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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상의 충격과 우리의 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법을 근거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간 사건은, 오늘의 국제질서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강대국이 자국법을 앞세워 타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용인되는 순간, 국제법은 규범이 아니라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이 장면이 주는 충격은 베네수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와 중국 같은 강대국들에게 이는 불편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유혹이 된다. ‘미국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언제나 국제질서를 무너뜨린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단지 지정학적 분쟁지가 아니라, 규칙의 기반질서가 유지되는지 시험하는 최전선이 된다.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외국 정상의 신병이 다자국제적 합의가 아닌 일방의 법 해석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체제생존의 보증수표로 더욱 굳게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비핵화 담론을 다시 한번 공허한 수사로 밀어낼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실체화되고 구조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의 외교는 점점 더 좁은 외줄 위를 걷게 된다. 미국은 동맹국에 ‘가치적 연대’를 요구하고 중국은 각국에 ‘전략적 자율’을 압박한다.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한쪽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순간, 한국은 외교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중국 방문의 성패는 정상회담의 의전이나 공동성명 문구에 있지 않다. 핵심은 한국이 국제규범과 주권존중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든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침묵하면서 중국의 힘의 외교만 경계한다면, 우리의 외교는 설득력을 잃는다. 중국의 수사에 동의하면서 미국의 압박을 무시해도 우리의 외교는 설 자리를 놓칠 수 있다.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성장해 갈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원칙과 규범이 필요하다. 법과 절차, 다자주의는 약소국의 이상이나 소망이 아니라 존재확인이자 생존전략이다.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제질서는 힘이 아니라 상생과 공영의 원칙 위에 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일관성과 상호신뢰의 출발점을 확고하게 설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에 우호적으로 반응하면서, 동시에 다자외교가 빚어내는 상생과 협력의 틀에 주목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원칙과 규범의 울타리가 작동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어느 편을 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에 서느냐의 문제다. 원칙이 무너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나라는 언제나 우리처럼 경계에 선 나라들이었다. 한국은 지난 수백 년 경험을 통하여 그 운명과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1-07

근육을 키워 통증을 예방하자

우리는 디스크가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무릎 연골이 닳으면 통증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검사 결과에 디스크나 퇴행성 변화가 보이면 그 순간부터 몸을 더 쓰지 않으려 하고 운동을 피하며 아픈 부위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보다 보면 이 생각이 반드시 맞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같은 디스크 소견이 있어도 어떤 사람은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고 어떤 사람은 통증으로 고생한다. 무릎 관절이 꽤 닳아 있어도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경미한 소견에도 통증을 크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근육이다. 근육이 충분히 발달해 있으면 디스크나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이 분산된다. 허리 주변의 코어 근육과 둔근 다리 근육은 척추와 관절을 직접적으로 지탱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조적으로 약해진 부분이 있더라도 근육이 그 부담을 대신 받아주면 통증이 훨씬 줄어든다. 실제로 허리 통증이나 무릎 통증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도 영상 소견 자체보다 근력과 기능 상태가 통증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근육이 단순히 힘만 담당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육이 잘 작동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염증 물질이 빠르게 제거되며 손상된 조직의 회복도 개선된다. 근육이 약해지면 움직임이 줄어들고 관절은 더 경직되며 통증에 대한 민감도도 높아진다. 가만히 쉬기만 하면 통증이 나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무릎 관절염 환자에게서 허벅지 근력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벅지 근육이 약하면 보행 시 무릎 관절에 직접적인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통증이 쉽게 발생한다. 반대로 근력이 충분하면 관절이 닳아 있어도 움직임이 안정되고 통증은 덜 느껴진다. 디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는 사실보다 그 디스크를 둘러싼 근육과 신경이 어떤 상태인지가 통증을 좌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영양 특히 단백질이다. 근육은 운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육은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쉽게 줄어든다. 특히 중년 이후나 만성 통증을 겪는 사람들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근육량이 빠르게 감소하는데 이때 단백질 섭취까지 부족하면 통증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접근은 단순히 아픈 부위를 치료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디스크나 관절의 구조적 문제를 관리하는 것과 함께 몸을 지탱하는 근육을 회복시키고 유지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절한 근력운동과 충분한 단백질 섭취는 통증 치료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치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통증은 단순한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기능 상태를 반영하는 신호다. 디스크가 있고 무릎이 닳아도 근육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통증은 덜할 수 있다. 통증을 관리한다는 것은 몸을 더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이 제대로 쓸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1-07

개인의 결핍에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

며칠 전 SNS에서 흥미 있는 글을 보았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 때 학부모 동반을 아예 금지하거나 부르더라도 딱 한 명만 오라고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편부모 가정, 특히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항의가 빗발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학교를 무균실로 만들어 아이들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성토하면서 심지어는 아동 학대이자 교육 기관의 직무 유기라고 비판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아야 할 권리 따위는 없으니 상처를 딛고 일어설 의무를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을 보자니,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때 일이 생각났다. 강의하러 가야 해서 이웃 엄마에게 교과서를 챙겨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큰애는 두고두고 그 일을 되새기며 원망을 쏟았다. 다른 애들은 엄마가 와서 교과서를 받아 갔는데 자기만 엄마가 안 왔다는 것이다. 큰애는 다른 엄마들은 다 왔다고 하지만 못 온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보니, 아이들 운동회가 내 강의 시간과 겹쳐서 내가 참석을 못 한다면 큰애의 설움은 극에 달했을 것 같고, 그래서 나 역시 운동회에 학부모 참석을 제한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치니 SNS에서 글쓴이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운동회가 가정과 학교가 함께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라는 주장에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하루 같이 뛴다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 다져질 수도 없고, 실제 현실에서는 운동회 참여를 둘러싸고 많은 학부모 임원들이 수고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과 알력은 행사가 끝나도 이어지는 일이 태반이다. 물론 학교가 교육 공동체로서 더 적극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다만, 소수의 결핍과 상처를 덜 느끼게 할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결핍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학부모를 설득하자는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결핍에 상처받는 사람의 아픔을 극복하는 일을 개인의 의지에만 전가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초등학교 1학년 그 작은 아이들이 하교할 때 교과서 여러 권을 한꺼번에 들려 보내지 말고, 입학 직전이든 입학 직후든 별도로 교과서를 받아 가는 시간을 마련해줬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배려해도 결핍을 다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핍을 덜 느끼게 할 방법이 있다면 그런 배려를 하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운동회가 진정한 공동체 활동이 되게 하려면 부모가 학부모 참여를 아예 금지하자고 항의하는 사람을 악성 민원이라고 치부하거나 결핍을 느낄 아이들에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부모가 못 오는 아이들도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에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끼리만 화합하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결핍을 덜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능력이 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광장을 만드는 것, 이런 일에 좀 더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1-07

두마*, 별을 만지작이는 마을

이런 큰 마을이 있다니, 높이로는 칠 백 미터, 대관령 평창보다 정선 육백마지기 못하지 않다 앵초와 잡풀, 쑥부쟁이 근처의 천문대가 무슨 소용이니 하지만 생활 밖에서도 더 나은 바른 생활이 있다 우리가 미처 따르지 못했지만, 두마, 사람의 큰 마을이 있네 스페이스가 아니라 유니버스의 충분한 공간 참 친절한 맹랑한 공간에서, 별을 보고 돈을 지불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늘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나 별의 감촉은 어떨까, 하늘은 과연 둥글까,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가득한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그리워할 뿐, *포항 북구 죽장면에 있는 마을 ….. 위치가 높다고 사람이 높은 것은 아니다. 빛나는 것은 스스로 빛나지 누가 부추겨 빛나는 것은 아니다. 역할에 충실해야지 그것을 누리면 안 된다. 말이 좋아 별을 만진다는 것이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그 마을은 보기에 적당했다. 내가 명시하는 적당하다는 말은 뛰어남을 능가한다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얻을 수 없다는 서투른 표현이다. 이 의미를 확대재생산을 한다면 회생불가능의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거시는 미시에서 완성이 된다. 적절하게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07

해는 믿음으로 떠오른다

새해 첫날, 겨울바다를 찾는다. 해는 수평선 앞에서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바다가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중인지 사위가 검푸른 탓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아득하다. 차가운 바람이 모질게 불어와도 돋을볕에 둘러싸인 해를 보겠다는 설렘으로 잠연히 기다린다. 해는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해가 입체적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서 있다. 돌이켜보면 새해 첫 해돋이는 항상 기다림으로 시작되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끝내 도착할 빛을 믿으며 서 있어야 하는 순간이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다. 회사라는 일정한 틀도, 조직도 없이, 오롯이 내 능력과 운에 기대어 하루를 엮는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강의가 없어지면 생활의 뿌리가 하릴없이 흔들린다. 직장이라는 굳건한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았다면지금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얼마 전, 오랫동안 맡아온 강의를 그만두었다. 내 마음이 무게중심을 잃고 요동쳤다. 그 수업은 단지 수입원일 뿐만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던 일상의 한 줄기였다. 쉽사리 꺾이지 않을 줄 알았던줄기가 뚝 끊기자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무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다. 햇살은 고요했으나 내 안의 그늘은 작은 먼지에도 일렁였고, 바람 하나 없는 날의 갈대처럼 사소한 일에도 속절없이 흔들렸다. 내가 현재 나아가는 삶의 방향이 올바른지, 무시로 나를 향해질문을 던졌다. 마음속에서 감정의 파고가 높고 거셌다. 그러는 사이에나는 내 안의 생기를 조금씩 지워갔다. 그렇게 한동안을 앓고 나서야 문득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자책의 울타리를 키우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강의를 맡게 될 날을 기다리자고 마음먹었다. 내 삶의 많은 순간이 해가 뜨기 전의 새벽과 닮았다. 애써 나아가고는 있지만 정말로 빛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간단없이 갈망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젠가는 해가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장마 뒤에는 하늘이 갠다는 자연의 섭리를 들먹이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중한 믿음이었다. 해가 뜨기 전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해돋이를 보기 위한 기다림의 층위를 체감한다. 밤새워 기다린 사람과 이제 막 도착한 사람 사이의 기다림이 뒤섞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만 각자 안고 온 사연은 다르다. 어떤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어떤 이는 아직 오직 않는 용기를 스스로 다독이며, 또 다른 이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를 품고 저마다의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드디어 해가 장엄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누군가는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한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기다렸더니 감동의 여운이 짙다. 나는 해돋이를 기다리는 동안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해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떠오른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1-07

