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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학의 불편

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하다 보면 작품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을 만날 때가 꽤 있다. “주인공이 부도덕한 것 같아요.”, “이건 패륜 아닌가요?”, “너무 암울해요.” 등등. 가령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만 해도, 명성에 비해 막상 읽어보니 심히 충격적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작품을 볼 때 마치 재판관이 된 듯 보지 좀 말라”라고 말을 하곤 하는데, 납득시키기까지 매해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문학을 읽는다는 행위는 근본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살면서 형성해 온 나름의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며, ‘세계 내 존재’인 자기의 한계를 마주하는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사회에 강한 규정력을 행사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한계를 지시하며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대체로 읽고 싶은 것만 읽는다. 물론 이는 요즘의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과 상통하는 행위이다. 보기 싫은 것은 그저 못 본 척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는 지적 태만에 다름 아니다.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복컨대 문학을 읽는다는 건 읽을 생각이 없었던 내용과의 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内田樹) 역시 텍스트 읽기의 본연을 여기서 찾은 바 있다. 즉 진정으로 읽는다는 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아닌 ‘무엇을 보고 있지 않은가’ 혹은 ‘무엇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전경화하는 실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읽으려고 하는 것’과 애써 ‘읽지 않으려는 것’ 사이의 긴장과 알력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텍스트 독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주체적 읽기를 수행하면 텍스트는 ‘자기 일탈’을 한다고 한다. 이때 텍스트의 자기 일탈이란 마치 독자가 독서를 통해 ‘읽을 생각이 없었던 말’과 만나듯이 텍스트는 ‘말할 생각이 없었던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독자가 읽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 텍스트에 노출되고 텍스트가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독자에게 감지된다. 이런 만남의 방식으로 텍스트의 자기 일탈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텍스트의 자기 일탈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굳이 모험적인 읽기를 시도하는 독자로부터 말 걸기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텍스트의 자기 일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 읽기에 관한 신비로운 해석이 아니다. 우리는 똑같은 작품을 보아도 똑같이 보지 않는다. 이런 편차는 왜 발생하나? 당연히 배경지식의 농도에 따라 감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텍스트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에 따라 상이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가끔은 ‘불편한 문학’을 주체적으로 읽으며,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이념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길 권한다. 이런 성찰이야말로 요즘 들어 더 필요해진 ‘능력’ 아닌가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0-23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

나의 이상한 증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뭘 버리지를 못한다.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적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집구석마다 쟁여놓은 물건이 산더미라 늘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은 몇 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늘 처박혀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버리려고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가도 다시 끄집어내기를 반복한다. 이건 분명 ‘병’이다. 의학 쪽에서 말하는 강박장애가 아닌가 싶다. 강박장애는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하는 정신질환이다. 입에 늘 청결제를 가지고 헹구면서 손을 자주 씻는 것과 냄새가 날까 싶어 옷을 자주 빨아 입는 것을 결벽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친구들에게 제발 담배 좀 끊고 냄새나는 옷 좀 입고 다니지 말라고 되려 역정을 내고 있지만, 이 또한 오염 강박증의 한 증세일지도 모르겠다. 집사람은 뭔가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확인 강박증이 있다. 냄비를 태워 먹고 약속을 몇 번 ‘빵구’를 내더니 늘 확인한다. 하지만 병이 워낙 독한지라 늘 사고는 친다. 부모님 제사까지 잊어버린다. “난 저런 인간들과 같이하기가 너무 싫다.”라며 혼자 고고한 척하는 완벽주의자 친구가 있다. 정말 반듯한 생활을 하는 친구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례를 들춰 봐도 그 친구의 논리가 맞다. 그렇게 살아야만 제대로 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정떨어질 때가 있고 재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친구도 강박 증세가 있다고 본다. 완벽주의자로 포장된 인간의 대부분이 강박적 성격이 있거나 강박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학적 견해도 있으니 말이다. 땅이 무너질까 두렵다는 생각,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분명 환자다. 남의 호의나 선의를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는 사람 또한 환자이다. 늘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험담하는 것을 자기 주장의 정당화로 억지 강변하는 사람도 분명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것을 먹으면 뭐가 나빠지고 저것을 복용하면 이것이 좋지 않다는 식의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병원을 수십 군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병은 소문내야 한다.”라는 이상 한 논리로 말할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너무 오래 살아 자식에게 짐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된다. “그 나라는 지금 전쟁 중인데 잘못 가다간 큰일 난다.” 이 정도 수준이면 그래도 이유가 확실하니 들어 줄 만은 하다. 하지만, 해외여행 가자는데 그 나라는 잘못하면 강도가 많아 물건 빼앗기고 살해당한다고 가지 싫어하고 어떤 나라는 납치된다고 싫어하고 또 어떤 나라는 물이 좋지 않아 안 간다고 할 땐 말문이 막힌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반대하는 친구가 이번엔 같이 가는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여행을 반대한다. 같이 어울리기 정말 힘든 사람을 가만히 보면 전부 강박 환자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만 눈에 보이는 나도 강박 환자임이 분명하다. /노병철 수필가

2025-10-23

축의금의 크기와 축하의 크기

사회 전 분야에서의 가파른 물가 상승이 서민의 삶을 갈수록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결혼식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하객에게 대접하는 식사와 신부 드레스, 메이크업 등 결혼식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평균 2160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경우엔 그 비용이 3509만원이었다. 고비용 결혼식이 일상화되면서 친척이나 친구의 결혼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는 2025년 8월 현재 결혼식 하객 식대의 중간 가격이 6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친구 결혼식에 가서 5만원짜리 한 장을 봉투에 넣으려면 어쩐지 낯이 뜨거워진다. 내가 먹은 밥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 사회 초년생의 푸념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마다 축의금 고민이 커진다는 중년 남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축하 메시지와 축의금만 보내고 결혼식엔 가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얼굴을 마주하고 제2의 삶을 설계할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주려면 두둑한 축의금부터 마련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일까?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결혼식 기사를 보면 수백만 원을 넘어 수천만 원, 심지어 억대의 축의금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무슨 미담인양 담겨 있다. 이런 기사는 5만원의 축의금도 준비하기 힘든 이들을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든다. 축의금의 크기가 축하의 마음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닐 텐데. 어쨌건 없이 사는 사람들은 청첩장이 무서울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2

한국과 중국의 전통 교육 현장을 보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손주들과 고택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한국인성예절교육원에서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초중등학생을 포함한 가족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체험프로그램이었다. 작년에 서울의 사촌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올랐던지 올해도 참가하고 싶어했다. 한 달여 전쯤 낸 공고를 보고 미리 신청했다. 작년에는 하빈의 육신사 수당정에서, 올해는 달서구의 병암서원에서 이루어졌다. 프로그램명은 ‘선비의 하루’,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첫 시간은 서원의 역사와 서원의 가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서원 탐방을 한다. 자유 복장에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가 이후의 수업을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두 번 째 시간은 선비복 체험. 선비의 옷인 유복을 입고 선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배운다. 어린 남자아이는 한복에 쾌자를 입고 복건을 쓰고, 여자아이는 치마저고리에 배씨댕기를 머리에 얹거나 족두리를 쓴다. 어른들은 남녀없이 유복을 입고 유관을 쓴다. 입고 벗기가 쉽지 않지만 한복을 입히면 일단 아이들의 처신이 달라짐을 단번에 알게 된다. 옷을 갖춰 입힌 후 공수를 가르치고 나면 앞선 시간에서와 달리 어느새 남자아이는 의젓하고 여자아이는 조신해진다. 절하는 법도 남녀가 다르다는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한 아이를 앞자리에 불러서 시범적으로 선비의 일생을 가르친다. 붓, 벼루, 먹, 종이, 문방사우를 곁에 두고, 책가도 병풍을 두른 방에서 열심히 공부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할 때 입는 앵삼을 입혀 주기도 한다. 세 번째 시간에는 민화문자도 그리기를 한다. 충효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목판에 한자 ‘충(忠)’과 ‘효(孝)’자가 그려진 문자 그림에 색칠하는 시간이다. 같은 그림판이지만 색칠은 한 것은 제각각인 게 재밌다. 마지막 차 명상 시간에는 차를 마시며 심신을 정화하기도 한다. 네 시간이 순식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여자들이 모두 흥미로워한다. 수업 후 나올 때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음전해졌다.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경내를 둘러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른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된다. 며칠 전 중국 복건성의 남평시에 가서 이와 대단히 유사한 광경을 봤다. 남평시는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자가 나고 자라, 공부하며 거의 일생을 보낸 곳이다. 현재 그를 배향하는 서원들이 곳곳에 복원돼 있고, 그를 기리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뤄지는 도시다. 주자의 사상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로 정한 시범유치원 행사에 초대받았다. 유치원 곳곳에 배치된 어린 유치원생들이 저마다의 몫을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소화해 내고 있었다. 뜰에서는 차를 재배하여 말리고 덖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각종 기예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마지막에는 차 마시는 모습을 연극처럼 보여주었고, 가장 마지막엔 주자가훈을 외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행사였다. 과장적 분장에 일사불란하게 잘 훈련되어 정돈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와는 좀 다른 체제와 문화의 향기를 느꼈다. 그러나 전통을 익혀 전승하려는 노력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0-22

