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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명예훼손

영화 ‘노트북’에서 평생을 사랑하며 산 노아와 앨리는 요양원에서 손을 잡고 잠든 채로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런 영화와 같은 일이 얼마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다. 미국 워싱턴주에 살던 90대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한날한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안락사를 통해서였다. 말기 심장진환을 앓던 아내 에바는 낙상사고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수술 대신 삶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싶다며 안락사를 결심했고, 아내의 결정을 들은 남편 드루스 역시 아내가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안락사를 신청했다. 드루스 역시 뇌졸중 병력이 있었기에 부부는 의료진으로부터 안락사 승인을 받을 수 있었고, 부부는 딸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마지막 날로 정한 8월 13일 음악이 흐르는 방 안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손을 잡은 부부는 약이 든 칵테일을 마시고 함께 영면에 들었다. 이렇듯 워싱턴주를 비롯한 미국 10개 주는 의료적 조력 안락사가 합법이다. 작년엔 1982년까지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판 아흐트 전 총리가 뇌졸중이 악화되자 안락사 허가를 받아 아흔 세 살의 동갑내기 아내와 손을 잡고 함께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어야 하고 의사 두 명이 안락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해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이 있지만 네덜란드는 매년 8000명 이상이 안락사를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안락사의 뜻을 풀면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이다. 주로 가망 없는 불치병 환자, 중환자가 대상이 되는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약물을 주입해 사망하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약물이나 음식물 투입 등의 처치를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우리는 이런 안락사가 모두 불법이자 범죄이다. 불치병으로 극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고 해도 약물 제공 등 안락사를 돕는 경우 자살방조죄나 촉탁살인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선 안락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을 떠난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안락사 및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열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스위스로 가 실제 안락사를 시행했고, 안락사 순서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한국인들도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선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편안하지 않고 러프한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작정 고통 없는 자살을 허용해 주자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명을 조건부의 가치로 취급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상황을 강요할 권리가 과연 타인과 사회에게 있는 것일까.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인간은 어떻게, 언제 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도 전혀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 국민도 76%가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결정권 말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13

문화유산의 귀향

청와대 경내에는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서울로 강제로 옮겨진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이 있다. 이 불상의 공식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석조여래좌상이다. 보물 제 1977호다. 경주 남산의 옛 절터가 본래 출처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조선총독부 관저로 옮겨진 것이 100년 가까이 이 자리에 있다. 2017년부터 경주시와 경주시민단체가 불상의 본향인 경주로 옮기자는 불상 반환 운동을 전개했으나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문화재 반환 운동은 국내 문화재가 불법으로 외국에 빠져 나간 것을 되찾자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국내 문화재 가운데 출토지와 보관장소가 서로 다른 문화재들도 출토지 환원 문제로 종종 논란을 일으킨다. 청와대 불상의 경주 환원이 이런 케이스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문화재의 역외 유출은 출처가 설사 다른 곳이라 하더라도 반환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문화재의 역외 유출 경위나 배경이 밝혀져야 하고 반드시 본래 출처로 되돌려줘야 하는 법적 근거도 없다. 다만 문화유산을 본향으로 돌려달라는 지역은 조상의 문화 정신을 계승하고 유산에 대한 지역의 자부심을 자랑으로 삼고자 하는 데 의미를 둔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라금관 6점이 104년 만에 본향인 경주박물관서 전시되고 있다. 신라 금관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관람객이 줄을 서는 등 관람 열기가 폭발하는 가운데 신라 금관을 본향에 두자는 시민운동이 불을 지피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금관은 경주의 자존심”이라는 글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캠페인 바람이 일고 있다. 출토지 보존의 원칙은 논리상 설득력이 있다. 과연 신라 금관이 경주에 남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3

'패시브하우스'

쌀쌀해진 날씨에 패딩을 꺼내 입게 되면서, 계절 변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단풍철마저 짧아질 만큼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2050 탄소중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닌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감축 노력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건축 분야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패시브하우스’가 주목받고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건물 자체의 필요 에너지를 최소화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친환경 건축 방식이다. 고단열·고기밀 구조, 고성능 창호, 열교 차단, 열회수 환기장치 등 다섯 가지 핵심 기술을 결합해 냉난방 에너지 사용을 기존 대비 90%까지 절감한다. 이로써 실내 온도는 연중 20℃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되며, 신선한 공기가 순환되어 미세먼지 유입을 차단하고 결로나 곰팡이 발생 없는 건강한 생활공간을 구현한다. 대구·경북은 덥고 습한 여름과 춥고 건조한 겨울이라는 극단적인 기후를 가졌다. 혹서기 냉방 및 제습 부하가 크고, 동시에 노후 건축물 비율이 높아 그린리모델링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 패시브하우스는 이러한 대구·경북의 기후 문제와 노후 건축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다. 패시브하우스는 1990년대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고, 미국에서는 다양한 기후에 맞춰 표준을 조정하는 등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0년부터 공공 및 주거 건물에 적용되며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다. 특히 정부의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의무화 로드맵은 패시브하우스 기술 도입의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대구·경북 지역에 패시브하우스를 적용하려면, 신축 건물은 여름철 과열 방지를 위한 외부 차양, 고성능 창호, 제습 기능이 강화된 열회수 환기장치를 갖춘 ‘대구·경북형 패시브하우스 설계 가이드라인’ 수립이 시급하다. 또한, 노후 건물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패시브하우스 리모델링 기법인 ‘에너핏(EnerPHit)’을 적용한 공공건축물 시범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기술 실증과 전문 인력 양성의 거점이 될 것이다. 대구·경북의 기후와 노후 건축물 문제를 해결할 패시브하우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지역 정책 입안자, 건설 산업계, 학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자체는 ZEB 인증 최우수 이행 방안으로 패시브하우스를 공식화하고, ‘패시브 리트로핏’ 시범사업을 즉시 착수하며, 설계 및 인증 비용 지원, 저금리 융자 등 리스크 저감 중심의 금융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구·경북 녹색건축 지원센터’를 설립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야 한다. 건설업계는 전문 인력 양성에 투자하고, 지역 맞춤형 표준 모델을 개발하며, ‘쾌적성, 건강, 여름 성능’을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 학계는 지역 표준 기상 데이터 개발, 지역 자재 성능 검증, 실증 데이터 축적을 위한 입주 후 성능 평가 연구에 힘써야 한다. 패시브하우스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현명한 투자이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대구·경북이 탄소중립 선도 도시로 나아가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1-13

내 생각이 너무 고루한가?

세종대왕께서 날 밤을 새우면서까지 만든 한글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언론에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외국어이다. 외래어면 말도 안 한다. 자기가 좀 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말도 아닌 듯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생활 속에 아주 익숙해진 말투다. 하지만 방송은 조금 정화되었으면 싶은데 듣는 사람 기분을 거슬리게 만든다. “관객”을 계속 “갤러리”라 말하는데도 사회자는 그 어떤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이게 요즘 말하는 세련되고 글로벌한 어투인가? “찌개다시 많이 나오는 식당가자.” “찌개다시? 스끼다시가 아니고?” “너무 유식한 척하지 말고 대충 알아들어라.” 복잡한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우리는 따지고 드는 사람을 기피하고 대충 뜻만 통하면 넘어가는 이상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나름 남들에게 유식하게 보이고는 싶고, 그래서 한마디 한 것이 지적질로 돌아오면 기분은 나쁠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고 말하는 것과 머리를 거치지 않고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품격에 차이는 난다고 보면 된다. 일본에 가서 “찌개다시”라고하면 알까? “스끼다시”도 모른다. 마치 중국에 가서 짜장면 찾기다. 그리고 “츠키다시”라고 하는 일본 말은 메인 음식에 곁들인 아주 소량의 기본 음식이다. 이런 오토시나 츠키다시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30개의 반찬을 깔아버리는 한식과 경쟁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손님 접대는 푸짐해야 하고 음식은 남아야 대접 잘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문화라 제비 눈물처럼 찔끔 나오는 전채요리로는 경쟁이 안 됐다. 살아남기 위해선 당연히 변화해야 했고, 그 결과 마치 코스요리처럼 푸짐하게 한 상을 받는 느낌이 들게 만든 것이다. 이제 일식집에 스끼다시가 시원찮으면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나와야 할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시미 요리와 함께 튀김이나 해산물이 한상 가득 깔려야 한다. 우동이나 김말이(마키), 초밥 같은 것도 곁들여서 말이다. “오늘 추천 요리는 뭔가요?” 손님이 요리를 주방장, 아니 요즘말로 “셰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을 ‘오마카세’라고 한다. 이런 용어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용어 자체가 많이 거북하게 다가온다. 젊은 친구들은 이런 일식 문화에 자주 접하는지 내가 잘 모르는가 싶어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돈 내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들으면서 한 번씩 고개만 끄덕여 준다. 들으면서 내가 꼭 이걸 알아야 하나 싶다. 일식집만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식당의 다반상(多飯床) 문화도 변해 전통 반상은 어디 허름한 한식집이나 공사장 함바집 수준으로 전락했고 요즘 잘나가는 한식집은 36반찬을 깐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젊은이들이 낭비라면서 우리네 한식 문화를 보여주기 식의 낙후된 식문화로 깎아버린다. 정말 그럴까? 36반찬을 혼자 먹을 순 없다. 다함께 밥 먹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자랑스러운 우리 밥상 문화임을 알았으면 싶다. 미소 된장국에 감탄하지 말고, 구수한 한국 된장의 참맛을 느끼면서 우리네 식문화에 좀 더 관심 가지는 젊은이를 보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5-11-13