흑백요리사, 일상을 플레이팅하는 방식

현재 가장 핫한 예능을 꼽으라면 넷플릭스에서 독점 스트리밍 중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가 아닐까. 시즌 1에 더없이 몰입했던 나이기에 시즌 2 또한 공개 당일부터 기대감을 갖고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요리 계급 전쟁’이므로 백수저와 흑수저의 대립 구도가 큰 테마라고 할 수 있다. 20명의 백수저와 80명의 흑수저가 참가하는데, 1라운드에는 이 20명의 백수저와 2라운드에서 붙을 20명의 흑수저를 선정한다. 80명의 셰프들이 동시에 요리를 시작하며 펼쳐지는 광경은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화려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백수저들은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반면 흑수저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닉네임을 써야 한다. 오직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에만 흑수저인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다. 나폴리 맛피아, 장사천재 조사장, 요리하는 돌아이, 중식 여신, 급식 대가, 고기 깡패 등 닉네임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셰프들이 첫 시즌부터 넘쳐났다. 닉네임이 찰떡같고 재밌기도 해서인지 모든 셰프들의 이름이 알려진 지금에도 권성준 셰프는 “나폴리 맛피자”(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맛피아’를 잘못 부른 것)라고 심심찮게 불리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권성준이라는 석 자만으로는 연결하기 어려웠을 “나폴리”라는 지명이 쉽게 연결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명명(命名)의 힘이다. 시즌 2에도 눈길을 끄는 흑수저의 닉네임이 많다. 뉴욕에 간 돼지곰탕, 바비큐연구소장, 아기 맹수, 중식 마녀, 요리괴물, 술 빚는 윤주모 등 닉네임만으로도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그중 칼마카세라는 일식 셰프가 있다. 요리하는데 쓰는 “칼”과 코스의 재료, 종류, 요리 방식을 모두 셰프에게 일임하는 일을 뜻하는 “오마카세”를 합친 닉네임처럼, 그는 칼을 유려하게 잘 다룬다. 주어진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 주특기를 활용해 ‘칼맛 나는 오마카세 코스 4품’을 만들었다. 무를 얇게 썰어 오이를 만 오이매실마키, 마를 아주 얇게 썰어 겉보기엔 소면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마소면, 금태구이, 금태 찹쌀밥 이렇게 네 가지 요리를 멋지게 완성했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에게 칼마카세는 맛보는 순서를 설명했다. 금태구이를 먼저 먹고, 금태 찹쌀밥, 오이매실마키, 마소면 순서로 맛보기를 권했다. 처음에 간이 세고 식사가 되는 금태로 먼저 주고, 입가심을 한 뒤에 마지막에 마소면으로 끝내는 것이 그의 구성이자 구상이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가진 바를 최대한 강하게 보여줘야 하는 경합인 만큼, 임팩트를 먼저 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식사 순서가 강한 것부터 이뤄지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의 음식들이 묻히는 효과를 주고 만 것 같았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순서에 대한 의문을 표하며 보류를 주었다. 뒤이어 찾아온 백종원 심사위원 또한 왜 처음부터 기름진 것으로 시작하는지 물어보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결과에 대해서는 여기 쓰지 않겠으나, 그의 첫 심사 결과가 보류인 것은 결코 맛 때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보며 나는 밴드 공연 전에 친구들과 고민하던 시간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여섯 곡인데, 순서를 어떻게 하지? 첫 곡은 무조건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멤버의 공통된 의견이었으나, 디테일한 순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첫 곡부터 세 번째 곡까지 빠르고 빵빵 터지는 곡이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누군가 아니다, 그럼 여섯 번째 곡이 나올 때쯤엔 너무 축축 처지게 된다, 강한 곡들 사이에 미디엄 템포나 발라드를 넣어서 완급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눴지만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지. 다 해보자! 우리는 여섯 곡으로 배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 안에서 합주하고, 또 합주했다. 그러다 공연 직전에야 중간중간에 완급 조절하는 곡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공연은 무사히 잘 끝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순서가 정답이었는지 모른다. 더 나은 순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묘한 씁쓸함만 입속을 맴돌 뿐이다. 순서에 옳음과 그름이 있진 않겠으나 순서와 배치에 따라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는 있을 테니까. 결과와 무관하게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모든 요리사를 응원하고 있다. 새롭게 명명되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신비롭고 멋지다.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화면 너머의 요리를 맛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 또한 나의 하루를 책임지는 요리사로서 허투루 ‘플레이팅’하지 않겠다 마음먹게 된다.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정이 결과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다만 나의 최선이 중요한 것이므로. /구현우(시인)

2026-01-07

리듬을 찾아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일시 정지 해두었던 노래를 다시금 튼다. 곧이어 새해를 알리는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새해 복’ 노래가 방 안에 울려 펴진다. 밝고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A4용지를 반으로 나누어 선을 긋는다. 왼쪽 칸엔 2025년도에 이룬 일들, 오른쪽 칸엔 2026년도에 이룰 일을 하나씩 적는다. 작년보다 더 목표는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써내려간다. 종이 위 활자를 손으로 쓸어 보며 인간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러한 물음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는 답을 던져 준다. ‘소울’ 속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꿈을 이루려는 순간 사고로 죽게 되어 영혼의 세계로 가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선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구역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인 ‘22’번을 만나게 된다. 태어나기 전 세상 구역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영혼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자신의 멘토에게 성격과 기질, 흥미를 배우고 마지막으로 스파크를 채우게 되면 비로소 지구로 향해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멘토는 조 가드너가 맡게 되고 22번의 스파크를 발견해야 하는 일종의 강제 임무를 맡게 된다. 22번은 수 천 년 동안 영혼의 세계를 방황하며 지구에 가는 것을 거부한다. 지구로 향하기 위해선 ‘스파크’를 발견해 내야만 했는데, 어떠한 재능이나 목적이 있어야 스파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2번은 자신에게 재능과 특별한 목적이 없음을 깨닫고 아주 오랜기간 태어나길 거부하며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기 불신에 갇히고 만다. 동시에 그의 멘토인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표 하나로 22번에게 상처주고 소외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구로 향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무대에 서게 된다. 결국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순간, 그는 일순간 허탈감에 빠진다. 그가 사랑하는 재즈는 인생의 정답이자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라 믿었건만, 생각 외로 그가 이룬 꿈은 자신의 생각만큼 대단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가슴이 뛰질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때때로 인간의 발버둥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듯,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게 한 뒤 예상치 못한 텅 빈 공허함을 건넬 때가 있다. 그간의 노력을 보상 받는 듯한 기쁨과 보람은 아주 찰나일 뿐, 해냈다는 안도와 동시에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한다. 벌거벗긴 채로 내쫓긴 아이처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누르며 ‘그래서 이젠 어쩌지?’ 묻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길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목표, 그것을 이루려는 꿈은 결코 단 하나로 귀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 가드너 역시 성공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적 하나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해온 것은 무대 위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순간, 뉴욕의 소음과 햇빛 그리고 가을 낙엽 같은 사소한 삶의 풍경들이었음을. 그렇게 자신이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게 될 때에 비로소 삶은 하나의 목적을 넘어,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2번은 스파크를 발견해서 지구로 향하게 될까? 그것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적진 않지만, ‘소울’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삶의 가치는 목적 달성에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삶은 반드시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명확한 꿈이 있어야만 살아갈 자격이 생기는 무대가 아닌, 그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감각과 순간들’을 누리며 하루하루 소중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임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눈길이 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무던해진다면 좋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은 점점 무던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포착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심심하고 건조한 삶일는지. 그렇다면 새해엔 닫힌 문을 두드리듯 조심스레 때로는 대담하게 내가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완벽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나로서 살아가려는 감각을 찾을수록 나의 삶은 더욱 다채로운 리듬을 갖게 될 것이다. /윤여진(시인)

2026-01-07

이혜훈의 죄? 국민의 죄?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씨가 인생 최고의 위기에 몰려있다. 그 위기의 이유가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닌, 그간 살아오며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동정하기는 어렵다. 8년 전.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의정활동을 돕던 인턴직원에게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먹는다”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막말을 던지고, 심지어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고성을 질렀다는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전근대적인 폭압의 행태가 분명하다. 임신 중인 사람을 괴롭혔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국민의힘 소속 손주하 중구의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임신 초기 시절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유산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손씨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으로 지목한 이는 이혜훈 후보자. 갑을관계에 있는 이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것 외에도 적지 않은 흠결이 거의 매일 폭로되는 형국이다. 175억6952만원이란 이혜훈 씨의 재산이 공개되자 부동산 투기와 국회의원 재직 시절 특혜 관련 논란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이씨 세 아들의 재산이 47억원에 이른다는 보도에 “직장 없는 자식들이 증여세를 어떻게 낸 것인가”를 묻는 이들도 많다. 장관을 포함해 총리와 부총리 등 고위직 공무원 후보자가 발표되면 그 사람의 인격과 도덕성, 재산 형성 과정, 자녀에 얽힌 의혹 등이 예외 없이 잇따르는 걸 우리는 이미 수십, 수백 차례 봐왔다. 그때마다 허탈한 실소를 머금고 공분에 시달려야 하는 게 한국 국민들의 어쩔 수 없는 팔자인가? 모범적으로 살지 못한 이혜훈 후보자의 곤혹이야 자승자박이겠으나, 국민은 대체 무슨 죄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07

