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수요 감소 등 철강 압박 철강산업 위기는 도시 전체의 흔들림 일자리·청년 유출···지방 소멸로 연결 포항, 인프라·인력·항만·연구개발 등 수소환원제철 전환의 최적 조건 갖춰 정치 아닌 ‘생존 전략’으로 선택해야
2026년 4월 6일 오전 11시, 포항시청 브리핑룸에 두 개의 노동조합이 나란히 섰다. 서로 다른 상급 단체에 속한 포스코노동조합과 현대제철지회였다. 같은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들이 꺼낸 메시지는 더 이례적이었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포항이라는 도시의 심장도 멈춘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도시 전체를 향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철강 위기를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10만 철강 가족의 생존 문제이자, 포항이라는 도시의 존립 문제로 규정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 탄소 규제 강화,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한 산업용 전기요금까지, 산업을 짓누르는 사중고를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그 말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방정부의 전면 대응을 요구했고, 실질적인 지원책과 함께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산업 위기를 놓고 공개적인 정책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장면은 지금 포항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항에서 철강은 산업이 아니라 삶의 일상이다. 그래서 철강의 흔들림은 곧 도시 전체의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철강이 약해지면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가 줄면 청년이 떠나며, 청년이 떠나면 도시의 숨결이 빠르게 식는다. 지방소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산업의 약화에서 시작해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 포항이 서 있는 자리는 그 연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단순한 경기의 등락이 아니다. 산업을 둘러싼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되었고, 철강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평가되던 시대를 지나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으로 평가받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고탄소 철강은 경쟁력 이전에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된다. 전환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 앞에서 포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다. 철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강을 바꾸는 것이다. 그 중심에 수소환원제철이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는 이 방식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철강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환을 가장 현실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포항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산업 생태계와 숙련된 노동력, 항만과 물류, 연구개발 기반이 이미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철강의 과거가 포항에 있었다면, 철강의 미래 또한 포항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방향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수소 산업은 목표는 분명하지만 기반은 취약하다. 청정수소는 아직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았고 가격도 높다. 공급 체계 역시 산업 현장의 요구를 감당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정수소만을 기준으로 산업을 설계하면 출발 단계에서부터 전환이 멈춰 설 수 있다. 산업은 선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량과 가격, 그리고 예측 가능한 환경이 갖춰질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로다. 초기 단계에서는 일반수소를 기반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며 산업을 키운 뒤 점진적으로 청정수소로 전환해 가야 한다. 과정을 건너뛴 전환은 없다. 이 단계를 무시하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술의 이름으로만 남고, 현장은 끝없는 대기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 문제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소 산업을 바라보고 투자에 나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 설비와 부품, 저장과 운송, 안전 관리와 플랜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이들 기업이다. 산업 전환이 성공하려면 이 생태계 전체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수소 관련 중소기업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수소 생산과 관련한 혁신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포항이 수소 산업 특구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현장의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요와 가격을 확보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기업 경영에는 ‘자본의 시간’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시장으로 연결되기까지 버틸 자금이 없으면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현금 흐름이 끊기는 순간 기술도 산업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산업 전환의 성패는 대기업의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투자하고 생산하고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이제 시선은 6·3 포항시장선거로 향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지역 정치의 경쟁이 아니다. 포항이 철강 도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전환에 실패한 도시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후보들의 공약은 이 변화에 답하고 있는가.
수소에너지가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수소환원제철은 더 이상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이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그 공약은 현실을 외면한 것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내용이다. 수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가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철강 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노동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중앙정부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공약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 계획이어야 한다.
여기서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문제는 특정 정당의 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강의 전환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미래를 좌우하는 이 과제는 여야를 나눌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야를 넘어 공통의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할 최소한의 합의이자 출발점이다.
따라서 수소환원제철은 특정 후보의 차별화 공약이 아니라, 모든 후보가 반드시 채택해야 할 기본 공약이 되어야 한다. 경쟁은 채택 여부가 아니라 실행 능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더 현실적인 경로를 제시하는가, 누가 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가, 누가 더 빠르게 산업 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진짜 선택이 된다.
포항은 한 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도시다. 이제 다시 한 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과거의 방식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산업 질서를 여는 도시가 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철강이 멈추면 도시도 멈춘다. 그러나 철강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포항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산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약속은 분명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선택 가능한 공약이 아니다. 포항시장에 출마하는 후보라면, 여야를 떠나 누구나 반드시 제시해야 할 공약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