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증가하는 ‘적자 가구’

적자(赤字)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해 손해가 발생된 상태를 뜻하는 단어다. 한국 가정의 상당수가 현재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우려스럽다. 최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은 “지난해 4분기 기준 4가구 중 1가구가 적자 가구(25%)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이는 6년 만에 가장 커진 수치라고 한다. 지출이 처분가능소득을 넘어서면 적자 가구가 된다. 처분가능소득이란 전체 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 이자 비용 등 비소비 지출을 뺀 다음 이전소득을 더해 가계와 개인이 자유롭게 소비와 저축에 쓸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한다. 풀어서 쉽게 이야기하면 ‘벌어들인 돈에서 이것저것 나가는 것을 제하고 나면 기념일 조그만 선물을 사거나 식구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 한 번 할 돈도 모자란다’는 것. 적자 가구 비율은 2020년엔 23.3%였다. 2021년과 2023년 사이엔 24%대였고, 2024년에는 23.9%로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1.1%p 상승하는 그래프를 그렸다. 하위 계층일수록 적자 가구 비율이 높은 것도 문제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적자 가구 비율은 58.7%로 조사됐다. 1년 전보다 1.8%p 높아진 것이다. 반면 비교적 소득이 높은 3분위와 4분위의 적자 가구 비율은 각각 20.1%와 16.2%로 나타났다. 가구당 월평균 이자 비용이 13만4000원으로 가파르게 상승 중이고, 물가도 연일 오르고 있는 상태다. 주식시장은 호황이라지만 적자 가구는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 적자가 반복되는 서민 가정의 삶은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3-02

'딥 블루'

서울 동묘시장을 배경 공간으로 삼은 단편소설, 겨우 완성은 했다. 제목은 ‘윙컷’, 영어로 ‘wing cut’, 날개를 잘렸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쓰겠다고, 수년을 오갔었다. 이번에도 여러 번 다시 찾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적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썼다. 수년 만에 간신히 한 편 더한 셈이 되었다. 탈북 여성 춘희가 ‘베카’라는 이름으로 동묘시장 빈티지 가게에서 일하는 내용이다. 개연성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 삶은 근본적으로 우연에 얽매인다. 옛날 작가 이효석처럼 나 또한 지금 그렇게 믿는다. 세월과 경험은 논리 이상이다. 그러고 나서 ‘딥 블루’(deep blue)가 왔다. ‘깊은 우울’이라 해도 좋고 ‘깊은 푸른빛’이라 해도 좋은 것을, 어감은 굳이 ‘딥 블루’라 쓰게 한다. 만족스럽지는 않다. 작가 최인호 소설 ‘깊고 푸른 밤’을 생각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확실히 나는 ‘본의 아니게’ 북한이라는 명제에 매달린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나를 생각한다. ‘딥 블루’가 더욱 분명해진다. 꼭 그것만은 아니다. 몇 주 전 학생들과 함께 나가사키에 다녀올 때, 거기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 문학관 앞 망망한 바다, ‘딥 블루’였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자기 믿음을 위해 죽음을 무릅쓴 스물여섯 명의 순교자들. 또 이 나가사키 군함도를 쓴 한수산 소설 ‘군함도’. ‘딥 블루’. 또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확실히 ‘블루’한 삶의 도정 속에 있다. 정치나 종교, 북한이나 순교만이 아니다. 삼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는 치매 증세라고밖에 명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을 겪어내야 한다. 학과는 십 년을 표절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를 둘러싼 ‘처신’ 때문에 다들 힘들다. 세상일이 옳은 데로 가는 것만 아님이, 이토록 뼈저리게 감각될 수 있을까. 길고도 힘든 시간이다. 옳고 그름뿐 아니다.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에 접근한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 이에 얽매여 침닉되면 마음이 병들고 몸도 결딴난다. 남의 잘못뿐 아니라 나 자신을, 그 발뿌리를, 삶의, 생각의, 심리의 바닥까지 들여다보면 ‘딥 블루’ 아니고는 도리가 없다. 언젠가 나는 어떤 참사와 그에 따른 정치적 사건의 진실에 제법 접근했노라 ‘느꼈다’. 그런 뉘앙스를 담은 소설 한 편을 썼다. 며칠 전 다시 읽고, 한숨이 크게 났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과연 소설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제법 분량이 될 법한 소설을 생각한다. 인과에, 플롯의 엄밀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말이 최근에 한때 유행했다. ‘오토바이오그래피’(autobiography)가 아니라 ‘오토’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1977년에 이 말을 처음 썼다고들 한다. 그네들이 동아시아를 몰라서 한 말. 일본에서 일찍 말한 ‘사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양식의 픽셔널(fictional)한 특징에 유의해서 한국에서도 여러 작가가 일본과 류가 다른 ‘다른’ 사소설들을 썼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3-02

매화

매화. 그 무경계의 향기. 열다섯 해 전 우리 가족은 층과 층 사이에 갇힌 사각의 콘크리트 박스를 떠나 산자락으로 몸과 마음을 옮겼다. 흙 내음과 새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엘리베이터 버튼 대신 흙 마당 길을, 베란다 화분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땅을 얻었다. 그때는 ‘이사’라고 불렀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위로 쌓이던 삶이 옆으로 펼쳐지는 그런 일이었다. 막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백년 째 내려온 학성 이씨 종가 집 터를 고르고, 집부터 지었다. 집을 짓고, 담장을 치고, 나무와 꽃을 심는 순서였다. 정원은 내 손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서두를 일이 없었다. 담장을 치고 큰 돌들을 여기저기 던져 놓은 후, 군데군데 소나무를 몇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나서 가장 먼저 마당에 들인 꽃나무가 매화이다. 정원은 시간이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정원의 서사에는 거창함이란 없다.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면 그만인 일이다. 잡초를 뽑는 일조차도 즐거움이요, 운동이다. 그렇다! 정원은 반복의 기록이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성취와 속도의 문법이었다면, 산자락의 삶은 기다림과 느림의 문법이다. 꽃은, 명령으로 피지 않으며, 물을 준다고 곧바로 응답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나는 내 나름으로,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열다섯 해가 지나가는 동안 매화는 훨씬 단단해졌다. 줄기는 굵어졌고 가지는 단단해졌다. 해마다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고 향기를 드러내지만, 매년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어떤 해는 위로였고, 어떤 해는 설레임이었다. 올해는 향기가 유난하다. 뿌리 주변을 블록으로 덮어주어서 그런지 지난해보다 꽃이 더 풍성하고, 향기가 더 진하다. 늦은 밤, 달빛 아래서 집사람과 한참이나 이 녀석 근처에서 놀았다. 매화는 새해 정원의 첫소리이자, 그림이다. 향기가 소리가 되고, 향기가 그림이 된다.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피어나 봄을 재촉한다. 매화 향기는 소리보다 멀리 가는 노래이다. 성취의 표지가 아닌 견딤의 미학이다. 알 수 없는 깊이의 흙 내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향 기로 바꾸어 대지 위로 뿜어 올리다니!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피어나므로 경계가 없는 꽃이 매화이다. 겨울의 꽃도 아니고 봄의 꽃도 아닌 꽃. 겨울과 봄의 중간에서, 추위와 온기의 중간에서, 침묵과 향기의 중간에서, 바람과 고요의 중간에서 그렇게 피는 것이다. 안과 밖, 중심과 주변, 성공과 실패, 옳음 과 그름의 경계를 자신만의 향기로 지워버리는 꽃. 매화가 핀다 해도 겨울이 패배하지도, 봄이 승리하지도 않는다. 겨울이 봄을 초대하였음을 꽃과 향기로 알려주는 것이다. 옛 성현들은 매화를 군자의 절개로 여겨 추운 겨울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을 칭송했다. 퇴계 이황은 ‘매화는 천하의 으뜸’이라 말하며, 그 청빈한 기상에서 학문의 길을 보았고, 선비들은 매화 가지 하나에도 인격의 표상을 새겼다. 경계에서 피어나는 무경계의 꽃. 그대가 담을 넘고 마당을 가로질러 열린 창틈으로 스며들 때, 나는 커피를 내리지 않겠 습니다. /공봉학 변호사

2026-03-02

3.5%의 기적

푸른 바다다. 멀리 수평선이 아득한 그리움으로 하늘과 맞닿았다. ‘윙···. 철썩’ 파도가 몽돌들 위까지 바닷물을 가벼이 밀어 올린다. 바닷물이 순식간에 몽돌들을 품어버린다. 다음 순간, ‘자르르르···.’ 바닷물이 몽돌들을 문지르며 빠져나간다. 어젯밤, 센 바람으로 몽돌에 많이 끼었던 흙먼지 때들은 바닷물에 씻겨나가고 만다. 때 벗고 물기 머금은 몽돌들은 다시 생기가 돈다. 기실 바닷물은 소금으로 자신은 물론, 몽돌들과 그 아래 모래밭까지 소독 작업을 한다. 바다를 새삼 바라본다. 썩지 않고, 늘 푸르다. 기적이다. 바닷물은 무엇으로 깨끗하게 늘 살아있을까. 열, 바람, 해류 등으로 순환하고, 대기와 접촉하여 물속의 용존 산소를 유지하므로.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게 바로 염분 곧, 소금이란 사실은 누구나 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기적의 비밀이 바로, 소금이니까. 젊은 날 포스코 실험실에서 일할 때, 냉각수로 쓰는 바닷물의 염소이온 농도를 화학 분석으로 측정해본 일이 있다. 사전 지식도 없이 표준에 따라 분석한 결과, 염소이온을 염화나트륨으로 환산한 수치는 2.8% 정도였다. 속으로, 소금이 낮게 나왔다 싶었었다. 후일, 바닷물 염분의 의미를 알고 그 수치가 맞았다고 이해했었다. 자료를 보면 바닷물엔 3.5%의 염류 곧, 소금이 녹아 있다. 놀랍게 여러 바다가 품고 있는 염류 성분의 비율은 같다고 한다. 염화나트륨 77.7%, 염화마그네슘 10.8%, 황산마그네슘 4.8%, 황산칼슘 3.7%, 황산칼륨 2.5%의 비율이 그것이다. 즉, 바다에 따라 염도는 다를 수 있으나 그 염류 속 각 성분비는 앞과 같다. 생체에 꼭 필요한 소금 3.5%가 녹아 있는 물이 모인 곳이 바다다. 바닷물의 소금과 용존산소와 대기는 하천을 따라 들어오는 온갖 오염물들을 함께 소독, 분해, 분리 등으로 정화한다. 때문에, 바다는 썩지 않고 맑아서 수많은 생명을 품 안에 보듬는 생명공동체가 된다. 인간과 생명이 무엇이기에 바다는 저토록 끊임없이 자정작용(自淨作用)으로 그들을 살리는 걸까. ‘나라가 썩지 않으려면, 3.5%의 사람이 사회의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동감한다. 예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했다. 사회 소금이 제자 사명이란 거겠지. 하면, 사회 소금은 얼마큼 어떤 이들이 맡아야 할까. 국가 통계포털(KOSIS)에 2026년 한국의 인구는 51,609,121명이다. 그 3.5%는 1,806,319명이 된다. 약 180만 명의 국민이 사회 소금으로 산다면, 우리나라는 썩지 않고 바다처럼 푸르게 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소금은 누구여야 할까. 공직계, 언론계, 교육계, 학계, 문화 예술계, 경제계 등 나라 모든 부문에 사회 소금이 있어야 할 터다. 하지만, 지금 나라의 현실은 사회 소금이 부족하다 싶다. 따라서, 진선미, 지정의, 신망애 같은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찾으며 깨어있는 이들이 사회 소금으로 살아내야만 하겠다. 우리나라에 사회 소금이 3.5%가 될 때, 우리 사회는 썩지 않는 늘 푸른 바다의 기적을 이루어내리라 믿는다. /강길수 수필가