짝퉁

플리마켓의 공기는 느슨하다.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고 가격은 흥정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며 사람들은 잠시 일상의 위계를 내려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정갈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부스 앞에서 나는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발견했다. 익숙한 무늬,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문양. 누가 보아도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물건이었다. 영세한 업체였다. 과장된 설명도, 번듯한 배너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거 직접 만들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웠다. 가격은 삼천 원.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싸고 질겨 보였다. 차키를 넣어도 좋고 카드 몇 장을 넣기에도 알맞은 크기였다. 무엇보다 이 물건이 가진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숨기지 않는 흉내, 감추지 않는 닮음. 나는 열 개를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물건을 만든 이들의 시간을 조금 보상해주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가벼웠다. “우와 명품이네?”웃음 섞인 농담이 오갔고 모두 그 물건이 가진 유머를 이해했다. 그것은 명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명품을 소재로 한 농담에 가까웠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웃었고 그 웃음은 그날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유독 한 사람의 말이 날카로웠다. 같은 회사의 진품을 들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파우치를 받아 들고는 얼굴을 굳혔다. “나는 짝퉁은 안 해.” 마치 선언처럼 말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품도 짝퉁으로 알겠네.” 그 말은 물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것 같았다. 순간 공기가 식었다. 농담은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분명히 말했지만 내 눈에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분명히 보였다. 나는 명품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고, 단순히 영세 업체를 도와주고자 산 파우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언어였고, 태도였으며, 타인을 대하는 결이었다. 그가 내뱉은 말속에는 고급스러움도, 품위도 없었다. 오히려 과시와 방어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의 말과 태도는 짝퉁을 넘어 하(下)품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흉내, 새로울 것 없는 허세같은. 우리는 왜 진품과 짝퉁을 나누는 데 집착할까. 정말 보이고 싶은 것은 물건의 진위일까, 아니면 그 물건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나의 위치일까. 진품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도덕의 언어가 되었는지. 마치 짝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곧 고귀함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과연 진품일까. 매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관계에 따라 언어를 조절하며 때로는 나 자신조차 속이며 하루를 살아낸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고 사회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 모든 모습 중에서 진품은 어디에 있을까. 내면이 진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실패가 필요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고통이 필요하다. 값비싼 물건을 사는 일보다 인내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내면의 진품은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며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삼천 원짜리 파우치는 솔직했다. 흉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웃음의 자리도 알았다. 그 파우치를 만든 사람들 역시 명품을 팔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 시간을 정직하게 가격으로 붙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진품을 만들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길을 잃지 않은 것이다. 짝퉁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어떤 언어를 쓰고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를 남기는지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삼천 원이었지만 파우치는 나에게 가장 값비싼 질문을 남겼다. /김경아 작가

2026-01-07

‘6월 통합단체장’ 출범 정말 가능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대전·충남에 이어 광주·전남 행정 통합까지 공론화하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지자체의 장을 뽑을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시·도 행정통합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뽑자는 제안이다. 누가 들어도 지방선거용 이슈다. 행정통합에 수년을 끌다 결국 실패한 대구·경북(TK)으로선 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이 대통령의 속도전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부터 국가 균형발전 전략으로 ‘5극(수도권·동남권·대구경북권·중부권·호남권) 3특(제주·전북·강원)’이라는 초광역권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인구 500만명 수준의 대도시를 여럿 만들어 지방 경쟁력을 키우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자는 내용이어서 시·도 통합 취지와도 일치한다. 지자체의 광역 단위 통합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아마 비수도권 지자체에서는 행정통합 취지에 반대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현재 대전·충남은 이달 중 특별법을 발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도 아마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인구와 자본, 일자리, 교육 기회를 블랙홀처럼 집어 삼키는 수도권 일극주의로 인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만약 시·도 통합이 성사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통합 지방정부는 국책 사업이나 대규모 투자 유치에서 협상력이 커지고, 연구개발 역량과 산업기반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남도의 경우 통합론이 나오자 벌써 “조세특례와 대규모 국책사업 우선권이 특별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이 쉬운 게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전시와 충남도가 밝힌 것처럼 이달 중 두 지방정부가 특별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법안에는 통합 청사의 위치, 지자체 명칭, 하위 시·군·구 간의 권한 배분, 자치입법권의 강화, 재정 자율성 강화 등의 세부적인 내용이 담겨야 하고, 시·도의회 동의 또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주민 갈등이 수반된다. 특히 2월 3일 시작되는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때까지 특별법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각 시·도 단체장 공천은 기존 일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야당에서 이 대통령이 통합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게 지방선거용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시·도 통합에 정파적 계산이 개입하면 정상적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대전·충남 통합 단체장 후보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론되고 있다. 강 실장은 충남 아산을 지역구로 둔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광주·전남의 경우에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남지사 출마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이재명 정부가 행정통합에 성공하려면 청와대가 특정인을 통합단체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시·도 통합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행정통합은 결국은 시·도의회 동의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해서 통합 과정에 정치적 논란이 발생하면 성사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06

미래의 세상 CES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AI) 전시회(CES)가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1967년에 처음 시작해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전시회는 전 세계 각국의 신기술들이 집결하는 기술 경연장이다. 매년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들이 총망라하면서 전시장 자체가 마치 마술의 한 공간처럼 변신한다. CES 2026년에는 전 세계 160개국에서 4100개의 기업이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 등 약 1000개 기업이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42개의 혁신기업이 참가해 공동관을 운영하며 신기술을 세계에 선보인다. 올해 CES의 키워드는 피지컬 AI다. 지금까지 AI는 디지털 공간인 화면 속에만 있었다면 이번 CES에 등장한 AI는 다르다.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간 등에서 자율시스템이 실제의 사물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선보인다. 로봇의 팔로, 가전제품의 두뇌로, 자동차의 판단 주체로 AI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선보인 인간형 로봇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한다. 식사 준비와 빨래 정리 등 집안 일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척척 해결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일자리 보고서에서 AI와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멀지않은 미래는 지금의 일자리 9200만개가 사라지고, 약 1억70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예측했다. CES가 펼쳐놓은 기술이 10년 내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들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바쁘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6

근본적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중국의 런민(人民)대학, 쩡파(政法)대학, 두 대학의 객원교수로 베이징에 가 있을 때였다. 식사는 주로 쩡파대학의 식당을 이용하였는데, 우리 돈으로 150원 정도 하면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감탄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중국 정부의 배려였다. 그러나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내가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하여 5, 6만 원 정도 하였다. 그 돈마저 대학에 접수된 숱한 장학금 하나를 타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더 올라가면, 이승만 정부의 위대한 창안이 담긴 농지개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개혁이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탄탄한 국민화합의 잠재력을 갖출 수 있었고, 이것은 6·25 전쟁 당시 엄청난 무형의 전투력으로 작용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공과에 대하여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그때 마련된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나 산업재해보상 등 여러 사회보험 제도의 기초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이어진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사회개혁의 정책이 없었다. 특히 진보정부에서는 기존에 있었던 ‘사회적 사다리’를 하나하나 철거해 갔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진보귀족들에 의해 도입된 로스쿨 제도이다. 대학의 등록금도 그간 엄청 높아졌으나, 로스쿨의 등록금은 그 배로 보면 된다. 또 로스쿨 제도로 인한 한국 법학의 전반적인 붕괴 현상의 야기 등 그 심각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지난 윤석열 정부 등에서는 임시미봉으로 우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많이 마련하여 어려운 가정의 자제들도 로스쿨 진학의 꿈을 갖게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남의 다리 긁는 격’의 엉뚱한 처방이다. 왜냐하면 장학금을 줄려고 해도 대부분 최상위 계층의 자녀들이라 줄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과다한 등록금 외에도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정(査定)요소의 하나로 학부의 성적이 들어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학부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니 뭐니 해서 작은 돈을 벌어 학비나 생활비에 충당해야 하므로 애초에 좋은 성적을 받아두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부의 양극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지위의 세습화 등으로 아주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고꾸라져 수년 전부터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셈이다. 이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 과거의 농지개혁과 같은 과감하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정책이 꼭 필요하다. 한국판 소수자·약자 보호정책(Affirmative Action)을 실시할 때가 되었다. 그 중의 하나를 임의로 예시하자면, 정부의 간섭이 미칠 수 있는 로스쿨이나 의예과, 의전원 입시에서 신입생의 1/3 정도를 중하위계층의 자녀들에게 먼저 배정하고 나머지를 일반전형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의 실시로 확보되는 사회적 유동성(social flexibility)은 지친 말처럼 축 늘어진 한국 사회에 다시 힘을 불어넣는다. 힘찬 ‘붉은 말’을 뜻하는 병오년 새해를 보며 떠오르는 단상이다. /신평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변호사

