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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더 좋은 미래

본가 아파트 단지 내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때가 되면 여의도나 석촌호수 부럽지 않을 만큼 꽃잎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벚꽃 보러 멀리 안 가도 되겠다. 그냥 집 앞에 돗자리 깔고 벚꽃 구경하면 되지, 뭐. 우리 가족은 그런 말을 하며―실제로도 벚꽃 개화 시즌에 맞춰 피크닉을 한 적은 없다―바람에 흩날리는 분홍 꽃잎들을 지켜보곤 했다. 벚꽃이 마음에 든 건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듯했다. 벚꽃 개화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면, 단지 곳곳에서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댔다. 아이들이 그만 찍겠다며 투정을 부릴 때까지 계속. 그래서인지 그 집에 사는 동안 내게 봄은 아이들을 보는 계절로 인식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내가 아이들을 주시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꽃잎이 사방에 뿌려진 봄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이다. 다른 강아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강아지는 이따금 길가의 꽃잎을 주워 먹는다. 집안의 화분들엔 관심도 없으면서 밖에만 나가면 코를 들이밀고 입을 벌려 꼭꼭 씹다가 퉤 뱉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봄에는 마음이 들뜨는 걸까? 그래서 안 하던 짓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여름, 가을, 겨울에도 꽃은 있지만 봄꽃이 아니면 뜯지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니 희한한 일이다. 강아지가 봄바람에 코를 씰룩이는 것처럼, 아이들도 봄에는 유독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강아지를 보는 순간 스위치 켜진 장난감처럼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강아지다! 외치는 것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강아지를 만지려고 겁 없이 작은 손을 뻗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난다. 그럴 때 보호자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아지 귀엽지? 만지고 와도 돼, 하고 멋대로 지시하는 보호자와 강아지 귀엽지? 그래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하고 제지하는 보호자. 반려인으로서는 당연히 후자의 경우를 선호하고 또 지지한다. 그런데 몇 해 전, 전혀 예상 못 한 세 번째 유형의 보호자를 만났다. 정확히 그를 만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강아지와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옆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강아지를 본 아이는 대번에 흥분해선 자기 엄마의 팔을 잡아당기며 강아지, 강아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이 엄마가 몹시도 엄격한 얼굴로 크리스, 엄마가 영어로 말해야 한댔지? 강아지가 아니라 퍼피라고 해야지,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곳을 보는 척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이도 엄마도 한국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스피크 잉글리시. 올웨이즈 스피크 잉글리시. 아이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가 따라 할 때까지 퍼피, 퍼피, 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말이 없자, 급기야 아이의 손을 낚아채더니 손바닥에 퍼피 스펠링을 하나하나 그리기까지 했다. Puppy, puppy. 결국 아이가 더듬더듬 퍼피, 하고 말하자 아이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로 리멤버, 크리스.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단호히 되뇌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종종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애한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웃음이 거두어진 자리에 남은,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 얼굴이. 강아지든 퍼피든 뭐가 중요할까. 애가 그렇게 웃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었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엄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후로 몇 번의 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잊었다가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이런 때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무시하고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날의 아이 엄마도 아이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그토록 단호했던 거겠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옆에서 아이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미래를 보고 있던 거겠지. 그렇지만 강아지든 퍼피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지금 얼마나 환하게 웃는가, 얼마나 기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일 테니까.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미래가 아닌 더 중요한 지금을 보고 싶다. /양수빈(소설가)

2026-01-14

영포티 말고 ‘굿포티’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단지 달력을 바꾸어 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만 나이 보다는 우리식 세는 나이가 익숙하다. 그런 식으로 따져 보면 경북매일의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의 독자님들께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 2020년,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른 네 살이었기에 마흔 살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일도 없었고 그때까지 이 연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이런 제목의 연재를 맡게 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나는 금세 마흔 살이 되었다. 서른아홉이 마흔이 되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인생을 나보다 오래 살아온 선배들은 마흔도 충분히 젊고 심지어 어린 나이라 이야기 해주시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청춘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이라는 단어 역시 여러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정책에서 다양하게 규정되지만 마흔은 거기 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부분에 있어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실 그런 것들보다 마흔 살에 접어든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요즘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 문화다. 영포티(Young Forty)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을 마주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단어다. 원래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나 패션, 취향 면에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십대를 일컫는 긍정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어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20대 감각을 무리하게 흉내 내는 사십대 남성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울리지 않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무장한 채 이십대-삼십대 초반 여성에게 추근대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곤 한다. 밈으로 많이 돌고 있는 영포티 패션에 대한 조롱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이키, 스투시 같은 브랜드는 지금의 사십대가 이십대 때부터 선호하던 것들이다. 이제와 젊은 척 하려고 입는 게 아니라 원래 입던 것을 입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젊을 때 돈이 없어서 못 입던 것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에야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입는 것이다. 그다지 조롱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하는 영포티의 행동방식에 대해서는 딱히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직도 자기가 어린 줄 알고 이삼십대 노는 데 끼어들어서 젊은 척 하고 돈 자랑 하고 어린 이성의 환심을 사려 하는 사십대는 나도 종종 목격하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한 조롱은 마냥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굳이 영포티 대열에 합류하지 말자는 것이다. 영-하지는 않아도 자기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굿포티’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굳이 어떤 것을 사십대 다운 것이라고 정의하고 꼭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삼십대를 거치며 새롭게 알게 된 것,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나는 마흔 살을 맞아 굿포티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새해 다짐을 해 보았다. 먼저 하루하루 좋은 루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의 생활을 무절제하게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컨트롤하는 노하우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다음으로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대하기. 이제는 종종 사회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과 어떤 관계를 쌓아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비록 우리의 인생 선배들은 간혹 우리에게 무례하곤 했을지라도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들에게 예의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말을 절제하는 것도 필요해졌다. 지저분하거나 거친 말들로부터 이제는 멀어질 것이며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는 일도 자제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 많지만 말을 절제해야 하므로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조롱받는 영포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태까지 살아온 내 삶이 조롱받을 만큼 하찮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살아온 삶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가야 한다. 영포티 말고, 굿포티로 살아갈 내 또래들을 응원한다. /강백수(시인)

2026-01-14

탄소의 시대에서 수소의 시대로-기후위기와 포항의 다음 10년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는 지구의 자전축 변화와 공전 궤도 변화로 인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복사량, 즉 일사량(日射量)이 달라지고, 그 결과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지구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며 기온 변동을 겪어왔고, 현재 인류는 약 1만2000년 전 시작된 홀로세(Holocene)라는 간빙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인류는 농업을 시작했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간빙기가 끝나기까지 아직 약 1만 년가량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지금의 온난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며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지구 평균기온을 급격히 상승시켰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자연적 기후 변동과 인간이 초래한 급격한 온난화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석유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 역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과대학을 다녀 본 이들은 2학년 공업수학 시간에 배웠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를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푸리에급수를 정립한 프랑스 과학자, 죠제프 푸리에(1768~1830)가 ‘대기가 열을 붙잡아 가둔다는 온실효과’를 처음 발표한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날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일부 과학자들만의 전문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약 250년 동안 인류는 석탄과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루어왔다. 방적기와 증기기관, 제철산업으로 시작된 탄소 문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탄소산업이 이제는 인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가 지속된다면, 수백 년 후에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워터 월드(Water World)’에서처럼 남극대륙의 빙하가 모두 녹아 인간이 육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에 살며, 육지를 찾아 떠돌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 역시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지금 당장 전 세계의 모든 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미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후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운명이 결코 밝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다. 유엔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산업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에 나서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실행 수단이 되었다. 결국 인류는 탄소 에너지에서 벗어나 수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1만년의 간빙기 동안, 탄소 문명이 아니라 수소 문명이 인류 사회를 떠받쳐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필자의 중학생 시절 포항 송도동에는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다. 형산강 건너편에는 포항제철이 우뚝 솟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해도동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퇴근했다. 산업화의 열기와 함께, 산업재해로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그 무렵 들려왔다. 포항은 그렇게 한국 산업화의 현장이었다. 당시 포항에서 일하던 이들은 주로 1차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한국의 탄소산업을 이끌며 산업화를 완성한 세대이다.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탄소에서 수소로 전환되는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포항에는 석탄화력발전소 못지않은 이산화탄소 배출원인 포스코의 용광로가 있다. 이를 대체할 핵심 해법이 수소환원제철이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포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포스코는 대기업이므로 당연히 잘 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또 일반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잘 알 수도 없다. 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시민들이 우리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힘을 합쳐 개척해나가야 하는지 서로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K-스틸법이 통과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이 법은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통해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 경제안보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6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포항은 이미 철강 집적지이자 연구·인력·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이다. K-스틸법에서 규정한 저탄소철강특구 포항지정과 수소환원제철의 성공 여부는 포항의 향후 10년, 그리고 그 10년 이후의 미래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적 과제이다. 탄소의 시대는 저물고 수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에너지 공급망, 신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가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 변화는 지켜볼 일이 아니라, 포항시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지역 협력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공적토론영역이 자유로운 사회문화적 환경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포항의 10년은 협력과 연대가 어젠다가 되길 희망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14

AI를 어찌하나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인류는 새로운 편리함과 함께 오래된 불안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가, 아니면 잠식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기술낙관론자들은 AI를 세탁기나 청소기에 비유한다. 손빨래와 손청소에서 해방되었듯, 인간은 이제 번거로운 사고노동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럴듯하게도 들리지만, 이 비유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빨래와 청소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지만, ‘생각하는 힘’은 다르다. 사고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핵심 능력이 아닌가. 최근 한국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시험과 과제에서 AI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대학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까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질문이 설득력을 갖는다. AI가 논문을 요약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토론문까지 만들어 준다면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닐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거꾸로 본 진단이다. 대학의 위기는 AI의 등장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처음부터 정답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았다. 질문을 만드는 지혜,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 타인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수단을 훈련하는 공간이었다. 오늘의 대학강의실에서 사고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만이 평가된다면, 학생들은 생각하기보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이는 부정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본질의 문제다. 대학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평가방식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결과중심의 과제평가 대신에 사고의 경로와 질문의 질을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AI사용 여부를 단속하기보다, AI에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그 답에 어떤 분석과 판단을 거쳤는지를 서술하게 해야한다. 생각의 궤적을 평가하지 않는 교육은 AI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둘째, 커리큘럼은 ‘도구사용법’이 아니라 ‘판단과 분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리터러시는 버튼 설명이 아니라, 한계인식과 오류탐지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AI가 쏟아낸 답을 검증하고 반박하는 수업이 정규과정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셋째, 대학은 다시 ‘느린 공간’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효율과 속도를 숭배하는 사회에서,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되새기는 훈련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을 감내하지 않는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침묵과 명상, 토론과 성찰, 그리고 도전과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강의실에서 사고는 성장할 길이 없다. 대학이 아직도 필요한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은 필요 없다. 생각하고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만 살아남을 터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대학은 정답 공장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질문 광장으로 거듭날 것인가. 대학이 오늘의 모습만으로는 쇠락의 길에 설 수 밖에 없다. 선택여부에 따라 대학은 오히려 부흥할 지도 모른다. 선택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1-14

