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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경북 행정통합, 민주적 절차가 먼저다

“경북 도민의 의견 수렴 절차가 없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2024년 11월, 제319회 포항시의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필자가 밝힌 내용의 일부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정부가 지방 행정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경북도는 오는 28일 경북도의회 찬반 표결로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통합을 선택하는 광역자치단체에 대해 대규모 재정 지원과 제도적 특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북 22개 시·군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대구시와 경북도의회 표결만으로 통합을 강행하는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는 이미 여러 차례 진행돼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같은 한계에 부딪혔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속도만 앞섰고, 통합 이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되지 못했다. 특히 경북 북부권과 동해안권에서는 행정과 재정, 핵심 기능이 대구로 집중돼 결국 ‘흡수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반복돼 왔다. 경북 22개 시·군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경북도는 이번에도 시·군 단위의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28일 도의회 찬반 표결로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경북도는 4개 권역에서 단 한 차례씩 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공론화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후 대구시장 사퇴 등의 정치적 변수로 통합 논의는 중단됐고, 충분한 숙의 과정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광역지자체 간 통합을 선택할 경우 최대 2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 부여, 공공기관 이전 우대, 산업 활성화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점에서, 이는 지방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부가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하자, 경북도는 다시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행정통합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제도적으로 명문화하는 일이다. 경북 22개 시·군의 운명을 도지사 한 사람의 의지와 경북도의회 표결만으로 결정하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특히 경북처럼 정치 지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역일수록, 민주적 절차를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장치가 더욱 필요하다. 행정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통합 자체가 목표가 되는 순간, 지역은 다시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 수천억,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중대한 결정일수록 속도보다 내실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의 행정통합 구상이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 실질적인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촘촘한 제도 설계와 함께 도민과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내는 민주적 절차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25

이야기에서 삶으로

그동안 지역의 문화정책이나 행사는 잘 말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서 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얼마나 감동적으로 보여야 할 것인가가 기획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 문화가 시민의 삶 속에서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가, 문화를 경험한 후 일상생활의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는 물음이다. 대부분의 경우 문화는 계속 소비되지만,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문화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에서 시작하여 해보기, 그리고 살아내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스토리두잉(storydoing), 스토리리빙(storyliving)이라는 세 단계로 구분하여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문화가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고 지속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흐름을 표현한 것이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문화의 시작점이다. 지역의 역사와 장소의 기억, 사람들의 삶을 서사로 엮어 전달하는 과정이며 공연과 전시, 아카이브와 해설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공감도 형성된다. 그러나 시민은 여전히 관람자에 머물고 있으며 이야기는 전달되고는 있지만, 아직 삶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은 반복되고 연출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행사가 끝난 뒤의 일상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는 쉽게 잊혀지고, 문화는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전환이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다. 스토리두잉은 이야기를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게 만드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며 전시를 ‘보는’ 대신 그 과정을 체험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대신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문화는 머리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몸으로 기억되는 즐거운 경험이 된다. 시민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대신, 이야기를 해봤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면 한계는 분명하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삶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문화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단계는 스토리리빙(storyliving)이다. 스토리리빙은 이야기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 속 관계와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상태를 의미한다. 시민은 공동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서사를 살아가는 주체가 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역의이야기를 따로 배우기보다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장하고, 문화는 콘텐츠가 아니라 생활 속의 일부가 되어진다. 스토리텔링만 반복되는 문화는 쉽게 소진된다. 스토리두잉이 더해질 때 문화는 참여가 되고, 스토리리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이 된다. 지금 문화정책과 예술기획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가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이다. 문화는 말할 때 시작되지만, 해볼 때 깊어지고, 살아낼 때 비로소 지역의 얼굴이 된다. 지금의 지역 문화가 향해야 할 방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1-25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 -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초

