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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건강도시 랭크된 수성구

대구 수성구는 비수도권 최고 학군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2024년의 경우, 수성구로 순 유입된 초등학생 수가 서울 강남구에 이어 전국 2위를 마크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입학 시즌이 되면 많은 학부모들이 수성구 쪽으로 이사를 계획한다. 교육열이 높은 학군지로 정평이 나 있다. 학원가가 대거 밀집해 있어 ‘대구의 대치동’이란 별명도 붙었다. 우수한 교육 기반 등 도시 인프라가 좋은데다 전국 유일하게 4대 특구(기회, 교육발전, 교육국제, 문화)로 지정이 된 곳이다. 대구지역의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유일하게 가격 상승세를 유지하는 지역이다. 당연히 집값도 가장 비싸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전국 252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주민 건강을 조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구에서는 수성구가 유일하게 건강도시 전국 순위 11위에 포함됐다. 1위는 과천시, 2위 서울 강남구, 3위 서울 서초구 등으로 밝혀졌다. 건강도시 상위 30군 데 중 서울 6군데, 경기도 6군데, 비수도권에서는 경남이 7군데가 포함됐다. 또 비수도권 중에는 부산 2군데, 대구·경북·대전·광주·전남·충남 등은 모두 1군데만 포함됐다. 경북에서는 포항시 북구가 유일하게 포함됐는데, 순위는 30위다.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건강은 외적 요소인 자연 환경보다 생활습관과 건강 인프라 기반이 좋은 지역이 유리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대구 수성구는 전국 순위로 11번째지만 비수도권에서는 창원 성산구와 부산의 강서구, 동래구에 이어 4위로 조사됐다. 수성구는 교육도시이자 문화예술도시, 부촌도시 등의 이미지에 건강도시란 또 다른 명성을 얻은 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9

한계에 부딪힌 ‘장동혁 리더십’

사분오열된 국민의힘 내에서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과 거취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강성지지층에 기댄 그의 행보로 당 지지율이 20%대에서 정체되자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보수 안방인 대구·경북(TK) 최다선(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지난 8일 대구 언론인 모임에서 장 대표를 겨냥해 “지금처럼 윤 어게인 냄새가 나는 그런 방향은 맞지 않다”고 직격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TK 중진까지 장 대표의 노선 전환을 압박한 것이다. 지난 3일에는 원내사령탑인 송언석(김천) 의원도 원내부대표들과 함께 “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며 장 대표와 엇갈린 메시지를 냈다. 소장파가 중심이 된 40여 명의 의원들도 송 원내대표와 같이 반성 메시지를 냈다. 반면, 장 대표는 의원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비상계엄은 민주당의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며 계엄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원조 친윤으로 불리는 윤한홍 의원(3선)조차 지난 5일 장 대표가 주재하는 당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비판한다“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인연,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선 장 대표의 거취 문제를 압박하는 기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당의 경쟁력 지표는 당연히 지지율이다. 현재 국민의힘 지지율은 TK지역을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큰 차이로 민주당에 뒤지고 있다. 당이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계엄의 늪’에 갇히면서 민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주된 이유다. 이에 대해 주 부의장은 “정치의 방향은 민심인데 자기편을 단결하는 과정에서 중도가 도망간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장 대표를 비판했다. 장 대표가 취임한지는 벌써 100일이 넘었다. 본인 스스로 그동안 이반된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 대표는 취임 이후 윤 전 대통령 면회에 이어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제1야당을 스스로 고립시켜왔다. 민주당의 입법폭주가 도(度)를 넘고 있음에도, 대다수 국민이 야당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장 대표의 이런 태도 탓이 크다. 국민의힘의 내분과 무기력증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러한 제1야당의 상황은 여권의 노골적인 삼권분립 위협과 입법폭주에 오히려 동력이 되는 형국이다. 정국이 이런 식으로 흐르면 국민의힘을 내란정당으로 규정해 당을 해산시키겠다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말이 실제상황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일부의원들이 최근 장 대표에게 ‘내년 2월 설 명절 전’이란 데드라인까지 제시하며 노선 변화를 주문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늦어도 설 명절 전까지는 당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중도층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공감가는 말이다. 국민의힘이 제1야당에 걸맞은 지지율을 확보하려면 하루빨리 다른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우선 107명 의원 모두가 한목소리로 국민에게 계엄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당 혁신비전을 제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09

AI시대와 세상

행운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역사상 몇 번 되지 않는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변곡점‘을 경험하고 있다. 생각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존재가 더 이상 우리 인간만이 아닌 세상, 인간에게 필적하는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하는 세상‘을 맞이할 첫 세대가 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원시시대, 농경시대, 산업화 시대 등 큰 사회적 변화를 거쳐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AI시대를 겪게 되는 것이다. AI시대가 오면, 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하고 인간은 유토피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판단-분석-결정-창조‘의 영역까지 기계가 동참하는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하는 AI시대, 과거는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지만, AI시대는 챗GPT를 통해 사고, 기획, 판단 등에 활용하고, 미래는 인간의 ‘두 번째 두뇌‘라 할 정도의 모든 세상에서 AI 역할이 있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일반지능) 시대가 도래한다. 사람처럼 배우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하는 AGI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기존 산업사회와 AI시대를 비교하면, 노동시장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직접 일을 하고, 설비, 자동차 등을 운전하고, 병 진단과 치료 등의 세상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일하고 진단하고 답을 제시하는 세상이 온다. 경험과 직관에서 AI의 예측 분석을 통한 과학적 의사결정, 대량 생산에서 초개인화 생산, 위계형 조직에서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형성되어 지금의 조직은 사라진다. 기업의 제조업에서 보면, 스마트팩토리에서 자율공장의 시대로 간다. 불량을 예측하고, 설비 점검 및 고장 예측, 자동 품질 검사, 생산 스케줄 자동화, 조업 패턴 자동 조정과 생산·원가 자동 최적화 등 사람은 작업자에서 개선자, 전략가로 변한다. 금융계는 대출 심사 자동화, 이상 거래 탐지, 세무 자동 신고 등 단순 사무직 대거 축소, 고급 분석 인력만 생존한다. 의료 헬스케어 분야는 AI 영상 판독, 개인 맞춤 치료, 질병 조기 예측 등 의사는 진단에서 치료 전략가로 전환된다. 교육 분야는 AI 튜터가 되어 맞춤 수업이 되고,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서 코치. 멘토가 된다. 마케팅, 영업은 고객 행동 예측, 자동 광고 제작, 수주 연결 등 감으로 하던 영업은 데이터로 최적화 된다. AI시대는 일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출근하는 직장에서 원격으로 일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보고와 회의는 AI는 정리·분석·기록, 사람은 판단·결정 등 역할로 나뉘어 보고용 회의에서 결정용 회의로 전환된다. 사람의 가치 기준도 성실함과 전문성에서 창의성, 통찰력, 감정지능으로 변한다. AI가 못하는 것은 공감, 통찰, 판단, 리더십 등이고, 국가 경쟁력은 AI 기술력에 의해 좌우된다. AI시대 산업은 자동화 되고, 일은 지능화 되며, 인간은 ‘의미·판단·책임’을 맡는 존재로 재정의 된다. 개인은 생존을 위해 문제정의 능력, AI활용 능력, 비판적 사고, 감정·관계·리더십 능력이 필요하다. 역사적 큰 변화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 준비해서 함께 가는 세상으로 가야 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09

겨울나무를 보며

대설이 지나도 겨울은 포근하기만 하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일 텐데 낙목한천(落木寒天)은 고사하고 아직 단풍조차 제대로 덜든 잎새들의 항거(?) 탓일까? 황록으로 변조되는 잎새들이 어서 단풍 들고 낙엽 져 나목(裸木)이 될 때까지 계절의 수레바퀴는 겨울을 손사래 치며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 자연의 미묘하고 미세한 변화와 정교한 반응은 간혹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얼핏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층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푸른 잎사귀가 단풍 들기 전이거나 열매가 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린다면 나무들은 얼마나 아쉽고 마음 조여 할까? 충분한 연습과 적응, 내성(耐性)이 갖춰지지 않은 채 부모 곁을 떠나게 되는 자식과 비슷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때가 되면 떠나고 흩어졌다 모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이, 시간이 경과되면서 순서에 따르거나 또는 역행(逆行)으로 나타나는 자연현상과 사회양상들은 실로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만큼 자연은 천변만화하고 세상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조락(凋落)이 스미고/스산함이 감돌수록//비우고 떨구고 삭히고 재우면서//나무는/야윈 가지로 허허롭게 몸짓한다//두텁게 몇 겹 옷으로//추위를 밀어내고/움츠림을 가리는/부류들은 알지 못한다//나무가/왜 옷을 벗으며/절대고독에 맞서는가를//뼈저리는 혹한에/신음조차 삼키며//속으로 보듬고 의연히 참아가며//또 한 겹/숙성의 테두리/옹골차게 새긴다’ -拙시조 ‘겨울나무’ 전문 나무의 나이테는 그냥 당연히 생긴다거나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갖 비바람이나 가뭄, 풍상을 견디고 추위를 이겨내야만 인고의 증표 같은 나이테가 오롯하게 새겨지는 것이다. 열대지방의 나무나 콩나물 시루 같은 호조건(好條件) 속에서 생기게 되는 밋밋한 성장테와는 차원이 다른 촘촘하고 또렷한 나이테가 겹겹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나무의 성장과 시련의 과정이 응축되고 기록되는 나이테가 있기에 나무들은, 더욱 꿋꿋하고 강인하게 혹독한 추위에 맨몸으로 맞서며 ‘절대생존’을 지켜가는 것이다. 나이테를 감아가며 겨울을 나는 나무처럼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면서 연륜을 더해간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은 지난 1년 동안의 자취를 반추하며 결실과 공적을 정리하고, 새로운 해의 계획과 목표를 가늠하여 보다 나은 새날을 기약하기도 한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과 희비의 사연이 점철된 아스라한 날들은 자신의 흔적이고 역사이며 삶을 지탱하는 자양분이기에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미리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삶의 내면이 새롭고 알찬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비록 올해 이룬 것이 그다지 없고 내세울 것조차 없다손 치더라도 너무 허탈해하거나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하루하루 무위(無爲)로 보낸 것 같은 날들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하나의 궤적이고 삶의 편린이기에 모든 날이 살갑고 다행스러운 안도의 나날이 될 것이다. 온갖 잎새 다 내려놓고 칩거에 드는 겨울나무처럼 홀가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더 고요하고 깊어지며 생각에 잠겨 드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세월은 무심치 않아 연륜을 쌓고 인생은 무상치 않아 슬기를 낳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2-09