구룡포 응암산 박바위

구룡포 바다를 장악하려면 구룡포에서 멀어져야 한다 박바위가 제격이다 거기는 공허의 공간이나 단단하게 마음을 다지는 힘줄이 있다 전각 하나 없어도 마음에 그것을 세울 평평함을 제공한다 그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기운이 있다 바위 끝에 서서 구룡포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차가움이 인간의 체질임을 박바위는 지적한다 그것은 냉혈(冷血)이 아니라 침착과 질서이다 따스해지려면 더욱 차가워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꽁초처럼 버려질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때의 뜨거움으로 영원을 추구할 수는 없다 박바위는 걸어온 먼 길을 스스로 지우며 안으로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 박바위로 가는 길은 참 아늑하다. 반드시 걸어서 도착해야 한다. 수신(修身)에서 멈추어야 한다.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는 나중의 일이다. 그러한 책무를 감당하고자 하는 잡놈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치세에 지치면 박바위에 가서 자신을 뒤집어놓고 잘 관찰하면 길이 보인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늘 첩첩산중이라, 그곳에서 바라보는 겹겹의 수묵화와 같은 산들이 상징적이다. 박바위에서 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잠시의 위안으로, 돌아봄으로, 진통제와 같지만, 혹은 박하사탕 같지만, 하나의 길이 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14

포맷해 주세요

“포맷해 주세요” 요즘 차만 타면 듣는 소리다. 주차해 놓은 내 차를 누군가 차를 후진하면서 박아서 범퍼가 손상되었다. 한 달간 영상이 남는 관리사무실의 CCTV를 보았으나 1주일 치의 영상만 남았다. 사고가 있은 지 10일이 지난 뒤였다. 마지막으로 내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았으나 영상이 없었다.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망이 크다. “뭘 했느냐?” 한마디만 했는데 성깔이 있는지 차만 타면 포맷해 달라고 성화다. 별생각 없이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만날 때마다 못 살겠다고 포맷해 달라고 하니 나도 슬슬 화가 난다. 이제는 하지 않겠지 하며 기다린 지 얼마인가. 하지만 여전히 같은 톤으로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보채니 말이다. 난감한 것은 둘만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계속 그러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 옆에 탄 사람이 얼마나 무심하길래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다. 둘이 있을 때 포맷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최후통첩한다. 그녀도 단단히 성질이 났는지 수그러들 기세가 전혀 아니다. 같이 있는 내내 화난 목소리를 듣다가 헤어졌다. 얼굴을 붉히며 마주한 시간을 생각하면 괜히 만났다고 생각한다. 내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한다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나와 만난 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뭘 했느냐?’는 한마디도 못 한다는 말인가. 그게 몇 날 며칠을 두고 화를 낼 일인가. 그동안 나와 함께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이제까지 모든 기억을 지워버릴 일인가 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함께 출장 가면 말없이 나를 지켜주던 그 다정함은 어디로 갔는지. 하여튼 여자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쩔 수 없어 다시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지겹지도 않은지 같은 말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이래서 마음이 상했다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늘 같은 말만 한다. 처음 만났을 때나 화가 났을 때도 한결같으니, 처음부터 나에겐 어떤 감정도 없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하다. 이제까지 나와 같이 한 시간이 얼마인데 이까짓 일로 파업하듯이 없던 일로 하고 자신을 처음 상태로 되돌려 달라니. 말로 풀어도 될만한 일인데 말이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 혼자만 잘 먹고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시간이 나면 닦아준 시간이 말할 수 없이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른다.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후방 카메라를 점검해 주세요.” 이 말을 듣고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했다. 먼 길을 다녀왔을 때도 무덤덤하게 헤어졌다. 그래도 덕분에 낮이나 밤이나 그녀 덕분에 잘 다녔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이제는 앞도 뒤도 가릴 것 없이 전신이 아픈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말없이 무심한 경상도 사나이라고 해도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괜히 머리만 긁적인다. 이럴 때는 무슨 말로 풀어야 할지 딱히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난감하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노래를 들려준다. 소통이 중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생각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으니 말이다. 내일은 휴가를 내어서라도 그녀를 데리고 병원엘 가야겠다. 건강은 미루지 말고, 제때 치료해야 하는 데 말이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룬 것을 후회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상 포맷하려니 나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 같다. 무뚝뚝해도 마음만은 따뜻한 남자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는다. 완전한 포맷 대신 나에 대한 기억만은 남기고 부분 포맷을 할 수는 없을까. 남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모든 건 때가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김규인 수필가

2026-01-14

스트레스는 몸에 먼저 온다

스트레스는 대부분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많거나 성격이 예민해서 멘탈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는 스트레스는 거의 예외 없이 마음보다 몸에 먼저 나타난다. 환자들은 마음이 힘들다고 오기보다는 몸이 이상하다고 찾아온다. 턱 밑에 멍울이 만져진다거나 이유 없이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고 잠이 깨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검사 결과는 대체로 정상이다. 그래서 더 불안해진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스트레스를 감정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신경과 혈관 근육과 면역 반응으로 처리한다. 긴장이 지속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자율신경이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혈관은 수축하고 근육은 경직된다. 목과 어깨가 뻣뻣해지고 턱 주변 림프절이 부어 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과정은 의식적인 생각과 거의 무관하게 일어난다. 본인은 괜찮다고 생각해도 몸은 이미 비상 상태에 들어간다. 수면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소화력도 전보다 떨어진다. 한 번씩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안해진다. 특히 림프절이 잘 붓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이 빠른 편이다. 림프는 면역과 노폐물 처리의 통로인데 긴장이 지속되면 흐름이 느려지고 정체가 생긴다. 턱 밑이나 목 옆에 멍울이 잡히는 경우는 단순한 염증이 아니라 자율신경 긴장과 연관된 경우가 적지 않다. 환자 본인은 감기 한 번 안 걸렸다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억지로 이를 견디고 있는 중이다. 어지럼이나 가슴 두근거림도 마찬가지다. 심장이나 뇌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신경계가 균형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숨이 얕아지고 맥박이 빨라지며 몸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회복 속도는 더 느려진다. 결국 작은 자극에도 몸이 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 치료는 마음을 달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몸이 이미 긴장 모드에 들어가 있다면 먼저 그 상태를 풀어줘야 한다.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경직된 근육과 신경을 이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몸이 안정되면 마음은 그 다음에 따라온다. 반대로 몸이 계속 경계 상태에 있는데 마음만 괜찮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진료를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별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데 몸이 이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사건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몸이 얼마나 오래 긴장해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참아온 시간 버텨온 기간이 길수록 몸은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지내다 보면 증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다. 본인 스스로는 스트레스에 무던하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고 신호를 보낸다. 스트레스는 마음의 약함이 아니라 몸의 경고다. 몸이 먼저 흔들리고 그 다음에 마음이 따라 흔들린다. 그래서 치료의 출발점도 몸이다.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마음도 숨을 돌릴 수 있다. 이 순서를 이해하고 대비한다면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1-14

中企 정책자금, 지역경제의 안전벨트

대구·경북에서 공장과 가게를 가까이서 보면 요즘 경영난은 매출 감소에 더해 ‘돈이 안 도는 구조’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본다. 매출이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닌데, 대금 결제가 늦어지고, 원부자재는 선결제를 요구하고, 금리는 높아져 이자 부담이 쌓인다. 월급날·임대료·세금 납부일이 겹치는 달에는 대표가 “이번 달만 넘기자”를 입에 달고 산다. 은행은 담보나 재무제표를 더 까다롭게 보니, 당장 필요한 것은 ‘응원’이 아니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현금흐름이다. 협력업체 한두 곳이 흔들리면 그 주변 식당·카페·편의점 매출이 같이 꺼지고, 일자리가 줄면 소비가 줄어 골목도 바로 체감한다. 결국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은 지역 생활경제와 직결된 문제다. 이런 흐름은 숫자에서도 보인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는 응답이 40.0%로 ‘호전됐다’(13.2%)보다 3배 이상 높게 나왔다. 악화 원인도 ‘판매부진’(59.0%), ‘원부자재 가격 상승’(51.5%), ‘인건비 상승’(33.0%)처럼 현장형 요인이 상위에 걸려 있다. 즉 “경영을 잘못해서 망했다”라기보다 “외부 환경이 급격히 나빠져서 버티기 게임이 됐다”에 가깝다. 원자재 결제일을 넘기고, 직원 월급을 지키고, 납품을 이어가 거래처 신뢰를 유지하게 만드는 자금은 결국 지역의 일자리와 소비를 지키는 ‘안전벨트’가 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런 현장을 반영해 올해 총 7조7000여억 원(중소기업 4조4000여억 원, 소상공인 3조3000여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마련했다. 특히 전체 정책자금의 60% 이상을 비수도권에 집중 공급해 지역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공급을 넓히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수도권보다 금융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역 기업들에게 숨통을 더 넓혀주겠다는 의미다. 또 AI·반도체 등 혁신성장 분야와 K-뷰티 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공정과 업무를 AI로 바꾸는 AX 전환을 추진하거나 AI 기술을 도입·활용하는 기업을 위해 1400억 원 규모의 ‘AX 스프린트 우대트랙’을 신설했다. 대경중기청은 정책자금이 ‘아는 기업만 받는 제도’가 되지 않도록 현장으로 직접 들어간다. 올해 1월 중순부터 대구·구미·포항·안동·칠곡·경산·김천·경주 등 지역 주요 산업 거점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중소기업 정책금융 설명회’를 개최한다. 중기청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이 함께 참여해 업종·성장단계·경영 여건별로 어떤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은지 쉽게 풀어주고, 설명회 뒤에는 기관별 1대 1 상담으로 기업별 상황에 맞춘 길을 바로 연결한다. 정책자금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자금이 제때 공급되면 기업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자리가 지켜지면 시민의 생활도 덜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 같은 시기일수록 정책자금은 기업만의 대책이 아니라, 대구·경북 전체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다. /정기환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2026-01-14

