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도 피로하다는 말은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수면시간이 충분한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하루 종일 머리가 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검사에선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지만 몸 상태는 분명 정상과는 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라 넘겨버리기도 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잠의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우리 몸의 휴식은 자율신경이 조절한다. 낮에 활동할 때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와 혈압이 올라가고 근육이 긴장하며 몸은 활동 모드에 들어간다. 반대로 밤이 되면 부교감신경이 우세해지면서 심박이 안정되고 호흡이 깊어지며 근육이 이완된다. 이때 뇌는 낮 동안 쌓인 피로와 정보를 정리하고 몸은 손상된 조직을 회복한다.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는 의식을 가라앉히고 회복을 위해서다.
현대인의 몸은 밤이 되어도 이 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스트레스와 스마트폰 사용, 늦은 업무, 지속적인 긴장 상태, 만성 통증, 불안감 등으로 교감신경이 밤에도 계속 활성화되어 겉으로는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데 몸은 여전히 경계 상태를 유지한다. 수면은 하고 있지만 회복이 되지 않는 상태다.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져도 피로는 쌓이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잠드는 데는 큰 문제는 없지만 새벽에 자주 깨고 다시 깊이 잠들지 못한다. 꿈을 많이 꾸거나 자는 동안 이를 악무는 경우도 있다. 아침엔 몸이 무겁고 머리가 맑지 않으며 낮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예민해진다. 두통, 어지럼, 소화불량, 목과 어깨의 만성 긴장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각각의 증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 균형이 무너졌다는 하나의 신호로 볼 수 있다.
한방은 이러한 상태를 몸의 회복 능력이 저하된 것으로 본다. 기혈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긴장이 지속되면 밤에도 몸이 충분히 이완되지 못한다.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잠드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깊은 휴식 상태로 들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보통 경추와 어깨 주변 근육이 지속적으로 긴장되어 있는데 이는 자율신경에도 영향을 주어 몸이 계속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을 풀어주고 자율신경 균형을 안정시키는 치료를 병행하면 수면 시간이 크게 늘지 않아도 수면의 깊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약침치료와 상부경추를 풀어주는 추나 그리고 체질에 맞춘 한약 치료 등을 통해 과도하게 항진된 신경계를 안정시키면 피로감이 줄어들고 낮 동안의 집중력도 회복된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습관은 뇌를 각성 상태로 유지시킨다. 늦은 시간의 과식이나 카페인 섭취 역시 자율신경 전환을 방해한다.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잠들기 전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호흡만으로도 수면의 질은 생각보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잠은 몸과 마음을 재생시키는 과정이다. 충분히 잤는데도 계속 피곤하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피로하다는 소리다. 피로가 오래 갈수록 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다. 깊이 쉬지 못하는 상태가 반복된다면 단순한 피로로 넘기지 말고 몸의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