2026-03-02

유가 90달러 그림자···중동 리스크가 드러낸 대구경북 산업의 구조적 과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정세 불안은 국제 유가를 다시 요동치게 하며 한국 경제 전반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대구·경북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의 취약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경북 경제의 근간은 철강·화학·기계·부품소재 등 전통 제조업이다. 이들 산업은 공통적으로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유가 상승은 곧 전력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갖는다. 포항 철강 산업을 예로 들면, 전기로 비중 확대와 친환경 공정 전환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력요금 인상 압력은 수익성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해상 운임 상승과 원료 가격 변동성이 더해지고 글로벌 경기 둔화 국면과 맞물릴 경우 이러한 부담은 더욱 크게 체감될 수밖에 없다. 물류 측면의 파급 효과도 적지 않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고조되면 해상 보험료와 운임이 동반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항항을 통해 철광석과 원료탄을 들여오는 철강업체, 동해안을 통해 소재를 수출하는 이차전지 기업들은 물류비 증가라는 직접적인 비용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지역 산업의 입지를 흔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가 상승이 모든 산업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역설적으로 높은 에너지 가격은 전기차 전환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경북 동해안에 집적된 이차전지 소재 산업은 이러한 구조 변화 속에서 중장기적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화석연료 기반 경제의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경제성이 부각되고, 이는 양극재·음극재·리튬 소재 등 지역 주력 산업의 전략적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비용 충격,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환 촉진이라는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지역 경제 차원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변수는 소비 심리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교통비와 난방비 부담으로 이어져 가계 실질소득을 잠식한다. 대구경북은 전국 평균보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소비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골목상권과 서비스업에 연쇄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 안보가 곧 지역 경제 안보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산업 구조의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전환, 지역 기반 분산형 전력 시스템 구축 등 중장기 전략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가 충격은 일시적 변수일 수 있지만, 에너지 의존적 산업 구조라는 근본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먼 나라의 전쟁 뉴스가 아니라, 포항 제철소의 전기로 가동비, 구미 공단의 생산 단가, 대구 자영업자의 매출, 그리고 지역 가계의 난방비로 이어지는 현실의 경제 변수다. 이번 위기를 일시적 충격으로만 볼 것인지, 산업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이냐가 대구경북 경제의 향후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2-28

[역사 칼럼] 이괄의 난, 왜 조선 최악의 자책골인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터져 나온 ‘이괄의 난(1624년)’이다. 이 사건은 반란군에 의해 수도가 점령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역사상 외적(왜군이나 호란)이 아닌 내란 때문에 왕이 도성을 버린 유일한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이 난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은 단순한 수도 함락의 치욕이 아니다. 그것은 내부의 분열과 부당한 보상 체계가 어떻게 국가 안보를 무너뜨리고 외세 침략의 서곡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괄의 난은 근본적으로 인조반정 주체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기인했다. 이괄은 반정 당시 실질적인 군사 지휘를 맡아 성공을 이끈 일등 공신급 인물이었다. 그러나 문신(文臣) 중심의 논공행상 과정에서 그는 ‘2등 공신’으로 밀려났고, 중앙 정계가 아닌 변방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발령받았다. 이는 승리한 혁명 세력 내부의 보상 체계가 얼마나 편파적이고 취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좌천되었다는 소외감과 더불어, 자신과 아들에게 씌워진 억울한 역모(逆謀) 혐의는 결국 정예 북방군을 거느린 이괄을 ‘반란자’의 길로 내몰았다. 이괄이 한양을 점령한 뒤 취한 조치는 매우 치밀했다. 그는 선조의 아들인 흥안군(興安君 1598~1624)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는 이괄의 군사 행동이 단순한 무력시위를 넘어, 인조 정권을 부정하고 새 왕조 질서를 수립하려 했던 정치적 변혁이었음을 시사한다. 광해군의 패륜을 명분 삼아 집권한 인조 정권은, 동료였던 이괄에 의해 그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당하며 도덕적·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내부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정권의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실록에 따르면 “상(인조)이 숭례문을 나가는데, 백성들이 길을 막고 울부짖었다. 밤이 깊어 비가 내리고 길은 진흙탕이었다“고 적으며 피난 당시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괄의 난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위협적이었던 대목은 반란군의 선봉에 섰던 ‘항왜(降倭)’ 부대의 존재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일본 무사들로 구성된 이들은, 이괄이 북방 수비를 위해 양성한 최정예 용병이었다. 그 중심에는 ‘검신(劍神)’이라 불린 우두머리 서아지(徐阿之)가 있었다. 서아지는 조총술과 검술에 모두 능했으며, 혼자서 조선 병사 수십 명을 상대할 정도의 괴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가 이끄는 130여 명의 항왜 부대는 왜검을 휘두르며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돌격했는데, 임진왜란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던 관군들은 이들의 복색과 기세만 보고도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이들은 ‘저탄(砥灘)전투’(현재의 황해도 금천군과 예성강 인근) 등에서 관군(官軍) 전열을 무너뜨리며 이괄이 파죽지세로 도성에 입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용맹은 결국 안산의 무악재(안현) 전투에서 멈췄다. 관군 지휘관 정충신 등이 높은 지형과 바람을 이용한 화공(火攻)을 펼치자, 평지 전술에 능했던 서아지와 항왜 부대는 궤멸 되었고 서아지 역시 처형되며 난의 기세는 꺾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 난이 남긴 가장 뼈아픈 상처는 ‘국방력의 자멸’이다. 이괄이 이끈 부대는 후금(청)의 침입을 막아야 할 조선의 최정예 북방군이었다. 이들이 한양으로 말머리를 돌려 관군과 싸우는 동안 조선의 북방 방어선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진압 과정에서 정예 병력은 대거 살상되었고, 패배한 이괄의 잔당(한윤 등)은 후금으로 도망쳐 조선의 약해진 국방 실태와 정국 혼란을 낱낱이 밀고했다. 이는 정확히 3년 뒤,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공하는 정묘(丁卯)호란의 결정적 빌미가 되었다. 내부의 적을 제어하지 못한 실책이 외세의 칼날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괄의 난은 내부의 불공정한 논공행상이 국가 안보의 파탄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연쇄 반응의 결정판이었다. 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백성들에게 국왕의 무능함을 각인시켰고, 신흥 강국 후금에게는 조선 침략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결국 이 사건은 인조 대의 불안정한 정국을 상징하며, 향후 닥쳐올 병자호란까지 이어지는 조선의 몰락을 예고한 전초전이었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섭다“는 경구는 400여 년 전 이괄의 난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2-28

보수의 품격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혐의에 대해 1심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우리 헌정사의 뼈아픈 기록으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세부적인 판결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중형 선고는 다수 국민들이 이미 예상했던 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책임 있는 공당의 당대표는 1심 판결일 뿐이라고 판결을 폄하하고, 윤 전 대통령 측은 법원의 선고에 대해 법치 파괴라고 주장한다. 보수 정권의 대통령과 보수 정당의 대표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현실은 기묘하다. 법치란 내가 이길 때뿐 아니라 질 때도 작동하는 일관된 시스템이다. 제도 안에서 다투되, 결과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법치다. 법치주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뼈대다. 법치를 부정하니 보수도 분열하는 모양새다. 어떤 조직이든 존재 이유와 철학을 부정하면 그 집단은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근본적으로 묻고 싶다. 한국 보수 정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을 외치지만, 실상은 반공주의와 발전국가 담론이 한국 보수주의의 중심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지난 수 십년간 보수 집회에서 나온 구호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90년대 말부터 등장한 새로운 보수주의 - 일명 뉴라이트가 보수의 혁신을 시도했지만, 참여민주주의와 평등을 불신하는 엘리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맹신으로 변질되었다. 결과적으로 뉴라이트는 보수 진영에서도 버림받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민주당 정권동안 한국의 보수주의는 철학적 사유를 잃어버린 채 적대적이고 자극적인 언어에 압도되었다. 영국의 보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보수주의를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훼손과 폭력으로부터 지키려는 성향’으로 정의한다. 그러한 보수주의의 실천은 구호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나타나며, 그 책임은 법과 제도에 대한 존중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영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자발적으로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고 해외 파병까지 자원하는 것은 보수적 가치의 표현이다. 이러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법치 파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의 품격은 ‘우리 편 무죄’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판결을 존중하며, 제도 안에서 책임지는 태도다. 상대를 빨갱이라는 언어로 규정하는 쉬운 길 대신, 우리 사회의 일자리·교육·돌봄·산업 전환 같은 어려운 의제와 관련해서 어떤 정책이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인지 고민하고 길을 제시하는 자세다. 보수가 진짜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제도의 권위다.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보수를 ‘극우’라 부른다.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2025년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점거 폭동의 공통점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극우주의 집단의 반민주적·반사회적 폭력행위였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보수 진영의 철학과 문법을 바꿔야 할 때다. 보수는 품격이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2-26

“대감집 노비가 낫다”

SK 하이닉스의 성과급이 억대가 넘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떠올린 우리 속담이 하나 있다. “노비도 기왕이면 대감집 노비가 낫다”는 속담이다. 같은 노비 신세일지라도 권세 있고 부자 대감집에서 노비 생활을 하면 얻어걸리는 것이 더 있다는 말이다. 많은 직장인에게는 같은 직장인이라도 어느 기업에 속해 일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SK 하익닉스와 같은 성과급 대박 사건이 쉽지는 않지만 중소기업에겐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다. SK 하이닉스의 성과급 잔치는 중소 직장인에게 로망과 같은 이야기로 시중에 회자됐다. 양극화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하위계층이 극단으로 몰리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가속화다. 글로벌화와 기술의 발전, 고용구조의 변화 등이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양산하는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평가가 있다. 엄격히 말해 잘사는 사람은 제자리인데 못사는 사람이 더 추락한 사회가 됐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얘기는 이젠 쑥 들어갔다. 2000년대 들어 도시근로자 최상위 그룹과 최하위 그룹 간 소득 격차가 10배 이상 벌어졌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계층 간 소득 격차가 가장 심하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더 커진다고 한다. 대기업의 평균 임금(613만원)이 중소기업 그것(307만원)의 두배나 된다는 것이다. 경영자총협회는 한국 대기업의 대졸 초임이 일본보다 41%가 많다고 한다. “대감집 노비가 낫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26

