다. 인간이 끝내 붙잡고 싶어 하는 마지막 빛줄기이자 소멸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파도를 맞는다. 때로는 예고 없이 덮쳐오는 고난의 물결 앞에서, 때로는 지독한 상실의 소용돌이 앞에서 흔들린다. 대부분의 파도는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고 우리는 다시 숨을 고르며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은 피할 수 없는 아홉 번째 파도가 다가온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지인의 친정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처음에는 이름을 잊고 그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오랜 세월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인의 얼굴에는 지친 그림자가 짙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묻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무력감에 빠졌다. 그녀가 혼자서 슬픔을 삭인다고 생각하니 내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지인의 어깨 위에 아홉 번째 파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그녀 아버지의 육신은 살아있지만 기억이라는 바다는 이미 무너져 내린지 오래되었다. 지인은 무너져 내린 바다에서 작은 널빤지를 붙잡듯 아버지의 손을 애절하게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언젠가 아홉 번째 파도를 건너갈 때, 그것이 두려움의 파도가 아니라 평화의 파도이기를 기원했다. 삶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파도의 연속이다. 내게 아홉 번째 파도는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은밀한 기다림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종말이라면 나는 무엇을 놓아야 하고, 무엇을 끝내 붙들어야 할까. 파도의 거품 속으로 스러지는 순간 나는 과연 소멸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나는 이제 파도를 두려움만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아이바조프스키의 붉은 바다처럼, 로맹 가리가 새들의 죽음을 페루라는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은유했듯이 죽음은 절망만이 아니라 희망의 길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아홉 번째 파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이전의 수많은 파도를 나는 정면으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게 다가올 아홉 번째 파도는 내 삶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아니라, 나를 더 넒은 바다로 이끄는 빛의 물결이 되기를 바란다. /정미영 수필가

2025-10-15

신라의 베짜기 전통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 여성들이 길쌈 내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3대 유리왕 9년에,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두 편으로 나누고, 임금의 두 딸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하였다. 이들 두 편은 7월 16일부터, 매일 새벽에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 시경에 끝냈다. 한 달이 지나 8월 15일이 되면 길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헤아려서, 이기고 진 편을 가리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회소, 회소!’라고 하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가배는 추석의 우리 고유어인데, 이 기사에서 유래한다. 추석에 하는 중요한 행사가 바로 길쌈이었다는 기록이다. 신라시대에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길쌈을 장려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물인 삼국유사에서 여성의 길쌈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찾아보았다. ‘선도산성모’조에는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동국의 첫 번째 임금인 혁거세를 낳았을 것이라고 했고, 하늘나라의 여러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하여 붉은색으로 물들여 관복을 지어 주었다고도 했다. ‘연오랑세오녀조’의 세오녀는 이름부터가 베짜는 여성이다. 동해안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차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본래 해와 달의 정령이었기에 기들이 신라를 떠나자 신라에서는 태양과 달이 사라져 빛을 잃고 말았다. 신라의 왕이 급히 일본에 사신을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의 귀국을 종용했다. 하지만 연오랑은 하늘의 의지로 일본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신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사신에게 주고,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태양과 달이 빛을 되찾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사신이 가지고 돌아온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자 태양과 달은 빛을 되찾았다. 신라의 왕은 이 불가사의한 비단을 나라의 보물로 정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린 장소를 영일현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세오녀는 비단을 짜는 여성이었고, 잃어버린 빛을 찾아준 여성이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만 봐서도 전통적으로 길쌈, 즉 베짜기는 여성의 신성한 역할이었다. 베 짜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한 여성은 왕녀이거나, 신모이거나, 빛의 정령이었다. 실제로 신라에는 직물 제조와 수공업을 관장하는 모(母)라는 관직이 있었고, 그 우두머리는 여성이었다. 또한 당시 신라는 직물을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그 유물이 일본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요소인 의식주의 가장 앞선 요소를 담당한 이는 여성이었다. 경주의 동해안 가까이 있는 동네 두산리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비단을 짜는 여성들이 있어 두산손명주짜기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령화와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도 전통으로 이어가는 그들을 추석 즈음에 기려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0-15

가을철 관절과 순환

가을이 되면 공기가 건조해지고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누적이 되면 근육이 점점 굳기 시작한다. 여름 동안 땀을 많이 흘리며 열이 많던 몸은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혈액순환이 느려지고 관절과 주변의 근육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허리가 묵직하고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날 때 삐걱대는 느낌이 든다. 멀쩡하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느새 힘들고 밤이면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다. 찬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이 시기의 관절통은 단순한 일시적 냉증이 아니라 몸 전체 순환의 경고음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가을철 통증을 한습(寒濕)으로 인한 기혈순환 장애로 본다. 찬 기운이 몸속 깊이 들어오면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통증이 생긴다. 여기에 습기나 노폐물이 더해지면 관절 주위에 딱 달라붙듯 뭉치며 통증이 깊어진다. 특히 허리와 무릎처럼 체중을 많이 받는 부위는 냉기에 취약해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뻣뻣하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관절 안의 윤활이 떨어지고 염증이 반복되면서 퇴행성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통증을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고 치료하지 않으면 계절이 바뀌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만성 상태가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일시적인 진통제가 아니라 순환을 되살리는 근본 치료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와 혈이 원활히 돌아야 통증이 풀린다고 본다. 가을철에는 체온이 떨어지면서 기혈의 흐름이 약해지기 때문에 따뜻한 약재를 이용해 해당 부위를 따뜻하게 해주고 순환을 시켜주는 약재를 추가하면 도움이 된다. 육계로 따뜻하게 해주고 작약으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다. 강활 독활로 관절에 쌓인 습기를 추가로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약재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복용하면 잘 낫지 않는 관절통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활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관절을 덮는 게 첫 번째다. 얇은 옷 여러 겹을 겹쳐 입고 무릎이나 허리에 핫팩을 붙이는 것도 좋다. 찬바닥에 오래 앉거나 무리하게 쪼그려 앉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아침 운동은 조심해야 한다. 밤새 식은 몸은 근육이 수축돼 있기 때문에 바로 운동을 시작하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스트레칭을 하고 걷기나 가벼운 근력운동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저녁에는 따뜻한 물로 반신욕을 하거나 무릎 주변을 온찜질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관절이 뻣뻣해지는 건 단순히 노화의 신호가 아니라 몸이 균형을 잃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을의 관절 관리는 따뜻하게 하고 소통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혈류가 살아나고 기운이 원활해지며 통증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국 관절 건강은 계절의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무릎과 허리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제때 풀어주는 습관을 들이면 겨울에도 몸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유지된다. 한 번 굳은 관절은 풀기 어렵지만 꾸준히 순환을 지켜주면 다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가을의 냉기가 시작될 때 그걸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따뜻하게, 부드럽게, 느리게 돌보는 일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0-15