2026-01-06

혁신의 지속성, 문화로 간다

혁신 문화의 기준은 ‘성과가 났는가‘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가‘이다. 지속성은 혁신을 문화로 만들고, 문화는 기업의 운명을 바꾼다. 혁신은 즉각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왜 이렇게 일해왔는가?‘ ’이 방식이 최선인가?‘ 이 질문에 불편해질 때 경영자는 선택해야 한다.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에 혁신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혁신 성공은 성과의 크기가 아니라, 작은 개선이라도 끊기지 않으면 조직은 학습하고, 학습은 결국 성과로 돌아온다. 경영자는 혁신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고,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사 맞춤형 혁신활동체계를 위한 툴(Tools) 진화는 계속되어야 현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공감하고 활용된다. 활동이 지지부진한 기업을 보면, 성과중심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초기 성과가 없으면 회의가 줄고,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며, ‘조금 뒤‘로 밀린다. 그 과정에서 현장은 배운다. ‘이번에도 잠깐이겠구나‘라는 내면의 흐름이면, 그 순간 혁신은 끝난다. 혁신 성공을 위한 ‘지속성‘의 중요성은 첫째, 혁신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많은 기업이 혁신을 단기 캠페인·슬로건·과제형 프로젝트로 접근한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성과가 보일 때까지 반복·축적되는 과정이다. 1년 혁신의 성과는 ‘점‘, 3년 혁신은 ‘선‘, 5년 이상 지속하면 ‘면(문화)‘에 이른다. 둘째, 지속성은 ‘학습 효과‘를 만든다. 혁신의 초기 성과는 미미하다. 실패의 원인 분석, 재시도 및 방법 개선, 반복 활동을 통해서 조직 학습 축척을 만든다. 지속하지 않으면 실패는 고급 낭비가 되고, 지속하면 실패는 자산이 된다. 셋째, 지속성은 구성원의 ‘진정성 인식‘을 갖게 한다. 현장은 매우 냉정하다. “이번에도 1~2년 하다 말겠지“, ”임원이 바뀌면 끝나는 거 아냐?“ 이 인식이 바뀌는 시점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뢰를 증명하는 때에 이뤄지는 것이다. 혁신 지속성의 핵심 조건은 최고 경영층의 일관성이고, 리더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또한, 혁신은 의지만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기 회의체, 혁신과제 KPI 연계, 평가, 보상 등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성과의 ‘연속성’이 대형 성과의 전조가 된다. 혁신활동체계는 자사 일의 특성에 맞게 진화하는 것이 지속성을 갖는 기본이다. 지속성이 되면, 혁신은 문화로 간다. 일하는 사고, 방법이 습관이 되고, 습관을 넘어 조직의 DNA화·체질화 되어 ‘스스로 문제를 보고 개선하는 것’이다. 혁신 지속성은 기업 경쟁력이 되고, 개선 속도, 학습 능력, 문제 해결 습관으로 나아가 조직 일하는 문화가 되는 것이다. 혁신은 화려한 시스템이 아니다. 작업 동선 하나를 줄이고, 불량 원인을 하나 더 파고 들어 줄이고, 표준을 지키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혁신의 지속성은 경쟁력 그 자체다. 설비와 기술은 모방할 수 있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속도, 개선을 실행하는 습관, 학습이 축적되는 문화는 모방할 수 없다. 끊임없이 개선하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되고,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1-06

자연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다

마추픽추의 돌계단을 밟으며,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문명의 정점에 서 있는 듯했지만, 동시에 그 덧없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돌을 쌓아 도시를 건설하고 역사를 기록했지만, 결국 그 돌마저 자연으로 회귀한다. 마추픽추는 묵묵히 그 진리를 증명하고 있었다. 진정한 여정은 그 후 시작되었다. 배낭을 메고 향한 곳은 아마존 정글. 그곳은 인간의 질서가 아닌, 생명 스스로의 법칙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아마존은 남미 9개국에 걸쳐 뻗어 있으며, 브라질이 60%를 차지하고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가 뒤를 잇는다. 지도 속 녹색 공간은 이제 온몸으로 느껴야 할 현실이 되었다. 새벽의 쿠스코 공기는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가 탄 12인승 승합차는 해발 43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를 묵묵히 넘었고, 창밖으로는 우루밤바강이 은빛으로 굽이쳐 흘렀다. 운무에 잠긴 계곡과 숲이 스쳐 지나갔다. 문명의 흔적이 사라질수록 초록은 짙어졌고, 공기는 더욱 깊어졌다. 마누 국립공원에 가까워질수록 ‘아마존’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곳은 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생명의 혈관이자, 인류 태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과 정글이 어우러진 마누 국립공원(Manu National Park) 이었다. 정글에 발을 딛자,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콘크리트 냄새 대신 흙, 습기, 나무의 숨결이 코를 간지럽혔다. 자동차 소음은 사라지고,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와 숲의 미세한 떨림이 귀를 채웠다. 도시에서 나를 규정하던 직함, 역할, 성취는 이곳에서 무의미했다. 우리는 그저 숨 쉬는 존재, 살아있는 생명일 뿐이었다. 팀원 모두는 인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듯했다. 보트 위에서 누군가 외쳤다. “No pain, no gain!” 그러자 다른 이가 장난스레 응수했다. “No pain, no food!”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는 ‘No pain, no gain’ 팀이 되었다. 언어와 국적은 달랐지만, 땀과 침묵, 웃음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경쟁자가 아닌 동료였고, 소비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였다. 마지막 날,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도록 이끌어준다.“ 밤이 되자 정글은 낮보다 더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곤충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별빛은 숲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고요 속에서 마음은 가벼워졌다. 자연은 침묵했지만, 그 침묵은 도시의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늘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지만, 숲은 서두름이 없다. 그럼에도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 경험은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즉 생명을 향한 인간의 본능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DNA에는 숲, 강, 바람, 별빛을 그리워하는 기억이 남아 있다. 나무 아래에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물소리를 들으면 숨이 깊어지는 이유다. 자연과 단절된 현대인은 ‘자연 결핍’을 겪는다. ‘자연 결핍 장애(Nature Deficit Disorder)’라는 용어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자연과의 단절은 주의력 저하, 스트레스 증가, 우울감, 창의성 감소로 이어진다. 뇌과학은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 속에서는 교감신경의 긴장이 풀리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심박수와 혈압은 안정되고, 코르티솔 수치는 낮아진다. 피톤치드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고, 물소리와 새소리는 감정을 안정시킨다.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도시의 새벽은 엔진 소리로 시작된다. 엘리베이터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콘크리트 위를 걷는다.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는 인공적인 사막과 같다. 스마트폰 속 초록으로 위안을 얻지만, 마음속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태초의 명령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3박 4일간의 원시림 체험을 마치고, 정글은 말없이 나를 배웅했다. 안개 낀 강, 철새의 날갯짓, 흙과 나무의 숨결, 밤마다 들리던 소리들. 그것들은 다시 입을 수 없는 옷처럼, 설명할 수 없는 언어처럼 내 안에 남았다.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자연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삶의 근원임을 숲은 가르쳐 주었다. 물러서는 정글의 끝에서 나는 다시 쿠스코로 돌아왔다. 젖은 흙냄새, 숨 쉬는 정글의 맥박, 밤을 가르던 곤충들의 합창이 몸 안에서 울린다. 정글에서 머무는 동안 자연은 나를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본래 누구였는지를 조용히 기억나게 했다.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정글을 두고 오는 아쉬움은, 그곳에서 만난 가장 단순하고 온전한 나를 잠시 놓아두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1-06

다수결의 절차적 정당성

‘민주’와 ‘독재’의 차이는 의사결정과정의 합리성과 공정성 여부에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서의 다수결 원칙은 ‘절차적 정당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수결은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나간다는 ‘절차적 정의(background justice)’를 전제로 한다. 이 전제를 무시하고 다수파가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가 된다. 영국의 정치학자 바커(E. Barker)는 “다수결 원칙은 양(量)과 질(質),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 “다수파의 의견은 그것이 다수의 의견이면서도 공정한 의사일 경우에만 모든 구성원들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수결의 본질이 단순한 ‘수의 지배’가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이성의 지배’에 있기 때문이다. 다수파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토론과정은 하나의 요식행위처럼 간주한다면 다수결은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다수파인 여당은 다수결의 전제조건인 대화와 토론은 소홀히 하면서 힘자랑만 한다. 민주당이 내란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힘 해산을 주장하는 등 대화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니 야당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거리투쟁에 나서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함에도 다수당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다수결은 ‘법적 유효성 논란’을 일으키게 되고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니 국회의 존재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여당은 다수와 소수의 가변성 및 상대성을 인정하고 다수의 절대성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정당이든 민심을 얻으면 다수당이 되고, 민심을 잃으면 소수당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여야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게다가 다수 의사가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흔히 정치인들은 ‘다수의 뜻’을 ‘국민의 뜻’이라고 포장하지만, 51%의 다수 의사가 49%의 소수 의사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여당은 야당과의 대화·토론·협상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노력해야 하며, 특히 현재와 같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서는 승자(다수)의 패자(소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더욱 절실하다. 다수결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다수라는 수의 크기’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당이 다수결의 핵심 전제인 대화와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은 형식화하면서 다수의 뜻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행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다수결 원칙이 ‘승자독식의 제도적 수단’으로 전락하면 소수의 저항과 투쟁이 격화되어 ‘정치는 전쟁’이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이며, 민주공화정(民主共和政)은 다수와 소수가 공존·공생하는 정치제도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1-05

