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기업, 장비개발 성공하면 부담금 받는다 구미, 반도체 FAB 1-2개 수용···하루 50만t 용수공급
반도체 전공정이 가능하려면 핵심 인프라(전력, 용수, 입지)와 장비 및 소재 협력업체와의 관계 그리고 대부분 외산인 정밀 공정장비의 확보 및 설치 편리성 등에 대한 세심한 검토는 필수적이다.
구미에 전공정 사업이 쉽지 않은 점을 살펴보면 우선 반도체 생산에 핵심인 전력 공급이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력수요 통계에 따르면 구미공단의 하루 평균 사용전력은 0.9GW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Fab(10기)를 구미로 가져올 경우 필요한 전력은 1일 10GW 정도다. 여기에다 구미 투자를 약속한 삼성 AI 데이터 센터까지 감안할 경우 매일 10GW 이상의 전력 공급능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345KV급 특고압 송전선 설치와 대형 변전소 건설을 한다 하더라도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용인시도 마찬가지 고민거리로 안고 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국가가 나서고 있는 만큼 해결 전망은 있다.
구미는 전공정에 필요한 공업용수도 부족하다. 전공정 Fab(10기)에는 하루 최대 100만t의 물이 필요하고, 이중에서도 초순수 60-70%를 확보해야 한다. 구미가 낙동강 본류와 안동댐을 기반으로 용수를 공급하고 하루 50만t이상 처리 가능한 폐수처리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는 반도체 FAB 1-2개 수용할 정도 밖에 안되는 양이다. 구미 공단 전체 기업체와 향후 AI 데이터 센터의 공업용수 사용량을 감안하면 물 문제 때문이라도 전공정 구미 유치는 과한 발상이다.
그러면 경기도 용인만이 반도체를 독점하는 전유물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다. 조성 형태, 다시 말해 청사진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전략산업인 반도체를 ‘집중형’으로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자연재해, 사고, 국가적 안보 위기에 취약할 수 있다. 국가전략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을 분산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계획한 ‘집중형’을 ‘분산형-네트워크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즉, 용인은 고급 인력과 기술이 요구되는 전공정 분야에 집중하고, 후공정(조립 및 검사)의 절반 가량은 다른 지역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반도체 산업은 전공정으로만 성장할 수 없다. 전공정에서 만들어진 웨이퍼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만드는 후공정도 중요하다. 후공정의 세계시장 규모는 2026년 993억 달러(출처: Business Research Insight)로 비메모리(7000억 달러), 메모리(1922억 달러)에 비해 시장은 작지만, 후공정 산업이 없으면 반도체 수요 변동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후공정은 과거에 단순한 포장(packaging)을 통해 칩을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는 역할만 하였지만, 최근에는 발열 제어, 소형화 및 다기능화로 반도체 성능의 최적화를 담당하면서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단계에 와 있다. 현재 후공정 시장의 세계 1위는 대만의 ASE사로 세계시장 절반인 44.6%를 점유하고 있고, 중국은 25.2%, 미국이 18.4%이다. 한국은 4.3%로 미미하다.
□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내 ‘반도체 후공정 클러스터’조성이 구미가 살길
반도체 후공정 지역 분산 배치는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한국이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한자리 수에 그치는 만큼 성장 잠재력도 충분하다. 그것은 후공정 세계 시장의 한국점유율에서도 나타난다. 반도체 대기업들도 전후방 사업이 한곳에 모여 있기 보다는 분산을 더 필요로 할지도 모를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구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은 현재 조성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5공단(총 282만평 중 1단계 113만평은 분양 완료)의 2단계(169만평) 일부를 ‘반도체 후공정 클러스터’로 지정했으면 한다. ‘신기술 포장(New Package)’은 이제 반도체의 성능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한 공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구미는 이런 ‘반도체 후공정 흐름’을 먼저 읽고 선제적으로 조치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구미에 반도체 후공정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이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일감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 구미는 세계적인 후공정 산업 메카로 우뚝 설 수가 있다. 특히 대구경북신공항과 연계한 신속한 물류시스템이 구축되면 시너지 효과는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구미에 반도체 후공정 클러스터가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용인 등지에서 전공정과 필수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후공정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자연스레 구미에 배정할 가능성이 높다.