나를 위해, 나를 바꾸자

본지는 10월 15일부터 ‘김상국의 Wellness와 삶의 질'을 격주로 연재한다. 이 칼럼은 건강지식과 필자의 경험, 여행 체험 등을 함께 담아낸 하이브드리 에세이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웰니스’란 단순한 건강 정보가 아니라,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 균형을 아우르는 통합적 삶의 철학을 의미한다. 필자인 포항 청하면 출신의 김상국은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정년퇴임 때까지 세종대 교수로 일했다.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좋은 습관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조용한 혁명과 같다. 혁명이라고 하면 흔히 깃발과 함성, 피와 땀의 투쟁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혁명은 삶 속에 스며 있는 작은 반복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선택, 술 한 잔 대신 동네 산책을 택하는 선택, 짧은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선택 등이 있다. 바로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큰 흐름을 바꾼다. 결국 인생은 ‘나다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무거운 책임과 일상의 굴레가 커질수록 우리는 간절히 꿈꾸던 모습과 점점 멀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끝내 자신이 바라던 삶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또 역사의 무대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을 보며 깨달았다. 성공은 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뇌는 익숙한 습관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벽을 넘어서는 순간, 습관은 우리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명상하며 자신을 지켜냈다. 그러한 습관들이 그녀를 미국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세웠다. 한국 축구의 자랑 손흥민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발 훈련, 수천 번의 슛 연습, 철저한 식단 관리라는 습관을 지켜왔다. 지금의 손흥민은 타고난 재능보다 꾸준한 습관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내 곁의 제자들 역시 이를 증명한다. 매일 영어 일기를 쓰던 학생은 훗날 교수가 되었고, 또 다른 학생은 글로벌 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천재성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지속적 실천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메타인지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 그리고 노력하면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는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반대로 실패하는 이들은 대체로 고정된 마인드셋(fixed mindset)을 갖고 있었다. “타고난 능력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변화의 문을 스스로 닫는 것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단순한 다짐을 넘어 몸과 마음을 거듭 단련하는 과정이다. 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타인의 단점을 먼저 지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1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완전히 달라졌다. “걸으면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했다“라는 그의 고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그의 얼굴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머문다. 습관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오늘은 그냥 한잔할까?”와 “밖에 나가 걸을까?”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내일의 나를 만들고, 결국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삶의 질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에서 갈린다. 워런 버핏은 세계적인 부호이지만 검소한 습관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는 여전히 중고차를 타고, 햄버거와 체리 콜라를 즐기며,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이웃에게는 관대하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매일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까지 지켜왔다. 지금의 워런 버핏을 만든 것은 돈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최근 나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습관의 힘을 다시금 떠올렸다. 잉카 문명의 길을 따라 홀로 떠나는 여정은 내게 하나의 문답식 여행이다.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은 결국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힘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일상의 껍질을 깨뜨리고, 낯선 나와 마주하게 한다.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습관의 씨앗이 싹트고, 돌아와 일상 속에 심어진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재정비하는 습관의 연습장이 된다. 좋은 습관은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분명한 목표, 전략적인 계획, 그리고 “될까?”가 아닌 “반드시 된다“라는 결심이 있으면 충분하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는 한, 습관은 반드시 우리를 바꾼다. 나를 위해, 나를 변화시키자. 그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과 발걸음 속에 내일을 바꿀 혁명이 숨어 있다. 습관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우리 인생을 새롭게 일으켜 세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0-14

걸음을 멈추고서야

세상은 늘 걷는 자들의 속도에 맞춰 돌아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재촉하며 살아왔다. 지난 금요일, 평범한 계단 한 칸이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헛디딘 발목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시커먼 멍이 자리를 잡았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뼈에 금이 갔고 인대가 파열된 상태였다. 깁스를 하고 3주 동안은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계단 몇 칸, 문턱 하나, 식탁 의자 하나가 이렇게 높은 장벽이 될 줄은 몰랐다. 혼자 병원에 가는 길,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일, 진료비를 수납하고 다시 택시를 호출하는 과정이 하루치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했다. 택시가 오기까지 목발에 의지하여 기다려야 하는 그 몇 분이 유난히 길었고 내 발끝은 사무치게 땅을 그리워했다. 깁스에 갇힌 발을 보며 나는 묘한 고립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는데 나만 정지된 듯했다. 가장 서운했던 건 사람보다 내 마음이었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기다리던 나는 정작 아무에게도 내 고통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근황과 자신의 힘든 상황만 이야기했고 나는 ‘그래, 그랬구나’하며 웃어 보였다. 웃음 뒤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배려해 주리라는 기대는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갔다. 내가 청소하고, 챙기고, 잔소리하던 일들을 대신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사 시간이 되어도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분리수거를 비롯한 많은 집안 일들은 쌓여갔고 더뎌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만 내 발은 꽁꽁 묶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손과 발이 되어주던 일상은 나 혼자 만들어 낸 순환이었구나, 결국 아프면 나만 손해구나 하는 자조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발목은 좀 어때?’라며 문자를 보내오는 친구, 뜬금없이 반찬을 가득 사서 건네주는 친구, 그들의 짧은 안부는 놀랍게도 진통제보다 나를 더 깊이 진정시켰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 한편은 포근하게 데워졌다. 인간관계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행동 하나, 작은 관심 하나, 작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움직이지 못하니 오히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너머로 스치는 햇살의 각도, 마룻바닥을 따라 번지는 먼지의 그림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며 감사하는 내 목소리, 나는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렸고 너무 많이 여기저기 챙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돌볼 시간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없이 타인들만 챙기며 너무 많이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까지 챙기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가 보였다. 3주라는 시간은 짧지만 나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아직 나는 깁스에 갇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을 내려 딛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지만 통증이 주는 무게가 그것을 막는다. 멈춤 속에서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물 한 컵을 먹기 위해 애쓰는 손끝의 섬세한 의지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걷는다는 것은 그저 이동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깁스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이 자유롭다는 것. 두 발이 동시에 땅을 딛는다는 것, 식탁까지 걸어가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평범한 동작들이 이렇게도 눈부신 행위였다는 걸. 몸이 멈춘만큼 시선은 깊어졌고 불편함은 감사의 형태로 변해갔다. 세상이 내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사실을 지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깁스를 풀면 나는 다시 자유로워지겠지만 예전처럼 무심히 걷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이 발끝을 스치는 감각,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숨소리, 길가의 사람들과 스치는 짧은 인사마저 새롭게 느낄 것이다. 아픔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삶을 다시 배운다. 걸음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보게 된 것들, 그것은 나의 쉼이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다. /김경아 작가

2025-10-14

철강산업,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고 회복에도 타이밍이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쌀 생산지 ‘철(鐵)의 도시’ 포항이, 한국 철강산업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미국의 고율 관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추가 관세, 중국의 무차별 저가 철강 물량 공세까지 대외 악재는 중첩되고 있다. 여기에 국내 건설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철강업계의 시름은 바닥을 모르고 깊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철강산업고도화방안을 마련중에 있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까지 추진하면서, 업계는 경영 전략 전반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도 업계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철강산업은 포항 지역경제와 일자리의 핵심 축이다. 최근 생산량이 10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일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역 상권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조업의 디딤돌인 철강이 흔들리면 자동차·조선·건설 등 전방에 있는 연관 산업 모두 타격을 입게 된다. 지역적으로도 경주-울산까지 포함한 해오름동맹부터 넓게는 전국적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와 주요 산업 도시들의 경제까지 흔들리게 된다. 업계는 “이미 포항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NDC 상향까지 더해지면 아예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한다. 최근 배출권거래제 등 각종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반면 일본 등 주요국은 단계적 전환과 대규모 지원을 병행하며 자국의 산업 기반을 붙잡고 있다. 독일 총리도 최근 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을 공개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다. 각국 모두 경기 침체 속에서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한 ‘속도 조절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철강을 ‘관리 대상 산업’으로만 보는 시각이 강하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접근하는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목표는 유지하되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 산업 보호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에서도 철강 경쟁력과 녹색 전환을 동시에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논의 중이다. 지역 정치권과 산업계 역시 제도적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다. 한 지역 재계 관계자는 “산업 기반을 잃고 달성한 탄소중립은 공허한 성과일 뿐”이라며 “현실에 기반한 실용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의 생존은 단순한 지역 현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 나아가 안보까지 직결된 문제다. 탄소중립과 산업 생존이라는 두 목표를 병행하려면, 속도 조절과 대규모 기술 투자·정책 지원도 동반되어야만 한다. 과거 포스코의 철강재로 ‘중화학공업’을 뒷받침해 고도성장을 일궜던 한국이 다시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려면, 환경 목표와 산업 기반을 동시에 지키는 ‘현실적 전환’의 유연성과 더불어 K스틸법 제정 등 국가차원의 철강에 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산업이 버티는 것도 무기한이 아니며, 회복하는데도 타이밍이 있다. 바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0-14

수명 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가리키는 말의 뜻을 가진 빈부격차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데 반드시 극복돼야 할 과제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구성원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빈곤이 심화되면 사회 전체의 불행이 커진다는 의미다. 10여 년 전 한 조사에서 전국 200여 시군구에서 소득 하위 20% 집단의 기대수명이 소득 상위 20% 집단보다 짧다는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72.6세(2023년)다. 남성 69.1세 여성 73.8세며 선진국인 일본, 스위스, 호주 등은 80세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가의 평균수명은 60세 미만이다. 아프리카의 차드는 52.7세, 나이지리아는 54.6세다.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나라에 따라 약 20년 가까이 더 오래 살고 더 빨리 죽는다는 뜻이다. 외국의 사례로 짚어 본 결과여서 실감이 덜 나겠지만 국내서도 이런 수명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의료격차가 수명 격차로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기대수명은 90.11세로 나타난 반면 경북 영덕군은 77.12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의사 수의 절대 부족과 대형병원 등 의료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이 원인이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수명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4