구름을 뚫고 마주한 안데스의 심장, 마추픽추

리마의 황금빛 햇살을 뒤로하고 나는 안데스의 심장, 쿠스코(Cusco)로 향했다. 비행기로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였지만, 그 짧은 비행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고대 문명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통로와 같았다. 해발 3,400미터, 공기마저 얇아 숨쉬기조차 힘든 곳, 생명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고원 도시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균형이 흔들렸지만, 잉카 제국의 옛 수도에서 풍겨 나오는 역사와 전설의 향기는 그 모든 불편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돌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마다 수천 년 전 잉카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쿠스코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새벽녘, 드디어 마추픽추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버스로 두 시간, 기차로 두 시간, 길지만 설레는 대장정이었다. 희뿌연 안개가 골짜기를 가득 채운 새벽, 나는 고요히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전날 유적지를 오르내린 피로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고산병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잃어버린 도시를 향한 열망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지만, 진정한 깨어남은 아직 오지 않았다. 버스는 고대 잉카의 요새 마을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 도착했다. 그곳은 잉카 레일이 출발하는 환승지이자, 잉카의 건축 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역 앞에는 전통 복장을 한 현지인들이 나와 그들의 본래 언어인 케추아어로 노래를 부르며 여행객을 맞이했다. 그들의 맑은 눈빛에는 오랜 세월을 건너온 잉카의 영혼이 어려 있었다. 짧았지만 따뜻한 그 미소는 낯선 여행자에게 묘한 위안을 주었다. 잉카 레일은 안데스의 험준한 산맥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차창 밖 풍경은 마치 신이 붓을 들고 그린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깊은 계곡 아래로는 우루밤바 강이 은빛 실처럼 구불구불 흐르고, 절벽 위에는 구름이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졌다. 산과 강, 구름과 빛이 끊임없이 어우러지며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그 장엄한 풍경은 곧 마주하게 될 마추픽추의 신비로움을 예고하는 서곡이었다. 기차가 오전 8시 무렵 마추픽추 마을에 도착했을 때, 거리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활기로 넘쳐났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거대한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안았다. 하지만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예비 입장권을 받고 지정된 시간에 돌아와 정식 입장권을 사야 했다. 복잡한 절차 속에서도 마음은 오히려 설렘으로 차올랐다. 11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를 완주하며 품었던 꿈, ‘언젠가 마추픽추에 서리라.’ 그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른 새벽,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랐다. 창문 밖으로 흰 구름이 손 닿을 듯 흘러가고, 계곡의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현지 가이드 Walter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 길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길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산등성이를 돌고 돌아 마침내 도착한 마추픽추는 처음엔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수백 명의 여행자들이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회색빛 화강암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에 반짝이는 성벽, 산허리를 따라 흐르는 정교한 수로, 계단식 밭의 초록빛이 눈부셨다. 세상은 잠시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경외감, 그것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이었다. 마추픽추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인간의 기술이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예술이자 생존의 철학이 담긴 도시였다. 잉카인들은 철제 도구도, 바퀴도, 시멘트도 없이 돌을 맞추어 쌓았다. 면도날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그 정밀함 덕분에 지진이 잦은 안데스에서도 수백 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건축이라기보다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도시를 빚어낸 것이었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밭 역시 잉카의 지혜를 말해준다. 그들은 자연을 정복하지 않았다. 태양의 각도, 바람의 방향, 물의 흐름을 계산하며 자연 안에서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의 삶은 문명이라기보다는 자연 속의 예술과 같았다. 나는 천천히 신전의 계단을 올랐다. 햇살은 돌기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저 멀리 우루밤바 강은 은빛으로 반짝였다.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구름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은 왜 이토록 웅장한 자연 앞에서 숙연해지는가. 답은 하나였다. 경외심이었다. 자연은 우리보다 먼저 있었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남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추픽추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누가, 언제, 왜 이 도시를 세우고 버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 미지의 여백이야말로 이곳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다.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더 깊이 상상하고,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진심으로 성찰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인종도, 언어도, 국적도 아무 의미가 없다. 세상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서 있을 뿐이다. 그 자체가 잉카 문명이 우리에게 전하는 조용한 메시지였다. 잉카인들의 사회는 아이유(Ayllu)라는 혈연 중심의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사람의 땅이 아니라, 모두의 땅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일했고, 수확한 곡식은 공동으로 나누었다. 누군가 병들면 이웃이 도왔고, 늙거나 혼자 사는 사람은 마을이 함께 보살폈다. 그들에게 삶이란 경쟁이 아니라 나눔이었다.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라는 믿음이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었다. 하산길에 뒤돌아보니 마추픽추는 다시 구름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엔 여전히 그 빛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삶의 완성은 소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자연처럼 흐르고, 구름처럼 비워내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거대한 산은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구름처럼, 물처럼 살아라.” /글·사진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2-09

국민의힘, 수권 정당이 되려면

정당의 목적은 집권에 있고, 집권하려면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정당도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는 주권자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하 ‘국힘’)이 주권자의 신뢰를 얻어 재기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반성과 혁신 여하에 달려 있다. 계엄과 탄핵으로 집권 3년 만에 또 다시 야당이 된 국힘에 대한 민심은 어떤가?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11월 28일)에 따르면 국힘의 지지율은 24%(민주당은 42%)이며, 대선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지지율이 20%대(민주당은 40%대)에 갇혀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장동 항소포기 외압 의혹, 여당의 독선과 입법 폭주 등 여권의 계속된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힘에 대한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당 지지율을 좌우하는 중도층의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저조한 지지율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권을 잃고서도 반성과 쇄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혁을 외면하는 구주류가 당을 장악하고 “윤석열을 버리고 당을 혁신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당대표 장동혁이 수감 중인 윤석열을 면회한 것은 민심과 싸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대표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황교안을 두둔하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한 민심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김용태·안철수·윤희숙 등 세 차례 혁신위원회의 개혁안들도 모두 당 지도부가 뭉개버렸다. 자신의 잘못은 고치려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잘못만 비판하는 장외투쟁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혁신에 소극적인 국힘은 ‘열린 보수’가 아니라 ‘닫힌 보수’이며, 닫힌 보수는 ‘확장성’이 없다. 극우화되어가는 국힘, 민심을 외면하고 당심을 앞세우는 국힘이 바로 닫힌 보수다. 내년 지방선거 경선규칙을 개정하여 당원투표 50%를 70%로 확대하고, 여론조사 50%를 30%로 축소하겠다는 것은 ‘민심을 거부하는 역주행’이다. 민심과 괴리된 당심 후보가 어떻게 본선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선거 승패를 결정하는 ‘중도층의 지지율이 국힘(15%)은 민주당(45%)의 1/3에 불과하다.(한국갤럽, 11월 28일 현재)’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정말 어이없는 발상이다. 민심을 얻기 위해 여론의 반영비율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축소하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국힘이 수권 정당이 되려면 영남에 갇힌 ‘낙동강 정당’에서 벗어나 ‘수도권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당을 지배하고 있는 영남의원들이 기득권 유지에 안주하거나 ‘영남의 지역민심’을 ‘국민의 전체민심’이라고 우기면 재기불능이다. 보수의 생명력은 민심을 받드는 변화와 혁신에 있으며, 그것은 열린 보수이어야 가능하다. 유연한 변화를 중시하는 열린 보수는 민심에 민감하지만, 경직된 투쟁에 집착하는 닫힌 보수는 민심에 둔감하다. 민심을 받들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자신부터 먼저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것이 재기의 첩경임을 왜 모르는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2-08