지난주, 우리는 같은 인공지능(AI)을 써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영일대 카페 박 사장의 사례처럼, “카페 홍보 글 써줘”와 “포항 영일대 해변이 보이는 카페의 인스타그램 홍보 글을 30대 여성 대상으로, 감성적 톤으로, 바다 전망과 수제 케이크 강조하며 100자로 써 줘”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이번 주에는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구체적인 기법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 씨의 고민 포항에서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김 씨는 최근 고객 피드백이 담긴 메일에 답글 작성할 때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번 막막하다. “클라이언트가 ‘로고가 마음에 들어요’라고 하면, 저는 그냥 ‘감사합니다. 수정 사항 있으시면 말씀 해주세요’라고만 써왔다. 답글에 대하여 AI에게 물어봐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비슷한 답만 나와서 무척 답답하다.” 이런 고민을 옆에서 본 대학생 아들이 다음 네 가지 기법을 우선 알려 줬다. 첫 번째 기법: 예시로 가르치기(Few-Shot Learning) 사람은 예시를 보면 더 잘 이해하는데, AI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스타일의 예시 2~3개를 보여주면, AI는 그 패턴을 이해하고 따라 한다. 김 씨 아들이 이렇게 해보라고 했다. 다음 예시처럼 클라이언트 피드백에 답변을 작성해 줘. 예시) 고객 피드백: 로고 색상이 브랜드 이미지와 잘 맞네요. 답변: 브랜드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명함과 간판 시안도 같은 컬러 시스템으로 전개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예시를 알려준 후 ‘폰트가 읽기 편하네요’라는 고객의 피드백에 대하여 같은 “스타일로 답변 써 줘”라고 요청하면 AI는 익힌 예시를 기반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이 서체는 인쇄물과 디지털 환경 모두에서 최적화되어 있어, 향후 다양한 매체에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예시만 보여줬는데, AI는 김 씨가 원하는 전문적인 어조와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전문 용어 사용, 간결한 톤, 다음 단계 제안까지. 이 기법의 핵심은 ‘보여주기’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자. 특히 글의 톤, 길이, 구조가 중요한 작업에서 강력한 결과를 보여줄 것이다. 두 번째 기법: 단계별로 생각하게 만들기(Chain-of-Thought)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풀기는 어렵다. 사람도 단계별로 생각하듯, AI에게도 그렇게 시켜야 한다. OO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박 양은 ‘포항 지역 창업 생태계 분석’ 리포트를 작성 중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물었다. “포항 창업 생태계에 대해 써줘”, AI 답변은 일반적인 창업에 대한 정의, 전국 평균 통계, 성공 사례 몇 가지 등, 포항 지역만의 특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단계를 나눠서 다시 물었다. “포항 지역 창업 생태계를 분석하려고 해. 다음 단계들을 고려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줘 1단계: 포항의 산업 구조 특징 분석 (철강, 조선, 해양 중심) 2단계: 이 산업 구조가 지역 창업에 미치는 영향 (긍정/부정) 3단계: 포항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의 역할 4단계: 다른 지역 산업도시와 비교·분석 (울산, 창원) 5단계: 포항만의 차별화된 창업 육성 방향 3가지 제안“ AI는 제시한 단계별로 차근차근 분석한 후 답변을 제시할 것이다. “1단계: 포항은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 집적지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나 서비스업 비중 낮음. 대기업 중심 고용구조로 인해 창업 문화는 상대적으로 약함”, 최종적으로 나온 제안은 ‘철강 부산물 재활용 창업’, ‘산업 안전 IoT 솔루션’, ‘해양 친환경 에너지 기술’ 등 포항의 산업 특성을 제대로 반영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이 질문 기법은 기획서, 분석 리포트, 전략 수립처럼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에 특히 효과적이다. 세 번째 기법: 역할을 맡기기(Role Prompting) AI에게 전문가 역할을 부여하면 답변 내용이 달라진다. 같은 질문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답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다르다. 중견기업 기획팀에 근무하는 최 과장은 ‘탄소중립 실행 계획서’ 작성을 맡았다. 그래서 AI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기업 탄소중립 계획서 작성법 알려줘”, 인공지능(AI)의 답변은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하고, 감축 목표 세우고, 실행 방안 수립하고, 모니터링하는 등 일반적인 내용뿐이었다. 