포항 철강이 흔들리면 도시가 흔들린다

2026년 올해 철강 산업은 더욱 힘들 전망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기조가 여전한 가운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화로 철강 수출 문턱은 더 높아졌다. 한국 철강의 심장인 포항은 이러한 변화의 충격을 지역 경제주체들이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7개월 연속 포항지역 철강제품 수출은 금액과 물량이 동반 감소하며 1~11월 누계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4% 줄어든 52억2300만달러, 물량은 6.9% 감소한 525만t에 그쳤다. 수입 역시 같은 기간 금액과 물량이 모두 감소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생산 물량 감축, 신규 고용 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또 철강 물동량 감소는 지역 물류·운송업계의 실적 부진으로 직결된다. 그뿐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 여력 축소는 결국 포항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로 연결된다. 포항의 철강이 흔들리면 물류와 건설로 이어지며 지역 전체의 고용과 소비가 연쇄적으로 위축되는 구조다. 여기에 내부 비용 부담까지 동시에 커진것이 문제다. 철강산업에서 가장 큰 고정적 경영 부담 요인은 산업용 전기요금이다. 이 요금은 2021년 kWh당 105원에서 2025년 180원으로 4년 동안 71%나 올랐다. 전력으로 움직이는 철강업계의 원가 구조가 흔들리는 수준이다. OECD 보고서를 보더라도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 중국보다 비싸져 에너지 전환 비용이 높은 독일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그동안 저가·고품질의 국산 철강재에 의존해왔던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여기에 있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사들은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전환이라는 구조 개편 과제를 안고 있다. 방향성이야 맞지만, 관세·탄소 규제·전기요금 부담이 동시 작용하는 상황에서 전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환하기까지 최소한 버틸 체력만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준비 중인 K-스틸법 시행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법 제정만으로 정책은 움직이지 않는다. 법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구체화된 세부 설계도인 시행령이 필요하다. 전환 설비 투자에 대한 재정·금융 지원,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탄소 규제의 현실적 적용 방안이 구체화돼야 비로소 현장에 응급 처방이 가능해진다. 포항 경제는 철강에서 출발한 수많은 협력업체와 지역 상권, 고용으로 이어진다. 철강이 기침만 해도 포항 경제는 독감에 걸리고 몸살을 앓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리하기 어려운 국제분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국내 여건 조성은 가능한 영역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부터 K-스틸법 시행령까지 모두 시급한 현안 과제다. 기업에 전환을 요구하려면 기업이 버틸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놓는 것이 국가 산업정책의 기본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1-13

국민의힘, 지금 헤게모니 싸움할 때 아니다

집안싸움으로 민심 이반 수렁에 빠진 국민의힘이 결국 당명까지 바꾸기로 했다. 당명 개정에 책임당원 68%가 찬성했으며, ‘공화’나 ‘자유’ 등이 포함된 이름이 다수 제안됐다고 한다. 장동혁 대표는 새로운 당명에 “보수의 가치를 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다음 달 중순 시작되는 설 연휴 전까지 당 간판을 바꿔 지방선거에 대비한다는 구상이다. 당명 개정은 보수 정당이 위기 때마다 꺼내 든 카드다. 지난 1997년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꾼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그 이후에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름만 비슷비슷하게 바꿨지 당 구성원이나 정책 등 콘텐츠는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 때문이다. 당명 개정에 대해 당내에서는 “분위기 쇄신의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긍정론과 “이름만 바꾼다고 지지율이 따라붙겠나”라는 회의론이 교차하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당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청년 중심 정당, 전문가 중심 네트워크 정당, 국민 공감 연대를 세 축으로 삼아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부 갈등을 지켜보면 쇄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는 쇄신안 발표 하루 만에 12·3 비상계엄을 옹호한 인사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친윤계 핵심 인물을 주요 당직에 앉혔다. ‘김건희 옹호’ 논란을 빚은 중앙윤리위원장 임명도 강행했다. 한동훈 전 대표 징계를 다룰 당 윤리위원회에는 김건희 옹호 전력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장 대표의 인사내용을 보면 앞으로도 합리적 보수보다는 극우화된 집단과 손잡고 일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러니 장 대표가 말하는 쇄신이 결국 당내 특정 세력은 배제하고 강경파와 같이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갤럽이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이 45%, 국민의힘이 26%를 각각 기록했다. 직전 조사 대비 민주당은 5%p 오른 반면 국민의힘은 한 달째 제자리걸음을 했다. 무당층은 21%다. 무당층이 모두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해도 양당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장 대표의 쇄신안이 지지율 판세를 바꾸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 내분 수습이다. 장 대표가 당의 간판까지 바꾸겠다는 것은 당의 스펙트럼을 넓혀 보겠다는 생각 때문 아닌가. 그러려면 가장 먼저 위험수위에 이른 당내 갈등을 수습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눈에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만약 당 윤리위가 한 전 대표에 대해 무리하게 징계를 결정하고 최고위가 이를 의결하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다. 설 연휴 핵심 이슈가 민주당 의원비리와 입법독주가 아니라 ‘국민의힘 내분’이 될 경우 민심이반도 걷잡을 수 없게 진행된다. 지금 장 대표는 어떻게 하면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만을 고민해야 할 때다. 헤게모니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건 한동훈 전 대표에게도 해당되는 충고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13

대구시장의 이상형은

작년 11월 중소기업중앙회 대구지역본부가 관내 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차기 대구시장에게 바라는 상공인의 의견을 물은 바 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7%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감당할 경제·일자리형 시장을 손꼽았다. 보호주의 무역이 확장되는 세계 경제 흐름에서 한국경제의 갈 길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그 속의 대구경제도 특별히 좋을 리가 없다. 지역의 소상공인이 경제형 대구시장을 바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얼마 전 대구를 찾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구경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대구시민이 30년 이상 국민의힘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대구경제는 30년째 전국 꼴찌에 머문다고 비판했다. 그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대구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2024년)는 3137만원으로 전국 평균 4948만원의 63% 수준이다. 31년째 전국 꼴찌다. 특정 정당 지지가 대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견제와 균형이 상실되면서 나타난 결과라 주장했다. 그가 지적한 대구지역 정치카르텔이 대구경제를 전국 하위권으로 몰아 넣은지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30년 이상 경제 꼴찌와 청년인구의 유출, 제조업의 낮은 부가가치 등이 대구경제의 민낯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만 여야 합쳐 20명에 가깝다. 전현직 국회의원, 구청장, 정치인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면면을 드러내지만 아직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낸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구경제를 기사회생할 이상형 대구시장의 등장에 시민들의 목이 길게 늘어나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3

더 아픈 손가락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다. ‘은혜 갚은 까치’, ‘심청전’ 등 전통 설화는 희생과 효심을 강조하지만, 오늘날엔 그 의미가 재해석된다. 무조건적 헌신보다는 어쩌면 조금 냉정하지만 철저한 대가와 반대급부를 주는 것이 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산단이자 2009년까지 기초지자체 중 수출 1위였던 구미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고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필자는 구미공단이 조성되고 현재까지 구미 수출 금액을 모두 더해보았다. 올해까지 대략 7900억불 정도이다. 이는 2024년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115%, 2025년의 113%이다. 이것을 최근 환율 1430원 정도로 계산해보면 약 1130조원으로 2025년 대한민국 예산의 1.7배, 2026년의 1.55배이다. 물론, 수출단가 인상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단순 합계이다. 또한 인천공항을 통해 나가는 항공 수출 금액 중 구미 비중은 경북의 93%, 2007년에는 99%였으며, 전국의 22%까지 차지하기도 하였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제조기지로 막대한 수출과 무역흑자를 남긴 구미는 이제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옷과 신발이 너무나 낡아버렸다. 120년 동안 구미를 거쳐 가는 철도가 건설되지 않았으며, 55년 만에 드디어 구미~군위 간 고속도로 신설이 확정되었다. 이제는 구미가 단순생산기지를 넘어 핵심R&D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그간 공로에 대한 포상을 할 때이다. 신공항 개항을 기점으로 구미산업단지의 백년대계를 내다 볼 수 있도록 철도·도로를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거점산업단지의 경쟁력을 키워 낙수효과로 경북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미는 지난 2023년 7월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받았고, 기업 신증설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은 투자규모나 정부지원이 천양지차인 상황에서 지난 2025년 12월 10일 정부에서는 구미, 부산, 광주 등 ‘남부권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을 밝혔다. 구미는 반도체기업이 집적화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전력, 용수, 산업용지 등 모든 면에서 투자 여건이 유리한 만큼, 이번 기회를 살려 반도체 소재부품 주력 생산기지인 구미가 대규모 파운드리를 유치해야 한다. 다만 구미가 남부권벨트의 핵심축이 되려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조기 건설과 연결망 확충은 물론, 정주여건 개선을 통해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비수도권에는 법인세·상속세·소득세를 인하해 주는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지역 거점 발전전략을 통해 글로벌 ‘초격차’ 실현은 물론,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구미는 반도체·방산을 중심으로 한 신증설 투자, 국내 최대 AI데이터센터 건립, 호텔과 문화선도산단 등 재도약의 에너지를 응축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살려 구미가 경북의 중심은 물론, 대한민국 핵심 R&D 거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아픈 손가락’, ‘더 고생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줄 때이다. /윤재호 경북상공회의소 회장