마치 ‘범죄도시’ 영화 같은 캄보디아 비극

캄보디아 범죄 단체에 의한 경북도민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충격적이다. 예천 출신 한 대학생이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돼 고문을 당하다 살해된 사건에 이어, 13일에도 캄보디아에 간 상주 출신 30대 청년이 범죄 조직에 납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그저께 “지난 8월 19일 캄보디아로 출국한 상주출신 A(30대)씨와 연락이 끊겼다”는 가족 신고가 지난 8월 22일 접수됐다고 밝혔다. A씨는 출국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가 닷새 뒤인 24일 텔레그램 영상 통화로 가족에게 “2000만원을 보내주면 풀려날 수 있다”고 말한 뒤 다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경찰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이 그를 감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한 예천 출신 대학생은 출국 2주 만에 범죄 조직에 납치돼 고문을 당한 끝에 숨졌다. 그와 함께 붙잡혔다 구조된 한국인 B씨는 “학생이 너무 맞아서 걷지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였다.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고 증언했다. 숨진 대학생은 현재까지 시신조차 송환되지 못하고 있으며, 경찰은 가해자들이 ‘대치동 마약 사건’과도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캄보디아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보이스피싱, 온라인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캄보디아 범죄도시’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이를 두고 마치 ‘범죄도시’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 의원은 최근 SNS를 통해 “이재명 정권이 정치보복에 몰두하는 동안 해외에서는 우리 국민이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올들어 8월까지 330건으로 폭증했다. 이들은 대부분 ‘고수익 해외취업’에 속아 범죄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예상된다. ‘캄보디아 범죄도시’ 사건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대통령실은 13일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에는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 국정원 등 관계 부처 관계자가 참여한다. 경찰도 캄보디아 대사관에 경찰 영사를 확대 배치하고, 국제 공조수사 인력도 보강할 계획이다. 특히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 사망자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코리안 데스크’ 설치 문제는 주권 문제가 얽혀있어 상대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리안 데스크는 해외 경찰에 파견 간 한국 경찰로 현지에서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전담한다. 한인 살인사건 피해자가 가장 많은 필리핀에 2012년 처음 만들어져 현재 3명이 활동 중이다. 태국 경찰에도 한국 경찰관 2명이 파견돼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늦게라도 정부가 ‘캄보디아 범죄도시’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우리 국민이 국제 범죄조직의 주 타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국민의 피해실태를 상세하게 파악해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0-14

걱정이 삶에 주는 의미

‘걱정에 대한 전략을 모르는 사업가는 요절한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 알렉시 까렐(Alexis Carrel) 박사의 말이다. 현대인의 열 명 중 한 명꼴로 신경쇠약 증세를 갖는 경우가 많고, 그 중 대부분은 걱정과 심리적 갈등이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가정주부, 수의사, 건설 현장 벽돌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원 내과 의사를 찾아오는 70퍼센트는 불안감이나 걱정만 없애도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신경성 소화불량, 위궤양, 심장질환, 불면증, 여러 가지 두통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걱정에 대해 조명한 또 다른 책은 칼 메닝거 박사가 쓴 ‘내 안의 적’이다. 근심, 좌절, 증오, 원한, 저항, 불안에 의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에 대해 뜻밖의 사실들을 보여준다. 걱정은 완고한 성격의 사람마저도 병들게 할 수 있다. 북군 그랜트 장군은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그의 병을 발견했다. 그랜트 장군은 남부 수도 리치몬드 시를 아홉 달 동안 포위하고 있었다. 남군 리 장군의 부대는 기진맥진하고, 굶주리고, 녹초가 되었다. 리 장군의 부대원들은 리치몬드 시내의 면화와 담배 창고에 불을 붙이고 무기고를 태우고서 치솟는 불길이 어둠을 밝히는 동안 그 도시에서 탈출했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로 편두통과 정신적 혼란을 겪었던 그랜트 장군은 불면, 우울감 등으로 전시 외상 증후군에 시달렸다고 한다. ‘걱정은 우리 마음의 그림자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내일의 일, 사람 관계, 건강, 돈, 일의 성과까지 걱정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 감정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걱정은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게 하는 인간 본연의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걱정은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생각의 반복’으로 정의된다. 문제는 그 양과 지속 시간이다. 걱정이 일정 시간을 넘어서면 불안, 스트레스, 불면, 위장장애 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생산성과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리더나 조직 책임자일수록 걱정이 많다.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걱정이 통제 불가능한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 리더십의 힘은 약해진다. 토마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실패가 걱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생각했다. 걱정을 배움의 신호로 바꾸는 태도가 그를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었다. 우리의 걱정도 마찬가지다. 걱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을 ‘준비의 동력’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걱정은 미래를 대비하는 경고등이지만, 그 불빛에만 매달리면 시야를 잃는다. 걱정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경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걱정은 그림자처럼 따라 오지만 우리가 방향을 잃지않는 한 그 그림자는 우리를 삼키지 못한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꿈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걱정은 피해 갈 수 없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만드는 지혜로 내 마음을 경영해 나가면 건강한 삶이 될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0-14

참새와 제비

참새와 제비는 같은 참새목으로 분류되지만 그 생태는 아주 다르다. 그러면서도 수천 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생 조류이긴 하지만 우리의 생활반경 안에 들어와서 삶의 일부처럼 된 새들이었다.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은, 더구나 도시에서는 참새나 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관심거리도 아닐 터이다. 그들에 대해 애틋한 정을 가진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참새도 제비도 그냥 보통의 조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비는 한국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여름 철새였다. 통계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옛날에 비해 10%도 안 되게 개체수가 줄어든 것 같다. 흔할 때는 무심히 보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제비가 보이면 옛 동무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예부터 제비는 길일인 삼짇날(음력 3월3일)에 와서 중양절(음력 9월9일)에 강남으로 간다고 해서 길조로 여겼다. 야생조류이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함께 살아왔다. 매나 뱀으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받는 대신 농작물에 해가 되는 벌레를 잡아먹어서 공생관계를 형성해온 셈이다. 새끼를 기르는 제비가 하루 종일 잡아 오는 벌레가 350마리 정도라고 하니, 한 쌍이 두 번 번식할 동안 필요한 벌레의 수는 상당한 정도인 것이다. 귀소본능이 강한 제비는 작년에 왔던 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우리가 보는 제비는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진 셈이다. 찬바람이 불면 흔히들 강남으로 간다고 하는데, 겨울 동안의 서식지는 주로 동남아 지역이고 더러는 호주까지도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악천후를 만나 죽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흐리고 바람 거친 가을 날 제비들이 많이 나는 것은 아마도 먼 여정을 대비한 비행연습인 것 같다. 참새는 마을 근처나 들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텃새다. 귀엽게 생겼지만 농민들에게는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며 벼나 조, 수수 같은 농작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모택동은 참새 소탕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새들을 모조리 잡아버리자 병충해가 창궐해서 오히려 농사를 망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참새는 잡식성이라 곡식만 먹는 게 아니라 해충도 잡아먹는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참새들이 공짜로 곡식을 먹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참새라는 이름은 참 친근감을 준다.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지만 그런 이름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기 때문에, 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참새가 아닐까. 참새 말고도 까치나 비둘기 같은 여러 종류의 텃새들이 있고 철새들도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가장 가까운 참새를 그 모든 새의 표준으로 인식했던 게 아닐까 싶다. 시국이 몹시도 불안하고 암담하다. 건국 이래 나라의 정체성이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린 적이 없었다. 시국만큼이나 흐린 날씨에 비행 연습을 하는 제비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0-14

한국 청년 무덤 된 캄보디아

‘통장을 개설해 가져가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8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며 1인1실 호텔 숙소를 제공한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청년들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장기간 계속된 경기 침체와 각종 스펙을 갖춰도 넘기 힘든 취업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가 적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학업을 마치면 직업을 찾아 독립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 처한 20대에게 외국생활도 체험하고 거기서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이 온다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렇기에 인터넷 공고와 지인의 권유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국 청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떠나기 전 그렸던 희망적인 미래는 캄보디아에 도착하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 고액 임금과 쾌적한 숙소, 큰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통장은 미끼였다. 현실은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가담하라는 강요와 협박, 이를 거부하는 순간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최근 예천 출신의 대학생이 위와 같은 과정 속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단 이 청년만이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2000여 명 안팎의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 곳곳에 독버섯처럼 들어선 ‘범죄공장’에 감금된 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종 불법행위를 강요받고 있다. 늦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현황 파악과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니, 경찰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물론 관련된 국가기관이 모두 나서 위기에 빠진 청년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건 방기해선 안 될 국가의 책무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4