지금 여기에

‘신이 존재 하지 않는 곳’에서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은 어떤 것일까. 홀로 가는 삶. 평안이 약속되지 않는 삶. ‘누군가 전부를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에 기대지 않는 삶. 그곳에선, ‘모든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도 의미가 퇴색하며, ‘결국은 잘될 거라’는 위로도 사라진다, 신의 부재 속에 남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과 그것을 겪어야 하는 몸과 마음 뿐. 신이 부재한 자리에 선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도, 누군가의 계획 속에 배치된 존재도 아니다. 오직 조건과 조건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사건일 뿐. 신이 부재한 그곳에 선 자는, 중심도 아니고, 선택받지도 않았으며, 특별하지도 않다. 의미는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신이 부재한 자리의 도덕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감각, 말과 행동이 일으킬 파문에 대한 감수성 그 자체다. 이곳의 도덕은, 신의 감시가 사라진 자리의 빛남이요, 신의 처벌이 전제되지 않은 확고함이다. 보상이 전제되지 않으므로, 도덕이라는 감각은 더 섬세해진다. 신이 부재한 자리는 변명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무책임이 아니라, 삶을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매 순간의 선택은 신에게 보고되지 않으며, 오롯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영원히. 신이 부재한 삶의 불안은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계를 통제할 수 없음에서 오는 떨림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고통을 정당화하지도, 의미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신이 부재한 삶에서는 평안은 목표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찾아오는 방문객일 뿐. 움켜쥠을 놓을 때, 설명하려는 욕망을 멈출 때, 세계를 평가하지 않을 때, 평안은 그 틈으로 스며든다. 신이 부재한 삶은 불확실성의 바다를 향한 항해. 근거(신) 없음의 근거 위에서 공존한다는 공감은, 신이 보증한 형제애보다 더 조용하고 현실적인 연대를 낳는다. 신이 부재한 세상의 사람들은 깨달음도 완성도 구원도 말하지 않는다. 신을 떠난 생각은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며, 신을 떠난 불안은 더 이상 해답을 구하지 않으며, 신을 떠난 의미는 더 이상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이야기와 해답은 필요 없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설명의 여백, 의미의 틈, 침묵의 공간을 자신으로 채운다. 자기 삶을 설명해 줄 타자를 더 이상 찾을 필요도 없다. 근거 없이 살 수 있고, 의미 없이 무너지지 않으며, 구원 없이도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잠시 움켜쥐는 손이 풀릴 때, 설명하려던 입이 닫힐 때, 세계를 그대로 두는 용기가 생길 때 평안은 온다. 누군가 기도할 때, 누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금식할 때, 누구는 먹는다. 누군가 신의 품에서 놀고 있을 때, 누구는 사람들 속에서 논다. 누군가 신을 찾을 때, 누구는 자신을 찾는다. 누군가 구원을 찾아 떠날 때, 누구는 지금 이 자리에 머문다. 그대는 누구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6-01-05

삶이란 무엇인가

정초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에 앞서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사람의 삶이란, 다층적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지구생태계의 한 종인 생물학적인 삶에서부터 사회적인 삶, 철학적인 삶, 종교(영성)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사람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생물학적인 삶이다. 동물의 일종으로 개체의 생존을 유지하고 번식하려는 본능에 따른 삶이다. 가장 저 층위의 삶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모든 층위의 바탕이 되는 만큼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인 것이다. 물론, 생존만을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가치도 살아 있는 것을 전제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인간은 또한 사회적 존재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형성한다. 가족, 친구, 공동체는 삶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책임과 연대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동시에 사회는 경쟁과 비교를 통해 개인을 억압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적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될 때, 인간은 자아를 상실하기 쉽다. 따라서 사회 속의 삶은 소속과 자율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 짓는 특징의 하나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의 삶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질문한다. 철학은 이 질문에 대해,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해 왔다. 삶은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책임을 통해 형성된다. 의미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외면한 삶이 있을 뿐. 오랜 세월 인류는 삶을 종교적·초월적 관점에서 이해해 왔다. 종교는 인간의 삶을 우연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존재로 해석하며,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한다. 오늘날 종교적 신앙이 약해졌다고 해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를 필요로 한다. 정의와 사랑, 희생과 진리 같은 가치는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며, 삶에 깊이를 더한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살 때보다, 더 큰 가치를 지향할 때 삶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삶의 이 네 가지 측면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 모든 차원이 긴장과 균형 속에서 통합되는 과정이 삶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삶의 목적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분명한 방향은 없지 않다. 성장하는 방향, 책임지는 방향, 타인에게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삶은 깊어진다. 목적이 있는 삶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실패와 고통을 견딜 이유를 제공한다. 삶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생존을 넘어 의미를 묻고, 관계 속에서 책임을 지며,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의 삶은 비로소 완성이 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1-05

오래 기억될 안성기의 삶과 죽음

영화제작자로 일했던 아버지의 친구 김기영 감독의 작품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출연한 게 그가 다섯 살이던 1957년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카메라 앞에 선 것은 2023년 제작된 김한민 감독의 ‘노량-죽음의 바다’. 자그마치 66년의 장구한 세월이었다. 빼어난 연기력과 스캔들 없는 모범적인 사생활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1952년에 태어났으니 향년 74세.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걸쳐 한국 영화와 함께 울고 웃었던 주요한 배우 한 명이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안성기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군 복무는 ROTC로 마쳤다. 전공을 살려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1977년 아역이 아닌 성인배우로 관객들 앞에 돌아왔다. ‘만다라’ ‘고래사냥’ 등에 출연한 1980년대는 말 그대로 ‘배우 안성기의 전성시대’였다. 1년에도 몇 편씩 주목받는 영화에 등장해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 웃음과 해학을 선물했으니. 그랬기에 대종상을 포함한 영화 관련 상도 40회 이상 받았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8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하며 왕부터 거지, 사장부터 말단 회사원까지 다른 사람의 삶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던 탁월한 배우의 죽음 앞에 적지 않은 영화팬들이 아쉬움을 표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눈물과 고통이 없는 피안(彼岸)으로 떠난 안성기의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에 엄수된다. 한국 영화사에 ‘잊히지 않을 이름’으로 새겨질 것이 분명한 그의 삶과 죽음은 오래 기억될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05

정당은 나쁜 사람만 골라 공천하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말이 있다. 나쁜 일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겹치기로 덮친다는 말이다. 요즘 정치인들의 못된 짓이 그와 같다. 못된 짓이 드러나면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얼마나 나쁜 일을 많이 하면 그럴까? 이게 드러난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신설한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폭로가 줄을 이었다. 그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옹호했다고 지적하자,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을 놓쳤다”라고 사과했다. 그 뒤에도 여러 가지 갑질 폭로가 나오더니, 급기야 땅 투기 의혹까지 터졌다. 인천공항 개항 1년 전인 2000년 연고도 없는 영종도에 이 후보자의 배우자가 잡종지 6611㎡(약 2000평)을 사들였다. 그런데 2006년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가 공시지가 13억8800만 원 정도이던 땅을 39억2100만 원에 수용했다. 세 배 장사다. 더 가관인 것은 여야 공방이다. 이재명 정부에 발탁된 이 후보자를 배신자로 낙인 찍은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이 이토록 무너졌나”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에서 다섯 번이나 공천받으신 분”이라고 빈정댔다. 분명한 것은 정치권 검증이라는 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점이다. 그뿐 아니다.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향응과 특혜 의혹으로 공격받더니, 부인이 구의회 부의장 업무추진비 카드를 사용했다는 녹음이 공개됐다. 이어서 강선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 때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는 대화가 담긴 녹음이 폭로됐다. 강 의원이 당시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이자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에게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김 의원은 “돈을 당장 돌려주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대화 바로 다음 날 컷오프됐던 김경 시의원 후보가 민주당 단수 후보로 공천받았다. 컷오프된 후보, 거기에 공천 뇌물 1억 원까지 준 후보가 하루 만에 단수 후보로 둔갑했다. 뇌물 효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1억 원이 김 전 원내대표나 그보다 더 힘이 센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의심할 만하다. 이번에는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직접 공천 뇌물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 전 원내대표의 부인이 구 의원 두 사람으로부터 각각 2000만 원과 1000만 원을 받았다가 몇 달 뒤 돌려줬다는 것이다. 이수진 전 민주당 의원이 돈을 준 사람들의 탄원서를 폭로했다. 이 탄원서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김현지 보좌관에게 전달했으나, 김병기 의원에게 도로 보내고 끝냈다고 한다. 경찰이 증거물을 도둑에게 준 꼴이다. 이 바람에 이재명 대통령,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지난 총선 민주당 공천 때도 고무줄 기준이 적용됐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비판이 나왔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있다. 여론조사가 한창이다. 선거도 전에, 후보가 나오기도 전에 당선자가 정해져 있는 곳이 많다. 당을 믿기에, 어쩌면 경쟁 정당이 너무 싫어, 찍을 정당을 정해놓은 유권자가 많다. 오죽하면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오겠나. 그럴수록 중요한 게 공천이다. 정당의 책임이 무겁다. 거대 양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당선이 별 따기다. 그런데 유권자의 무한신뢰를 이용해 ‘공천 장사’를 한다.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반복된다. 선거제도 개편이 개헌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제도보다 더 중요한 게 공천이다. 선거제도가 아무리 공정해도, 공천이 잘못되면 헛일이다. 선거를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도, 공천이 야바위판이 되면 비리 협잡꾼을 뽑게 된다. 후보가 유능한지, 깨끗한지 유권자들이 판별할 기회를 빼앗긴다. 정당이 추천한 후보 가운데서 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과 유권자가 양극단에서 대결하는 정치 구도에서 공천은 더욱 중요하다. 공천을 사고파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유권자가 깨어야 한다. ‘말뚝’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말이 아니라 표로 응징하는 수밖에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04