‘히트펌프’

대구·경북의 겨울 난방은 항상 ‘연료비’와 ‘불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대구 도심은 주택용 도시가스 보급률이 98%에 달해 스위치 하나로 따뜻함을 쉽게 누린다. 반면, 경북의 수많은 면 단위 농어촌 지역은 아직도 도시가스 혜택에서 소외된 채 등유나 LPG 같은 비싼 개별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때마다 급등하는 난방비와 눈길 속 연료 수급 걱정에 지역민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최근 정부가 2035년까지 350만 대 보급을 선언하며 ‘히트펌프(Heat Pump)’를 열에너지 탈탄소화의 핵심 구원투수로 지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히트펌프’란 과연 무엇일까? 공기나 물, 혹은 땅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열을 끌어와 전기를 이용해 실내로 옮겨 쓰는 방식이다. 에어컨을 거꾸로 돌려 뜨거운 바람을 안으로 불어넣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히트펌프’의 가장 큰 무기는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지 않아 집 안에서 이산화탄소나 유해 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동일한 열을 만들 때 에너지를 훨씬 덜 쓰는 ‘압도적인 효율’이 백미다. 투입한 전기 에너지보다 무려 3~4배나 많은 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일반 가스보일러에 비해 초기 설치비가 상당히 비싸고, 누진제가 촘촘하게 적용되는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 아래에서는 겨울철 운영비 변동에 극도로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미 주요 해외 선진국들은 막대한 보조금과 과감한 규제 완화 패키지를 동원해 ‘히트펌프’를 난방의 새로운 표준으로 굳혀가고 있다. 대구·경북이 이러한 혜택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 고밀도 아파트가 주를 이루는 대구는 실외기 설치 공간 확보, 소음, 하중 문제를 해결할 ‘공동주택 맞춤형 표준 설계모델’ 마련이 시급하다. 동시에 산간 지대가 넓은 경북은 혹한의 날씨에도 난방 효율이 급감하지 않도록 철저한 ‘저온 성능 실측 및 검증’ 체계가 필수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단계적 확산 로드맵을 짜야 한다. 1단계로 태양광이 기설치된 경북의 비도시가스 단독주택과 마을회관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2단계로 요양원 등 에너지 다소비 시설과 소상공인, 마지막 3단계로 대구의 일반 공동주택까지 점진적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히트펌프’의 도입은 기후위기 적응과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미래를 열어갈 중대한 뼈대이자 도전과제다. 지자체 차원의 과감한 ‘핀셋 재정지원조례’를 제정하고,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발판 삼아 ‘지역별 차등전기요금제’를 쟁취해 내는 등 굵직한 정책적 뒷받침이 실행되어야만 초기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넘을 수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전력 자립도’와 탄탄한 ‘냉동공조 제조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대구·경북은 ‘히트펌프 경제’를 선도할 최적 무대다. 이제 지역민, 지자체, 그리고 산업계가 하나로 뭉쳐 거대한 열에너지 대전환에 선제적이면서 영리하게 대응해야 한다. 화석연료가 뿜어내던 매연의 시대를 넘어, 경제적이고 깨끗한 열에너지를 동력 삼아 대구·경북의 지속 가능하고 따뜻한 내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2-26

잠을 자도 피곤한 진짜 이유

잠을 자도 피로하다는 말은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수면시간이 충분한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하루 종일 머리가 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검사에선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지만 몸 상태는 분명 정상과는 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라 넘겨버리기도 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잠의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우리 몸의 휴식은 자율신경이 조절한다. 낮에 활동할 때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와 혈압이 올라가고 근육이 긴장하며 몸은 활동 모드에 들어간다. 반대로 밤이 되면 부교감신경이 우세해지면서 심박이 안정되고 호흡이 깊어지며 근육이 이완된다. 이때 뇌는 낮 동안 쌓인 피로와 정보를 정리하고 몸은 손상된 조직을 회복한다.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는 의식을 가라앉히고 회복을 위해서다. 현대인의 몸은 밤이 되어도 이 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스트레스와 스마트폰 사용, 늦은 업무, 지속적인 긴장 상태, 만성 통증, 불안감 등으로 교감신경이 밤에도 계속 활성화되어 겉으로는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데 몸은 여전히 경계 상태를 유지한다. 수면은 하고 있지만 회복이 되지 않는 상태다.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져도 피로는 쌓이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잠드는 데는 큰 문제는 없지만 새벽에 자주 깨고 다시 깊이 잠들지 못한다. 꿈을 많이 꾸거나 자는 동안 이를 악무는 경우도 있다. 아침엔 몸이 무겁고 머리가 맑지 않으며 낮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예민해진다. 두통, 어지럼, 소화불량, 목과 어깨의 만성 긴장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각각의 증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 균형이 무너졌다는 하나의 신호로 볼 수 있다. 한방은 이러한 상태를 몸의 회복 능력이 저하된 것으로 본다. 기혈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긴장이 지속되면 밤에도 몸이 충분히 이완되지 못한다.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잠드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깊은 휴식 상태로 들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보통 경추와 어깨 주변 근육이 지속적으로 긴장되어 있는데 이는 자율신경에도 영향을 주어 몸이 계속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을 풀어주고 자율신경 균형을 안정시키는 치료를 병행하면 수면 시간이 크게 늘지 않아도 수면의 깊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약침치료와 상부경추를 풀어주는 추나 그리고 체질에 맞춘 한약 치료 등을 통해 과도하게 항진된 신경계를 안정시키면 피로감이 줄어들고 낮 동안의 집중력도 회복된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습관은 뇌를 각성 상태로 유지시킨다. 늦은 시간의 과식이나 카페인 섭취 역시 자율신경 전환을 방해한다.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잠들기 전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호흡만으로도 수면의 질은 생각보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잠은 몸과 마음을 재생시키는 과정이다. 충분히 잤는데도 계속 피곤하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피로하다는 소리다. 피로가 오래 갈수록 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다. 깊이 쉬지 못하는 상태가 반복된다면 단순한 피로로 넘기지 말고 몸의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2-26

‘분열’은 ‘패배’의 다른 이름입니다

선거는 감정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방선거는 더 냉정하다. 표로 지면, 옳은 말도 지킬 힘이 없고 바꿀 권한도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 가장 먼저 멈춰야 할 것은 ‘내부를 향한 소모전’이다. 서로를 향해 책임을 전가하고, 같은 편을 향해 상처를 내는 순간 상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긴다. 그래서 분열은 최악의 무능이다. 최근 보수 진영은 거센 파도 앞에 서 있다. 사법과 정치가 뒤엉키고, 제도와 권력의 균형이 흔들리며, 민생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이런 때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도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 법치, 책임, 균형이다. 가치는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기는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 승리해야만 제도를 바로 세우고 민생을 지킬 힘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대오’다. 지도부를 흔들고 대표 체제를 공격하며, 사과와 절연만 끝없이 반복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변화와 혁신은 진행돼야 하지만, 혁신의 방식이 ‘분열’이면 그 자체가 실패다. 당이 흔들리면 지역이 흔들리고, 지역이 흔들리면 민생이 먼저 무너진다. 국민은 지금 보수에게 유능함을 묻고 있다. 말이 아니라 실행, 감정이 아니라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당을 추스르는 과정은 늘 거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비난을 감수하고 정리해야 하고,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 규율을 세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개인의 계산이 아니라 공동의 승리다. 누가 더 유명한지가 아니라, 누가 더 책임지는가가 기준이 돼야 한다. ‘덧셈의 정치’도 필요하다. 목소리가 다르다고 무시하면 외연은 줄어든다. 다만 덧셈의 정치는 규율 위에서만 가능하다. 규율 없는 확장은 곧 혼란이고, 혼란은 패배로 이어진다. 각자의 언어를 승리의 언어로 바꾸고, 각자의 구호를 승리의 구호로 바꿔야 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는 말이 공허해지지 않도록, 조직을 정비하고 메시지를 정렬하고 후보를 준비하는 일이 먼저다. 포항도 마찬가지다. 제조업의 숨통, 산업용 전기요금, 일자리와 골목 경제는 결국 ‘정권’이 아니라 ‘정책’으로 지켜야 한다. 하지만 정책은 힘이 있어야 관철된다. 선거에서 지면 지킬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뭉쳐야 한다. 서로를 끌어내리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고, 국민의힘 깃발 아래 모여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포항의 현장도, 경북의 현장도 지금 하루가 급하다. 한 표가 모여야 공장도 지키고 상권도 지킬 수 있다. 지도부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전투에선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대표를 중심으로 한 팀이 서야 현장도 움직인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내부를 향한 말이 밖으로 새고, 그 말이 유권자의 피로가 된다. 상대는 그 틈을 파고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 편이 아니라 ‘무엇을 지킬 것인가’가 아닐까. 자유와 법치, 상식과 책임을 지키려면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 각 지역의 후보들도 같은 약속을 해야 한다. 흑색선전 없이 정책으로 겨루고, 결과로 평가받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하나다. 내부가 정리되어야 외부와 제대로 싸울 수 있다. 뭉쳐야 한다.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서야 한다. 패배가 아닌 희망의 전진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은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질 때가 아니다.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 /박용선 전 경북도의원