백세시대, 노년의 공부

백세시대의 명암(明暗)이 교차되고 있다.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이 개선된 것은 축복이지만, 사회적 변화·경제적 빈곤·정신적 고독 등은 커다란 도전이다. 백세시대의 노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관심과 지원 못지않게 개인의 노력, 특히 ‘노년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는 평생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첨단과학기술이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다. 청년과 노인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문맹(digital illiteracy)’은 단순한 불편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적 소외를 초래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실질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디지털 문맹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우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이 나이에 뭘 배우겠느냐’는 생각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며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다. 청년들에게 인생의 멘토(mentor)가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독선에 빠진 꼰대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민주주의·개인주의·수평질서가 지배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사고와 능력을 가질 수 있을 때 노년의 삶도 행복해진다.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첨단지식을 배울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다. 노년의 공부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마음공부’이다. 노년의 품격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피할 수 없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신체건강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신건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노인이 되면 몸이 유연성을 잃듯이 생각도 점점 더 굳어진다. 노년의 ‘신념’은 자칫 ‘아집(我執)’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을 ‘싸가지 없다’고 비판하면서 ‘꼰대가 되어있는 자신’은 왜 돌아볼 줄 모르는가? 여기에 노욕(老慾)까지 겹친다면 구제불능이다. ‘인생의 가을’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이다. 하이데거(M. Heidergger)는 “죽음이 삶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고 했고, 톨스토이(L. Tolstoy)는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갈 때 삶의 성장과 초월이 일어난다”고 했다. 영안실에서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명복을 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죽은 자도 산 자에게 “제대로 살다가 오라”고 충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의 본래성’을 회복함으로써 거짓된 삶으로부터 진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 노년의 삶은 평화로워야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공부 여하에 달려 있다. 마음공부를 위해서는 자연과의 대화도 좋고, 명상을 통한 자기성찰도 좋으며, 책을 통한 성현들과의 만남도 좋다. 마음공부를 일상화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자유인으로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0-13

질투는 나의 힘

칼 융(Carl Jung)의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가면’을 뜻한다.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나’이자, 사회 속에서 나의 여러 역할을 상징한다. 직장인, 연인, 친구, 부모···. 이러한 각 관계마다 우리의 얼굴은 다른 가면을 쓴다. 내가 착용한 가면은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진짜 나’를 점점 억압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그 가면을 진짜로 착각하기 시작할 때다. 가면에 억눌린 진정한 자아는 ‘그림자(shadow)’로 밀려나 무의식의 어둠 속에서 분노와 질투, 열등감의 형태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어둠의 그림자로 밀려난 나의 자아가 형성한 것 중 ‘질투’가 있다. 질투는 타인의 존재 앞에서 드러나는 자기 결핍의 자각이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고 불편해지는 이유는, 내 안에 그것을 향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페르소나를 깊게 쓴 사람은 질투를 강하게 느낀다. 겉으론 완벽한 척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불안’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이 바로 질투의 연료인 셈이다. 질투를 떠올릴 때, 우리는 불안과 부끄러움을 함께 경험한다. 불안의 연료를 태우고 피어나는 질투라는 연기는 우리에게 부정적 감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만든다. 이런 질투 감정을 다르게 맞이하게 해준 사람이 시인 기형도이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입속의 검은 잎, 1989)을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질투가 삶을 살게 하는 힘이었다니! 질투는 가면이 깨질 때 나는 소리이며, 아픔 속에서 나타나는 진정한 자아이다. 질투가 병든 감정이 아니라, 나의 참모습임을 기형도는 자신의 입속의 검은 잎을 통하여 말해 주었다. 그렇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내가 다시 일어나서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게 해주는 그 무엇인 셈이다. 질투를 온전하게 내 것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질투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명절을 지내고 나면 보통은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 무기력증의 상당 부분은 질투로 소비한 감정의 후유증 때문일 수 있다. 간만에 만난 지인, 친척, 친구들이 늘어놓은 자랑질로 인하여 온통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력증이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질투의 감정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마음껏 질투를 하자. 불안을 태우지 말고, 이제는 질투를 연료 삼아 태우자. 아래는 ‘질투는 나의 힘’의 전문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니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굿바이 형도! /공봉학 변호사

2025-10-13

높은 관세와 비자 폭탄이 제거되기를

지난달 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직 단기 취업(H-1B) 비자 제도 개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문직 비자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의 100배인 10만 달러(1억4000만 원)로 올리는 행정명령을 지난달 21일부로 발효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취업 중인 해외 기술 전문가와 기업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조지아주 사태로 개선된 비자 정책을 기대했던 국내 기업과 기술자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과 직원들은 급하게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고, 이는 미국 내 자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용 불확실성은 미국 내 투자와 고용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미국 내 기업과 해외 취업자의 축소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 정책으로 애플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구글 등 외국 전문 인력을 많이 고용한 업체에서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해 기업마다 수천에서 1만 건 이상의 전문직 단기 취업(H-1B) 비자를 활용하는 글로벌 기업체는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지금도 인력 충당이 어려워 인도, 중국 등에서 수만 명의 인력을 공급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실정이다. 아마존은 전문직 단기 취업 비자 소지 직원들에게 “해외 출장을 자제하고 현재 해외에 있는 직원은 21일까지 반드시 미국으로 복귀하라”고 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사도 “H-1B 비자 소비자는 미국 내 머물라”며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내 전문직 단기 취업 비자를 활용하는 여타 기업체로 확산할 조짐이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정책을 추진한 정부조차 파장이 너무 커 부랴부랴 “해당 수수료는 오직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며 기존 비자 소지자나 갱신 신청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발표하며 수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수수료가 존재하기에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비자 폭탄을 틈타 중국은 발 빠르게 해외 인재 영입에 나섰다. 미국 정부의 비자 조치와 연구비 삭감에 따라 하버드대 류쥔 교수와 왕르야오 교수 등 중국인 학자들이 잇달아 귀국하고 있다. 영국도 “세계 5대 명문대 출신 또는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인재를 대상”으로 전문직 비자 수수료 면제를 검토하고 나섰다. 이러한 추세는 우수 인재가 필요한 국가로 확산할 것이다. 미국의 관세를 포함한 비자 정책은 다른 국가들은 산업체만 짓고 미국이 필요한 시설에 돈만 투자하고 일하는 곳에는 미국 사람만 쓰고 그 이익금은 미국이 갖겠다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망상의 발로다. 미국에는 전문 기술자가 없는데, 이러한 정책으로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미국이 바뀔 수 있을까.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임을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관세나 비자 정책은 트럼프 2기의 수명을 단축하는 법안들이다. 자유와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 미국 법원에서 판결로 높은 관세와 비자 폭탄이 제거되기를 희망한다. 힘을 가졌다고 함부로 휘두르면 자신이 다친다. 트럼프의 정책으로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공정한 룰에 따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5-10-13

강아지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강아지도 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수의학 학술지 ‘Journal of Veterinary Behavior’에 따르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불필요한 흥분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스코틀랜드 동물학대방지협회와 글래스고 대학은 다양한 장르 실험을 통해 클래식 음악이 개의 심박수를 가장 안정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반려견에게 클래식 음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스트레스 감소와 심박·호흡 안정에 효과적이다. 낯선 환경이나 소리로 인한 불안 상황에서 음악은 긴장을 완화하는 안정제 역할을 한다. 콜로라도 주립대의 2002년 연구에선 유기견 보호소에 클래식 음악을 틀자 짖음 빈도가 줄고 차분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일부 보호소는 특정 음악을 지속적으로 재생해 불안 행동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이러한 효과는 현장에서도 활용된다. 일부 동물 병원에서는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클래식 음악을 틀어 반려견의 불안을 줄이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장시간 혼자 집에 있어야 할 때, 병원 진료를 받을 때, 목욕과 같은 낯선 상황일 때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불안감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반려견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음악을 들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보호자와 함께 음악을 듣거나 음악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활동은 반려견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동시에 주인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아지들이 어릴 때에는 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학습 능력도 개선될 수 있다. 훈련 중에 적절한 음악을 활용하면 반려견의 학습 속도가 높아지고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강아지가 쉽게 잠들지 못할 때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더 빠르게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특히 노령견의 경우, 밤 시간대에 나타나는 불안 행동을 완화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반려견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연구에 따르면 헤비 메탈이나 하드 록처럼 빠른 템포와 큰 볼륨의 음악, 불규칙한 리듬이나 고음이 많은 음악은 차분한 행동을 유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강아지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리듬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피아노와 현악기 중심의 음악이 반려견 스트레스 감소에 가장 효과적이다.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의 작품 중 다수는 안정적인 분위기 조성에 탁월하며 강아지를 위한 연주회에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쇼팽의 ‘강아지 왈츠’,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등을 포함시키면 좋다. 주의할 점은 모든 반려견이 동일한 방법에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반려견의 성향과 불안의 원인에 따라 최적의 대응 방식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음악 감상과 보호자와의 놀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열에 아홉은 주인과의 시간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5-10-13