이때 최 과장은 역할을 부여하고 질문을 시도했다. “당신은 제조업 기업의 ESG 컨설팅을 15년간 해온 전문가야. 나는 중견 철강 부품 제조사의 기획팀 과장이고, 처음으로 탄소중립 계획서를 작성해야 해. 우리 회사는 직원 50명, 연 매출 700억 규모이고, CEO는 ESG에 관심은 있지만 과도한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있어. 향후 3년간 실행가능 한 계획서 목차를 우선순위대로, 각 항목의 예상 비용과 기대효과도 함께 알려줘.” 그렇게 되면 답변이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으로 달라지 게 된다. “1 순위: 현황 진단 및 베이스라인 설정 (예상 비용: OOO 만원, 외부 전문 기관과 협력 할 경우 정부 지원금 활용 가능, 이 단계 없이는 감축 목표 수립 자체가 불가능) 2 순위: 에너지 효율화 저비용 프로젝트 (LED 교체, 폐열 회수 시스템 등. 투자비 O 천만 원, 연간 절감액 O 천만 원, 3년 후 회수 가능, 가시적 성과지표로 CEO 설득 용이) 3 순위: 협력사 ESG 평가 체계 구축 (비용 거의 없음, 대기업 납품 조건 강화 추세에 선제 대응)“ 이렇게 중견 제조사의 현실을 반영한, 실행가능 한 구체적 조언이 나오게 된다. 예산 제약, 경영진 설득, 정부 지원금 활용까지, 역할 부여는 단순히 “전문가처럼”이 아니다. “어느 입장에서,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제약 안에서” 답해야 하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네 번째 기법: 제약 조건 명확히 하기(Constraint Definition) “이것만은 피해줘”라는 조건도 중요하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주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포항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남OO 활동가는 ‘영일대 해변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제안서를 포항시에 제출하려고 AI에게 “해변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제안서 써줘”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AI는 전국 어디에나 적용되는 일반적 방안들, 예산 규모 불명확, 실행 주체 모호, 거창한 목표만 가득한 결과를 제시해 실제로 시청에 제출하기엔 부족했다. 이때 남OO 활동가는 제약 조건을 명확히 넣은 질문을 AI에게 제시했다. “포항시 환경정책과에 제출할 ‘영일대 해변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제안서를 작성해 줘. 단, 예산 1000만 원 이내로 3개월 동안 실행 가능한 (안)만 제시하고, 거창한 구호나 추상적 목표는 배제해 줘, 구체적 실행 방안 중심으로 시민 참여 유도 방법을 반드시 포함 (자발적 참여 유도, 강제 금지)해 줘, 기존 다른 지역 실패 사례(일회성 이벤트, 참여 저조)를 기반으로 실패를 피할 방안 명시하고, A4 2장 이내, 표와 그래프 없이 텍스트만으로 담당 공무원이 상급자에게 보고하기 쉬운 간결한 문체”로 작성해 줘, 라고 질문했다. 그렇게 되면 답변 아래 내용과 같이 보다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사업 개요 영일대 방문객(연 200만 명) 중 여름 성수기(7~9월) 이용객을 대상으로 ‘쓰레기 되가져가기’ 캠페인 전개. 1회 용 플라스틱 사용 20% 감축 목표. 실행 방안 · 해변 입구 3곳에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함 설치 (250만 원) · 주말 자원봉사자 운영, 분리배출 안내 및 참여자에게 친환경 비치백 증정 (300만 원, 자원봉사센터 연계로 인건비 절감) · 해변 카페·편의점 5곳과 협약, 텀블러 지참 고객 할인 (예산 불필요, 업체 자발 참여) 기존 실패 사례 방지책 · 다른 지역은 1회 성 행사로 끝났으나, 본 캠페인은 3개월 지속 운영. 매주 SNS 참여 인증 이벤트로 자발적 참여 유도 (SNS 경품 비용 150만 원). 예산 · 총 950만 원 (설치비 250만 원, 운영비 550만 원, 홍보비 150만 원) 기대효과 · 여름 3개월간 약 15톤의 플라스틱 감축 추정. 시민 환경 의식 제고 및 포항시 친환경 이미지 강화.“ 제약 조건은 현실의 벽이다. 예산, 기간, 금지 사항, 필수 포함 내용, 분량 등 이런 제약을 명확히 알려줄수록 실제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답을 얻는데 용이하다. 중요한 건 이 기법들을 조합해 보다 강력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 씨의 업무를 들어 예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 “당신은 10년 차 브랜드 디자이너야. (역할/Role) · 다음 예시처럼 고객 피드백에 전문적으로 답변을 써줘 (예시/Few-Shot) 단, 전문 용어는 최소화하고, 구체적 다음 단계를 반드시 제안할 것. (제약/Constraint) · 다음 단계로 작성해 줘: (단계/Chain-of-Thought) 1단계: 피드백의 핵심 요소 파악 2단계: 디자인 의도 설명 3단계: 브랜드 전략 연결 4단계: 다음 작업 제안 이들 질문들은 처음의 “답글 써 줘”와는 차원이 다른 질문이다. 그리고 결과도 당연히 다르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부른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1-25