12월 3일에 대한 철학적 우울감

2024년 12월 3일 밤. 한 인간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던진 한마디. 이것으로 인하여 평온하던 세상은 알 수 없는 침묵과 우울감으로 뒤덮였다. 의학적 우울에피소드와는 전혀 다른 우울감이다.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심리상태. 억장이 무너지고, 미치고 팔짝 뛰는 침묵의 시간이 온 것이다. 의학 전문 용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철학적 우울감’이라 해보자. 치료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이 너무 나쁘다. 나의 경우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지독하게 집착한 것도 아니었다.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소양이랄까. 뭐 이 정도의 범위 내에서 나름 올바른 견해를 갖기 위하여 적당히 관심을 두었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정치가 술판의 안주처럼 언제든 꺼내 씹을 수 있는 가벼운 화제였고, 금지되지 않은 신나는 주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정겨운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술자리에서 ‘정치라는 안주’를 씹으면서 웃고 떠들었다. 가타부타 갑론을박하다가, ‘그래 너 말도 맞아’ 하면서 상대를 치켜세워 주기도 하고, ‘뭔 개소리야’ 하면서 상대를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정치판을 떠도는 사람들을 술판의 안주 삼아 맛나게 씹어대고 삼켰다. 술자리가 더 흥성거릴지언정 분위기가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 이런 개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1968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미국, 일본까지 퍼진 ‘68혁명’은, 전통, 권위, 군사주의, 자본주의, 성도덕, 학벌과 교육의 위계에 대한 저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전 세계를 들끓게 하였다. 냉전과 핵전쟁의 공포, 소비사회와 중산층의 확대, 교육의 팽창과 지식인의 각성, 베트남 전쟁이라는 화두 중심으로, 푸코, 들뢰즈, 데리다와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하여, 국가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학벌·성적·규율 중심의 교육, 가부장제 및 성에 대한 금기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68혁명과 같은 정신적 변곡점을 거칠 수 없는 못한 불우한 지리적, 환경적 상황에 있었다. 남북 대치 상황과 군부독재 속에서도 우리는 나름 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워왔다. 순국선열과 민주열사들의 피로 지켜온 21세기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믿었다. 2024년 12월 3일까지는. 믿음은 깨어졌고,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침잠하여 들어갔다. 문제의 인간을 신속하게 권력의 정점에서 제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침묵과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계속된 혼돈의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반드시 그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권력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철학적 불신’의 제도화이다. 권력이 시민을 두려워할 때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우리가 느끼는 이 ‘철학적 우울함’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감각의 증거이다. 철학적 우울은 패배가 아니라, 잊지 않겠다는 공적 기억의 방식이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시민의 우울감에서 세워진다. 우울을 느끼는 시민이 사라지는 순간, 독재는 완성된다. 철학적 우울은 인류가 ‘자유를 감각하는 방식’이자, 상처받은 자유를 치유하는 ‘정치적 명약’이다. 우울감을 즐기자. 이러한 감각은,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욱 마음껏 즐겨라. 아직도 그날을 옹호하는 그들보다는 덜 괴롭고, 훨씬 덜 우울할 테니. /공봉학 변호사

2025-12-08

초겨울 단상(斷想)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 봄의 신록과 여름의 녹음, 가을 단풍에 이어 이제 곧 설경이 펼쳐질 것이다. 수시로 얼굴색을 바꾸는 중국의 변검(變臉) 배우처럼, 자연은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생태계는 얼핏 보면 일사불란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천차만별 제각각인 걸 알 수 있다. 겨울을 맞는 모습도 그렇다. 일찌감치 잎을 다 떨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무슨 미련인지 늦도록 푸른 잎을 달고 있다가 한파에 얼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풀들은 더 다양한 모습이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씨앗을 맺고 말라버린 줄기로 생을 마감하는 풀도 있고, 된서리를 맞고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풀들도 있다. 더구나 벌초를 한 자리에 새로 돋아난 풀들은 그런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가 겨울을 맞기도 한다. 내가 산책하는 들길에서는 쑥과 개망초가 특히 눈길을 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친 것들은 벌써 씨앗을 맺고 메마른 줄기로 홀가분하게 서 있다. 그러나 예초기로 배어낸 길가에 새로 돋아난 쑥과 개망초는 봄보다 더 왕성한 기세로 자라서 계절을 무색케 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용을 쓰느라 붉어진 얼굴처럼 잎을 적갈색으로 바꾸고 최대한 버틴다. 하지만 혹한이 닥치면 결국에는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무모하고 불합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사람이 나서서 뭐라고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일견 복잡하고 혼란해 보이는 자연생태계도 분명 일관하는 원리와 법칙이 없지 않을 터이다. 어찌 지구생태계 뿐이겠는가,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한 우주만상에 불변의 원리와 질서가 어찌 없겠는가. 기독교와 이슬람은 세계를 신의 창조와 섭리로 보았고, 불교는 인과의 그물인 연기(緣起)가 세상 모든 존재를 엮고 있다고 보았다. 도가(道家)는 억지로 꾸미지 않고, 스스로 그러함에 맡기는 자연(自然)의 길을 따르라고 하고, 성리학은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 원리인 이(理)와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기(氣)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구조를 설명하려 했다. 그렇듯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각종 종교나 사상, 과학을 통해서 끊임없이 탐구하고 주장해왔지만, 그 모두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요약되는 우리의 인생사 역시 지구생태계의 일부라는 생물학적 조건을 벗어날 순 없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복잡계이론(Complex System Theory)이 말하듯, 수많은 변수와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얽히고설켜 우리의 삶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다단해 보여도, 그 모든 것을 일관하는 본질과 원리, 그리고 섭리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구태여 우리가 그것을 다 알거나 이해할 필요는 없을지라도. 삭막한 초겨울의 풍경 속에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겨울을 맞고 있는지 생각한다. 처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혹한에 대비하는 초목들처럼 나 또한 나에게 가장 적당한 자세와 지향이 있을 터이다. 찬바람으로 와 닿는 초겨울의 전언을 온몸으로 듣는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2-08

줄어든 중국 관광객, 일본 교토는?

교토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물론, 건축물에서도 고풍스런 역사적 숨결이 느껴진다.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정갈한 일본 요리도 관광객들에게 적지 않은 만족감을 주는 도시. 다른 지역에선 이미 사라진 일본 전통을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기에 교토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경주’로도 불린다. 기자 또한 2023년에 이어 올해도 교토를 찾아 중세 일본의 향기를 느끼며 맛깔스런 장어덮밥과 초밥 등을 즐기는 휴가를 즐긴 바 있다. 교토는 한국인만이 아닌 유럽 사람들과 미국인도 선호하는 관광도시. 중국 관광객들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얼마 전까진 교토의 유명 사찰과 이름난 식당에선 언제든 중국말로 대화를 주고받는 관광객을 볼 수 있었으니. 그런데, 최근 교토를 찾는 중국인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유가 있다. 1개월 전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할 수도 있다”는 발언이 나온 것. 이는 당장 중국의 반발과 비난을 불러왔다. 지난달 30일 중국은 ‘일본 여행 자제령’ 내렸고, 정부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중국 항공사들은 12월 운항 예정이던 일본행 항공 노선 5548편 가운데 904편의 운항을 취소했다. 운항이 중단된 항공기 대부분은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 거점으로 하는 간사이국제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 여행 절제’를 결정한 중국이 받아든 성적표는 어땠을까? 기대 이하라고 한다. “시끄럽고 매너 없는 중국인이 줄어들어 오히려 좋다”는 게 교토 사람들의 보편적 의견이라고. 이런 추세가 얼마나 갈 것인지를 중국은 물론 일본도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될까? 모두 궁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8

