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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물건을 버리는 일

옷장 앞에서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15년 넘게 입어 낡고 헤진 검정 패딩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엄마 손을 잡고 지금은 구도심이 되어버린 시내에 나가 고민 없이 산 옷이었다. 입자마자 몸에 꼭 맞는 듯했고 두터운 두께 탓에 몸이 두 세배는 더 커 보이던, 투박하지만 무늬 하나 없이 깔끔한 검정 패딩이었다. 나는 그것을 고등학교 교복 위에 입었고 대학교에 가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이후 직장에서까지 꾸준히도 입었다. 나는 물건도, 옷도 잘 사지 않는 편이다. 새로운 옷을 사는 데에 피로감을 느낄뿐더러 어떤 스타일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타일 이랄 게 없는 깔끔하고 기본적인 옷을 주로 입는다. 무난한 기본 티셔츠나 바지를 발견한다면 색상별로 두 장씩 구비해 두곤 한다. 그리곤 옷을 더 이상 입지 못할 때까지 수선하다 결국 더는 입지 못할 때에 버린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혀를 내두르고 엄마는 내 옷장을 볼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다양하게 구비해놓기란 늘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옷의 개수도 자연스레 적다. 사계절을 모두 합쳐도 일반적인 옷장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다. 하지만 비슷비슷하게 정리된 옷들은 편안하고, 매일 아침 옷을 고를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에 좋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볍게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하루를 한결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달까. 처음부터 옷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기심 많던 직장인 초년생이던 시절, 형편에 맞춰 여러 저렴한 옷을 사 입었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거나 유행이 지나버리거나, 혹은 원단이 너무 저렴해 금세 보풀이 일고 망가지는 경험을 반복했다. 결국 몇 번 입지도 못한 채 옷을 버릴 때마다, 낭비에 대한 허무함과 소비 습관에 대한 실망감이 들었고, 더는 이러지 말자고 마음먹게 됐다. 또 신중한 성격 탓에 옷뿐만 아니라 물건을 살 때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고르게 된다. 무언가 필요하면 가격과 상세 페이지, 제품 후기 등을 여러 번 읽고 난 후, 장바구니에 며칠씩 담아두었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껴질 때쯤 구매한다. 그렇게 고른 물건일수록 후회가 적고 잘 골랐다는 뿌듯함과 기쁨에 더 오래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또 다시 맞이하는 겨울의 계절. 날이 추워지면 나는 익숙한 검정 패딩을 꺼내 입고선 잔뜩 움츠린다. 비록 보온성은 많이 떨어졌지만 15번의 겨울이라는 그 많은 시간을 함께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옷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다. 지퍼 부분은 이미 고장 나서 잘 잠기지 않고 벗어두면 안쓰러울 정도로 축 저진 모양새지만 유난스럽지 않고 과시 하지도 않는, 내가 추구하는 삶과 꼭 닮았기에 애정이 간다.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유행에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기본에 충실한 내 옷. 내 몸에 꼭 맞는 오래된 물건들은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묵묵히 굳건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오래된 물건은 조금 안쓰러운 구석이 있다. 15년 넘은 검은 패딩은 걸을 때마다 안감 속 솜털이 빠져 나오고, 10대 때부터 머리맡에 두고 있는 토끼 봉제 인형은 이곳저곳 꿰맨 자국과 거뭇한 얼룩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쓰임의 실용성은 잃고 숨만 겨우 붙은 채 명분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물건들을 쉽게 놓아주지 못한다. 오래된 물건에 애정이 쌓일수록 버리는 일에는 더 서툴러지는 것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정리해야 할 때면 오랜 시간 망설이고, 결국 물건이 초라해질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쓰임의 본질을 잃은 물건들은 생명을 잃은 식물과 닮았다. 오래된 물건들은 대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보기에 측은해지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오랜 시간 곁에 머물러 있어 당연히 여겨지지만 실은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오래된 물건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잠시 멈춰 진지한 이별 의식을 치른다. 그러고 나면 그 물건의 존재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해진다. 이미 내 손을 떠나보냈지만 기억으로 남아 내 곁을 머무는 물건들이. 물건을 버리는 일은 아직도 녹록치 않지만 어쩌면 오랜 물건과 잘 이별하는 것이 삶에서 필요한 한 과정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요즘의 겨울은 그런 이별들로 채워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6-01-21

코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요즘 조향이 유행이래요. 알고 계셨어요?” 한 출판사 편집자 선생님이 통화 중에 내게 물었다. “아뇨. 처음 들어요.” 정말 몰랐다. 변변한 취미 생활 없이 쉬는 날엔 그저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는 내겐 생소한 얘기였다. 조향, 그러니까 천연의 향과 인공적인 향 어떤 것이든 섞어서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나만의 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동네의 아담한 카페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을 맡으며 나는 향과 관련한 온갖 기억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글씨만 읽었는데 후각이 먼저 작동한 건 ‘향수’가 처음이었다. 결말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이름인 그루누이를 입에 담으면 코에 무엇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향은 이름에도 묻어 있는 걸까. 나에게 짙게 남은 향은 초등학교 옆 시장의 골목 초입에 있던 꽃집에서 늘 나오는 그 향이었다. 장미, 백일홍, 프리지아, 안개꽃 등이 공기 중에 마구 섞여 코끝을 찌르곤 했다. 강렬함이라고 한다면 꽃집 바로 근처의 분식집에서 우리를 유혹하던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 냄새를 말해야겠으나, 이상하게 아주 멀리서도 맡아지는 건 꽃집의 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을 꽃집이 아닌 시장의 향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또 얼마 후에는 동네의 향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유달리 공사장이 많고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문방구 외에는 딱히 없던 그 동네가, 꽃집의 향으로 내 안에 남게 된 것이다. 기묘하게도 비슷한 꽃들이 있는 꽃집이라도 그 꽃집과 향이 같지 않다. 그 향을 단지 장미 향이라거나 안개꽃 향이라고 부를 순 없다. 장미 21.6%, 튤립 16.3%, 안개꽃 15.2%, 거베라 11.5%, 수국 8.9%…. 내 안에는 이런 식으로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꽃집의 향을 다시 오롯이 맡는 것은 불가능할 일일 텐데, 지금도 가끔, 어느 꽃집을 지나다 맡게 되는 향기가 기억 속의 그 꽃집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향과 관련한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따로 있다. 친구의 생일이나 지인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자주 향을 선물하곤 했다. 향수, 향초, 디퓨저, 인센스, 핸드 크림과 같은 것들. 좋은 향으로 그때를 기억하라거나 더 좋은 일상이 되길 바란다는 등의 멋진 이유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이유까지는 없었다. 우선 가격이 괜찮았다. 오 만원 내외로도 충분히 있어 보이는 게 가능했다. 포장지까지 더하면 제법 예뻤다. 또 부피가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너무 큰 선물은 방에 두는 일만으로도 짐이 될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꽤 오래 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고기는 한 번 먹으면 사라지지만 향수나 디퓨저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으니까. 특별하지는 않아도 센스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일에 수많은 향수를 선물 받기 전까진. 그러니까 향을 선물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단 것이다. 모두가 향수와 디퓨저를 나쁘지 않은 선물로 여겼기 때문에, 서로서로 기념일에 향만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BEST가 붙은 향이나 ‘이런 숲속의 나무 향을 싫어할 리는 없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향을 고르곤 했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다. 향이야말로 취향이 아주 크게 나뉘는 장르라는 것을. 우드 계열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개인의 취향은 또 디테일하게 다르다는 것을. 당신 혹은 당신들에게 제대로 향을 선물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나는 코가 지닌 감각을 아주 단순하게만 사용해왔다. 상쾌하다, 맑다, 맵다, 시리다, 구리다, 아리다, 이런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물의 색이 단순한 파랑이 아니듯 집 앞 나무의 향 또한 하나가 아니다. 해가 떠 있는가 달이 떠 있는가에 따라, 겨울인지 봄인지에 따라, 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좋겠다. 단순히 모든 바닷가에서 전해지는 바다 냄새와 짭짤한 공기를 좋아했다기보단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에 앉아서 바라보는 일몰과 은은히 날아드는 밥 짓는 냄새, 새들이 날갯짓하며 떨어뜨리는 구름의 일부, 식어가는 캔맥주의 향이 한데 섞인 바다 냄새를 특별히 좋아했다. 마음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코끝으로는 조금 맡을 수 있는 것 같다. 가끔 어떤 향은 좋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향 하나가 잊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때로는 슬픔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게 아니라 코끝이 찡해서 슬픔이 오는 걸지도 모른다. /구현우(시인)

2026-01-21

K자형 경제회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작년보다 높은 1.8% 수준으로 전망하지만 특정 부문이 강한 회복을 보이는 K자형 경제 회복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K자형 경제란 경제 전체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나 계층과 산업별로 회복의 속도가 차이가 나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국내 주식시장이 지수 5000을 바라보는 호황국면을 자랑하지만 내가 느끼는 살림살이는 더 힘들어지는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똑같은 경제 상황에서 한쪽은 높은 성장을 하는데 다른 한쪽은 고물가와 고용불안으로 고통을 겪는 모순적 구조가 바로 올해 한국경제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K자형 경제는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던 용어다. 미국은 상위 10%가 주식 자산의 90%를 보유하고 소비도 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가 편중된 구조다. 미국경제가 회복되면서 고소득층은 경제회복과 자산 증가의 혜택을 누리게 되지만 자산이 없는 저소득층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최근 K자형 경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올 한국경제 회복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크다. 만약 K자형 경제로 흐른다면 서민들로선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반도체, AI 등 특정 분야 중심의 경제성장은 전통적인 서비스 산업에 의존하는 서민경제를 더 핍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부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져 사회가 안정된다는 뜻이다. K자형 경제보다 모든 계층이 고르게 경제효과를 보는 U자형의 경제성장이 서민에겐 더 좋을 수 있다. 경제문제는 늘 어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20