“AI 혁명의 파도 위에 올라타 미래를 준비하자”

2026년 새해, ‘AI를 활용하고 주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를 시작한다. 52주에 걸쳐 매주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 삶·일터·지역사회의 변화, 그리고 우리의 대응 전략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논의를 담을 예정이다. 왜 지금 AI인가? 2022년 말 ChatGPT 등장 이후 AI는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개인의 AI 이용률은 2024년 33.3%, 전체 AI 서비스 경험자는 60%를 넘어섰으며, 2025년에는 80%에 육박했다. 기업의 도입률도 90%에 근접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 발전이 아닌, 실생활 전반에 AI가 깊숙이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포항 죽도시장의 한 건어물 가게 주인은 AI로 SNS 홍보 문구를 생성하고, 형산강 카페거리의 카페 주인은 메뉴 설명과 인스타 콘텐츠를 제작한다. 교사들은 맞춤형학습 자료를 만들며, 구룡포 어촌계는 AI 번역기로 외국인 관광객과 소통한다. 심지어 포항테크노파크 입주 업체들은 AI로 업무를 자동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이제 AI는 특정 산업이나 선진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 수용 속도가 사용자 적응 속도를 압도하면서, 모두가 AI를 일상 도구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활용하는 자와 외면하는 자의 격차 202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직장인과 그렇지 않은 직장인 간 생산성 격차가 최대 40%에 달했다. 동일한 시간 동안 한 사람이 10개의 업무를 처리할 때, 다른 사람은 6개밖에 완료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5년에는 이 격차가 일부 직무에서 50%까지 확대되며 경고음을 울렸다. 더욱이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70% 아래로 떨어졌고, 국내에서도 기업이 신입 개발자 대신 AI 도구 활용 경험이 풍부한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산업혁명이 기술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동반한 반면, AI는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며 직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말하는 AI 시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26’은 AI 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강조한다. 첫째, ‘Human in the loop’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의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판단을 결합해야 함을 의미한다. AI의 출력을 맹신하지 않고 창의성과 인간적 통찰력을 더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레디코어(ReadyCore)’는 “준비된(Ready) 상태”가 삶의 핵심(Core) 가치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학습하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자세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도’한다는 것의 의미 본 제목인 ‘AI를 활용하고 주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에서 ‘주도’란 AI에 종속되지 않고, AI를 도구로 삼아 능동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AI를 주도한다는 것은 세 가지를 뜻한다. 첫째, AI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AI는 마법 상자가 아니라 특정 원리로 작동하는 기술임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단순한 정보 검색 수준에만 AI를 활용하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둘째, AI를 내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대화 기술, 여러 AI 도구 중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판단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엔비디아 회장 젠슨 황이 제시한 AI 발전 단계를 보면, 우리는 이미 AI 에이전트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AI 사용자 대부분은 여전히 프롬프트 단계조차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창의성, 공감 능력, 윤리적 판단, 비판적 사고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의 감정 교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창의적 문제 해결,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의 가치 판단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심화되는 AI 사각지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생성형 AI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AI 기술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이 형성되면서 ‘AI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점점 넓어질 것이다. 특히 우리 지역 포항과 경북의 경우, 수도권에 비해 AI 교육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AI 활용률도 낮은 편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격차를 넘어 경제적 격차, 나아가 지역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52주, 함께 걸어갈 여정 이러한 현실 앞에서, 경북매일신문 독자 여러분과 함께 1년간 네 단계의 여정을 걷고자 한다. 1분기(1~13주)에는 AI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기초를 다진다.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대화형 AI부터 Midjourney 같은 이미지 생성 AI까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소개한다. 2분기(14~26주)에는 일상 속 AI 활용법을 알아간다. 업무 이메일 작성, 회의록 정리부터 자녀 교육, 여행 계획, 건강 관리까지 생활 밀착형 사례를 다루며, 매주 ‘이번 주 AI 실습’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직접 따라 하며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한다. 3분기(27~39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AI로 부업을 시작하는 법, 소상공인의 실전 활용법, 업무 자동화 구축 등 실질적인 경제 활동과 연결된 이야기를 나눈다. 4분기(40~52주)에는 AI 저작권, 딥페이크, 일자리 변화 같은 사회적 이슈부터 우리 지역 포항과 경북이 준비해야 할 AI 전략까지 폭넓게 조망한다. 포항의 철강 산업, 경북의 농업, 관광업이 AI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지역 청년들이 AI 시대에 어떤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한다. 지금, 선택의 시간 AI 혁명의 파도 위에 올라타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경쟁에 매몰될 것인가? AI를 활용해 삶을 업그레이드할 순간이다. “과도기가 지나갈 것”이라 여기며 방관한다면 기회를 놓칠 뿐이다. 경북매일신문과 함께하는 52주 프로젝트로 AI 시대의 주인공이 됩시다.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 일에 적용해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면 1년 후에는 AI를 활용한 혁신가로 거듭날 것이다. /서용운 계명대 교수·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그래픽=서용운

2026-01-04

소한(小寒)과 ‘세한도’

지난 며칠 동안 신년 강추위가 찾아왔다. 그저께인 1월 3일 청도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1.6도, 봉화는 16.7도였다. 그래도 예전에 맹위를 떨치던 ‘소한 추위’가 없어서 한시름 놓고 있는 형편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아왔다. 아파트와 승용차로 무장한 현대 한국인들은 이런 옛말이 무척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차가운 날이면 추사(秋史)와 ‘세한도(歲寒圖)’ 생각이 절로 난다. 이조판서로 이름을 날리던 김정희(1786~1856)는 안동 김씨의 득세와 더불어 1840년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 대정(大靜)으로 귀양살이 떠난다. 고위직에 있을 때 문전성시(門前成市)의 경험을 기억하는 추사에게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초였을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유배지에 귀한 서책을 바리바리 들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중인 출신 역관으로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었던 우선(藕船) 이상적에게 추사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구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의 첫머리를 따서 화제(畫題)로 삼았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글귀는 변함없이 스승을 대하는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와 닮았다. 그래서 화제인 ‘세한도’를 가로로 쓰고, 바로 그 옆에 세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 네 글자를 쓴 것이다.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는 여전히 많은 이의 사유와 인식에 자양분을 선사하는 귀한 문화자산이다. ‘세한도’와 더불어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추사의 고된 유배 생활의 결과를 입증한다. 추사는 대정 유배길에 초의선사에게 원교(圓嶠) 이광사(1705~1777)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내리게 하고 자신의 글씨로 대신한다. 그런데 해배(解配)되어 귀로에 들른 대흥사에서 추사는 자신의 편액을 떼게 하고,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도록 부탁한 것이다. 천 리나 떨어진 외로운 섬 제주에서 8년의 귀양살이를 경험한 김정희의 내면세계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훨씬 깊어지고 유장해진 것이 아닐까! 한겨울 북풍한설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낙락장송처럼 의연하고도 굳세진 추사의 인품이 ‘무량수각(無量壽閣)’ 네 글자에 담긴 것 같다. 삐뚤빼뚤하되 둥글둥글한 자체(字體)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4절기 가운데 스물세 번째인 소한을 지나면서 우리 세대가 살아온 날들을 새삼 돌이킨다. 음습한 날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야 했고, 콩나물 버스 안내양들이 추락사를 겪어야 했던 저 암울했던 1970~80년대! 도저히 밝은 미래를 꿈꾸거나 기대할 수조차 없던 군부독재의 잔혹한 고문과 투옥, 학살과 은폐, 용공(容共) 조작(造作)까지. 모진 겨울날이면 0.7평의 독방에서 겨울을 나야 했던 양심수들과 그들의 가족 생각이 우심(尤甚)해지곤 했다. 그런 칠흑(漆黑) 같은 죽음의 질곡(桎梏)을 넘어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 어린 것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럽고 따사로운 문화·예술의 나라 대한민국이 멀지 않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04

말띠 해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말띠 해다. 불의 기운을 지닌 병(丙)과 말을 상징하는 오(午)가 만나 말띠 중에서도 60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말의 해다. 띠는 한해에 붙은 십이지 동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십이지는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12마리의 동물을 상징하는데, 말띠는 그 중 일곱 번째다. 한국인은 태어날 때 모두가 띠를 가진다. 한해의 수호 동물로 자신의 띠가 정해지며 자신 띠와 연결해 성격, 운명, 결혼, 궁합 등을 예측한다. 띠 문화는 한국인과 함께 해온 오랜 풍속이다. 전해오는 띠 풀이에 의하면 말띠 생은 밝고 개방적이다.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고 유머가 있다. 어떤 생각이 결정되면 목표가 관철될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계속 나아가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말띠의 기운은 처음에는 거창하나 끝이 오므라드는 유형이다. 아차 하는 순간 아무것도 쥔 것이 없어질 수 있으므로 낭비와 유흥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속설에 말띠 여성은 “팔자가 세다”고 한다. 1990년 백말 띠 해에는 여아 출산을 기피하는 일들이 있었고, 백말띠 해를 앞둔 12월에는 제왕절개 수술이 늘었다고도 한다. 다음 말띠 해 출산 성비가 116명까지 치솟았다고 하니 여아 출산 기피가 거짓은 아닌 듯하다. 세태가 달라진 지금, 말띠 여성에 대한 띠풀이도 다르다. 생활력이 강하며 독립적이고 리더십이 강하다. 말은 각종 설화에서 하늘과 지상을 잇는 상스럽고 지혜로운 동물로 묘사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 나오는 승천하는 말이 그러하다. 말은 힘과 용맹의 상징이다. 올 한해 우리나라는 말띠 기운이 크게 뻗어 국태민안(國泰民安) 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4