포항 구만리 교석초 신화

포항시 호미곶면 구만리 앞바다에는 암초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곳에는 옛날부터 해상사고가 잦았다. 1907년 일본의 수산강습소 실습선 카이오마루(快應丸)가 이곳에서 좌초되어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사망한 사고가 대표적인데, 이 사건이 연유가 되어 1908년에 호미곶 등대가 들어섰다. 암초 중 특별히 교석초(橋石礁)라 부르는 곳이 있다. 구만리 북쪽 약 650m 해상에 자리한 암초로 맨 위쪽 수심은 1.5m이다. 2002년 11월 이 암초에 대해 해양지명위원회에서 교석초로 공식 명명하면서 한국 최초로 확정 고시된 해양지명에 등재되게 되었다. 1959년, 해상 안전을 위해 수중에 암초가 있음을 알리는 등표를 세웠는데, 주민들이 흔히 ‘물등대’라 부르는 교석초 등표다. 교석초는 우리말로 ‘다릿돌’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1/50,000 지형도에도 표시돼 있는 걸로 봐서 오래 전부터 불러 온 명칭임을 알 수 있다. 다릿돌이라는 이름은 다리로 놓은 돌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구만리에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다. 마고할미는 남편을 만나러 영덕 축산에 다녀오곤 했다. 구만리에서 보면 축산은 빤히 건너다보이는 곳인데, 영일만 해안을 따라 빙 돌아가려니 너무 멀었다. 그래서 바다에다 징검다리를 놓기로 했다. 마고할미는 물살이 잔잔한 날을 택하여 치마에 바윗돌을 싸 와서는 바다에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샘작업에도 불구하고 날이 새는 바람에 완성을 못한 채 중단하고 말았다. 이렇게 마고할미가 놓은 바윗돌이 구만리 앞바다에서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다릿돌 또는 교석초라고 부른다. 구만리 앞바다에 있는 암초의 유래를 설명하는 신화인데, 우리 귀에 익숙한 마고할미라는 여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남편이 있는 축산을 오가는 데 편리하게끔 영일만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놓기로 한다. 이 할미는 덩치도 크고 힘도 아주 센 ‘슈퍼 우먼’이기에 큰 바윗돌을 치마에 싸서 운반한다. 그런데 날이 새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밤에 다리를 놓아야만 했을까? 신들은 보통 밤에 일을 한다.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새거나 닭울음소리가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만다. 마고할미는 할머니지만 거대한 덩치에 괴력을 소유한 신격으로 우리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창조신이다. 제주도 선문대할망이나 서해안 개양할미, 지리산 성모천왕도 따지고 보면 이름만 달랐지 마고할미계 여신이다. 이처럼 마고할미는 신화 속에서 거대한 덩치와 엄청난 힘으로 산을 만들거나 옮기기고, 바위를 치마폭에 싸서 나르는 괴력을 보여 준다. 다만 이러한 작업을 사람이 보지 않는 밤에 하다 보니 작업 중에 날이 새거나 닭이 울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마고할미 관련 자연물은 거의 다 미완성이다. 교석초가 위치해 있는 호미곶 구만리에서는 정기적으로 신화의 주인공 마고할미를 위한 제의를 지내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 마을에서 열리는 다릿돌별신굿이 바로 그것이다. 교석초 등표가 건너다보이는 구만리 해안에서 3년두리(격년)로 열리는 별신굿으로 풍어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제의다. 그러기에 교석초 이야기는 구만리의 ‘살아 있는 신화’라 할 만하다. 마고할미가 놓았다고 하는 교석초 일대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구만리 갯마을인 까구리개(구만2리)의 지명이 해안에 밀려 온 물고기를 까꾸리(갈고리)로 끌어서 잡는 곳이라는 데서 연유한다는 유래담을 보아도 예로부터 어자원이 풍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파도가 높고 암초가 많아서 배가 다니기엔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지리적 위치로 인해 강원도 쪽 배들이 남으로 가거나 부산 쪽의 선박들이 북으로 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이곳 사람뿐만 아니라 선박을 운행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마고할미가 놓은 교석초는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신앙적 대상이 되었다. 별신굿을 앞두고 구만리 사람들은 경비 마련을 위해 경남, 부산은 물론 강원도 지역까지 모금하러 다녔고, 그곳 뱃사람들은 두 말 하지 않고 성금을 냈다고 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별신굿 대신 소규모 제사로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4년에는 12월 2일 밤에 제사를 지냈다. 현재 포항시에는 포항지역의 숙원사업인 영일만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영일만대교 가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화가 집단무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교석초 신화는 아득한 옛날 사람들도 구만리에서 손에 닿을 듯이 건너다보이는 흥해읍 용한리까지 다리를 놓아, 육지 안쪽으로 빙 돌아가는 대신 바다를 가로질러 편하게 영일만을 건너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한 꿈이 교석초 신화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일만대교는 오래 전 이곳 사람들이 꿈꾸었던 소망의 현실화인 셈이다. 제주도에 가면 선문대할망상이 있고, 지리산 아래의 산청군 중산리에는 성모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구만리 해안에 교석초 신화의 주인공 마고할멈상이 세워지는 날을 그려 본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12-07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눈을 치우는 사람과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가 한 골목에 나란히 있다 그해 겨울엔 검은 눈이 내렸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내렸다 눈송이를 돌려주기 위해서 그들은 빛보다 먼저 내려앉아 눈을 거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행이라는 물방울 속에 적설량을 감춰왔나 사람들의 눈금을 지우며 쌓여가는 검은 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에게 소원을 빌었다 하얀 입김이 빚는 검은 눈사람의 형태를 눈이 녹아가는 거리 그들은 이제 모두 같은 골목을 걸어간다 검은 눈은 세상의 하얀 것을 데려간다 없었던 일은 될 수 없겠지만 해프닝으로 남겨지기 위해 머리를 찾는 눈사람이 굴러간다 검은 눈은 사람들을 목격자로 만들어놓고선 이제 아무 때나 오지 않고 ―서윤후, ‘흑설(黑雪)’전문 (‘나쁘게 눈부시기’, 문학과지성사) 골목에는 두 개의 장면이 나란히 포착된다. “눈을 치우는 사람”과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장면은 파편적인 이미지로 펼쳐져 있을 뿐 구체적인 서사가 없다. “눈”과 “눈사람”은 “치우는 사람”으로, “만드는 아이”로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이는 그대로 선하거나 정직하지도 않다. 화자가 기억하는 “그해 겨울”은 “검은 눈이 내렸다”라는 언술에서 감지되듯 이 세계는 드러나지 않는 부정과 불신이 검은 유령처럼 숨어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검은 것과 흰 것의 대비로 끌고 가며 불안한 정황을 환기하고 있을 뿐이다. 언뜻 보기에 “눈”에 기댄 우회적인 묘사는 밝을 법하지만 외려 어둡다. ‘우리’라는 공동체에 드리운 짙은 음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령 “믿을 수 없겠지만”이라는 전제는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의 심각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행이라는 물방울 속에 적설량을 감춰 왔나”는 물음을 통해 줄곧 화자가 나와 타자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를 호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현지의 해설에서, “서윤후는 일반적으로 나와 타자를 묶어 가리키는 ‘우리’라는 말을, 타자와 다름없어진 어제의 나, 지금의 나를, 그리고 여러 ‘나’들을 아우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개념이 역설적으로 시간의 존재로 살아가는 한 아무도 그런 ‘우리’를 가질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한 글자 사전에서 김소연은 인간의 눈에 대해 “보이는 것만 잘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에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고 했다. 서윤후 시인이 응시하는 세계는 가시적인 공간 그 너머에 있다. 골목이라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감각을 통해 보는 것은 흰 눈과 검은 눈이라는 양가적 윤리성에 있다. 예컨대 “하얀 입김이 빚는 검은 눈사람의 형태”처럼 말이다. 이 무력한 점층법 “사람들의 눈금을 지우며 가는 쌓여가는 검은 눈”처럼 비록 “없었던 일은 될 수 없겠지만” “세상의 흰 것”의 믿음을 끌어안고 가 보려는 노력은 될 것이다. “머리를 찾는 눈사람이 굴러간다” /이희정 시인

2025-12-07

‘현지 누나’, 세긴 세구나

“정치권에서 형, 형님, 누나,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배 동료들을 살갑게 부르는 민주당의 일종의 언어 풍토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또 “동료 후배 의원들께서도 저를 의원, 전 대표보다는 대부분 거의 형님, 큰형님이라 부른다”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현지 누나’를 비호하기 위해서다. 박 의원은 83번째 생일이 6개월이나 지났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자칫하면 그의 사소한 언행이 김 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는 처지다. 그때도 그랬느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 박 의원까지 나서서 ‘현지 누나’를 엄호하는 것을 보면, ‘세긴 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료 의원들끼리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쁠 리가 없다. 그런 호칭이 굳이 민주당이나 호남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풍토도 아니다. 경북 출신인 한 대학 총장도 젊은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형님’, 아니면 ‘아우님’이라고 부른다고 소문이 난 적이 있다. 친화력이 좋고, 마당발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국민의 힘 정치인 중에도 ‘형님’이라는 호칭을 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인이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뻔하다. ‘공식적인 관계보다는 가깝게 지내자’는 제의다. ‘너무 야멸차게 원칙만 들이대지 말아달라’는 응석이다. 친 형님처럼 푸근하게, 친 누님처럼 따뜻하게 대해달라는 부탁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사나 청탁을 잘 챙겨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남의 부탁은 몰라도 형님이나 아우 부탁은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계산이 담겨 있다. ‘형님’이란 말을 정치인보다 더 잘 쓰는 집단이 ‘조폭’이다. 무슨 말을 하건 ‘형님’을 갖다 붙이는 게 조폭 어법이다. 개그맨들이 종종 그런 말투로 조폭을 흉내 내 관객을 웃기는 걸 본다. ‘형님’에는 논리가 없다. 명령과 복종뿐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단순 무식’이 이 세계의 절대 규율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정치권, 공직 사회에 얹혀지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공(公)’과 ‘사(私)’가 비빔밥이 되는 것이다. 문진석 민주당 수석원내부대표가 김 남국 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 비서관에게 보낸 문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국 아, 우리 중대 후배고···”. 같은 대학 동문이니 내가 챙기는 것이고, 너도 챙겨야 한다는 논리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업무와 관계없는 줄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민간단체다. 공직, 공공기관, 정부가 공식으로 관여하는 자리가 무수하다. 그런데, 이런 민간단체장까지 대통령실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디지털소통비서관은 자동차산업과 관계가 없다. 인사 와도 거리가 멀다. 제1부속실장도 인사담당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거대 여당의 원내 제2인자가 그런 줄을 잡고, 인사청탁을 했다. 대통령실 비서관도 ‘현지 누나’가 인사를 좌우하는 실력자라고 지목했다. 이걸 단순한 해프닝으로 덮을 수 있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권 실세들이 모두 ‘현지 누나’가 민간협회장을 낙점해줄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만사현통’이라는 시중의 소문만 믿은 건 아닐 것이다. 야당이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국회로 부르자, 이재명 대통령은 그에게 문고리 권력을 맡겼다. 국회 출석을 회피할 수 있는 자리다. 문자 소동 끝에 김현지 실장은 “나는 아주 유탄을 맞았다”라며 억울해했다. 그렇다면 진즉 국회에 나왔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의 개명)으로부터 사소한 도움을 받다 비선 논란에 휘말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지나친 국정 개입을 감싸려다 제 발등을 찍었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비선(秘線)’은 권력은 휘두르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무책임한 권력만큼 위험한 게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재 풀은 매우 좁다. 성남 시절 지인이 아니면, 자기 사건 변호인들이다. 그 밑에서 돌아가는 모양도 ‘끼리끼리’다. 사적 관계에서 살갑고 정이 넘치는 건 좋다. 하지만 공적 영역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국정 운영은 더욱 그렇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2-07

호칭 문화

한국사회의 호칭문화는 매우 복잡하고 독특하다. 사회적 구조와 나이, 서열, 직장에 따라 호칭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애로를 겪는 분야 중 하나다. 친가, 처가, 외가 등에 따라 호칭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 존댓말과 반말이 구분된다.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 간 사용하는 호칭이 별도 있다.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단어도 ‘님’ ‘씨’가 있는 반면 ‘놈’ 혹은 ‘것’까지 다양하다. 자칫 잘못된 단어 선택은 상대에게 큰 실례가 된다. 4년 전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영국 옥스퍼드는 한국의 단어 26개를 표제어로 등재했다. 먹방, 김밥, 불고기, 삼겹살 등 한류문화와 관련한 단어다. 그중 눈여겨볼 것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오빠(OPPA)와 언니(UNNI)가 등재된 사실이다. 옥스퍼드 측은 K팝이나 K드라마가 등재의 결정적 이유라 했다. 외국인은 한국 배우나 가수를 부를 때 자신의 성별과 무관하게 ‘오빠’와 ‘언니’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남성 외국인이 ‘오빠’ ‘언니’라 불러도 이상할 것 없다는 뜻이다. “Oppa JinJa Deabak!”(오빠 진짜 대박)과 같은 말들이 K-컬처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들을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청탁문자 파문으로 대통령실 비서관이 사직했다. 이와 별개로 공적 관계 속에 그가 사용한 “형” “누나” 호칭을 두고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일종의 언어풍토”라고 했지만 공직자가 근무 중 “형, 누나”같은 사적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적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현의 사용은 공적 영역에서는 신중한 게 옳다. 공적 기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7