한동훈 사과로 ‘국힘 내분’ 출구 찾을까

‘당원게시판(당게)’ 사태로 촉발된 국민의힘 내홍이 지난 18일 한동훈 전 대표의 사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 전 대표는 이날 2분 5초 분량의 영상을 통해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국민과 당원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서 당을 이끌었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사과’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사실상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24년 11월 당게 사건이 불거진 지 14개월 만의 첫 사과다. 장동혁 대표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대여 투쟁 방식까지 택한 상황에서 내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변의 조언을 수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당 주류 측에선 ‘반쪽사과’라는 말이 나오지만, 한 전 대표가 공식 사과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국민의힘은 내분을 잠재울 여지가 생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전 대표가 용기를 내서 사과해 준 것은 다행”이라고 했고, 양향자 최고위원은 “사과조차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리 당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고 나라를 이끌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제 당내 갈등을 풀 열쇠는 장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지난 15일 단식에 들어간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의 사과에 대해 공식 입장을 아직 내지 않았다. 그는 단식현장을 찾은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서 한 전 대표와 휴전하고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하자, 웃으며 “예”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장 대표는 당게 사태를 징계가 아닌 정치적 해결로 풀어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한 전 대표를 ‘걸림돌’에 비유하며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했었다. 장 대표가 현재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징계 취소, 수위 조절, 제명 강행 3개 뿐이다. 오는 26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징계에 대한 최종 의결이 예정돼 있어, 장 대표는 남은 기간 여론 흐름을 보고 이 중 한 개의 카드를 선택해야 한다. 장 대표는 이 기회에 당게논란을 끝내야 내분을 추스르고 보수 야권 연대를 구축해 대여 투쟁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장 대표를 떠받치고 있는 강성 지지층들이다. ‘윤 어게인’ 스피커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들이 한 전 대표 사과의 진정성을 계속 문제 삼을 경우 가뜩이나 정치적 기반이 넓지 않은 장 대표로선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지방선거 공천을 의식하며 단식현장을 방문하는 정치인 대부분도 장 대표의 판단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지방선거가 불과 4개월 조금 더 남았다. 열흘쯤 뒤인 2월 3일부터는 시·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이 시작된다. 만약 한 전 대표 제명 논란으로 내홍이 더 커지게 되면 국민의힘은 선거 준비조차 힘들어진다. 당 내분은 여권발 악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어떠한 선거 캠페인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선거에 참패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당 지도부에게로 돌아간다. 장 대표의 정치생명이 걸린 것이다. 장 대표는 당이 공멸의 길로 가지 않는 정치적 해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20

철강산업 위기, 질적 전환으로 돌파해야

‘산업의 쌀’로 불리며 국가 성장의 중추 역할을 해온 철강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 탄소 규제 강화, 미국 등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그리고 국내 건설업의 침체와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가 동시에 밀려오며 철강산업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중심인 포항철강산업단지의 실적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5년 11월 기준 생산은 12조6000억원으로 전년 누계 대비 6.6%, 수출은 28억6000만불로 6.5% 각각 감소했고, 고용인원마저 줄어드는 등 전반적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포항은 철강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도시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즉각 지역경제 전반에 큰 충격으로 이어진다. 협력업체와 자영업 등 지역 소상공인까지 확산되며 시민들의 일상과 삶의 터전 깊숙이 스며들어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세계 철강시장은 현재 구조적인 공급 과잉 상태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내수 둔화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생산 능력을 유지하며 저가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철강업체들은 수익성 악화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각종 관련 법 개정과 규제 등 기업 환경 여건도 좋지가 않다.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업체들의 투자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또한 철강제품 원가의 10%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요금이 최근 3년간 70% 이상 올랐다. 중국의 저가 철강 공습 속에 전기료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기업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철강은 여전히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에너지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가 흔들리는 신호탄이며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는 철강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철강산업 재도약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고부가가치 중심의 구조 전환이다. 자동차용 초고강도강, 전기차·배터리용 특수강, 에너지·방산 소재 등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로 집중해야 한다. 단순 건설용 범용재 비중을 줄이고 소재 경쟁력을 통해 가격 결정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 생산 중심 산업에서 기술·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변화해야 한다. 맞춤형 소재 솔루션, 디지털 기반 공정 최적화,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스마트 제조 역량 등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셋째, 국가 차원의 전환 전략도 요구된다. 저탄소 제철 기술은 국가 기간산업의 존속과 직결되는 사인임을 고려, K-스틸법을 통해 연구개발 투자, 실증 인프라 구축, 전력·수소 공급 체계 정비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포항 사회와 철강의 재도약을 위해선 완제품 생산업체 유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경기 회복과 인구 증가는 보다 많은 일자리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고부가가치 철강 완제품 생산기업이 올 수 있도록 파격적 인센티브 제공 등의 시책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협력업체를 통한 고용 창출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는 여성 일리자리 부족이라는 포항의 고질적 문제도 그나마 어느 정도는 해결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서둘러야 한다. 위기는 극복해야 하며 해결 방법은 여러갈래가 있다. 평생을 철강언저리에서 살아 온 필자가 생각할 때 지금 우리 철강분야에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을 통한 축소가 아닌 질적 전환을 통한 재도약이다. 철강산업이 다시 한 번 국가 경제의 버팀목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구조적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익현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2026-01-20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기업혁신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유교의 핵심 경전 7권을 묶어 부르는 말로, 개인의 수양에서부터 가정, 조직, 국가 운영의 원리까지 담고 있는 동양 전통 사상의 근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출발해 ‘조직과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는가‘까지 답하는 동양 최고의 경영·인문 고전이다. 많은 기업이 새 해가 되면 신년사나 취임사, 경영전략 등에서 혁신을 말한다. 스마트팩토리, AI, 자동화, ESG 경영까지 구호는 넘치지만 성과는 미미하고 오래가지 못한다. 수십 년간 반복된 이 실패의 원인을 최신 기술이 아니라 2000년 전 고전인 사서삼경에서 찾아보면 의외의 답이 보인다. 대학(大學)은 조직운영의 기본 구조를 제시한다. ‘명명덕(明明德), 사람 안에 양심·도덕성·인간다움을 깨우고 드러내는 것, 신민(新民), 타인과 사회를 함께 새롭게 성장시키는 것으로 인재육성, 조직문화 혁신, 고객가치 창출, 지어지신(止於至善), 가장 선한 경지에 이른다. 일시적 성과가 아닌 궁극적·지속적 완성 상태를 추구‘라는 삼강령(三綱領)과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이어지는 팔조목(八條目)은 혁신의 단계적 논리다. 오늘날 제조 혁신 언어로 바꾸면,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것으로 현장 문제를 정확히 보고, 치지(致知), 앎을 극진히 하는 원인을 규명하며, 성의(誠意), 뜻을 성실히 수행하는 진정성 있는 실행 의지를 세우고, 정심(正心), 사사로운 감정·편견을 배제한 공정한 판단, 수신(修身), 리더의 자기관리와 역량강화로 먼저 변하며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는 과정이다. 많은 기업이 격물과 치지를 건너뛰고, ‘치국‘, 즉 전사 혁신 선포부터 시작한다. 자사가 처한 대내외 상황 분석을 토대로 비전을 설정하고, 목표를 정하는 준비과정 없이 혁신 경영을 선포하는 것은 예고된 실패 결과다. 중용(中庸)은 혁신이 왜 지속되지 않는지를 정확히 짚는다. 중용은 타협이 아니라 최적의 균형이며, 일상 속에서 끊임없는 실천함이다. 제조 현장에서 중용은 품질, 원가, 납기, 안전 중 하나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것이며, 이벤트 혁신이 아닌 매일의 표준 준수와 작은 개선의 축적이다. 논어(論語)는 사람이 근본이며, 인(仁), 예(禮), 신뢰, 리더의 언행일치를 말한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처럼 사람을 단순한 도구로 대하는 조직에서 혁신은 자라지 않는다. 법과 처벌은 한계가 있고, 제도보다 인간의 마음이 중시될 때 자발적 동기부여가 된다. 맹자는 민본(民本)사상, 정의와 공정을 말한다. 현장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에 맞추고, 납득되지 않는 운영 제도와 평가 체계는 단기 성과는 가능하나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제조기업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원칙, 그리고 지속성이다. 대학은 혁신의 방향을, 중용은 혁신의 균형과 지속성, 논어와 맹자는 혁신의 인간적 토대를 제시한다. 고전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제조 혁신이 잃어버린 가장 근본적인 경영 교과서가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1-20

마스크 너머의 호흡

코로나라는 이름의 긴 계절을 우리는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건너왔다. 마스크는 어느새 외출을 위한 준비물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졌고 숨을 쉰다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조차 의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차 키와 휴대폰을 챙기듯 마스크를 집어드는 손놀림은 무심했고 자동적이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불편함이라 부를 새도 없이 우리는 하루를 살아냈다. 삶이란 대체로 그런 것이어서 견뎌야 할 것들은 늘 습관의 얼굴로 다가왔다. 마스크 안에서의 숨은 언제나 조금씩 모자랐다. 깊게 들이마셔도 폐 끝까지 닿지 않는 느낌, 내 숨이 다시 내 얼굴로 되돌아와 맺히는 습기, 말소리가 마스크에 걸려 흐릿해지는 순간들. 그러나 그 답답함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 시절 불평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모두가 같은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연대감을 만들었고 그 연대는 우리를 하루하루 앞으로 밀어냈다. 어느 순간, 마스크에서 해방되었다. 얼굴을 가린 막을 벗는 일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는 것, 공기가 폐로 곧장 흘러들어온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우리는 자유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깐의 해방감을 누렸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야 하늘의 높이를 실감하는 것처럼. 하지만 삶은 늘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최근 수업을 받던 아이가 독감에 걸렸고 다시 마스크를 꺼냈다. 둘 다 마스크를 쓴 채 마주했다. 예전보다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천이 두꺼워진 것도, 공기가 더 나빠진 것도 아닌데 유독 갑갑했다. 한 번 맛본 해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불편에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자유를 경험한 뒤의 제한에는 더 예민해지는 존재였나 보다. 마스크 너머로 아이의 눈만 보였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고 말소리는 마스크 안에서 부서졌다. 숨소리와 숨소리가 천을 사이에 두고 섞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문득 우리가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가린 채 살아왔던가. 서로의 표정에 어린 온기를 완전히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안도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답답함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들 때문에 더 답답해진 것인지 쉽게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마스크를 쓰고 지나왔다. 숨이 가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갔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금씩 희생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고 지금의 공기를 신선하게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을 삼키고 마음을 숨기며 숨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 답답함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필수적 거리다. 마스크는 얼굴에 붙어 있는 굴레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시적인 태도다. 견디지 않고서는 다음 계절로 갈 수 없고 더 넓은 호흡을 얻을 수 없다. 마스크는 영원한 감옥이 아니라 성숙을 향해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마쳤고 아이를 보낸 후 차가운 공기를 맞았다. 숨이 깊어졌다. 우리의 호흡은 당연하기 보다는 지나온 답답함의 총합이라는 것. 자유는 견딤의 반대편에서 비로소 도착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 또 다른 형태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숨이 막히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호흡을 되찾았다. 마스크 너머의 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 시간들이 남긴 사유는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문다. 숨이 막힐 때마다 그 끝에는 다시 맑은 공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간다. 삶은 늘 그렇게 답답함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깊은 호흡을 허락한다. /김경아 작가