매관매직이 제도가 되어선 안 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강선우 의원(민주당 소속이었다가 공천 헌금 의혹으로 제명)은 1억 원이 든 쇼핑백이 자기 집에 있는 데도 석 달 동안 몰랐다고 한다. 2022년 1월 자신의 보좌관이자 지역 사무국장이었던 남 모 씨가 김경 서울시의원 후보로부터 1억 원을 받아, 강 의원 집에 두고 갔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석 달 뒤인 4월에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남 보좌관에게 돌려주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8월이 되어서야 돌려주었다고 한다. 강 의원은 공천 헌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가, 보좌관이 받았다고 뒤집었다. 강 의원과 김경 시의원, 남 보좌관, 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돈이 전달됐다는 증언이 나오자, 강 의원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끼리 주고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 의원이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살려달라”며 돈 받은 사실을 고백하자 김병기 의원은 돌려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컷오프 대상이었던 김경 시의원이 단수 공천됐다. 경쟁 기회도 빼앗겼던 후보, 그것도 공천 헌금으로 말썽이 난 후보가 하루 사이 어떻게 단독 후보로 확정된 것일까. 공천 기준이라는 게 있는 건가. 김병기 의원은 또 어떤가. 돈 거래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단수 공천을 해줬을까. 정치인들에게 빠지지 않는 게 부동산 문제, 자녀 입시와 증여 문제다. 김 의원도, 이혜훈 전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전 의원 아들은 할아버지가 내무부 장관을 해서 연세대에 입학했단다. 전직 고위 관리의 자녀뿐 아니라 손자·손녀까지 명문대에 특혜 입학시켜 주는 나라인가. 자손 대대로 그런 특혜를 누리려고 기를 쓰고 장관이 되려고 하나. 국회의원은 성역이다. 웬만한 죄를 지어도 처벌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제도를 바꾸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선거법이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다”라고 하겠는가. 의원들은 나라의 근본을 바꾸는 개헌보다 자신의 사소한 이권에 목숨을 건다. 그런 의원들이 법을 고치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가 면죄부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핵심 대상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으로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다. 하지만 힘없고, 연줄 없는 장삼이사에게나 엄격하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치외법권에 산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했다. 피감기관들이 100만 원이 넘는 부조금을 넣어 말썽이 났다. 부조금 한도가 5만 원이라는 건 서민들이나 신경 쓰는 모양이다. 유관기관 인사들이 100만 원이 넘게 부조한 명단을 본회의장에서 검토하다 들통이 났다.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법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출판 기념회는 정치활동이 아닌 저술 활동이라고 한다. 정치자금 모금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얼마를 모으든 상관없다. 회계 보고나 공개할 의무도 없다. 6월 3일 지방선거다. 4개월여 남았다. 김경 시의원의 공천 사례가 특별한 경우일까. 김병기 의원도 1천만 원, 2천만 원씩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구의원의 활동비 카드를 가져다 썼다는 의혹도 있다. 사후 뇌물죄에 해당한다. 그러니 다하는 일인데, 재수가 없어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기초의원 5000만 원, 광역의원 1억 원이라는 소문은 사실일까. 이번 선거도 그렇게 공천할까. 그 돈은 어디서 충당하나. 김경 시의원의 의혹처럼 가족회사를 만들어, 국고를 수억 원씩 빼먹어야 하나. 심지어 어떤 지방에서는 5급 승진에 5천만 원, 4급 승진에 1억 원으로 정해져 있다는 소문도 있다. 결국 돈 공천은 매관매직 (賣官賣職)과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이어진다. 먹이사슬이다. 세도정치로 민생이 도탄에 빠졌던 왕조시대가 떠오른다. 정치가 해 먹는 돈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돈으로 공천받고, 돈으로 승진한 공직자가 주민을 위해 일할 리 없다. 아무리 해 먹어도 우리 편이면 면죄부를 주는 썩은 당파정치를 반복할 순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25