너희는 좋겠다

추석 즈음, 쓸쓸해지는 마음 넓게 펴든 토란잎 한 장에 도르르 말린 물방울 싱그러운 물방울에 파란색 속살이 비치네 은은하고 쌉쌉한 토란의 아린 맛 맑은 물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면 토란잎 아래 황토 흙 아래 눈이 동그란 벌레들의 세상 흙 속의 아들들 고물거리는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영롱한 물방울 안에 제 몸을 감고 한사코 스산해지는 마음 토란탕이며 송편이며 나물이며 잡채며 고기산적 같은 것들 누군가에게는 젖과 꿀이 넘치는 땅 고향과 명절 텅 빈 뒤주에 달빛은 가득하나 달이 둥그러질수록 어디까지 왔니 놋그릇처럼 쟁쟁한 마음 이제 마주 잡을 수 없는 어제의 손가락뼈 열 개 액체의 달빛인데 토란탕 국물 속에 뼈의 잔상이 한사코, 라는 말에 걸려 있다 ―김승희, ‘토란탕’ 전문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2021, 창작과비평) 그런 풍경이 있었다. 백석 시인의 ‘여우난곬족’ 여우고개 그즈음이 그랬을 것이다. “명절날 나는 어매 아배 따러 우리집 개는 나를 따러 진할머니 진 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풀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 찻떡의 내음새도 나고” 밤이 어둡도록 일가친척들이 모여 북적하니 놀던 때가 말이다. 한가위 연휴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그녀’는 말했다. “너희는 좋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실컷 놀잖아, 나는 맛있는 것들 많이 만들고 실컷 먹여야 해” 듣고 보니, 어딘가 뼈 있는 덕담이다. 여성의 명절 노동의 강도와 분량에서 보자면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 투정 속에는 애정 어린 뼈의 잔상이 걸려 있다. 가령 토란탕 “맑은 물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면” “눈이 동그란 벌레들의 세상”이 보인다. “흙 속의 아들들” “고물거리는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달려있는 것이다. “영롱한 물방울”에는 한사코 “제 몸을 감고” 있는 쟁쟁한 마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젖과 꿀이 넘치는 땅” 고향의 명절은 그랬다. “도르르 말린 물방울” 토란이 주는 물성은 모성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다. ‘둥그런 달’과 ‘토란’에 걸린 ‘한사코’는 액화된 달빛으로 “젖과 꿀”이 내장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은은하고 쌉쌉한 토란의 아린 맛”이 “싱그러운 물방울에 파란색 속살 비치”듯 배어 나온다. 김승희 시인의 추석 즈음에 백석의 여우난곣의 풍경을 대입해 보면 “엄매는 엄매들 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우깐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훙성거리는 부엌으론 새잇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 오도록” 아이들이 자는 풍경이 피어오른다. 이처럼 백석 시인의 함경도 방언 속에 “무이징게 국”내음처럼 ‘토란탕’ 맑은국의 기억이 “영롱한 물방울”과 겹치면서 현재의 자리는 대별된다. 이들의 “추석 즈음”의 풍경은 한 시인의 혹은 특정 시대의 삶의 풍경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유해온 공동의 뿌리가 녹아 있다. 여러 세대가 두루 모여 “송편이며 나물이며 잡채며 고기산적 같은 것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복작이던 풍경 말이다. “이제 마주 잡을 수 없는 어제의 손가락뼈 열 개// 액체의 달빛인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즈음 고향과 명절이라는 기표는 “텅 빈 뒤주”처럼 비어 “달빛”만 가득하다. “달이 둥그러질수록” “놋그릇처럼 쟁쟁한 마음”만 추석 보름달처럼 부풀고 있다. 때마침 명절 연휴에 읽을 셈이라며, 제인 오스틴류의 소설책을 한 아름 껴안고 그녀들이 오고 있다. “제 몸을 감고 한사코 스산해지는 마음” /이희정 시인

2025-10-12

야당이 못났다고, 여당을 무조건 용서하지 않는다

‘반동’이라고? 우리 현대사에서 이 단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하는 말일까. 동족상잔이라는 피와 한의 역사가 담겨 있는 단어다. 얼마나 나쁜 놈이기에, ‘반동’이란 낙인을 찍었을까.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그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판하는 지귀연 판사를 겨냥해 “개혁에 저항하는 반동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저격은 지난 5월 1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날이다. 이번 주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정 대표는 ‘조희대의 난’이라고 주장한다. 표현이 적개심은 뚜렷하지만, 내용은 없다. 포장 기술만 비교 불가다. 처음에는 ‘4자 회동설’을 제기했다.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만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한다. 민주당도 이제 그 주장에서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아무 근거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제, ‘왜 그런 판결을 했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한다. 피고 측 패거리가 판사를 불러놓고, 재판을 따지겠다는 꼴이다. 언제부터 국회가 대법원 위의 제4심이 되었나.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 언행은 2021년 10월 20일(“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요청했고, 응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과 12월 22일(“시장 재직 때는 김문기 처장 몰랐다”)에 발생했다. 이에 대한 고발은 같은 해 10월 27일과 12월 23일 이루어졌다. 공직선거법 270조는 ‘6-3-3 원칙’(1심을 6개월, 2심을 3개월, 상고심을 3개월 내 하라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법을 지키려면 2022년 말까지는 최종결론이 났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1심 판결이 2024년 11월 15일(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났다. 법정기한의 6배다. 항소심 결심은 2025년 3월 26일(무죄 선고)로, 4개월 12일이 걸렸다. 대법원은 36일 만인 5월 1일 판결했다. 공직선거법에 이 원칙을 규정해 놓은 건, 재판 지연이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당선만 되면 임기를 다 채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10년 동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역 국회의원 3명 중 1명은 선거법에서 정한 재판 시한을 넘겼다. 최근 10년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확정판결까지 평균 397일이 걸렸다. 이 대통령 사건은 그보다 3배가 넘는 1282일이 걸렸다. 그런데 서두른다고, ‘반동’이라고 한다. 사퇴하라고 몰아세운다. 혐의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다. 왜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판결했느냐고 따진다. 정치보복이다. 더군다나 ‘반동’이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픈 상처를 헤집는 말이다. 그것이 특정 정당이 떠받드는 최고 권력자를 옹위하기 위한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수당의 힘을 이용한 일방 독주가 전체주의 국가의 일당 독재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민주당이 이런 무리수로 노리는 게 뭔가. 입법, 행정, 사법, 구석구석 친위세력을 포석해, 50년 집권의 기반이라도 만들겠다는 건가. 정청래 대표는 수시로 국민의힘 해산까지 들먹인다. 정권이 무너지는 건, 정적의 공격 때문이 아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모두 스스로 무덤을 팠다. 오만한 권력은 국민이 심판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까. 합법을 가장하고, 야당을 모두 쓸어버리는 게 무슨 의미일까. 거기에 사법부까지 무릎 꿇게 만들면, 역사가 무어라 기록할까. 지금 국민의힘은 엉망진창이다. 계엄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버티는 건 정청래 대표가 잘해서가 아니다. 국민의힘 덕분이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엉망이라고, 민주당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건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2

