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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6·3 포항시장선거, 여야를 떠나 공약은 ‘수소환원제철’이어야 한다

2026년 4월 6일 오전 11시, 포항시청 브리핑룸에 두 개의 노동조합이 나란히 섰다. 서로 다른 상급 단체에 속한 포스코노동조합과 현대제철지회였다. 같은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들이 꺼낸 메시지는 더 이례적이었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포항이라는 도시의 심장도 멈춘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도시 전체를 향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철강 위기를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10만 철강 가족의 생존 문제이자, 포항이라는 도시의 존립 문제로 규정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 탄소 규제 강화,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한 산업용 전기요금까지, 산업을 짓누르는 사중고를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그 말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방정부의 전면 대응을 요구했고, 실질적인 지원책과 함께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산업 위기를 놓고 공개적인 정책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장면은 지금 포항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항에서 철강은 산업이 아니라 삶의 일상이다. 그래서 철강의 흔들림은 곧 도시 전체의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철강이 약해지면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가 줄면 청년이 떠나며, 청년이 떠나면 도시의 숨결이 빠르게 식는다. 지방소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산업의 약화에서 시작해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 포항이 서 있는 자리는 그 연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단순한 경기의 등락이 아니다. 산업을 둘러싼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되었고, 철강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평가되던 시대를 지나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으로 평가받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고탄소 철강은 경쟁력 이전에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된다. 전환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 앞에서 포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다. 철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강을 바꾸는 것이다. 그 중심에 수소환원제철이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는 이 방식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철강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환을 가장 현실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포항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산업 생태계와 숙련된 노동력, 항만과 물류, 연구개발 기반이 이미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철강의 과거가 포항에 있었다면, 철강의 미래 또한 포항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방향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수소 산업은 목표는 분명하지만 기반은 취약하다. 청정수소는 아직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았고 가격도 높다. 공급 체계 역시 산업 현장의 요구를 감당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정수소만을 기준으로 산업을 설계하면 출발 단계에서부터 전환이 멈춰 설 수 있다. 산업은 선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량과 가격, 그리고 예측 가능한 환경이 갖춰질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로다. 초기 단계에서는 일반수소를 기반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며 산업을 키운 뒤 점진적으로 청정수소로 전환해 가야 한다. 과정을 건너뛴 전환은 없다. 이 단계를 무시하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술의 이름으로만 남고, 현장은 끝없는 대기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 문제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소 산업을 바라보고 투자에 나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 설비와 부품, 저장과 운송, 안전 관리와 플랜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이들 기업이다. 산업 전환이 성공하려면 이 생태계 전체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수소 관련 중소기업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수소 생산과 관련한 혁신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포항이 수소 산업 특구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현장의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요와 가격을 확보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기업 경영에는 ‘자본의 시간’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시장으로 연결되기까지 버틸 자금이 없으면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현금 흐름이 끊기는 순간 기술도 산업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산업 전환의 성패는 대기업의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투자하고 생산하고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이제 시선은 6·3 포항시장선거로 향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지역 정치의 경쟁이 아니다. 포항이 철강 도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전환에 실패한 도시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후보들의 공약은 이 변화에 답하고 있는가. 수소에너지가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수소환원제철은 더 이상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이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그 공약은 현실을 외면한 것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내용이다. 수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가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철강 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노동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중앙정부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공약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 계획이어야 한다. 여기서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문제는 특정 정당의 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강의 전환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미래를 좌우하는 이 과제는 여야를 나눌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야를 넘어 공통의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할 최소한의 합의이자 출발점이다. 따라서 수소환원제철은 특정 후보의 차별화 공약이 아니라, 모든 후보가 반드시 채택해야 할 기본 공약이 되어야 한다. 경쟁은 채택 여부가 아니라 실행 능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더 현실적인 경로를 제시하는가, 누가 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가, 누가 더 빠르게 산업 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진짜 선택이 된다. 포항은 한 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도시다. 이제 다시 한 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과거의 방식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산업 질서를 여는 도시가 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철강이 멈추면 도시도 멈춘다. 그러나 철강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포항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산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약속은 분명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선택 가능한 공약이 아니다. 포항시장에 출마하는 후보라면, 여야를 떠나 누구나 반드시 제시해야 할 공약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4-22

