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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의로운 철강전환은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으로부터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등장해 온 도시다. 산업화의 초입에서 철은 이 도시의 시간을 단련했고, 제철소와 공장의 불빛은 국가 성장의 상징이 되었다. 자동차와 조선, 건설과 기계산업은 철강을 토대로 확장되었고, 철강은 단순한 공산품을 넘어 산업국가를 떠받치는 철강구조물이 되었다. 포항에서 철은 곧 일자리였고, 가족의 삶이었으며, 지역 공동체의 뿌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산업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적인 비용부과 단계로 전환되면서, 철강제품은 더 이상 품질과 가격, 납기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는 더 이상 환경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철강수출계약서에 반영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 변화는 일시적 규제가 아니다. 기후 대응이 무역질서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산업표준이 형성되고 있다. 탄소 집약 산업은 구조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철강도 예외가 아니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시장 접근 비용은 커지고, 산업의 존립 기반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수소환원제철이 그 해법의 중심에 있다. 기존 고로 공정이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했다면, 수소기반공정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대규모 수소 공급망구축, 안정적인 전력 확보, 막대한 설비 전환 비용, 기술완성도 제고라는 현실적 장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 철강기업과 각국 정부는 이미 장기 전략에 수소환원제철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대한 국가적 응답이 바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K-스틸법이다. 법은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만으로 현장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실제 집행을 좌우하는 것은 시행령이다. 시행령은 정책의 방향을 행정체계와 예산 구조로 연결하는 실행 문서다. 선언이 설계로, 설계가 투자와 공정전환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시행령이다. 지금 우리는 그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이 시기에 어떤 구조가 담기느냐에 따라 철강산업의 미래와 포항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시행령은 단순한 행정 규칙이 아니라 산업전환의 구체적 설계도이다.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 첫째, 수소환원제철을 국가전략기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전략기술 지정은 연구개발 예산, 재정지원, 세제 지원, 정책금융, 규제 특례의 근거가 된다. 초기 전환비용이 막대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율적 결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 경쟁이 국가 단위로 전개되는 시대에 체계적 지원은 필수조건이다. 국가전략기술로 규정하지 않고, 저탄소철강 생산기술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석탄과 코크스 대신에 수소로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이기에 결국 수소환원제철로 승부를 봐야 한다. 애매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명제로 추진력을 높이는 것이 강하게 필요하다. 둘째, 범정부적 조정 체계를 구축하고 추진단을 만들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산업정책, 노동교육, 과학기술, 에너지 계획, 수소 공급망, 전력망 확충, 항만 인프라, 환경인허가, 안전규제가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 복합 정책이다. 개별 부처의 칸막이.분절적 대응으로는 속도와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 통합적 조정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수소환원제철 추진단을 설치하는 시행령을 만들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저탄소철강특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산업전환은 실제 공간에서 실증과 상용화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포항은 제철설비와 항만, 연구 인프라, 숙련 인력을 갖춘 도시다. 특구지정은 지역 특혜가 아니라 국가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공간 전략이다. 인허가 간소화, 기반시설 우선 투자, 금융지원이 종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정의로운 전환을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정신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 법은 탄소중립을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정의로운 전환’으로 규정한다. 노동자와 지역 보호, 취약계층 참여 보장, 전환비용의 공정한 분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철강전환 역시 이 원칙과 결합해야 지속 가능하다. 공정변화는 노동시장과 협력 생태계, 지역 상권에 영향을 준다. 직무 전환교육과 재훈련, 협력업체 지원, 주민참여 거버넌스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환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비용이 아니라 정책 지속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과 철강산업에 필요한 안보사항과 보안내용이 있다면 이를 관계기관들이 잘 지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주민들도 협력해야 한다. 나아가 대한민국 대전환의 역사적 도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특구와 지역의 탄소중립거버넌스는 주민들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하여, 과학기술만으로의 대전환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대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내야만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선도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에너지정책과 철강전환을 연계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막대한 수소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수소 생산·수입 전략,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 계획이 철강전환과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에너지 기반 없이 철강전환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 전환은 정책 문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참여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시행령 수립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의견과 지역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시민 역시 관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전환의 의미를 이해하고 토론하며, 지역 미래전략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시민사회는 공론장을 만들고 정책을 점검하며, 정의로운 전환이 제대로 설계되는지 관찰해야 한다. 이러한 참여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지역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ESG 실천과도 직결된다. 