2026-02-26

꿈을 꾼다. 청년이 머물고 아이 웃음이 피어나는 설레는 새 포항

도시는 결국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 새 포항을 향한 하나의 꿈이 있다. 청년이 떠나지 않고 머무는 도시, 영유아를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도시, 부모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도시다.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면, 포항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구 감소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활력과 미래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방향을 바꿔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장성동 미군부대 반환 부지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되살려야 한다. 어린이 대공원으로 탈바꿈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자연 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 생태 체험, 창의교육, 가족 휴식 기능을 함께 갖춘 미래형 어린이 복합공간이 돼야 한다. 영유아 돌봄센터와 부모 교육 프로그램, 가족 참여형 문화행사를 연계해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하고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아이 정책은 일자리 기반 없이 지속될 수 없다. 기업이 살아야 청년이 머물고, 청년이 머물러야 아이가 태어난다. 지금 포항의 철강산업은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기업의 위기로 시작된 어려움이 지역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시가지 중앙상가의 100여 개 점포 중 약 30%가 공실로 남아 있는 현실은 그 위기를 보여준다. 이 공실을 방치하면 안 된다. 중앙상가 일대를 청년 창업과 연구·개발 기능을 갖춘 테크노파크 2단지로 전환해 젊은 인재와 기업이 모이는 공간이 돼야 한다. 기업을 이해하고 기업을 살려야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일자리와 자리가 만들어진다. 울산의 자동차·수소 등 첨단 산업과 포항의 이차전지·AI·바이오 산업을 연계해 동해남부 산업벨트 강화도 꼭 필요하다. 새 고속도로 교통망을 활용해 울산과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오천 지역 블루밸리산단을 확장해 미래 산업 중심지로 키울 필요가 있다. 산학연 협력체계를 구축해 지역 대학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기반 마련도 필수다. 산단 확장과 함께 젊은 근로자와 연구인력이 정착할 수 있도록 임대형 아파트도 도입해야 한다. 직주근접형 주거환경을 조성해 청년이 일하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0~2세 전담 보육 강화,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 야간·휴일 돌봄 확대를 통해 실질적인 양육 부담을 덜어야 한다. 초등 저학년 방과 후 돌봄을 공공 책임 체계로 강화해 맞벌이 가정의 걱정도 줄여야 한다. 산업과 주거, 보육과 교육이 하나로 연결될 때 비로소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기업이 늘어나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이 정착하며, 그 재원으로 아이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가 확대되는 도시. 아이 웃음소리가 골목마다 울려 퍼지고, 부모의 어깨가 가벼워지는 도시. 그것이 제가 꿈꾸는 포항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이것이 꿈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꿈은 준비된 정책과 실행력 위에서 현실이 된다. 청년이 머물고, 아이 웃음이 가득한 도시. 저는 그 꿈을 포항에서 반드시 실현해 보고자 한다. 청년이 머물고 아이 웃음이 피어나는 설레는 새 포항을 꿈꾼다. /공원식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

2026-02-26

관세·에너지·안보의 미국··· 한국 경제정책의 좌표를 다시 잡을 때

지난 2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서 나타난 메시지는 정치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미국의 운영방식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관세로 재정을 확보하고, 에너지로 물가를 통제하며, 국경과 안보로 질서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경제정책이 다시 보호무역과 에너지 우위, 강경안보를 축으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변화가 미국 내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미국 변수’ 속에서 산업과 통상전략을 재정립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스탠스는 정면 대응도, 무조건적인 편승도 아닌 현실적 균형 전략이다. 최우선 과제는 관세의 일상화에 대비한 산업정책의 재설계다. 트럼프식 통상정책은 관세를 무역 수단만이 아닌 협상력과 안보 도구로 활용하는 데 있다. 이는 기업별 대응만이 아닌 정부 차원의 체계적 전략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업종별 원산지 기준과 공정구조, 미국 내 생산 및 조달 임계점을 종합 정리해 ‘규정 준수형 공급망’을 설계해야 한다. 특히 철강과 소재산업이 밀집한 대구·경북지역은 고급재 중심 구조 전환과 친환경 공정 경쟁력 확보가 관세 충격을 완화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비용을 복지나 정치 논쟁이 아닌 산업경쟁력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다. 미국이 저렴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문제는 가격 조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전력망 투자, 분산형 전원 확대, 장기전력구매계약(PPA) 활성화, 원전·재생에너지·가스의 현실적 조합을 포함한 ‘산업전력 로드맵’이 시급하다. 전력비용의 불확실성은 철강·화학·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의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며, 이는 곧 지역 산업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 과제는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시장을 다변화하는 통상 전략이다. 미국 중심 공급망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매출과 조달 구조까지 단일 시장에 의존한다면 정책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고 만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미국 규칙에 맞추더라도 시장을 다극화하는 ‘안보와 수익의 분리 전략’으로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결국 정부가 시급히 준비해야 할 정책은 세 가지다. 첫째, 업종별 관세 대응 산업 지도. 둘째, 전력망·요금·에너지 믹스를 포함한 산업 전력 로드맵. 셋째, 한국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 구간을 정리한 협상 카드 목록이다. 규칙이 바뀌는 시대에는 선언보다 설계가 중요하다. 전력과 산업, 공급망의 체력을 키우고 협상 가능한 카드를 확보하는 것 —이것이 관세·에너지·안보의 시대를 견딜 한국 경제정책의 현실적 좌표다. 미국은 다시 레버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방향이 아니라 준비의 수준이다. 그리고 당연히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의 지도자들도 이를 염두에 둔 정책 방향을 치밀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지금 선거를 준비하는 예비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2-26

정의로운 철강전환은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으로부터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등장해 온 도시다. 산업화의 초입에서 철은 이 도시의 시간을 단련했고, 제철소와 공장의 불빛은 국가 성장의 상징이 되었다. 자동차와 조선, 건설과 기계산업은 철강을 토대로 확장되었고, 철강은 단순한 공산품을 넘어 산업국가를 떠받치는 철강구조물이 되었다. 포항에서 철은 곧 일자리였고, 가족의 삶이었으며, 지역 공동체의 뿌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산업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적인 비용부과 단계로 전환되면서, 철강제품은 더 이상 품질과 가격, 납기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는 더 이상 환경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철강수출계약서에 반영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 변화는 일시적 규제가 아니다. 기후 대응이 무역질서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산업표준이 형성되고 있다. 탄소 집약 산업은 구조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철강도 예외가 아니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시장 접근 비용은 커지고, 산업의 존립 기반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수소환원제철이 그 해법의 중심에 있다. 기존 고로 공정이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했다면, 수소기반공정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대규모 수소 공급망구축, 안정적인 전력 확보, 막대한 설비 전환 비용, 기술완성도 제고라는 현실적 장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 철강기업과 각국 정부는 이미 장기 전략에 수소환원제철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대한 국가적 응답이 바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K-스틸법이다. 법은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만으로 현장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실제 집행을 좌우하는 것은 시행령이다. 시행령은 정책의 방향을 행정체계와 예산 구조로 연결하는 실행 문서다. 선언이 설계로, 설계가 투자와 공정전환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시행령이다. 지금 우리는 그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이 시기에 어떤 구조가 담기느냐에 따라 철강산업의 미래와 포항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시행령은 단순한 행정 규칙이 아니라 산업전환의 구체적 설계도이다.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 첫째, 수소환원제철을 국가전략기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전략기술 지정은 연구개발 예산, 재정지원, 세제 지원, 정책금융, 규제 특례의 근거가 된다. 초기 전환비용이 막대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율적 결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 경쟁이 국가 단위로 전개되는 시대에 체계적 지원은 필수조건이다. 국가전략기술로 규정하지 않고, 저탄소철강 생산기술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석탄과 코크스 대신에 수소로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이기에 결국 수소환원제철로 승부를 봐야 한다. 애매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명제로 추진력을 높이는 것이 강하게 필요하다. 둘째, 범정부적 조정 체계를 구축하고 추진단을 만들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산업정책, 노동교육, 과학기술, 에너지 계획, 수소 공급망, 전력망 확충, 항만 인프라, 환경인허가, 안전규제가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 복합 정책이다. 개별 부처의 칸막이.분절적 대응으로는 속도와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 통합적 조정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을 설치하는 시행령을 만들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저탄소철강특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산업전환은 실제 공간에서 실증과 상용화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포항은 제철설비와 항만, 연구 인프라, 숙련 인력을 갖춘 도시다. 특구지정은 지역 특혜가 아니라 국가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공간 전략이다. 인허가 간소화, 기반시설 우선 투자, 금융지원이 종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정의로운 전환을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정신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 법은 탄소중립을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정의로운 전환’으로 규정한다. 노동자와 지역 보호, 취약계층 참여 보장, 전환비용의 공정한 분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철강전환 역시 이 원칙과 결합해야 지속 가능하다. 공정변화는 노동시장과 협력 생태계, 지역 상권에 영향을 준다. 직무 전환교육과 재훈련, 협력업체 지원, 주민참여 거버넌스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환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비용이 아니라 정책 지속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과 철강산업에 필요한 안보사항과 보안내용이 있다면 이를 관계기관들이 잘 지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주민들도 협력해야 한다. 나아가 대한민국 대전환의 역사적 도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특구와 지역의 탄소중립거버넌스는 주민들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하여, 과학기술만으로의 대전환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대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내야만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선도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에너지정책과 철강전환을 연계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막대한 수소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수소 생산·수입 전략,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 계획이 철강전환과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에너지 기반 없이 철강전환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 전환은 정책 문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참여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시행령 수립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의견과 지역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시민 역시 관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전환의 의미를 이해하고 토론하며, 지역 미래전략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시민사회는 공론장을 만들고 정책을 점검하며, 정의로운 전환이 제대로 설계되는지 관찰해야 한다. 이러한 참여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지역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ESG 실천과도 직결된다. 시민 참여를 통해 환경적 책임(E), 사회적 보호(S), 투명한 거버넌스(G)가 실현되며, 산업정책의 투명성 강화와 공동체 신뢰 구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산업 전환은 기술 혁신인 동시에 사회 혁신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철강을 생산해야 하는 시대에 철강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철강은 반도체처럼 고수익 산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동차와 조선, 방위산업, 건설을 떠받치는 기간 산업이다. 산업국가라면 반드시 보유해야 할 전략 산업이며, 이를 우리는 철강주권이라 부른다. 글로벌화된 철기 시대에 철강 생산역량을 유지하는 일은 더 이상 기업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다. 이는 국가의 책임이자 리더십의 문제이다. 국가 지도자는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재편의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과 포항 시민의 참여를 확대해 새로운 철강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K-스틸법은 출발점이다. 시행령은 그 길의 설계도다. 그리고 지금, 그 설계가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그 설계를 완성할 것이다. 그 결과는 포항의 미래이자 대한민국 산업 주권의 미래가 될 것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2-25

헌법과 경자유전(耕者有田)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2026년 현재 한국엔 ‘만만하고 싼 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 다수가 모여 사는 대도시의 땅값이 무시무시할 정도라는 건 삼척동자도 이미 알고 있다. 이른바 “억” 소리가 난다. 그런데, 시골이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 나라 어디건 땅값은 세간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비싸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農地)의 경우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이 말에 주목했다. 사실 한국의 농지는 농업이라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투기 대상이 된 면이 없지 않다. 농사짓는 땅에서 농산물을 키우고 수확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이를 인식한 이 대통령은 “농지 매각명령의 대상은 상속받은 농지나 땅을 가진 사람이 불가피하게 묵히는 농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투기 목적으로 농사를 짓겠다며 취득한 후 임대하거나 묵히는 농지가 대상”이라 부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의 원칙’를 명시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주말·체험영농을 위해 1000㎡ 미만을 취득하거나, 연구와 실습 등의 목적으로 취득하는 정도가 허용될 뿐이다. 아파트와 주택, 이번에 논란의 대상이 된 농지까지 한국의 부동산 투기 문제는 누가 봐도 심각해 보인다. 부동산을 불로소득이 샘솟는 화수분으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 농사를 짓겠다고 땅을 사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명백히 법을 어기는 행위다. 불법에는 단죄가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25