2026-01-13

성장의 벽, 성공의 길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급급해 자기 자신을 개선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보통 발이 묶여 있다.’ 꿈, 목표, 포부를 실현하려면 성장해야 한다. 누구나 성장과 잠재력 발현을 가로막는 잘못된 신념이 한두 개쯤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성장 의도를 가로막는 다섯 가지의 그릇된 생각을 살펴보자. 첫째는 미래 꿈의 벽이다. 가끔 신입 사원이나 기존 사원이라도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하고 부자 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성장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10년 내 3층 건물주가 되겠다’ 등 시간 개념이 들어간 꿈과 매년 목표 설정이 되어야 성장의 동력이 가동된다. 둘째,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벽이다. “당신에게는 성장의 계획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성장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한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면 세상도 명확하게 응답한다. 많은 사람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닫는다. 역경을 겪으며 교훈을 얻고 변화하는 것은 느리다. 의도적으로 성장 계획을 세우는 게 낫다. 자신이 도달해야 하거나 도달하고 싶은 성장 지점을 정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한 다음, 스스로 정한 속도와 원칙에 맞춰 나아가는 것이다. 셋째,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는 시간의 벽이다. “무더운 여름 날 강물 따라 떠 내려오는 통나무 위에 개구리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중 네 마리가 뛰어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남은 개구리는 몇 마리일까?” 보통 “한 마리!”라고 답한다. 답은 다섯 마리다. 마음 먹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의도성 체감의 법칙’에 걸려들고 만다. ‘의도성 체감의 법칙’이란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룰수록 실천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넷째,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실수의 벽이다. 성장의 길에 들어서려면 인생 수업료를 내야 하는 법이다. 성장하고 싶다면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저술가 워런 베니스 교수는 ‘실수는 실천의 또 다른 방법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성장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실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실수할 때마다 그것을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섯째, 완벽의 벽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최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관념은 시작을 늦출 뿐이다. 최상의 방법은 시작을 하면서 찾아가는 기술이다. 이는 밤에 자동차를 타고 낯선 도로를 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운전하기 전에 경로를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운전을 하면서 차츰 길을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길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장의 벽은 개인 생각의 관점이고, 진보적인 사고의 부족이기도 하다. 꿈, 지식, 시간, 실수, 완벽 등의 벽에 열린 생각을 갖고, 유연한 사고와 시간 개념이 담긴 꿈과 목표를 향해 소신껏 행동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1-13

폭력의 동반자 크로아티아 ②발칸반도 또 하나의 민족주의

크로아티아는 역사적, 시기적으로 세르비아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같은 지역을 두고 서로의 주장이 상이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던 현재 크로아티아 땅은 그리스와 로마 비잔티움제국을 거쳐 바이킹 노르만족, 헝가리, 베네치아와 오스만터키에 이어, 오스트리아, 독일 등 지속적으로 외부 세력의 영향 아래 들었다는 것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 지배에 들기 시작하면서 한 국가 내에서도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한 내륙과 헝가리와 세르비아 경계인 보이보디나,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해안 도시 달마티아로 구분되면서 경제는 물론 극명한 문화적 차이를 보였다. 서기 803년 샤를마뉴대제가 위용을 부릴 당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비잔티움제국의 동방정교에서 로마가톨릭으로 자연스럽게 개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비잔티움제국 영향 아래에 있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정교 문화권과는 본격적인 경계선이 형성된다. 그러나 적어도 10세기 초까지 달마티아 지방은 오랫동안 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어 가톨릭인 자그레브와 지역적 경계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도를 펼쳐놓고 경계 짓는다면 오류란 뜻이다. 로마 가톨릭과 서유럽문명권에 동승한 크로아티아는 9~11세기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과거에 로마제국 당시 세워졌다가 아바르족에 의해 파괴된 100여 개의 교회를 새롭게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초기의 로마네스크양식 교회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어쨌거나 비잔티움제국 발아래 호시탐탐 독립의 기회만 엿보던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불가리아가 비잔티움제국에 반기를 들면서 비잔티움이 눈과 귀가 불가리아로 향했을 때 불이불식간에 독립을 선언해버린다. 더구나 지리적 이점과 국제정세 흐름을 타고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해 귀족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재산을 교회에 환원하면서 권위는 물론 정통성까지 충족하려 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면서 교회에 재산을 헌납하는 일은 하느님에 대한 선물로 승화되고, 크로아티아 군주들은 로마교황으로부터 하느님 은총과 함께 충복으로 인정을 받는 개가를 올린다. 기실 하층민으로부터 권력과 정통성을 부여받는 그 이상도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크로아티아인들 삶에 가톨릭이 깊게 파고들면서 아드리아해 족장이던 토미슬라브(재위 925~928)에 의해 독립국가로 우뚝 선다. 912년 비잔티움 황제 알렉산드로스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성기를 조각해 원형경기장 멧돼지에 붙이고, 이교 제사를 지내며 성불구를 치료하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이 광기 어린 황제는 913년 6월 6일에 쓰러져 죽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불가리아 시메온이 반기를 들었고, 크로아티아가 이 틈바구니를 이용해 ‘크로아티아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왕국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토미슬라브는 세르비아 듀산왕과 마찬가지로 대크로아티아주의 원조로 추앙받게 된다. 로마교황 존 10세로서는 교권의 확장을 반기면서 독립국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토미슬라브는 교세 확장에 노력을 약속하면서 충성 맹세를 한다. 그는 서로마를 위협하는 헝가리 마자르족의 공격을 일선에서 막아낸 혁혁한 공로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한발 더 나아가 로마와 연합군을 꾸려 제1불가리아제국을 선제공격하자고 나섰다. 시메온이 죽고 없는 제1 불가리아제국과 한판 승부에서 크로아티아가 승리를 거두면서 크로아티아 왕국은 승승장구한다. 935년 크로아티아 왕 페타르 크레시미르는 아드리아해 북부 달마티아를 비롯해 해안을 따라 리예카는 물론 남쪽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에 이르는 네레트바강까지 영토를 넓혔다. 크레시미르는 로마 교황을 넘어 비잔티움제국 바실 2세로부터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의 왕으로 공식 인정을 받아 명실공히 왕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온전히 왕국의 기틀을 세운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크로아티아왕국은 11세기 후반 뻬타르 크레시미르 4세를 정점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크레시미르 4세는 아드리아해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고, 이때 11세기 소아시아에서 등장한 셀주크투르크의 군사적 압력은 비잔티움제국 세력 약화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 틈바구니를 역이용했던 크레시미르 4세는 아드리아해와 달마티아 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중세 왕국의 면모를 갖춘다. 아드리아해 무역권을 장악하자 신흥 귀족이 탄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크레시미르 4세가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죽자 복잡한 후계 구도가 벌어진다. 여러 도시의 영주 ‘반’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설쳤다. 이때 로마교황 의중을 간파한 크로아티아 중동부 도시 슬라보니아의 반이었던 드미타르 즈보니미르가 교황으로선 더없이 충성스럽게도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맹세하면서 로마교황청 후원으로 왕좌에 오른다. 눈치가 빠르고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는 눈이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1-13

껍질을 쥔 손으로

나의 삶은 왜 이토록 바쁜 걸까. 새해가 밝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의 하루는 분주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가 끝날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서둘러 신발을 신고 서둘러 마음을 정리하고 서둘러 나 자신을 뒤로 밀어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고개를 들면 이미 저녁이고 또 이렇게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안도만이 하루를 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상하게도 모두들 여유로워 보인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식사 시간도 충분히 즐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그 풍경 속에서 유독 나만 바빠 보인다. 늘 손에 무언가를 쥐고 놓지 못한다. 책임, 역할, 기대, 내가 해야 할 몫들. 어딜 가나 짐과 책임을 안게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많은 일들은 늘 내게로 왔다.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익숙해 보인다는 이유로, 조금 더 잘 해낼 것 같다는 인상으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켜켜이 쌓여 물 흐르듯 나의 몫이 되었다. 일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예상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든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들이 내려놓은 무게를 조용히 들어 올리는 쪽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대게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았다. 붉게 삶아진 다리들이 단단한 껍질을 두른 채 겹겹이 쌓였다. 보기에는 풍성했지만 가볍게 먹지는 못했다. 값으로도, 마음으로도 가볍게 다룰 수 없었다. 바다를 건너온 시간과 사람의 손을 거친 수고가 한 끼로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귀한 부분을 잃을까 봐 조심히 다뤘다. 과정이 번거롭고 느리지만 그 안에 스며든 모든 이의 땀과 시간이 스며들었기에 허투루 하지 못했다. 괜히 아까웠다. 너무 쉽게 먹어 버리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늘 그렇듯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고 비틀고 껍질을 벗기고 애쓰고 나서야 하얀 살 한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내 삶도 꼭 대게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 닿기 위해서는 쉼 없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삶. 남들 눈에는 풍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늘 애쓰고 있는 삶. 손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도, 발이 떼지지 않아도 멈출 수 없는 삶. 가끔 충동적으로 이런 생각에 빠진다. 한 달, 아니 단 며칠이라도 다 먹고 난 게껍질처럼 속까지 완전히 비워버리고 싶다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아무 역할도 맡지 않고, 마음 속 감정까지 다 비워낸 상태로 투명 인간이 되었다가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한 시간 뒤의 일을 생각하고, 내일 일을 계획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한다. 껍질만 남은 접시는 결국 비워짐의 끝이 아니라 먹어낸 시간의 증거다. 수고의 흔적이고 누군가의 배를 불려준 자리의 기억이다. 아무 의미 없이 남겨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내가 늘 바쁘다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의 살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게 꺼내 먹을 수 없는 대신 천천히, 끝까지 애써야만 얻을 수 있는 삶.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깊은 맛을 지니는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가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어둡고 조용한 곳에 숨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지금껏 나를 바쁘게 했던 모든 시간들이 헛된 껍질이 아니었음을. 내 손이 아팠던 것은 비워내기 위함이 아니라 채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쉽게 꺼내 쓸 수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 삶은 나를 서두르지 않게 훈련시켜 왔고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맡기며 조금씩 깊어지게 했다. 더 이상 분주함을 전부 불행으로 부르지 않으려 한다. 이 시간이 언젠가 나를 가볍게 증명하는 대신 조용히 단단해지게 할 것임을 믿어보려 한다. 나는 오늘도 바쁘다. 다이어리는 꽉 차 있고 나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일정이 나를 짓누르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껍질을 쥔 이 손이 결국 나를 굶지 않게 했고 나를 걸어오게 한 힘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13