항상 수요가 변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자체적으로 가장 최적의 생산능력만 유지하고, 나머지 물량은 외주를 주는 것이 효율적인 운영이기에 더욱 그렇다.
현재도 SK하이닉스는 후공정 공장이 부족해 청주공장(M15) 일부를 후공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용인에 신규 Fab을 건설하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등 수월치 않기 때문에 구미반도체 후공정클러스트는 더욱 매력적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7년부터 양산을 시작하면 후공정의 수요도 엄청 증가할 것일 만큼 구미는 이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후공정을 상당 부분 외부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하나마이크론(아산), 두산테스나(평택), SFA반도체(천안), 제주반도체(제주) 등이 대표적이다. 구미 후공정 클러스터가 조성된 후 반도체 특별법과 반도체 특구의 각종 인센티브를 활용, 공장 이전이나 증설시 현금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등의 대책을 세우면 이들 기업의 구미 유치도 가능하다. 그럴 경우 관련 기업의 잇따른 설립도 예견된다. 이는 ‘후공정 유치펀드’를 경북도와 구미시 등이 대규모로 조성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2023년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된 구미는 산업 생태계가 성숙 단계에 와 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만 340여 개에 이른다. 시험, 검사, 인력 등 관련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돼 있다. 반도체 기업, 중앙정부, 경북도 및 구미시와 이들 기업들이 공동으로 나서면 후공정 장비도 충분히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일종의 ‘구미형 후공정 R&D장비 개발’이다.
이는 필자가 산업부 재직시절 직접 기획했던 ‘ 반도체 장비 구매조건부 기술개발 프로젝트’와도 맥을 같이한다. 당시 산업부(200억원)와 반도체 3사(삼성, LG, 현대, 200억원) 그리고 장비기업(100억원)이 총 500억원을 투입해 후공정(조립 및 검사) 장비를 개발했다.
개발비용은 정부(4), 수요기업(4), 장비기업(2)로 분담하되 반도체 기업의 부담 금액은 장비기업이 장비 납품으로 갚도록 했다. 반도체 기업은 장비 개발이 성공하여야 부담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스펙, 필드 테스트 등을 장비기업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미래산업(대표 정문술)이었다. 미래산업은 삼성과 공동으로 검사장비인 ‘테스트 핸들러’를 개발했으며 이를 성공시켜 삼성에 납품함으로써 정문술 신화를 쓴 주인공이 되었다. 이를 벤치마킹해 경북도와 구미시가 정책 설계를 하고 산업통상부의 지역특화사업 등에 제안하면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 더 늦기 전에 치밀한 준비를 해야 성공
구미는 2019년 엄동설한에 SK하이닉스 유치를 주장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전략과 인맥 그리고 결집력 등 전제조건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준비해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경험은 중요한 구미의 자산이다.
이미 결정된 중앙정부의 국가 프로젝트에 행정이나 정치권이 직접적으로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상당 기간 기획과 전문가 회의 그리고 국무회의 의결 등을 통해 확정된 사업이기 때문에 입장을 선회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전국이 중앙정부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민간 전문가 주도의 정책포럼에서 후공정 클러스터 조성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고, 이후 연구용역을 실시한 후, (가칭) ‘구미 반도체 후공정 클러스터 조성 방안’의 제안서를 산업통상부 등 중앙정부와 협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싸울 무기가 없는데 언론 플레이부터 먼저 하면 대화 창구를 닫아 버리게 된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담당 부서가 계획을 수정하려면 상당한 논리 구성과 명분이 따라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구미공단의 재도약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길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용인 반도체 국가 프로젝트가 시작됐기에 기회는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반도체 국가 프로젝트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뛰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차분히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울러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풀리기나 화려한 수사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요구는 정치적 구호로 중앙정부의 신뢰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
/심학봉 전 국회의원·전 구미중소기업협의회 경제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