철강의 미래, 용광로의 온도가 아닌 ‘도시의 지혜’에 달렸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충격이 다른 충격을 불러내는 연쇄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중동의 군사 충돌은 더 이상 먼 지역의 비극으로 머물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차질은 곧바로 국제유가를 밀어 올리고, 국제유가의 급등은 환율과 물류비, 원료비를 흔들며, 그 충격은 제조업 국가인 한국의 공장과 가계로 곧장 밀려온다. 최근 보도들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했고, 글로벌 공급 차질 우려도 커졌다. 전쟁은 언제나 먼저 약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 산업과 무역의 질서를 흔든다.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 와중에 미국은 또 하나의 파고를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일, 철강·알루미늄·구리 관련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식을 다시 손질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백악관 설명에 따르면 철강 코일처럼 금속 자체에 가까운 품목은 전가치 기준 50% 관세를 유지하고, 철강·알루미늄·구리가 상당 부분 들어간 파생제품은 전가치 기준 25% 관세를 적용하며, 금속 비중이 15% 이하인 제품은 해당 232조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겉으로만 보면 제도가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완제품까지 영향을 넓히며 미국 시장으로 연결된 공급망 전체에 부담을 얹는 조치다. 철강이 직접 수출되지 않아도 철강을 품은 제품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부담은 다른 형태로 되돌아온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철강산업의 어려움은 더 선명해진다.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오랜 부진 끝에 2026년 1분기 반등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철강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다. 미국의 보호무역이 만들어내는 통상 비용, 중동 불안이 자극하는 고환율과 원료비 상승, 그리고 갈수록 강해지는 탄소규제와 탈탄소 투자 부담이 한꺼번에 덮쳐 오고 있다. 산업은 회복을 말하는데, 비용은 회복을 허락하지 않는 형국이다. 오늘의 철강은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라, 통상과 환율과 탄소가 한 몸처럼 얽힌 복합 비용 경쟁의 산업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포스코홀딩스 윤창원 수소저탄소연구소장의 말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그는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에서는 탄소중립과 산업성장을 함께 이루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으며, 하나의 기업이나 하나의 국가만의 힘으로는 해법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진단은 단순한 기업 발언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를 드러내는 고백에 가깝다. 철강 탈탄소는 공장 안의 기술 혁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값싸고 안정적인 청정수소, 대규모 저탄소 전력, 송배전과 저장 인프라, 금융과 세제 지원, 시장 창출과 통상 대응이 함께 가야 한다. 기술 하나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과제라는 뜻이다. 그래서 포항에서 최근 이뤄진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최종 승인은 단순한 개발 승인이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3월 27일 포항국가산업단지 계획 변경안을 승인·고시했고, 이에 따라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인근 해역을 매립해 약 135만㎡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용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 개발기간도 2041년까지 연장됐다. 이것은 선언이 아니라 입지의 확보이고, 구호가 아니라 실행의 출발이다. 포스코의 탄소중립 전환이 더 이상 연구실과 발표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공간과 설비와 전력 수요의 문제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부지가 무엇을 상징하느냐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 고로처럼 석탄에 기대어 돌아가는 공정이 아니다. 수소와 전력이 핵심이며, 결국 에너지 체계와 제철 체계가 결합된 새로운 산업 질서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하이렉스 데모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이를 위해 2021년부터 인허가 절차를 밟아 왔다. 이는 곧 포항이 더 이상 ‘철을 만드는 도시’에만 머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포항은 수소를 조달하고, 전력을 연결하고, 환경 갈등을 조정하고, 지역 일자리와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도시여야 한다. 철강의 미래는 이제 용광로의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도시의 민주주의 수준과 사회적 조정 능력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환경 및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그것을 해결하는 민주주의적 과정은 더 이상 산업의 바깥에 있는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 자체가 산업경쟁력의 일부가 되었다. 주민의 우려를 무시한 채 속도만 높인 사업은 결국 더 큰 지연과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충분한 정보 공개와 토론, 검증과 보완, 신뢰 형성은 사업의 시간을 단축하고 불확실성을 줄인다. 포항의 수소환원제철 부지 역시 긴 행정절차와 환경 논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승인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바로 그런 불편을 견디는 능력이 앞으로의 산업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탈탄소 시대의 경쟁력은 속도만이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온다. 포항시민의 지혜가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을 말하는 목소리는 많다. 그러나 정작 그 대책을 세우기 위한 지역 차원의 숙의는 자주 늦어진다. 수소는 어디서 어떻게 들여올 것인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계통 전력은 어떤 조합으로 연결할 것인가. 해양환경 영향은 어떤 기준으로 감시하고 공개할 것인가.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중소 협력사는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철강 노동자의 전환 교육과 일자리 안전망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들이 언론과 의회와 시민사회, 기업과 행정의 공적 토론장에서 더 자주, 더 깊게 다뤄져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의 성공은 포스코만의 성공이 아니고, 포항만의 사업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 철강산업이 관세와 환율과 탄소의 삼중 압박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대다. 