무지와 빈곤

사노라면 우연한 계기로 변화와 마주하는 수가 있다. 무슨 연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2012년에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레미제라블’을 읽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와 뮤지컬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정작 원작을 읽지 않았던 터였다. 6권짜리 2400쪽이 넘는 대작이었지만, 대가의 솜씨 덕분에 비교적 빠른 기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 첫머리에 위고는 쓴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책도 쓸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위고 이전에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는 19세기 영국에 만연한 무지와 빈곤에 대한 소설을 출간했다. ‘올리버 트위스트’(1838), ‘크리스마스 캐럴’ (1843), ‘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어려운 시절’(1854)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디킨스의 소설 작품들은 위고의 ‘레미제라블’만큼 울림이 크고 깊지 않다. 필시 그것은 디뉴의 미리엘 주교와 죽음을 눈앞에 둔 86세의 노정객 국민의회 의원 G 사이에 펼쳐지는 프랑스 대혁명 관련 논쟁 때문일 것이다. 왕당파이자 보수주의자 미리엘 주교와 진보적인 공화주의자 국민의회 의원 사이의 기나긴 논쟁은 소설의 백미(白眉)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회 의원은 말한다. “루이 16세 처형은 여성에게는 매춘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의 종말, 어린이에게는 어둠의 종말이오. 공화제(共和制)에 찬성함으로써 나는 그 일에 찬성한 것이오.” 그의 선택은 왕과 그 아내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무지와 빈곤에 신음하며 매춘과 노예 노동, 출구 없는 암흑에 빠진 가난한 다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파괴적인 분노에 반대한다는 미리엘 주교를 반박하면서 의원은 말을 잇는다. “정의에는 분노가 있는 법이오. 올바른 분노는 진보의 요소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예수 탄생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일보였소. 대혁명은 비천한 인간들을 해방했소.” 여기서 우리는 위고의 정치적 입장이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양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같다. 어떤 영화나 오페라에도 이런 기막힌 서사는 나오지 않는다. 공연에 필수적인 상업적 고려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소설에서 독자는 무지와 빈곤에 시달리는 여러 인물과 대면한다. 장발장, 팡틴, 코제트, 에포닌, 가브로슈 등등을 거명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자기 손으로 무지와 빈곤을 극복한 유일한 인물은 장발장이다. 무지와 빈곤의 최대 피해자 팡틴은 매춘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그래서 위고는 여자가 비참한 경우에 빠진 것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미혼모임이 밝혀지면서 쫓겨나고, 저임금으로 바느질하다가 머리털을 잘라 팔고, 끝내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해 죽어갔던 비운의 여인 팡틴! 고교교육을 의무화한 한국 사회는 무지와 작별했다. 하지만 빈곤은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2014년 2월의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사회 안전망과 경제적 양극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창밖 바람이 차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07

지속 가능한 포항시 2040 도시기본계획의 조건

지난주 금요일부터 포항시의회는 내년도 예산 심사에 돌입했고, 건설도시위원회는 첫 순서로 도시안전주택국 예산을 심사했다. 특히 이번 심사에는 포항시 도시계획과가 제출한 2040 도시기본계획 수립 용역비가 포함되어 있다. 본 의원은 도시안전주택국 정책 질의에서 ‘2040 도시기본계획 수립의 중요성’을 집중 다뤘다.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이 계획은 앞으로 포항시의 행정·재정·공간정책을 이끄는 도시의 헌법과도 같은 존재다. 사실 그동안 포항시의 도시기본계획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대표적으로 △생활권 구조 분석의 부족 △인구·경제 전망의 과도한 낙관주의 △구체적 실천 전략의 부재 등이다. 특히 지난 계획에서는 인구 감소 추세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해 택지 과잉 조성, 녹지 훼손, 공동주택 공급 과잉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포항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40 도시기본계획은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한 다음 계획 수립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산업 전환을 반영한 미래 도시상을 제시해야 한다. 포항은 오랜 기간 철강 산업 중심의 산업도시였지만 지금은 AI, 2차전지, 수소 등 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다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변화다. 산업이 바뀌면 도시공간의 기능, 주거와 교육, 교통체계, 청년 정주 환경까지 모두 달라져야 한다. 둘째, 남·북구 균형 발전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도시계획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포항은 남구에 산업단지와 공업시설이 집중되면서 환경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북구는 주거와 상업 기능이 몰리며 지역 간 편차가 심화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 증가, 교통 혼잡, 주거·교육 서비스 격차 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남·북구 생활 SOC 균형 배치, 원도심 활성화 전략 등을 포함해 도시 전체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셋째, 2040 도시기본계획은 개발 중심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도시는 “아파트를 지으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개발 중심 논리를 앞세웠지만, 저출생·고령화·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면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포항 역시 1인 가구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 인프라,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보육·교육 환경, 어르신의 돌봄 공백이 없는 촘촘한 복지체계를 우선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숲 확대, 안전도시를 위한 환경·재난 계획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2040 도시기본계획은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계획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산업 전환, 균형 발전, 지속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방향을 중심으로 2040 도시기본계획이 설계된다면 포항은 단순히 ‘성장하는 도시’를 넘어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 다음 세대가 꿈꿀 수 있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2040 도시기본계획이 지속 가능한 포항시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2-07

혐오하기의 즐거움을 넘어서려면

며칠 전 12·3 계엄 1주년이 지났다. 12·3 계엄 선포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혐오가 극단적으로 표현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포고령 1호의 1번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혐오하기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엇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다음 날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3학년 학생 20여 명을 대상으로 이틀간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을 시도했다. 교사 엘리엇은 평소 서로 잘 지내던 아이들을 푸른 눈, 갈색 눈 두 집단으로 나눠서 첫날은 푸른 눈이 열등하다고 차별하고, 둘째 날은 갈색 눈이 열등하다고 차별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했으나 우월하다고 지목된 집단의 아이들은 하루 만에 바로 열등하다고 지목된 집단의 아이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공격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혐오는 단순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혐오 다음에는 반드시 폭력이라는 행동이 뒤따른다. 작년에는 당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기자간담회 도중 칼로 피습 당했고, 같은 해 7월에는 트럼프도 피습 당했다. 윌리엄 피터스의 ‘푸른 눈, 갈색 눈’을 번역한 김희경은 책 말미에 해설과 후기를 아주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섬뜩했던 것은 엘리엇이 이 실험 결과를 책으로 낸 후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는 뒷이야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몇십 년이 지난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격 행동을 유발하는 혐오가 여전한 것을 보면, 어쩌면 혐오하기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실제로 영국의 수필가 윌리엄 해즐릿 (1778-1830)은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산문에서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고 변화와 활기를 원한다’면서 ‘혐오할 게 없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천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삐걱거리는 이해관계, 제멋대로인 열정으로 계속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고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해즐릿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었다가 배신당한 후 냉소적으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제시한 자료들을 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사이코패스도 좋은 교육을 받으면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인간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올해 92세를 맞이한 교사 엘리엇이 여전히 강의 활동을 하는 이유다. 한편, 혐오하기의 즐거움이 가슴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남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푸른 눈, 갈색 눈’ 교육만으로는 혐오를 다 해결하기 어렵다. 행복한 사람은 혐오에 휘둘릴 가능성이 적다. 혐오를 즐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는 행복한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07

AI 데이터센터, 축복인가 숙제인가

전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데이터센터 유치가 각 지자체의 새로운 산업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항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탔다. 오픈AI와 NeoAI Cloud가 추진하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고 2027년 1월 본격 운영할 목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년 포항시장 자리를 노리는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도 이에 관한 포항의 미래를 그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사업이 잇따라 중단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6일 최근 약 3개월간 미국 내 약 242억달러(약 35조700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개발사업이 주민 반발로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소규모 일자리 외에는 전기요금 상승, 소음, 환경오염 우려와 같은 ‘외부 불경제 시설'이라는 것이 핵심 이유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혐오시설’로 분류되기도 했다. 전력 문제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다.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사용한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데이터센터 밀집 이후 전기료가 전년 대비 13% 상승했다. AI 데이터센터 비상발전기용 디젤 연료가 배출하는 PM2.5와 NOx가 건강 위험 요인이어서 주민 반대여론에 불을 붙였다. 미국 UC리버사이드는 2028년 데이터센터발 환경비용이 연간 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사례는 포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광명산단은 국가 간선망 수준인 345kV 변전소를 기반으로 별도 이중화 없이도 전력공급 안정성이 확보돼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산업전환과 지역 수용성 측면에서는 과제가 적지 않다. 포항의 데이터센터가 ‘기회’가 될지, 미국처럼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여러 측면에서 어떠한 해법을 제시할 지에 달려 있다. 데이터센터는 지역사회와 밀접한 시설인 만큼 발열·소음·전력소비 등 운영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감시·평가 구조에 시민 참여가 필요하다. 또 미국의 사례처럼 지역과 무관한 데이터 처리·저장시설에 그치면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거의 없다. 포항이 지닌 철강, 배터리, 바이오, 가속기 등 방대한 기술데이터가 AI와 연계되는 전략이 뒤따라야만 한다. 데이터센터의 고용유발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반면 AI 연구·운영·서비스 생태계가 함께 구축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포스텍·한동대·RIST·KIRO 등 기존 R&D 인프라와 융합된다면 포항은 AI 전문도시로 성장할 수도 있다. 포항은 지금 변곡점에 있다. 데이터센터는 미래 산업의 심장이지만 심장은 혈관과 조직, 생태계가 연결돼야만 제 역할을 한다. AI 데이터센터 유치로 포항의 미래를 바꾸려면 처음부터 그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포항은 데이터센터를 ‘보유만 한 도시’에 그칠지, 이를 계기로 ‘AI 산업을 주도하는 도시’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2-06