포항의 선택

지방선거라지만, 누구도 이 선거를 지방행사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전국이 같은 날 투표하고, 같은 정부를 평가하며, 같은 정치뉴스에 노출된다. 지방선거는 늘 전국정치의 연장선에 선다. 지역마다 그 정치가 번역되는 언어가 다를 뿐이다. 6월 지방선거의 전국적 화두는 분명하다. 경제와 민생,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한 평가다. 포항과 경북에서 이슈는 훨씬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이 도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포항에서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일상이다. 산업단지의 불 꺼진 공장, 텅 빈 원도심 상가, 그리고 도시를 떠나는 청년들의 선택이 그것이다. 말들은 많이 하지만, 철강 이후의 포항은 준비되고 있는가. 이차전지와 수소, 신산업이라는 말은 들어왔지만, 산업이 실제 일자리와 생활로 연결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장면만 떠올려 보자. 도심 한복판의 오래된 시설과 유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수년째 논의만 반복되는 현실이다. 어떤 이는 개발을 말하고, 어떤 이는 이전을 말하며, 또 다른 이는 현상 유지를 택한다. 그러나 결정은 늘 미뤄졌고, 그러는 동안 도심은 늙어만 간다. 장면은 포항이 겪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다. 언사는 넘치지만 실행은 부족하고, 논의는 많지만 책임지는 결정은 없다. 균형발전이라는 말도 포항에서는 추상적일 수 없다. 인구감소는 이미 현실이고, 대학과 병원의 위축은 체감되는 불안이다. 이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를 묻는 일이 지나치지 않다. 지방선거는 바로 질문을 공식적으로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장치가 아닐까. 이번 선거에서 포항과 경북의 유권자들이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중앙정치의 언어를 반복하는가, 아니면 지역의 문제를 자신의 행동으로 풀어내는가. 그럴듯한 비전만 나열하는가, 아니면 실행경로와 책임구조를 제시하는가. 선거가 지나간 뒤에도 실천하고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하청기관이 아니다. 지역의 과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중앙과 협상하며,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는 포항이 그런 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는 물론 정권에 대한 찬반을 드러내는 장이며, 동시에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포항과 경북의 선택은 지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선택은 전국 정치에 신호를 보내고, 다음 국면의 방향을 암시한다. 유권자의 한 표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긴다. 중앙을 향한 평가와 지역을 향한 결단. 두 의미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포항과 경북이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을 바라보며 시민 유권자는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철을 따라 표만 구하는 정치꾼을 걸러내야 하며, 실제로 시민의 일상을 고민하며 성심으로 일하려는 일꾼을 찾아내야 한다. 지방선거는 때가 되면 돌아오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지역의 내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가 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임을 입증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2-25

집을 고치며

5년 전,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집을 샀다. 오래된 낡은 연립주택 3층이다. 겉은 무척 낡았으나 내부는 아주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전 소유주가 매수하면서 싱크대며 화장실이며 도배며 샷시며 모두 새것으로 바꾼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화장실이었는데, 약간 볼록하면서도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하얀 타일을 벽면에 사용해서 화장실 전체 분위기가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되어 보였다. 그런데 3년쯤 지나자 비만 오면 옥상에서 물이 스며들어 천장 여기저기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옥상 방수공사비를 알아보니 400만 원을 달라고 한다. 얼마나 오래 거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400만 원이 아까워서 이웃에 의논하니 싸게 해주는 곳을 소개해준다. 그 업자는 200만 원으로 해준다기에 얼씨구나 하고 공사를 맡겼다. 그런데 몇 달 못 가서 또 비가 새서 천장 얼룩이 더 커졌다. 업자에게 사후서비스를 요청해서 그 후로도 두 번이나 추가 보수를 해야만 했다. 그 다음에는 아래층 화장실 천장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연락이 왔다. 한 업자를 불렀더니 타일 한 곳의 틈을 가리키며 여기만 막으면 된다고 10여 분 처리하더니 30만 원을 달라고 한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라기에 미리 비용을 물어보지도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작업이 다 끝난 후라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후 아래층 화장실 천장에서 또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업자를 불렀는데, 제대로 하면 300만 원이 넘으니 아래층 천장을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라고 권한다. 비용 생각에 그 권유를 받아들였는데 그 비용도 140만 원이었다. 하지만 다시 일 년도 못 돼서 다시 물이 떨어진다고 연락이 왔다. 그것도 그전보다 아주 심하게 뚝 뚝 뚝 물이 떨어진다면서 아래층 집주인은 누전될까 무섭다고 하소연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누수 부위를 잡아보니, 예전 리모델링 업자가 겉만 번드르르하게 하고 내부는 부실 공사한 것을 발견했다. 결국 280만 원을 들여 하수 배관을 다시 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업자가 집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가 더 큰 문제를 발견했으니, 옥상 방수 공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장실 같은 실내에서 쓰는 방수 재질로 옥상을 방수 처리해서 햇빛에 다 들떠 있다며 올해 장마가 길면 누수가 심각할 거라고 경고해준다. 옥상 방수해 준 사람이 싸게 해준다면서 엉뚱한 재질로 공사한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옥상에서, 아래층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그렇게 새는데 비용 좀 아끼겠다고 보이는 곳만 어설프게 처리한 결과 피해는 입을 만큼 입고 돈은 돈대로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들지 알 수 없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된다. 사진 잘 나오는 행사에만 관심 있는 자치단체장들, 철근을 누락하여 무너지는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들, 무엇보다 지난 내 삶을 돌아본다. 탄탄한 실력은 쌓지 못하고 그때그때 요령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개인이나 사회나 만사불여튼튼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2-25

AI시대, 인재육성은 어떻게 하는가

기업의 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있고, 인재육성은 과거의 지식 전달형 교육에서 문제해결·협업·AI 활용 역량 중심으로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AI와 경쟁하는 인재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가치를 만드는 인재인 것이다. 이제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서 ‘AI로 일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I시대, 기업의 인재 역량은 무엇인가. AI시대 핵심 5대 인재상은 첫째, 문제 정의 능력이다. AI는 답을 잘 찾지만 문제 정의는 인간의 영역이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어떤 데이터를 봐야 하는가?‘ 둘째, AI 활용 능력이다. 코딩 능력과 프롬프트 설계, 데이터 이해, AI 결과 검증 등이다. 셋째, 융합적 사고이다. 기존 노하우를 베이스로 기술과 경영, 현장과 데이터, 인간 감성과 알고리즘을 융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한다. 넷째, 학습의 민첩성이다. AI시대 핵심 능력은 빠르게 배우고 버리는 능력이다. 다섯째, 협업 및 변화 리딩이다. AI 도입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변화 문제이다. AI시대 인재상은 문제를 정의하고 AI를 활용해 실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AI시대 인재육성 필요 조건은 경영진의 AI 이해가 먼저다. CEO가 AI를 모르면 조직 변화는 불가능하다. 기업 AI 적용 방향과 전략이 수립되면 전직원 AI 기본 교육을 실시한다. 기본 교육은 전직원 대상으로 하고, AI 전환 경영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실무 적용 중심 학습이 되어야 한다. 즉,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 생산 데이터 분석, 품질 예측, 안전 리스크 분석 등이 있다. 함수형 프로그래밍언어인 Lean으로 문제 정의, 데이터 수집, AI 분석, 현장 개선, 표준화로 전개한다. 새롭게 AI를 현업에 적용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 이를 용인하는 조직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직무 재설계를 해야 한다. AI 인재육성 절차는 AI에 대한 인식전환이 중요하다. 전문가 AI 특강으로 기본을 이해하고, 경영층에 선진 사례를 공유하고 자사의 방향을 설정한다. 이후 전 직원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한다. AI 개념, 프롬프트 활용, 데이터 사고가 기본 요건이다. 다음은 직무별 AI 적용 대상과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지 정하는 일이다. 생산은 예지보전, 품질은 불량 예측, 안전은 위험 분석, 영업은 수요 예측 등이다. 생산, 품질, 안전 등에 대한 AI 프로젝트 수행이다. 소규모 실험, 현장 문제 해결을 AI 관점과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부서별 AI 리더 양성을 해나가야 한다. AI를 활용 KPI 설정과 AI 아이디어 제안 등 조직 문화의 전환이 필요하다. AI 시대, 인재육성과 AI 전환의 성공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직원 AI 교육, 인공지능 도우미 Copilot 업무 통합, AI 활용 평가 방안 등으로 업무 생산성 크게 증가, 협업 속도 향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LG전자는 전략적 사업분야로 AI 로봇시대를 구현하고자 사내 AI 대학 운영, 제조 AI 인재 양성, 스마트팩토리 연계 등을 추진하고 있다. AI시대 경쟁력은 기술 보유가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사람의 밀도에서 결정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2-25

청하 기청산 수목원

AI고 나발이고, 지랄발광을 떨어도 그것들은 꽃과 나무를 기르지 못한다 천천히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면 미지(未知)와의 살가운 통성명(通姓名)으로 조금 사람이 되는 느낌 깨방정 알뜰살뜰 미세한 느낌 담은 우리말, 나 이리 몰랐을까 몰라 거들먹거리며 살았음을 반성하며 밥 한 끼보다 나은 생활적 산책 인문학적 문해력의 표준전과라 할 만하다 우리가 반강제로 약속해 버린 규범의 법보다 오래 길을 걸어 무질서의 반듯함으로 정착한 나무와 풀이, 필생으로 이룬 정답에 가깝다 풀잎에 몸을 주었다 나무와 희롱을 나누었다 이만한 방탕은 아내도 이해하리라 타박타박 걸어 청하중학교 교정, 소나무 아래에 젠장, 넋을 두고 왔다. ……… 마음을 다하여 가꾼 도심공원이 있는 곳에서는 범죄율이 현저하게 낮다고 한다. 버릇없고 무례한 부모와 그 아이들은 식물원으로 유배를 보내야 한다. 침묵의 언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와 풀은 많은 말을 한다. 우리가 못 들을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것들을 외면한다. 경청은 삶의 태도이다. 막스 베버는 삶에 대한 자세로 열정, 책임, 균형을 말했다. 식물은 그대로 실천한다. 부도덕한 열정, 선택적 책임, 평균이 없는 균형이 난무한다. 영혼이 없는 좀비와 같은 식물인간(植物人間), 나아가 식식식(食飾式) 인간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나에게 묻는다. 지식의 비관으로 방탕한 낙관을 씹는 맛도 있어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2-25