대머리, 남편을 고소한 이유

유전적 원인, 또는 남성 호르몬 영향 탓에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빠진 사람의 이마선이 밀리거나 정수리가 드러나는 걸 지칭해 대머리라고 부른다. 이는 수많은 남성들의 고민거리다. 중년 이상은 물론, 20~30대 젊은 남성의 경우에도 “줄어드는 머리숱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탈모를 미용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는 청년들이 있기에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세간의 뜨거운 설왕설래도 있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탈모로 고민하고, 대머리가 가진 선입견 탓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비단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 모양.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인도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24년 결혼한 인도의 한 여성이 올해 초 남편과 시댁 가족 4명을 고소했다. 고소의 이유는 혼인 이야기가 오갈 때 신랑이 될 사람의 학력과 재산 규모, 외모를 속였다는 것. 그 가운데 ‘외모 속임수’로 지목된 것이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남성이 아닌 가발을 착용한 대머리였다는 것.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에 ‘머리숱의 많고 적음’이 개입되는 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 그러나, 이건 당위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인공적으로 머리카락을 심고, 빠진 머리칼이 다시 돋아난다는 광고에 고액의 약을 바르거나 복용하며 탈모 치료에 고심하는 지인들이 분명 존재한다. 대머리가 고소 사유까지 되는 세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분명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2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

1월 10일 토요일 아침부터 문학 공부하는 이들이 모였다. 해질 무렵까지 계속된 학술발표, 주제는 ‘1980년대 문학을 되돌아본다’였다. 뜨거운 젊음을 바쳐 이제는 연구 대상이 된 1950년대 전반기 출생의 문학인들, 그들의 성명을 열거해 본다. ‘공장의 불빛’(1979)의 김민기(1951~2024),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문학과지성사, 1983)의 황지우 (1952~), 희곡작품들과 소설 ‘잠과 늪’(실천문학사, 1987)의 최인석(1953~), ‘황색 예수전’(실천문학사, 1983)의 김정환(1954~),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1990)의 김영현(1955~2025), ‘시와 경제’와 ‘노동해방문학’의 김사인(1956~),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 비판’(연구사, 1989)의 조정환((1956~) 등. 이들은 문학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고 찾은 순례꾼들이었다. 그 1980년대에는 서로 다른 의미를 함축한 여러 ‘민중’들이 혼거하고 있었다. 류영모와 함석헌의 ‘씨알’ 민중, 장일순과 김지하의 생명적·중생적 민중, 신경림과 박태순의 대지와 공동체의 민중, 백낙청과 채광석의 계급연합 범주로서의 민중 같은 것들이다. 김민기는 이 가운데 김지하의 생명사상에 접속해 있었다. 그는 김지하의 치열함에 매료되었고, 희곡 ‘금관의 예수’에 노래를 붙였다. 1970년대 말 여공들의 처절한 싸움을 담은 ‘공장의 불빛’을 ‘노래굿’이라 한 것은 김지하가 개척한 ‘마당굿’ 양식에 통하는 것이었다. ‘공장의 불빛’이 어떤 이상이나 염원을 그린 것인가는 ‘굿’이 무엇인가로부터 해석되어야 한다. 김지하가 1970년대 초에 쓴 ‘진오귀굿’은 특히 황해도 진혼 굿의 명칭이다. 이 진오귀굿은 망자를 하늘로 보내는 천도굿이다. 무당은 망자의 혼을 불러내고 공수를 받아 망자의 삶에 어려 있던 한을 풀어준다. 망자는 이 해원이 있어서야 편히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 ‘공장의 불빛’에 담긴 사연들과 민요와 김민기의 창작곡들은 ‘무당’ 김민기가 불러낸, 싸움에 패배한, 즉 죽음과도 같은 상황에 처한 여공들(노동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해원의, 씻김의 굿과도 같다. 그렇게 해서 생존의 문제를 안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했던 그네들은 재생과 부활을 기약할 수 있다. ‘공장의 불빛’은 생명적 민중의 해원 굿이고, 이 생명의 회복을 염원한다. 김민기와 그의 선배 김지하가 지향한 생명적 민중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의 지식계ㆍ문학계는 계급연합적인 개념의 민중 쪽으로 급격히 경사되었다. 생명적 민중은 그 내부를 분할하고 고정시키는 계급 범주들을 첨예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반면에 민중을 계급 연합으로 보고 여기서 노동자의 전위성을 내세는 방향은 억압받는 자의 독재를 정당화 한다. 2026년의 시점에서 되돌아 보는 1980년대 문학은 오늘의 격렬한 정체성주의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김민기와 김지하의 생명적 민중은 일하는 이들을 큰 하나로 포괄하는 풍요로운 개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돌아가 의지할 수 있는 고향과도 같이 따사로워 보인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1-12

종이 내음

어린 시절, 새 책 내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잠잘 때도 껴안고 잠들었었다. 나에게는 몇 가지 냄새의 화석이 있다. 새 책,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보리밭, 해 그늘지는 늦여름의 논둑 길. 이 아이들이 ‘화석의 근거지’다. 프로스트가 홍차에 찍어 먹은 마들렌 향기의 추억처럼. 새 책의 종이가 나에게 선물한 ‘내음의 기억들’은 언제나 뜻밖의 경로로 나에게 들어왔다. 그렇다. 기억은 언제나 뜻밖의 경로로 들어오는 것이다. 기억은 스스로 길을 선택한다. 새 책을 펼칠 때 코끝을 스치는 종이 내음처럼 아주 사소한 감각의 틈을 타서 들어오는 것이다. 냄새는 과거를 설명하지 않지만, 대신 과거를 통째로 데리고 온다. 설명 이전의 시간, 해석 이전의 삶이 코를 거쳐 한순간 현재로 쏟아져 들어와 나의 현재를 흔든다. 과거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채, 현재의 나를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새 책을 펼칠 때면, 글보다는 종이 내음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건다. 그 냄새는 비슷하지만, 매번 다른 시간을 불러온다. 조그만 시골집 툇마루, 학교 도서관, 비 오는 날 카페 창가, 그때의 공기, 마음의 온도, 사유의 감촉 같은 것들이다. 그런 내음들은 설명된 적이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새 책의 종이 내음이 유난히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 책을 펼칠 때, 종이 내음을 먼저 나의 심연으로 초대한다. 내 몸속 내음의 화석을 깨우기 위해서다. 코끝을 지나 폐부에 깊이 스며들어 나를 깨우기 전까지는, 책의 저자는 아직 책의 밖에 있다. 내음의 화석이 깨어나면, 읽게 될 가능성의 설렘과 지나가 버린 시간의 그리움이 동시에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서점에서 방금 사서 가지고 온 책이나 택배 상자를 열어 처음 손에 쥔 책을 펼칠 때, 아직 한 줄도 읽지 않았음에도 ‘성스러운 종이 내음의 영접’이라는 멋진 통과의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새 책 종이 내음은 마치 오래된 내면의 서가를 조용히 열어젖히는 열쇠와 같다. 첫 장의 내음이 스치는 순간, 시간은 사유의 강물이 되어 거슬러 흐르고, 잊혔던 순간들이 은은한 향기와 함께 다시 태어나 우리 존재의 근원을 깨우게 되는 것이다. 전자책은 이러한 통과의례가 없다. 종이는 사라지고 글만 남은 세계. 더 이상 후각이라는 감각이 작동하지 않는 곳. 냄새라는 기억을 통해 더 이상 과거의 어떤 것도 소환하지 않는 푸른 피 종족이 전자책이다. 종이책은 종이의 내음만으로 나의 생명을, 나의 영혼을 일깨워준다. 봄날 아지랑이 피는 들녘 초록의 내음처럼,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 자라는 벼의 뿌리에 정화된 논물의 내음처럼. 그렇다. 독서는 종이의 내음과 함께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멋지고, 아름답고, 생명 가득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다면, 향기를 맡을 일이다. 책을 들고, 봄날 초록의 언덕길을, 여름의 숲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봄의 풀과 여름의 나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대지의 여신은 오직 향기만으로 그대가 살아 있음을 노래해 줄 테니. /공봉학 변호사

2026-01-12

일용할 양식 거울

2026년 새해 첫날, 성당 미사에 다녀 왔다. 해마다 그래왔지만, 새 한해를 출발하는 미사는 언제나 삶의 길을 비추는 등불 같다. 사람 세상살이는 보이는 것만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끈으로 하늘과 이어져야 한다는 진리를 새로 일깨우는 마당이 미사이니까. 앞만 보며 고해(苦海)인 세상을 살다가 미사 참례하면, 느슨해진 하늘 끈을 스스로 다시 죈다. 오늘 미사엔 노래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 기도에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란 부분이 더 가슴을 찔렀다. 평소에도 자주 마음에 와닿았지만, 지금 우리나라와 지구촌이 겪고 있는 정치, 경제, 국제관계, 전쟁 상황 등등 때문이리라.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촌의 일용할 양식마저 인간이 없애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노래 기도와 맞닿은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일용할 양식이 예수님이 한 말 원문에서도 같을까’하는 의문은 예전부터 가졌었다. 아람어와 그리스어, 라틴어도 모르는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의 ‘일용할 양식’을 생태적 입장에서 이해했다. 즉, ‘지구촌 자원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이 고루 나누어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지구 행성에 태어났을 테니까 그렇다. 나이 들어가면서 시나브로 생명은 물론, 사물 하나하나가 지구촌공동체의 일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챗GPT에 “예수가 가르친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으로 번역된 신약성경 아람어 원문의 뜻을 설명해 주세요.”하고 물었다. 친절하게도 아람어 원문과 각 단어의 뜻, 원문의 ‘필요/생존/생명의 양식’이라는 다중 의미 해석까지 소개하며 결론을 내려주었다, 즉,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달라’는 단순한 욕구 표현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의존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라고···. 한국어 번역 성경 문장에서 내가 알아들었던 뜻과 인공지능이 찾은 아람어 원문의 뜻은 같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하루하루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만 써야 한다는 마음 거울을 제시했다. ‘일용할 양식 거울’이다. 나와 우리 집의 소비생활을 거울에 비춰본다. 의식주는 물론, 소비생활에 아직 줄여야 할 구석이 많다. 겨울철 집 온도를 18℃로 산다는 S 교수의 수필이 떠오른다. 일용할 양식 거울로 우리 사회와 지구촌을 비춰보면 어떨까. 인류는 유사 이래, 가진 층의 과소비로 못 가진 이들이 고통당하고 죽어 나가도 여태 그대로다. 가축이 ‘애완’을 거쳐 ‘반려’를 꿰찼는데, 많은 사람은 가축보다 못한 삶을 아직 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이나 끝나지 않고, 하루 다르게 지구촌 곳곳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의 마음’을 저버렸기 때문일 터.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일용할 양식의 거울을 들여다볼 일이다. 그리하여 국가 간, 지역 간, 사람 간에 자원과 용품을 일용할 만큼만 나누어 써야 하지 않겠는가. /강길수 수필가