로비가 본업(?)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를 낸 쿠팡의 로비가 언론을 통해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쿠팡의 정관계 로비는 국내 굴지 대기업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정관계 인사 영입에서 입증된 결과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쿠팡은 2020년부터 올 9월까지 4급 이상 고급 공무원 44명을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만 18명을 채용했는데 그중 절반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 한다. 특히 연초 정권교체가 예상되면서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 최근에는 고용노동부에서만 8명을 데려왔다고 한다. 이들은 억대 연봉과 임원급 대우를 받으면서 정관계를 대상으로 쿠팡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한 방송에서 “쿠팡은 보안 내실보다 정관계 로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같은 사실은 쿠팡의 정보보호 투자액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쿠팡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매출 대비 0.2%(660억원)로 카카오나 SK텔레콤 등 다른 IT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업은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불합리한 규제나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과정에서 로비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선 로비를 합법화해 신고 및 관리한다. 대신 기업은 로비 활동 내역을 분기별로 공개해야 한다. 국가든 기업이든 일에는 원칙이 우선이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이 오게 마련이다. 사자성어 정본청원(正本淸源)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이커머스 회사의 기본은 정보보안이다. 로비는 그 이후 문제다. 쿠팡 사태는 기본을 망각한 데서 나온 경영의 실패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4

초코파이 한 개와 기소편의주의

작년 1월 전북 완주군의 한 물류회사에 보안업체 직원이 순찰을 하다가 사무실 냉장고를 열어 초코파이 한 개와 커스터드 한 개를 꺼내어 먹었다. 대기실 같은 곳에 놓여 있는 손님용 다과가 아닌 사무실 내 냉장고에 들어있던 과자였으니까 이것은 회사의 직원들이 먹기 위해 사둔 간식이지 외부인인 보안업체 직원이 먹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필자의 변호사 사무실에도 캡스 직원이 출동할 일이 있다. 그럴 때 점검을 끝낸 캡스 직원이 사무실 입구 대기의자에 놓인 사탕을 몇 개 집어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탕비실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보관해 둔 박카스나 귤을 꺼내어 먹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보안업체 측에 문제 제기를 하거나 고소를 생각할 여지도 있다. 이번 초코파이 사건도 그렇게 바라보면 절도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의사와 절취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불법영득의사란 권리자를 지속적·계속적으로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를 말한다. 포장이 바뀐 초코파이의 사진을 잠깐 찍기 위해 꺼냈다가 넣어놓으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다시 사 와서 넣어둘 생각으로 초코파이를 꺼내어 먹고 실제로 금방 같은 초코파이를 사 와 냉장고에 넣어두었더라도 이것은 불법영득의사가 있는 것이고, 절도죄는 기수이다.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도 있어야 한다. 회사 측의 명시적인 허락이 있었든 아니면 그동안의 관행에 비추어 묵시적 허락이 있었던 것이든 순찰을 오는 보안업체 직원들도 냉장고 속 과자를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면 절취의 고의는 없는 것이 되겠지만, 반대로 회사의 허락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았다면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물류회사는 초코파이를 꺼내 먹은 보안업체 직원을 고소했고, 검찰은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해 절도죄로 기소했다. 1심 법원도 절도죄를 인정하며 벌금 5만원형을 선고했지만,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2심 법원은 불법영득의사는 인정되나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단 한 번, 1050원치의 과자 두 개를 꺼내 먹은 이 사건은 이렇게 오랜 수사와 기소와 재판과 기자들의 취재와 사회적 논란 등을 거쳐 마침내 무죄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 사건을 절도죄로 인정한 검찰의 판단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절도죄가 맞든 아니든 이런 사건에 이 정도의 공권력과 사회적 에너지를 쏟는 것이 맞는가? 기소독점주의만큼 강력한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라는 것이 있다. 기소는 오로지 검사만이 할 수 있지만 검사는 재량으로 기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 법리적 논란도 있고 피해액도 극도로 경미한 이런 사건을 굳이 기소하지 말고 국민세금과 공권력 아끼라고 기소편의주의가 있는 것이다. 처벌받아 마땅한 사건들도 이유 없이 경찰의 불송치결정,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나곤 해 답답한 요즘, 초코파이 한 개, 커스다드 한 개 사건을 보며 당신들 기소의 기준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경찰과 검찰에게 묻고 싶어진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04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

어두운 시절의 철 지난 유품처럼 여겨졌던 계엄을 목도한 지도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삼류 소설이자 흔한 졸작조차 되지 못할 어설픈 국가 폭력의 시도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내란 종식에는 한 치의 타협도 있을 수 없건만 별의별 사족들이 왜 그렇게 달리는지 모르겠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 계엄을 선포한 자나 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의 위증을 지켜봐야 하는 일도 고되다. 조속히 응분의 대가를 받길 바랄 뿐이다. 요즘 들어 출근길 지하철 역사의 안내방송이 눈에 밟힌다. “특정 장애인 단체의 불법 시위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식의 내용이다.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농성의 의미를 축약할 수 있을까. 법대로 소수자들의 권리가 쟁취되는 꼴을 여태껏 보고 들은 경험이 없다. 직장이나 학교에 조금 늦는 일도 각자의 일상에서 작지 않은 손실일 수 있겠지만, 남은 생애를 바쳐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에도 귀를 좀 열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쿠팡 새벽 배송에 관한 논란들은 어떤가. 야간 근무에 시달리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뒤로하고, 나름 배웠다는 정치인도 그들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노동권의 자발적 행사였으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런 논리면 자살 방지 대책 같은 것들도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자들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왜 챙기려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는 불법이라 호명되는 소수자들의 행진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수호되는 노동자의 죽음에 천착하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한다. 민주주의란 본래 소란을 의미한다. 질서의 반의어라는 말이다. 계엄 이전에도 윤석열 정권은 ‘입틀막’으로 버티고 있었다. 독재는 고요한 법이다. 권력에 반하는 무수한 말들을 억누르는 힘의 강제야말로 전횡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주의란 사회에서 자신의 몫이 없다고 간주되던 자들이 여기저기서 자기의 권리를 주창하고 나서는 사태를 의미한다. 숨죽이며 지내던 이들의 목소리로 세상이 분란할 때야말로 민주주의를 실감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이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퀴어 축제나 장애인 시위, 노동자 파업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자신들의 주장을 왜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며 해야 하느냐는 성토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란 거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불편 따위가 무슨 큰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바쳐 행해야만 하는 과제가,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용인하면 되겠나. 사회란 그렇게 굴러가서는 파멸할 뿐이다. 따라서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는 일로부터 쟁취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학창 시절에는 지겹게 듣던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표어가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의 곁에는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비)존재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을 때, 계엄을 해제하며 소망하던 그런 민주주의가 비로소 당도하지 않겠는가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4

덜 떨어진 금성인

‘깻잎논쟁’이란 말이 있다. 남의 부인이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떨어지는 것을 본 남자가 깻잎을 떼주다가 자기 부인에게 된통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게 방송을 타자마자 패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렇게 논쟁이 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깻잎이 안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면 좀 도와주는 것이 뭐 어떤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하게 된다. 사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벌어졌고, 남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다가도 낭패 보고 술자리에서 한 잔 따라주다가도 잔소리 들은 적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을 자제하게 된다.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소유욕 혹은 독점욕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나름 고상한 체면 때문인지 대답을 잘하지를 않는다. 단지 그러한 행동을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서 말한다. 그냥 애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그런 친절한 서비스는 나만 받을 자격이 있고 나 이외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튄다는 말은 애써 자제한다. 요즘 유행하는 ‘천박한’ 언어이기에 사용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었다간 일이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그냥 늘 하던 식으로 내가 또 뭘 잘못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는다. 남자 인생이 뭐 별거가 있나. 이런 것을 서로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는 화성인 금성인으로 구분한다든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해서 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MBTI에 가져다 붙여,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성격상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논란에 휩싸인 라캉의 한 책에서 그 정답을 찾곤 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언어 체계로 수렴되지 않고, 부부가 ‘서로 통하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한국 남자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가 여자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정도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이성적 판단으로 몇 가지 포즈를 더 요청하면서까지 성의를 베풀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집사람이 말을 안 한다. 분명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깻잎을 떼어준 적도 없고 생선 살을 발라준 적도 없기에 집에 올 때까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남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없다. 사진 찍어준 것도 죄가 되나? 나이가 들어도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한참이나 이어질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 때문에 누구라도 붙잡고 이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다. “AI, 너는 아느냐? 저 여자가 왜 저렇게 삐졌는지를?” /노병철 수필가

2025-12-04

고객정보 유출, 책임은 어디에?