울릉도의 미래를 위한 선택의 기로에서

울릉도는 지금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2025년을 맞아 울릉군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며, 이는 단순한 행정 변화가 아니라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울릉도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외딴 섬’으로 불려왔다. 기상 악화로 인한 여객선 결항은 일상적이었고,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최소 7시간 이상 걸리는 물리적 거리감은 관광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의료·교육·경제 활동 전반을 제약했다.   울릉공항 개항은 이 구조적 한계를 뒤흔드는 ’상징적 변화’다. 서울~울릉 간 1시간 내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울릉도는 ’접근 불가능한 섬’에서 ’연결된 섬’으로 거듭난다. 관광객 유입은 급증할 것이며, 울릉군은 연간 100만 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 서울관광재단과의 협약 체결로 수도권 중심의 마케팅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접근성 개선만으로는 관광 산업의 지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공항과 주요 관광지를 잇는 교통망, 다양하고 질 높은 숙박, 지역 식문화 콘텐츠 개발, 응급 상황 대응 체계 구축 등 인프라 정비가 필수다.   더 나아가 공항 개항은 지역민에게도 ’삶의 질 향상’이라는 실질적 혜택을 제공한다. 의료 긴급 이송, 교육기회 확대, 물류 개선, 청년 창업 기회 등 다방면의 효과가 예상된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을 위한 변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는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소멸, 청년 유입은 이벤트가 아니다. 울릉도의 인구는 약 9000 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고령화율은 30%를 넘어섰다. 이는 의료·복지·교육·노동력 등 사회 기능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울릉군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중심으로 외부 청년 유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면 현포리에 청년 거점 공간을 조성하고 50명 이상의 청년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청년 정책은 단순한 유입 이벤트가 아니라 ’머무르고 정착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 마련’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청년 창업 지원, 원격 근무 인프라 확충, 임대주택 공급, 빈집 리모델링, 주거비 지원, 청년 커뮤니티 공간 조성, 로컬 콘텐츠 제작 지원 등 종합적 지원책이 필요하다. ’청년이 만든 콘텐츠가 관광객을 유치하고, 관광 수익이 청년의 삶을 지탱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울릉도의 미래는 열린다.    울릉도는 청정 자연환경을 갖춘 섬으로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가치와 가장 잘 맞닿아 있다. 동시에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위기를 안고 있다.   울릉군은 전기자동차 보급률이 전국 평균을 상회하며 ’친환경 교통 정책 선도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캠코와 협약해 공공 유휴부지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며 관광객과 주민 모두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이동형 검진차량 운영’, ’원격진료 확대’, ’세대 통합형 복지 콘텐츠 개발’ 등 맞춤형 복지망 강화에 나서고 있다. 울릉도는 ’친환경 섬이자 고령사회 지역’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안고 있으며, 탄소중립과 복지망 확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최근 울릉도는 ’관광 신뢰 위기’에 직면했다. 일부 유튜브 영상과 언론 보도가 불친절·바가지 논란을 부각시키며 지역 이미지가 흔들렸다. 관광은 단순한 자연 감상이 아닌 ’경험 소비’다. 따라서 울릉도는 불신의 이미지를 ’환대의 이미지’로 바꾸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울릉군은 관광업 종사자 대상 교육을 확대하고, ’불편 신고 실시간 대응 체계’, ’관광업소 평가제’, ’SNS 기반 홍보 영상 제작’, ’고령 업주 대상 디지털 교육’ 등을 통해 체계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관광객 방문 전 울릉도의 현실적 한계를 투명하게 안내함으로써 ’양두구육 비판’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울릉도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항 개항, 청년 정책, 친환경 전략, 관광 신뢰 회복은 모두 단일 과제가 아니라 ’울릉도의 생존 전략’이다. 변화가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하는 것이 될 때, 울릉도는 진정한 ’연결된 섬’, ’지속 가능한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 남한권 울릉군수

2025-10-12

트럼프 ‘노벨상 불발’과 철강 도시의 그림자

지난 10일 마침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지만, 그 명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없었다. 트럼프는 상을 못 받자 “미국 모욕”이라며 노르웨이 등에 관세 보복까지 시사하며 노골적인 협박을 일삼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투사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선택하며 평화의 근본적 가치를 역설했다. 이 국제적 헤프닝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포항의 현실과 뼈아프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관세’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 드는 모습은 포항의 경제를 지탱하는 철강 산업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포항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포항을 비롯한 국내 철강 업계에 수출 감소 등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미국이 2025년 6월 철강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한해 동안 미국에 내야 할 관세 추산액은 무려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 불발에 관세 보복을 위협하는 행태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국제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슈퍼파워의 자기중심적 민낯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슈퍼파워’의 변덕스러운 정책 하나가 철강 도시 포항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역경제 전체를 4000억 원의 관세 폭탄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개인이나 작은 나라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관세라는 폭력적 수단을 꺼내 드는 미국의 행보는 우리가 믿고 싶었던 ‘정의로운 슈퍼파워’의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베네수엘라의 민주투쟁에 상을 주며 인권과 평화의 원칙을 지켰듯이 국제사회는 강대국이 내세우는 힘의 논리가 아닌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포항 시민들은 이 노벨상 헤프닝을 보며 “국제사회의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힘을 앞세운 강대국의 변덕이 언제까지 우리지역 기업들과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과 관세 위협은 철강도시 포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남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12

단순한 복지, 빠른 복지

3주 전 일요일 어느 회사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졌다. 당시에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충격이 컸고 가장 먼저 바닥에 닿은 오른팔은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있었으나 행사 스태프들이 얼음주머니 등 발 빠른 응급조치를 해주어 통증이 금세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정형외과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보니 상완골 골절이라면서 4주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고 후 일주일은 특별히 유의해서 움직임을 최소로 해야 한다고 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걸을 수도 있고 말하는 것도 문제는 없으니 강의는 할 수 있지만 손을 써야 하는 강의 준비는 물론이고, 음식 준비와 청소 등은 혼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인에게 부탁했다. 지인은 강의 자료 만드는 일에 손 빠르게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며칠간 먹을 식사까지 챙겨주면서 정말 절실한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돌봄 SOS라는 복지제도이다. 돌봄 SOS는 일시 재가 서비스로, 거주지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담당자가 방문하여 상태를 점검하고, 관련기관에 의뢰하여 요양보호사를 파견해 준다고 한다. 이 제도는 서울시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 중이라고 한다.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알고리즘으로 본 영상에서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수백 가지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닿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영상을 본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 다시 찾아보면서 복지정책 단순화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이는 작년 10월 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이 있는데 ‘안심소득’으로 불렸던 ‘서울디딤돌소득’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이 정책은 복지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때 발표한 쉐퍼 교수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최소 소득 하한선을 설정해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면 복지 시스템이 단순해져 행정 비용도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8년 전 한 일간지의 집중취재에서는 이보다 더 과격한 주장이 실렸다.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류학)가 복지를 위해 기본소득제를 주장한 것이다. 기본소득제란 소득과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본소득제는 원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가 지향하는 정책으로, 모든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실제 2012년 일본의 극우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기본소득제든 선별 지원이든 복지정책의 단순화는 비용 절감과 복지 혜택의 접근성을 위해 필요하다. 복지제도가 단순해지면 긴급 돌봄이 필요할 때도 빠르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1인 가구라 외부 도움이 없으면 왼손만으로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데 돌봄 SOS 신청한 지 3주가 되도록 자격심사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번 돌봄 SOS 신청은 헛일이 될 것 같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12

포항시, 글로벌 AI 선도 도시로 비상하다

철강 경기 침체로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포항시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일, 포항시가 ‘챗GPT’를 만든 오픈 AI의 AI 데이터 센터 건립지로 최종 확정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대형 프로젝트지만 이번 결정이 포항의 산업구조와 도시의 미래를 바꿀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픈AI는 왜 한국, 그리고 왜 포항을 선택했을까? 첫째, 이재명 정부의 AI 강국 실현 의지와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출범 이후 ‘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며, 데이터·반도체 등 핵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자,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생산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오픈 AI가 필요로 하는 AI 산업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둘째, 포항의 입지적 강점이다. 오픈AI는 삼성과 함께 바다 위에 세워지는 차세대 친환경 ‘플로팅(부유식) 데이터 센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포항은 해양 접근성이 뛰어나고, 포스코와 에코프로 등 국가 첨단 전략산업이 집적되어 있으며, 대규모 전력 확충이 가능하다. 또한 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해 방사광가속기, 나노융합기술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등 세계적인 연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포항시의 실력 있는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다. 오픈 AI의 투자가 지역경제와 시민의 삶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AI 선도 도시로 가기 위한 체계적인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중앙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포항시의 전략적 역량이 핵심이다. 부지 선정과 인허가 절차, 인프라 구축, 기업 협력 등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인허가 패스트트랙 지원 TF팀’을 구성하고, 분야별 전문가로 이루어진 실무추진 TF팀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 둘째, 지역 산업과의 연계 및 인재 양성이다. AI 데이터 센터 유치는 단순한 시설 유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포스코, 에코프로, 포스텍, 한동대 등 지역 산업과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하는 ‘AI+철강’, ‘AI+이차전지’, ‘AI+대학’, ‘AI+창업’ 같은 융합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동시에 ‘포항형 AI 아카데미’와 시민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포항 시민이 AI 시대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AI 선도 도시를 위한 차별화된 정주 환경 조성이다. AI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포항에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교육, 문화, 복지 인프라를 적극 확충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도시,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포항시가 AI 선도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아침의 기적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공무원들의 땀과 노력, 포항 시민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그 땀이 결실을 맺을 시간이다. 철강 산업으로 실력을 다진 포항시가 AI 선도 도시라는 새로운 결실을 시민의 삶 속으로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다시 한번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큰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0-12