시민 참여를 통해 환경적 책임(E), 사회적 보호(S), 투명한 거버넌스(G)가 실현되며, 산업정책의 투명성 강화와 공동체 신뢰 구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산업 전환은 기술 혁신인 동시에 사회 혁신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철강을 생산해야 하는 시대에 철강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철강은 반도체처럼 고수익 산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동차와 조선, 방위산업, 건설을 떠받치는 기간 산업이다. 산업국가라면 반드시 보유해야 할 전략 산업이며, 이를 우리는 철강주권이라 부른다. 글로벌화된 철기 시대에 철강 생산역량을 유지하는 일은 더 이상 기업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다. 이는 국가의 책임이자 리더십의 문제이다. 국가 지도자는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재편의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과 포항 시민의 참여를 확대해 새로운 철강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K-스틸법은 출발점이다. 시행령은 그 길의 설계도다. 그리고 지금, 그 설계가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포항시와 포항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그 설계를 완성할 것이다. 그 결과는 포항의 미래이자 대한민국 산업 주권의 미래가 될 것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2-25

K-스틸법과 철강산업의 ESG

포항은 철로 성장한 도시다. 산업화의 굴뚝 연기 속에서 이 도시는 일어섰고, 제철소의 불빛은 밤하늘을 밝히는 산업의 등대였다. 누군가에게 철강은 통계 속 수치일지 모르지만, 포항 시민에게 철강은 삶의 리듬이다. 아버지의 작업복, 어머니의 장부, 자녀의 등록금, 동네 식당의 손님 수까지 철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유행처럼 떠오른 ESG라는 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도 이곳에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SG는 이제 기업 보고서의 항목이 아니라, 우리 도시의 일자리와 생존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필자는 삶의 태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진실함이 제일이며 다음으로는 책임감이라고 답한다. 진실함이 정의로움의 기초이고, 진실이 없는 자유·정의·진리는 허공에 뜬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과 과장, 구호만으로 현실을 덮으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이 생각은 산업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이 서 있는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요구해야 할 것도 결국 진실이다. 탄소의 진실, 고용의 진실, 지역경제의 진실, 그리고 전환의 진실이다. 한때 기업의 책임은 CSR(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었다.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장학금과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었다. 그 노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기후위기와 글로벌 규제, 금융의 변화 속에서 이제는 CSR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SG는“좋은 일을 더 하자”는 권고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꿔라”는 요구다. 특히 철강처럼 탄소와 에너지, 노동과 공급망이 얽힌 산업에서는 ESG가 곧 생존의 문턱이 된다. 시장은 탄소를 비용으로 계산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장기적 위험을 따진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철강은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탄소를 얼마나 줄였는가’로 평가받는다. 이 지점에서 K-스틸법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K-스틸법은 단순한 산업 지원책이 아니다. 포항의 관점에서 이 법은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법적 틀이다. 중요한 것은 법이 철강을 지켜주는 방패로만 남지 않고, 철강을 바꾸는 설계도로 작동하느냐다. 지금 시대에는 철강을 바꾸는 길이 곧 철강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현실을 직시해 보자. 만약 철강의 탄소중립 전환이 지연되거나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생산이 축소되며, 투자 위축이 이어질 것이다.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가 먼저 흔들리고, 지역 상권이 위축되며,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 탄소전환 실패는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도시의 위기다. 반대로 전환에 성공하면 어떨까.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확대,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 신소재와 정비·안전·데이터 산업까지 연계되면서 포항은 저탄소 제조혁신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ESG는 포항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수소환원제철은 그 상징이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면 부산물은 탄소가 아니라 물이 된다. 철강의 환경 부담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포항 시민이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술이 단순한 공정 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 인프라, 재생에너지 전력망, 안전 기준, 연구개발, 인력 재훈련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제철소 내부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 산업 생태계의 변화다. 포항은 이 전환을 외부 정책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도시 전략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ESG의 S, 즉 사회는 포항에서 더욱 절실하다. 공정이 바뀌면 직무가 바뀐다. 숙련의 내용이 달라지고, 필요한 인력이 달라진다. 전환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면 시민의 지지는 얻기 어렵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 재교육과 전직 지원, 협력업체의 전환 지원, 청년을 위한 신산업 훈련과 채용 연계가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전환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배구조, 즉 G 역시 중요하다. 거버넌스는 기업 내부의 이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사회와의 소통, 정보 공개, 위험에 대한 진실한 설명,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모두 거버넌스다. 전환 과정에서 시민이 배제되면 불신이 쌓이고, 불신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포항에는 시민·노동·기업·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전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ESG의 G는 결국“침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라는 요구다. 이 흐름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도 연결된다. 양질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산업과 도시, 기후행동, 친환경·친인권 제도는 모두 포항의 과제이기도 하다. 도시가 지속가능하려면 산업이 지속가능해야 하고, 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탄소를 줄여야 하며, 탄소를 줄이려면 기술 전환과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유엔의 SDGs가 방향이라면, ESG는 그 방향을 기업과 산업에 적용하는 실행 도구다. 따라서 K-스틸법이 포항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저탄소 공정 전환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수소·전력·인프라와 연구개발을 통합 지원하는 실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전환 비용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전환 과정이 투명하고 참여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빠지면 법은 선언으로 남고, 시민의 불안은 커질 것이다. 