대통령의 큰절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이럴 때 쓰라고 생겨난 사자성어인 듯하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어떤 공식적 직함도 없는 무속인에게 조언을 들으며 많은 부분을 의지했다는 것도 혀를 찰 일이지만, 둘 사이가 멀어진 이유가 대통령 당선 이후 약속했던 큰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최근 언론 보도는 많은 이들을 실소케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 씨 이야기가 나올 때면 십중팔구 등장하는 인물이 세칭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 씨다. 전씨는 서울 역삼동에서 무속 활동을 했고, 김건희 씨 회사 코바나콘텐츠의 고문을 지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전성배 씨의 알선수재 혐의 관련 공판이 열렸다. 여기에 인사 청탁 브로커 김모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김씨는 전성배 씨를 통해 청탁을 한 이유에 대해 “전씨가 대통령 당선 과정에 기여했으며, 정신적으로 대통령 부부를 이끌어줬다”고 증언했다. 김건희 씨가 전성배 씨에게 수시로 전화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 전 대통령과 전성배 씨가 소원해진 이유에 관해서도 증언했는데, 대통령 당선 뒤 윤석열 부부의 사저를 찾은 전씨가 “어디서건 큰절을 하겠다더니 왜 하지 않냐”고 했고, 윤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뒤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큰절’은 혼례나 제례를 올릴 때 웃어른에게 가장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하는 절이다. 당연지사 여기엔 존경과 순종의 의미가 담긴다. 일개 무속인이 향후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 갈 대통령에게 큰절을 요구하는 것도 희한한 코미디지만, 전성배 씨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한 윤석열 전 대통령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13

페루의 고요 속에서 만난 ‘나’의 언어

페루는 단순히 관광의 나라가 아니다. 그곳은 고대의 숨결이 바람에 실려 흐르고, 사람의 손길이 신의 흔적처럼 남아 있는 땅이다. 마추픽추와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 거대한 콘도르가 나는 콜카 캐니언, 아마존 정글, 신비한 나스카 라인까지. 페루는 고대 문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나 대하드라마였다. 리마의 공항에 내리던 첫날밤, 나는 이국의 공기 속에서 묘한 정적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정적의 결을 따라 한적한 사립(Musco Larco) 박물관을 찾았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한 문명의 발자취를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언제나 한 민족의 기억이 잠들어 있는 장소다. 그 문을 여는 순간은 늘 설렘으로 가득하다. 마치 수천 년의 역사가 담긴 긴 문장의 첫 단어를 읽는 듯한 순간 말이다. 고요한 전시실 안에서 설명서보다 먼저 내 눈을 붙잡은 것은 ‘색’과 ‘무늬’였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엮인 언어였다. 실 한 올 한 올, 문양의 곡선 하나마다 “나는 여기 있다”라는 존재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잉카인들의 문양은 화려한 예술이기 전에, 혹독한 고산의 삶을 견디게 한 강력한 주문(呪文) 이었다. 거대한 콘도르의 날개 문양에는 하늘과 통하려는 간절함이, 퓨마의 발톱에는 대지를 지키려는 의지가, 뱀의 곡선에는 지혜와 치유를 바라는 잉카인의 기도가 숨어 있었다. 나는 그 무늬 속에서 신화가 아니라 현실을, 장식이 아니라 생존을 보았다. 그들의 예술은 “나는 나대로 충분히 빛난다“라는 조용하고 단호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잉카 여인들의 장신구였다. 귀를 장식한 금속 한 조각, 머리카락을 고정하던 빗, 자수 한 땀 한 땀마다 그들의 숨결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꾸밈이 아니라 침묵 속의 저항이자 자존의 표현이었다. 고산의 바람 속에서도 하루를 마감하듯 정성스레 엮은 실 한 올 한 올에는, 억압된 사회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여인들의 강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잉카의 옷은 단순한 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신분증이자 그들만의 신앙 고백서였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비쿠냐 털옷은 권력과 부를 상징했고, 기하학 문양 ‘또 카푸(Tocapu)’는 혈통과 정체성을 새긴 상징이었다. 빨강은 통치의 힘, 초록은 조상의 숨결, 노랑은 풍요의 옥수수를 의미했다. 여인들의 손끝에서 짜인 직물은 신에게 바치는 기도이자 자신을 지키는 방패였다. 그들의 꾸밈은 결코 허영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 권위 앞에서도 굽히지 않으려는 자존, 그리고 자신을 위한 기쁨이 실마다 배어 있었다. 문양은 때로는 사랑의 언어였고, 때로는 외부의 시선을 향한 경고였다. 그들에게 꾸밈은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라는 침묵의 선언이었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나는 문양의 잔상이 마음 깊숙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오늘의 여성들이 떠올랐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립스틱을 꺼내 드는 손끝, 작은 귀걸이를 고쳐 다는 순간의 섬세한 동작 속에도, 잉카 여인들의 문양과 닮은 내면의 선언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의 여성들이 화장과 의복, 장신구로 자신을 꾸미는 이유는 단순히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망, 세상 속에서 더 당당하게 빛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숨 쉬고 있다. 립스틱 하나를 바르는 순간 살아나는 자신감, 거울 속 환한 미소가 되살리는 자존감이 된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라 불리는 현상은 사실, 수천 년 전 잉카 여인들이 실로 짜 넣은 ‘나다움’의 의식이 현대에 이어진 모습이다. 꾸밈은 외양의 변화를 넘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화장은 상처를 가리는 가식이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다. 잉카 여인들이 색실 한 올 한 올로 자신들의 세계를 엮었듯, 오늘의 여성들은 작은 색채와 장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수놓는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선언의 본질은 같다. 삶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세상에 어떻게 드러내고, ‘무엇으로 나를 지켜낼 것인가’의 여정이다. 잉카 여인들은 침묵 속에서 실로 세계를 짰고, 오늘의 우리는 일상의 색으로 자신을 그린다. 거울 앞의 손끝, 박물관의 문양, 그리고 일상의 가장 빛나는 순간마다 수천 년을 넘어 흐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부드럽고도 강렬한 선언이 오늘도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1-13

학습권인가 영업권인가

서울시의회가 고등학생 대상 학원 교습시간을 자정까지 연장하는 조례안을 상정했다. 표면적으로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학습권’이란 말은 허울뿐이다. 실제로 보호하려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원이다. 아이들의 권리가 아니라, 사교육 시장의 ‘영업권’을 지키려는 시도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는 집단이다. 한국 청소년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 OECD 평균(6.5시간)을 훌쩍 웃돈다. 수면시간은 반대로 가장 짧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주중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29분이었다. ‘자정학원’이 허용되면 이는 더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은 자정에 귀가해 다음 날 새벽 다시 학교로 향해야 한다. 삶의 리듬은 무너진 지 오래다. 조례안은 ‘공부하고 싶은 학생의 자유를 막지말자’고 주장한다. 이것이 자유인가. 실제로는 학원 경쟁이 치열해지고 학생과 학부모가 경쟁의 수요자로 내몰릴 뿐이다. 어느 학원이 문을 열면 옆집 학원도 열 수밖에 없다. 모두 자정을 향해 달리게 된다.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강요된 참여이며, ‘학습권’이라는 미명 아래 시장의 논리가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구조다. 가정은 설 자리를 잃었다. 늦은 퇴근길, 아버지는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본다. 어머니는 학원 일정표를 붙들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밥상은 공허하고 대화는 짧아졌다. ‘가족 단위의 시간’은 기억과 기대로만 남았다. 주말마다 아이들은 모의고사를 보고, 부모는 피곤에 지쳐 침묵한다. 어느새 ‘함께 저녁을 먹는 가족’은 어디에도 없는 사치스러운 표현이 되었다. 정치권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보다 제도적으로 굳히려 한다. ‘더 공부할 수 있게 하자’는 구호는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학원업계의 이익을 보장하는 결정이다. 학원은 매출을 늘리고, 정치인은 ‘교육기회 확대’를 자화자찬할 것이다. 그런 대가로 사라지는 것은 청소년의 수면과 가족의 저녁, 사회의 휴식과 공동체의 건강이다. 교육은 인간을 지키고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 지금 교육정책은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의 도구로만 기르려 한다. 학교도, 학원도, 정치도 ‘더 오래, 더 많이’만 외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 오래 공부할 권리’가 아니라 ‘편안하게 쉴 권리’다. 생각할 틈과 멈출 여유, 가족과 함께 즐길 시간이다. 다른 나라들은 반대로 움직인다. 일본은 ‘야간학원학습’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의 치안과 청소년의 수면권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미국이나 핀란드 등 나라에는 사교육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교육을 충분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오후 3시 이전에 학교를 마치고,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온 저녁을 보낸다. 그런 결과, 학력 격차는 오히려 줄고 청소년 우울증 등 부정적인 통계수치는 OECD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자정까지 불을 밝히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꿈을 꿀 수 있을까. 상생과 경쟁 가운데,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어느 켠일까. 교육의 본질이 살아나려면, 학원의 문이 아니라 가정의 품이 열려야 한다. 나라의 품위가 올라가려면, 가정에서 쌓이는 교육적 가치에 꽃이 피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건강해 지는 첫 걸음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1-12