지금 포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전쟁과 통상 충격이 길어질수록 산업의 체질 전환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둘째, 수소환원제철을 지역의 자부심만이 아니라 구체적 정책과 인프라의 과제로 다뤄야 한다. 셋째, 환경과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넷째, 지역사회 전체가‘찬성’과‘반대’의 단순한 구호를 넘어,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의 설계 논의로 들어가야 한다. 전쟁의 바람은 멀리서 불어오지만, 그 바람이 흔드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식탁과 공장의 불빛이다. 미국의 관세는 워싱턴에서 발표되지만, 그 파장은 포항의 제철소와 협력업체와 항만과 지역경제에 닿는다. 탄소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포항은 더 늦기 전에 토론해야 하고, 설계해야 하며, 함께 결단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의 성공과 철강산업의 빠른 회복을 말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산업의 미래는 기술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시민의 지혜와 사회의 합의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4-08

포항은 새로운 산업문명을 향한 도약의 도시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 체계는 거대한 전환의 끝자락에 와 있다. 이 전환은 단순한 에너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구조가 바뀌는 과정이다. 그 흐름을 단순화하면 두 갈래로 정리된다. 하나는 전기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수소에너지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분리된 체계가 아니다. 전기는 전기저장장치(ESS)와 2차전지로 저장되고, 다시 수전해(水電解)를 통해 수소로 전환된다. 전기와 수소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하나의 순환 구조다. 이 구조는 앞으로의 산업 질서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과거에는 석탄과 석유가 산업을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전기와 수소가 산업을 움직이게 된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글로벌 시장이 강제하는 새로운 규범이다.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생산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자연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확대되어야 하고, 축산분뇨와 음식물 등 유기성 폐기물을 활용한 에너지 생산도 병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이다. 여기서 포항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포항은 더 이상‘철을 만드는 도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전기와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을 재구성하는 도시로 도약해야 한다. 포항과 그 인근 지역에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생산과 수소 생산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 대전환의 중심 거점이 될 수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철강기술과 수소환원제철은 그 전환의 핵심이다. 철을 만들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산업 문명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다. 이 기술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포항은 세계 철강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점은 일자리의 문제다. 산업 전환은 단순히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 수소 생산 및 저장 인프라, 전력망 확충, 그리고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신기술 산업은 대규모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단순한 일자리 증가를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 인력과 청년 인재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다. 특히 포항은 기존의 철강 산업 기반 위에 새로운 에너지 산업을 결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다. 이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강점이며, 산업 전환 과정에서‘일자리 감소’가 아니라‘일자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산업 전환이 곧 지역 쇠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포항이 보여줄 수 있다. 이 과정은 산업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된다. 에너지 전환은 시민의 삶과 직결되며, 지역경제와 노동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기술과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민의 인식 변화와 사회적 합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ESG의 사회(S)가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ESG는 더 이상 기업의 선택적 전략이 아니다. 환경(Environment)은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고, 사회(Social)는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불평등을 조정하며, 지배구조(Governance)는 이러한 변화가 책임 있게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기준이 된다. ESG는 산업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동시에 국가 경쟁력의 기준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5년 10월 1일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환경과 에너지를 분리해서 다루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며, 국가가 기후와 에너지를 하나의 통합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우리는 환경은 규제로, 에너지는 산업으로 분리하여 다루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 둘을 나눌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에너지는 곧 탄소이며, 탄소는 곧 산업 경쟁력이다. 이 변화는 정부 조직에서 시작되어 시장과 산업 구조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제 질서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탄소를 기준으로 한 무역 규범이 형성되고 있으며, ESG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제 기업은 무엇을 생산하느냐보다 어떻게 생산하느냐로 평가받는다. 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수출이 막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철강 산업은 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일수록 더 강한 압력을 받게 되며, 그만큼 빠른 전환이 요구된다. 수소환원제철은 이러한 압력에 대한 대응이자, 동시에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다. 하지만 전환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 비용은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이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면 전환은 지속될 수 없다. 이것이‘정의로운 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산업과 국가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할 것인가. 이 선택에 따라 앞으로 50년의 국가 경쟁력이 결정된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전기는 에너지의 중심이며, 수소는 그 확장이다. 탄소는 비용이 아니라 질서이며, ESG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구조로 통합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새로운 산업 문명을 설계할 수 있다. 