스트레스가 위를 망친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장기는 위장이다. 입맛이 떨어지고 밥을 먹으면 잘 체하고 항상 속이 답답하고 트림이 자주 나오거나 속이 쓰린 느낌이 생긴다.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을 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기능적 장애로 위의 운동과 분비를 조절하는 자율신경이 불균형해진 것이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는데 스트레스가 심하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위의 움직임이 억제되고 혈류 공급이 줄어든다. 위산이 과도하게 분비되기도 하고 반대로 위의 연동이 떨어져 음식이 오래 머물면서 더부룩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느껴지는 속의 답답함은 단순히 소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긴장 반응이 위를 조이고 있는 상태다.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어도 마음이 불안하면 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불면, 어깨 결림, 손발 냉증, 두통 같은 증상들이 함께 나타나면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교감신경은 몸을 싸움 모드로 부교감신경은 휴식 모드로 만든다. 스트레스 상황이 반복되면 몸은 항상 ‘전투 태세’를 유지한 채로 살게 된다. 혈압이 오르고 위산이 과다해지며 위 점막이 손상되고 염증이 생긴다. 심지어 심한 경우는 위벽이 예민해져서 음식만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거나 공복에도 쓰린 증상이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단순한 위장병이 아니라 간과 비위장의 복합 문제로 본다. 간은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기인데 스트레스에 즉각 반응하는 것으로 본다. 스트레스로 간의 기운이 막히면 위장의 소화력도 함께 떨어진다. 기가 울체되면 명치가 답답하고 트림이 나며 배가 더부룩하며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비위가 약해져 입맛이 떨어지고 체중이 줄거나 대변이 묽어지는 등 전신적인 허증으로 번진다. 치료의 핵심은 단순히 위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한의학에서는 침, 약침, 한약 등을 통해 교감신경의 긴장을 풀고 부교감신경의 회복을 돕는다. 특히 성상신경절 부위나 복부 자율신경총 주변의 약침은 스트레스에 긴장된 신경을 안정시켜 위장의 운동성을 회복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한약은 체질과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비위장의 소화기와 간 기능을 조절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재들이 쓰인다. 시호, 향부자, 백출, 감초, 반하 같은 약재들이 대표적이다. 식사는 규칙적으로, 천천히, 조용한 환경에서 하는 것이 좋다. 과식이나 늦은 야식은 자율신경의 회복을 방해한다. 커피, 에너지음료, 자극적인 음식은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므로 피하는 게 좋다. 잠을 충분히 자고 짧은 명상이나 심호흡으로 신경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이 이완되면 위도 자연스럽게 따뜻해지고 소화력이 살아난다. 결국 위장은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긴장하면 위도 움츠러들고 마음이 편안하면 위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래서 위장병을 치료할 때는 스트레스를 함께 다스려야 한다. 위를 치료한다는 건 단지 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과 감정 몸의 전체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위를 편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약은 결국 이완된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0-22

다문화는 다른 문화일까

‘선생님, 제 이름은 세라예요. 근데 집에서는 ‘사라’라고 불러요.‘ 지역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한 아이가 자기소개를 한다. 엄마는 필리핀 출신, 아빠는 한국인이다. 한국어는 제법 유창하지만, 교과서 속 단어 몇 개는 여전히 낯설다.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자연스레 무리를 지어 놀지만, 세라는 머뭇거리게 된다. 언어보다 더 높은 벽은 ‘섞이지 못하는 낯선 분위기’다. 이런 장면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은 2006년 5천 명 수준에서 지난해 18만 명을 넘어섰다. 20년 사이에 30배 이상 늘어났다. 전국 학생 100명 중 3명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며, 특히 농어촌과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경북의 교실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 구미, 영천 등지의 초등학교에는 베트남·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 출신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씩 있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처음 입학했을 때는 한국말을 거의 못해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며 ‘같이 놀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문화학생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포항교육지원청은 언어지도 강사를 파견한다. 하지만 현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포항의 한 언어지도사는 ‘5개 학교를 돌며 하루 한 시간씩만 수업한다’며 ‘담임교사와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 개별 맞춤지도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역 간 편차도 심하다. 대도시인 대구나 수도권에는 다문화 예비학교가 여럿 있지만, 경북 농촌지역에서는 찾기 어렵다. 문제는 정책의 시각이 ‘적응지원’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다문화 교육을 ‘결손을 보완하는 복지사업’으로 본다. 필요한 것은 ‘통합 교육’이다. 이주배경 학생이 한국 사회의 주변부가 아니라, 뉴노멀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제도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은 언어교육과 문화이해 교육, 교사 집중연수, 학부모 지원을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한국은 부처별 사업이 따로 놀고, 현장 교사는 행정보고에 쫓긴다. 교사 양성과정에서 다문화 이해교육을 의무화하고, 전문 상담교사와 통역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적 시스템이 절실하다. 이주배경 아동의 교육권은 복지의 일부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미등록 체류아동은 여전히 입학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 출입국관리법상 부모신분 노출을 꺼리는 탓에 학교 문턱에서 돌아서는 아이들이 생긴다. ‘교육은 인간의 권리’라는 원칙이 서류 한 장에 막히는 현실은 부끄럽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주배경 아동이 차별없이 배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실이 ‘침묵의 공간’으로 남는다면 한국사회의 미래가 그만큼 닫혀버리지 않을까. 다문화는 더 이상 다른 문화가 아니다. 다문화를 우리 문화로 적극 포용하는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선진국의 힘은 배려와 공감에서 나온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22

가을 하늘

살다보면 흐린 날 속에 가끔 무지개가 뜨는 날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어 입이 저절로 달싹입니다. 얼마 전에 딸네에 다녀왔거든요. 현관문을 들어서자, 사위가 요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을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고 하네요. 외국여행지에서나 맛볼만한 음식입니다. 이름이 낯설어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마음이 담긴 그것은 특별했습니다. 와인까지 준비했더군요. 식사가 끝나자, 꼬맹이 손자가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려 한껏 폼을 잡습니다. 음표에 몰두할수록 아이의 입이 자꾸만 벌어집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박수소리에 한 살 터울의 형아가 일어나 태권도 시범을 보입니다. 제법 진지합니다. 쳇지피티와도 대화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제 다 컸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옵니다. 집안을 둘러봅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펜트리도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이젠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이 아닙니다. 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연년생 아기를 끌어안고 울던 딸이 조금은 여유롭게 보여 안심입니다. 딸과 사위의 찌그럭거림도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 여겼지만, 그 과정을 보는 내 마음은 늘 무거웠거든요.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자연스럽게 딸네 다녀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위가 차려준 밥상 얘기가 나오다 목에 걸립니다. 사위가 실직해 걱정이라는 친구의 말이 퍼뜩 떠올라서입니다. 이야기가 설렁설렁 겉돕니다. 이제 조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더라는 말로 얼버무립니다. 길에서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딸네 잘 다녀왔냐고 묻습니다. “손자들 많이 컸지?” 라는 언니에게 나는 장난기가 심할 나이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언니는 꽤나 잘 나가는 아들이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거든요. 지인들이 손자 얘기에 열을 올릴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던 언니입니다. 내 마음이 흐린 날, 눈물 콧물 닦으면서 풀어놓아도 좋을 친구와 언니들. 미주알고주알 내 놓으면 마음을 안아주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좋은 일은 내 놓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낍니다. 슬픔은 들어주면서 내 위안도 되기에 조금 더 쉬운 걸까요. 나 또한 자랑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직장인이 된 아들이 용돈 주더라는 동생의 전화에 그때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요. 그런데 그 화살이 제 살기에 급급한 아들 녀석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생의 자랑이 은근히 아들에게 비난의 잔소리가 되었던 거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기쁨을 진심으로 받아주는 일도 마음의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딸네의 얘기를 마음 놓고 얘기해도 되는 나의 대나무 숲은 누구일까. 문득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백점 맞은 시험지도, 상장도 엄마 앞에서는 마음껏 떠들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마치 천재 인 냥 자랑해도 엄마는 당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맞장구쳤습니다. 엄마는 나의 자랑꺼리가 더 있기를 바라셨지요. 그랬던 나의 대나무 숲은 이제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대나무 숲도 화를 낼 때가 있더라고요. 예전, 여동생이 아기를 업고 친정 왔을 때였습니다. 동생은 가끔 시어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농사지은 것들을 챙겨주신답니다. 뒷손이 가지 않게 파를 다듬어서 신문지에 싸 아래 위를 노끈으로 묶어 한 가닥씩 빼 먹기 쉽게 해서요. 그 얘기를 몇 번 들었던가봅니다. 엄마가 벌컥 화를 내셨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요. 동생과 나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왜 화를 내셨는지, 그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함이 화로 번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압니다. 자식들의 무지개가 내 하늘입니다. 대나무 숲에 자랑하던 나는 이제 자식들의 대나무 숲입니다. 그들의 자랑으로 내 하늘은 무지개가 가득합니다. 주변인들의 무지개까지 다 품을 수 있는 나의 하늘을 가졌으면 합니다. 가을 하늘은 참 넓습니다. /윤명희 수필가

2025-10-22

경주 APEC 손님 감동시킬 준비 돼 있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드디어 다음 주말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개막한다. 개막식이 9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보문단지와 경주 일대 신라 문화 유적지 등이 벌써부터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정상회의장소인 HICO와 35개의 PRS(정상급 숙소), 국제 미디어센터, 만찬장 등이 집중된 경주 보문단지 주변은 지난 추석연휴부터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가장 인기를 모으는 곳은 21개국 정상들의 만찬장인 라한셀렉트호텔(옛 현대호텔)이었다. 현대호텔은 지난 2005년 11월 열린 부산 APEC 때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던 곳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국빈 방한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부시 대통령과는 경주 현대호텔에서 만났다. 두 대통령은 경주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부부 동반으로 약 30분간 불국사 경내를 산책하며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2009년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방한한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를 찾았을 때 환영 연회를 개최한 곳도 현대호텔이다. 이번 경주 APEC 때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이곳에 여장을 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APEC 정상의 배우자들은 불국사를 비롯해 경주 문화재 관람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지만, 정상들의 경주 관광 스케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아쉽긴 하다. 이번 경주행사 성공의 핵심은 주요국 정상들의 참석 여부다. 경주 APEC 회의 때는 미·중 정상 모두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경주에서 펼쳐질 국제 외교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됐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APEC 부대행사인 ‘CEO 서밋’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이 연달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 주석은 29일 혹은 30일에 방한해 미중, 한중 정상회담과 APEC 정상회의 등을 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 APEC회의는 신라 삼국통일 이후 가장 큰 국제행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경북도와 경주시는 ‘역대 가장 완벽한 APEC’을 목표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서 마지막까지 손님맞이 준비에 전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20년 전 부산 APEC회의 때 주회의장으로 이용된 해운대 누리마루는 당시 최첨단 회의 시스템과 고품격 서비스, 한국 전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한 최고의 회의장이라고 극찬을 받았었다. 이번 경주 APEC회의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게 되면 경북도와 경주시의 글로벌 위상도 그만큼 격상된다. 경주 APEC회의는 경제파급 효과만 2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아태지역 정상 부부를 비롯해 수 만명 규모의 국내외 손님들이 경주를 다시 찾고 싶은 감동적인 도시로 인식하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하며 준비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0-21