화단의 변신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밭 가운데 동백나무가 서 있다. 겨울의 추위를 담은 꽃봉오리들이 조금씩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 그 밑으로는 배추를 다듬고 남은 겉껍질들이 찬바람에 배를 내어 놓은 채 시들어가고 다른 쪽에는 파릇파릇 겨울 채소가 한 뼘 정도 자라고 있다. 텃밭의 이야기가 아니고 아파트 화단 모습이다. 이곳은 오래 된 5층짜리 건물이다. 옆으로는 20여 층의 고층 아파트가 그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그곳은 정원석을 경계로 삼아 나무와 꽃들이 계획적으로 잘 조경이 되어 있다.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이다. 초봄 이곳을 지나면서 깜짝 놀랐다. 화단에 나무나 꽃은 거의 없었고 누군가가 고랑을 일구어 놓았다. 검은 비닐을 죽 깔아놓은 곳도 있었다. 무언가를 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한쪽 구석에는 비료 포대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아파트 앞뒤를 다 돌아보아도 그런 모습이었다. 벌써 어느 곳에는 쪽파, 양파가 자라고 있었고 다른 곳엔 부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라면 당연히 잘 조경된 화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왔기에 그런 모습에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처음 든 생각은 누가 제재를 가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예쁜 꽃이나 나무를 심어야 마땅할 터인데···. 봄이 지나면서 화단의 텃밭은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비교적 넓은 곳에는 가지, 고추, 깻잎, 배추 등이 심어져 있었다. 고추나 깻잎은 여름으로 접어들자 높이도 제법 커져 나름 울창해보였다. 가끔은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도 보게 되어 궁금한 마음에 키우는 채소의 종류를 살펴보았다. 대충 20여 종은 되는 것 같았다. 어느 주민이 정성들여 가꾸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제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와 같이 산책을 하다가 텃밭이 된 화단을 보고 저게 뭐냐며 깜짝 놀랐다. 모종을 사서 심고 키우는 수고를 생각하면 사서 먹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하면서.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느끼며 나 역시 변해가는 화단을 보며 지나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파트의 주민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에 큰 공장이 있어서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단다. 그 자녀들이 다 커서 대부분 독립해 나가고 나이가 든 사람들만이 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커다란 전쟁을 두 번씩 겪은 세대이다. 세계적인 빈국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신 분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화려하고 예쁜 조경의 꽃들보다는 실생활에 조금이라도 유용한 작물을 기르는 것이 살림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사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절약과 억척스러움이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절을 지났던 분들이다. 우리나라는 도시라 할지라도 1970년대를 지나면서 냉장고가 서서히 보급되었다. 지금처럼 음식을 냉동실에 재어 놓을 수가 없었다. 여름이 되어 높은 온도에 약간 밥맛이 이상하면 엄마는 여러 번 물에 헹군 뒤 끓여서 먹었다. 그것보다 조금 더 상하기라도 하면 풀을 쑤어 이불 등을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 때는 모든 물자도 귀했지만 절약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문화적인 것을 향유하는 것은 그 당시 일부가 누리던 사치였다. 오로지 자녀들을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키는 것에 열심인 세대였다. 그런 세대들에게 어쩌면 아파트의 화단은 쉽게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텃밭으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텃밭으로 변한 화단을 보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면서 고구마가 왕성하게 줄기를 뻗으며 자라고 있었다. 늦여름이 지나가며 고추도, 깻잎도 치워지고 그 자리엔 가을 배추가 자리잡았다. 옆의 화단에서는 부추가 여전히 푸름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쁜 꽃은 있지 않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화단텃밭. 그 속에는 한 생을 열심히 살아온 우리 윗세대들의 부지런한 역사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1-04

이제는 문화다

새해는 지역 발전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한다. 과거 산업과 경제 중심으로 성장해온 지역은 이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한다. 사람을 머물게 하고 지역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그 답은 점차 문화로 좁혀지고 있다. 문화는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으로 지역을 지탱하며, 세대를 연결하고 공동체 정체성과 삶의 품격을 높여왔다.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문화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 미래의 문화정책은 외형적 확대보다 내실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통을 지키되 현대적 삶과 기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결합해 재창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원은 기존 프로그램을 시대에 맞게 재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단순한 체험과 행사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의 역사·생활문화·구술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교육·전시·콘텐츠로 확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통문화 역시 현대적 해석과 접목을 통해 청년과 다음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AI와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걸맞은 문화 인프라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역 문화 자산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자료의 축적과 활용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 흩어져 있던 기록과 아카이브를 정리하고, 누구나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열린 문화 데이터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문화의 보존을 넘어, 새로운 창작과 산업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될 것이다. 문화원의 운영 또한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도화되어야 한다. 프로그램 기획, 인력 운영, 기록 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중장기 계획 속에서 지속가능하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는 열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전문성과 시스템이 함께할 때 비로소 오래 갈 수 있다. 이처럼 문화원의 내실을 다져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가 보이게 된다. 아무리 콘텐츠와 시스템이 충실하더라도 이를 안정적으로 담아내고 확장할 공간이 없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화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터전이 필요하다. 지금의 문화원은 그 역할과 기대에 비해 물리적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공간, 시민 누구나 드나들며 배우고 만들 수 있는 문화의 집이 요구되는 이유다. 2026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문화원 신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라 생각한다. 이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해 온 문화의 내용과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문화 환경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지역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문화원은 늘 앞서기보다 곁에서 지역을 지켜보는 존재여야 한다. 크게 외치기보다 묵묵히 쌓아가며, 빠르기보다 오래 가는 길을 택해왔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단단한 내실 위에 새로운 터전을 더해야 할 때다.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제는 문화다. 그리고 문화의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다. /박승대 포항문화원장

2026-01-04

소박한 우리의 새해 소망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포항은 호미곶을 비롯해 영일대와 송도 해수욕장, 영일만항까지 일출 명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른 새벽부터 도로 위는 해맞이객들로 분주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포항은 어디에서든 해맞이할 수 있는 도시다. 장소를 골라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도시에 대한 작은 자부심이 생긴다. 이날 나는 효자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시민들과 함께 새해 첫 태양을 마주했다. 동이 트기 전, 주위를 붉게 물들이던 여명을 바라보며 곧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내 벅차올랐다. 매일 떠오르는 해이지만, 1월 1일에 마주하는 해돋이는 우리에게 늘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더 이루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조급해진다. 크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지만, 올해만큼은 조금 더 소박한 우리의 소망들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 감사할 수 있는 오늘, 출근길 바다가 오늘은 유난히 잔잔하기를 바라는 마음, 신호등 앞에서 괜히 숨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누군가는 사무실 한켠에서 건네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에 하루를 시작할 힘과 용기를 얻고, 누군가는 병원에서 듣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더 건강해질 내일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는 오늘 하루만큼은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고, 잘 견디고 버텨온 스스로를 토닥이며 칭찬할 수 있는 여유로 채워지는 그런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처럼 소박한 우리의 새해 소망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힘은 어쩌면 이런 사소하고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포항은 수많은 파도를 넘으며 지나온 도시다. 산업의 굴곡이라는 파도를 넘어왔고, 지금도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높은 파도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숱한 파도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살피고 다독이며 함께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2026년의 포항은 성장이라는 속도만큼이나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더욱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 모두는 큰 파도와 어려움을 함께 넘어왔다. 거친 파도를 견디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더욱 겸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2026년 포항은 도시의 변화와 성장만큼이나 사람의 온기가 차가운 철의 도시를 따뜻하게 채워가길 바란다. 기업은 노동자를 살피는 마음으로, 노동자는 경기 침체로 어려운 기업의 입장을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민의를 살피며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고, 시민들은 서로의 이웃을 돌아보며 알뜰하게 챙긴다면, 이 도시는 다시 생명력으로 가득 차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소망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내일을 다시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우리 모두의 2026년은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 새해를 맞은 포항의 아침이 조용하지만, 깊은 희망으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에 천천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올 한 해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도시로 함께 걸어가고 싶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04

병오년 새해에 희망한다

을사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대통령 탄핵 사건 후유증으로 온나라가 혼란스러운 터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의성에서 촉발돼 영덕까지 경북 북부를 초토화시켰던 초대형 산불은 자연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민들의 가슴조차 시커먼 숯검댕이로 만들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사회 정의의 지속적인 유지와 서민 경제와 서민 삶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소모적인 정쟁만 있는 암울한 정치 상황이다. 국민의 안전도, 행복도, 재산도 지킬 정부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설명대로 우리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들이 권력의 토대를 독차지하고 있으면 향상시켰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만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도래했다. 여야 정치의 극심한 불균형으로 인한 국가 권력의 불균형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대통령 권력에 대한 도덕적 불신과 지역 불평등 확대, 성장둔화, 기회 감소에 대한 회의적 여론 또한 팽배하다. 이기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관료와 정치인들로 인해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정부 출현은 매우 우려스럽다. 늑대에게 자유를 맡긴다면 양떼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여야가 극심하게 기울어진 국회에서 일방으로 찍어내는 법제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어떻게 상충되는지 그 한계가 아직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2026년 병오년 새해를 맞는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계엄 국면의 정치적 과제와 치솟는 실업률, 실물 금융의 최대 위기와 신자유주의 무역의 압박, 탈산업화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만한 믿음직한 국가적 대안이나 비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위험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 국가 주권의 불안정,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 서민 소상공인과 근로자들의 사회적 자신감을 증진시켜줄 정치를 기대하는 바람으로 병오년 새해에 빌어본다. 특히 올해 6월에는 지방선거가 실시될 것이다. 우리 대구·경북은 이미 여야 지형도가 심히 기울어져, 새로운 고립의 섬으로 결판날 것이라는 절망적 우려조차 숨길 수 없다. 어떤 선택이 가장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자유와 행복을 제공할 수 있을지 건전하게 추론하여 선택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이름으로 도리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치닫거나 이념적으로 치우쳐져서는 안 될 것이며, 이로 인해 경제 자유가 위축되어서는 더더욱 안될 것임을 시민사회와 주민은 엄중하게 판단하고 신중한 선택으로 지켜내야만 할 것이다. 동해안 저 푸르디푸른 바다를 헤치고 밀쳐 오는 새해가 우리들의 결핍과 두려움을 거두어주기를 희망한다. 강인한 적마처럼 행동할 자유를 우리들이 스스로 지키고 갖추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더 깊고 넓은 행복의 대한민국, 대구경북이 되기를 희망한다. 행복경제, 통합정치, 수준 높은 문화예술의 기치를 들고 미래의 문이 환하게 열려주기를 희망한다. 열심히 일하면서 누리는 일상의 행복이 우리들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국가미래연구원 이사