단풍콩잎-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도 죽지 않음으로

단풍콩잎 만드는 법을 배운다 어머님이 이제 늙으셔서 더 이상 얻어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반찬은 물러설 수 없다 연습을 거듭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맛의 행방을 추적한다 불가하다, 문득, 이게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에 도달하기 위해, 단촐한 여섯 식구 입맛의 테두리에 갇힌다 해도 그것이 세계였다 손과 혀에 일찍 탁마(琢磨)된 가없던 시절, 어머니 세월의 고행(苦行)를 해독(解讀)하는 시간, 짓이긴 마늘과 분쇄된 매운 고추, 슬쩍 손길 더하는 알싸한 제피가루, 그리고 정제된 멸치액젓이 나를 벼르고 있다 해 봐라, 너의 완성도는 어디까지인지, 차라리 사 먹고 말자고 대항한다지만 그래도 미련은 태산처럼 남는다 지쳐 냉장고에 기대에 천장을 바라보며 사람의 내공(內功)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근기(根氣)로는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꼬라지의 변방이다 흉내에 치장된 껍데기의 맛만 볼 뿐, 그런 그 삶이,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멀지만 본질에 향하는 삶, 의미가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단풍콩잎 하나로도 미래를 지배하므로 우리는 굴종해야 한다, 다만 내가 잘 살길 바란다, 어렵겠지만. ……. 간장에 박아둔 노란 콩잎을 꺼내 멸치액젓을 잘 발라 며칠 묵혀 두었다가 양념해서 먹으면 그보다 더한 반찬은 없다. 도저히 어머니를 이길 방법이 없다. 세상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나는 그것을 노린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1-12

간장종지

기분 좋았던 술자리가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조곤조곤 말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간다. 우리 앞에 서 있던, 나보다 열 살쯤은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른한 행복감으로 끝나야 할 술자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퇴근 시간, 남편이 술이 고프다며 데이트를 청했다. 데이트를 하자는 말에는 다른 곳에서는 내놓지 못한 뭔가가 있다. 마침 나도 할 말이 많은 터라 반가웠다. 집 앞에 새로 개업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를 머금은 하늘이 어둠과 함께 낮게 깔렸다. 안주를 저녁삼아 술을 마셨다. 서로 소주잔을 채워주며 이런저런 일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채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주가 떨어졌다. 오징어 튀김을 주문한 게 화근이 되었다. 푸짐하게 담긴 갓 튀겨온 오징어와 고추는 금방 새 옷을 갈아입은 듯 향긋했다. 튀김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조금 풀렸다. 연신 맛있다는 말을 하며 주고받은 술잔에 취기가 제 먼저 올라앉았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응석부리듯이 일러 바쳤다. 평소 인품 있어 보이던 그가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인지 몰랐다느니 젊은 사람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며 고객의 험담을 주절주절 내뱉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직 튀김이 반은 더 남았는데 간장이 바닥을 보였다. 아주머니를 불러 간장종지를 내밀자, 그녀는 셀프라면서 간장이 있는 곳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남편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지금까지 고추장 종지도 앞 접시도 두 개씩 가져다 줬으면서 왜 간장은 한 개만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사람이 두 명이면 당연 간장도 두 개라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아주머니는 그것은 원래 하나 나오는 거라며 그 이상은 손님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며 잘라 말했다. 작은 눈을 부릅뜨는 남편을 달래고 나는 얼른 일어나 아주머니가 손짓한 곳으로 갔다. 손바닥에 작은 종지를 얹고 걷는 걸음걸이에 간장이 출렁거렸다. 조심조심 걸었는데도 두어 걸음을 앞두고 그만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른 휴지로 닦으며 고개를 들자, 남편의 더 구겨진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시 아주머니를 불러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온갖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돋우는 그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닌 일로 분위기를 망치는 남편이 어이가 없었다. 허둥거리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그는 몇 번이나 우리 사무실에 왔다. 필요한 서류와 은행 일처리 준비물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확인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막상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 그는 서류 하나를 빠트리고 왔다. 일이 꼬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밀었다. 낮에 그 남자에게 당한 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는데, 내 남편이 간장 한 종지 때문에 언성을 높인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남편과 아주머니 사이에서 몇 마디만 잘하면 웃음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내 발이 슬쩍 아주머니 쪽으로 기울었다. “이 식당은 원래 그렇게 한다잖아요.” 날이 선 내 말투에 남편은 ‘원래’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이야기는 점점 원론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작 남편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은 하나도 내놓지도 못하고 술자리가 파장이 되었다. 내게 밀린 남편은 자기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계산대에 서 있는 주인에게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밥벌이의 힘듦이 간장 한 종지로 터져 나온 듯 했다. 나는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남편을 끌고 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그 젊은 남자를 흉 봤듯이 아주머니는 퇴근 후 그녀의 남편에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산적같이 생긴 남자가 간장 한 종지 때문에 말이야.” 세상살이의 피곤한 마음을 간장 종지만큼 밖에 내보일 수 없는 소시민의 일상이 저물어 가고 있다. 종일 벼르기만 하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윤명희 수필가

2025-11-12

늙은 아키

원래 영리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베리는 절대권력 일인자였다. 밥이든 간식이든 산책이든 먼저였다. 그걸 잘 아는 아키는 항상 베리보다 한 발짝 뒤에 있었고, 베리가 먹고 난 후에야 먹는 게 당연한 듯 스스로 이인자를 자처했다. 아키는 그렇게 조용하고 조신하고 양순한 성품이었다. 2년 전 베리가 간 후 아키에게 눈에 띄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혼자 있기를 거부했다. 내가 집을 비운 새 아키가 심한 하울링을 한다는 이웃의 항의 전화에 깜짝 놀랐다. 분리불안 때문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는 꽤 오랫동안 아키와 동행 외출해야 했다. 하울링은 몇 달 뒤 그쳤지만 분리불안은 여전해서 2년이 지난 지금도 껌딱지다. 어디 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안으라며 달려드니 한 손으로 안은 채, 짐을 풀고, 물을 마시고,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한다. 한참 후 내려주면 그제야 몸을 길게 뻗치며 하품하고, 제가 평소 좋아하던 의자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눕는다. 시선은 항시 내게 고정이고 눈은 나를 따라 움직인다. 거실에서 벗어나 제 시야에서 사라지면 벌떡 일어나 따라오니 내 그림자에 진배없다. 예전엔 제 매트에서 혼자서 잘도 자던 아키는 이젠 절대 혼잠하지 않는다. 침대 위 내 발치께에서 잔다. 아무리 밀쳐도 요지부동이다. 때로 몸이 괴로워 안방에서 내쫓으면 방문 앞에서 시위하듯 서성이다가 남편 발에 머리를 묻고 자기도 하지만 흔한 풍경은 아니다. 아키도 많이 늙었다. 13살이 훌쩍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80 노인이라 입 주위와 귀 끝은 흰색으로 바뀌었고 등덜미엔 빠진 털이 다시 나지 않아 옷 입혀 가려줘야 할 정도다. 작년 겨울 꼬리에 자그마한 혹이 생겨 수술도 했다. 치석 제거하면서, 이를 4개나 뺀 후부터는 딱딱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열심히 이를 닦아 주는 데도 며칠 전 또 두 개의 이가 흔들려, 곧 빠질 것 같다.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은 뿌옇다. 노화로 인한 핵경화증이라 시력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언젠간 앞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만 는다. 노인성 투정도 늘었다. 지난주 남편과 둘이 중국엘 갔다가 5일 만에 왔다. 평소 같으면 반가워 격렬하게 달려들었을 아키가 멀찌감치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까지 한다. 단단히 삐친 듯, 또는 크게 시위하듯 단식투쟁까지 한다. 돌봐준 며느리에게 얘기했더니 밥도 잘 먹고 잘 놀았다며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며칠 지난 후에야 노여움이 가셨나 평소대로 돌아왔다. 대신 껌딱지 증세는 더 심해졌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면 확인 후 거실의 제 의자로 올라가곤 하는데, 중국행 이후부터는 내 발 아래 의자에 바싹 붙어 앉는다. 방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워 노인에겐 버거울까 방석을 내줬더니 슬그머니 올라가 몸을 말고 눕는다. 지금도 내가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니 천천히 고개 들어 동그랗고 뿌연 눈동자로 눈맞춤을 하곤 다시 머리를 가슴속에 말아 넣는다. 며칠 후 3일간 또 집을 비우고 아키는 며느리집으로 보내야 할텐데 어쩌나 심란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1-12