금테크 경계령

방송인 김구라씨의 금테크가 화제다. 그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5년 전 “금이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1억원 정도를 샀는데 지금은 3억 5000만원이 됐다며 금테크 과정을 자랑스럽게 말해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금테크가 공개되면서 한국은행이 김구라보다 금테크를 못했다는 국정감사에서의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현재까지 금을 사들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최근들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을 사들이는 것과 비교해 한국은행이 금테크에 소홀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는 세계 10위권에 있으면서도 금 보유량은 38위에 머물러 있는 현실 사정을 국회가 지적한 것. 올들어 금값은 연초보다 50% 넘게 급등했다. 미국의 금리인하 전망과 달러화 약세, 지정학적 긴장감 등이 작용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가치가 급부상한데 따른 영향이다. 김구라씨 보다 앞서 영화배우 전원주씨의 금테크도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전씨는 2022년 당시 한 방송에서 ‘아껴서 부자된 스타’ 1위에 등극되면서 주식 30억원, 금 10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소개됐다. 당시 금값이 30만원 하던 때여서 지금 시세로 따지면 그녀는 금값만 약 27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한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최근 시중에는 금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국내 금값이 국제시세보다 13.2%나 높게 형성되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인다”며 일물일가 원칙에 따른 단기 급등 후 조정을 경계하라 했다. 금테크도 좋으나 모든 것이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 교훈도 새겨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1

AI시대 다크 팩토리(Dark Factory)

제조업의 미래는 얼마나 지능적이고 유연한 생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스마트 팩토리에서 인텔리전트 팩토리로 이야기 한 것이 엊그제였는 데, 이제 다크 팩토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는 실험이 아닌 벌써 상업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사람이 거의 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아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완전 자동화 공장’을 말한다. 로봇, AI, Iot, 빅데이터, 자율 물류, 자동 품질관리 등을 통해 생산, 검사, 물류, 설비유지관리 보수까지 전 과정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공장을 말한다. 불이 꺼져 있어도 로봇과 시스템이 스스로 생산하고, 설비 상태를 예측해 정비하고, 품질 이상을 자동 감지하며, 자재 공급과 출하까지 자동으로 진행되는 공장이다. 중국은 이미 정부와 민간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불 꺼진 공장에서 울려 퍼지는 기계음은 단지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제조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신호이기도 하다. 불 꺼진 공장들은 중국 제조업의 체질을 지능화, 고효율화, 친환경 등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샤오미는 중국 다크 팩토리 시대를 상징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자동화, 디지털화, 친환경화 키워드를 가장 빠르게 현실로 구현해 나가고 있다. 다크 팩토리의 조건은 첫째, 완전자동화이다. 생산, 조립, 검사, 포장 등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어야 한다. 둘째, 지능형 데이터시스템이 되어야한다. Iot 센서, AI 분석으로 설비 상태, 품질, 생산성을 실시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자율 물류시스템 구축이다. AGV, AMR, 로봇팔 등이 자재 및 제품을 자동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디지털 트윈, 예지 보전이다. 즉, 자동화, 지능화, 무인 경영 등 세가지가 모두 결합되어야 진정한 다크 팩토리가 된다. BMW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은 차체 용접, 도장, 조립 공정 대부분이 로봇으로 운영된다. 조명 없이도 로봇이 비전 센서로 작업을 수행하여 불 꺼진 공장이 성립되는 것이다. AI 기반으로 불량률을 예측, 감소시키는 생산체계인 것이다. 테슬라 기가팩토리는 배터리 셀 조립부터 완성품 포장까지 자동화율 90% 이상이다. 생산 공정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중앙 AI 서버에 연결되어 공정 자동 조정되는 체계이다. 인력은 모니터링과 유지보수만 담당한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라인은 웨이퍼 이동, 장비 로딩, 품질 검사까지 완전 자동화이다. 조명이 거의 꺼져 있는 상태에서 AMHS(자동물류시스템)으로 물건을 운반한다. 실질적 다크 팩토리 형태로 운영 중이다. 다크 팩토리는 생산성, 품질, 비용, 안전, 지속가능성의 효과를 기대한다. 24시간 운영과 인력 제약 없는 가동으로 최대의 생산 가능 공장이 되는 것이다. AI, 센서 기반 실시간 품질관리가 가능하다. 전 생산라인 자동화로 인건비 절감, 불필요한 낭비 제거가 제조 경쟁력에 큰 차이를 둘 수 있다. 위험공정에서 인력 배제, 에너지 효율 향상, 탄소배출 최소화 등 초미래 경쟁력인 다크 팩토리를 준비해 나가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0-21

가을 들판에서

시월 들어 거의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의 연속이다. 맑고 높푸르러 가는 하늘에 부신 햇살과 서늘한 갈바람으로 알곡이 여물고 고운 단풍이 들어야 하는데, 때아닌 음습함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기후변화의 일종인가? 갈수록 변덕을 부리는 이상기후가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와 들쭉날쭉한 경제상황과 엇비슷해 의아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제 곧 상강(霜降)이 지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하늘은 한결 투명해지고 결 고운 가을빛이 천자만홍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태풍 하나 없이 무덥고 길었던 여름날을 보내선지 가을이 주춤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들판의 오곡백과는 풍성하게 익어가고 산자락의 밤송이는 저절로 벌어져 밤알이 떨어지고 있다. 그에 맞춰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나날 속에서 조금씩 크고 작은 일들의 매듭이나 행사가 벌어져 가을날이 한결 풍요로워지고 있다. 한 해의 성과를 차츰 갈무리하면서 새로운 해의 계획을 구상하는 4/4분기에 접어드는 때라 결실과 수확으로 더 큰 진취의 발판을 삼기도 한다. 그래서 사뭇 가을이 중요하고 고대되는 것일까? “푸르청청 일렁이던/들판의 화폭에는//손길 눈길 발길 더해지고 겹쳐지고 땀방울 빗방울 스며들고 맺히더니 햇볕에 다독이고 바람이 쓰다듬어 별빛이 내려앉고 달빛이 어루만져 무럭무럭 우렁우렁 자라고 부풀고 돋아나고 뻗어가고 피어나고 열매 맺어 알알이 색조 입고 켜켜이 곡조 타며 설레어 맴돌고 자분자분 익어가네//조각보/정갈함 마냥/곱다랗게 수놓네” -拙시조 ‘가을 들판’ 전문 산에는 아직 갈빛이 성글지만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며 넉넉하게 넘실대고 있다. 농부의 마음으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애틋하게 돌보며 보듬고 키운 작물이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섭리 같은 일이지만, 그러나 춘화추실(春華秋實)은 단순하다거나 누구에게 저절로 쉽게 주어지는 일이 결코 아닐 것이다.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한 자양분과 세심한 보살핌으로 쉼없이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애써 키우는 손길과 남모를 땀방울이 있어야만 알곡이 단단히 여물고 귀한 열매로 맺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이 계획하는 대소사나 학업, 사업, 목표, 노력, 성취, 성과 등 일련의 산물도 크게 보면 춘화추실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씨를 뿌려놓고 가꾸거나 추스르며 거두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함은 자명한 이치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하듯이(春不耕種秋後悔), 일이 비록 작더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고(事雖小 不作不成) 꾸준히 노력하고 추구하며 시도하는 자에게는 늘 새로운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먹기와 의지, 남다른 노력여하에 달려있다. 벌써부터 주변에서 들려오는 각종 발표와 수상, 출간과 성취 등의 소식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짐짓 의아해하기도 한다. 거의 비슷하게 새날의 걸음을 내디디며 여기까지 왔는데, 움켜잡은 손에서는 모래알만 빠져나간 듯하니 너무 안주하고 소졸한 발길 탓일까? 70여 일 남은 연말까지 작은 열매 하나라도 애써 거둬야 하리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0-21