쿠팡이 사고를 쳤다. 소비자 고객들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계좌내역, 심지어 자택입구 비밀번호까지 시중에 떠돌게 되었다. 정보유출이 퇴직자의 소행이었다지만, 책임의 소재를 단순히 개인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다. 회사는 고객정보를 관리하고 보호할 책임을 지닌 주체로서, 이 같은 사고로 초래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이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규제환경을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상응하는 소비자 보호체계를 갖추어 높은 수준의 정보보호시스템을 보유했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행정실책이 아니라 기업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여겨져야 한다. 막대한 금액의 피해 보상은 물론 주주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고경영진이 직접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 회사의 신뢰가 흔들리면 주가급락과 투자자 손실이라는 직접적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에, 미국 기업이라면 기업의 사활을 걸고 대응했을 사건임에 틀림없다. 쿠팡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 한국 사업장에서만 활동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미국 본사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 정보가 유출되어 발생할 수 있는 사기, 금전적 피해, 심리적 불안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기업이 법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단순한 관리소홀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의 문제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존재하지만, 현실적 강제력과 피해보상 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 유출 시에 금융적, 평판적 피해가 단기간에 직접적으로 가시화되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므로 책임있는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등록기업으로서 한국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글로벌수준의 개인정보 관리와 책임 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퇴직자의 실수’라 치부하며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소비자 대중이 짊어지게 된다. 제도적인 보완과 철저한 규제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소비자들이 기업에게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책임과 투명성, 그리고 대응수준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쿠팡은 고객정보 유출로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업의 신뢰와 사회적 책임은 법적 의무를 넘어, 공공의 신뢰형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기업이 소비자를 가벼이 여기는 풍토를 일소해야 하며, 정부가 국민을 대신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소비자 국민을 존중하고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경제환경이 예전과 비교할 때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소비자 환경이 나아지지 않고는 선진국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국민이 신뢰하고 소비하는 기업이 되어야 하며, 소비자 국민은 늘 깨어있어 경계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2-03

왜 운동과 치료를 해도 괜찮다가 다시 나빠질까

통증이 생기면 사람들은 운동을 하거나 약을 먹고 병원·한의원 치료를 받아 일단은 편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똑같은 통증이 올라오고 좋아졌다가 나빠졌다를 반복한다. 마치 몸 안에 보이지 않는 스위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것이 단순한 근육의 문제라면 반복될 이유가 없지만 몸의 더 깊은 층위에는 늘 같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 그 힘의 정체가 바로 자율신경의 긴장 패턴과 무너진 체형 구조다. 스트레스, 과로,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몸은 싸우거나 도망가야 하는 모드에 들어간다. 이 상태에서는 어깨와 목, 뒷목, 허리 근막이 미세하게 수축한 채로 유지된다. 이 긴장은 겉으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계속 근육과 근막을 조이고 커다란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놓은 것처럼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침 치료나 마사지, 스트레칭, 운동을 하면 일시적으로 개선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고무줄이 잠깐 느슨해졌다가도 이내 다시 원래의 팽팽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문제는 통증이 오래될수록 체형과 움직임도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아프면 아픈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보상 자세를 만든다. 허리가 아프면 골반을 틀고 목이 아프면 턱을 당기고 어깨가 아프면 팔을 덜 쓰는 식이다. 이런 보상 패턴은 통증을 일시적으로 줄여주지만 결국 또 다른 부위에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이 다시 통증을 만들며 악순환을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단순한 운동이나 한 부위만 푸는 치료로는 이 보상 구조를 되돌릴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몸이 이미 이렇게 긴장된 상태가 정상이라고 기억해버렸다는 것이다. 자율신경은 몸의 전체적인 톤을 조절하는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이 긴장 상태로 세팅되어 있으면 잠깐 이완시켜도 다시 긴장 쪽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운동을 잘해도 치료를 아무리 받아도 몸은 다시 원래의 불편한 패턴을 반복한다. 결국 재발의 핵심은 통증 자체가 아니라 통증을 만들어내는 배경 패턴이 유지되고 있어서이다. 이 패턴을 바꾸는 과정은 단순히 아픈 부위를 손보는 것과 다르다. 자율신경의 과흥분을 낮추고 근막의 전체적인 긴장도를 줄이며 잘못 굳어진 구조와 움직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성상신경절이나 익구개신경절을 다루는 치료는 높아진 자율신경의 신경 흥분을 끌어내리고 몸의 톤을 이완 방향으로 다시 설정한다. 초음파 가이딩 약침은 긴장된 근육·근막을 정밀하게 풀어주며 매선은 약해진 구조를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고 다시 긴장으로 돌아가는 속도를 늦춘다. 한약은 늘 경계 상태에 머물러 있던 몸의 회복력을 끌어올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이 패턴 전환을 더 빠르게 만든다. 결국 잠깐 좋아지고 다시 나빠지는 몸은 아픈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몸 전체가 긴장을 기본값으로 저장한 채 그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 때문이다. 자율신경, 근막, 구조, 호흡, 움직임이 함께 조율될 때만 비로소 몸은 새로운 패턴을 학습한다. 치료 효과가 길게 유지되고 재발이 줄어드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03

'쌍벽가' 감상하기

내방가사가 2022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아태목록에 등재되자 대구와 경북의 관심 있는 여성들은 내방가사 공부에 더 큰 열망을 가졌다. 물론 오래전부터 안동내방가사보존회에서 내방가사 공부방을 열어 안동과 주변 지역의 뜻있는 여성들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이 있긴 했다. 대구에서도 동호회나 연구모임 같은 자생단체가 있어 공부한다는 정보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퇴직 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특강 형식의 강의를 하긴 했으나 단발성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강단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던 것을 사회적 교육으로 지속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긴 했으나 용렬한 탓에 뜻을 비쳐 내지도 못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몇 달 전부터 대구에서 뜻을 같이하는 몇 분과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비록 카페에서 만나서 한 달에 두어 번, 한두 시간 공부하는 거지만 나로서는 제대로 수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의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 내방가사 이론을 제대로 알고 창작까지도 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잡았다. 강의계획서를 만들어 나누고,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고, 이론을 정리하여 수업 준비를 했다. 내방가사에 대한 이론을 단단히 잡은 후에야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훌륭한 작품 감상에 특히 공을 들였다. 내방가사 창작을 꾸준히 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론적 바탕만 있으면 좀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변 소회 정도의 시적 소재와 내용을 4.4조의 운문 형식에 맞춘 듯한 작품이 많아 안타까움이 컸다. 공부하는 분들의 열정이 크고 넘쳐 나기에 강의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무엇보다 국문학 사상 손꼽히는 훌륭한 가사를 먼저 읽어 이해하고, 문체와 구성을 익히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다.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과 같은 명작 가사를 세심하게 읽고 문체와 표현과 구조 분석을 하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나로서도 새삼 다시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기에 나름 귀한 시간이었다. 며칠 후 잡힌 시간에는 ‘쌍벽가’를 감상해 볼까 준비하고 있다. 현전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데 비하여, 이 작품은 작자와 연대가 잘 알려진 작품이며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주해만 있을 뿐 제대로 된 해석본은 없어 감상하기 어려웠다. 한자어 많음에도 한글로 쓰여진 것도 원인이었다. ‘쌍벽가’는 1794년(정조 18) 안동 하회의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내방가사인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던지 경북 여러 집안에서 발견된 이본도 상당히 많다. 작자는 예조판서의 딸로 한양에서 하회로 시집와 신고를 겪은 뒤 58세 되던 해, 맏아들과 조카가 한 해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를 맞는다. 당시 임금 정조가 제문을 지어 내리자 이를 경축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제목에 쓰인 ‘쌍벽’은 과거 급제한 두 형제의 준수하고 출중함이 서로 백중함을 칭찬한 것이다. 구성의 일관성, 뛰어난 표현과 유려한 문장이 초기 내방가사임에도 수작으로 꼽힌다. ‘쌍벽가’를 필두로 다양하고 훌륭한 내방가사를 감상해 볼 계획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03

입추(立秋), 그 너머-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입추(立秋), 그 너머 -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생각해 보니 실패가 성공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무너지지 않는다 겨울이 와도 어떨까, 과연 우리에게 어떤 빙하기가 있었는가 물기가 없으면 얼지 않는다 하여 암각화가 될 수도 있고 물욕이 없으면 망할 일도 없을 것 업적이 초라해도 그것으로의 역사가 되고 벼락박 똥칠도 무늬가 된다며, 깨달음은 없다고(悟道) 가르치는 오도 가을 바다, 마른 눈길 늘 울음을 참는, 그래서 나의 가을 풍향계처럼 그 바다를 탐지하며 결국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만 하소연 없는 태연하고 불량한 바다 그래서 행복하고 불행했지만 그래, 밑천 뻔한 한 끗 차이, 마치 마을에 가닿지 못하는 저 파도 소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작은 바다 마을 …. 시간에는 절대 상처가 나지 않는다. 방치와 외면으로 흘러 지나가는 무서운 존재, 파괴가 없는 절대적인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책임에 분연히 항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머물러 지금에 와서 상처를 입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무기가 되고 훈장이 되어야지 굴레는 아니다. 경험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클리세는 그만두어야 한다. 상처는 새 살을 돋게 한다. 박테리아 혹은 세균도 사람을 돕는다. 거부에 집착하다 보면 외딴 섬이 된다. 진정한 섬은 고립이 아니다. 가능성의 신호, 혹은 미지의 공간에 대한 개활지이다. 존재가 작다고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2-03

대만 관광객 매혹한 돼지국밥

2025년 상반기 부산을 찾은 대만 관광객이 대략 24만9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산을 여행한 외국인 5~6명 중 1명이 대만 사람이라는 이야기. 숫자로도 비율로도 가파른 상승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 여행자들은 부산에 와서 뭘 먹었을까? 알다시피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싱싱한 해산물과 밀면, 돼지국밥 등을 꼽는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의 내장까지 요리해 즐겨 먹는다. 이는 한국인과 유사한 섭식 형태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대만 관광객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를 연발하는 음식은 부산 도처에서 판매되는 돼지국밥이라고. 유명세를 얻은 돼지국밥 식당 앞에서는 몰려든 대만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 대만 관광객 1만57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돼지국밥은 66.9%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부산을 찾는다면 꼭 먹어봐야 할 한국 음식’으로 대만인들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 그 뒤를 어묵(37.4%), 씨앗호떡(22.4%), 장어구이(19.4%)가 이었다. 그렇다면 돼지국밥의 인기 요인은 뭘까. 대만과 달리 뽀얀 국물에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여기에 양념을 더해 얼큰함까지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잡내가 나지 않기에 부모를 따라온 대만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국가의 경계는 물론, 즐기는 음식의 경계 또한 무너지고 있다. 대만과 같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사람들의 입맛을 매혹할 한국 요리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관광산업 발전을 가져올 키워드가 될 수도 있으니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3