테니스 엘보는 팔을 쉬게 해야 낫는다

테니스 엘보는 팔꿈치 바깥쪽 즉 외측상과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운동선수에게 생기는 병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일상생활에서 팔을 반복적으로 쓰는 모든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다. 컴퓨터 작업, 스마트폰 사용, 요리·설거지, 빨래, 아이 돌보기 등 팔 근육과 힘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동작이 원인이다. 이 부위의 근육이 반복적으로 수축·이완되며 미세 손상이 누적되면 염증과 부분 파열이 발생해 통증이 지속된다. 증상이 심해지면 팔을 들거나 문을 여는 동작에서도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테니스 엘보 치료의 첫 번째 원칙은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다.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 계속 팔을 쓰면 염증이 가라앉을 틈이 없다. 팔꿈치뿐 아니라 어깨, 목, 등까지 근육이 연쇄적으로 긴장하며 통증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단순히 팔꿈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적인 근육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이다. 우선 치료는 약침을 위주로 해서 치료를 한다. 특히 태반약침은 손상된 힘줄의 재생을 촉진하고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며 세포의 회복 능력을 높여준다. 태반과 초음파 가이드를 이용하면 염증이 생긴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어 주입할 수 있으므로 통증이 빨리 잡히고 재생 효과도 높아진다. 필요할 경우 추나 요법으로 경추와 어깨, 견갑골의 정렬을 바로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목이나 어깨의 불균형은 팔꿈치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어 회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목 어깨 긴장이나 자세 불균형이 동반되어 있다. 이런 상부 체형을 교정해주면 팔꿈치에 가는 힘이 줄어들고 회복이 훨씬 빨라진다. 한약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며 힘줄과 인대를 튼튼하게 하는 약재들로 구성한다. 한약을 약침 치료와 병행하면 관절 주변의 혈류를 개선하면서 손상된 조직의 재생이 촉진되고 통증이 빨리 완화한다. 초기에 붓기와 열감이 심한 경우엔 열을 내리고 순환을 돕는 방향으로 오래된 만성 통증이라면 근육의 깊은 긴장을 풀어주고 기혈 순환을 강화하는 쪽으로 처방을 하면 손상된 힘줄의 회복이 더욱 확실하게 된다. 통증이 줄었다고 안심하고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등 팔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사용하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바로 재발한다. 이런 운동들은 팔꿈치의 힘줄에 순간적인 폭발적 긴장을 주기 때문에 회복 중인 조직에 치명적이다. 팔을 쉬게 하고 필요하면 손목 보호대나 팔꿈치 밴드를 착용해 부담을 줄이는 것이 좋다. 일상에서는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손목을 꺾지 말고 가능한 한 양손을 고르게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팔꿈치는 생각보다 섬세한 구조로 되어 있다. 작은 손상이라도 반복되면 회복이 늦어지고 통증이 오래 남는다. 그러나 반대로 적절한 치료와 충분한 휴식만 지켜준다면 대부분은 2~3개월 내에 정상 기능으로 회복된다. 테니스 엘보는 단순한 팔꿈치 통증이 아니라 내 몸이 무리하고 있다는 경고다. 무리하지 말고 치료받고 쉬는 것 그것이 결국 가장 빠른 회복의 길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1-12

與野의 당원중심 공천, 극단정치 부추긴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표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당원이 원하는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의지를 경쟁적으로 밝히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은 만큼 강성지지층을 결집해 선거에 이기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주 전남 나주에서 열린 전남도당 임시 당원대회에서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당원주권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당 대표로 기억되고 싶다”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100% 당원이 주인 되는 경선을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내에서는 현재 1차 예비경선의 경우 권리당원 투표만으로 후보자를 컷오프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곤지암리조트에서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을 열고 지방선거 대비에 본격 나섰다. 민주당은 이달 중 공천 룰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단장을 맡은 나경원 의원은 최근 전국 광역 의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당 연수에서 “선거 때마다 우리가 중도 타령해서 망한다고 생각한다. 잘 싸우는 사람, 당에 헌신하는 사람이 공천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장동혁 대표도 “누구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사를 내보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했다. 당 지도부 모두 당에 대한 충성도(기여도) 중심의 공천 원칙을 시사한 것이다. 장 대표가 그간 강조해온 공천 키워드도 애당심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 들어 공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주 들어 사고 당협 후보자 심사와 전국 광역단체장 간담회 등을 통해 조직 정비에 나서는 한편, 지도부는 현안 점검으로 민심 잡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당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인 정희용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서울시당 워크숍에서 “철저히 당을 위해 당의 입장을 국민께 설명할 수 있는, 당을 대변할 수 있는, 강한 애당심을 가진 당협위원장이 선정될 수 있게 하겠다”며 ‘당심(黨心)’ 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야가 당 지도부의 주장처럼 ‘당원중심’ 공천 룰을 확정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는 ‘극단정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공천무대가 강성지지층 중심으로 짜여지면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연장선으로 변질되고, 양 극단적인 후보를 공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당심을 중심으로 공천할 경우, 각 후보들도 권리당원 확보에만 혈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지역민을 위한 공약·정책은 뒷전이 되고 지지 당원 수만 겨루는 선거로 전락할 수 있다. 보통 집권 1년 차 지방선거는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힘이 강성지지층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면 대구·경북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국민의힘이 서울과 부산만 사수해도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전통 지지층조차 등을 돌린 상태에서 중도층 표심을 잡지 못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국민의힘이 중도층 민심을 얻으려면 극우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그리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한동훈·유승민과도 손을 잡아야 외연 확장이 가능해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1-11

다카이치 총리의 파격

월급 1000만원을 반납하고 새벽 3시에 일하러 국회에 출근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수많은 정치인을 지켜보아왔지만 우리 국민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아마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지난달 취임한 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의 파격 행보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면서 그는 “워라밸이라는 말을 버리겠다”고 했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할 것”이라는 말로 정치적 의욕을 과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총리 취임 기자 회견에서 또 한 번 파격적 발언으로 뉴스의 초점이 됐다. 총리와 내각 각료의 급여가 의원의 세비를 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총리 직무수당으로 받는 약 1000만원의 급여를 반납하겠다는 뜻이다. 정치인 스스로가 급여를 깎는 과감한 용기에 정권 지지율이 82%로 고공행진이다. 소수 정당과 손잡고 겨우 총리직에 올라 단명 정권이 될 우려도 제기됐지만 현재 그 자신과 정권 지지율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의 파격은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의회에서 사용한 볼펜까지 불티나게 팔리게 한다. 정치인이 잘하면 그것이 팬덤현상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 일례다. 월급을 스스로 깎고 새벽 3시에 국회에 나와 일을 하는 정치인에게 국민이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념과 정치적 이익 관계에 매몰돼 싸움만 하는 우리 정치와 비교해 볼 때 신선함 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일찍 한국 정치를 4류라 말했다. 그 4류가 지금도 4류의 티를 벗지 못한 것 아닌가. 다카이치 총리 같은 파격이 우리 정치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1

국제경영과 APEC 기능

세계 경제는 경쟁과 협력이 오고 간다. 국제경영은 국가 간의 경제, 문화, 정치적 차이를 고려하여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창출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경영 활동을 말한다. 제품, 기술, 인재,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에 글로벌 시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이다. 국제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문화적 통찰력이다. 각국의 가치관, 소비 패턴,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현지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 민첩성(Agile SCM)이다. 자국 중심이 아닌 다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생산, 물류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셋째, 기술과 혁신력이다. AI 인공지능, 친환경 기술, 디지털 전환 등 혁신 역량이 글로벌 경쟁의 본질이 된다. 넷째, 윤리와 지속가능성이다. 단기 이익보다 인류, 지구, 미래를 고려한 경영이 장기 신뢰를 형성하고 시너지를 만든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1989년에 설립된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로, 무역 자유화, 투자 촉진, 경제·기술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아태 지역의 무역·투자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회원국의 공동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관세, 비관세 장벽을 낮춰 기업 간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여 무역장벽 완화와 시장 개방을 촉진하고, 상호 협력을 통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 간 격차를 줄여 인류사회 공동발전을 추구한다. 단순한 무역 기구를 넘어 디지털 경제, 기후 대응, 공급망 안정 등 새로운 이슈가 생성될 때 협의를 통해 협력해서 극복해 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자국 이익을 위한 무분별한 관세 폭탄은 글로벌 자유무역의 핵심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로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고, 자국 산업 보호 명분과 단기 고용 안정 효과는 있으나, 높은 관세로 인해 미국 내 물가 상승, 상호 보복 관세로 글로벌 신뢰 저하, 무역 비용 급증, 경제 블록화, 분열 가속화 등으로 자국 보호 무역은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초래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국제경영은 ‘이익의 전쟁‘에서 ‘가치의 공진화(共進化)’로 가야한다. 기후변화와 탄소저감 등은 국가간 공감대 형성, 협력과 노력 없이 극복하기 어려운 지구촌 공동의 미션이다. 관세는 타국을 압박하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아니라, 관세를 나누는 것으로 신뢰를 잇는 공동 발전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기술, 데이터, 탄소 정책도 신뢰를 기반으로 투명한 협력 구조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국제경영의 성공은 APEC이 추구하는 자유, 협력, 상생의 질서 위에서 지속 가능하다. 트럼프식 관세 폭탄은 일시적 자국 이익을 줄 수 있지만, 국제 신뢰를 무너뜨리고 혁신의 생태계를 훼손한다. 인류 삶의 질을 생각하는 가치관이어야 한다.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에서 열린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밑거름이 되어, 돌아가되 정상으로 가는 바른 무역 질서의 길을 기대한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파괴가 아닌 상호 성장의 경쟁이 글로벌 경영의 새 질서가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1-11