폭력으로 얼룩진 세르비아 명가 ②바람 잘날 없는 세르비아공국

독립투사 블랙조지 목을 잘라 오스만제국 술탄에게 바친 후 세르비아 권력을 독차지했던 밀로쉬는 경제가 바닥을 치자, 불랙조지 추종자들과 러시아는 물론 오스만 술탄에 의해 1839년 6월 루마니아의 왈라키아로 망명길을 떠났다. 이후의 세르비아는 왕위 계승문제로 바람 잘날 없이 9개월을 보내야 했다. 결국 17인의 귀족위원회, 즉 섭정단은 이제 막 열여섯 살이던 밀란의 동생인 미하일 오브레노비치를 허수아비로 앉혀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하일은 이마저도 오래 누리지 못했다. 이들은 지난날 반란군의 선두에서 에니체리와의 싸움을 벌이던 블랙조지의 향수를 잊지 못했고, 결국 미하일을 쫓아내고 블랙조지 가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첫째가 블랙조지 후손 알렉산더 카라조르제비치(카라조르지예)란 인물이다. 그러나 그 역시 밀로시 아들이나 동생처럼 의복만 번지르르 했지 실권이라곤 없었다. 그래도 세르비아 왕가의 반열에 당당히 오르면서 일약 대대로 왕족 칭호를 받으며, 더 밀로시 가문과 쌍벽을 이루며 경쟁관계에 돌입하게 된다. 그가 16년 동안 왕좌에 있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았을 뿐 스스로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었다. 그 역시 17명의 대리인에 불과했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를 보다 못한 세르비아 민중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승자는 역시 17인의 위원회였다. 이 일로 조르지예는 크네즈에서 물러나야 했다. 웃긴 것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 17인 위원회에 의해 루마니아로 도망친 밀로쉬 오브레노비치였기 때문이다. 블랙조지 후손들은 또다시 절치부심 타국 땅을 전전하면서 와신상담, 재기의 기회를 노리며 풍찬노숙을 이어가야 했다. 1860년 밀로쉬는 아들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츠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물러난다. 아들 미하일로도 권력 맛을 보게 되지만, 권력의 중심에는 여전히 위원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1868년 세르비아니즘 이상을 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던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츠가 암살당한다. 이제 세르비아 권좌는 그의 사촌인 열네 살 밀란 오브레노비치가 크네즈에 올랐다. 그러나 어린아이였던 밀란은 10년 뒤 의외의 업적을 남긴다. 1878년 3월 산 스테파노 조약에 의해 믿었던 러시아가 친 불가리아로 돌아서자 친 오스트리아로 급선회한다. 그해 6월 베를린조약에 의해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 영향 하에서 온전히 독립국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1878년 6월과 7월에 있었던 베를린조약은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를 겁박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도이칠란트, 터키가 참가한 베를린회의에서 맺은 조약이었다. 이때를 기회로 헝가리를 병합해 이름도 이상한 이중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터키제국 영향에 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스부르크왕가 아래 편입해 버린 후, 1908년이 되면서 완전한 합병에 성공한다. 세르비아 국민은 지난날 스테판 듀산에 의해 만들어진 세르비아 영원한 국경선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세르비아는 조국독립의 길목에서 강대국들과 어깨들 당당하게 혹은 대등하게 하리란 대망의 꿈은 한낱 물거품으로 변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자신들 땅으로 만들지 않고선 대세르비아주의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보스니아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항쟁이 간간히 일어났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질 뿐이었다. 오스트리아로선 세르비아니즘이든, 유고슬라비즘이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더구나 세르비아 정권을 잡고 있던 밀란은 친오스트리아를 향했고, 경제 역시 오스트리아에 의존했다. 이후 밀란을 치욕적이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밀란은 장가를 아주 잘(?)들었다. 사사건건 왕비 나탈리야 간섭은 왕으로 하여금 진저리치게 했음직하다. 왕비는 기세등등하게 일국의 왕인 남편을 우습게 알았다. 급기야 참다못한 왕이 왕비를 나무랐고, 가정폭력이 일어났다. 나탈리야는 어린 아들 알렉산드를 데리고 왕궁을 훌쩍 빠져나가 친정으로 가버린다. 일국의 왕이 가정 하나도 건사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기는 세르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들 수 없었던 밀란은 그럭저럭 왕좌는 유지했지만, 대인공포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잖아도 비실대던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눈치만 살피던 그는 아들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 몰라라 뒷방 늙은이로 들어앉는다. 1889년 13세 아들을 대신해 어머니 나탈리야의 대리청정이 이어지자 아들은 권력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마치 고려 7대 목종을 떠올리는 사건이었다. 어머니 천추태후의 기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다가 결국 동성애에 빠져버린, 대장군 강조에 의해 목이 달아난 불우한 왕처럼 말이다. 풍족한 궁궐생활에 시간이 남아돌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스캔들이다.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는 파티에서 자신보다 열한 살이나 연상인 콜걸 출신 드라가 마신을 만나 결혼한다. 그러자 이제는 드라가 마신 가족들이 왕궁을 드나들며 온갖 부조리를 저지르기에 이른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0-21

가장 단순한 리듬

다리를 다친 지 3주째다. 처음에는 며칠만 버티면 낫겠거니 생각했지만 붓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온 세상이 멈춘 듯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의 햇살만 바삐 움직였고 나는 그 속에서 고여 있는 물처럼 하루를 흘려보냈다. 시간을 채워보려 애썼다. 책을 읽고 그동안 못 본 영화와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밀린 글도 써 보았다. 그런데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흘렀다. 첫 직장 생활을 하는 아이들 염려,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해 조급해진 마음, 내가 책임져야 할 역할에 대한 부재 등의 생각으로 아무리 화면을 넘기고 문장을 써 내려가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갑갑함이 가슴 속에서 둥둥 부풀었다. 그때 주방 식탁 한쪽에 놓여 있는 멸치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명절에 시누이가 많이 샀다며 나누어 준 멸치였다. 별생각 없이 식탁에 앉아 멸치를 한 줌 꺼냈다. 신문지를 깔고 작은 접시를 옆에 두었다. 그리고 한 마리씩 집어 들어 머리와 내장을 떼어냈다. 처음에는 그저 손을 움직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움직임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멸치를 다듬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손끝이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은 고요해졌다. 작은 생선의 은빛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거실 안에 바다 냄새도 퍼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힘들다고 쉬어라고 했지만 나는 그 평온함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작은 멸치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짠 냄새를 맡으며 문득 깨달았다. 인생이란 것도 결국 이런 손끝의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붙잡고 산다. 해야 할 일, 관계의 의무,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 그 모든 것들이 내장처럼 붙어 있어 마음을 무겁게 하고 비릿하게 만든다. 하지만 멸치의 머리와 똥처럼 떼어내야 더 맑아지는 것들이 있다. 불필요한 감정, 의미 없는 걱정, 내가 만들어 놓은 확증편향, ‘이래야만 한다’는 고집들. 그것들을 하나씩 떼어내자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요즘 뭐해, 다리는 좀 어때?”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멸치 따.”“그게 재밌어?”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머리가 맑아졌어.” 단순한 손의 리듬이 나의 빈 시간을 채워주었다. 생각할 것도 비교할 것도 없었다. 단순함이 결국은 마음을 맑게 했다. 단순하다는 건 단조롭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며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세상을 다 가지려 할 때는 늘 모자라지만 덜어낼수록 오히려 충분해지는 역설의 리듬을 깨닫게 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때로 얻는 것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남아 있던 고요한 공간을 발견한다. 그곳엔 욕망도 후회도 없고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 하나뿐이다. 그 마음이 나를 조금씩 자유롭게 만들었다. 깁스한 다리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고요를 느낀다. 예전엔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 내 몸이 두 개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는데 지금은 느리게 흐르는 구름의 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그 느림이 내게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세상은 늘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단순하게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지만 멀리서 보면 한결같이 출렁인다. 우리의 사는 모습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 해도 끝내는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다만 그 리듬을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 한다. 오늘도 멸치 한 줌을 집어든다. 똥을 따고 머리를 떼고 그릇에 가지런히 모아둔다. 단순한 손의 움직임이 내 마음의 박자가 된다. 어느새 시간은 아주 고요히 흘러가고 나는 그 리듬 속에 놓여 있다. 깁스한 다리로 꼼짝 못하는 이 시간, 나는 삶의 또 다른 속도를 배운다. 단순한 일 속에서도 마음의 음악은 흘러나온다. 인생도 가장 단순한 리듬으로 갈 때 가장 조화롭고 가장 나답게 흐르는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0-21

배 운항을 멈추면 울릉도 주민 삶도 멈춘다···'고립의 바다'는 국가 책임

겨울바다가 열리면 울릉도는 다시 고립된 섬이 된다. 포항·강릉·묵호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배들이 하나 둘 멈춰 섰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재현되고 있다. 대저건설의 ‘썬라이즈호’가 11월 9일부터 무기한 휴항에 들어가고, 강릉·묵호 노선도 11월 초부터 내년 3월까지 중단된다. 여기에다 울릉크루즈마저 12월 8일부터 15~20일간 정기검사로 멈추면 울릉도는 사실상 육지와 완전히 단절된다. 주민들이 말하는 “단절의 두려움”은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주민 김모씨는 “삭풍 몰아치는 울릉도에서의 겨울살이는 정말 힘든데 특히 이때 많이 아프면 정말 절단“이라고 말했다. 배는 이미 끊겨 있는데다 응급환자를 수송할 헬기도 날씨가 궂으면 뜨지 못해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며 걱정했다. 기존 엘도라도호에 이어 썬라이즈호까지 멈춘 대저건설의 결정은 기업의 책임 의식을 의심케 한다. ‘임대 종료’, ‘정비 불가’라는 명분 뒤에는 주민의 절박함을 외면한 경영 논리가 자리한다. 기업은 효율을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공공항로를 운영하는 순간 그것은 공익의 영역이다. 그들의 배가 멈추는 것은 곧 울릉도 주민의 삶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여객선 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돼 왔다. 법제화는 더디고,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다. 예비선 확보는 의무가 아니며, 대체 운항은 선사의 ‘선의’에 맡겨져 있다. 최근 2년 간 전국 도서 지역에서 여객선 운항이 끊긴 사례는 33건, 누적 405일에 이른다. 섬 교통의 단절은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뱃길이 끊기면 관광객도 사라지고, 그것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이 상황에서 ‘울릉도 관광 활성화’라거나 ‘독도 수호의 전초기지’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관광 비수기를 이유로 선사들이 운항을 줄이고 휴항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노선의 운항 중단을 경제 논리로만 판단하도록 방치한 것은 정부의 무책임이다. 수지타산만 따지는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적자 보전과 긴급운항을 보장해야 한다. 섬의 교통권은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공공의 의지로 지켜야 한다. 정부는 긴급 운항비 지원제, 예비선 확보 의무화, 대체운항 책임제 등을 법으로 정비해야 한다. ‘공영제’라는 이름만 붙은 제도로는 섬의 겨울을 견딜 수 없다. 울릉도의 겨울 바다는 늘 험했지만, 올해의 바다는 유난히 거칠어 질 것 같다. 정부와 해운사, 그리고 울릉을 관할하는 경북도지사와 울릉군수 모두가 이를 직시해야 한다.