포항은 그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 재생에너지, 전력 인프라, 그리고 시민의식이 결합될 때 포항은 단순한 산업도시를 넘어 탄소중립 문명의 모델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RE100이라는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RE100을 제도화하기 위한 관련 입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으며, 산업과 시장은 이미 그 기준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RE100은 아직 하나의 완성된 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 산업을 움직이는 사실상의 규범이 되었다. 법보다 먼저 현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K-기후·에너지·환경은 하나의 선언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새로운 질서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전기와 수소, ESG와 책임, 그리고 RE100. 이 세 가지 축 위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포항이 서 있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3-25

K-기후환경과 수소에너지

고등학교 1학년 생물 시간이었다. 식물에 필요한 10대 영양소를 외워야 했지만 이름도 많고 순서도 복잡해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구레나룻이 멋졌던 생물 선생님께서 칠판 앞에서 외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CHON SPeaK Mg Ca Fe.” 그리고 웃으며 덧붙이셨다. “촌사람들은 마카다 철을 말한다.” 포항제철소가 형산강 뚝방 넘어 빤히 보이는 포항의 송도동에서 자란 필자는 그 말을 금방 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묘한 일이다. 교실에서 시험을 위해 외웠던 한 줄의 암기법이 오늘날 기후위기와 산업대전환의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CHON SPeaK Mg Ca Fe.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황(S), 인(P), 칼륨(K), 마그네슘(Mg), 칼슘(Ca), 철(Fe). 식물의 몸을 이루고 생명활동을 떠받치는 핵심 원소들이고 C.H.O는 탄수화물과 지방을, C.H.O.N은 단백질을 이룬다. 세상에 존재하는 원소가 아무리 많다 해도 생명의 기본 재료는 결국 이런 원소들이다. 사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간도 동물계의 존재이며 먹이사슬을 통해 식물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 역시 식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인류 문명을 움직여 온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 역시 탄소와 수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기물의 축적물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과 자동차, 발전소와 도시의 불빛까지 인류 문명의 대부분은 탄소를 태워 움직였다. 탄소는 산업문명을 성장시킨 원소였지만 이제는 기후위기의 중심에 선 원소가 되었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 극단적인 폭염과 폭우, 거대한 산불과 태풍의 증가 등 기후 변화는 이미 우리 일상 속에서 체감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경제,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문제만이 아니다. 산업과 에너지, 무역과 안보까지 동시에 흔드는 문명의 전환 문제다. 세계는 지금 탄소를 중심으로 산업 질서를 다시 짜고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같은 산업 제품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가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다. 새로운 경제질서의 등장이다. 탄소를 많이 쓰는 산업은 점점 불리해지고 탄소를 줄이는 기술을 가진 국가와 기업이 앞서 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기후정책이 산업정책이 되고 에너지정책이 무역전략이 되는 시대다. 산업의 경쟁력과 국가의 경제전략이 기후와 에너지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탄소 다음의 에너지는 무엇이 될 것인가.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후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소다.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대신 물을 만든다. 저장과 운송이 가능하고 발전과 모빌리티, 산업 공정까지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수소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 원료이자 에너지 매개체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철강산업에서 수소의 의미는 더욱 크다. 현재의 제철공정은 석탄을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철강은 전(全)세계 제조업의 기반산업이지만 동시에 대표적인 고탄소 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등장한 기술이 바로 수소환원제철이다. 기존에는 탄소가 철광석의 산소를 제거했다면 앞으로는 수소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부산물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이 된다. 철을 만들면서도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다. 산업 문명의 연료와 재료 체계를 함께 바꾸는 일이다. 탄소 문명에서 수소 문명으로 건너가는 산업 대전환의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포항의 의미가 다시 떠오른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적인 철강 도시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한국 산업 성장의 상징이었고 철강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과 기계 산업을 떠받치는 국가 경제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지금 포항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정부는 포항을 수소특화단지로 지정해 발전용 연료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수소산업 집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영일만 산업단지 일대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되어 수소 기반 발전과 지역 전력 공급을 결합하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단지 지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소특화단지가 수소산업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은 그 산업이 실제 전력 시스템과 연결되어 작동하도록 만드는 토대다. 수소와 전기, 제조업과 전력시장, 산업전환과 지역경제가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철강산업의 탈탄소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포항이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연료전지, 분산에너지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은 한 도시의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구조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전환은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소 공급망과 전력 인프라, 산업 투자와 사회적 합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탄소중립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도와 시장, 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K-기후환경’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산업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산업경쟁력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와 에너지, 산업과 환경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인 제조업 역량을 갖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추진방향이다. 탄소 중심의 낡은 산업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수소와 재생에너지, 저탄소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질서를 준비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생물 시간에 외웠던 “촌사람들은 마카다 철”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생명의 원소와 산업 문명의 재료가 함께 들어 있었다. 탄소는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연료였고 수소는 우리가 건너가야 할 시대의 에너지이며 철은 그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는 문명의 재료다. 철의 도시 포항은 이제 과거의 산업도시를 넘어 수소와 분산에너지의 실증 도시로 변화하게 된다. 탄소의 시대를 넘어 수소와 청정(淸淨)전력의 시대로 건너가는 대한민국 산업대전환의 최전선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와 산업, 환경과 에너지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대한민국은 선택해야 한다. 탄소의 시대를 천천히 연장할 것인가, 수소의 시대를 확실하게 준비할 것인가. 그 선택의 현장에 오늘도 포항의 철이 서 있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3-11