노벨상에 거는 기대

알프레드 노벨은 화학자, 공학자이자 발명가이다.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인물로 그가 소유한 발명품만 355개나 된다. 발명품으로 평생 모은 돈을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국립은행이 노벨상을 제정했다. 원래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였으나 이후 경제학 분야가 추가됐다. 1901년부터 2024년까지 6개 분야에서 총 627번을 수상했으며 개인 및 기관 수상자가 1012명에 달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정치적, 외교적 압력없이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 인류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주는 상이다. 단순한 업적 평가를 넘어 인류의 이익과 평화, 과학적 성취를 상징하는 상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미국이 411명으로 단연 1등이다. 다음 영국 137명 순이며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2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상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벨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는 정치적 의도가 섞였다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있었으나 상의 권위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내가 노벨평화상 수상 적임자”로 라고 주장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차도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백악관의 비난 논평도 있었지만 상의 권위가 폄훼돼선 안 된다. 한사람의 천재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그 시대 인류가 바라는 희망이 되어야 할 상이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2

페테르부르크의 추억

사람은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말하면서 살아간다. 각자에게 유리한 사실만 기억하면서 나름의 정의와 진실을 마음속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독하게 꼬집은 소설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1922)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라쇼몽>(1950’으로 영화화했다. 반면에 노신(魯迅)은 ‘아큐정전’(1922)에서 이것을 ‘정신승리법’으로 규정하면서 신랄하게 공격한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예외 없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있기에 100%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다. 지난 8월 하순 페테르부르크에서 체류한 사흘 일정은 나에게 22년 전 추억을 소환한다. 2003년 7월 하순에 사흘 머물면서 페테르부르크 곳곳을 누볐던 추억보다 그곳에 공부하러 나와 있던 경북대 학생들과 모교 졸업생들과 함께한 기억이 훨씬 강렬하게 남아있다. 보리스 옐친의 무기력한 통치가 종결되고 패기 넘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 1기가 펼쳐지던 시기의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불안하고 가난했다. 70년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각인됨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간 암울했던 러시아. ‘유럽으로 열린 창’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시민들의 삶은 곤고(困苦)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학생들과 밤마다 보드카 폭탄을 돌리곤 했다. 맥주잔에 40도짜리 독주 보드카를 일정 정도 따르고, 나머지를 맥주로 채워 단번에 마시는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는 새벽 3시 무렵 희뿌옇게 밤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가 30분쯤 지나면 환한 얼굴로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보드카와 맥주병이 커다란 식탁에 날마다 3~40병 쌓이곤 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창천의 일등성(一等星)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의 나는 2!30대 청춘들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던가?! 유학생들이 러시아에서 겪어야 했을 허다한 모험담과 기행(奇行), 온갖 실패와 실수로 점철된 시절의 소환 같은 것이었을 터다. 10여 명이 무리 지어서 페테르부르크를 누비고 다니면서 러시아 역사와 예술의 향연을 한껏 들이마신 기억이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이번에는 국립 러시아 박물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 푸시킨이 다녔던 귀족학교 리체이를 차분하고 여유롭게 돌아본다. ‘피의 사원’과 ‘네프스키 대로(大路)’, 페테르부르크 운하와 네바강, 카잔 성당도 빼놓지 않는다. 박물관에서는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오스트로프스키, 체호프 같은 러시아 문사들의 흉상이나 초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러시아 문학, 특히 러시아 희곡을 향한 열망을 온몸으로 구현한 대가들 앞에서 지난 시절을 반추해봄은 해볼 만한 일이다. 어떻게든 남들과 다른 길을 찾아 걸어보려 했던 치기(稚氣) 어린 20대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40대에 찾았던 페테르부르크를 60대에 다시 대면하노라니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져버린, 불멸해야 했을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갔는가?! 마치 ‘세 자매’의 어리석은 주인공 안드레이의 한스러운 내적 독백을 되뇌는 것 같다.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날들을 여름감기와 함께하면서 상념에 젖었던 페테르부르크의 추억이여!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12

가을 바람의 안부

아침에 창문을 열자 차가운 기운이 거실에 내려앉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잔열이 남아 도로 위를 달궈 놓았던 바람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뚜렷하게 결이 바뀐 공기 속에서 나는 하던 일들을 잠시 멈췄다. 길가의 가로수가 어느새 하나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주위 들풀도 붉은빛을 품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은 늘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삶의 큰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바람이 좋아 모자만 쓰고 아파트 둘레길을 걸었다. 바람은 낯선 악보처럼 내 마음에 선율을 그려 넣었다. 가을의 향을 품고 내게 감긴 그 바람이 좋아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가을바람은 단순히 계절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 같았다. 문득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던 학창시절도 떠올랐고 바람을 타고 교문을 달려 나가던 여러 장면들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설렘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다르다. 살아온 세월은 바람의 방향처럼 끊임없이 변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가을바람은 다급히 흘러가는 발걸음을 붙들어 세운다. 잠시 멈추어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고개를 들어 구름의 흐름을 바라보라고, 바람은 그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산책길 옆 작은 벤치에 앉았다. 낯익은 풍경이었지만 바람은 그것을 전혀 다른 그림처럼 바꾸어 놓았다. 느티나무 잎새가 흔들리는 소리는 오래된 편지의 활자처럼 내 귀에 새겨졌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어느 집에선가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묵은 감정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을바람은 안부처럼 다가온다. 무더운 여름을 잘 지냈는지, 마음은 무겁지 않은지, 스스로를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바람의 물음 앞에서 나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느라. 일에 쫓겨 사소한 근심에 사로잡히느라,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한 날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계절의 바람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장 솔직한 거울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바람이 내 어깨에 가만히 내려 앉았다. 위로처럼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오면서 잘 버텨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위로는 멀리 있지 않았다. 화려한 말이나 거창한 행동이 아니어도 계절의 바람 한 줄기면 충분했다. 돌아오는 길 카페 앞 노란 국화가 눈에 들어왔다. 향기가 풍겼다. 바람은 향기를 데리고 다닌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도 어쩌면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을지 모른다.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그 순간의 향기와 빛깔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사랑도, 추억도, 슬픔도 모두 바람처럼 다녀가지만, 다녀간 자리에 남는 흔적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집 앞에 다다르자 오후의 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햇살은 정오의 날카로움을 거두고 서쪽 하늘로 기울며 누런 금빛을 흘러내렸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마다 바람이 흔들어놓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을바람은 여전히 곁을 맴돌며 내 결음을 가볍게 했다. 그 바람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바람은 흘러갔다. 흘러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몸짓일 것이다. 오늘의 바람이 내일의 구름을 움직이고 다시 새로운 계절을 불러오듯이. 바람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 더 귀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마음에 오래 남는다. 바람은 흘러가지만 그 곁에 스친 향기와 서늘함은 내 안에서 겹겹의 결을 이루며 쌓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다. 오래 머물지 못할지라도 잠시 머무는 순간에 따뜻한 기운을 건네준다. 가을바람은 오늘도 그렇게 덧없음 속에서 충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비로소 나는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너는 잘 지냈느냐.”그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아 작가