2025-10-21

바람피우면 단명한다?

‘건강하게’라는 전제 조건만 붙는다면 오래 살고 싶은 건 대다수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욕망이다. 그렇기에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는 오랜 기간 지속돼온 과학계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는 건 다양한 사례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80.6세. 여성은 이보다 5.8년이 더 긴 86.4세였다. 실제로도 우리 주변을 보면 장수하는 여성을 오래 사는 남성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외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이성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과도한 것이 한 가지 이유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독일의 한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포유류와 조류 1176종의 데이터를 분석해 성별에 따른 수명 차이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내용 중엔 다음과 같은 추정이 담겼다. ‘짝짓기 경쟁은 동물의 수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포유류일수록 수컷의 수명이 눈에 띄게 짧다.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한 필사적 경쟁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번식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그 대가로 자신의 수명을 깎아 먹는 셈이다.’ 위는 고릴라 등 영장류의 사례를 분석한 것이지만, 인간이라고 크게 다를까?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적·정신적 에너지는 다른 어떤 것 보다 크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장수하려면 일부일처제를 성실하게 따르라’는 조언이 나올 것도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1

저질 정치의 민낯 길거리 현수막

태극기의 물결이 아닌 현수막의 물결이 넘쳐난다. 펄럭이는 현수막은 정치라는 바닥에 발들인 자들의 ‘일방적 자기선전’의 메아리이다. 길가의 아름다운 가로수를 감상할 틈을 주질 않는다. 특히 명절을 전후해서는 더 난리다. 운전에 집중이 안된다. 우리들의 고요하고도 맑은 시선은 온갖 종류의 정치인들이 도배한 현수막에 의하여 잠식당하고 더럽혀진다. 도심을 나서는 순간 이내 기분이 잡친다. 어질어질하다. 내용은 또 어떤가. 정치 초보들은 뭐 그렇다 치자. 기성정치인의 경우는 더 가관이다. 좌. 우가 다를 것도 없다. 누가 이런 저질 정치판을 보고 싶어 하기나 하나. 나름 양질의 정치를 위하여 노력해 봤자 헛수고다. 수준 이하의 현수막이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결국은 정치에 관심을 끊게 만든다. 정치가(사실은 정치가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다)가 거리의 벽을 점유할 때, 시민은 마음의 벽을 쌓는다. 저질 현수막은 시민의 맑은 눈을 흐리는 민주주의의 독이다. 거리의 현수막은 정치의 미숙함을 넘어 시민의식의 피로함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저질 정치의 현수막 난장은, 시민들이 평온하게 거리를 걷고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침해한다. 정치의 품격 따위는 개밥그릇에 던져 버린 지 오래다. 애당초 품위 있는 정치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제발 나의 평온이나 침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행복추구권이 천부인권임을 선언하고 있다. 행복할 권리 중, “보기 싫은 것을 안 볼 권리”가 있다. 누군가에게, 듣기 싫은 말을 지껄이고, 먹기 싫은 음식을 권하고, 보기 싫은 걸 보게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자 범죄가 아니겠는가. 여기에 왜 면죄부를 주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듣기 싫은 말과 보기 싫은 언어를 현수막에 똥처럼 싸지르는 저질 정치 현수막을 거부한다. 누가 보고 싶다 그랬나.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 예의다. 보기도 싫은 사람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것은 무례이자, 명백한 행복추구권 침해다. 하버마스는, ’공론장 구조변동(위르겐 하버마스 저. 1961.)‘에서, ’공론장이 사적이익의 홍보장으로 퇴락할 때 민주주의는 병든다‘고 진단했다. 현수막 정치는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허상‘이다. 그것은 참여를 가장한 일방적 선전이며, 시민의 눈을 빌려 정치인의 자아를 비추는 교묘한 법의 우회다. 도심의 미관을 훼손하고, 시민의 시각과 공간을 강제 점유하며, 공공의 장소를 개인의 선전장으로 변질시키는 행위는 시민의 정신적 환경을 침해한다. 이건 ’시각적 소음‘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한 힘은 조용하지만, 허약한 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든다‘고 했다. 정치인의 현수막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 정치인이 위기에 빠졌다고 스스로 외치는 꼴이다.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이미지정치, 홍보 정치의 현수막은 사라져야 한다. 현수막에 가려진 도심의 풍경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고, 시민의 눈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기를 바란다. 진정한 정치는, 끊임없는 소통과 실천에 걸려있지, 현수막에 걸려있지 않다. /공봉학 변호사

2025-10-20

기묘한 하마 사태

손가락에 묻은 액체의 산도(酸度)를 측정지로 쟀다. 중성이다. 한데, 왜 조금 끈끈할까. 아무리 머리 굴리고, 기억창고를 뒤져도 액체가 생긴 연유를 알 수 없다. 귀신 곡할 노릇이다. 무색무취인 걸 보면 기묘하기까지 하다. 방바닥의 보일러 배관은 탈이 없고, 천장이나 벽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또 4반세기나 사용한 전기 매트에서 액체가 나올 리 없고, 누가 쉬를 하지도 않았다. 끈적하니까 습한 날씨로 찬 방바닥에 응축된 물도 아니다. 가슴 답답하다. 마침 손자를 데리고 집에 온 둘째 아들은, 매트 코팅 성분이 오래되어 변질이나 화학 반응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암튼, 이해 불가다. 냉가슴 앓으며 일단 오염된 매트를 들어내 뒤집어 깔았다. 바닥에 닿았던 면(面)을 대여섯 번도 더 물걸레로 훔치고 닦아냈다. 질긴 섬유 원단에 은(銀) 코팅한 면이어서, 아무리 꼼꼼히 닦아내도 안에 스며든 액체는 다 제거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매트 전원을 켜고 저온으로 수 시간을 두어도 마르지 않았다. 젖은 방바닥은 같은 방법으로 다 닦아냈다. “어!”하는 한탄이 났다. 이불장 문을 연 순간 터진 시각 무조건 반응이다. “이럴 수가?”, “맞아! 바로 그거였어.” 하는 속말도 이어졌다. 이불 갈피에 ‘물먹는 하마’가 흰 종이 입을 벌리고 수직으로 서서 노려보는 게 아닌가. 들킨 ‘하마의 난리 현장’이다. 매트에 깔아 눅눅해진 보(褓)를 바꾸려고 이불장을 연 참이었다. 하마 입이 이불장 문 안쪽 면과 맞붙어 있다. 두 주 전쯤, 가을 날씨에 쓸 이불을 보겠다고 아내가 문을 열었던 기억도 났다. 그새 하마 배는 텅 비었다. 지난봄, 작은 방 이불장의 이불 갈피에 ‘물먹는 하마’ 두 개를 습기 보호막을 뗀 뒤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수평으로 넣어 두었었다. 그러고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이불장 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닦았는데도 방바닥은 마르면 매트 원단 결 흔적이 남았다. 할 수 없이, 바닥에 헌 신문지를 두세 겹 깔아 그 위에 매트를 놓고 우선 지내보기로 했다. 사태의 원인은 차차 찾기로 마음먹었었다. 기묘하다. 물먹은 하마에서 샌 200cc가 넘을 염화칼슘액이 이불을 하나도 오염시키지 않고, 문 안쪽 면만을 타고 내려와 방바닥과 매트 사이에만 스며들게 한 누출 경로와 각도, 작용 된 물리적 힘 같은 사실들이···. 화학분석실험도 오래 했던 내가 이 이해 불가 사태 앞에서, 결정적 단서 물먹는 하마를 기억해내지 못한 무심함도. 이불장 안의 이불들과 아래 서랍장의 옷들이 죄다 오염되었더라면, 사태는 감당이 불감당이었을 터다. 십 여일 후, 매트를 들어내 욕실에 수직으로 세워 오염된 면을 수돗물로 충분히 씻었다. 하루를 말린 후 다시 깔았다. 사태 수습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아까운 시간 이틀을 들였지만, 원인을 찾아 기쁘고, 매트를 계속 쓰니 다행이다. 우리 사회도 6년째 계속되는 부정선거 주장이 말하듯, 국가기관들이 ‘기묘한 하마 사태’처럼 국민을 기만하는 비민주적 일들을 벌인 의혹들이 여전하다. 그러니 온 국민이 늘 깨어 곳곳을 살펴서 정치권과 지도층, 언론들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고 국민주권 행동에도 나서야 마땅하다. /강길수 수필가