정의로운 철강전환은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으로부터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등장해 온 도시다. 산업화의 초입에서 철은 이 도시의 시간을 단련했고, 제철소와 공장의 불빛은 국가 성장의 상징이 되었다. 자동차와 조선, 건설과 기계산업은 철강을 토대로 확장되었고, 철강은 단순한 공산품을 넘어 산업국가를 떠받치는 철강구조물이 되었다. 포항에서 철은 곧 일자리였고, 가족의 삶이었으며, 지역 공동체의 뿌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산업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적인 비용부과 단계로 전환되면서, 철강제품은 더 이상 품질과 가격, 납기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는 더 이상 환경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철강수출계약서에 반영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 변화는 일시적 규제가 아니다. 기후 대응이 무역질서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산업표준이 형성되고 있다. 탄소 집약 산업은 구조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철강도 예외가 아니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시장 접근 비용은 커지고, 산업의 존립 기반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수소환원제철이 그 해법의 중심에 있다. 기존 고로 공정이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했다면, 수소기반공정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대규모 수소 공급망구축, 안정적인 전력 확보, 막대한 설비 전환 비용, 기술완성도 제고라는 현실적 장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 철강기업과 각국 정부는 이미 장기 전략에 수소환원제철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대한 국가적 응답이 바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K-스틸법이다. 법은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만으로 현장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실제 집행을 좌우하는 것은 시행령이다. 시행령은 정책의 방향을 행정체계와 예산 구조로 연결하는 실행 문서다. 선언이 설계로, 설계가 투자와 공정전환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시행령이다. 지금 우리는 그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이 시기에 어떤 구조가 담기느냐에 따라 철강산업의 미래와 포항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시행령은 단순한 행정 규칙이 아니라 산업전환의 구체적 설계도이다.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 첫째, 수소환원제철을 국가전략기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전략기술 지정은 연구개발 예산, 재정지원, 세제 지원, 정책금융, 규제 특례의 근거가 된다. 초기 전환비용이 막대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율적 결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 경쟁이 국가 단위로 전개되는 시대에 체계적 지원은 필수조건이다. 국가전략기술로 규정하지 않고, 저탄소철강 생산기술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석탄과 코크스 대신에 수소로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이기에 결국 수소환원제철로 승부를 봐야 한다. 애매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명제로 추진력을 높이는 것이 강하게 필요하다. 둘째, 범정부적 조정 체계를 구축하고 추진단을 만들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산업정책, 노동교육, 과학기술, 에너지 계획, 수소 공급망, 전력망 확충, 항만 인프라, 환경인허가, 안전규제가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 복합 정책이다. 개별 부처의 칸막이.분절적 대응으로는 속도와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 통합적 조정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을 설치하는 시행령을 만들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저탄소철강특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산업전환은 실제 공간에서 실증과 상용화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포항은 제철설비와 항만, 연구 인프라, 숙련 인력을 갖춘 도시다. 특구지정은 지역 특혜가 아니라 국가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공간 전략이다. 인허가 간소화, 기반시설 우선 투자, 금융지원이 종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정의로운 전환을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정신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 법은 탄소중립을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정의로운 전환’으로 규정한다. 노동자와 지역 보호, 취약계층 참여 보장, 전환비용의 공정한 분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철강전환 역시 이 원칙과 결합해야 지속 가능하다. 공정변화는 노동시장과 협력 생태계, 지역 상권에 영향을 준다. 직무 전환교육과 재훈련, 협력업체 지원, 주민참여 거버넌스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환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비용이 아니라 정책 지속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과 철강산업에 필요한 안보사항과 보안내용이 있다면 이를 관계기관들이 잘 지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주민들도 협력해야 한다. 나아가 대한민국 대전환의 역사적 도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특구와 지역의 탄소중립거버넌스는 주민들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하여, 과학기술만으로의 대전환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대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내야만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선도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에너지정책과 철강전환을 연계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막대한 수소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수소 생산·수입 전략,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 계획이 철강전환과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에너지 기반 없이 철강전환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 전환은 정책 문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참여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시행령 수립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의견과 지역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시민 역시 관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전환의 의미를 이해하고 토론하며, 지역 미래전략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시민사회는 공론장을 만들고 정책을 점검하며, 정의로운 전환이 제대로 설계되는지 관찰해야 한다. 