2026-01-20

음악은 감정의 보편적 언어

언어는 현대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지만, 음악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소리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고, 이는 문화별로 체계화되어 언어와 음악으로 분화되었다. 두 매체는 소리를 통해 소통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언어만으로는 감정을 완전히 전달하기 어려워 때로는 음악이 그 빈틈을 메운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면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되고, 일부 감정은 언어만으로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국적, 언어, 세대를 초월해 감정을 전달하는 보편적 언어로 작용한다. 가사 없는 클래식이나 영화 음악에서도 우리는 슬픔, 기쁨 등 뚜렷한 감정을 경험한다. 느린 템포와 낮은 음역은 고요함이나 슬픔을, 빠른 리듬과 밝은 화성은 설렘과 희망을 각각 연상시키는데, 이는 음악이 청자의 감정을 직접 자극하는 구조적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나 드뷔시의 ‘Rêverie’에서는 편안함 속의 우울이 느껴지고,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에서는 환희와 인간 존엄의 정신이 전달된다. 반대로 슈베르트의 ‘마왕’이나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에서는 긴장과 공포, 긴박한 서사가 음악적으로 구현된다. 음악의 이러한 영향력은 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음악을 들을 때 인간의 뇌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활성화되고, 기쁨을 느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증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로 위로받지 못할 때 음악에서 위안을 얻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음악을 통해 대신 경험한다. 음악이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이해가 아니라 공감에 있다. 역사적으로도 음악은 감정을 공유하는 도구로 기능해 왔다. 전쟁 중에는 군가가 두려움을 하나로 묶었고, 장례식에서는 애도의 음악이 슬픔을 함께 나누게 했다. 오늘날에도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콘서트장에서 같은 음악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서로의 언어는 달라도 감정은 음악을 통해 충분히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사의 초기에는 성악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는 음악에 언어가 포함되는 것이 당연했고, 기악은 ‘공허한 울림’이나 ‘소음’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점차 가사에 종속되지 않고 음악 자체의 논리로 감정과 사유를 표현하고자 하였고,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 기악음악의 힘은 강화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세기 감정미학은 음악을 이성을 초월한 세계를 드러내는 예술로 평가하였다. 니체는 음악을 무개념적 예술로 보았고, 바퇴는 음악을 ‘심장의 언어’라 불렀다. 쇼펜하우어 역시 음악을 세계를 능가하는 보편적 언어로 규정하며, 음악이 감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청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결국 음악은 인간 내면의 감정을 끌어내고 공유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듣는 행위는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개인을 넘어 집단적 공감을 형성한다. 음악은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게 하고,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게 만드는 인간의 가장 깊고 오래된 언어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1-20

포항, 글로벌 AI 심장으로 새로운 100년을 열다

지난 1월 19일 이강덕 포항시장은 광명일반산업단지에 조성 중인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현장을 방문해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총사업비 2조 원 규모로 3월 착공해 2027년 상반기 운영을 목표로 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포항의 미래 100년을 결정짓는 게임 체인저이다. 반세기 동안 ‘철강보국’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포항이 이제 AI와 첨단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철강 일변도의 산업구조, 청년 유출, 원도심 공동화라는 삼중고 속에서 포항은 지금이야말로 항로를 완전히 재설계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오픈AI와 삼성그룹, NeoAI Cloud가 포항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포항은 AI 데이터센터 건립의 ‘최적 3박자’를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포스텍과 한동대를 중심으로 한 우수한 이공계 인재, 3·4세대 방사광가속기, 극저온 전자현미경, 로봇융합연구원 등 타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첨단 연구개발 기반이 있다. 경북도의 전력 자립률은 262%로 전국 1위를 기록하며, 울진 원전과 연계된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망은 24시간 가동되는 AI 데이터센터의 필수 요건을 완벽히 충족한다. 철강·이차전지·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 현장에서 쏟아지는 고급 데이터는 AI 연구개발의 핵심 연료가 되어 신소재와 신약 개발 등 고부가가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것이다. 포항의 재도약을 위해 두 개의 명확한 성장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수소트램 구축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다. TX포항역에서 구도심을 거쳐 철강산단까지 연결되는 친환경 수소트램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침체한 구도심에 사람의 흐름을 되살리고, 죽도시장과 중앙상가를 다시 활기차게 만들 핵심 인프라다. 기존 도로와 철도 부지를 활용한 지상형 트램으로 사업비와 공사 기간을 최소화하며, 구도심에는 트램 순환역과 도심복합환승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해병대회관 유치다. 포항은 6·25전쟁 당시 학도병의 희생으로 지켜낸 도시이며, 해병대의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해병대회관을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해 국방관광과 지역 정체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이 두 축은 단절된 공간과 기능을 다시 연결해 포항에 지속 가능한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 전략이다. AI 데이터센터와 함께 오천 해병대 사격장과 전차대대 부지를 활용한 로봇·방위산업특구 조성도 추진해야 한다. 이곳을 무인·로봇 전투체계와 AI 기반 국방 플랫폼의 실증 거점으로 육성하고, 광명산단 AI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첨단 국방융합 산업단지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중입자 치료센터를 설립해 암 치료를 위해 서울로 떠나던 시민들이 포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방사광가속기 기술과 포스텍 의과학대학 설립을 연계해 포항을 바이오·의과학 혁신 도시로 도약시켜야 한다. 울산권 제조기업 유치, 철강산업의 친환경·고부가가치화, 해오름 동맹을 통한 초광역 혁신창업 생태계 구축으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다.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청년이 돌아오며, 청년이 머물면 도시는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특히 포항시 조직에 경제·산업·투자유치를 총괄하는 ‘경제부시장’을 신설하고, 기업투자국과 혁신산업국으로 분리해 투자유치 전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안승대 전 울산시 행정부시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20

문명의 몰락이 우리에게 던지는 침묵의 질문

아마존 정글에서 돌아온 다음 날, 몸은 휴식을 원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쿠스코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웅장한 대성당 석벽과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도시는 여전히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리마와 키토에도 같은 이름의 광장이 존재한다. 스페인 식민 시대, 도시 건설 당시 가장 먼저 조성된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르마스(Armas)’는 무기를 의미한다. 군사 훈련과 권력의 상징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대성당과 주교관, 통치 기관이 위치했다. 신과 칼, 믿음과 권력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그 이전 시대의 흔적 또한 간직하고 있다. 광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잉카 시대의 돌벽들이 곳곳에 말없이 서 있다. 손바닥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이 정교하게 맞물린 거대한 석벽 앞에 서면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문명을 아로새겼다. 말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벽이다. 잉카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제국을 통치했고, 도로를 건설하고 농업을 체계화하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여전히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문명은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붕괴했다. 마지막 황제의 죽음 이후 벌어진 형제간 권력 투쟁은 제국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내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낯선 언어와 무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외부 세력이 국경을 침범했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Pizarro)의 총칼은 이미 균열이 깊어진 제국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잉카의 몰락은 비극적이지만,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소통이 단절되고 신뢰가 무너질 때, 그 어떤 공동체도 오래 존속할 수 없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의 한계는 과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 역시 말은 넘쳐나지만, 진정한 소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듣기를 거부하는 귀, 확인하려 하지 않는 마음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도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 잉카를 붕괴시킨 것은 외부의 침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부 분열은 언제나 가장 파괴적인 요인이다. 공동체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는 선택, 미래보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판단은 제국을 내부로부터 갉아먹었다. 이는 과거 문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조직,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는 변화에 대한 자세이다. 잉카는 자신들의 방식이 완벽하다고 맹신했고, 외부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과 전략, 질병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문명은 결국 쇠락했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거부된 변화는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이 대목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떠오른다. 그는 잉카 제국의 멸망 원인을 특정 민족의 열등성이나 단순한 패배에서 찾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총과 쇠와 같은 군사 기술, 가축과의 공존을 통해 얻게 된 면역력, 그리고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역사는 개인의 역량보다 환경과 구조적인 차이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쿠스코의 돌벽 앞에 다시 서면, 또 다른 진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총, 균, 쇠와 같은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더라도 내부 결속력이 강했다면 몰락의 시기를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환경은 특정한 조건을 형성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공동체의 내적인 결속력과 성숙도에서 비롯된다. 쿠스코의 돌벽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은 텅 비어 있지 않다. 그 침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변화에 대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르마스 광장을 떠나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다.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잉카의 침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문명의 몰락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쓰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돌벽은 말이 없고, 시간은 흐른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잉카의 침묵은 질문이 되어,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린다.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는가? 넘쳐나는 말들 속에서 진실을. 개인의 욕망에 가려진 공동체의 외침, 외면하지 않았는가? 변화의 바람 앞에, 굳게 닫힌 문은 쇠락을 부른다. 총, 균, 쇠,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의 분열이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오늘, 우리는 어떤 문명을 써 내려갈 것인가?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1-20