2026-01-12

미국 돈로주의와 자강론

미국의 돈로주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의 기조를 나타내는 신조어다. 19세기 미국의 먼로 독트린에서 본떠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름의 앞 글자 Don과 먼로 독트린의 Roe를 결합한 말이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정책과 해외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고립주의. 그리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장벽 올리기와 국제협력보다 미국의 단독 결정을 우선시하는 일방주의 등이 바로 돈로주의의 큰 흐름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산하기구 31개와 비유엔기구 35개 등 총 66개의 국제기구에서 미국이 탈퇴하거나 지원을 끊기로 한 내용의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전례가 없는 미국의 고립주의 전개에 전 세계가 경악스런 표정이다. 미국은 최근 특수 군부대를 동원,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한밤중에 체포, 전 세계를 또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의 이번 행동을 두고 중국과 러시아 등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쏟고있지만 미국은 국가 간 전쟁이 아닌 마약조직의 수괴인 국제 범죄에 대한 응징이라며 반론한다. 또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자국령으로 삼으려는 미국의 야욕이 노골화되고 있다. 미 국무장관은 유사시 군사력 동원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비춘다. 소련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년째 이어지고 중국은 대만을 호시탐탐 노린다. 중국의 대만 개입에 반대 뜻을 밝힌 일본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으로 중일관계도 급속히 냉각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돈로주의는 동맹국 간의 균열을 부르고 국제사회의 긴장감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위기의 국제정세다. 북과 대치한 한국은 어떤 방법의 자강론을 강구해야 할까.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1

‘연자가’에서 읽는 부모와 자식 관계

얼마 전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의 5언 30행 150자의 ‘연자가(鷰子歌)’를 읽고 생각이 제법 복잡해진다. ‘새끼 제비의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어느 집 서까래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네 마리 새끼를 애면글면 키워나가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부리와 발톱이 닳아 뭉개질 만큼 맹렬하게 ‘육추(育雛)’하는 어미 제비 부부. 한 달 내내 먹이 사냥과 언어 교육, 털 고르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모 제비. 그러던 어느 날 새끼 제비들에게 깃털이 돋아 그것들은 이소(離巢)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겨난다. 한 번 비상(飛翔)한 새끼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어미들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새끼들은 대답이 없다. 빈 둥지 깊은 곳에서 어미들은 밤새도록 슬피 운다. 이 장면에서 시인이 어미 제비들을 통렬하고도 신랄(辛辣)하게 꾸짖는다. ‘제비야, 제비야 슬퍼하지 말아라. 너희는 마땅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라. 너희가 새끼였을 때, 어미를 등지고 높이 날아간 그때를 생각해보라. 당시 부모 마음을 너희는 오늘 응당(應當) 알지니.’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대개 부모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그런데 ‘연자가’에서 시인은 부모 제비를 엄중하게 꾸짖는다. 언젠가 너희도 어렸을 적 부모 마음을 전연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 천방지축 날아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이제야 너희도 그때 부모 마음이 어땠을지 알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세대 갈등에 시달렸을 터.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구하고도 연면(連綿) 부절(不絶)하게 이어진다. 자식은 부모가 답답하다고 비난하고,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과학기술이 느릿하게 발달하던 시절에도 서로 괴로웠던 부모 자식들은 빛의 속도로 전개되는 4차 산업 혁명 시기에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의대 갈 필요 없다, 3년 내에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란 일론 머스크의 일갈(一喝)에 얼마나 많은 한국 학부모들의 간담이 서늘했겠는가! 자식들의 취향이나 적성 혹은 미래기획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지금과 여기의 평판과 자신들의 기대치만 앞세우는 부모들의 탐욕! 그로 인해 국가는 과학기술 인재를 잃어버리고, 청춘은 막다른 골목을 서성대고!···. 요즘 같은 시절에 30년 한 세대 차이는 그야말로 석기시대와 대항해시대 차이만큼 거리가 멀다. 그다지 깊지도 다채롭지도 못한 세상 경험과 거론하기조차 쑥스러운 독서량, 빈곤한 상상력과 태부족한 역사 지식으로 무장한 부모 세대의 닦달에 청춘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러하되 내 자식 의대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그날그날 살아가는 철부지 부모들이라니! 21세기 20년대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배우고 다시 배우는 시간대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사물(事物) 인터넷이 일상화하는 시기에 부모들은 자식들 못잖게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1200년 전 밤새 슬피 울던 어미 제비처럼 되지 않으려면!···.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1

외국인 노동자의 낮은 목소리

“세상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큰아이가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변함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한때 난민을 지원하는 공익법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아이는 세상의 끝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었고, 자신은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엄마인 나에게 교훈을 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사함과 함께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의회에서는 ‘포항 외국인 노동자 인권 개선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동대학교 아시아인권법학회 지도교수와 학회원, 포항시 관계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7월 숲 가꾸기 사업 현장에서 폭염으로 네팔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시정질문을 했고,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그 연장선에서 이번 간담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포항 외국인 선원 인권 보호’ 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실제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웠지만, 구룡포 일대를 중심으로 외국인 선원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포항시는 경제노동과에서 외국인 근로자 상담센터 운영 현황을 공유했고,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해 외국인 노동자를 배려한 5개 국어 안전지침 안내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촌활력과에서는 E-10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선원 관리 실태를 설명했고, 녹지과는 네팔 노동자 사망 이후 산림사업 업무 대행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더욱 강화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 폭염 속 숲 가꾸기 사업 도중 사망한 네팔 노동자 사건과 관련해 시정질문을 준비할 당시, 포항시와 산림조합, 시공사가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 전반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지침과 매뉴얼은 존재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서류 속 매뉴얼’에 불과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한 장애인 단체가 재난 대피소 이용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피소에 개별 텐트가 설치되었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텐트 줄에 걸려 이동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들었던 말 가운데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은, 비장애인도 살기 좋은 세상이다”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재난 대피 시설뿐 아니라 일상 속 이동 환경과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도 같은 맥락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망망대해에서 조업하는 일부터 농촌 비닐하우스 작업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은 아직 AI로 대체할 수 없는 필수 노동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세상의 낮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며, 따뜻한 환대로 이들을 맞이해야 한다. 포항이 그들을 더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도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11

화려한 무대 뒤에 남겨진 질문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문화행사는 국가가 세계를 향해 내민 하나의 문화적 얼굴이었다. 완성도 높은 연출과 막대한 예산,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얻는 유명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장면들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국제 행사의 성격에 걸맞은 스케일과 이미지, ‘알리기 위한 문화’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해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는 지역의 시선은 단순한 감탄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같은 도시, 같은 시간 속에서 지역 예술가들은 여전히 ‘예산 부족’이라는 익숙한 문장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이 떠오른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의 아우라는 작품이 놓인 고유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삶의 맥락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규모가 확장될수록 예술은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삶의 자리에서 분리될 위험도 커진다. 벤야민이 경고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삶과 분리된 예술은 결국 소비되고 사라지는 이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PEC 문화행사가 국제적 이미지로서의 아우라를 가졌다면, 지역 문화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생성되는 또 다른 종류의 아우라를 지닌다. 지역 문화의 힘은 크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밀도에 있다. 골목과 시장, 항구와 학교, 그리고 그 공간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는 대체 불가능한 문화 자산이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축적된 문화는 쉽게 복제할 수 없고, 외부에서 단기간에 이식할 수도 없다. 이를 외부의 화려한 콘텐츠로 덮어버리는 순간, 문화는 삶에서 떨어져 나가고 배경으로 전락한다. 벤야민이 말한 ‘전통의 단절’은 거창한 파괴가 아니라, 바로 이런 무심한 대체에서 시작된다. 오히려 저예산 문화행사가 지닌 가능성은 이 단절을 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장비와 기술, 홍보가 부족한 대신 기획은 필연적으로 삶에 가까워진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주체가 되고, 관객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될 때 문화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기억으로 남는다. 이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행위(praxis)’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아렌트에게 행위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가 시간 속에서 지속성을 획득하는 실천이었다. 지역 문화는 바로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고 축적되는 장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국가급 축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다. 해마다 반복되는 작고 꾸준한 문화 활동, 눈에 띄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는 실천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만든다. 예산은 줄어들 수 있어도, 시간 속에서 쌓인 신뢰와 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APEC 문화행사가 국가의 얼굴이었다면, 지역 문화는 지역의 심장이다. 심장은 크지 않아도 된다. 다만 멈추지 않고 뛰어야 한다. 벤야민의 말처럼, 진짜 아우라는 언제나 삶의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지역 문화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생성되고 있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1-11

달력이 1월을 사랑해서

리본과 화분이 약속한다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포옹한다 단골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혼인 신고를 마친 보르헤스 전집과 3단 책장 새로 산 우산이 겨울비를 맞는다 계단이 물 자국을 빨아들인다 투명한 창문에 입김을 불어 글씨를 쓴다 오래오래 잘 사세요 부러진 밥상과 스프링이 빠진 볼펜 사람은 고쳐 쓰지 말랬지만 사물은 몇 번이나 고쳐 쓸 수 있고 머리부터 집어넣는 티셔츠의 세계 몸통이 구멍인 빨대의 세계 뜨거워져야 움직이는 엔진의 세계 달력이 1월을 사랑해서 새해가 온다 바퀴가 동그라미를 따라 해서 자전거가 움직인다 컵과 얼음이 만나서 완성되는 여름 구멍 난 장갑이 눈사람의 차지가 되는 겨울 창문에 쓴 글자가 남아 있다 오래오래 ―임지은, ‘사물들’ 전문 (시집,‘이 시는 누워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 민음사)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변덕을 가진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오래오래”라는 주문과 함께 1월의 신세계를 열어젖힌다. 1월의 메타포는 ‘처음’과 다름 아니다. 가족의 처음이 혼인이라면 “단골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혼인 신고”를 마친 것으로, 공동체의 최소 단위는 시작된다. 보편적인 인식에서 보자면 “보르헤스 전집”과 “3단 책장”과의 혼인은 제법 어울리는 결합이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다. 임지은의 이 시에는 그러한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을 재기발랄하게 은유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리본과 화분의 약속”이라니. 리본이니 화분이니 하는 사물의 이름은 아담의 언어로,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로 약속한 이름들이다. 무엇보다 이 시에는 어울릴 법한 사물과 사물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가령 “리본과 화분이” “약속”하고,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포옹”하고, “우산”이 “겨울비”를 맞고 “계단”이 “물자국”을 빨아들이는 식이다. 이들 관계성에는 이질감이나 이물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가 가진 언어의 질감이고, 마법이다. 하마터면 시인의 능청에 속을 뻔하지 않았는가. 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시의 제목 ‘사물들’이라는 무생물성에 있다. 여기에 열거된 사물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의 사물들이다. 그런데 왜 관계성의 언어로 사물들을 선택했을까. 예컨대 화자는 “부러진 밥상과 스프링이 빠진 볼펜”을 불러 답한다. “사람은 고쳐 쓰지 말랬지만, 사물은 몇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다고 말이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재료이면서, 반면 가장 불완전한 재료이다. 이 세계는 온통 쓸모로 가득하다. “몸통이 구멍인 빨대의 세계”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이 세계의 비인간성에 대해 시인은 “사물들”의 입지를 빌어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역설하고 있다. 결국 사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인가. 시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뜨거워져야 움직이는 엔진의 세계”처럼 둥글게 굴러가는 세계를 소망하는 것. 마치“바퀴가 동그라미를 따라 해서 자전거가 움직”이듯 말이다. 우리는 시인의 “오래오래”의 주문을 “달력이 1월을 사랑해서 새해가 온다”라는 믿음에 첫 마음을 얹어보는 것이다. “창문에 쓴 글자가 남아 있다, 오래오래” /이희정 시인