이러한 참여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지역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ESG 실천과도 직결된다. 시민 참여를 통해 환경적 책임(E), 사회적 보호(S), 투명한 거버넌스(G)가 실현되며, 산업정책의 투명성 강화와 공동체 신뢰 구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산업 전환은 기술 혁신인 동시에 사회 혁신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철강을 생산해야 하는 시대에 철강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철강은 반도체처럼 고수익 산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동차와 조선, 방위산업, 건설을 떠받치는 기간 산업이다. 산업국가라면 반드시 보유해야 할 전략 산업이며, 이를 우리는 철강주권이라 부른다. 글로벌화된 철기 시대에 철강 생산역량을 유지하는 일은 더 이상 기업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다. 이는 국가의 책임이자 리더십의 문제이다. 국가 지도자는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재편의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과 포항 시민의 참여를 확대해 새로운 철강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K-스틸법은 출발점이다. 시행령은 그 길의 설계도다. 그리고 지금, 그 설계가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그 설계를 완성할 것이다. 그 결과는 포항의 미래이자 대한민국 산업 주권의 미래가 될 것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2-25

K-스틸법과 철강산업의 ESG

포항은 철로 성장한 도시다. 산업화의 굴뚝 연기 속에서 이 도시는 일어섰고, 제철소의 불빛은 밤하늘을 밝히는 산업의 등대였다. 누군가에게 철강은 통계 속 수치일지 모르지만, 포항 시민에게 철강은 삶의 리듬이다. 아버지의 작업복, 어머니의 장부, 자녀의 등록금, 동네 식당의 손님 수까지 철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유행처럼 떠오른 ESG라는 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도 이곳에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SG는 이제 기업 보고서의 항목이 아니라, 우리 도시의 일자리와 생존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필자는 삶의 태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진실함이 제일이며 다음으로는 책임감이라고 답한다. 진실함이 정의로움의 기초이고, 진실이 없는 자유·정의·진리는 허공에 뜬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과 과장, 구호만으로 현실을 덮으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이 생각은 산업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이 서 있는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요구해야 할 것도 결국 진실이다. 탄소의 진실, 고용의 진실, 지역경제의 진실, 그리고 전환의 진실이다. 한때 기업의 책임은 CSR(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었다.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장학금과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었다. 그 노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기후위기와 글로벌 규제, 금융의 변화 속에서 이제는 CSR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SG는“좋은 일을 더 하자”는 권고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꿔라”는 요구다. 특히 철강처럼 탄소와 에너지, 노동과 공급망이 얽힌 산업에서는 ESG가 곧 생존의 문턱이 된다. 시장은 탄소를 비용으로 계산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장기적 위험을 따진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철강은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탄소를 얼마나 줄였는가’로 평가받는다. 이 지점에서 K-스틸법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K-스틸법은 단순한 산업 지원책이 아니다. 포항의 관점에서 이 법은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법적 틀이다. 중요한 것은 법이 철강을 지켜주는 방패로만 남지 않고, 철강을 바꾸는 설계도로 작동하느냐다. 지금 시대에는 철강을 바꾸는 길이 곧 철강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현실을 직시해 보자. 만약 철강의 탄소중립 전환이 지연되거나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생산이 축소되며, 투자 위축이 이어질 것이다.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가 먼저 흔들리고, 지역 상권이 위축되며,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 탄소전환 실패는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도시의 위기다. 반대로 전환에 성공하면 어떨까.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확대,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 신소재와 정비·안전·데이터 산업까지 연계되면서 포항은 저탄소 제조혁신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ESG는 포항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수소환원제철은 그 상징이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면 부산물은 탄소가 아니라 물이 된다. 철강의 환경 부담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포항 시민이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술이 단순한 공정 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 인프라, 재생에너지 전력망, 안전 기준, 연구개발, 인력 재훈련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제철소 내부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 산업 생태계의 변화다. 포항은 이 전환을 외부 정책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도시 전략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ESG의 S, 즉 사회는 포항에서 더욱 절실하다. 공정이 바뀌면 직무가 바뀐다. 숙련의 내용이 달라지고, 필요한 인력이 달라진다. 전환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면 시민의 지지는 얻기 어렵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 재교육과 전직 지원, 협력업체의 전환 지원, 청년을 위한 신산업 훈련과 채용 연계가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전환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배구조, 즉 G 역시 중요하다. 거버넌스는 기업 내부의 이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사회와의 소통, 정보 공개, 위험에 대한 진실한 설명,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모두 거버넌스다. 전환 과정에서 시민이 배제되면 불신이 쌓이고, 불신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포항에는 시민·노동·기업·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전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ESG의 G는 결국“침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라는 요구다. 이 흐름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도 연결된다. 양질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산업과 도시, 기후행동, 친환경·친인권 제도는 모두 포항의 과제이기도 하다. 도시가 지속가능하려면 산업이 지속가능해야 하고, 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탄소를 줄여야 하며, 탄소를 줄이려면 기술 전환과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유엔의 SDGs가 방향이라면, ESG는 그 방향을 기업과 산업에 적용하는 실행 도구다. 