권력과 정의

‘권력’과 ‘정의’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당위적으로는 ‘권력이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이 정의를 왜곡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파스칼(B. Pascal)이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갈파했듯이, 권력정치에서는 ‘권력과 정의의 동행’, 즉 ‘정의로운 권력 행사’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정의와 동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은 마약’과 같고, 마약에 취한 권력이 ‘정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왜곡’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말하는 정의는 이념적 성향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정의’로서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적 정의관’이 지배하는 권력의 세계에서 ‘정의는 강자의 전유물’이 되고 약자의 정의는 무시됨으로써 ‘정치는 전쟁’이 된다. 정의는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공리주의·자유주의·공동체주의 등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을 둘러싸고 끝없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물론 권력 자체는 정의도 불의도 아닌 중립적 개념으로서 천사 또는 악마가 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권력은 그 속성상 천사보다는 악마가 될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권력을 잡으면 ‘기존의 정의’를 뒤집고 ‘권력을 위한 정의’를 새로 만들어 ‘정의를 독점하는 정치’를 강행함으로써 ‘독재라는 괴물’이 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야의 정치행태는 과연 정의로운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정부여당은 정의부(ministry of justice: 사법부)를 겁박하고 법을 개정하여 삼권분립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으로 권력남용을 막고 정의를 수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무력화되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정의를 위하여 사법부를 개혁하겠다는 권력의 주장은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위한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야당의 권력 행사는 또한 어떤가?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야당의 책임이 막중한데, 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을 반성하고 혁신할 줄 모르니 앞날이 캄캄하다. 비상계엄이라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로 정권을 잃었으면서도 당 윤리위원회는 오히려 계엄을 막았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였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여당을 견제하기는커녕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야당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국민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은 그 속성상 스스로 정의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식인·언론·시민사회 등 깨어있는 주권자들이 두 눈을 더욱 부릅떠야 한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인간의 양면성’이요 ‘권력의 속성’임을 인식하고, 힘이 정의를 지배하지 않도록 정의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오직 정의로운 권력만이 나라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1-19

편견

사람들은 편견 속에서 허덕인다. ‘그럴듯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정의라는 가면을 쓴 채, 괴로움이라는 달갑지 않은 속을 품고 있는 것이 편견이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충분한 근거 없이, 개인의 경험, 감정, 선입관에 따라 사물이나 사람을 한쪽으로 치우쳐 판단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두 가지, ‘공정하지 못하다’와 ‘한쪽으로 치우치다’ 개념 중,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다’ 에 이르면 편견이라는 개념의 속내가 복잡해진다.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편견 속의 괴로움을 들추기 전에, 공정하다는 것이 공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지 잠깐 살펴보자. 최근의 존 롤스, 로버트 노직, 마이클 샌달과 그 이전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임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고전 철학자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했으나, 시대적·맥락적 한계로 인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찾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이들의 정의에 관한 개념들은 그때는 맞았더라도 지금은 틀리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편견의 한 조건’은 사전적 의미에서 제거되어야 할지 모른다. ‘공정하지 못함’이라는 조건을 편견의 세계에서 제거하면, 남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침’이다. 사실, 어떤 견해이든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것은 견해가 갖는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다. 고로, 모든 견해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 견해가 비록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것은 편견이 되는 것이다. 견해는 드러내는 순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고, 편견이 되는 것이다. 이런 편견이 왜 괴로움이 되는가. 그것은 치우침의 ‘계속됨’ 때문이다. 견해 자체가 어떤 조건 지워진 상황에서 ‘일시적 치우침(견해)’이면, 그것은 편견이 아니라, ‘지혜’일지 모른다. 한번 멋지게 써먹고 버리면 그만인 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는 일이 허다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견해가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때, 편견은 ‘지혜라는 가면을 쓴 집착’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바른 견해일지라도 견해에 대한 집착이 계속되어 다른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견해는 괴로움이 되어, 나를, 나의 주변을, 힘들게 한다. 세상 만물이 변화하고 흐른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간사의 기본 도리이다. 노자의 ‘상선약수’,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그러하다. 고정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편견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지나 않은지. 편견 속에서 허덕이고 있지나 않은지. 편견의 노예가 되어 오늘도, 내일도, 여기서, 저기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밤낮없이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있지나 않은지. 하지만, 잊지 말자. 내가 쏜 편견이라는 분노의 화살은 상대에게 도달하기 전에 나의 심장을 먼저 관통한다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2026-01-19

불안을 넘어서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은 인간 존재의 그림자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며, 미래를 대비한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삶의 질을 높이고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불안과 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불의의 사고는 한순간에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결국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보다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안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한편으로 불안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신호이기도 하다. 불안이 없다면 미래를 대비할 이유도, 현재를 소중히 여길 동기도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건강한 삶의 출발점이다. 불안을 극복하려면 우선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낳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성숙한 이해다. 다음으로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다. 불안과 근심의 상당 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내일의 병과 사고, 노후의 불안까지 미리 끌어안고 오늘을 소진한다면 삶은 끝없는 걱정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감동과 기쁨, 일상의 노동과 휴식에 집중할 때 불안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 세 번째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모든 불안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할 때 불안은 견딜 수 있는 무게로 바뀐다. 건강한 공동체는 개인의 불안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삶은 불안에 잠식된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스스로 묻게 된다. 거기에서 내면의 힘과 회복탄력성을 길러진다. 건강한 삶이란 불안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함 속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는 노력은 계속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담대해져야 한다. 불안과 근심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계기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더 단단해지며, 더 인간다운 삶에 다가간다. 완벽하게 안전한 삶은 없지만,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고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삶은 가능하다. 근심의 안개 너머에도 여전히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내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딛는 정직한 한 걸음이다.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고 진정으로 건강한 생을 영위하는 길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1-19

위기의 포항, 경륜의 리더십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판단과 미숙한 처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경고다. 위기일수록 실험적 접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지금 포항이 처한 현실이 바로 그렇다. 위기의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라 검증된 해법이며, 경험 없는 처방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축적된 경륜이다. 지금 포항이 맞닥뜨린 위기의 중심에는 철강산업이 있다. 철강산업은 포항 경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기반이다. 철강산업의 침체는 단순한 업종 부진을 넘어 협력업체와 자영업, 고용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포항의 상당수 기업이 경영 압박에 직면했고, 이는 소비 위축과 지역경제 전반의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 경기 침체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도시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다. ◇기업의 위기는 기업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이 여파는 도심 상권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중앙상가를 비롯한 구도심 상권의 공실률은 30%를 넘고 있다. 공장 가동률 저하와 협력업체의 연쇄적인 경영난, 고용 불안이 겹치면서 포항의 경기는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풀 것인가다. 기업의 위기는 기업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현장의 사정을 모른 채 탁상공론에 머문 정책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 ◇긴급 경제 전략, 선택과 집중이 해법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필자는 얼마 전 ‘3·3·3 긴급 경제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단기적으로는 긴급 투자를 통해 산업과 기업의 숨통을 틔우고, 중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철강산업 정상화다.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자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해 부지 조성과 기반 구축, 수소환원제철 실증 사업과 에너지 전환 사업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 ◇실험이 아닌 검증, 경륜 있는 리더십이 위기를 넘는다 산업 회복과 함께 도시 구조의 전환도 병행돼야 한다. 블루밸리 국가산단과 영일만 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워터랜드 구상과 영일만 백리길 순환 힐링 로드를 통해 바다와 도시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질 때 중앙상가와 죽도시장 같은 구도심 상권도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 지금 포항의 위기는 개별 정책이나 단편적 처방으로 해결될 수 없다. 기업이 살아야 포항이 산다. 선무당식 실험이 아니라 기업을 알고 기업과 함께 숨 쉬어 본 경험, 타고난 추진력과 검증된 전략을 갖춘 지도자의 경륜만이 위기의 포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공원식 전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19

끊어야 할 악습 ‘공천 헌금’

‘헌금(獻金)’이란 특정 대상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걸 의미하는 단어. 그 앞에 ‘공천’이 붙으면 자신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해달라며 건네는 공천 헌금이 된다. 금전으로 벼슬자리를 팔고 사는 행위는 ‘매관매직’이라 칭하며,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악습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민주주의사회에서 이런 행태를 보여선 곤란하다. 선거 출마를 위해 힘 있는 권력자에게 몰래 거액을 전달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악습이 여전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당을 떠났다. 탈당의 이유는 공천 헌금을 수수했다는 의혹 탓이었다. 이에 앞서 언론사들은 강선우 의원 측이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는 정황을 녹취와 함께 보도했다. 파문은 갈수록 커졌고 결국 서울경찰청의 수사가 시작됐다. 이 사태와 관련해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19일 자신의 SNS에 공천 헌금 관련 글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홍 전 시장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04년에도 공천 헌금이 공공연히 오갔으며 그때 ‘(공천 헌금은) 광역의원은 1억 원, 기초의원은 5000만 원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홍 전 시장은 “지방의원,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는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사실상 공천권이 전속적 권한으로 되어있는 각 당의 공천 구조와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했다. 돈을 주고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자리에 오른 이들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까? 분명 지역민은 아닐 것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9