2026-01-11

AI는 마법이 아니다···인공지능이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

지난주, 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준비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주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AI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마법 같은 존재로 여기지만, 실상 AI는 명확한 원리로 작동하는 기술이다. 그 원리를 이해하면 AI를 훨씬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포항 죽도시장의 작은 마법 예를 들어 죽도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 사장은 최근 ChatGPT를 활용해 매일 SNS 홍보 글을 작성한다고 하자. “오늘은 국내산 마른오징어 특가!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라는 문구부터 계절별 상품 소개까지, 이전에는 30분 이상 고민하던 일을 이제는 5분 만에 홍보 문구를 만들어 활용한다. 여기서 김 사장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이거 정말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하는 건가요? 너무 신기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김 사장처럼 AI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여길 수 있다. 과연 그럴까? AI의 진짜 정체 - 패턴을 찾는 예측 기계 AI, 특히 ChatGPT 같은 생성형 AI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다음에 올 단어 예측하기’다. 예를 들어보자. “포항 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부분 “철강”, “과메기”, “호미곶” 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AI가 하는 일이다. AI는 인터넷에 있는 수천억 개의 문장을 학습하면서 “포항” 다음에는 “철강”이 자주 나온다는 패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패턴을 바탕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ChatGPT는 약 1조7000억 개의 매개변수(파라미터)를 가진 거대한 수학 모델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온다면, 포항시 전체 인구가 50만 명인데 그보다 340만 배나 많은 연결점을 가진 신경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AI는 통계와 확률로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답변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계산을 초고속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ChatGPT의 등장이 바꿔놓은 결정적 차이 그렇다면 왜 2022년 ChatGPT 출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이렇게 다를까? 사실 AI 기술 자체는 1950년대부터 존재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도 AI였다. 그런데 ChatGPT는 무엇이 달랐을까? 우선 대화가 가능해졌다. 이전의 AI는 특정 작업만 수행했다. 알파고는 바둑만 뒀고, 음성인식 AI는 음성만 인식했다. 하지만 ChatGPT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질문하고, 보충 설명을 요청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달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옆에 똑똑한 비서가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범용성이다. ChatGPT는 글쓰기, 번역, 코딩, 수학 문제 풀이, 요리 레시피 제안까지 수천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하나의 AI가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혁명적 변화였다. 셋째, 누구나 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이것이다. 이전의 AI는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었다. 복잡한 프로그래밍 지식이 필요했고,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ChatGPT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그냥 대화하듯 말을 걸면 된다. 학습 방식의 비밀 - 어떻게 똑똑해졌나? ChatGPT가 똑똑해진 과정은 세 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사전 학습 - 인터넷에 있는 책, 논문, 웹사이트, 대화 등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읽는다. 이 과정에서 언어의 패턴, 세상의 지식, 추론 방법 등을 배운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부터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것과 비슷하다. 2단계: 지도 학습 - 사람들이 좋은 답변 예시를 보여준다.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는 게 좋아”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3단계: 강화 학습 - 여러 답변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사람이 평가한다. AI는 이 피드백을 받아 점점 더 나은 답변을 만들어낸다. AI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AI는 ‘패턴’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내놓는다. 이를 ‘환각(Hallucinatio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는?”이라고 물으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카페 이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AI는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패턴에서 그럴듯한 이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그럴듯한 답을 생성한 것이다. 그래서 AI를 활용할 때는 항상 중요한 정보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날짜, 숫자, 고유명사 같은 것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나?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두 가지가 명확해진다. 첫째, AI는 도구다.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도구일 뿐이다. 망치가 스스로 못을 박지 못하듯, AI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둘째,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 AI는 질문의 패턴을 보고 답한다. 막연한 질문에는 막연한 답이, 구체적인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이 나온다. “보고서 써줘” 보다는 “2025년 포항시 관광객 증가 추세를 분석한 500자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 해줘”라고 물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마법이 아닌, 과학을 이해하면 AI는 마법이 아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통계 계산을 수행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면, 마법처럼 느껴지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죽도시장 김 사장도 이제는 안다. ChatGPT가 스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수많은 홍보 문구의 패턴을 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원리를 이해하니, 어떻게 질문해야 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음 주에는 프롬프트, 즉 AI에게 말 거는 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AI와의 대화에도 요령이 있다. 같은 도구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니까.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1-11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국민의힘이 당명을 바꾼다고 한다. “당의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노선을 변경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정당의 생명은 노선이다. 같은 ‘가치와 방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다. 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을 바꾸는 것은 당을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대한 일이다. 기존 노선에 대한 처절한 반성, 새로운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정말 절박하고, 이름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있는 걸까.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단이라면 묵은 때와 지저분한 속옷은 그대로 둔 채 외투만 바꿔 입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국의 정당은 수시로 이름을 바꾼다. 포퓰리스트 정부가 부채 탕감하듯, 이름표만 바꾸면 과거의 잘못이 모두 사라진다고 착각한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런 식의 이름 바꾸기가 많아졌다. 보수 정당을 보면, 13대 국회에서 ‘민주정의당’이 심판받았다. 전두환 전 대 통령이 국회로 소환되고, 백담사에 유폐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과거의 업보를 털어내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마저 지우며 ‘신한국당’이라고 다시 개명했다. 외환위기로 정권을 빼앗기자, 이회창 총재는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갈았고,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천막당사와 ‘새누리당’으로 변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당대표보다 비대위원장이 더 많은 혼란을 겪었다. 당 이름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계속 바뀌고 있다. 이름을 바꿔야 할 정도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정말 부끄러워하기는 하는 걸까.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측이 모두 10번 넘게 이름을 고쳤다. 5공화국의 신군부가 ‘2중대’로 만든 ‘민주한국당(민한당)’을 버리고, 양 김씨(김영삼· 김대중)는 ‘신한민주당(신민당)’으로 환골탈태했다. 또다시 당 지도부가 신군부 와 타협하려 하자, ‘통일민주당’을 만들어 나가 야권의 중심을 옮겼다. 김대중 총재가 만든 ‘평화민주당(평민당)’은 3당 합당 이후 제1 야당으로 남았다.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실패한 뒤 정계 은퇴한 김 총재는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복귀했고, 집권 뒤에는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김대중당’을 ‘노무현당’으로 만들었고, 노 전 대통령의 폐족 선언 뒤 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 민주당으로 계속 바뀌었다. 권력자를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 특히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이 당명을 바꾸 고, 당을 장악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렇게 많이 바뀌었지만,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큰 잘못을 저지른 뒤에는 간판을 바꿔 달아 유권자들의 기억이 헷갈리게 했다. 식중독이 발생한 식당이 간판을 바꿔 달고 영업하는 꼴이다. 그럴수록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쓴다. 민주, 자유, 공화, 국민, 미래, 통합, 한국···. 그러나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실천이 그 이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권력 투쟁을 ‘개혁’으로 포장하고, 이름으로 화장한다. 2024년 22대 총선 때 민주당은 ‘비명횡사’(이재명계가 아니면 공천 탈락)로 공천했다. 누가 봐도 고무줄 검증이고, 비명계 쳐내기다. 이제 국민의힘이 그 흉내를 낸다. 1985년 신한민주당은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제3당이 존립하기 어렵다는 신화를 깨부순 사례다. 민정당의 2중대였던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됐다. 이어서 한 번 더 탈당하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직선제 개헌 투쟁의 발판을 삼았다. 국민 여론과 함께했기에 성공했다. 민한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에서 싸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2중대 탈피는커녕 지리멸렬하며, 민정당 일당 독재를 영구화했을 게 뻔하다. 제3당이 존립하기 어렵다. 유권자가 사표(死票)가 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과 함께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국민의 힘은 이름만 바꿔서 될 일 같지 않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11