섞여야 완성되는 나

설날을 맞아 가족과 친척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들이 어색하지 않게 신경을 쓰며 안부를 물었다. 근황을 묻는 분위기가 한소끔 지나고 나면 어른의 훈계에 아이들의 농담이 겹쳐지고 웃음이 덧씌워졌다. 그런 다음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었다. 모처럼 윷놀이를 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편을 나눠 떠들썩하게 윷놀이에 몰입하고 나면 배가 출출했다. 설날의 기쁨 중 하나는 떡국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식사 준비를 했다. 부엌에서는 기름이 달궈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이 번졌고 반찬을 꺼내 담는 손길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버무려 넣었다. 큰 상에 접시마다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이 놓였다. 나는 각각 고유한 빛깔로 담겨 있던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등을 대접에 담아 밥상으로 날랐다. 섞기 전의 비빔밥은 명절을 맞이하는 가족과 닮았다. 시어머님은 시어머님의 자리에서, 아주버님과 형님은 두 분의 자리에서, 조카와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생활하다가 밥상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모여 앉았다. 각자의 집에서 보냈던 일상 이야기도 덤으로 놓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나다움’을 지키려 애쓴다. 내 생각, 내 방식, 내 취향을 존중받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오면 내가 지녔던 단단한 모서리들이 조금씩 둥글어진다. 나 혼자일 때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표정이 가족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피어난다. 학교나 직장,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았던 마음도 여기서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함박웃음이 먼저 와서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비벼진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었다. 밥과 반찬을 따로 먹어도 맛있겠지만 나물과 고기가 잘 섞여 어우러진 맛은 무척 깊고 넉넉했다. 비빔밥으로 섞이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완성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각각의 맛이 또렷했지만 이내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맛이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서로의 경계가 무너질 때 생기는 선명함이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시간을 나눴다. 누군가는 새로 시작할 일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지나온 한 해를 조용히 털어놓았다. 나를 염려해 주는 이들의 마음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올해 계획이 조금 수정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또 다른 식구들의 마음도 어느 틈에 우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고 앉았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밥이 거의 비워질 무렵이었다. 비빔밥 그릇에 담겨진 나물과 고기의 처음 또렷한 색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그릇의 따뜻함만 남아 있었다. 방 안 가득 퍼진 온기와 비슷한 빛깔이었다. 설날의 비빔밥처럼 섞여야 비로소 내가 된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한 가지 맛에 머물러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있을 때의 나는 조금 더 깊은 맛으로 숙성되는 것 같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뭉쳐진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로 인해 완성된다. 그래서 명절은 지나가도 따뜻한 감정은 오래 남는다. 나는 가족과 섞여야 비로소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2-25

동시에 하는 일

26년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더 흘렀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달아나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속기사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나는 손재주 없는 아이였다. 뜨개질, 바느질, 요리, 기계 수리 등 손을 이용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것을 예쁘게 만들어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정 시간 수행평가 때마다 나는 늘 낮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 시간과 미술 시간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에 최악은 겨우 면한 정도랄까. 흔히들 손재주 하면 공예와 관련된 조형 능력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손재주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조형 능력뿐 아니라 기술적 숙련도를 요구하는 정밀 수리, 수술을 비롯한 전문 의료 능력, 그리고 예술적 퍼포먼스 분야이다. 다행히 나는 예술적 퍼포먼스의 한 분야인 타이핑에선 소소한 재능을 보였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반에서 제일 타자가 빠른 아이였고, 지금은 타이핑을 통해 글을 쓰는 일을 하니 내게도 어느 정도의 손재주가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속기사 자격증을 금세 취득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안고 학원에 등록했다. 내 자신감은 수업 첫 시간부터 처참히 무너졌다. 속기사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키보드는 자음-모음-받침을 순서대로 입력하지만, 속기사 키보드는 이 모든 걸 동시에 입력해야만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누를 수 있는 자판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으며 지정된 손가락 위치에 맞는 자판을 눌러야 한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말이다. 처음엔―물론 지금도―손가락의 위치를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이전까지 배운 것을 모조리 잊고 새로 시작하는 건 꽤나 혹독한 일이었다. 머리로 외우고, 눈으로 보고, 손을 움직이는 모든 게 별개의 일처럼 느껴졌다. 3개월 정도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학원 선생님은 1년간 매일 연습해도 합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왼손으로는 자음만, 오른손으로는 모음만 눌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모든 걸 동시에 눌러야 한다는 건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겠네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요.” 어느 날 나는 선생님께 그렇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글쎄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예요. 저만 해도 멀티가 안 되는 편인데, 타이핑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가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내려다보았다. 마음과 의욕을 따라오지 못하고 뒤처지는 손이 야속했다. 나를 격려하듯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선생님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완벽하게 할 수가 없죠. 타자를 동시에 치는 게 처음이시잖아요. 지금 중요한 건 손가락에 힘을 빼는 거예요. 타자 치실 때 손이 바짝 올라가 있어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몸에 힘이 실리고, 힘이 실리면 오타를 내기가 쉬워져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손한테 익숙해질 시간을 주세요. 그럼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일 거예요.” 나는 어쩐지 정곡에 찔린 기분으로 가만히 타자기만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 모두 나의 유구한 특성이었다. 처음 하는 일도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내 손가락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유독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뼈마디가 하얗게 보였다. 그게 꼭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된 낯선 존재의 이빨. 익숙해질 시간, 그런 걸 내게 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직장에 다니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을 가꾸는 데 바빴다. 내심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간혹 힘든 순간이 닥치더라도, 모두 다 이렇게 살 텐데 나만 엄살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모른 척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여러 명 몫의 삶을 사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오직 흑건으로만 이루어진 피아노 같은 타자기 앞에 앉아 나는 힘 빼는 법을 생각한다. “하지만 손에 힘을 너무 빼면, 자판을 누를 수가 없어요. 힘 주기와 힘 빼기 사이에서 적절한 강도를 곧 찾게 되실 거예요.” 선생님의 말처럼, 언젠간 나만의 강도를 찾아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를 찾기 위해 지금은 ‘완벽할 수 없음’과 ‘완벽하지 않아도 됨’의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노력 중이다. /양수빈(소설가)

2026-02-25

텅 빈 거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한 때 저녁마다 붐비던 번화가가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늘어선 식당과 술집들.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따금 찾던 그 도시가 내가 사는 곳이 되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가뜩이나 날이 추운데 주말에도 거리는 한산해서 바람이 더 차게 느껴질 지경이다. 나야 단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 정도를 받지만 거기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훨씬 더 무거울 것이라 짐작한다. 자영업자에게 모든 순간은 비용이나 다름없을 텐데 비어있는 테이블들을 보면 도무지 힘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동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의 번화가에 나가봐도 실상은 마찬가지이다. 신촌의 상권이 무너진지는 오래됐다. 골목골목을 가득 메우던 인파들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종로도 그렇고 명동도 심각하다. 어느 날 홍대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은 이제 홍대나 강남도 옛날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어딜 가도 사람이 없어요.” 성수동, 연남동, 한남동처럼 새로 떠올라 성장한 곳들도 있지만 그 규모는 눈으로 보기에도 침체된 곳들보다 압도적으로 작다. 대구의 동성로, 광주의 충장로, 전주 객사. 도시를 대표하던 거리들이 비어가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은 체감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느덧 원로급이 된 그룹 신화의 멤버 앤디가 앳된 얼굴로 시트콤 ‘논스톱’에서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로 시작하던 유행어를 이야기하던 게 2002년 쯤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반등하기도 했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긴 하지만 체감적으로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져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인 격차는 자꾸만 벌어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지며 임금은 별로 안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반면, 물가는 무섭게 오른다. 2005년, 대학 새내기 때 가게에서 소주 한 병 값은 2500원에서 3000원 정도였다. 지금은 5000원에서 6000원 정도 하니까 두 배 정도 오른 셈이다. 그동안 평균 임금은 80% 정도 상승했으니 사실 그에 비하면 소주 값이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산기를 들고 소주를 마시지는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감각은 숫자 밖에 존재한다. 평균 임금이 그만큼 오른 것은 고소득층의 임금 상승이 주된 요인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평균이 올랐다고 내 월급이 오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소주 값만 지나치게 오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명백하다. 2년 남짓한 시간동안 모임이 통제되고 모두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제한이 풀리고 나서 유동인구의 수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긴 했지만 그것이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 사라진 회식과 모임이 부활하지 않게 된 경우들이 많다. 그때 갓 스물이 되었던 젊은이들은 이제 소비력을 갖추게 되었을 텐데 한창 모여야 할 시기에 통제받은 경험은 이후에도 그들을 이전 세대들보다 만남에 소극적인 세대로 만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만큼 술을 마시지도 않고 모이지도 않는다. 당장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간의 우려를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먹으며 쌓은 관계는 단지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고 카톡으로 이모티콘을 보내며 쌓은 관계와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파트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낯선 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섞여 거리의 풍경에 녹아드는 일은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뭐가 더 낫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모습의 관계와 다양한 종류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자영업자들의 생활이 위태로워지고 사랑스런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도 걱정이다. 공간은 곧 경험이고 경험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다양한 공간들을 지켜내는 이들이 바로 자영업자들이고, 그런 곳들이 유지되려면 결국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 얼어붙기만 하는 황량한 거리에서 자영업자들은 끝없이 한숨을 내뿜을 뿐이다. 아무리 추워도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봄이 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티다 보면 온다던 봄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텅 빈 거리에 봄이 오긴 오는 것일까. 날은 많이 풀렸는데 말이다. /강백수(시인)