공중전화 부스

얼마 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었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무엇이냐고. 혹시나 다른 답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누구나 똑같은 대답이다. 휴대폰이다. 우리나라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다. PCS의 도입으로 요금이 크게 낮아지면서 가속화가 되어 십대나 이십대에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당시는 통화시간, 문자 메시지 건당 별도의 요금이 부과되었다. 지인의 아들은 그 당시 학생이었다. 새로 사귄 여자 친구는 휴대폰이 있었다. 매일 저녁 집전화기로 그 친구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하루의 일들을 주고 받았다. 한 달 후 나온 전화요금에 아들은 얼굴이 노랗게 질렸다. 엄마도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려 160만원의 전화요금이 부과된 것이다. 초창기에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라져버린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삐삐와 공중전화다. 전화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때에는 거리 곳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 사람들은 동전을 바꾸고 부스 앞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부스 안 사람의 통화가 길어지면 밖의 길은 점점 더 길어졌다. 참지 못한 사람이 부스를 두드려가며 빨리 통화 좀 끝내라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가끔 길을 걷다보면 아직도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옛날의 그 바쁨은 휴대폰에 밀려 찾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덩그렇게 놓여 먼지가 쌓여가는 모습이 왠지 측은하다. 사용처를 잃어버린 것들은 한때의 활발함은 사라지고 거기에 있는지조차 잊혀지고 있다. TV를 보다보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기존 개념을 깬 행보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주로 쏘아 보내던 기존의 로켓은 천문학적인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회용이었다. 이 회사의 로켓은 다회용이다. 한 로켓은 올해 31번을 재사용했다.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경쟁 회사조차도 위성을 쏘기 위해 이곳에 의뢰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스타링크라는 것도 한국에 들어왔다. 우리가 쓰는 휴대폰은 기지국이라는 것을 세워 통신을 하는 시스템이다. 기지국 하나를 세우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 스타링크는 위성을 이용하는 것이라 기지국과 상관없이 지하든, 바다든, 동굴이든 어느 곳에서도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5년 이내에 통신사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삐삐나 공중전화가 없어지듯이 기지국이 사라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라짐이 아쉬운 것은 기계를 새로 배워야 한다거나 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물건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던 많은 추억과 기억이 함께 소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중전화에 얽힌 사연이 한 가지쯤은 있지 않을까.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없는 듯 덩그렇게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몇 번을 지나쳐가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우리 과거의 이야기들이 함께 스러져가는 것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스쳐 간다. 한 때는 사회의 주 구성원으로 젊음과 열정을 불태웠던 우리의 남편, 이웃들이 일선에서 물러나 널널해진 시간과 적막 앞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있는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할지 예측이 어렵다고들 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지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날지도 모르는데 그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추억과 기억들은 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 손 안에 여전히 쥐어져 있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한 몸처럼 함께 움직이는 휴대폰도 어느 날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이미 서랍 속에 존재도 희미하게 드러누워 있는 구형의 휴대폰처럼 말이다. 휴대폰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들은 또 어디론가 사장되어 버릴 것이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던 전화번호와 사진 등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더듬고 있을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1-18

AI에게 말 거는 법 - 프롬프트, 질문이 답을 결정한다

지난주, 우리는 AI가 패턴을 학습해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주에는 인공지능(AI)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즉 ‘프롬프트(Prompt)’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큰 차이를 갖는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자. 포항 영일대 카페의 작은 발견 영일대 해수욕장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 사장은 최근 ChatGPT로 SNS 홍보 문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물었다. “카페 홍보 글 써줘” AI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 카페에 오세요.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있습니다. 많이 방문해 주세요.” 너무 평범했다. 어느 카페든 쓸 수 있는 뻔한 문구였다. 실망한 박 사장은 AI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 손님이 조언했다. “사장님, 구체적으로 물어보세요. 카페 위치도 말하고,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도 알려주세요.” 박 사장이 다시 물었다. “포항 영일대 해변이 보이는 카페의 인스타그램 홍보 글을 작성해 줘. 30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감성적이고 따뜻한 톤으로, 오션뷰와 수제 케이크를 강조하면서 100자 이내로 써줘.” AI의 답변이 확 달라졌다. “파도 소리 들으며 마시는 커피라떼 한 잔, 영일대 일몰이 창밖 가득, 오늘 구운 수제 케이크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바다가 주는 여유, 우리 카페에서 느껴보세요 #영일대 카페 #포항 감성 #오션뷰” 같은 AI인데 질문을 바꾸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롬프트의 힘이다. 프롬프트, 도대체 뭔가? 프롬프트는 AI에게 주는 구체적 명령문으로, 패턴 기반의 AI가 정교한 답변을 생성하도록 유도한다. 템플릿을 활용해 반복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카페 홍보”라는 막연한 패턴에서는 일반적인 답변을 생성한다. 하지만 “포항”, “영일대”, “30대 여성”, “감성적”, “100자”라는 구체적 패턴을 제시하면 훨씬 정교한 답변을 만들어낸다. 좋은 프롬프트의 5가지 조건 AI 프롬프트 전문가들이 수많은 실험과 연구 끝에 발견된 좋은 프롬프트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구체성 (Specific) 막연한 질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나쁜 예: “포항 관광 소개 글 써줘” 좋은 예: “포항 호미곶 해맞이 광장을 처음 방문하는 40대 가족 여행객을 위한 관광 안내 글을 200자로 써줘. 주차 정보와 인근 맛집도 포함해 줘.” 2. 맥락 제공 (Context) AI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나쁜 예: “사과 편지 써줘” 좋은 예: “고객에게 배송 지연 사과 편지를 쓰려고 해. 우리는 포항의 과메기 온라인 쇼핑몰이고, 택배사 파업으로 3일 지연됐어. 정중하지만 친근한 톤으로 150자 정도로 써줘.” 3. 역할 부여 (Role) AI에게 어떤 전문가 역할을 부여하자. 나쁜 예: “경영 조언해 줘” 좋은 예: “당신은 20년 경력의 소상공인 컨설턴트야. 포항에서 전통시장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데 매출이 줄고 있어. 온라인 진출 전략을 3가지만 추천해 줘.” 4. 형식 지정 (Format) 원하는 답변 형식을 명확히 제시하라. 나쁜 예: “포항 맛집 알려줘” 좋은 예: “포항 맛집 5곳을 표로 만들어줘. 열은 ‘식당명’, ‘대표메뉴’, ‘가격대’, ‘특징’으로 구성하고, 각 특징은 한 문장으로 요약해 줘.” 5. 예시 제공(Example) 원하는 스타일의 예시를 보여줘라. 나쁜 예: “블로그 글 써줘” 좋은 예: “다음 예시처럼 포항 호미곶의 일출 경험을 블로그 글로 써줘. [예시: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호미곶 해맞이 광장.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같은 요청, 다른 결과를 실전 사례를 통하여 비교해 보자. 사례 1: 이력서 자기소개서 작성 나쁜 프롬프트 사례 : “자기소개서 써줘” 결과: 누구나 쓸 수 있는 뻔한 문구. “저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프롬프트 사례 : “포스코 공채에 지원하려는 20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써줘. 나는 ○○대학 기계공학과 졸업생이고, 학부 시절 철강 재료 연구실에서 2년간 인턴 경험이 있어. 협업 능력과 문제 해결 경험을 강조하면서 300자로 작성해 줘.” 결과: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내용. “ ○○대학 재료 연구실에서 철강 미세조직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례 2: 블로그 상품 리뷰 나쁜 프롬프트 사례 : “과메기 소개 글 써줘” 결과: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여 만든 경북 지방의 전통 음식입니다. 좋은 프롬프트 사례 : “포항 과메기를 처음 먹어본 서울 사람의 시점에서 블로그 후기를 써줘. 놀랐던 점은 비린내가 전혀 없고 쫄깃한 식감이었다는 것. 각종 채소와 김, 미역, 마늘과 파 등을 함께 쌈으로 먹는 방법도 소개하고,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톤으로 400자 정도로 써줘.” 결과: 생생하고 공감 가는 후기. “솔직히 비릴 줄 알았는데, 첫입에 놀랐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에···.“ 프롬프트 서식 즉 템플릿(Template) 활용하라 프롬프트를 매번 처음부터 만들 필요는 없다. 자주 쓰는 작업은 서식 즉, 템플릿을 만들어두면 편리하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알아보자. 템플릿 1 : 업무 이메일(e-mail) 작성용 “[받는 사람의 직책]에게 보내는 [목적] 이메일을 작성해 줘. 내용은 [핵심 내용], 톤은 [정중함/친근함/격식], 길이는 [○○자]로.” 템플릿 2 : 마케팅 카피 제작용 “[제품/서비스]를 [타깃 고객]에게 홍보하는 [SNS 종류] 게시글을 써줘. [핵심 메시지]를 강조하고, [감성적/유머러스/전문적] 톤으로, [○○자] 분량으로.” 이렇게 서식 즉, 템플릿을 만들어두면, 괄호 안만 바꿔가며 반복 사용할 수 있다. 질문의 창의성이 AI 활용의 한계를 결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AI시대에는 답을 아는 것보다 질문을 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포항 인구가 몇 명이지?”라는 답을 아는 사람이 유능했다. 이제는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포항 인구 감소 추세를 분석해서, 지역 소상공인이 대비할 수 있는 전략 3가지를 제안해 줘. 전략마다 실행 난이도와 예상 효과도 평가해 줘”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질문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쓸지,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우리의 질문에 달려 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과메기를 파는 김 사장이 “우리 가게 홍보 글 써줘”라고 물으면 평범한 답만 나온다. 하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귀성객들이 포항 특산물을 찾을 때, 과메기 선물 세트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SNS 광고 문구를 써줘. 건강과 전통을 강조하면서, 40~50대를 대상으로 해시태그 3개 포함해서 120자로”라고 물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연습이 실력을 만든다 프롬프트 작성도 기술이다. 처음에는 서툴러도 연습하면 늘어난다. 같은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바꿔가며 시도해 보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또한, 결과를 비교하면서 어떤 프롬프트가 더 나은 답을 끌어내는지 관찰하자. 처음에는 “블로그 글 써줘”였다가, 다음에는 “300자 블로그 글 써줘”가 되고, 그다음에는 “30대 여성을 위한 포항 여행 블로그 글을 감성 톤으로 300자 분량으로 써줘”가 된다. 이렇게 조금씩 구체화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프롬프트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질문이 답을 결정한다 AI시대의 핵심은 같은 AI를 써도, 누구는 평범한 결과를 얻고 누구는 놀라운 결과를 만든다. 그 차이는 질문에 있다. 박 사장의 카페는 이제 매일 새로운 SNS 콘텐츠로 가득하다. “카페 홍보 글 써줘”가 아니라 “영일대 일몰을 배경으로 한 감성 카페 콘텐츠를 인스타그램 캐러 셀 형식으로 3장 구성해 줘. 첫 장은 오션뷰, 둘째 장은 수제 디저트 클로즈업, 셋째 장은 행동 유도 문구”라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AI는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질문은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1-18