예술활동과 뇌 건강

비로소 가을이 왔나 싶더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늦게 찾아온 가을이 잎새를 물들일 틈도 없이, 산간에는 벌써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시간과 계절은 그 변화의 속도로 우리를 놀라게 하며, 덧없는 순간의 흐름을 새삼 일깨워준다. 광대한 시간의 속도는 변함없지만, 날씨의 변화에 따라서 계절은 빠르거나 늦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겠지만, 무엇인가 해야 할 일들이 많고 바빠서 잠시라도 여유가 없다거나 한가지 일에 몰입해서 정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움직이고 파고들며 궁극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죽했으면 “바빠서 아플 시간조차도 없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일까? 굳이 바쁘지는 않더라도 다방면에 활동, 교류하고 무엇인가에 몰입해서 집중적으로 일을 하거나 창작활동을 한다는 것은 흔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이다. 나이가 들더라도 누군가를 계속 만나서 대화, 소통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무엇인가 추구하고 창작하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예컨대 일상 속에서 가벼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한다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시낭송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활동은 그다지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지만 이러한 일련의 작은 움직임과 노력들은 자신의 신체나 건강, 가정, 사회, 문화적인 요소에 큰 변화의 밑거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람의 뇌를 자극하고 근력을 키우는 뇌 활동은 몸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줘 신체와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심지어 단순한 것 같지만 반복적인 동작과 학습, 집중과 몰입은 인지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창의력을 증진, 유지시켜 저속노화와 장수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성찰과 사유를 하면서 명상에서 젖어 들며, 신체를 움직이는 기능적인 동작과 창의적인 행위를 하는 따위의 제반활동은 뇌와 몸의 탄력을 키우고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기제(機制)가 된다고 한다. 특히 창작이 수반되는 각종 예술활동은 음식이나 수면, 운동, 영양 섭취 못지않게 뇌 건강을 위한 ‘영양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신적 에너지를 예술작품에 집중하는 ‘몰입’의 순간은 명상과 같은 효과를 주고, 뇌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는 창작품과 감상이 뇌의 면역력과 회복력을 향상시키며 꾸준한 각도로 자신을 젊고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예술이 단지 즐거움과 위로, 희망, 영감 등의 미적인 체험을 넘어 사회적 인지와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미술관이나 공연장엘 자주 찾고 밤새는 줄도 모르게 애써 창작과 집필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 예술적인 체험과 활동을 즐기는 사람은 눈빛과 표정부터 다르다. 늘 젊고 활기차게 긍정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여 근육을 키우듯이, 창작과 예술활동으로 뇌의 근력을 키우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꾸면 어떨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1-11

문 하나의 거리

한때는 아무렇지 않게 밀고 나가던 문 하나가, 이토록 높은 벽이 될 줄은 몰랐다. 최근 다리 골절로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게 된 뒤 나는 ‘통행 약자’라는 낯선 문턱에 서게 되었다. 세상을 걷는 나의 발걸음만이 느리게 변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 느림을 참아주지 않았다. 며칠 전 한 건물의 문 앞에서였다. 문을 열면 닫히고, 한 걸음 나아가면 또 닫히는 문의 냉정함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목발을 짚은 팔힘과 발끝으로 균형을 잡느라 허우적거렸다. 그때 마주친 여인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도움의 손길 하나 내밀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은 문보다 무겁게 내 앞을 가로막았고, 나는 어색한 미소로 상황을 넘겼다. 도시 문은 닫히는 속도보다 사람 마음이 닫히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날, 교재와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그 일을 도와주었지만 그날은 남편이 오기 전에 잠시 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손에 짐을 들어 맞지 않은 균형으로 목발을 짚고 낑낑대며 짐을 나르는 근처에 나를 바라보던 중년의 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눈은 분명히 나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시선 속에는 어떤 결심도 피어나지 않았다. “도와 드릴까요?” 그 한마디면 충분했을텐데, 그 말은 끝내 공기 중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꼭 도와주길 바랐던 것도 아니었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 곧 회복될 사람이지만 그 짧은 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컸다. 세상에는 아직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문이 닫혀 있음을 깨닫게 했다. 나 또한 그 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의 불편함을 보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의 타이트함을 이유로 모른 체한 적은 없었을까. 이 사회의 냉담함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씩 무뎌진 나의 마음과 우리 모두의 문제는 아닐지. 우리의 일상은 효율과 속도에 길들여져 타인의 느림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결과 정서적 부재가 사회의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기술이나 제도의 결핍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이 약해진 탓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닫혀 있던 것은 문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수업을 하기 위해 만나는 아이들은 나의 목발을 대신 챙겨주었고 물을 떠다 주며 “선생님 괜찮아요?”하고 물어주기도 했다. 순수한 배려는 계산도, 시선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에게 배운대로, 학교에서 배운대로 불편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기어이 짐도 들어주며 마냥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미소가 따뜻했다. 그들은 세상의 인정(人情)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가끔 있지만 정작 어두운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그래도 세상이 모두 차가운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목발을 짚고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은 굳이 내려서 문을 열어 주고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서성일 때 한 중년의 남성이 아무 말 없이 문을 잡고 서 있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행동은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한 배려 속에는 언어보다 깊은 인간의 온기가 배어 있었다. 세상은 무심과 냉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남의 불편함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가 사회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자의 눈으로 볼 때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절망 대신 희망을 본다. 무심함이 전염되듯, 따뜻함도 누군가의 마음에서 다른 이의 마음으로 옮겨 다닐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곧 깁스를 풀고 다시 두 발로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나에게도 값진 경험이었다. 세상은 늘 건강한 보행자의 속도로 돌아가지만 그 사이에는 걸음이 느린 이들의 숨결이 있다. 문 하나를 열어주는 손길, 그 사소한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그 문 앞에서 멈춰 선 사람으로 살 것인가. 혹은 문을 잡아주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이제 나는 그 질문을 나의 삶 한가운데에 세워두려 한다. /김경아 작가

2025-11-11

김건희와 가방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권자의 곁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이른바 ‘친인척 비리’로 정권 자체가 흔들리거나 궤멸하는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봐왔다.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보자.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도 없다. 대통령의 형이 국정에 개입한다는 의심을 받고, 아들이 인사와 이권을 좌우한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아내가 월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하면 그 정권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예외는 없었다. 현재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는 둘 모두 감옥에 있다. 받고 있는 범죄 혐의가 적지 않고 관련된 재판이 수두룩하다. 향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둘 모두 오랜 시간 영어의 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영부인이었던 김건희 씨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는 그 사례가 적지 않다. 그것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국민들은 혀를 차며 놀란다. “받지 않았다”고 수차례 부정했던 명품가방이 실상은 통일교측에서 김건희 씨에게 넘어갔음이 최근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고, 그 이전엔 찾아간 방문객으로부터 또 다른 고가의 가방을 받는 장면이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망신을 당했다. 그뿐 아니다. 지난 주말엔 민중기 특검팀이 김건희 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명품가방과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 부인이 보낸 감사편지가 발견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쯤 되니 “비싼 가방 챙기려고 영부인 됐냐”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공자는 권력자 주변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하는 게 ‘삼가는 마음’이라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언행을 조심하지 않은 김건희 씨의 어제가 오늘의 치욕을 만들었다. 모두 자업자득. 누굴 탓하겠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10

오만한 여당 vs 무능한 야당

‘가을은 성찰의 계절’인데 권력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은 성찰할 줄 모른다. 여당은 오만하여 폭주하고, 야당은 무능하여 헛발질이니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표류 중이다. 국민을 빙자하여 개인적·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정략적 술수가 갈수록 교활하다. 먼저 오만한 여당의 정치행태를 보라. 당 대표 정청래는 “대통령도 갈아치우는데 대법원장이 뭐라고?”라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사법부를 겁박하며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있다. 여당은 정치적 목적으로 대법원장 청문회를 강행하는가 하면, 국감을 핑계로 대법원장을 불러놓고 모욕했다. 이는 “선출권력(국회·정부)이 임명권력(법원)보다 서열이 높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과 동일하며,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왜곡하는 선출권력의 오만이다. 게다가 사법개혁을 빙자한 입법폭주도 심각하다. 여당은 선거법 개정, 대법관증원, 법관평가제, 재판소원제 등을 야당의 반대와 위헌 우려에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른바 ‘이재명 면소법(免訴法)’이라고 비판받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이미 통과시켰고,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고 ‘법관평가제’를 도입하여 사법부를 장악하려한다. 대법원 확정판결 후에도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재판소원제’는 ‘사실상의 재판 4심제’로서 위헌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장기집권과 대통령의 퇴임 후 재판에 유리한 환경조성에 혈안이다. 정책의 초점이 ‘국민의 삶’이 아니라 ‘정권의 안위’에 있으니 여당의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한편 무능한 야당의 행태는 또 어떤가? 지난 3월 개신교 집회에서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강변한 장동혁이 당 대표가 되자 내란수괴 혐의로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한 것은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라”는 민심과 싸우려는 어리석음이다. 당내에서도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처사”(김재섭의원), “당을 나락으로 빠뜨린 행위”(정성국의원) 등의 비판이 거세다. 오죽하면 봉은사를 찾아간 당 대표에게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야당이 건강해져야 한다.”고 하면서 “정치는 계산이 동반돼는 것이니 현명하고 지혜롭게 계산을 잘하라”고 당부했겠는가? 당 대표의 판단력이 이처럼 한심한데 중진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은 길을 잃고 헤매도 중진들은 제 살길 찾기에 바쁘다. 이들은 대부분 영남출신이니 변화에 둔감하고 기득권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PK가 이탈 중이어서 멀지 않아 TK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전한길 같은 극우세력에 휘둘리면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이 돌아선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이런 판단력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혁신을 통해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이처럼 ‘여당은 오만’하고 ‘야당은 무능’하니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나라 주권자의 운명이요 책임이다. ‘진영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선 주권자의 ‘공정한 회초리’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1-10