2026-02-25

DDP를 위한 변명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이 건물을 대변해 ‘변명‘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변명이 필요한 것은 건물보다 우리의 평가 방식이다. DDP에 던져지는 질문은 대개 두 갈래다. 하나는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 “상업적 가치가 있나”라는 계산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적 논쟁을 가장한 채 정당한 비평을 넘어 혐오에 가까운 시선이다. 이 두 시선이 결합하는 순간, 건축의 진짜 가치는 보이지 않게 된다. 도시는 그렇게 ‘해석’ 대신 ‘판결’만 남는다. 공공건축을 손익계산서로만 재단하면 문화의 본질은 언제나 패배한다. 문화는 단기간 매출이 아니라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이며 형성되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운영과 지속가능성은 따져야 하지만 ‘수익=가치’로 환원할 수는 없다. 가동률, 반복 프로그램, 체류시간, 주변 상권과의 교환 구조 같은 지표로 성과와 결함을 분해해야 한다. 대표적인 DDP 비판 가운데 ‘문맥과의 단절’은 형태만 놓고 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동대문은 원래 생산·유통·야간 이동이 겹치는 ‘시장-도시’다.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고, 다양한 동선이 교차하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머물다 빠져나가는 경험이 동대문다운 방식이다. DDP의 다중 진입과 비정형 동선은 그 복잡한 도시성을 공간으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길을 잃고 싶은 공간’은 낭만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과 재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또 하나의 유산은 산업적 파급력에 있다. DDP 외피는 4만5000장이 넘는 패널을 ‘대량 맞춤’으로 제작·설치해야 했고, 특히 이중곡률 패널 성형은 기존 표준 커튼월처럼 반복 생산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설계-제작-시공을 디지털 데이터로 연결해 품질과 오차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강화되며 국내 시공 역량이 한 단계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랜드마크는 ‘시간의 지연’을 겪는다. 에펠탑도 초기에 거센 비난을 받았고, 모파상이 탑이 보기 싫어 “탑 안에서 식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은 낯섦을 상징으로 바꿨고, 에펠탑은 결국 파리의 얼굴이 되었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릿츠커상을 받은 여성 건축가다. 그의 작품을 보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도시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준다. DDP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원인은 대개 형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운영·연결·거버넌스를 보완하고 수정해 채워야 한다. K-pop 공연장 같은 대형 시설은 지방 도시 활성화에 더 직접적인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필요도 기존의 문화적 실험을 ‘지우는’ 방식으로 충족될 필요는 없다. 공연장은 새로 지을 수 있지만, 논쟁적 유산은 해석과 개선을 통해서만 성숙한다. 피카소의 그림이 내 취향과 다르다고 해서 버리지는 않듯, 불편함은 삭제가 아니라 진단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건물을 부수는 결단보다 어려운 일은, 건축을 도시 속에서 작동시키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파괴가 아니라 정밀한 비평과 시스템 업그레이드다. 논쟁을 ‘호불호’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도시적작동을 함께 따지는 다각적 평가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DDP를 대하는 최소한의 품격이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2-25

우크라이나 전쟁 4년

어제(24일)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꼭 4년째 되는 날이다. 전쟁 4년을 앞두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을 시작했으며 그를 물러서게 할 유일한 답은 군사적·경제적 압박”이라 강조했다. 레오14세 교황도 전쟁 발발 4년을 맞아 가톨릭 신자들을 향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너무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삶과 가정이 무너졌으며 엄청난 파괴와 고통이 있었다”며 “평화를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 발표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희생된 민간인 사망자는 1만5172명, 부상자는 4만1378명으로 집계된다. 특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군 희생자는 약 5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우크라이나 군의 희생자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약 50~60만명에 이를 것이란 추산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이주민도 자국 내 약 370만명, 유럽 국가 등에 거주하는 난민도 5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유엔은 2024년 말 우크라이나의 재건비용을 52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70조원으로 추산했다. 러시아의 전쟁 목표는 우크라이나 동부 4개 주를 포함 우크라이나 영토의 20% 점령이라 한다. 미국이 휴전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도 군사적·산업적으로 중요한 돈바스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종전 합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끔찍한 고통과 신체적·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 상황을 불교 용어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 한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은 이런 아비규환에 갇혀 있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24

지방선거에서 장동혁과 국힘이 사는 길

지방선거가 임박하면서 정치권이 바쁘게 움직임이고 있다. 워밍업 단계라서 그런지 여야 모두 우선은 선거기간 내내 상대 약점을 공략할 프레임 짜기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보통 대통령 임기 초반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제기하는 ‘정권심판론’이 모든 정책과 이슈를 압도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특이하게 ‘야당 심판론’이 힘을 얻는 것 같다. 초반 ‘프레임 전’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밀리는 형국이다. ‘야당심판론’은 지난주 윤석열 전 대통령 1심 판결에 대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윤 어게인’ 세력과의 절연 요구를 거부하면서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무기징역 선고에 대해 “안타깝고 참담하다”면서 “아직 1심 판결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항소심에 대해 여운을 남긴 장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장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 내란 세력들과 함께 국민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면서 국민의힘을 대상으로 위헌정당 심판 청구를 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내 비쳤다. 그리고 조승래 사무총장은 윤석열 정부 때 당선된 8개 지역(인천, 대전, 충남, 충북, 세종, 강원, 경남, 울산) 광역단체장들을 콕 집어 ‘윤석열 키즈’라고 명명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들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해당 지역 시·도지사 선거 이슈를 ‘윤석열 키즈’ 심판론으로 몰아가겠다는 계산이다. 만약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략대로 ‘야당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삼킬 경우, 국민의힘으로선 2018년 지방선거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여 뒤에 치러진 2018년 6·13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광역단체장 17곳 중 대구·경북을 제외하곤 민주당에 전패했다. 그 당시와 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은 TK를 빼곤 전 지역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상태다. 보수정당에 우호적인 PK(부산·울산·경남)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 지지도를 누른 지 오래됐고, TK에서조차 두 정당 지지도가 비슷하게 나오는 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 지지율이 낮은 국민의힘 후보는 여권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오로지 개인역량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재로선 장 대표의 ‘윤 어게인’ 기조는 변할 것 같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더라도 다음 총선공천 때까지 당권은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러한 생각은 큰 착각이다. 지금 영남권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 주류세력이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를 의식해 곁에 붙어 있지만, 선거에 지면 그날부터 돌아설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장 대표가 이러한 ‘배신의 시간’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강성지지층과 거리를 두고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이게 국민의힘과 장 대표가 사는 길이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2-24

이름값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은 눈부시다. 그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저마다 영원한 품질과 고결한 신뢰를 약속하는 신전처럼 군림한다. 나는 그 신전의 보증서를 믿고 대가를 지불했다. 그것은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그 이름이 지닌 ‘책임’을 사는 일이었다. 최근 오래 아껴 신던 부츠의 밑창이 악어처럼 벌어졌다. 익숙한 로고가 박힌 매장을 찾았을 때, 직원의 반응은 정중했으나 단호했다. “저희는 밑창을 수선하지 않습니다. 바깥에 있는 일반 수선집으로 가져가 보세요.” 지난달 고장 난 노트북 서비스센터에서도 같은 문장을 마주했다. “여기서는 고치기가 어려우니 사설 수리점에 맡기시는 게 빠를 겁니다.” 내가 산 것은 브랜드의 가치가 아니었다. 단지 유효기간이 정해진 화려한 껍데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판매라는 축제에는 열광하지만 노후라는 쓸쓸한 뒤처리는 모르는 척하는 것같이 다가왔다. 제 몸에서 떨어진 파편 하나 품지 못하고 길 위의 이름 없는 수선공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기업의 시스템은 비겁했다. 신뢰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정작 수선이 필요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당혹한 마음과 함께 발길을 돌리며 시선은 이내 나에게 향했다. 타인의 무책임을 비판하던 날 선 화살이 거울 속의 나에게로 되돌아와 박힌다. 나는 과연 내 인생의 라벨들에 걸맞은 함량(含量)을 채우며 살고 있는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이들을 마주할 때 혹시 보증기간이 끝났다며 아이들의 마음을 세상 밖으로 떠밀지는 않았는지. ‘아내’라는 이름으로 곁에 머물면서 남편의 해어진 고독을 수선해주기보다 사설 매장의 서비스 같은 건조한 위로만 건네지는 않았는지. ‘작가’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문장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화려한 수사(修辭)라는 로고 뒤에 숨어 독자를 기만하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이름값이란 찬란한 신상품의 상태일 때가 아니라 닳고 해져 수선이 필요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이름은 부르는 이의 편의를 위한 기호가 아니라 불려지는 이가 감당해야 할 생의 무게여야 한다. 내게 맡겨진 인연들이 고장나고 삐걱거릴 때 “나는 몰라” 하며 외주를 주지 않는 것. 내 안에서 발생한 균열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기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이름’이라는 성채를 품위있게 지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백화점의 문을 나서며 발걸음이 무거웠다. 품에 안긴 부츠는 이제 세련된 패션의 상징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 외면당한 유물에 불과했다. 나는 화려함을 뒤로 하고 낡은 간판들이 있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브랜드’라는 이름이 약속했던 안락한 울타리는 사라지고 나의 해진 밑창을 받아줄 손길을 찾아 낯선 거리를 헤매는 유랑자가 되었다. 수선점들은 죄다 문이 닫혀 있고 스마트폰 지도가 가리키는 수선점들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다. 골목마다 들어선 화려한 카페가 나의 고장 난 하루를 비웃듯 유리창을 번득였다. 추운 겨울날 길 위에서 보낸 그 막막한 시간은 단순히 수선처를 찾는 물리적 고통을 넘어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름값’의 실체가 얼마나 휘발성 강한 것인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자본이 설계한 성벽 안에서는 귀빈이었으나 수선이 필요한 지점에서 결함을 드러낸 순간 나는 번거로운 이방인이 되어 차가운 거리를 배회했다. 막막한 배회는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나 또한 누군가 내게 기대어온 상처를 ‘시스템’이라는 핑계로 문밖으로 밀어내며 그를 차가운 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동네 어귀에서 만난 낡은 수선집에서 나는 화려한 보증서 대신 기름때 묻은 앞치마와 세월을 견딘 투박한 도구들을 만났다. 수선하는 어르신은 브랜드의 계보를 묻지 않고 밑창의 상처만 묵묵히 응시했다. 그의 손길에서 죽어가던 밑창이 다시 붙어갔다. 진정한 이름값은 화려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먼지 쌓인 작업대 위에서 완성되어갔다. 자본의 논리가 거부한 폐기 직전의 그것들을 살려내는 그들의 손길은 나에게도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복원의 책무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매끈한 로고보다 이름 없는 수선공의 거친 손마디에서 더 깊은 신뢰를 다시 배웠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화려한 보증서를 내미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키며 고쳐 쓸 수 있는 성실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김경아 작가