포항 시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도시에서 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이다. 전환이 성공하면 포항은 세계가 주목하는 저탄소 산업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면 경쟁력은 약화되고, 기회는 사라진다. 선택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준비하느냐, 뒤늦게 따라가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다시 진실을 생각한다. ESG는 결국 진실을 요구하는 제도다. 탄소를 숨기지 말 것, 일자리의 변화를 외면하지 말 것, 지역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 숫자와 보고서가 아니라, 진실한 실행이 필요하다. K-스틸법은 그 진실을 포항의 전략으로 바꿀 수 있는 도구다. 포항은 철로 세워진 도시다. 이제 저탄소 철로 미래를 세워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전환이 기술만의 과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임을 잊지 않는다면, 포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철강의 ESG는 기업의 숙제가 아니라 도시의 전략이며, K-스틸법은 그 전략을 현실로 만드는 첫 문장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2-11

수소환원제철, 국가의 결단과 주도성이 중요하다

2025년 12월 26일자 파이낸셜뉴스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수소환원제철 큰일났다···한국은 R&D, 중국은 벌써 생산 시작.” 기사에 따르면 중국 최대 철강기업인 ‘중국 바오우(宝武)그룹’은 광둥성 잔장(湛江)시에 연간 10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생산라인을 완공하고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고, 전기로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이 공정은 기존 제철방식보다 탄소배출을 50~80%까지 줄일 수 있으며, 연간 300만 톤이 넘는 탄소감축효과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과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은 냉정하다. 한국은 아직 범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기반으로 한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8146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의미 있는 출발임은 분명하지만, 이미 생산 경쟁에 들어간 중국과의 격차는 분명하다. 이 차이를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철강산업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국가전략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대응 역시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독립적 존엄과 자유와 더불어, 국민 전체의 생활과 생존을 책임지는 공동체가 바로 국가이고 정부이기 때문이다. 수소환원제철에서 국가와 정부의 주도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먼저 수소환원제철의 고지에 깃발을 꽂은 사실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은 명확하다. ‘누가 더 좋은 기술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먼저 국가의 결단을 내렸는가’이다. 수소환원제철은 개별 기업이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신기술이 아니다. 이는 철강 생산방식뿐 아니라 국가 산업구조와 에너지시스템을 동시에 바꾸는 전면적 대전환 프로젝트다. 수소환원제철은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요구한다. 첫째, 수조~수십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투자다. 둘째, 흔히 “10년이 걸린다”고 말해지는 장기간의 기술적 불확실성이다. 셋째, 청정수소와 재생전력이라는 에너지 인프라의 동시 구축이다. 이 모든 조건은 개별 기업의 통제범위를 명백히 넘어선다. 시장에만 맡길 경우“누군가 먼저 하면 따라가겠다”는 조정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의 개입 없이는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어렵다. 실제로 주요국은 이미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스웨덴은 정부·국영 전력회사·철강기업이 함께 실증부터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관리하고 있다. 독일은 수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 전력과 수소 가격 리스크를 국가가 보전하며 철강전환을 에너지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중국 역시 국가계획에 수소에너지 기반 제철전환을 포함시키고, 국영 철강기업에 상용화를 주문했다. 이들에게 수소환원제철은 기술 실험이 아니라 철강강국 간 생산능력 경쟁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수소환원제철은 단기간 성과를 내는 정책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국가 전환프로젝트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행정구조는 이러한 장기과제에 취약하다. 정권교체와 함께 정책 우선순위가 흔들리고, 조직과 예산이 단절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수소환원제철 논의는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 개인의 의지 차원을 넘어, 국가전략의‘계속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산업 전환과 탄소중립 전략이 실증을 넘어 상용화 단계까지 이어지려면, 정책의 시간표 역시 단임 임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구조에 대한 논의 또한 특정 인물을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이러한 장기 국가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고민 속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국도 이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을 포스코라는 한 기업의 선택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이는‘기업의 혁신과제’가 아니라‘국가의 전환과제’이며, 국가전략기술로 공식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주도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첫째, 국가 비전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언제 실증을 끝내고 언제 상용화로 넘어갈 것인지 국가가 명확히 제시해야 기업이 움직인다. 둘째, 초기 단계에서 불가피한 수소·전력 가격 리스크를 국가가 흡수해야 한다.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탄소차액계약제도(CCfD)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핵심 수단이다. 셋째, 연구개발을 넘어 설비투자에 대한 직접 지원과 금융보증이 필요하다. “실패하면 국가도 함께 책임진다”는 시그널이 있어야 투자 결단이 가능하다. 넷째, 수소 생산·저장·운송, 전력망, 항만과 같은 인프라는 공공재로 인식하고 국가가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법과 제도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전환 특별법, 인허가 패스트트랙, 그린철강 공공조달 의무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위한 장치다. 특히 K-스틸법 시행령에 수소환원제철의 국가 주도 실증·상용화, 국고 직접 지원, 전담조직 설치가 명확히 담기지 않으면 법은 구호에 그칠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제를 통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설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산업·에너지·환경·인력 정책을 통합 조정할 국무총리실 산하의 수소환원제철 전환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또한 전환청(추진단)이 자리할 곳은 책상 위의 정책 공간이 아니라, 실제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인 포항이 그 장소다. 