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 시행으로 철강제품 가격·품질 탄소배출량까지 수출경쟁 요소로 평가 세계 산업질서 구조적 변화, 기반 ‘흔들’ 수소기반공정, 이산화탄소 획기적 감소 수소 공급망·전력 확보·투자비 등 과제 K-스틸법의 성패는 시행령 추진에 달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등장해 온 도시다. 산업화의 초입에서 철은 이 도시의 시간을 단련했고, 제철소와 공장의 불빛은 국가 성장의 상징이 되었다. 자동차와 조선, 건설과 기계산업은 철강을 토대로 확장되었고, 철강은 단순한 공산품을 넘어 산업국가를 떠받치는 철강구조물이 되었다. 포항에서 철은 곧 일자리였고, 가족의 삶이었으며, 지역 공동체의 뿌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산업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적인 비용부과 단계로 전환되면서, 철강제품은 더 이상 품질과 가격, 납기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는 더 이상 환경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철강수출계약서에 반영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 변화는 일시적 규제가 아니다. 기후 대응이 무역질서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산업표준이 형성되고 있다. 탄소 집약 산업은 구조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철강도 예외가 아니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시장 접근 비용은 커지고, 산업의 존립 기반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수소환원제철이 그 해법의 중심에 있다. 기존 고로 공정이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했다면, 수소기반공정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대규모 수소 공급망구축, 안정적인 전력 확보, 막대한 설비 전환 비용, 기술완성도 제고라는 현실적 장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 철강기업과 각국 정부는 이미 장기 전략에 수소환원제철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대한 국가적 응답이 바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K-스틸법이다. 법은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만으로 현장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실제 집행을 좌우하는 것은 시행령이다. 시행령은 정책의 방향을 행정체계와 예산 구조로 연결하는 실행 문서다. 선언이 설계로, 설계가 투자와 공정전환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시행령이다.
지금 우리는 그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이 시기에 어떤 구조가 담기느냐에 따라 철강산업의 미래와 포항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시행령은 단순한 행정 규칙이 아니라 산업전환의 구체적 설계도이다.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
첫째, 수소환원제철을 국가전략기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전략기술 지정은 연구개발 예산, 재정지원, 세제 지원, 정책금융, 규제 특례의 근거가 된다. 초기 전환비용이 막대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율적 결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 경쟁이 국가 단위로 전개되는 시대에 체계적 지원은 필수조건이다.
국가전략기술로 규정하지 않고, 저탄소철강 생산기술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석탄과 코크스 대신에 수소로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이기에 결국 수소환원제철로 승부를 봐야 한다. 애매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명제로 추진력을 높이는 것이 강하게 필요하다.
둘째, 범정부적 조정 체계를 구축하고 추진단을 만들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산업정책, 노동교육, 과학기술, 에너지 계획, 수소 공급망, 전력망 확충, 항만 인프라, 환경인허가, 안전규제가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 복합 정책이다. 개별 부처의 칸막이.분절적 대응으로는 속도와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 통합적 조정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을 설치하는 시행령을 만들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저탄소철강특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산업전환은 실제 공간에서 실증과 상용화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포항은 제철설비와 항만, 연구 인프라, 숙련 인력을 갖춘 도시다. 특구지정은 지역 특혜가 아니라 국가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공간 전략이다. 인허가 간소화, 기반시설 우선 투자, 금융지원이 종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정의로운 전환을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정신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 법은 탄소중립을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정의로운 전환’으로 규정한다. 노동자와 지역 보호, 취약계층 참여 보장, 전환비용의 공정한 분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철강전환 역시 이 원칙과 결합해야 지속 가능하다.
공정변화는 노동시장과 협력 생태계, 지역 상권에 영향을 준다. 직무 전환교육과 재훈련, 협력업체 지원, 주민참여 거버넌스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환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비용이 아니라 정책 지속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과 철강산업에 필요한 안보사항과 보안내용이 있다면 이를 관계기관들이 잘 지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주민들도 협력해야 한다.
나아가 대한민국 대전환의 역사적 도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특구와 지역의 탄소중립거버넌스는 주민들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하여, 과학기술만으로의 대전환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대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내야만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선도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에너지정책과 철강전환을 연계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막대한 수소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수소 생산·수입 전략,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 계획이 철강전환과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에너지 기반 없이 철강전환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 전환은 정책 문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참여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시행령 수립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의견과 지역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시민 역시 관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전환의 의미를 이해하고 토론하며, 지역 미래전략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시민사회는 공론장을 만들고 정책을 점검하며, 정의로운 전환이 제대로 설계되는지 관찰해야 한다. 이러한 참여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지역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ESG 실천과도 직결된다. 시민 참여를 통해 환경적 책임(E), 사회적 보호(S), 투명한 거버넌스(G)가 실현되며, 산업정책의 투명성 강화와 공동체 신뢰 구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산업 전환은 기술 혁신인 동시에 사회 혁신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철강을 생산해야 하는 시대에 철강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철강은 반도체처럼 고수익 산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동차와 조선, 방위산업, 건설을 떠받치는 기간 산업이다. 산업국가라면 반드시 보유해야 할 전략 산업이며, 이를 우리는 철강주권이라 부른다.
글로벌화된 철기 시대에 철강 생산역량을 유지하는 일은 더 이상 기업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다. 이는 국가의 책임이자 리더십의 문제이다. 국가 지도자는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재편의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과 포항 시민의 참여를 확대해 새로운 철강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K-스틸법은 출발점이다. 시행령은 그 길의 설계도다. 그리고 지금, 그 설계가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그 설계를 완성할 것이다. 그 결과는 포항의 미래이자 대한민국 산업 주권의 미래가 될 것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