부자들의 비밀금고

198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도(大盜) 조세형은 서울의 부잣집 금고에서 수백억원의 현금과 금품을 훔쳐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시민들은 그의 대담한 도둑질에도 놀랐지만 한편으로 서울의 부자들은 은행이 아닌 집안 금고에 이렇게 많은 돈과 귀중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쇼크를 받았다. 우리나라 부(富)의 대부분이 서울에 집중된 탓인지 서울 부자들의 금고 이야기는 꾸준히 우리 사회에 회자돼 왔다. 요즘은 가정집 금고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 아예 가구처럼 매립된 사례도 등장한다고 한다. 장롱 속에 숨겨진 금고나 그림 액자 뒤편에 숨겨진 금고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가정마다 금고에 보관해야 할 개인 소중품이 늘어나 금고를 비치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집안 주요 문서나 보험증서, 비상금, 심지어 배냇저고리, 태아초음파 사진 등도 보관하는 가정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집안에 금고를 비치한 가정이 유난히 많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는 쓰나미에 떠내려오거나 주택 잔해 속에서 발견된 금고가 경찰서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일본은행의 낮은 금리와 은행 가기를 꺼리는 노인가구가 많기 때문이라 한다.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김 의원의 개인금고 확보에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소식이다. 경찰은 김 의원 부부가 귀중품을 보관했다는 금고에서 범죄를 입증할 증빙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 부자나 권력가의 비밀금고도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때로는 세상에 알려지기도 한다.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된다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8

참새를 위한 변명

경산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청도로 이사한 지 어언 1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도회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들어온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 가운데 하나가 층간 소음이다. 10층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소년이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불러서 거실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언젠가 아이 엄마한테 그런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애들이 다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경험한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뇌리에 삼삼하게 각인돼 있다.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지만, 이런 절정 고수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때 나는 굳게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한 촌에 층간 소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다른 형태의 층간 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에스파냐 기와를 얹은 나의 소담한 지붕에서 일어났다. 기왓장 사이마다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키우면서 잠꼬대하며 몸을 뒤틀거나, 기왓장 아래 나무판을 발톱으로 긁거나, 새벽마다 자기네 기상을 알리는 것이다. 햐, 이런 층간 소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그런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일부 식견 놓은 건축주는 기왓장 틈새를 완벽하게 막는 시공법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참새는 천적을 피해 인가 부근에 둥지를 트는 인간 친화적인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는 참새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말에 ‘참’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좋은’, ‘진정한’, ‘우수한’의 의미다. 참나리, 참깨, 참나물 같은 어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참새에 이르면 나는 생각이 썩 달라진다. 아무 곳에나 똥오줌 내갈기고,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새벽잠을 깨우고, 여기저기 솜털이며 깃털을 날리는 불결하고 요란한 작은 조류에 지나지 않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무엇보다 우두머리 참새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그러지곤 한다. 사람을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언짢은 심사가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참새의 ‘참’자는 풍자(諷刺)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놀라운 발상의 소유자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의 참새가 무상-무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는 아직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요즘 농촌에는 완벽히 사라진 허수아비의 추억도 참새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문화혁명 시기 모택동의 지시로 3억 마리 이상의 참새를 잡아 죽인 까닭에 해충이 들끓어 식량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그만큼 참새는 인간과 가까운 조류다. 세상에 ‘나’에게만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만 좋은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과율에 따라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와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을 되풀이한다. 일방적인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는 없다. 참새를 위한 어느 인간의 소박한 변명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8

포항, 이제는 광역철도 시대로 가자!

“국장님, 포항에 광역철도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까?” 2022년 10월 21일, 제299회 임시회 건설도시위원회 정책 질의에서 필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최근 지난 4년여 동안 의회에서 ‘철도’와 ‘트램’을 언급한 속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시정 질문과 위원회 정책 질의 곳곳에 남아 있는 기록을 읽으며, 그 시간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건설도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포항의 광역철도망 구축 필요성을 포함해 포항·수서행 고속철도 도입, 포항역 주차장 확충문제, 트램 도입의 문제 등을 꾸준하게 제기했다. 지적한 내용 중 포항·수서행 고속철도는 실제 도입되었고, 포항역 주차장 확충 역시 유휴부지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현재 추진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사안은 ‘트램 도입’이었다. 2023년 12월 제311회 정례회 건설도시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트램 도입 관련 용역 3억 원’에 대한 집중 질의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집행부는 포항에 트램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용역이라 설명했지만, 위원회에서는 공통적으로 “시기상조이며,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냈다. 당시 담당 국장은 “일단 용역을 한번 해보고 판단하자”라는 취지로 설명했고, 트램 관련 기업을 직접 방문했다는 발언도 했었다. 열변을 토하던 국장에게 “국장님, 트램 회사에서 나왔습니까?”라고 되묻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결국, 해당 용역비 3억 원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전액 삭감되었다. ‘일단 해보자’라는 말은 가벼웠지만, 시민의 혈세 3억 원은 절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램 도입을 반대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현행법상 포항 도심에 트램등 도시철도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안전법에 따라 철도보호지구는 경계선에서 30m, 도시철도법상으로는 10m가 설정돼 행위제한을 받게 된다. 만약 죽도시장 일대에 트램이 들어서면, 기존 4차선이 2차선으로 좁아져 교통대란은 불가피하다. 또 철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사유재산 침해까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행법을 무시한 채 추진하는 것은 문제다. 서울과 수도권을 보면, 지하철뿐 아니라 광역철도를 통해 서울과 경기권을 오가는 출퇴근이 일상화돼 있다. 그만큼 자가용 이용이 줄어들고 교통 체증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최근에는 광역급행철도인 GTX까지 도입되었다. 이러한 현실과 비교할 때, 포항을 비롯한 비수도권 시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은 명백한 불균형이다. 그래서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항의 광역철도망 구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포항시는 이미 2024년 4월, 경상북도를 통해 국토교통부에 관련 계획을 공식 건의했고, 올해 6월 국토부 고시를 앞두고 있다. 포항시가 제안한 안은 동대구–영천–포항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와 부산권(부전–북울산) 노선을 경주와 포항까지 연장하는 구상이다. 포항에 광역철도를 도입해 대구권과 부산권을 연결한다면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지역 통합이라는 정부의 계획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올해 6월 국토부 고시에 포항 광역철도망 구축계획이 포함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18

21세기 도시 생존은 ‘차이’에 달려 있다

20세기 도시 발전의 목표는 ‘결핍 해소’와 ‘차이 제거’에 있었다. 서울과 지방 간 주거·교육·문화 등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곧 발전이며 진보라고 믿어졌다. 어디를 가나 동일한 아파트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상업시설, 효율 중심의 도로망은 도시를 빠르게 팽창시켰고, 우리에게 안정과 편의를 제공했다. 개발의 언어는 효율과 속도가 중심이 되었고, 차이는 불편한 것으로 간주되어 제거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단지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특별한 개성도 사라졌다. 낯선 도시의 역에서 내려도 어디선가 본듯한 대단지 아파트 숲이 눈앞을 가로막고, 골목마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서울 외곽의 수많은 신도시 프로젝트에서부터 지방 도시, 유럽 교외에서 아시아 해안 도시까지, 같은 건축물과 인프라, 접근 방식, 논리가 복사된 듯 반복되었다. 도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색무취한 공간으로 전락했다. 요즘 도시, 특히 지방 도시의 문제는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본적인 도로와 건물, 각종 시설은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진짜 문제는 “왜 굳이 이 도시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은 단순한 인구나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도시가 더 이상 어떤 삶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 도시가 삶의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일이 많은 도시만을 고르지 않는다. 일 이후의 삶까지 상상하며, ‘나다운 삶’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다. 결국 사람들이 도시를 고르는 기준은 그 도시만이 가진 공기의 질감, 축적된 역사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고유한 관계의 방식 말이다. 포항과 경북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산업과 항만, 대학과 자연이라는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도시가 어떤 삶을 제안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와 똑같은 풍경으로 채워지는 ‘어디에나 있는 도시’가 되는 순간, 젊은 세대는 떠나고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 따라서 21세기 도시 전략은 장식이 아닌 구조적 차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일회성 축제나 화려한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보호하며, 어떤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선택이다. 공간과 건축, 문화와 산업, 그리고 일상의 방식까지 포함한 총체적 차이다. 차이는 단순히 더 많은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 도시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이유다. 20세기의 인프라가 이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21세기의 도시는 여기에 더해, 관계·기억·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가가 아니다. 이 도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다. 다름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차이를 잃어버린 도시에 미래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1-18

포항 교육, 서울 못지 않은 ‘기회’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

포항은 지금 교육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학생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시행 1년 만에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은 커졌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이로 인한 교육격차는 더 벌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33.5%가 자퇴를 실제로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한 번의 성적 부진이 곧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의 결과다. 경쟁에서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학부모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학생의 71%, 학부모의 90%가 고교학점제가 사교육을 유발한다고 응답했다. 진로와 과목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공교육은 충분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사교육 컨설팅이 빠르게 채우고 있단 점이다. 지역의 한 고교에선 고교학점제 대비 컨설팅을 대치동 사설학원에 맡기고 총 1억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내신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받기 위해 대규모 학교로 진학해야 한단 말도 사교육 업계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실제 고교학점제 1년의 시행 결과 대도시와 대규모 학교가 내신 혜택을 받아 지역 격차가 더 두드러진단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과 비서울 간 입시 정보 격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교육의 문제가 주거와 경제력의 문제로 더 심화하는 것이다. 이 정보 격차는 곧 기회 격차로 이어진다. 포항에 교육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포항은 자사고와 과학고 등 비교적 교육 선택지가 많고 교육열도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그렇기에 공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고교학점제로 인한 혼란과 지금의 교육격차를 방치하면, 더 많은 정보와 여유를 가진 가정의 자녀만 앞서 나갈 수밖에 없다. 공교육 안에서도 진로와 과목 선택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 받고, 정보의 속도와 질에서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포항형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를 구축하고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온라인 포털로 운영되는 경북교육청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로는 부족하다. 포항 지역 맞춤으로 학생들 누구나 우수한 강의와 진학 지도,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뿐만 아니라 질 높은 오프라인 컨설팅 공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진학관계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시가 적극적으로 입시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폐교된 용흥중학교 건물이 비어있으니 공간은 충분하다. 지원과 의지의 문제만 남아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현장과 제도, 두 곳에서 모두 고민해 왔다. 과거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실 수석보좌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교육 정책이 어떤 의도로 설계되고, 또 현장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제도 하나가 학생과 학부모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직접 확인해 왔다. 그래서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말은 필자에게 ‘구호’가 아니다. 공정한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새로운 제도로 인한 혼란과 이미 구조화된 교육격차란 오랜 문제는, 이상적인 말로 해소할 수 없다. 서열을 없애겠단 말보다, 서울 못지않게 인프라를 제공하겠단 말이 더 현실적이다. 포항의 도약은 교육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이 먼저 선택되는 도시, 가정의 배경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평가받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포항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을 생각하면, 가능한 이야기이고 해야만 하는 꼭 필요한 일이다. /박대기 전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 직무대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18