실증·생산·인력·연구가 공간적으로 집적된 곳에서 산업전환의 속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되어 왔다. 수소환원제철이 뒤처질 경우 그 대가는 막대하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수출 경쟁력을 잃고, 자동차·조선·방산 등 연관 산업이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안보의 문제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기업이 알아서 하길 기다리자”거나 “R&D만 하면 언젠가 된다”는 접근으로는 늦다. 필요한 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수소환원제철 구축 기간의 계속성을 보장하며, 현장에서 실행하는 체계다. RE100을 모르고 시작해서 아까운 시간 3년을 허비했다. 다시 자세를 다잡아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중심, 포항에서 수소환원제철의 신기원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이 제2의 철강혁명이라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결단이며, 그 결단은 국가의 문제이므로 정부와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임무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28

탄소의 시대에서 수소의 시대로-기후위기와 포항의 다음 10년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는 지구의 자전축 변화와 공전 궤도 변화로 인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복사량, 즉 일사량(日射量)이 달라지고, 그 결과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지구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며 기온 변동을 겪어왔고, 현재 인류는 약 1만2000년 전 시작된 홀로세(Holocene)라는 간빙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인류는 농업을 시작했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간빙기가 끝나기까지 아직 약 1만 년가량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지금의 온난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며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지구 평균기온을 급격히 상승시켰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자연적 기후 변동과 인간이 초래한 급격한 온난화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석유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 역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과대학을 다녀 본 이들은 2학년 공업수학 시간에 배웠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를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푸리에급수를 정립한 프랑스 과학자, 죠제프 푸리에(1768~1830)가 ‘대기가 열을 붙잡아 가둔다는 온실효과’를 처음 발표한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날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일부 과학자들만의 전문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약 250년 동안 인류는 석탄과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루어왔다. 방적기와 증기기관, 제철산업으로 시작된 탄소 문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탄소산업이 이제는 인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가 지속된다면, 수백 년 후에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워터 월드(Water World)’에서처럼 남극대륙의 빙하가 모두 녹아 인간이 육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에 살며, 육지를 찾아 떠돌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 역시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지금 당장 전 세계의 모든 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미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후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운명이 결코 밝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다. 유엔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산업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에 나서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실행 수단이 되었다. 결국 인류는 탄소 에너지에서 벗어나 수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1만년의 간빙기 동안, 탄소 문명이 아니라 수소 문명이 인류 사회를 떠받쳐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필자의 중학생 시절 포항 송도동에는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다. 형산강 건너편에는 포항제철이 우뚝 솟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해도동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퇴근했다. 산업화의 열기와 함께, 산업재해로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그 무렵 들려왔다. 포항은 그렇게 한국 산업화의 현장이었다. 당시 포항에서 일하던 이들은 주로 1차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한국의 탄소산업을 이끌며 산업화를 완성한 세대이다.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탄소에서 수소로 전환되는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포항에는 석탄화력발전소 못지않은 이산화탄소 배출원인 포스코의 용광로가 있다. 이를 대체할 핵심 해법이 수소환원제철이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포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포스코는 대기업이므로 당연히 잘 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또 일반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잘 알 수도 없다. 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시민들이 우리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힘을 합쳐 개척해나가야 하는지 서로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K-스틸법이 통과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이 법은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통해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 경제안보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6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포항은 이미 철강 집적지이자 연구·인력·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이다. K-스틸법에서 규정한 저탄소철강특구 포항지정과 수소환원제철의 성공 여부는 포항의 향후 10년, 그리고 그 10년 이후의 미래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적 과제이다. 탄소의 시대는 저물고 수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에너지 공급망, 신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가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 변화는 지켜볼 일이 아니라, 포항시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지역 협력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공적토론영역이 자유로운 사회문화적 환경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포항의 10년은 협력과 연대가 어젠다가 되길 희망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