좋은 글 퍼 나르기는 이제 그만

책이나 유튜브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어서 지켜야 할 3가지’. ‘만나면 안되는 유형의 사람들’, ‘부자들의 습관’, ‘고귀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 등등. 대부분 그럴듯하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비슷하면, ‘그래 맞아’ 하지만, 다르면, ‘뭐 꼭 그래야 하나’라고 슬쩍 기분이 나빠진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냥 소음 정도로 생각한다. 삶이 한마디로 정의될 수도 없거니와, 생각 아닌 감정으로 그 글을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음 중,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대표적인 경구로,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일단, ‘입을 닫아라’는 말의 뜻은, ‘나이 들어 말이 많으면 안 된다’라는 것일 테고, ‘말이 많으면 쓸데가 없다’는 속뜻이 있다. 게다가 나이 든 사람은, ‘나이를 권위로 내세우는 경향’까지 있다는 것까지 슬쩍 올려 두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말 많은 것 자체가 ‘그냥 꼰대 짓’이라는 게다. 그러면 반대로, 젊은 사람은 시종일관 떠들어도 되고, 쓸데없는 말을 해도 되고, 권위를 내세워도 된다는 것인가. ‘입 닫아라’라는 말은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나이라는 단순한 숫자적 가치로 환원한 위험한 통념이다.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자신을 세계 속에 드러내는 형식이다. ‘인간은 언어 속에 존재한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강요된 침묵은, 존재의 집에서의 추방이자, 인간 실격 선언이다. 여기에 대하여,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갑을 열어라’라는 말은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돈이라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로 환원한 위험한 통념이다. 이 말속에는, ‘노인이 존중을 받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다. 열 지갑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막상 지갑이 있다고 치자. 무턱대고 지갑을 열어야만 하는 당위성은 누가 결정한 기준인가. 노인이 존중받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 사고는, 세대 간의 관계를 ‘결제 거래’로 축소하고, 사랑, 경험, 지혜 같은 비가시적 가치를 제거한 위험한 사회적 언어이다. 하찮은 경구 하나 때문에 자신의 말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발적 침묵을 학습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이에게 맞는 옷은 결국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조언들은 맥락 없이 윤리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좋은 글의 유통은, 사유의 과정은 생략되고 감정적 동조만 남는 소위 ‘생각 없는 공감’의 현장이다. 타인의 말은, 나의 말을 설명하는 수단 정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인용은 사유의 시작이 되어야지,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카톡에서 좋은 글을 퍼 나르는 사람은, 펌글을 통해 은근히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 과시하는 속내가 있다. 내가 감동 받았다고 상대가 감동 받을 거란 착각은 금물. 예의에도 어긋날 수 있으니 퍼 나르기는 이제 그만. /공봉학 변호사

2025-11-10

진짜와 가짜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세상이다. 인터넷 모바일이 일상화된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는 정보의 홍수에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다. 진짜는 그저 사실일 뿐이지만, 가짜는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가급적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만들어진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더 좋아 보이는 까닭이다. 문제는 그렇게 생산·유포된 거짓 정보가 단순한 오해나 해프닝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넘쳐나는 각종 정보들의 진위를 검증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상에 떠도는 거짓 정보는 허위로 판명된 뒤에도 그것을 믿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번 믿은 정보는 잘 바꾸려 하지 않고, 오히려 믿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이야말로 가짜뉴스가 작동·확산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더 큰 문제는 다량의 거짓 정보가 상업적·정치적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 세력은 여론을 왜곡해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한다. 이렇게 조작된 정보는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들 편을 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진실에 대한 자유로운 판단’일진대, 그 판단의 기반이 오염된다면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선거나 정치적 의사결정이 ‘가짜뉴스’에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SNS를 통한 여론조작, 인공지능을 이용한 딥페이크 영상 등은 이미 심각한 현실이 되었다. 갈수록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럴수록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즉 정보판별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진실과 거짓을 스스로 가려내지 못하는 사회는 언제든 불의한 세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결국 파탄을 자초하게 된다. 정치권의 가짜뉴스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 상호 간의 신뢰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반을 흔들며, 사회를 불안과 혐오로 몰아넣는 독소다. 진실이 설 자리를 잃으면, 공동체의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해지고, 결국 극단과 분열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 민주사회에서 언론과 교육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거짓을 걸러내는 공적 필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교육도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거짓에 현혹되지 않는 분별력을 갖출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가짜’와의 싸움을 단순히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진실이 무너진 사회에서 밝은 미래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민주시민의 기본 자질이고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1-10

울릉도 저동항, 스파보다 중요한 건 ‘어민의 땀’

“오징어배 불빛이 다시 저동항 바다를 비추려면, ‘스파보다 중요한 건 어민의 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울릉도 저동항이 해양수산부가 주관한 ‘2026년도 어촌신활력증진사업’ 공모에서 최종 선정됐다. 전국 4개소만 뽑힌 어촌경제도약형 사업으로, 낙후된 어촌의 생활·경제·관광 기반을 동시에 강화하는 핵심 어촌 재생 프로젝트다. 특히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는 ‘해양심층수 스파·찜질복합센터’는 사계절 운영 가능한 체류형 해양 힐링 시설로 주목받고 있다. 울릉군수협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으며, 향후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 하지만 화려한 개발 계획 뒤에 놓인 현실은 냉혹하다. 밤마다 오징어 불빛이 가득하던 저동항은 이제 고요하다. 급격한 어획량 감소와 유가 상승, 인건비 부담으로 어민들의 생계는 벼랑 끝이다. 한때 활기로 넘쳤던 항구 상권은 텅 비었고, 어판장은 썰렁하다. 이런 현실에서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선정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낙후된 어항 정비를 넘어 체류형 관광으로 울릉 경제의 새 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광객이 늘어나면 어민도 함께 웃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불투명하다. 스파와 산책로, 바다마당 같은 시설은 분명 지역 이미지를 바꾸겠지만 ‘시설 중심 개발’이 어민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활력은 또다시 외부에 머무를 뿐이다. 과거 정부사업 중 상당수가 ‘관광 인프라’만 남기고 지역 일자리나 소득 창출과는 괴리된 채 끝난 전례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울릉도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관광지 조성이 아니라 어업과 관광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순환경제 모델이다. 예컨대 해양심층수 스파가 지역 어획물 판매나 식음업,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된다면 관광객의 소비가 어민의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신활력’이다. 또하나의 과제는 청년 어업인 육성과 귀어 정착 지원이다. 고령화로 어업 인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어촌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단기 시설사업이 아닌 장기적인 인력 양성과 정착 정책이 병행돼야 진정한 지역 도약이 가능하다. 울릉도 저동항의 재도약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행정의 구상과 민간의 투자가 지역민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kimdh@kbmaeil.com

2025-11-10

수연의 선율(Waterdrop)

나뭇잎도 태초에는 울음을 물고 나왔나 햇살이 얼비치는, 비릿한 소리의 핏줄 바람이 너무 흔들어 지느러미를 키웠나 빗물을 타고 올라 천둥 파고를 넘고 허공 저 건너편, 울음을 벗으러 갔나 청동빛, 절 한 채 짓고 추녀 끝을 쳐들고 하늘 수초 무성한 곳, 녹을 닦는 어느 가을 고통과 한 몸 되어 울음의 껍질 벗겼나 찢겨진 지느러미가 풍경 소리를 문다 ―손수성, ‘한 잎의 지느러미’ 전문 (‘피자를 주문하는 저녁’, ‘책 만드는 집’) 풍경은 멈춰 있지 않다. 그 이미지야말로 움직이는 감정 그 자체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실제로 보이는 것은 껍질에 불과할지 모른다. 누구든 무엇으로든 어떤 풍경을 그릴 수 있다. 손수성 시인이 그리는 나뭇잎은 지느러미를 가졌다고 했다. 아니, 키운다고 했다. 이때 나뭇잎을 흔드는 것이 바람일지 모르지만, 지느러미를 키운 건 나뭇잎 그 자신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만의 리듬이 있다. 시인에게 바스라진 나뭇잎의 리듬은 찢겨진 울음이고, 눈빛을 흔드는 것은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불안이다. 그 눈빛에 동요하는 것이 영화라면 어떤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과 초록뱀 미디어상을 수상한 독립영화 ‘수연의 선율’이라면 말이다. 옛 대구 동성아트홀 팬카페의 영화제작 소모임에서 출발한 최종룡 감독의 첫 작품이다. 시를 전공한 감독은 이 영화 역시 아일랜드의 시인 셰이머스 히니 (Seamus Heney)의 ‘철길 가의 아이들(The Railway chidren)’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말(語)들이 반짝이는 빗방울 행낭에 담겨 전선을 타고 여행한다고 생각했다. We thought words travelled the wires In the shiny pouches of raindrops.”(여국현, 역) 2013년에 작고한 셰이머스 히니는 199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시인이다. 이 시의 제목은 에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1905년 소설 ‘철도 아이들’을 인용했다. 1825년 엔지니어 조지 스티븐슨(Feorge Stephenson)의 증기 기관차 ‘로코모션(Locomotion)’이 철도 위를 처음으로 달렸다. 이는 철도를 이용한 최초의 여객 운행이었다. 지식이라는 것과 풍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지만, 전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단어들을 상상할 때 시인은 황홀하다고 말한다. ‘철길 가의 아이들’에서 다시 앵글을 돌려 보면, 홀로 할머니 장례식장을 지키는 13살 수연의 모습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수연은 완벽한 가족이 부럽다. 입양을 목적으로 선율에게 다가간 수연은 점차 학대받는 선율을 아끼게 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카메라는 두 아이를 떠나지 않는다. 단 한 순간도 시야에서 아이들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찍는 감독의 태도였다. 자, 이제 손수성 시인의 선율로 되감아 보자. “나뭇잎도 태초에는 울음 물고 나왔나”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한 잎’은 영화 수연과 선율의 모습과 겹쳐진다. “햇살이 얼비치는, 비릿한 소리의 핏줄”이 완벽한 가족 속에서 사랑받고 싶은 두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 지느러미를 키워가고 있다. “빗물을 타고 올라 천둥 파고를 넘고” 수연과 선율의 마지막 장면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은 채 교차 된다. “허공 저, 건너편, 울음을 벗으러 갔나, In the shiny pouches of raindrops” /이희정 시인