2025-10-20

이 예감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언제나 옳기만 할 수는 없다. 그의 생각, 결정, 행위에는 늘 제대로 되지 못한 것들이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진리였던 것이 환상임이 밝혀지고 환영 속에 가려진 진실이 폭력의 장막을 찢고 밝은 제 모습을 나타낸다. 벌써, 시월도 넷째 주씩이나 되었다니. 그토록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답답한 시간이,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벌써 12월도 한 달 몇 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니. 그는 그 세월을 다 어떻게 견뎠을까. 세상이, 진실이 거꾸로 뒤집힌, 피가 거꾸로 솟아도 시원찮을 세월을 어떻게 다 참아낼 수 있었을까. 바깥을 버젓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이렇게 고통이 폐부를 찌르는데, 그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의 거짓과 적반하장을 어떻게 다 참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가을이 깊어가자, 바야흐로 세상은 다시 바뀌고 있다. 시작인가 싶던 게 끝이 보이고, 영원히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았던 게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화려한 화장이 벗겨지고, 사람들은 거짓된, 추악한 ‘맨 얼굴’을 드디어 알아차리고들 있다. 그 사이에, 가담과 추종과 배신과 비겁과 움추림의 몸짓들, 표정들이, 거짓 ‘언어술사’들의 분식조차 무력화된 자리에서, 벌거벗은 제 알몸을 부끄러워들 한다. 고독은 참 좋은 친구이지만 벌써 내 곁에서 떠나갈 채비를 한다. 어느 것 하나 진짜인 게 없는 이 가짜 체제, 세상 속에서 벌써 그게 가짜임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반갑지 않다. 진정으로 좋은 것은, 진실에 가까운 것은, 하늘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것처럼, 진실을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마치 아름다운 시를 한 편 써놓고 혼자서만 입안에서 공 굴리며 기뻐하다 단물이 다 빠져서야 남들 보라고 내놓는 외로운 시인처럼, 나는 더 오래, 황홀한 고독에 머물러 있고 싶다. 그 겨울에서 이 가을에까지 나는 지독한 세월을 보냈지만, 그것은 증오와 반목의 힘으로는 세상을 옳게 세울 수 없음을, 불의로는 정의를 이룰 수 없음을 말해온 것뿐이었다. 세상은 언제까지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싸움을, 폭력을, 거짓을 동원할 텐가? 어찌하여 이상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가 짓밟혀야 하고, 구원이라는 목표 아래 복종이 강요되어야 하고, 진실이라는 선전 속에 거짓이 설파되어야 하는가? 그 비속한 위선이 어찌하여 수단을 얻고 조력을 받아 풍랑 속에 든 배를 가라앉히려 하는가? 어느새 미친 폭풍우 불어닥치던 바다에 많고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으니, 이는, 비의(秘意)의 알레고리처럼 느끼 수 있는 자만 느끼는 것인가? 나만 이 기운을 느끼는 것인가?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반대로 기대에 찬 눈빛을 주고받는 것, 태평양 넓은 바다 너머에서, 남지나 해상의 소문 너머에서 이곳을 향해 불어오는 새 바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새벽까지 올해 작고한 김영현을 읽었다. 그의 ‘열세 번째 사도’(푸른역사, 2023)를 다시 넘겨보며 그도 무척이나 외로웠으리, 생각한다. 자신이 믿고 추구한 것들이 보물의 사상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그는 ‘예정된 악인’ 유다의 운명을 안타깝게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잠깐 눈 붙이고 새로 뜨니, 계절이 정녕 새로워지려는가. 어둡고 우울하던 하늘이, 반짝, 개어 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0-20

‘경산대추축제’가 남긴 것

세상의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혹 ‘미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이 미완성도 하나의 끝과 시작은 분명하다. 시작과 끝은 서로 보완의 관계로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고, 끝이 좋다면 시작에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경산시는 ‘제14회 경산대추축제 & 농산물 한마당’을, 청도군도 ‘2025 청도반시축제와 2025 COAFE 청도 세계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 축제의 평가는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어쩌면 그 결과는 이미 시작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청도의 축제는 10월에 접어들며 분위기 띄우기에 돌입했지만, 대추 축제는14일 오후에 기자에게 보도자료가 전달되는 등 개최 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지역의 축제 목적은 분명하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나 농특산품을 널리 알리며 지역민과 방문객들이 다 함께 즐기며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먼저 호응이 이어진 청도의 축제장에는 개막부터 끝날까지 어린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에 어린이를 태운 젊은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붐볐다. 즐길 거리와 먹거리도 넘쳤고, 풋풋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경산의 축제장에는 나이가 지긋한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방문객들도 “보고 즐길 것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에는 더욱 선명하게 축제장의 모습이 갈렸다. 날씨는 엇비슷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던 대추축제장과는 반대로 반시축제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 축제를 즐겼다. 축제 구성도 한쪽은 특산품 판매에만 열을 올렸고, 다른 한쪽은 축제를 느끼며 지역의 특산품을 스스로 구매하도록 짜여진 모습이었다. 결실의 가을이 깊어가면서 도내에 각종 축제가 잇따르고 있다. 저마다 특성을 자랑한다. 다들 남다른 열정으로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물론 축제에서 행사장을 찾은 사람 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준비와 진행 과정의 최선,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다녀보면 감으로 알 수 있다. 축제의 개막식과 폐막식에 부른 초대 가수가 누군가로 급을 메기는 것이 아닌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먹거리의 다양성으로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 진정성이다. 청도의 올 반시축제는 다음 축제가 기다려지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반면 대추축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시간만 지나가면 되는 마친다는 그런 행사로 다가왔다. 다음 제15회 경산대추축제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시작부터 끝까지 방문객을 위한 축제로, 대추 생산 농가만을 위한 축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10-20

놀이터 단상

집 앞 놀이터를 갔다. 두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타던 자전거는 던져둔 채 바닥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 폰으로 하는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하다. 바닥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우레탄을 깔아놓아 푹신하다. 어릴 때는 몸을 많이 쓰고 놀아야 한다고 들어 왔는데,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는 그 역할을 잃은 듯하다. 손녀가 팔을 신나게 흔들고 뒤뚱거리며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다칠까 염려되어 함께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둘이 앉아 있다. 손에는 어김없이 휴대폰이 들려 있다. 주고 받는 말도 없이 서로의 폰으로 눈이 빨려들 듯하다. “내가 먼저야.”를 외치며 손녀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다. 나도 뒤따라 원통형의 틀에 몸을 던져 넣었다. 밑에서 기다렸던 아이는 다시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작은 몸을 흔들며 달린다. 간간히 내가 따라오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뒤뚱대며 걷는 모습이 귀여워 혼자 웃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놀이터에서 아이 혼자 신났다. 아이와 미끄럼을 타면서 초등학생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그 당시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를 많이 했었다. 점심 시간이나 방과 후 운동장에는 군데군데 무리지어 고무줄을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줄을 잘 넘는 아이들은 인기가 있어 서로 자기편을 만들려고 때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그럴 때 꼭 등장하는 것이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었다. 날카로운 것을 들고 와 놀고 있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던 그 시절의 유치함이란. 그런 아이들을 잡겠다고 씩씩대며 따라 뛰었던 내 모습이 살포시 떠올랐다. 장난감이 많지 않았던 시절의 놀이였다. 요즈음 아이들은 주로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남자아이들은 게임을 많이 하고 여자 아이들은 SNS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셀카도 자주 찍어 올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셀피(selfie)라는 용어가 영어책에 등장하고 있다. 셀피는 폰으로 자신의 자화상이나 짧은 영상을 찍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생일을 맞아 모인 아이들도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각자의 폰을 보고 있다. 혹 폰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 옆에 붙어 앉아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게 현재 학생들의 놀이문화라고 한다.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속에 염려가 담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바뀌어가는 시대를 무시할 순 없지만 게임이나 폰에 지나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 적절한 폰 사용 시간을 두고 아이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집이 많다고 한다. 집 근처의 육아지원센터에서 아이들 교육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공모전을 열었다. 당선작 중 옛 놀이문화를 재현해서 발전시키기로 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실뜨기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긴 털실을 묶어 원을 만들고 두 손을 이용해 혼자 실뜨기를 하셨다. 손끝에서 다양한 무늬가 만들어지면 만화경을 보는 것 같이 신기해서 배우고 싶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동생과 둘이 실뜨기를 하면서 놀던 기억이 새로웠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기 위해 먼저 혼자 하는 실뜨기 영상을 보았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놀이를 동영상으로 보며 익힐 수 있으니 기계의 발달을 무시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원활한 놀이를 위해서는 계속 보고 익혀야 했다. 지역아동센터에 실뜨기 놀이를 하러 갔다. 실뜨기실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가장 쉬운 방법부터 천천히 설명하였다. 곧잘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저학년 여자아이들은 손에 힘이 없어서인지 자꾸 실패했다. 가는 손가락에 힘이 실리지 않으니 실이 처지면서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공한 아이들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이다. 되풀이해 보면서 못하는 옆의 아이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가르쳐준다. 건전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역시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변화하는 시대를 따르되 건전한 놀이 문화를 형성해야 하는 것은 교육 현장 뿐 아니라 각 가정에서도 심각히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한 놀이터엔 아이의 웃음만 미끄럼틀 위에 앉아 있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0-20