2026-01-01

권력의 부패

과학자들은 권력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난폭한 행동과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뇌에서 답을 찾는다. 어떤 과학자는 사람이 권력에 빠져들게 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많이 나오면서 뇌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오만해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또 일부는 뇌의 안하 전두엽이 손상돼 자신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과대망상에 빠져들어 이타심과 공감 능력을 잃게 된다고도 설명한다. 마치 마약에 중독돼 이성을 잃는 것처럼 권력에 중독되면 모든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권력부패의 원인이라 한 것이다. 1887년 영국의 역사학자 존 액턴은 높아만 가는 성공회 교황의 권력과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편지 속에서 그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 한다”는 말을 남기는데, 권력의 집중과 견제 부재가 부패를 부른다는 경구로써 이 말은 오늘날까지 유명하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삼권분립 등 권력의 정체성을 구현해 권력의 부패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부패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 속성이다. 사회가 분화되면서 정치권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권력자의 부당한 횡포와 비리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지역구 시의원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지역 단체장이나 시의원으로부터 공천 대가가 오가는 오래전 폐습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국민적 실망감이 크다.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은 사실상 어렵다. 국회의원의 자정 능력을 높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1

팔자를 넘어

해마다 자기에 대한 기대로부터 한발 물러나게 되는 것 같다. 미래에의 가능성보다는 한계를 직시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으로 가장하며 살아온 것 아니겠나. 주어진 운명과 맞서 싸우는 영웅들을 동경했던 시대는 아득하고, 앞길에 대한 모색보다는 현상 유지를 기도하며 하루를 소진하는 삶이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강제된 이러한 사고 정지 속에서 새해의 소망을 품는다는 게 얼마나 망령된 일인지 요맘때면 새삼 깨닫게 되곤 한다. 일본의 서브컬처 비평가 우노 츠네히로는 ‘무언가를 했다’라는 사회적 자아실현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승인하는 방식의 자의식 형성에 관해 논한 바 있다. ‘~을 하다/했다’라는 행위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면, ‘~이다/~이 아니다’라는 자기 형상에 대한 인지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를 살피지 못하고, 주어진 조건을 수용할 뿐인 자세로 자아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들이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자처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행위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찾기보다는 현재의 처지를 스스로가 납득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규정해 가는 타입의 인간들이 늘어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상’에 대한 설정이 행위를 압도케 되는 사회적 조건이 구축되고 있다. 요즘의 한국이 그렇지 않나. 이제는 ‘영포티’가 된 ‘N포세대’ 출신의 ‘영끌’을 바라보며, 도무지 물려받을 게 없는 ‘젠지세대’의 원망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기에 그렇다. 나아가 그 원망의 방향이 시대의 모순을 사유케 하기보다는 단순한 피해의식으로만 점철되고 있으니, 대체 어떤 미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미래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고루한 표현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러한 시대의 환멸로부터 나 역시 자유로울 리 없다. 그래서일까? 요새는 ‘팔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다. 지인이나 동료가 잘 되거나 잘 안되거나, 그게 ‘그 사람의 팔자 아니겠나’라는 식의 어법이다. 팔자란 게 ‘일생의 운수’를 뜻하니 나 역시 숙명론적 인생관 따위에 함몰돼 버렸다고 해도 좋다. 진정 타고난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죽어도 안 되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게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달성될 수 없는 목표라면 차라리 그 실패에 매달려 괴로워하지 않고, 외려 이를 일종의 팔자로 받아들이자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자기의 한계에 대한 이러한 순응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구실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도지사 시절부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26년 병오년부터는 진정 그러한 시대가 오길 바란다. 자기에 대한 체념을 성숙의 조건으로 가장하는 그러한 세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사회가 막다른 길에 몰렸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1-01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어릴 때 짜장면 한 그릇이면 다 통했다. 졸업식, 입학식, 그리고 생일 때 짜장면 이상은 사치였다. 탕수육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다. 우동 아니면 짜장면이었고 아버지는 가끔 짬뽕을 잡수시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짬뽕은 어른들이 드시는 음식으로 안다. 짜장면이 1970년에는 한 그릇에 100원 정도였으나 최근엔 7000원 선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동네 중국집에선 5000원 정도 받는 곳도 있긴 하더라만, 50년 동안 50배나 가격이 뛰었다. 요즘 식당 밥값이 장난이 아니다. 1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중국집이나 분식집 말고 없을 정도이다. 학창 시절 데이트할 땐 돈 1만원만 있으면 둘이 극장가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셔도 집에 갈 버스비는 남았다. 지금 애들은 도대체 얼마를 들고 나가야 데이트를 할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 남자애들이 부담이 상당할 것 같다. 둘이 짜장면만 먹을 수는 없을 테고 분위기 한번 잡을라치면 두당 3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차 한 잔 마시면 거의 10만원 돈이다. 요즘은 그래도 ‘카드’라는 것이 있어 돈 떨어져 집에까지 뛰는 사태는 없어 다행이다. 제주 유명호텔 짬뽕 한 그릇이 6만2000원이다.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먹으면 20~30만원이 짬뽕값으로 나간다. 메뉴 제목이 ‘전복 한우 차돌박이 짬뽕’이라는데 우리 동네 중국집에선 문어까지 넣은 고급 짬뽕이라도 2만 원을 넘지 않는다. 비싼 호텔 짬뽕이 대중적인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짬뽕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단다. 인생 짬뽕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짬뽕 가격에 질려버린다면 파인다이닝 식당엔 근처에도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몇몇 생소한 단어가 옆을 스친다. ‘파인다이닝’ ‘오마카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 그냥 서민으로 한세상 그렇고 그렇게 산다고 보면 된다. 재혼을 준비하는 돌싱들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재혼 목적 교제 중, 어떤 말을 자주 들으면 재혼 의지가 꺾이느냐”라는 질문에 남성 대부분이 ‘파인다이닝’을 골랐다고 한다. 데이트비를 거의 지불하지 않는 여성이 맨날 고급 식당을 요구하면 ‘나를 호구로 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여자는 정이 뚝 떨어진단다. ‘파인다이닝’이란 ‘좋은’, ‘질이 높은’이라는 뜻의 ‘fine’과 ‘식사’를 뜻하는 ‘dining’의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비싼 식사, 고급 식사를 뜻하는 일반적인 어휘라고 보면 된다. 이름난 셰프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식사 금액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다. 시그니처 메뉴를 제공하고 받는 금액이 일인당 수십만 원이라고 한다. 수억대의 자금을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테이블과 의자 또한 최고급이다. 화장실에는 고급 향수가 비치되고, 고급 브랜드들의 식기가 제공된다. 보험 신청하고 받은 그런 허접한 그릇에 밥 먹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서글퍼진다. 인생이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제주도는 비행기 값이 없어서 못 가고 동네 중국집에서 뜨끈한 짬뽕 국물로 속을 달래야겠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01

해맞이 명소 호미곶

일출(日出)은 자연의 경이로움이자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현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려는 행렬이 줄을 잇는 것도 이러한 상징성 때문이다. 나라마다 일출을 맞이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일출을 향해 한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마음은 어느 나라든 똑같다. 새해 일출은 단순히 자연현상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뜻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삶 속에 어우려져 왔다는 말이다. 새해를 앞두고 동해안 일출 명소에는 벌써부터 숙박업소마다 예약이 꽉 찼다. 행정기관도 연말연시 인파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은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일출 명소다. 다가올 새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 등과 더불어 이곳을 찾아 일출의 장관을 바라보며 새해 소원을 기도할 것이다. 한반도 최동단에 위치한 호미곶은 조선시대 풍수지리학자 남사고는 ‘해동산수비록’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인데, 백두산은 코 이곳은 꼬리 부분”이라고 밝혔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이곳에서 일곱 번이나 답사하고 측정해 우리나라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포항시의 옛 이름 영일(迎日)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오래전부터 해맞이 장소로 여겨져 왔던 곳이다. 울산시는 간절곶이 포항시의 호미곶보다 해가 먼저 뜬다고 자랑을 하나 때로는 간절곶이, 때로는 호미곶에서 해가 먼저 떠 정확히 누가 먼저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신년의 첫 일출은 오전 7시 26분 독도에서 가장 먼저 관측되고 호미곶에서는 7시 32분 관측될 것이란 예보가 있다. 가는 해 잘 보내고 오는 해 기쁘게 맞이하자. /우정구(논설위원)

202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