2025-11-10

정권이 끝난 뒤에 재판해야 하나

‘검수완박’이라는 말이 이렇게 그럴 듯하게 들릴 줄은 미처 몰랐다. 민주당은 일찍이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이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검찰은 지난 7일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1주일 전 1심 판결을 받은 다섯 명이다. 피고들은 모두 항소했다. 형사소송법상 ‘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형량이 더 높아질 수는 없게 됐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이 7886억원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고 파악했다. 공사에 끼친 손해도 4895억원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 물린 추징금, 473억원이외에는 회수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 돈은 그들 것이다. 형기를 마치면 떵떵거리며 쓸 수 있다. 그마저 항소심에서 더 줄어들 수 있다. 늘어날 수는 없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에 대해 1심이 ‘액수 산정이 불가능하다’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이를 다시 뒤집을 수는 없다. 김만배 씨는 징역 8년에 추징금 428억원, 유동규 전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징역 8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천만원, 공사전략실에 근무한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과 벌금 38억원 및 추징금 37억원을 받았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형이 더 늘어날 수는 없지만, 줄어들 수는 있다. 추징금도 줄어들 수 있다. 그것조차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에 감형이나 사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 때문이다. 검찰은 이 대통령이 이 사건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보고,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재판을 중단했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현직 대통령이 형을 받을 경우 유죄건, 무죄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배려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결정이다. 그 탓에 법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은 아예 틀어막으려고 안간힘이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집권당이 한 일이라고는 이재명 대통령 방탄 갑옷을 세 겹, 네 겹, 겹겹이 둘러싸는 일이 전부다.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 환송된 선거법 위반 재판을 막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다.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재판을 못하게 강제하는 법안을 준비했다. 거센 반발여론에 밀려 철회했다. 민주당은 거기에 ‘국정 안정법’, ‘국정 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붙였다. 대장동 재판을 겨냥해 ‘배임죄’를 폐지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이재명 대통령 수사를 막기 위해서다. 분리해야 한다던 수사권, 기소권을 이 정부가 임명한 특검에는 모두 부여했다. 강압 수사라고 항변하며, 목숨을 끊는 피의자가 나와도, 자체 조사로 덮었다. 외부 감사도, 견제도 할 수 없는 특검이다. 그 칼날은 모두 정치적 반대세력을 향해 있다. ‘항소 포기’는 그나마 남은 검찰의 기소권마저 빼앗은 셈이다. 수사 검사가 항소를 요구하고, 중앙지검장이 항소를 결정하고, 대검에서까지 항소하겠다고 법무부에 보고했다. 그런데 재판을 포기했다. 수사검사는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항소를 막았다고 폭로했다. 무죄가 자신있다는 이 정부가 정식 재판은 두려워한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 환송’ 같은 일을 미리 틀어막겠다는 속셈이다. 정진우 중앙지검장이 사의를 밝혔다. 항소 포기 하룻만이다. 그럴거라면 부당한 지시에 왜 맞서지 못했을까. 이게 법무부장관의 정상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인가. 항소 요건에 맞지 않다는 법무부의 항변이 야당 정치인에게도 적용될까. 일반 국민에게도 같은 기준을 들이댈까. 어차피 신뢰는 포기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는 정상적인 재판이 불가능하다. 이럴 바에야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동안은, 집권당 정치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무기한 정지시키는 건 어떤가. 정권이 교체된 뒤 수사고, 재판이고, 다시 하는 건 어떤가.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코웃음 치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09

질문하는 인간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늦도록 일복이 많아선지 이번 학기에도 시간강사로 학생들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작품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비교하면서 이모저모 생각하는 수업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덤불 속’, 셰익스피어의 ‘햄릿’,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지바고 의사’,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내가 고른 작품들이다. 요즘에는 조르바를 논의하고 있는데,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마다 신선하게 와 닿는 대목이다. 이미 넘치도록 익숙한 사물이나 관계에서 경이로움이나 신비로움 혹은 경탄을 경험하는 조르바의 놀랄만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진부함이나 밋밋함 같은 감성이 없는 것이다. 21세기 20년대 대학생들처럼 웃음과 슬픔, 환희와 절망 같은 감정이 스러진 세대를 일찍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들이 이 대목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혹은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등굣길에 낯설게 다가온 사물이나 사람이 있는지 묻지만, 그들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거니와,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은 까닭이다. 2019년 겨울 광주에는 눈도 많이 내렸지만, 해가 바뀌도록 전남대 교정에는 꽃이 쉬지 않고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꽃을 보면서 아끼는 후배의 성공적인 항암 투쟁을 기원하곤 했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그는 담도암의 공격을 이겨내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한겨울 눈 속에서 피어난 새빨간 장미를 보면서 후배의 건강을 기원했던 내가 기억에 생생하다. 같은 대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만일 그나 그 여자에게 대상을 낯설고 의미심장하게 대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이 자리한다면, 어떤 익숙한 인간과 관계와 사물이라 해도 그것은 언제나 신선하고 날카롭게 영혼을 찔러오는 감동과 경이의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르바는 아들뻘인 화자(話者)에게 툭하면 이런저런 질문 세례(洗禮)를 퍼붓는다. 자신만의 상념과 목적의식에 투철한 화자는 어쩔 줄 모른다. 대상을 새롭게 포착하는 사람은 늘 새로운 문제의식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는 언제나 질문하는 인간이다. 이것을 날카롭게 잡아낸 생화학자가 영국의 찰스 파스테르나크이며, 그 저작이 ‘호모 쿠아에렌스’(2005)다. 인간이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오른 동기를 파스테르나크는 직립보행과 시야 확대, 자유로워진 두 손과 엄지손가락, 언어 소통 능력, 생각과 기억, 추론과 연결된 대뇌 피질 신경세포 등을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하는 인간 (Homo quaerens)’이다.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해소하는데 주력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침팬지의 차이?! 무학(無學)이나 다름없는 그가 지식인 화자를 가르치고, 인생의 비의(秘意)를 일깨워주는 것은 경험뿐 아니라, 경탄에서 발원하는 질문에 기인한다. 묻지 않는 인간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09

일본의 정년 연장

노동계가 65세 정년법의 연내 제정을 촉구하면서 정년 연장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의 입장에 비교적 호의적 태도를 보이고는 있으나 시행과정에 불거질 부작용이 적지 않아 입법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정년 연장은 고령사회 진입과 노인 빈곤퇴치, 연금 사각지대 해소 등을 위해 필요성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청년층의 고용감소와 기업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진통은 불가피하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20년 이상의 준비 과정을 가졌다. 1986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제정하고 이후 94년에 정년 60세를 의무화했다. 2013년에는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토록 조치를 취하면서 13년 동안 기업이 제도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 70세 고용문제도 2021년에 관련법을 다시 개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정년 연장 개념보다 고용확보란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숙련된 고령층 인력을 유지하되 인건비 총액이 폭증하지 않게 함으로써 청년의 고용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개혁에 기업과 사회가 동의함으로써 정년 연장 문제가 저출산·고령화 개선에도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도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노출되는 문제에 대한 사전 준비나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청년 취업난 감소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 일본의 과정을 교훈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09

포항형 빈집 실험 프로젝트

포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우체국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익숙할 것이다. 한때 시민들의 약속 장소이자 도심의 중심이었던 중앙상가와 육거리 일대는 이제 사람의 발길이 드문 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낡은 간판과 ‘임대 문의’ 현수막이 늘어가며, 포항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세월의 흔적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빈집과 빈 건축물은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도시가 스스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여백이며, 시민과 지역이 함께 미래를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최근 한동대학교가 주최한 ‘다시, 육거리(RE:CROSSING)’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중앙상가의 20여 개 빈 점포를 임대해 전시·공연·체험 공간으로 꾸민 이 프로젝트는 대학, 상인회, 예술가가 함께 만든 민간 주도형 도심 재생 모델이다.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 골목 전시로 이어지고, 청년 밴드의 공연이 상가의 불빛을 다시 켜는 장면은 빈집이 단순한 철거 대상이 아니라 도시를 재창조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얼마 전 열린 ‘포항시 빈집 정비 및 관리방안 대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더욱 구체화하였다. 포항은 2019년 기준 노후 공동주택 빈집 수 3,556호로 전국 3위 수준에 이른다. 토론회에서는 “도농 복합도시인 포항은 획일적인 정비보다 지역 맞춤형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충남대 건축학과에서 “멋진 건물보다 살기 좋은 동네가 중요하다”며 빈집을 공유와 휴식의 오픈 스페이스로 조성한 사례도 소개되었다. 이제 포항은 단순히 철거형 빈집 정비사업에서 벗어나 소유주·시민·공공이 함께 관리하는 거버넌스 형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국내외에서는 이미 빈집을 도시재생의 자산으로 삼은 성공 사례가 많다. 일본은 ‘아키야(빈집) 뱅크’를 통해 노후 주택을 청년 창업자나 예술가에게 연결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문화와 기술이 공존하는 ‘이노베이션 허브’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나라 전주의 팔복예술공장은 버려진 산업단지를 예술공간으로 바꾸어 시민의 발길을 되돌려놓았다. 이제 포항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포항형 빈집 실험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지금의 빈집 정비사업은 공영주차장이나 임시 텃밭 조성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상상력을 더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예술·공유공간으로 재탄생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민·관·학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형 빈집 프로젝트를 구축해야 한다. 한동대에서 주최한 ‘다시 육거리’처럼 지역 대학과 청년, 기업이 협력해 쇠퇴한 원도심에 창의적 활력을 불어넣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정부의 ‘뉴:빌리지 사업’이나 ‘범정부 빈집 관리계획’을 포항 실정에 맞게 접목해 철거보다 관리·활용 중심의 도시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빈집은 도시의 상처가 아니라, 새로운 실험의 무대다. 포항의 빈집이 다시 빛을 켜고, 사람의 온기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시민·대학·기업이 함께하는 ‘포항형 빈집 실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1-09