21세기 소문의 벽

‘소문의 벽’은 1971년에 발표된 이청준의 중편 소설이다. 잡지사 편집장인 ‘나’가 우연히 만난 박준이라는 소설가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병을 악화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박준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였지만, 진술 공포증에 걸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는 환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나’는 박준의 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그 위협의 실체가 전짓불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6∙25가 일어나던 해 밤중에 들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고 ‘좌’냐, ‘우’냐 묻는 정체 모를 사내들에게 느꼈던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오히려 그 전짓불을 들이대는 치료법을 택하고 박준은 병원을 도망쳐 나가 버린다. 여기서 소문은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비이성적인 이념이고, 벽은 진실이 억압된 상태를 말한다. 박준은 이런 현실에 저항하여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 전짓불의 공포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어서 병에 걸린 것이다. 20세기의 소문의 벽은 진실을 구속하는 존재였지만, 그래도 저항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소문의 벽은 다르다. 며칠 전 연달아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하나는 학계에서 발표된 논문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김예지 국회의원이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철회했다는 뉴스다. 17일 뉴스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가족 동의 없이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게 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개정안’을 철회했다. 미국 극우 인사인 고든 창 등이 이 법안을 두고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악의적인 왜곡된 정보로 장기 기증을 신청한 분들과 그 가족들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신청을 취소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16일 소식은 코로나 백신이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논문에 대해 정재훈 교수가 반박하는 영상이다. 이 논문은 지난 9월 26일 꽤 괜찮은 학술지에 발표되었는데, 정규 연구는 아니지만 학문적 연구 범위에 부합하는 보편적 주제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 원문 조회 수가 학술연구로는 폭발적이다. 지난 20 여일 간 19만 회를 넘었다. 이런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도 항간에는 백신을 맞아서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으니, 그런 소문을 확인해주는 연구가 된 셈이다. 두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소문이 정치권력자가 아니라 민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어느 정도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재훈 교수가 암이 발견되려면 발생한 지 최소 1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리는 데 비해 코로나는 감염되자마자 증상이 나타나 바로 발견되는 질병이고, 백신 접종자가 병원에 갈 확률이 높으므로 이것만 가지고는 백신 접종과 암 발생을 연관시키기 어렵다고 외쳐도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20세기 소문의 벽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무너질 수 있지만, 21세기 소문의 벽은 미디어를 타고 급격히 확산되고 있으니 어떻게 깨야 할지 갈 길이 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20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닌지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작업자들이 무정전 전원장치용 배터리를 옮기려다 화재가 발생한 화재로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아직 완전한 복구는 되지 않았다. 비상시 대체할 시스템도 없으며 행정 기록이 영구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 컴퓨터에 없는 파일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10월 17일 자로 보건복지부 장기조직혈액통합관리시스템을 복구했다. 정상 운영을 시작한 보건복지부의 장기조직혈액통합관리시스템은 장기이식 순번과 대기자 정보를 관리하는 행정 플랫폼이다. 이 전산망이 마비되자 병원과 환자들은 혼선이 빚어졌다. 시각을 다투는 환자와 가족들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피해가 어디 이것뿐일까. 17일 현재 1등급 복구율은 40개 중 31개 복구로 77.5%, 2등급 복구율은 68개 중 41개 복구로 60.3%, 3등급은 261개 중 138개 복구로 52.9%, 4등급은 340개 중 130개 복구로 38.2%의 복구율을 나타낸다. 정부는 1·2등급 시스템을 이달 말까지, 모든 시스템을 연말까지 복구한다는 계획이다.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의 주요 데이터와 시스템을 통합 운영·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정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총괄한다. 대전을 비롯하여 광주와 대구 3곳에서 전산 시스템을 나누어 운영한다. 대전 본원은 국가 정보시스템의 3분의 1 이상을 관리하는데, 화재로 정부24를 비롯한 647개 시스템이 중단됐다. 같은 시스템을 다른 곳에 두는 쌍둥이 서버가 아니라 서버 전환도 어려운 실정이다. 스마트 정부를 내세우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정부의 데이터 관리는 참혹하다. 백업 시스템 구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하드웨어 보강과 안전 점검도 소홀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공부문 클라우드 전환율은 45% 수준으로 85%의 세계 평균에도 크게 뒤진다. 정부 부처별로 국가 통계를 관리하며 부처 간 협조 부족으로 자료의 연계와 활용은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 업무망이 3년간이나 해킹을 당해도 몰랐으며, 어떤 자료가 유출되었는지도 모른다. 국정원이 17일 발표한 내용은 해커 조직이 다양한 경로로 행정전자서명(GPKI) 인증서 및 비밀번호를 확보하고, 2022년 9월부터 2025년 7월까지 행안부의 정부원격근무시스템을 거쳐 온나라시스템에 접속해 자료를 보았다는 것이다. KT는 해킹으로 무단 소액 결제가 장기간 이어져 왔으며, 롯데카드의 해킹 피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22년 SK C&C 판교 캠퍼스 화재로 서버 작동에 필요한 전원 공급이 끊겨 카카오의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이번 화재로 이를 나무라던 정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금융 및 통신 분야 보안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데이터 관리와 해킹에 대비한 인력을 양성하고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안전한 자료와 관리와 조선시대의 4대 사고처럼 만약의 경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안이한 생각으로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주위를 돌아볼 일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철저히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10-20

의사 과학자

의사 과학자란 의사면허를 가지고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직 의사를 뜻한다. 과학과 공학, 의학을 융합해 혁신적 치료법을 발굴하고, 신약 개발을 통해 의료기술을 향상시키는 막중한 역할을 맡는다. 우리나라 의사 양성과정은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 양성에만 집중돼 있다. 국내서 배출되는 연간 의대졸업생 3000여 명 가운데 기초과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졸업생은 전체 1% 미만이다. 연구비 지원이나 연구기회 부족, 임상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보수 등 제도적 미비로 의사 과학자 양성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의료기술과 서비스 수준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다만 의학발전을 뒷받침할 의료과학 분야에서의 인재 양성이 등한시되고 있는 게 문제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배출에서 이런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한국은 매년 전국 최고의 인재가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제도나 사회적 분위기라면 노벨 의학상 수상자 탄생은 기대 난망이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제도를 가진 일본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이미 여러 번 배출했다. 올해도 의사과학자이자 교수인 사카구치 시몬씨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미국과 공동수상을 받았으나 생리의학 분야에서 벌써 6번째다. 덧붙인다면 일본은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만 27번 나왔다. 포항의 포스텍이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요구한 지 꽤 오래됐다. 2022년에는 포항시민의 열렬한 응원 속에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위한 비전 선포식도 가진 바 있다. 지금 그 열기는 어디 간 것일까. 일본의 노벨 의학상 수상을 보면서 포스텍의 분발이 생각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0

모스크바 베이징 김포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 직항 항로가 모두 사라졌다. 그런 까닭에 만일 모스크바에 가고자 한다면,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야 한다. 최소 두세 시간을 경유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 국적 여객기가 아니라, 중국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기분이 썩 유쾌할 수는 없다. 지난여름 모스크바에서 나는 전쟁 분위기를 전연 감지할 수 없었다. 전선(戰線)이 남쪽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표정이나 발걸음에서 미세한 전운(戰雲)마저 감지할 수 없었다. 푸틴의 집무실이 있는 붉은 광장의 크레믈이나, 여전히 기막히게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과 백화점 건물 주변에 몰려든 관광객들의 얼굴은 밝고 화사하기가 비할 바 없었다. 모스크바 외곽의 ‘참새 언덕’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는 동계(冬季) 운동경기 경기 시설 공사에 나는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보았던 스키 점프대 공사가 눈에 들어온다. 모스크바 시민들을 위해 한여름에 진행되는 공사 진행 상황을 보면서 과연 러시아는 전쟁하는 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찾아들었다. 모스크바강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마천루 건물 군상이 오늘날의 러시아와 푸틴 그리고 모스크바를 실감 나게 입증한다. 지극히 현대적인 외양을 띤 초고층 건물들을 보노라니, 이곳은 전쟁과 무관한 별천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에 모스크바 한국 문화원의 박 원장이 ‘여기는 전쟁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동조한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정치가들과 기업가들, 부자들과 야심가들을 위한 거대한 난전(亂廛)이다. 일찍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사연극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1939)에서 전쟁의 본질은 돈에 있으며, 그것을 움켜쥐는 이는 권력자들임을 입증한 바 있다.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억척 어멈은 세 자식을 다 잃고, 포장마차마저 시들한 마당에도 내일을 향한 꿈을 놓지 못한다. 오늘날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는 중국인들로 항시 북적거린다. 어딜 가도 그들의 시끌벅적하고 거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로 소음을 발사하는 그들의 처세에는 어떤 야만적인 경이로움마저 내재해 있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자기네가 주인이나 되는 듯 활개 치는 모양을 볼라치면 야릇한 심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장시간에 걸친 귀로(歸路)에도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마침내 내가 아무런 부대낌 없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대한민국에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어도 풍습도 음식도 풍경도 익숙한 그곳에서 설령 나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을지라도 말이다. 모스크바발 여객기는 영종도가 아니라 김포에 스르륵 착륙한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광이 사뭇 다정하다. 서늘하고 음습(淫習)한 모스크바에서 한여름 열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김포의 한낮을 온몸으로 감촉한다. 나의 여정은 다시 이곳에서 대구를 거쳐 청도로 이어질 것이다. 어느샌가 육신도 정신도 치유(治癒)의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20

특검이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할 해답인가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던 50대 공무원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양평군 5급 공무원인 그는 양평 군청에서 아파트 개발사업의 개발부담금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친정어머니가 하던 양평 공흥 지구 개발사업에 특혜를 주지 않았느냐고 추궁당했다고 한다. 숨진 공무원이 남긴 유서는 참담하다. 그는 “치욕을 당하고, 직장 생활도 삶도 귀찮다. 정말 힘들다”라고 적어놨다. 그는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특검이 기억에도 없는 진술을 받아 억지로 조서를 꾸몄다” “모른다고 해도 계속 다그친다.”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특검이 당시 양평 군수였던 국민의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의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9월 검찰은 없어진다.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남는다. 검찰이 수사권을 마구 휘두르며 전횡해 왔다는 이유다.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최 상병 특검 등 세 가지 특검을 만든 것도 검찰 수사를 못믿겠다는 뜻이다. 수사를 경찰도 아닌 특검에 맡겼다. 모든 정부 조직을 장악한 집권당이 축하면 특검을 만든다. 야당마저 양평 공무원 죽음과 관련해 특검을 만들자고 하 니, 가히 특검 공화국이다. 특검은 본래 ‘국민 의혹 해소’와 ‘성역 없는 수사’라는 사법 정의의 ‘해결사’ 로 고안된 제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은, 정쟁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극한 대립을 증폭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단순히 수사 대상의 문제만 아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병폐인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 사법 화’가 악순환하게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는 수사기관이 정치적 의도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무기력하고, 권력자의 정적을 표적 수사한다는 의심이 검찰 개혁의 명분이 되고 있다. 같은 행위를 해도 권력자는 무죄, 야당 정치인은 유죄로 몰아간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이런 의심에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특검은 정권의 지휘를 받는 검찰과 경찰이 할 수 없는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게 애초의 취지에 맞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오히려 거꾸로다. 정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지만, 검찰에서 거세한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게 허용하는 게 다를 뿐이다. 양평 공무원의 죽음은 그 흔적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 무리한 수사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특검에는 다 주어졌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해결할 문제를 사법에 떠넘기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역할을 던져버리고, 정치를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다. 우리 편은 선이고, 정치적 경쟁자는 악이고,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뿔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가짜뉴스와 선동, 선전매체를 부추긴다. 검·경 등 수사기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오직 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수사기관을 정치 투쟁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일 사람을 요직에 앉혀, 그 조직을 장악한다. 이런 사법의 정치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특검이다. 원래 특검은 여야가 정치적 협상을 통해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를 비난하고, 검찰과 경찰조차 못 믿어 특검을 임명한다면, 그보다 더 중립적이라는 믿음을 주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오히려 정치적 색깔이 검·경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특검이 최근의 현상이다. 공수처도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가정 위에 만들 었다. 고위공직자,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할 때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검찰과 경찰보다 더 정치 중립적이었는지 의문이다. 이제 특검이 그 질문을 받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나쁘지, 사법, 수사 기관이 나쁜 건 아니다. 사법은 사법답게, 정치는 정치답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9