집 앞에 놓인 손편지

어느 날 퇴근하는데 집 현관문 앞에 두툼한 편지봉투가 놓여 있었다. 신천지 신도가 전도용으로 쓴 손편지였다. 신천지 교리의 훌륭함에 대해 편지지 세 장을 빼곡하게 채워 쓴 정성이 참 대단하다 싶다. 이런 편지를 몇십 통, 아니 몇백 통을 써 집집마다 두었으려나. 요즘은 신천지가 이런 방식으로 포교활동을 하는가 보다. 그런데 아무리 정성스레 쓴 손편지라도 모르는 사람의 집 앞에 두고 가는 일이 반복되면 스토킹 범죄가 될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으로 불리곤 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상대방의 직장이나 학교, 집 등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원치 않는데도 우편이나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는 행위, 상대방에게 물건을 보내거나 주거지 부근에 물건을 두는 행위 혹은 주거지 등의 장소에 원래 있던 물건을 훼손하는 행위는 모두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스토킹 행위가 형사처벌되는 스토킹 범죄가 되려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지속성이나 반복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제 사례를 보면 오랫동안 지켜보며 짝사랑했던 카페 종업원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건넸을 때 카페 종업원이 공포를 느껴 신고했지만 원치 않는 편지를 건넨 행위 자체는 1회에 그쳤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이 난 것이 있고,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헤어진 전 연인에게 다시 만나자는 취지의 문자를 2회 보낸 사건은 스토킹 범죄로 인정되어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스토킹처벌법은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겨난 이후 오랜 시간이 걸려 힘들게 만들어진 법이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스토킹 행위는 범죄가 아니었기에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받았고, 초기 스토킹을 막지 못해 살인 같은 중범죄로 번지기도 했다. 박사방 운영자 중 한 명이 학창 시절 선생님을 수년간 스토킹하다가 결국 조두빈에게 그 교사의 딸을 살해해 달라고 청탁한 사건, 10년간 스토킹 피해를 당하던 창원의 식당 사장이 결국 살해당한 사건, 여고생을 스토킹하다가 아파트에 불을 질러 수십 명을 사망하게 한 안인득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나친 사생팬 행위에 대해 연예인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가수 비와 김태희 부부는 자택에 찾아온 팬들이 매일 같이 자택 인근을 돌며 고성을 지르거나 초인종을 눌러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스토킹처벌법이 없던 시절이라 어찌할 수 없었다. 이제 이러한 행위는 모두 스토킹 범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스토킹 범죄가 접수되면 피해자는 신속히 접근금지 조치나 경찰의 경호 등 신변 안전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스토킹처벌법 제정 이후 수사를 받는 스토킹 범죄 피의자는 매년 급증해 2023년부터 매년 1만 명을 넘고 있다. 스토킹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도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집 앞에 마음대로 물건을 두고, 원치 않는 선물을 보내는 것도 스토킹 범죄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라도 말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1-22

미국의 ‘힘의 외교’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1위다. 미국 국방 예산은 세계 2위국에서 11위국의 국방 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는 내년도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50% 이상 늘어난 1조5000억 달러 편성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173조원이다. 국방 예산 ‘천조국’에서 ‘이천조국’으로 간다. 어떤 적도 감히 맞설 수 없는 꿈의 군대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미국 공군력은 1만3000대 이상의 항공기를 보유해 세계 1위. 해군력 역시 전세계 절반이 넘는 11척의 핵추진 항공모함을 가져 세계 1위다. 5000기 이상의 핵탄두 보유와 현역병 130만명을 보유한 나라다. 미국은 방어전선을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설치해 국경 밖에서 적을 막는 유일한 글로벌 군사전략 국가다. 전세계 80개국에 750개 이상의 해외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다. 트럼프의 군사력 강화는 두 가지 목적으로 해석을 한다. 하나는 변화하는 국제질서에서의 주도권 유지, 중국과 러시아와의 신냉전 구도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을 위대하게 하겠다는 트럼피즘이 배경이다. 일자리 창출 등 미국경제 활성화가 목적이다. 그러나 미국이 내세운 힘은 국제사회 질서를 흔들면서 동맹국으로부터 신뢰를 점차 잃는다. 그린란드에 대한 강력한 접수 의지는 동맹국을 오히려 반미세력으로 돌리고 있다. 고관세 정책 역시 미국의 국제사회 입지를 좁히고 있다. 최근 미국 내 가톨릭 지도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도덕적 외교를 촉구한 성명을 냈다. 미국의 막강한 힘도 도덕적 기반을 잃어버리면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경고음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22