가득찬 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의 공기를 묘하게 흔들고 있다. 허윤희 화가의 개인전 ‘가득찬 빔’. ‘가득 차다’와 ‘비다’라는 두 의미가 한 문장 안에 놓인 제목이 막상 미술관에서 햇빛을 마주하니 더 깊게 와닿는다. 빛이 채워지는 순간 비워지고 비어 있는 자리에 다시 들어오는 반복을 보며, 화가가 펼쳐 보이는 작품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전시회에 오기 전, 화가의 책 <나뭇잎 일기>를 먼저 읽었다. 실존적 사유와 생태적 감각을 결합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의 시리즈 작품들 중 하나를 엮은 책이다. 그는 13년 동안 산책길에서 매일 나뭇잎을 채집해 실물 크기로 그리고 단상을 기록했다. 자연과 교감하며 예술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수행자적 삶을 살았다. 작가의 시선은 사라지는 것에 머물렀다. 나뭇잎은 사계를 통해 빛을 품었다가색을 잃고, 낙엽으로 뒹굴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소멸은어쩌면 슬픈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젠가는 소멸될 나뭇잎이 그림으로 그려져 영원히 남겨진 흔적을 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기억해 준다면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오늘 전시회 문턱을 넘으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목탄 벽화 드로잉의 크기에 놀라고, 멸종위기식물을 그린 그림 앞에서는 환경의 회복을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염원한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는 현장에서 예약해 15분간 ‘관집’을 혼자 체험하는 것이다. 작가가 독일 유학 시절에집짓기 프로젝트를 하며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한다. “매일 새로운 날을 상상하며 관집을 짓는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관집을 만들게 된 배경을 떠올리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관집에 들어간다. 지치고 힘이 들 때 고향을 생각하며 동쪽으로 누웠다는 작가를 따라 나도 관집 안에 눕는다. 죽은 이의 전유물인 관 속에, 산 자인 내가 들어가 있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른다. 죽기 전에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내가 다짐하는 그 순간, 온몸 가득 죽음이 아닌 살아갈 이유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이 작은 관집은 죽음을 위한 방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한 장소 같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내 마음에 응어리져 있는 묵은 불안과 억울하게 남겨둔 말들, 정리되지 못한 관념이 바닥으로 찬찬히 내려앉는다. 관집에서 나오자전시실의 빛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집안의 어둠에서 빠져나온 탓인지빛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전시실에서 ‘해돋이 그림’을 마주한다. 관집에서 발산되던 정적과는 반대로 생성 에너지가 내 몸을 스친다. 제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 세상 모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돋을볕을 반복해서 그린 작품을 보며 나는 포항 바다의 일출을 떠올린다. 늦가을 새벽, 집 근처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바람은 차갑고 어둠이 짙어 해가 뜨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한 순간 수평선이 붉게 열리기 시작한다. 아침노을은 늘 비슷하지만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허윤희 작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깊은 어둠과 붉은 선이 그림마다 똑같지 않고 변주되어 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대에 해돋이를 그린 화폭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숨결 같은 것이 스며있는 듯하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산책로에 잠시 머무른다. 단풍잎으로 풍성한 나무가 이제 곧 찬바람이 불어오면 앙상하게 비워질 것이다. 그러나 비워진 공간에서 겨울 풍경으로 채워질 나무를 떠올리니 그리 애석하지만은 않다. 나는 이제 ‘가득찬 빔’이라는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 비워진다는 것은 다시 채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정미영 수필가

2025-12-03

‘철의 도시’ 포항, ‘글로벌 AI 심장’으로 도약해야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국제적 AI 기업과 삼성그룹, NeoAI Cloud(옛 텐서웨이브코리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얼마 후 포항에 들어선다는 소식을 50만 시민과 함께 뜨겁게 환영한다. 이는 포항이 ‘철강보국’의 영광을 넘어, ‘AI 혁신 허브’로 웅비할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최종 부지가 발표되고 연내 착공이 예정된 이 사업은 1단계 투입 예산만 약 2조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다. 이는 단순한 기업 유치를 넘어, 포항 경제의 향후 50년, 100년의 방향을 결정짓는 역사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특히, 포항이 가진 잠재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 가능성을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대한민국 동남권의 심장, 포항을 왜 선택했을까. 답은 명확하다. 포항은 AI 데이터센터 건립과 운영에 필요한 ‘최적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다. 첫째,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와 인재다. 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한 우수한 이공계 인재 풀, 방사광가속기와 로봇융합연구원 등 세계적 수준의 첨단 R&D 기반은 타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며, AI 연구개발의 산실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울진 원전과 연계된 동해안의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망은 데이터센터 운영의 필수 요건인 최고 수준의 안정성과 전력 이중화를 제공해 포항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셋째, 살아있는 산업 데이터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포항 제철 산업의 방대한 데이터는 AI와 결합해 기존 제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혁신을 이끌 것이다. 여기에다 배터리, 수소, 바이오 등 포항이 주도하는 미래 신산업 현장에서 쏟아지는 고급 데이터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연구개발에 핵심 연료가 돼 신소재와 신약 개발 등 고부가가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센터 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포항시는 정부 및 삼성, 글로벌 AI 기업 등 파트너사들과 긴밀히 협력해 인허가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전담 T/F팀’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행정은 기업의 속도에 맞춰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포항은 이제 ‘철의 도시’라는 영광스러운 유산을 딛고, 데이터와 AI가 흐르는 ‘디지털 혁신 도시’로 도약해야 한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는 그 구심점이 돼 지역 기업들이 클라우드와 AI 연산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손쉽게 확보하고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산업·경제·사회를 아우르는 전주기 AI 혁신 생태계와 국가 혁신을 선도하는 ‘AI 고속도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이제 우리 포항이 가야 할 길이 됐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포항의 위대한 도약을 위해 나 또한 힘을 보탤 것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2

폭풍 속으로 들어간 ‘국민의힘 내분’

국민의힘 내분 양상이 파국으로 가는 분위기다. 조만간 당 지도부가 중심이 된 주류세력과 비주류 세력(소장파의원, 친한동훈계) 간에 전면전이 벌어질 태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초·재선 의원 30여 명은 지난주 ‘장동혁 지도부’가 응답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김재섭 의원은 “지도부에서 사과와 성찰의 메시지가 있으면 좋겠고, 그게 안 된다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용태 의원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것이 정치 도리다. 당 지도부는 보수 재건의 중차대한 순간에 억지 논리로 도망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직격했다. 두 의원은 당 지도부가 ‘계엄 사과’에 미온적일 경우, 초재선 의원들이 별도의 사과 성명을 발표하거나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 광역단체장들도 계엄 사과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당 지도부는 여전히 냉랭한 반응이다. 섣불리 사과했다가는 오히려 민주당의 ‘내란 정당’ 역공세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최근에도 “우리가 고개를 숙이면 고개를 부러뜨리고 허리를 숙이면 허리를 부러뜨릴 것”이라고 했다. 당 내분은 계파 갈등의 뇌관으로 꼽히는 ‘당원 게시판’ 조사로 심화되고 있다. 이 논란은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서 작성자 검색 기능을 통해 한동훈 전 대표와 그의 가족 이름을 넣고 검색했더니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는 의혹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8일, 이 논란에 대해 조사절차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감사위 이호선 위원장은 장 대표가 지난 9월 임명한 인물이다.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정치인 중에는 친한(한동훈)계가 다수 포함돼 있어, 당 주류 측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게시판 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말도 나온다. 당무감사위가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조사해야겠다고 통보한 게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감사위는 김 전 최고위원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신천지 등 특정 종교를 사이비로 규정해 차별적 표현을 했다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내분은 지방선거 경선 룰(규칙)을 ‘당원 50%, 국민 50%’에서 ‘당원 70%, 국민 30%’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증폭되고 있다. 당 주류측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 때 당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고, 비주류측은 ‘당심’을 우선한 경선 규칙으로 후보를 뽑으면 본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이다. 현재 국민의힘 비주류 측에서는 당 지도부의 현 기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외연확장은 어렵다는 비판적 기류가 강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에 머물자 한 보수원로는 “국민의힘은 이대로는 계속 갈 수 없다. ‘제정신파’와 ‘제정신 아닌 파’로 나뉘어야 살길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데 엉켜 있으면 공멸뿐이라는 주장이다. 독주하는 여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이처럼 자중지란을 거듭하고 있으니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02

물가와 대통령 지지율

11월 27일은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 사이에서는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명절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오랜만에 부모님 계시는 곳을 찾아 전통의 요리인 칠면조 구이를 먹으며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하는 날이다. 미국의 경제 싱크탱크인 한 단체는 올해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비용을 조사 발표하면서 작년보다 약 10% 올랐다고 했다. 세부 품목별로 양파 56%, 스파이럴 햄은 49% 폭등했고, 크랜베리 소스와 크림 콘은 22%와 21% 각각 올랐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가 추수감사절 물가에 대해 “스트레스 받는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가족모임 규모를 줄이겠다는 대답도 25%나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의 관세정책을 펴면서 “관세는 외국기업이 낸다. 미국인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고율의 관세가 미국 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경제전문가들은 관세의 부메랑이라 부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2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미국 성인 13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긍정 평가를 내린 사람이 36%로 나타났다고 했다. 10월보다 5%포인트가 떨어졌고 트럼프 2기 들어 가장 낮은 수치다. 부정 평가는 60%로 6% 포인트가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설문 응답자들은 경제와 높은 물가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물가는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지표다. 과거부터 어느 나라든 물가와 대통령 지지율은 역비례했다. 새겨둘 내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