[기자수첩] 완성되지 못한 경주의 시간, 경주, 또 한 번의 갈림길

지방자치 30년의 시간 속에서 경주는 수차례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경주는 늘 큰 계획을 세워왔다. 그러나 그 계획을 끝까지 완성한 기억은 많지 않다. 역대 경주시장 대부분은 재선의 문턱은 넘었지만, 3선의 벽 앞에서 멈췄다. 그때마다 시정의 방향은 바뀌었고, 중장기 정책은 완결되지 못한 채 표류했다. 야심 차게 추진됐던 산업 정책과 도시 재편, 관광 전략은 ‘진행 중’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 뿐, 끝까지 매듭지어진 사례는 드물다. 행정의 연속성이 깨질 때마다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됐다. 새 시장의 공약에 밀려 기존 사업은 재검토 대상이 됐고, 방향은 바뀌거나 속도가 늦춰졌다. 계획은 있었지만, 축적은 없었다는 평가가 반복되어온 이유다.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경험’이다. 다선 정치인이 가진 강점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법과 제도의 흐름, 행정 절차의 맥락, 중앙과 지방의 힘의 구조를 이미 겪어본 경험은 중장기 과제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이는 개인의 정치적 성과를 넘어 지역 전체의 효율성과 직결된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간의 관계다. 지역 발전은 어느 한 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앙 정치와 지방 행정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정책은 속도를 얻고, 예산은 현실이 된다. 전략적 협력이 구축될수록 지역의 미래 설계는 구체성을 띤다. 현재 경주가 마주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산업 구조 개편은 이제 막 궤도에 올랐고,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가 어떤 도시로 남을 것인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제 행사의 성공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지, 도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향후 시정 운영에 달려 있다. 이 모든 과제는 한 임기 안에 매듭지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물론 3선이 자동으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부담과 우려 역시 존재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가 권력의 연장이나 단순한 인물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시작된 정책에 연속성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전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가깝다. 정치는 늘 변화와 견제를 말한다. 그러나 행정은 축적과 책임이 필요하다. 경주는 그 균형을 찾지 못해 번번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다시 ‘연속성’이라는 단어가 거론되는 이유다. 결국 판단은 시민의 몫이다. 도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어떤 선택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고민하는 시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정의 연속성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그 연속성을 허락할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질문이자, 동시에 답이 될 것이다. hsh@kbmaeil.com

2026-01-11

[역사 인문학] 왜군 목을 베어오면 노비 면천(免賤)을 허 하노라

임진왜란의 승리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이순신의 제해(制海)권 장악, 의병의 봉기, 명(明)의 참전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전쟁을 버텨낸 또 하나의 중요한 동력은 조선 사회 내부에서 작동한 ‘전시(戰時) 신분 유연화’, 즉 천민·노비에게까지 전공(戰功)을 기준으로 보상을 약속한 면천 제도였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군사 체계는 사실상 붕괴 상태였다. 군역(軍役)은 형식적으로 유지됐지만 군포(軍布) 대납과 군역 회피로 상비군의 실전 능력은 크게 약화돼 있었다. 양반층은 전투를 기피했고, 왜군은 조총과 기동전술로 기존 전투 질서를 무너뜨렸다. 유성룡이 ‘징비록’에서 “군은 있으되 싸울 자가 없고, 법은 있으되 지킬 자가 없다”고 탄식한 이유다. 이 위기 속에서 조선이 택한 현실적 선택이 바로 ‘신분보다 전과(戰果)’라는 전시 논리였다. ‘선조실록’ 권51, 선조 27년 5월조에는 군공(軍功)을 평가하는 ‘군공사목’(軍功事目)이 정비되며 “적 한 명의 목을 베면 면천하도록 규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수급을 둘 이상 올리면 무관직을 제수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이는 단순한 포상이 아니라, 노비와 천민에게 법적 자유와 자손의 신분 변화까지 약속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조선 사회에서 노비 신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습되는 굴레였다.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는 물론, 혼인과 자녀의 신분까지 제한받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면천은 일시적 보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선택이었다. “살아남으면 자유를 얻고, 싸워 이기면 신분을 바꿀 수 있다”는 약속은 천민층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동했다. 이 제도의 효과는 특히 의병과 보조 전력에서 두드러졌다. 임진왜란의 전과 상당수는 대규모 전투보다 기습·매복·후방 교란에서 나왔다. 정규군의 통제가 느슨한 이 공간에서 천민·노비·백정 출신 병사들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왜군의 낙오병을 습격해 수급을 확보하고,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는 전투 방식은 면천 보상과 구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수군에서도 간접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 수군의 노군(櫓軍), 포수, 노(櫓)잡이 가운데 상당수는 천민·노비층이었다. 이들에게 전공에 따른 신분 상승 가능성은 전투 지속력을 높이는 사기 요인이 됐다. 더 나아가 임진왜란 당시에는 공사천을 대상으로 무재(武才)를 시험해 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면천(免賤)을 허가하는 ‘공사천 무과’까지 한시적으로 실시됐다. 무술 연마 자체가 면천의 지름길이 된 셈이다. 물론 유성룡은 이 제도를 무조건 찬양하지 않았다. ‘징비록’에는 전공 심사의 자의성, 수급 위조, 전후에 약속된 면천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문제들이 함께 기록돼 있다. 전시에는 신분의 문을 열었지만, 평시 질서로 돌아오자 그 문을 다시 닫아버린 조선 사회의 모순을 그는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조선 후기 면천의 주된 수단은 군공이 아니라 ‘납속면책’이었고, 군공면천은 보조적 수단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1662년 납속 속량가는 쌀 50석) 이는 군공면천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채,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만 작동한 임시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결국 면천·서훈 제도는 임진왜란 승리의 결정타라기보다, 붕괴 직전의 국가가 선택한 비상용 동원 장치였다. 이순신의 바다, 명나라의 원군, 일본군의 보급선 붕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 제도는 조선의 전투력을 바닥에서부터 떠받친 숨은 축(軸)이었다. 전쟁은 이겼지만, 전쟁이 드러낸 신분제의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유성룡의 성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1-10

‘한파 적응 능력’

요즘 아침마다 확인하는 기상 예보에는 ‘전국 한파 특보’, ‘체감온도 영하 20도’와 같은 살벌한 단어들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실제로 최근 북극 온난화로 인해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가둬져 있어야 할 북극의 찬 공기가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기후의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체온증 사망 사고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급격히 커졌으며, 특히 우리 지역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층과 만성 질환자의 건강에 비상벨이 켜졌다. 이제 한파는 잠시 참고 견디면 지나가는 계절 현상이 아니다. 기후 변화가 심화함에 따라 매년 더 극심하고 예측 불가능한 추위가 닥칠 것이기에, 우리는 사회 전체의 ‘한파 적응 능력’을 근본적으로 높여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한파 적응 능력’이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내복을 입거나 보일러를 세게 트는 개인 차원을 넘어, 기후 재난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후 탄력성’을 의미한다. 이에 맞춰 정부는 이미 제3차 및 제4차 국가 기후 위기 적응 대책을 통해 과거의 수동적 방어에서 벗어나, 과학적 예측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능동적 적응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있다. 해외의 다음 사례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 뉴욕의 ‘코드 블루’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노숙인 보호소 문턱을 없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며, 캐나다 토론토의 ‘워밍 센터’는 반려동물까지 동반할 수 있는 포용적 쉼터를 제공한다. 일본은 지붕 적설량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알려주는 ‘유키오로시 시그널’로 고령층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 위기 적응 대책을 주류화하여 정부, 지자체, 그리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 이미 대구는 버스정류장 온열 의자 설치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90% 이상의 높은 만족도를 얻으며 ‘교통 복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 AI 기반의 ‘폭염·한파 위험지도’를 고도화하고, 노후 주택의 단열을 개선하는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경북은 ICT 기술을 활용한 마을 단위의 정밀한 한파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주민이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마을 제설 봉사단’과 같은 공동체 거버넌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파 적응 능력’은 대구·경북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 열쇠이다. 우리는 단순히 추위를 막는 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더 안전하고 포용적으로 재설계하는 ‘창조적 혁신’의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우선,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 범위를 현실화하고, AI와 IoT를 활용한 비대면 건강 관리 시스템을 상시화해야 한다. 또한, 신축 건축물이나 도시 재개발 시 북유럽 수준의 고단열 기준과 효율적인 지역 난방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파 대응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대구·경북이 기후 위기 속에서도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내는 글로벌 기후 탄력성 리더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1-08

점집 대목 시즌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붉은 말의 해’라면서 새해의 염원을 담고 있다. 붉은 말은 설날 이후에나 오는 것을 알면서도 설날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일단 먼저 즐기자는 마음이 강한 모양이다. 주작(붉은 참새)을 가리키는 남쪽 방위의 색이라 붉은 말이라고 하는지, 천간이 ‘병(丙)’이어서 화(火)에 속하기 때문에 붉은색이라고 하는지, 찾아보지 않고 쉽게 설명해 주는 이가 없다. 쉽게 설명이 되지도 않겠지만 그걸 꼭 들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청색이라면 청색’ ‘붉은색이라면 붉은색’인가 하고 고개만 끄덕여 준다. 천간과 지지에 의해 ‘붉은 말띠의 해’라고 하니 그런가 하고 이해하지만, 천간과 지지는 음력 기준이라 아직 좀 기다려야 한다. 해가 바뀌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집이 대목을 탄다. 종교를 가지고 안 가지고 별반 차이가 없다. 교회 다니면서도 점집 찾고 절에 불공드린다고 부지런히 법당을 드나들면서도 버젓이 점집을 찾는다. 이런 상황이니 신부님이나 목사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찾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꾸짖으면 되지만 신도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림을 사는 절의 궁색한 사정으로는 스님이 명리를 공부해 대충이라도 신자의 마음을 달래주지 않을 수 없다. 옥황상제나 용왕을 모시거나 관우 장군을 모시는 무당들도 버거운데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명리학이니 뭐니 해서 사주팔자로 사람들을 현혹하니 주지 스님 머리가 자못 복잡하다. 사기 치는 집단들, 무당이나 점쟁이들은 사람의 아픈 구석을 집요하게 후벼파거나 자식이나 건강을 빌미로 협박한다. 병으로 죽거나 자식이 잘못된다는데 ‘이깟 돈이 뭔 대수냐’라는 생각에 한순간 자신의 지조를 무너뜨리고 만다. 무당의 특징이 과거는 잘 맞추는데,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귀신을 통한 영매도 귀신이 알려주는 과거는 족집게처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귀신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선 대충 어벙벙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제대로 된다면 달셋방에 대나무 꼽아놓고 손님 기다리는 무당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에 관한 궁금증 때문에 과거를 잘 맞춘다는 무당을 찾아 구렁이 알 같은 돈을 아낌없이 주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답답한 일이다. 국정을 점쟁이들 손에 맡겨 운영하려 했던 대통령도 있었는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있다. 한 심포지엄에서 패널로 나온 출중하시고 고명하신 선생님들의 발표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역사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였다. 요지는 언제부터 우리는 어려운 역경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헤쳐 낸 과거 몇몇 선배들의 희생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것으로 결론 내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그래서 향후 10년 뒤를 전망해 주십시오.” 미래에 대한 대안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개선 방안이라도 내놓았으면 좋으련만 패널분들은 흘러간 과거 노래만 하고 있었다. 용한 무당도 모르는 미래를 이야기하라는 나도 미친놈이지만. /노병철 수필가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