똘똘한 괴물

수도권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이달 15일 주택시장 규제에 나서면서 똘똘한 한 채에 집중 몰리는 투자 수요를 잡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똘똘한 한 채는 입지와 가치, 실수요 등이 뛰어난 주택을 이르는 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단순히 고가주택을 이르는 표현이 아니고 내재 가치가 뛰어난 주택을 뜻한다. 서울에서는 강남과 용산, 마포, 성동구 등지의 도심 역세권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본래는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강화와 대출규제 등을 피하는 방법으로 여러 채보다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투자 전략에서 나온 말이다. 시세 차익보다 장기 보유 시 절세 효과가 높고 자산상품 가치가 기대되는 주택이다. 그러나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자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시장의 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고 지방에서도 똘똘한 한 채를 사기 위한 자금이 서울로 쏠리면서 똘똘한 한 채는 똘똘한 괴물로 불리기도 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후 수도권 일대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25억 초과 고급주택은 주택담보 대출이 2억까지만 허용되고 반면 15억 이하 주택은 기존 한도인 6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담보가치가 역전된 현상이 생겼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력한 규제책으로 똘똘한 한 채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6

변호사 공장

변호사는 공익을 위한 직역인가, 사익을 위한 직역인가.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 변호사는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사법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공적 전문가이다. ‘법’은 우리 사회가 약속한 정의의 최소 단위이고, 변호사는 그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로서 법을 수호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사사건은 성공보수를 못 받는다. 대법원은 형사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의 인권보호와 형사사법의 실현에 있는데, 유·무죄의 결과를 기준으로 한 보수 약정은 변호사의 직무윤리에 반하고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시했다. 한편 변호사는 사익을 위한 대변자이다. 변호사는 개별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가 주는 수임료를 받아 생계를 꾸린다. 나라에서 나오는 공익 수당 같은 건 없으므로 개업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많이 하고 수임한 사건 의뢰인에게 승소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변호사의 사익 추구가 공익적 역할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의 절차적 방어권을 보장하며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누군가 떼인 돈을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법과 권리를 지키는 공익적 행위이기도 하니까. 결국 변호사는 사익을 매개로 공익을 실현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겠다. 매달 사무실 운영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 변호사의 입장에선 사실 이런 역할의 구분이 쉬운 것은 아니다.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난 요즘은 특히.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되, 법질서와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유형의 로펌, 변호사들이 등장해 많은 부분을 흔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법률서비스 피해 구제 신청 건수가 최근 4년 사이 5배 급증했다. 피해 사유는 주로 위임 계약의 불성실 이행, 법무법인의 미흡한 대응으로 인한 계약 해제 및 환불 요구, 불성실한 법률 대리에 따른 착수금 전액 환급 등이었고, 신고된 곳들의 대부분은 소위 마케팅 펌, 네트워크 펌이었다. 이런 펌들의 기본 방향은 법을 잘 모르고 변호사 인맥이 없는 사람들이 변호사가 필요해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포털사이트 상단에 뜨게 하고, 전관이나 대단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사건에 관여하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이다. 광고의 가장 큰 목적은 수임이다. 승소보다는 대량 수임에 광고 목적이 맞추어져 있기에 매년 엄청난 광고비를 포털사이트에 지불한다고 한다. 의뢰인들은 대형 로펌에 맡기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실제 사건 처리는 고용된 각 지점의 어쏘 변호사들이 한다. 그렇기에 사건과 변호사와의 연결성, 애착관계가 없다. 변론 때마다 출석하는 변호사가 다르고, 사건 때문에 의논할 게 있어 전화를 해도 담당변호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는 경우도 많다. 장인인 것처럼 광고하나 실질은 공장인 것이다. 이런 변호사 공장, 공장형 변호사의 등장은 과연 변호사의 공익성에 맞는 것일까. 오늘도 법원에서 마케팅 펌 변호사의 변론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김세라 변호사

2025-10-16

‘기후테크’

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 내내 내리던 비가 이후에도 계속 내렸다. 늦장마처럼 이어지는 비와 한여름 같은 더위는 이제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한반도 기후는 이미 과거와 달라졌다. 대구의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경북의 겨울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렇게 체감되는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 결국 ‘탄소중립’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기후테크(Climate Tech)’라는 새로운 해법에 주목하고 있다. ‘기후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모든 기술을 말한다. 단순한 환경기술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의 길이다. 예컨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AI 기반 에너지 효율 시스템, 스마트팜, 탄소포집(CCUS) 등이 모두 ‘기후테크’에 속한다. 핵심은 환경과 경제의 균형이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테크’는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닌 ‘미래산업 전략’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테크’는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기술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제도적 규제도 여전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부는 탄소가격제와 녹색금융을 확대하고, 기업은 ‘기후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형 기후테크’, 예를 들어 AI 분리수거기, 에너지 절약형 스마트홈, 시민 리빙랩이 늘어나면서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기후테크’의 필요성이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다. 대구는 폭염과 열섬이 심각해 쿨루프, 그늘막, 제로에너지건축 등 냉방 수요를 줄이는 기술이 필수다. 반면 경북은 가뭄과 폭우가 반복되며 농업 피해가 커지고 있다. 기후적응형 스마트팜, 물 재이용 기술, 아열대 작물 재배기술은 이 지역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포항·구미 같은 산업도시는 탄소다배출 공정을 바꾸기 위해 수소환원제철, 탄소포집·저장 기술(CCUS)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도시의 에너지를 농촌이 공급하고, 농촌의 자원을 도시가 순환시키는 ‘도농 순환형 기후테크’ 모델은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덴마크는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풍력도시를 세웠고, 핀란드는 도시 전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해 에너지 소비를 30% 줄였다. 일본 나고야는 폐기물 재활용 산업단지를 통해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구경북 역시 국가물산업클러스터와 연계한 ‘물관리 기후테크’, 경북의 자원순환 산업단지, 대구의 탄소중립산단 조성을 통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기후테크’는 위기의 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대구·경북이 ‘기후테크’라는 혁신의 파도에 올라타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후 회복탄력성 선도 지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0-16

큐피드의 화살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시집을 안 가고 개기는 딸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나서 한 번씩 쏘아붙인다. 어릴 땐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좀 컸다고 이젠 말대꾸를 자주 한다. 말로선 못 이겨 눈만 흘기고는 머리를 돌리고 만다. 첫째는 안 그런데 둘째 놈은 제 아비 속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강사가 부모와 자식 세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금촉 화살과 은촉 화살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은촉이 아니라 납촉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납촉이 맞았다. 하지만 납촉보다는 은촉이 더 이해도를 쉽게 만드는 요인이 있고 납이든 은이든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문학적 표현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납인데 왜 은이라고 했느냐며 따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여지없는 꼰대 기질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에로스라고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만 큐피드라고 하면 ‘화살’을 바로 생각할 것이다. 큐피드의 그리스 말이 에로스다. 동양 신화는 마치 무당 굿하는 이야기처럼 여기고 서양 전설을 이렇게 이름까지 헷갈리면서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튼 큐피드 화살은 단 하나였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어 사랑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면서 화살이 사랑의 아이콘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인 작가가 나타나 재미있게 만들어 버린다. 그가 바로 유명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이다. 그가 쓴 ‘변신 이야기’에서 큐피드가 두 종류의 화살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금촉으로 사람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하나는 납촉으로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아폴론에게 금촉을, 다프네에게는 납촉을 쏘아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미치도록 빠지지만, 다프네는 오히려 도망치게 되고, 결국 다프네는 월계수(로렐)로 변해 아폴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 명작품이 나온 것이다. 빛나는 금을 ‘불타는 욕망·신성한 매력’의 이미지를 주고 납은 무겁고 둔탁한 성질로 인해 ‘냉각· 무관심· 거부’의 효과를 줌으로써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 후 화살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 납이 아니라 은(銀)이 등장하고 철(鐵)까지 나오게 된다. 작가들이 이 재미있는 사랑의 작동 방식을 그냥 두지 않았고, 고대·르네상스 이후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이 강사는 이것을 부모와 말 안 듣는 자식 간의 관계를 금촉과 은촉이라는 화살 이야기를 가져와 설명한 것이다. 당연히 강의를 듣는 이들은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고 강의의 목적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연애·욕망을 제어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로 은촉의 화살을 맞은 것이고 자식들은 금촉 화살을 맞아 ‘불타는 청춘의 사랑’ 운운하며 무모하게 자신을 불태우려 한다. 아마도 둘째 놈은 금촉 화살을 잘못 맞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말려도 지지리 말을 안 듣는 걸 보면. 근데 멍청한 큐피드가 나에게도 금촉을 쏜 거 아냐? 왜 자꾸 미운 자식에게 미련을 두는 거지? /노병철 수필가

202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