2026-02-24

티티카카, 잃어버린 태양의 호수

쿠스코(Cusco)를 떠나 티티카카로 향하는 길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여정이 될 거라고 믿었다. 밤 10시,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쿠스코를 출발, 볼리비아의 라파스(La Paz)를 향했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새벽 5시 30분, 푸노에 도착했다. 낯선 도시의 새벽은 어색했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굳어있던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렸다. 아침 7시, 작은 관광 보트를 타고 호수를 향해 달렸다. 마침내 물 위에 떠 있는 갈대 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그곳은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웠다. 단 네 가구만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은 수천 년 동안 먼지와 식물의 씨앗이 쌓여 만들어졌으며, 그 두께는 4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갈대와 같은 식물로 집을 짓고, 배를 만들며 삶을 이어간다. 그들의 생계는 대부분 관광에 의존하고 있다. 갈대로 만든 공예품을 팔아 자식들을 키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풍경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 경비를 아끼려는 방문객들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 원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물건을 권한다.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문득 ‘아침보다 오후에 더 잘 팔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는 이성이 지갑보다 앞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판단은 흐릿해진다. 여행지의 상거래는 때로는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실험실과 같다. 티티카카는 해발 3812m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호수이다. 뚜렷한 수평선은 마치 바다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느낌은 단순히 고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흐른다. 맑은 물 위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고, 호수 바로 옆은 볼리비아 국경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대 잉카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 답은 바로 ‘갈대와 물’에 있었다. 잉카인들은 호숫가에 자생하는 갈대, ‘토토라’를 이용하여 물 위에 떠 있는 인공 섬, ‘우로스’를 만들어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갈대로 만든 배를 띄워 바다와 같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어업과 교역을 이어갔다.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밭 주변에 수로를 파 낮 동안의 열을 가두는 와루와루 농법을 고안해 냈다. 덕분에 해발 3800m가 넘는 고지대에서도 감자와 퀴노아를 재배하며 생존 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티티카카는 그들에게 단순한 호수가 아니었다. 태양신 ‘인티’가 인류의 시조를 내려보냈다는 신성한 발상지였다. ‘태양의 섬’과 ‘달의 섬’에 신전을 세우며 우주의 질서를 확인하던 그들만의 영적인 중심지였다. 라마와 알파카를 길러 따뜻한 옷을 만들고, 거대한 호수를 천연 고속도로 삼아 부족들과 물자를 교류했다. 구름 위의 바다를 경외하며,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데스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문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536년, 투팍 아마루 1세가 이곳에서 스페인 정복자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고, 이후의 저항 또한 좌절되었다. 총과 말을 앞세운 정복자 앞에서 끈질긴 저항은 무력하기만 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땅의 패배’가 아닌 ‘문화의 말살’이었다. 언어는 사라지고, 신앙은 잊혔으며, 삶의 방식은 마치 전시품처럼 박제되어 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영국에서 온 두 명의 여행객, 그리고 미국에서 온 젊은 커플과 함께 타킬레 섬으로 향했다. 푸노에서 배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그 섬에는 자동차도, 소음도 없다. 잉카 시대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여전히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해발 3800m가 넘는 고산 지대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눈부시게 푸른 호수와 소박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민들이 직접 짠 직물을 조용히 내어 보이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곳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하산길에 들려오는 맑은 물 소리는 여행자의 숨을 고르게 해준다. 정말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 ‘속도’가 사라진 자리에서 마음은 다시 제 속도를 찾아가는 듯했다. 섬에서 돌아오자 볼리비아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사니 국경 심사대를 직접 걸어서 통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다 저녁 무렵 티키나 해협에 도착했다. 밤 7시가 넘어 어스름이 짙게 깔리자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호수 바람을 맞으며 어둠 속 물길을 건넜다. 그 사이 버스는 커다란 바지선에 실려 따로 이동했다. 사람은 작은 배로, 버스는 큰 배로. 두 나라의 경계를 호수가 품어 옮겨주는 그 모습은 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이었다. 티티카카가 오랫동안 기억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것이다. 티티카카는 화려한 관광의 이름 아래 식민의 상처와 잃어버린 문명의 침묵을 숨기고 있지만, 나는 그 유산을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정신으로 대하려는 자긍심 속에서 정체성 회복의 희망을 보았다. 잉카의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사라진 목소리들이 다시 숨을 쉬는 듯했고, 그 깨달음을 가슴에 단단히 묶어 둔 채 나는 또 다른 기억의 땅, 볼리비아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발걸음을 옮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2-24

동계올림픽의 변화, 그리고 정치신인의 등장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은 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땀과 시간, 감동과 승리의 서사가 한순간의 기록으로 응축되기 때문이다. 메달 획득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스포츠 정신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동계올림픽 폐막식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이번 올림픽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다. 메달의 주인공과 종목의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동계 효자 종목은 ‘쇼트트랙’이었다.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는 우리의 자부심이었고, 시상대는 당연한 목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낯선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노보드와 같은 비교적 새로운 종목에서 우리나라 메달리스트가 탄생했고, 새로운 얼굴들이 시상대에 올랐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양한 동계 스포츠 종목의 저변확대, 훈련 방식의 변화, 새로운 선수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쇼트트랙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과거와 같이 특정 종목에 성과가 집중된 구조에서 벗어나 다른 종목으로 가능성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 대회였다. 스포츠는 이렇게 진화한다. 강점을 지키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다. 변화와 다양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간다. 그리고 국민의 박수를 받는다. 정치 역시 다르지 않다.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익숙함에 안주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6월 열리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각 지역의 출마예정자들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얼굴, 반복되는 구도, 예측 가능한 경쟁 속에서 선거를 치러왔다. 물론 경험과 안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안정만으로는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번 동계올림픽과 같이 새로운 시각과 문제 해결 방식, 다른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정치 신인들이 기회를 얻어야 정치 체력이 강화된다. 정치신인의 등장은 위험이 아니라 기회다. 정치신인의 등장은 정책 경쟁을 촉진하고, 지역 의제에 대한 해석이 다변화된다. 행정은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의회는 더 치열한 토론을 한다. 결과적으로 시민의 이익이 커지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 지형이 달라진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종목에 새로운 선수가 유입됐고, 도전의 문턱이 낮아졌으며, 다양성이 경쟁력을 키웠다. 쇼트트랙이 여전히 강하듯, 정치에서도 경험 많은 인물이 계속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인재가 육성되고, 공정한 경쟁 구조가 작동하며, 준비된 신인이 제대로 평가받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정치신인은 ‘검증되지 않은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검증 가능한 새로운 선택’이다.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으며 쌓은 필자의 경험도 시민들께 평가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변해야 지역이 변하고, 지역이 변해야 시민들의 일상이 달라진다. 변화는 누군가의 양보가 아니라 시스템의 진화에서 시작되고, 유권자의 선택지가 넓어질수록 민주주의는 건강해진다. 올림픽은 우리에게 메달의 색깔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메달이 없어도 발전의 가능성을 볼 수 있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치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익숙함의 안전지대에 머무를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의 무대로 나아갈 것인가. 정치 메달리스트만으로는 감동도, 발전도, 기대도 받지 못할 것이다. /박대기 전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 직무대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2-23

보수의 재건을 위한 고언(苦言)

국민의힘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수구보수의 길인가, 혁신보수의 길인가? 선거 승리의 길인가, 패배의 길인가? 윤석열과 절연하라는 혁신파의 목소리는 작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수구파의 목소리는 크다. 장동혁과 한동훈, 반탄파와 찬탄파, 수구파와 혁신파의 대립은 길 잃은 보수정치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중병에 걸려 허덕이고 있는 보수에게 미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 처방이 아니라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이다. 곪아 썩어가고 있는 가짜보수를 방치하면 진짜보수가 위험해진다. 환자가 중병에 걸려 있는 줄도 모르고 수술을 거부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부분적 보수(補修)’가 아니라 ‘전면적 재건축’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 첫째, 잘못된 과거와 확실히 결별하는 것이다.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이미 헌재가 법적 판결을 내렸고, 국민이 대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했다. 그럼에도 장동혁이 찬탄파를 축출하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것은 보수를 아끼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여론조사결과(한국갤럽, 2026년 2월 6일)를 보면 장동혁이 ‘잘못한다(56%)’는 응답이 ‘잘한다(27%)’의 두 배를 넘고 있다. 윤석열의 그림자를 지우고 민심에 역행하는 극우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가짜보수가 진짜보수로 거듭나는 그 첫 출발점은 바로 ‘잘못된 과거와의 결별’에 있다. 둘째,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보수는 수구가 아니다. 수구는 변화를 싫어하고 옛것만 지키려하지만, 보수는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와 개혁을 모색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는 혁신보수가 아니라 수구보수로 퇴행하고 있다. AI혁명으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낡은 사고에 갇혀 보수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외관보다 내용을 중시해야 할 보수가 내용의 혁신 없이 당명만 바꾸어서 유권자를 속이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나, 보수의 핵심가치인 법과 질서를 어긴 윤석열을 두둔하는 것은 모두 보수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에 수반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혁신의 고통’이 따른다. 혁신을 위해서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이 요구되지만 현재의 국민의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극우세력에 기대어 당권을 지키려는 당대표, 보수의 미래보다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극우의 선동에 이성을 잃은 강성 당원들 등 구성원들의 이기주의와 독선이 당을 망치고 있다. ‘국민이 명령하는 혁신’에 부응해도 모자랄 판에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한다면 재기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당심(黨心)이 아니라 민심(民心)’이며, 당심은 결코 민심을 이길 수 없다. ‘민심을 받드는 혁신의 고통’이 바로 ‘사즉생(死卽生)’이요 ‘보수 재건의 길’임을 왜 모르는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2-23

행복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좋은 순간들’이 있다. 이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해도 좋다. 행복을 정의할 순 없지만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음이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이 순간이 행복해’라고 하지만, 내면의 행복은 아쉽게도 늘 먼 미래에 있다. 결코 맞이할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왜냐면 우리 모두 ‘파랑새 증후군’ 환자이므로. 행복은 향수와 같아서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향기를 풍길 수 없다. 도달해야 할 경지가 아니라, 지금 느끼는 상태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은 없다. 행복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축적된 미세한 순간들의 감각이다. 삶의 여정에서 매 순간순간 경험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행복은 매 순간 내 몸이 우주와 교감하는 방식인 셈이다. 모닝커피 한잔의 향기, 퇴근길 노을, 지나치는 행인의 미소, 동료들과의 농담, 아내가 차린 조촐한 밥상, 행복이 아닌 것들이 없다. 행복을 추구하여 봤자, 그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행복은 저기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이다. 그래서 행복을 좋은 ‘순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좋았던 순간들이 행복이었던 것을 몰랐던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지’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뒤늦은 중얼거림이 자신이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오지는 못한다. 행복을 미래로 예약하는 순간, 오늘은, 결핍이 된다. 행복은 예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장 경험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행복을 미래로 미루는 사람은 늘 조건을 기다린다, 건강해지면, 돈이 모이면, 아이가 크면···. 그래 봤자 삶이 이렇게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진들 또 다른 조건이 기다린다. 행복을 목표로 정하여 둔 사람은,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그 행복이 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추구할수록 멀어지고, 누릴수록 가까워진다. 추구함은 항상 긴장을 동반한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누림은 이완이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태도이다. 누린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종종 결핍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아직 부족하다. 아직 멀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등등. 그러나 ‘행복을 누리는 삶의 문법’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 충분하다, 지금 숨 쉬고 있다, 지금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행복은 더 이상 미루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닌 것이 된다. 현대의 디지털 기술은 행복을 더욱더 복잡하게 이끄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교의 장으로, 미래로 보낸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 타인의 삶은 언제나 빛나 보이며,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의 체험이 아니라, 미래의 전시가 된다. 자신의 행복을 즐기기에 앞서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가슴에 담기에 앞서 카메라에 담는다. 파스칼은 인간이 불행한 이유를 다음과 같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모든 불행은 방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공봉학 변호사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