‘연루’라는 감각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에 대한 사법적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만큼 법의 언어와 형식이 널리 유포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란 특검의 사형 구형 논고문이나 ‘체포 방해’ 혐의에 대한 백대현 판사의 1심 선고문의 여러 구절들이 소셜 네트워크에서 일종의 명문이라고 인용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헌재의 탄핵 판결문도 그랬지만 법의 언어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경험인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법적 단죄에 호쾌함을 느낄지언정 마음이 동화되진 않는다. 선고문이나 판결문을 비롯한 법의 언어는 문학을 공부하는 내겐 어떤 위화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 위화감은 어디서 기인하나? 법의 언어는 사법적 심판의 대상에게 내려지는 처단의 형식을 취하기 마련이다. 이런 형식에서는 선고문을 작성하는 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는자 사이(間)의 거리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법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남의 사정(事情)을 사정(査定)하는 태도에 입각해 있다. 반면 문학의 언어는 글을 쓰는 자의 마음이 읽는 자의 사연에 닿을 수 있길 바라는 요청과도 같다. 나의 언어에 타자가 정서적으로 감응할 수 없다면 문학은 애초부터 존립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분명 글을 쓴다는 게 일종의 권력 행위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권력의 자리에서 확보되는 내용이 과연 누구를 위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에 ‘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쓸 수 있어야 한다면, 그러한 자리는 어떻게 다시 ‘반성’돼야 하는 것일까? 일본의 철학자 도미야마 이치로는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미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의식 속에서 역사의 부채를 떠맡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이 어구에는 “휘말리고 떠맡는 수동성과 능동성이 뒤섞인 관계 생성 속에서 안다는 행위를 생각할 때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중동태적 사유’라 할 수도 있을 텐데, 여기서 ‘중동태’란 나와 타자를 능동과 수동,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파악하기보단 내가 타자에 대해서 말할 때 그의 상황을 단순히 활용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에 내가 연루되어 버린다는 감각이 형성됨을 뜻한다. 하지만 법의 언어에는 타자에 대한 단죄만 있을 뿐 그의 사정에 대한 동화의 가능성이 없다. 그저 남의 행위를 법적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죄의 성립 여부만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심판할 뿐인 것이다. 물론 법이란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타자의 현재를 평가하는 대신 그가 지금의 그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궤적을 심정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문학의 언어를 더 많이 접하고 싶다. 자기의 사연을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과 이들의 존재에 관해 떠들 수 있는 자 간에는 필연적으로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문학은 이 간극을 연루라는 감각 속에서 융해한다. 메마른 사회일수록 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1-22

현실적 남녀평등

간혹 이슬람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사람을 본다. 하긴 이슬람 원리주의자 탈레반은 이슬람 경전 코란을 근거로 여자를 악의 근본으로 보고 철저하게 배척하고 유린하고 있다. 여성은 철저히 남성에 복속된 존재다. 강제 결혼을 당할 수 있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되면 죽임을 당하고, 외간 남자와 말이라도 섞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훑어보다 보면 이게 이슬람 문화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은 다 있다는 이야기이다.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회고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성을 고깃덩이로 취급한다고 폭로했다. 이게 21세기 미국 대통령이란 작자의 여성관이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 내가 클 때만 해도 여자의 웃음소리가 집 밖을 나가면 안 되고 가게 첫 손님이 여자이면 재수가 없다고 했고 안경 쓴 여자는 더더욱 재수 옴 붙는다고 했었다. 안경 쓴 여자가 택시 첫 손님이었을 때 승차 거부는 물론이고 그날 사고 난다고 운행을 안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요즘은 당연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MBC 뉴스 진행을 맡은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출연했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화제가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이게 현실이다. 불교에서 비구와 비구니의 차이는 엄청나다. 비구는 250계(戒)만 받으면 되지만 비구니는 348계(戒)를 받아야 한다. 원칙주의자인 성철 스님도 이런 게 상당히 못마땅했든지 많은 부분을 개선 시켰고 보완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음을 본다. 가톨릭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고 프란치스코 가톨릭 266대 교황은 대놓고 말했다. 수녀는 사제가 아니기에 가톨릭 교단에서 아무 발언권이 없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불교에서 보살(여자)의 역할이 없으면 불교는 없다. 마찬가지로 가톨릭에서도 자매들이 없으면 성당 문 닫아야 한다. 종교에서 여성 파워가 막강하다고 아니할 수 없는데 변화의 조짐은 더디기만 하다. 답답했던지 나라에서도‘양성평등기본법’이란 것을 만들었다.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양성평등의 사회를 실현하라는 강행 규정이다. 분명 외견으로는 불평등이 여전히 지금까지도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나만 그렇게 느끼며 살고 있나? “아직 여자들이 불평등을 당한다고?” 정년퇴직하고 세끼 밥이나 축내는 삼식이란 놀림을 받지 않으려고 요리 배우는 지인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주위에 남성이 대접받는다는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기상청에서 날씨 예보할 때 기온에 덧붙여 체감온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리 기온이 높거나 낮아도 체감온도에 의해 사람이 느끼는 감응은 다르게 마련이다. 분명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직 남존여비의 사상이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체감온도는 그 반대이다. 누가 양성 불평등을 논하고 있는지 알고 싶고 직접 체감하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22