2025-10-12

폭력으로 얼룩진 세르비아 명가 ①블랙조지와 밀로쉬

19세기 초, 세르비아는 이때부터 블랙조지 가문과 밀로쉬 가문으로 나눠지면서 새로운 폭력 양상을 띠게 된다. 1815년 유럽 세계 역시 변화의 급류에 휘말렸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에서 실패한 후 몰락하고 엘바섬에 유폐된 뒤, 섬을 탈출해 프랑스를 재점령하면서 100일 천하를 이루었다. 하지만 워털루에서 웰링턴 공작에게 패해 대서양 세인트헬레나에 재차 유폐되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1815년 11월, 세르비아민족회의는 최고지도자에 밀로쉬를 추대한다. 1817년 초 오스만은 골치만 아픈 세르비아에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착하게 말 잘 듣는 밀로시 오브레노비치를 세르비아공국 왕좌(공작)에 앉혀 한숨을 돌렸다. 이때를 기회로 러시아 차르는 부동항의 확보를 위해 재차 발칸반도로 진출하자 이에 놀란 것은 터키뿐만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들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오스만터키 술탄은 넓은 제국을 안간힘으로 지켜내느라 동서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틈을 노린 러시아는 이란의 카자르조와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면서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얻어 기세를 올린다. 영국과 프랑스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오스만터키로부터 신뢰를 한 몸에 받던 밀로쉬는 문제가 많았다. 1814년 9월 블랙조지, 즉 카라조르지예 추종세력들이 새로운 혁명봉기를 위해 모임을 결성하고 밀로쉬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금지원은커녕 오스만터키에게 이를 고해바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외운송 독점권에 이어 운송장비까지 독점했다. 이후 블랙조지를 따르는 해외파와 밀로쉬를 추종하는 국내파로 세르비아는 툭하면 싸움판이 깔린다. 이슬람에 몸을 비벼 자치권만 획득한 밀로쉬에 세르비아인 불만이 증폭된다. 세르비아인들은 밀로쉬와 카라조르지예(블랙조지)를 비교하며 블랙조지에 대한 향수를 못 잊어 했다. 그러자 밀로쉬로서는 블랙조지가 세상에 없어져야 온전한 자기의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생각을 굳힌다. 1817년 7월 블랙조지가 해외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리스 혁명지도자들과 연합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밀로쉬는 암살자를 보내 머리를 잘라 술탄에게 선물로 바친다. 밀로쉬는 정적 제거는 물론 술탄에게 충성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무한 신뢰를 얻는다. 블랙조지를 추종하던 세력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르비아 하층민에게 있었다. 가난과 핍박 등 혼란한 정국 속, 이전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세르비아농민의 불만은 증폭되어 갔다. 그러나 왕권을 유지하려는 밀로쉬는 농민을 달래기는커녕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가두곤 했다. 이전의 에니체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러시아는 이를 간파했다. 1821년 3월 6일 그리스 독립투쟁이 본격화되고, 러시아가 오스만 턱밑에 대포를 포진하면서 세르비아 완전한 자치권을 요구했다. 이에 오스만은 세르비아인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1828년 러시아는 오스만터키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듬해 8월 러시아군대가 아드니아노플을 점령한 후 불가리아로 진격했다. 오스만제국은 그제야 두 손을 들었다. 아드리아노플조약이 이렇게 해서 생겼다. 뒤이어 1830년 2월 6일 밀로쉬는 세르비아 중부도시 크라구예바츠에서 세르비아자치를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선포한다. 오스만제국이 만든 왕이자, 세르비아 자치국 왕위를 획득한 밀로쉬는 날개를 다는 듯했다. 여세를 몰아 밀로쉬가 강력한 중앙집권형 권력을 추진하자 군사반란을 불러왔다. 밀로쉬가 간과하는 게 있었다. 예부터 세르비아는 지방 고유 자치권이 강했다. 이때 세르비아인들이 밀로쉬 민낯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이다. 이는 곧 통치권 약화로 이어졌고, 블랙조지 추종세력들은 밀로쉬 제거를 목표로 삼았다. 그 와중에 경제정책 실패로 세르비아 경제적 뿌리인 농업정책마저 바닥을 쳤다. 배가 기울면 쥐들이 가장 먼저 뛰어내리는 법, 세르비아 귀족들이 밀로쉬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내정간섭을 이어가던 러시아는 물론, 오스만터키 역시 밀로쉬 독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러시아는 밀로쉬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마치 요즘의 국회처럼 위원회를 만들어 왕권을 견제했다. 결국 1839년 6월 위기를 느낀 밀로시는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루마니아의 왈라키아로 망명길을 떠났다. 그의 폭정은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그 맛에 취하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아주 잘 보여준 예라 할 것이다. 토마 부취치를 중심으로 세르비아의 17인으로 구성된 귀족위원회가 본격 가동하면서 이들은 열아홉 살인 밀로쉬 아들 밀란 오브레노비치를 왕위에 올렸다. 그런데 귀족위원회의 입장에서 보면 고맙게도 왕위에 오른 지 채 한 달도 못 되 죽어버렸다. 말 그대로 세르비아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정이든 나라든 속에서 곪아 터진 뒤에 외부의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작가

2025-10-12

긴 연휴의 명암… 포항 도심 상권에 닥친 ‘역내수 쓰나미’

최대 9일에 달했던 긴 추석 연휴는 포항 지역 경제에 기대했던 ‘대목’ 대신 싸늘한 ‘역내수 효과’를 낳았다.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등 주요 관광지는 잠시 활기를 띠었으나, 도심의 중심상권까지 확산하지 못했다. 포항 도심의 핵심인 중앙상가는 연휴 내내 거대한 ‘경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듯 황량했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은 연휴 전 일시적인 ‘제수용품 특수’를 누렸을 뿐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소비 절벽에 직면했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장기 휴가를 이용해 해외 여행을 떠났고, 지역 내에서 선순환돼야 할 소비자금은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됐다. 긴 연휴가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소비 유출을 가속화했다. 중앙상가 상인회 A 대표는 “이 긴 연휴는 ‘황금연휴’가 아니라 ‘보릿고개’가 된 셈이다”며 “관광객이 늘어도 도심까지 와서 돈을 쓰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기도 소비 급감에 한 몫을 했다. 포항은 지금 핵심 산업인 철강 산업이 장기간 위축되면서 지역민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가계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어 실질적인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긴 연휴였지만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았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예년보다 냉랭했던 죽도시장 등 재래시장 경기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명절차례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문화여서 사실상 한가위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여건을 뚫고 경제력이 힘든 서민층의 시민들이 나서 역내 내수를 떠받치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지역 내 소비 기반이 취약해진 국면에서 맞은 추석의 긴 연휴는 ‘휴식과 소비의 양극화’라는 포항 경제의 민낯을 여과없이 속속 드러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이러한 소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지역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마냥 경기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항시와 역내 경제인, 그리고 지역 정치인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포항시의원은 “긴 연휴가 지역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경제인들은 혁신적인 지역 투자와 고용 창출에 나서야 하고, 시와 정치권은 소득 증대와 가계 부채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비 침체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포항의 모든 주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공동의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글·사진/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09

해킹과 개인정보

바야흐로 해킹의 시대이다. 통신사와 카드사는 물론 국가 기관조차 해킹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듯싶다. 기술의 진보에는 사고가 수반되기 마련이라지만 해킹은 개인정보를 노리는 의도적인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보화 사회의 그늘’쯤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해킹 피해 관련 보도는 쏟아지면서도 정작 누가 이런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글로벌한 해커 집단이 지목되기도 하지만 쉽게 특정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만큼 가해의 회로가 복잡하기 때문일까? 해킹의 구조와 해커에 대해서도 더 대중적인 앎과 지식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해커에 대해 논하기 전에 개인정보의 빅데이터화에 대해서는 짚어둘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여러 플랫폼 사이트를 통해 개인 메일이나 클라우드 서버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구글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에서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개인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정보화되고 그러한 정보의 독과점에 모두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 자의와 타의를 구분키 어려운 지점에서 개인정보의 빅데이터화는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드릭 뒤랑은 오늘날 디지털 생산의 기초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해 독점적인 통제를 행사하는 구조가 있고, 여기에 개인과 조직이 어떻게 의존케 되는지를 논하면서 ‘기술봉건주의’라는 시대 규정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대형 디지털 서비스는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영지’이고, 하위 주체에겐 그러한 ‘디지털 토지’에의 ‘의탁’이 강제되어 있다. 지배 세력이 경제 잉여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결정하기에,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의존성과 잉여의 통제가 함께 이루어지는 ‘포식의 모델’이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자본 수익의 극대화는 생산의 극대화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통제의 극대화에 의존하게 되었다. 기술봉건주의 시대의 문제는 개인의 주체성이 말소된다는 데 있다. 플랫폼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제공하는 개인정보는 ‘위치 정보’와 ‘검색 이력’ 정도이기에 개별 단위로 보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정보가 수천만, 수억 개가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수히 모인 정보들, 즉 ‘행동 잉여’가 이용자의 행동 예측을 광고주에게 팔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어, 예측 상품 생산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의 입장에서 이용자 개인은 고객이 아니다. 그들에겐 광고주가 고객이고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는 원재료를 제공한 다음 몰수되는 물건에 불과하다. 즉 개인은 생산자(노동자)도 소비자(고객)도 아니고, 제공하는 개인정보조차 개별 단위로는 너무 사사로워 ‘상품’조차 되지 못한다. 이런 기술봉건주의의 현실에서 개인의 주체적 위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가장 긴급한 현대사회의 과제가 여기 있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