검찰은 없애고, 특별검사로 대체하나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한다. 자두를 따 먹는다고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은 오히려 오이를 따 먹으려고, 내놓고 신발 끈을 푼다. 그러고는 왜 오이를 딴다고 음해하느냐며 버럭 화를 낸다. 얼굴이 참으로 두껍다. 민주당은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2차 종합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28일 3대 특검 수사가 끝난 지 19일 만이다. 3대 특검(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 순직 해병 특검)이 미진했다는 이유다. 새롭게 드러난 의혹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577명의 수사 인력이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며 180일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탈탈 털었다. 2차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16일에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첫 1심 판결이 있었다. ‘체포 방해’와 관련해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그것 말고도 7개 재판부가 1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핵심인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다. 내란 우두머리에게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두 가지밖에 없다. 무죄를 선고한다면 모를까, 최소 무기징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2차 특검을 또 하겠다고 한다. 2차 특검은 검사 15명에, 특별수사관 100명, 파견 공무원 130명으로, 내란 특검과 비슷한 규모다. 수사 기간은 최장 170일, 추가 비용만 154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 방해는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만 특검을 오래 끌어야 징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새 정부는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국민이 적극 지지했다. 그런데도 아직 미진하다고 한다. 미진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굳이 특검을 다시 해야 하는 걸까. 특검은 권력자를 수사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 대통령이 수사 검사를 해임했다. 이 때문에 의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할 ‘독립검사법’을 만들었다. 그 뒤로 21년 동안 20여 차례 특검을 임명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분별한 수사로 정쟁의 도구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바람에 1999년 그 법을 폐기하고, 정부와 의회가 서로 견제하도록 특검 제도를 수정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 무렵 특검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도 27년 동안 19개 특검이 활동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민주당은 검찰을 해체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검수완박’(檢搜完剝·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쳐왔다. 정치적 수사를 하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특검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현재 검찰과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을 민주당 정부가 장악하고 있다. 내란 수사를 방해할 권력자는 없다. 내란 수사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추가 수사까지 통상의 수사기관에 맡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검찰을 ‘정치적’이라며 없애자는 민주당이 가장 정치적인 특검을 반복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정작 집권 세력이 연루된 사건에 대한 특검은 외면한다. 김병기·강선우 의원 사건은 고발한 뒤에도 묻어두다가, 끈이 떨어진 뒤에야 수사기관들이 움직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공천 비리 특검은 거부했다. 수사기관은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의 불씨가 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도 경찰이 저질러놓고 은폐한 것을, 검찰이 흘리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더구나 2차 특검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상계엄에 동조했는지, 추가로 수사하겠다고 한다. 지방선거가 겨우 130여 일 남았다. 특검이 확정되지 않은 야당 후보의 의혹을 최장 170일 동안 쏟아내면 선거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하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사건 수사를 선거기간에는 중단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않는 절제를 보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당은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풀고 있다. 그런데도 참외를 따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린다. 정치인의 낯가죽이 참으로 두꺼운 시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18

로봇 세상이 코앞에

최근 막을 내린 CES 2026 전시 현장에는 인간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가득했다. 관람객들은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에 감탄하며 앞으로 로봇이 인간에게 제공할 무한한 노동의 영역을 상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는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부분 대체할 거라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예측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세상은 로봇천지로 바뀌고 있다. 국내 어느 대기업의 CEO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년 후면 많은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 말했다. CES 2026에서 보았듯이 LG전자의 클로이드는 빨래, 요리 같은 집안 일을 척척해낸다. LG전자는 가사노동 제로화를 비전으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로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도대체 두렵기도 하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을 시도하고 있다.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하면 생산비 절감과 동시에 작업 성공률도 높아진다. 지금의 속도로 가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안에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으로 바뀔 것 같다.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배하면서 인공지능 위력에 깜짝 놀란 지 불과 10년 만에 AI 로봇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이 인류의 미래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학계에서는 현재 인류가 수행하는 일자리의 절반 가량은 로봇 등으로 사라질 거란 전망을 내놓는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기막힌 세상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5

인서울 대학 경쟁은 공정한가?

‘공정’은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였다. 이 단어는 경쟁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되었고, 평가의 잣대가 되었다. 선거에서, 학교에서, 채용과 승진의 장에서 공정은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해졌는가.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격차는 더 벌어지고, 분열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왜곡된 공정이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노력과 능력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승자에게 정당화된 우월감을, 패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치심을 남긴다. 성공은 자격이 되고, 실패는 낙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서열은 고착화되고 공동체의 연대는 느슨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영역은 교육 분야다. 그중에서도 대학 입시는 극도로 민감한 공정의 최전선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문자 그대로의 계급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오늘날 ‘서연고서성한’으로 시작되는 대학 서열은 ‘태정태세문단세’로 암기되는 조선왕조 계보보다 더 유명하고 확고한 계급 체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학 서열화는 공정한 입시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인서울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의 격차에서 공정의 허상은 보다 명확해진다. 대학의 소재지는 능력과 가능성을 대신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교육 수준이 아닌 대학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인서울 여부는 능력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지방 대학은 2등 시민을 양산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감춰진 공정 담론은 지역과 서울 간 교육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애써 정당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채용과 승진을 넘어 삶의 경로를 결정한다. 한 번 형성된 서열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사람들은 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오늘날 사회 구성원들이 인서울 대학, 인서울 직장, 인서울 아파트 구입을 목표로 경쟁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서울 경쟁에서 승자의 명예와 패자의 수치는 간극이 너무 크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거의 없다. 공정 담론이 쉽게 분노와 혐오의 언어로 변질되는 이유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려면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인서울 대학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교육의 질보다 대학의 위치를 먼저 따지는 사회는 건강한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우리는 공정한 민주 시민인가. 공정은 과소 평가되는 존재들에 대한 차별없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지리적 위치가 삶의 서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역과 학교를 넘어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공존의 문법이어야 한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1-15

주사 이모

골프장에 가면 호칭은 단 하나다. 모두가 “사장님”이다. 진짜 사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손사래를 쳐도 “사장님 나이스 샷”은 멈추지 않는다. 호칭은 사실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다. 반복되면 어색함은 사라지고, 결국 말은 의미를 잃는다. 골프장에서 사장님이 넘쳐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칭이 존중의 표현이기보다 서비스의 윤활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듣는 쪽도, 부르는 쪽도 그 허구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사 이모’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낯설었다. ‘주사 아줌마’도 있을 수 있고, ‘주사 도우미’도 가능할 텐데, 왜 하필 이모일까. 더 묻게 된다. 고모는 왜 안 되는가. 외삼촌은 왜 상상조차 되지 않는가. 호칭 하나에 이렇게 많은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동시에 불편함을 남긴다. 이모라는 호칭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동네 병원에서도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무난한 말이 되었다. 이름 대신 불리고, 직함 대신 쓰이며, 개인은 자연스럽게 지워진다. 친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친근함은 대체로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부르는 쪽은 편하고, 불리는 쪽은 선택권이 없다. 과거 드라마 속 가사도우미는 “청주댁”, “안성댁”으로 불렸다. 본래 ‘댁’은 존칭이었지만, 어느 순간 출신과 신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고, 급기야 비하의 언어로 굳어졌다. 지역과 혈연을 담던 말이 노동과 종속을 표시하는 기호로 변한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계층을 정리하고, 한 번 굳어진 호칭은 좀처럼 위로 이동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모라는 말조차 부담스러워졌는지, 재벌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가사노동자를 “실장님”이라 부른다. 반면 골프장에서는 모두 사장님이고, 글 쓰는 세계에서는 모두 선생님이다. 미술계에서는 작가라 부른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모’라는 호칭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모는 특정한 장소, 특정한 계층에만 허용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호칭 하나로 공간의 위계가 구분되는 셈이다. 백화점에서 이모라는 호칭이 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곳에서는 “저기요”면 충분하다. 아가씨도 아니고, 이모는 더더욱 아니다. 호칭을 지우는 대신, 서비스 공간의 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모라는 말이 그만큼 낮은 위치로 고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는 평생 이모라는 호칭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는 외동이었고, 아버지 쪽에는 고모만 있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도 이모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십쯤 되어 보이면 무조건 아가씨라 부른다. 그 말에 불쾌해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불편함은 말보다 맥락에서 생긴다. 내게 이모는 친족 호칭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모는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손쉬운 말이 되었다. 친근함이라는 포장을 두른 채, 개인을 지우고 역할만 남기는 언어가 된 것이다. 만약 주사를 놓는 사람이 남자였다면 우리는 뭐라고 불렀을까. ‘주사 외삼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요즘 꽤나 심심하긴 한 모양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15

해방군은 없다

새해 벽두부터 참담한 소식이 전해온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납치하고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군은 새벽 두 시에 침입하여 한 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은 반면, 베네수엘라 측은 8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명분은 마두로의 부정선거와 미국 내 마약 판매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이 상식적으로 보아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트럼프는 1기 대통령 시절부터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반미 성향의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트럼프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마약과 폭력을 전파한다고 비난하면서 마약 실은 배를 습격하는 등 긴장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부정선거에 미국이 개입할 정당성도 없거니와, 대통령을 납치한다고 마약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미국의 개입을 환호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마두로가 얼마나 독재를 했으면 미국의 침공을 환영할까 싶은 것이다. 사실 마두로가 처음부터 독재자는 아니었다. 그는 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노동운동가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두로는 자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명분만 사회주의를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사익만을 위했다. 예를 들어, 마두로가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지만, 그것은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 작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였던 것은 마두로의 독재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마차도는 차베스가 대통령일 때부터 독재를 비판해왔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갖은 위협으로 마차도의 인권 운동을 방해했지만 마차도는 수년간 꿋꿋하게 독재에 맞서 왔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노벨상 위원회가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마차도 같은 인권 운동가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희망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개입해서 친미 정권을 세우는 것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올 뿐이다. 과테말라나 이라크, 아프카니스탄처럼 미국이 개입해서 친미 정권이 들어선 나라들은 내분만 격화할 뿐 제대로 발전한 나라는 없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다. 그러나 이 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트럼프가 마두로 부부를 납치한 것은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뿐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차도 같은 민주 인사가 정권을 잡는다고 안심만 할 수는 없다. 사람은 변한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얀마의 정치 지도자 아웅 산 수 치도 노벨상 수상 이후 반민주적인 행보에 비판이 많다. 아무리 민주 투사였던 사람이라도 처지가 바뀌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현재까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복덩어리가 되려면 마두로의 부정투표와 독재에 저항하고 트럼프의 군사 개입에도 항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1-15