포항시민 이상민

불후의 명곡 영일만 친구로 평생을 잘 먹고 살았다는 가객 최백호 형님을 보면서 저 얼굴로도 잘 산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노래가 깊다고 짐작했지 우리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낄낄대며 우리를 위로했지 누군가의 평가에 머물지 않고 너는 네 쪼대로 살았기에 자못 훌륭했다 최백호를 강제소환한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구나 빚을 지고 살지만 시장 사람들 뜻 모아 그 소박한 살림 부풀리려 자네 아버지의 지극한 계 모임의 꿈이 파산되었어도 그 모든 빚을 자식된 도리로 다 갚은 일은 참으로 탁월했다 재래시장의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하게 성실하고도 충분히 지불을 했다 그리하여 지금 너는 헐벗고 아프다 그러나 최대한 뭉개고 살면 발바닥에 땀이라도 나서 그 열기로 내일을 기약하리라 다만 다시 못 올 세상에 대해 미련은 미련없이 팽개치고, 그리고 흉기에 가까운 얼굴로도 우리 그럭저럭 잘 살았다 우리가 생업(生業)에 몰두하다 보니 조금 구려도 그것도 나름의 향기라 생각한다 행주든 걸레든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 돌보며 살았다 자부하자 삶이 초라했어도 누추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도 짐이 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후의 자잘한 햇살을 쬐면서 담배를 꼬나문다 인생은 저 파릿한 연기와 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걸리 한 잔 때리고 노을 속으로 잠입하여 우리를 바사삭 태워 버리자,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자꾸나. ….. 아버지의 빚을 아들이 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법을 잘 몰라도, 그런 정도는 안다. 상속을 거부하면 되니까. 이 친구는 거액의 모든 빚을 다 갚았다. 아버지의 명예가 아니라 아들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으니. 가족의 명예까지 생각했으니,. 이 나라의 장남의 책임은 무엇인가? 그 일이 끝났을 때 그는 병들고 말았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병들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행복하다고 입술 질끈 깨물고 말한다. 그 궁핍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근기는 도대체 무엇인가? 술집이나 식당에 가면 거지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가끔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용납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수승한 겸손은 어디까지인가?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22