따라서 K-스틸법이 포항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저탄소 공정 전환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수소·전력·인프라와 연구개발을 통합 지원하는 실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전환 비용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전환 과정이 투명하고 참여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빠지면 법은 선언으로 남고, 시민의 불안은 커질 것이다. 포항 시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도시에서 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이다. 전환이 성공하면 포항은 세계가 주목하는 저탄소 산업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면 경쟁력은 약화되고, 기회는 사라진다. 선택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준비하느냐, 뒤늦게 따라가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다시 진실을 생각한다. ESG는 결국 진실을 요구하는 제도다. 탄소를 숨기지 말 것, 일자리의 변화를 외면하지 말 것, 지역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 숫자와 보고서가 아니라, 진실한 실행이 필요하다. K-스틸법은 그 진실을 포항의 전략으로 바꿀 수 있는 도구다. 포항은 철로 세워진 도시다. 이제 저탄소 철로 미래를 세워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전환이 기술만의 과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임을 잊지 않는다면, 포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철강의 ESG는 기업의 숙제가 아니라 도시의 전략이며, K-스틸법은 그 전략을 현실로 만드는 첫 문장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2-11

수소환원제철, 국가의 결단과 주도성이 중요하다

2025년 12월 26일자 파이낸셜뉴스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수소환원제철 큰일났다···한국은 R&D, 중국은 벌써 생산 시작.” 기사에 따르면 중국 최대 철강기업인 ‘중국 바오우(宝武)그룹’은 광둥성 잔장(湛江)시에 연간 10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생산라인을 완공하고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고, 전기로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이 공정은 기존 제철방식보다 탄소배출을 50~80%까지 줄일 수 있으며, 연간 300만 톤이 넘는 탄소감축효과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과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은 냉정하다. 한국은 아직 범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기반으로 한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8146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의미 있는 출발임은 분명하지만, 이미 생산 경쟁에 들어간 중국과의 격차는 분명하다. 이 차이를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철강산업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국가전략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대응 역시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독립적 존엄과 자유와 더불어, 국민 전체의 생활과 생존을 책임지는 공동체가 바로 국가이고 정부이기 때문이다. 수소환원제철에서 국가와 정부의 주도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먼저 수소환원제철의 고지에 깃발을 꽂은 사실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은 명확하다. ‘누가 더 좋은 기술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먼저 국가의 결단을 내렸는가’이다. 수소환원제철은 개별 기업이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신기술이 아니다. 이는 철강 생산방식뿐 아니라 국가 산업구조와 에너지시스템을 동시에 바꾸는 전면적 대전환 프로젝트다. 수소환원제철은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요구한다. 첫째, 수조~수십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투자다. 둘째, 흔히 “10년이 걸린다”고 말해지는 장기간의 기술적 불확실성이다. 셋째, 청정수소와 재생전력이라는 에너지 인프라의 동시 구축이다. 이 모든 조건은 개별 기업의 통제범위를 명백히 넘어선다. 시장에만 맡길 경우“누군가 먼저 하면 따라가겠다”는 조정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의 개입 없이는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어렵다. 실제로 주요국은 이미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스웨덴은 정부·국영 전력회사·철강기업이 함께 실증부터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관리하고 있다. 독일은 수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 전력과 수소 가격 리스크를 국가가 보전하며 철강전환을 에너지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중국 역시 국가계획에 수소에너지 기반 제철전환을 포함시키고, 국영 철강기업에 상용화를 주문했다. 이들에게 수소환원제철은 기술 실험이 아니라 철강강국 간 생산능력 경쟁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수소환원제철은 단기간 성과를 내는 정책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국가 전환프로젝트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행정구조는 이러한 장기과제에 취약하다. 정권교체와 함께 정책 우선순위가 흔들리고, 조직과 예산이 단절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수소환원제철 논의는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 개인의 의지 차원을 넘어, 국가전략의‘계속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산업 전환과 탄소중립 전략이 실증을 넘어 상용화 단계까지 이어지려면, 정책의 시간표 역시 단임 임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구조에 대한 논의 또한 특정 인물을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이러한 장기 국가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고민 속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국도 이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을 포스코라는 한 기업의 선택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이는‘기업의 혁신과제’가 아니라‘국가의 전환과제’이며, 국가전략기술로 공식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주도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첫째, 국가 비전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언제 실증을 끝내고 언제 상용화로 넘어갈 것인지 국가가 명확히 제시해야 기업이 움직인다. 둘째, 초기 단계에서 불가피한 수소·전력 가격 리스크를 국가가 흡수해야 한다.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탄소차액계약제도(CCfD)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핵심 수단이다. 셋째, 연구개발을 넘어 설비투자에 대한 직접 지원과 금융보증이 필요하다. “실패하면 국가도 함께 책임진다”는 시그널이 있어야 투자 결단이 가능하다. 넷째, 수소 생산·저장·운송, 전력망, 항만과 같은 인프라는 공공재로 인식하고 국가가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법과 제도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전환 특별법, 인허가 패스트트랙, 그린철강 공공조달 의무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위한 장치다. 특히 K-스틸법 시행령에 수소환원제철의 국가 주도 실증·상용화, 국고 직접 지원, 전담조직 설치가 명확히 담기지 않으면 법은 구호에 그칠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제를 통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설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산업·에너지·환경·인력 정책을 통합 조정할 국무총리실 산하의 수소환원제철 전환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또한 전환청(추진단)이 자리할 곳은 책상 위의 정책 공간이 아니라, 실제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인 포항이 그 장소다. 