껌팔이 소년에서 교수로,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160시간의 사회복지실습이 일깨운 ‘스마트 복지’의 미래

포항시 북구 기계면 고지리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도움터기쁨의집’(원장 황순희)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작된다. 160시간의 사회복지 실습을 마친 지금, 나는 이곳에서 한국 사회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았다. 껍질을 벗고 본질로 1970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구의 한 방직공장으로 향했다. 실을 잇는 손가락 사이로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기계에 끼어 오른팔이 절단될 뻔한 사고를 당했으나, 동료 선배가 재빨리 스위치를 꺼준 덕분에 팔은 남았고 상처만 남았다. 부상 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시골의 비인가 중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포항으로 이사했다. 당시 가난은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굴레였다. 극장에서 껌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매점 사장의 배려로 포항문화원 사환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맹모삼천지교’의 현대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비인가 중학 과정인 포항중앙재건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나를 가르쳐준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 교사선생님들이었다. 그분들과 여러 선배들의 도움으로 중학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포항고를 거쳐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장학생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군 제대 후에는 포스코 협력업체 노동 현장에서 일했고, 새벽 우유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대학교 해양연구소에서 ‘복어독 생성균과 해양환경에서의 독 축적 메커니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약학부에서는 적조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오로지 포항영일만환경과 발효식품연구에 매진을 하였다. 그 후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하며, 특히 사회봉사 담당 주임교수로 10여 년간 봉사와 복지의 경계를 고민해왔다. 은퇴 후, 어린 시절 나를 일으켜 세워준 이름 모를 자원봉사자들에게 사회로 환원하고자 사회복지사의 길을 선택했다. 잔여주의에서 제도주의로, 그리고 그 너머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인 ‘도움터기쁨의집’에서의 160시간은 한국 사회복지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현장은 여전히 잔여주의 복지의 그늘 아래 있다. 가족과 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때 비로소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다. 발달장애인은 가족의 돌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시설로 오고, 예산은 항상 ‘최소한’에 머문다. 정확한 통계는 아닐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복지사 1인당 돌봄 대상자는 10명을 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관련 종사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년 미만, 연 이직률은 20%를 상회한다. 낮은 처우와 과중한 업무 때문이다. 복지는 여전히 ‘권리’가 아니라 ‘시혜’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말한다. “이분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것이 제도주의 복지의 관점이다. 복지는 소수의 불운한 사람을 돕는 시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다. 실습 기간 중 가장 거주인들의 인기 있는 활동은 노래와 춤이었다.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거주인과 사회를 잇는 소통의 다리였다. 특히 은하수로타리 여성봉사단의 후원, 하모니카 봉사단과 예술봉사단 및 참붕어빵학교의 참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방송대학생들의 실습생들도 스스로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거주인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 아직도 아쉬운 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에 모든 거주인들이 다 함께 국내외에 나갔으면 하는 마음과 거주인들을 움직이는 짧은 공간의 애마(이동수단)를 변경하는 것이 나의 작은 올해의 소망이기도 하다.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 실습 중 만난 40대 발달장애인 L씨는 간단한 문장 표현이 어려웠지만, 태블릿 PC와 그림 소통 앱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했다. 또 다른 시설의 B씨는 IoT 센서가 부착된 침대 덕분에 야간 낙상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앞에서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을 보았다. AI와 기술은 돌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손을 덜어주고, 발달장애인의 선택권과 안전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태블릿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주인, IoT 센서로 밤사이 낙상을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존엄을 지켜주고 있었다. 복지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복지는 사람과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껌팔이 소년이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아니다. 사회가 한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다시 현장에 서서 묻는다. 우리는 복지를 여전히 시혜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권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이 평범한 하루가 포항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스마트 복지’와 ‘따뜻한 연대’가 만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포항에서 시작할 MIND 프로젝트 BTS 민윤기씨가 제안한 MIND(Music, Interaction, Network, Diversity) 프로젝트는 음악을 통한 치유와 사회적 연대를 결합한 새로운 복지 모델이다. 나는 이를 포항에서 실현하고 싶다. 지역 기업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포항형 스마트 복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AI 기반 개인 맞춤형 돌봄 시스템, 지역 기업과 연계한 의미 있는 일자리, 시민 참여형 온라인 플랫폼 구축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다. 기술이 아닌 사람, 시혜가 아닌 연대 껌팔이 소년이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연대 덕분이었다. 이제 내가 그 연대의 고리를 잇고자 한다. 포항 시민 여러분, 지역 기업 여러분. 함께 포항형 MIND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발달장애인이 존엄하게 사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존엄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나는 한때 극장에서 껌을 팔던 소년이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했고, 기계에 팔이 끼어 절단될 뻔한 사고도 겪었다. 가난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 정확히 말하면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와 어른들의 연대였다. 나 역시 이제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을 배우고 다시 사회로 환원하려는 사회복지예비실습자 (혹은 선배시민)로서의 모습으로 서 있다. 교수였던 과거의 직함은 이 공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누가 더 잘 듣고, 더 천천히 기다리며,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도움터기쁨의집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거주인들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였다. 노래를 좋아하고, 춤을 추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듬과 감정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음악·예술 활동 시간은 거주인들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확실한 통로였다. /도형기 한동대 명예교수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명예교수(현재) •도쿄대학교 농학박사(해양생명과학·해양미생물·복어독) •전 한동대학교 사회봉사 담당 주임교수 •포항시 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 센터장 (현재)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이사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과정 중(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 (현재) •승강기대학교 션사인학부 파크골프학과 1학년 재학 중 (현재)

2026-01-15

‘한동훈 제명’ 후폭풍···국힘 사생결단 충돌 안타깝다

지난 12일 가까스로 ‘6인 체제‘를 갖춘 국민의힘 윤리위가 14일 새벽 기습적으로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면서 당이 내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제명’은 당적을 박탈하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또 다른 계엄”이라고 반발하며 “이번에도 반드시 막겠다”고 했다. 윤리위는 이날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당원게시판 사태’를 여론 조작으로 규정, 최고 수위인 제명 결정을 내렸다. 한 전 대표와 가족들이 지난 2024년 국민의힘 익명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당시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을 대거 작성했다는 게 제명 사유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특검이 ‘사형 구형‘을 내린 날이어서 당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하다.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이를두고 '한밤의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제명 확정은 15일 최고위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러나 최고위 인적 구성을 볼 때 친한계인 우재준 청년최고위원, 비주류 양향자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반대 의견을 낼 분위기가 아니어서, 한 전 대표 징계안이 반려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한 전 대표 징계를 주도해온 장동혁 대표도 14일 “윤리위 결정을 뒤집고 다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하며 제명 수순을 시사한 상태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리위 결정이 이미 답을 정해놓은 결과다. 재심을 신청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명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또 다른 계엄 선포“라면서 “국민, 당원과 함께 이번 계엄도 반드시 막겠다”고 말했다. 당 내에서는 한 전 대표가 이를 법적인 분쟁으로 끌고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회견에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형동, 배현진, 박정훈, 정성국, 고동진, 유용원 의원과 윤희석 전 대변인이 함께했다. 국민의힘 내에서 비교적 ‘중수청’ 외연확장을 위한 메시지를 내온 ‘대안과 미래(소장파와 초·재선 의원이 주축인 모임)'도 이날 긴급 회동을 하고 윤리위 결정을 재고하라는 입장을 냈다. 이 모임 주요 멤버인 김재섭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명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처벌을 했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의힘의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일부 초·재선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 TK 중진 의원들은 공개 발언을 자제한 채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국민의힘 당내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고,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아마 한 전 대표 제명은 국민의힘 내분을 더욱 심화시키고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당 일각에선 15일 오전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당내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장동혁 대표의 그간 발언내용을 종합해 보면 윤리위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방선거 초반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설 연휴 민심를 감안해 보면, 국민의힘이 집안싸움의 격랑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2026-01-14

장판 밑에 숨겨둔 돈

한국과 외국을 가릴 것 없다. 고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파렴치한이나, 무시로 뇌물을 받아온 권력자의 집에서 수 억,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현금 뭉치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서민들은 아연실색한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듯 엄청난 현금을 집에 두는 걸까?’라는 생각에서다. 고액권이나 달러 등 외화를 숨겨 놓은 곳도 기상천외하다. 방처럼 거대한 금고는 물론이고, 드물게는 천장 위나 김치냉장고 속에 5만원권 지폐나 100달러짜리 지폐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이른바 부정한 ‘검은 돈’이 아닌 당당한 자기 재산이라면 숨길 이유가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은행에 예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부가 “금융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19세기에나 통할 변명처럼 들린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현금을 집이나 자신 소유의 공장 등 생활공간에 숨겨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안방 장판 밑에 놓아둔 거액의 현금이 뜨거운 열에 손상돼 그걸 부랴부랴 은행에 가져가 교환했다는 소식, 신문지에 싸서 창고에 보관하던 지폐가 습기 탓에 원형을 잃어 낭패를 봤다는 뉴스가 최근 있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2025년 손상 화폐 폐기 규모’를 공개했다. 발표에 의하면 손상돼 폐기된 금액은 모두 2조8404억원. 지폐 3억6401만장의 엄청난 양이다. 이걸 한 장, 한 장 이어 붙이면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을 만들려면 돈이 든다. 해마다 소요되는 지폐와 동전 제작비가 만만찮다. 그러니, 돈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작은 애국이 아닐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