유권자들의 눈은 언제나 당신을 향하고 있다

내년 6·4 지방 선거가 7개월 정도 앞두고 전국 각 시·군이 벌써부터 선거의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렘과 희망찬 기대로 가득해야 할 이 소중한 시기에, 때로는 ‘내가 앉은 이 자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일부 현직 후보자들의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비단 특정 자치단체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부여받은 소중하고 막중한 책무를 잠시 잊은 이들에게, 우리는 이 엄중한 시기에 그들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본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고자 한다. 우리 속담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처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진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는 권력이나 부, 명예 등 모든 일시적인 것들에 적용되는 흔들림 없는 진리이며, 모든 공직 또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자치단체장이라는 자리 역시, 한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 오직 유권자들이 잠시 부여한 소중한 권한이자 동시에 엄중한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각 시·군 자체단체의 경우, 재선·3선에 도전을 공론화 하며 오랜 시간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자치단체장의 노고는 분명 우리 모두의 뜨거운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때때로 ‘현직’이라는 이름 아래, 유권자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존재감만을 과시하려 하거나 오직 다음 선거만을 위한 근시안적인 행정에 몰두하는 모습은 유권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따뜻하고 유능한 리더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자리는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잊을 때, 리더십의 빛은 서서히 바래고 군민과의 소중한 신뢰는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공직은 본질적으로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자리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회의 그늘진 곳에 소외되는 이웃 없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자치단체장에게 주어진 가장 참된 역할이자 사명이다. 처음 그 자리에 오르겠다고 뜨겁게 다짐했던, 열정과 순수함이 가득했던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유권자들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예리한 눈으로 당신의 모든 언행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형식적인 의례와 상투적인 발언, 혹은 일방적인 독백으로 귀한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진심으로 유권자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는 지난 날의 공적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지역을 어떻게 더 밝고 행복하게 이끌어갈 것인지 그 비전을 유권자들과 투명하게 공유하고, 그들의 현명한 선택을 겸허히 구하는 진정한 소통과 약속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천군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자치단체가 미래를 향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 중대한 시기, 자치단체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권세를 뽐내고 자랑하는 오만한 태도가 아닌, 오직 유권자들의 삶을 최우선에 두는 확고한 철학과 굳건한 신념이다. ‘내 자리’가 아닌 ‘우리의 지역’, ‘나의 영광’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향한 나침반이 흔들림 없이 가리킬 때, 비로소 군민의 깊은 신뢰를 얻고 지역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진정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언제나 냉정하며, 동시에 지역의 밝은 미래를 향한 따뜻한 기대감을 담고 있다. ‘영원한 자리’는 이 세상에 없지만, ‘영원히 기억될 봉사’는 분명 존재한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모든 후보자들이 겸허하고 겸손한 자세로 유권자들을 마주하고, 지역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위한 진솔한 노력과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5-11-09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명예훼손

버추얼 아이돌은 ‘가상 아이돌’ 혹은 ‘사이버 가수’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캐릭터로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아이돌로, 아바타로 활동하기 때문에 외모와 이름 등 모든 것이 가상이다. 하지만 버추얼 아이돌도 목소리만큼은 실제 사람의 목소리다. 활동하는 캐릭터 뒤에서 실제 노래하는 본체 가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버추얼 아이돌은 이제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고 콘서트 티켓 수만 장이 오픈하자마자 매진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은 모든 공개적 활동이 가상 캐릭터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사생활 침해 피해나 멤버의 건강 이슈가 없어 활동이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버츄얼 멤버에 대해 지어낸 사실을 퍼뜨리고 모욕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버추얼 아이돌을 향한 악플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될 수 있을까? 형사 범죄의 피해자는 자연인과 법인만이 가능하다. 누군가 고양이에 대해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내 반려견을 모욕한다고 해도 피해자가 없는 행위이므로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고소할 수 없다. 버츄얼 아이돌도 마찬가지이다. 플레이브의 멤버 누군가에 대해 키가 작다, 예전에 누구와 동거했다더라와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고 욕설을 해도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할 수 없다. 버츄얼 아이돌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가상의 존재여서 법률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적 배상 책임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포된 사실의 내용이 가상 멤버 뒤에 있는 본체 가수, 혹은 소속사인 회사에 대한 연결로 인정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헌트릭스 멤버 루미의 목소리가 고음 처리한 기계음이라더라는 사실을 유포한다면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실제 그 목소리를 노래한 가수 이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가 될 수 있고, 루미 목소리를 그런 식으로 방출시킨 바 없는 제작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얼마 전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모욕행위를 본체 가수에 대한 것으로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하급심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A씨는 SNS에 버추얼 아이돌그룹 멤버들의 외모를 비하하고, 이들을 연기하는 실제 인물들을 조롱하는 글을 여러 차례 게시했다. 이에 본체 가수 B씨 등은 A씨를 상대로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이고, 신상이 비공개여서 가상 캐릭터와 원고 사이에 동일성이 인정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메타버스 시대에 아바타는 단순한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용자의 자기표현, 정체성, 사회적 소통 수단”이라며 “아바타에 대한 모욕 행위 역시 실제 사용자에 대한 외부적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라고 하며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버추얼 가수의 활동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다. 악플 피해에 있어서는 권리 주체서에 관한 판단을 너무 엄격히 보지 말고 이번 법원의 판결처럼 피해의 범위를 넓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06

성공한 축제를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삼바 축제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다. 이곳에 뿌려지는 돈만 무려 1조3000억원이라 한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킬까. 리오 카니벌의 최고 매력은 화려한 퍼레이드와 축제를 위해 준비한 춤과 의상이다.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화려한 의상과 춤 그리고 이곳 시민들의 삼바에 대한 열정이 행사를 성공으로 이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리오축제는 브라질 사람의 삶의 기쁨이다. 독일 뮌헨에서 개최되는 맥주 축제 옥토버 페스트는 전통 의식에서 비롯된 축제다. 1810년 바이에른 왕국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100년 이상의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의상과 다양한 독일 요리, 각양각색의 맥주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옥토버 페스트를 본 뜬 축제만 지구촌에 3000개 있다고 한다. 대단한 위용이 아닌가. 이 축제도 숙박, 교통, 쇼핑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1조원을 넘는다. 우리나라에도 한해 1000개가 넘는 축제가 열린다. 그 중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이름만 올렸다가 사라지는 것도 수두룩하다. 축제란 지역 전통의 문화를 승화시키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일종의 공동체 문화행사다. 지금은 공동체 문화와 더불어 경제적 효과도 축제를 여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최근 경북 김천에서 열린 김밥 축제와 이번 주 구미에서 시작하는 라면축제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국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규모는 비록 작지만 평범한 아이템에서 축제의 본질을 발견한 축제로 발전했으니 축하할 만하다. 고객 감동의 축제로 쭉 뻗어나길 바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06

울릉도오징어, 이제는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돼야

울릉도의 바다는 한때 ‘오징어 황금어장’으로 불렸다. 울릉도 주민들의 생계, 울릉도의 경제, 그리고 한 세기 넘는 섬의 근현대사가 오징어와 함께 흘러왔다. 그러나 지금, 그 산업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2000년 1만1000여t에 달하던 오징어 어획량은 최근 4년 평균 447t에 불과하다. 사실상 산업 기반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어(郡魚)’로 지정된 오징어는 한때 울릉도의 수산물 판매액 중 96%를 차지하기도 할만큼 독보적 존재였으나 이제는 지역 경제를 지탱하기는 커녕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왜 이렇게 절대 산업에서 사양 산업으로 바뀌었을까? 김윤배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대장의 분석은 명확하다. 첫째, 동해 표층수온의 급격한 상승이다. 9월에도 27~28도를 오르내리는 수온은 오징어가 머물 수 없는 환경이다. 표층과 중층의 온도 차가 커지며 영양염의 순환이 약화되고, 결국 먹이망 자체가 붕괴됐다. 둘째, 남획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1만 톤을 유지하던 오징어 위판량은, 북한 수역에 중국어선 2천 척 이상이 들어와 싹쓸이 조업을 시작한 2004년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북한 수역과 맞달아 있는 울릉도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제는 ‘감척’과 ‘문화자산화’라는 해법을 찾아야한다. 오징어 자원 감소를 막기 위해선 어선 감척 지원과 어업인 소득 보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징어 어업을 역사·문화 콘텐츠로 승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저동항의 ‘펭귄 얼음공급 구조물’ 보존 논의는 상징적이다. 오징어와 함께 울고 웃어온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오징어역사문화홍보관은 이제 선택이 아닌 시급한 과제다. 울릉도의 오징어는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다. 1910년대 일본인의 이주, 1970~80년대 인구 5만 명에 달했던 호황, 그리고 지금의 몰락까지, 울릉도의 모든 굴곡은 오징어의 흥망과 맞닿아 있다. 이제 오징어 어업은 기후 위기 시대를 버텨낸 지역 어업 기술이자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돼야 할 시점이다. 산업으로서의 회복은 요원할지라도, 문화와 역사의 자산으로 보전할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울릉군민의 상징, 군어(郡魚) 오징어가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지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전은 지금 우리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