실증·생산·인력·연구가 공간적으로 집적된 곳에서 산업전환의 속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되어 왔다. 수소환원제철이 뒤처질 경우 그 대가는 막대하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수출 경쟁력을 잃고, 자동차·조선·방산 등 연관 산업이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안보의 문제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기업이 알아서 하길 기다리자”거나 “R&D만 하면 언젠가 된다”는 접근으로는 늦다. 필요한 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수소환원제철 구축 기간의 계속성을 보장하며, 현장에서 실행하는 체계다. RE100을 모르고 시작해서 아까운 시간 3년을 허비했다. 다시 자세를 다잡아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중심, 포항에서 수소환원제철의 신기원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이 제2의 철강혁명이라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결단이며, 그 결단은 국가의 문제이므로 정부와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임무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28

탄소의 시대에서 수소의 시대로-기후위기와 포항의 다음 10년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는 지구의 자전축 변화와 공전 궤도 변화로 인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복사량, 즉 일사량(日射量)이 달라지고, 그 결과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지구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며 기온 변동을 겪어왔고, 현재 인류는 약 1만2000년 전 시작된 홀로세(Holocene)라는 간빙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인류는 농업을 시작했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간빙기가 끝나기까지 아직 약 1만 년가량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지금의 온난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며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지구 평균기온을 급격히 상승시켰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자연적 기후 변동과 인간이 초래한 급격한 온난화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석유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 역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과대학을 다녀 본 이들은 2학년 공업수학 시간에 배웠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를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푸리에급수를 정립한 프랑스 과학자, 죠제프 푸리에(1768~1830)가 ‘대기가 열을 붙잡아 가둔다는 온실효과’를 처음 발표한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날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일부 과학자들만의 전문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약 250년 동안 인류는 석탄과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루어왔다. 방적기와 증기기관, 제철산업으로 시작된 탄소 문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탄소산업이 이제는 인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가 지속된다면, 수백 년 후에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워터 월드(Water World)’에서처럼 남극대륙의 빙하가 모두 녹아 인간이 육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에 살며, 육지를 찾아 떠돌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 역시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지금 당장 전 세계의 모든 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미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후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운명이 결코 밝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다. 유엔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산업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에 나서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실행 수단이 되었다. 결국 인류는 탄소 에너지에서 벗어나 수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1만년의 간빙기 동안, 탄소 문명이 아니라 수소 문명이 인류 사회를 떠받쳐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필자의 중학생 시절 포항 송도동에는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다. 형산강 건너편에는 포항제철이 우뚝 솟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해도동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퇴근했다. 산업화의 열기와 함께, 산업재해로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그 무렵 들려왔다. 포항은 그렇게 한국 산업화의 현장이었다. 당시 포항에서 일하던 이들은 주로 1차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한국의 탄소산업을 이끌며 산업화를 완성한 세대이다.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탄소에서 수소로 전환되는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포항에는 석탄화력발전소 못지않은 이산화탄소 배출원인 포스코의 용광로가 있다. 이를 대체할 핵심 해법이 수소환원제철이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포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포스코는 대기업이므로 당연히 잘 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또 일반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잘 알 수도 없다. 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시민들이 우리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힘을 합쳐 개척해나가야 하는지 서로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K-스틸법이 통과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이 법은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통해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 경제안보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6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포항은 이미 철강 집적지이자 연구·인력·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이다. K-스틸법에서 규정한 저탄소철강특구 포항지정과 수소환원제철의 성공 여부는 포항의 향후 10년, 그리고 그 10년 이후의 미래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적 과제이다. 탄소의 시대는 저물고 수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에너지 공급망, 신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가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 변화는 지켜볼 일이 아니라, 포항시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지역 협력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공적토론영역이 자유로운 사회문화적 환경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포항의 10년은 협력과 연대가 어젠다가 되길 희망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