몽당연필

필통이 넘어지자, 촘촘히 꽂혀 있던 내용물들이 기지개를 켜듯이 바닥에 몸을 쏟아낸다. 볼펜을 집어 얼른 모니터에 뜬 전화번호 하나를 적는다. 필통을 일으키고 보니 참 많이도 꽂혀있었다. 가지각색의 볼펜 사이에 몽당연필이 볼품없이 끼어있다. 언제 꽂아두었는지 기억에 없다. 필통보다 키가 낮은 탓에 지금껏 눈에 띈 적이 없었나보다. 손이 먼저 쓰레기통을 찾는다. 폰을 들어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른다. 이번엔 상대의 반응이 좋다. 여러 가지를 묻더니 마치 일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난 양 좋아한다. 참 잘됐다는 말과 함께 내 나이를 묻는다. 책임자와 상의 후 바로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기대치를 한껏 낮춘 효과가 나타나는가 보다. 오래간만에 무언가 할 일이 생긴 듯, 기분이 들뜬다. 그런데 바로 전화하겠다던 사람이 몇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혹시 오늘 사무실에 들러주었으면 할까 봐 외투만 걸치면 나갈 수 있을 만큼 준비까지 했는데 말이다. 폰을 들어 배터리가 제대로 충전되었는지 확인을 하고는 현관 앞에 놓인 신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가 나이를 묻던 그 순간, 목소리의 온도가 미묘하게 차가워지던 느낌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그 일도 물 건너 갔나보다. 살아온 세월이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다. 일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숫자가 또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흑싸리 껍데기 취급을 받을 만큼 내 나이가 많았던가?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기물이 된 기분이다. 마주 앉아 이야기 해 볼 기회조차도 가져보질 못한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진다. 지금껏 참 바쁘게 살아왔다. 두 살 터울로 업고 걸리며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에도 틈만 나면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 감질나게 배우는 것은 언제나 달디 달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나는 남편의 일을 도와 스무 해 가까이 사무실을 지켰다. 아이들을 거의 방목하다시피 하면서도 공부는 놓지 않았다. 이제 집에는 남편과 나 뿐이다. 아이들의 빈자리도 큰데, 연이은 부도로 갑자기 사무실 일도 손을 놓게 되었다. 바싹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했던 시간이, 갑자기 오뉴월 신작로에 내버려진 것처럼 늘어져 버렸다. 아침 일찍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안일은 잠시면 끝나버린다. 몸이 한가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도 많이 읽을 거라 도서관을 드나들지만, 정작 글은 눈앞에서만 알짱거릴 뿐이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귓바퀴에 겉돌고 있다. 바쁜 가운데 누렸던 달콤한 것들이 헐렁해진 시간 속에서는 낯설게 멀어져갔다.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것 같은 허기가 가슴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일거리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많은 구인란 중에, 전문성 없는 중년 여자가 할 만한 일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찾을수록 내 자신이 초라해진다. 물건은 시장에 내놔봐야 제값을 안다더니, 할 수 있을 것 같던 일들이 나를 쉰내 나는 늙은이 취급한다. 두려운 것은 주름이 아니라, 나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이다. 남편이 평생을 했던 일을 놓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나 또한 사무실 일 외에는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 짬짬이 했던 공부는 그저 내가 좋아서 한 것들이라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월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거부당한 마음이 채 식기도 전에, 방금 쓰레기통에 버린 몽당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필통 속에 가려져 있다가 겨우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버려진 그의 신세가 꼭 내 모습 같다. 그도 처음부터 몽당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남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손에 잡기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로 연필의 쓸모를 무시해버린 것이다. 서랍을 뒤져 잊었던 다른 연필들을 찾기 시작했다. 들쑥날쑥한 키의 연필들을 찾아 정성들여 깎는다. 탁자 위에 나란히 누운 연필들이 까만 눈을 반짝인다. 나는 다시 모니터를 뒤져 개중 가장 작달막한 것을 집어 전화번호를 적는다. /윤명희 수필가

2026-01-22

AI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 되길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는 더 이상 미래기술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처럼 어느새 우리 일상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도시와 시민이 변화를 따라가는 속도다. AI는 이미 일하고, 쓰고, 정리하고, 판단을 돕는 도구가 되었지만, 많은 시민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무서운 것’으로 남아 있다. 포항 같은 중견도시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서울이나 판교처럼 AI기업과 연구소가 밀집한 도시는 기술중심으로 흘러가지만, 포항은 다르다. 포항은 대학과 산업단지, 전통시장과 원도심, 고령인구와 청년세대가 한 공간에서 공존한다. AI를 ‘생활밀착기술’로 실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다. 포항이 ‘AI 기술도시’ 정도가 아니라 ‘AI 친화도시’를 고민해야 할 때다. AI를 잘 만들어 내는 도시라기보다, AI를 잘 쓰는 시민이 많은 도시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시민이 AI를 이해하고, 활용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도시의 기본 책무가 되어가고 있다. 그 출발점으로 ‘AI친화도시 포항’ 캠페인을 제안한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AI로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아주 생활밀착적인 사례들을 시민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자영업자는 메뉴설명과 홍보문구를 AI로 만들고, 농어민은 병충해 사진을 분석하고 작물과 어족 성장환경을 살피며, 노년층은 말과 글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록한다. 공무원은 회의록과 보고서 초안을 AI의 도움으로 빠르게 정리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판단을 대신하기 보다 사람의 분석과 판단을 덜 힘들게 만드는 도구라는 점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AI 커뮤니티센터’ 같은 공간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 도서관과 주민센터의 중간쯤 되는 이 공간은 고가의 장비보다 ‘함께 써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일에 AI를 써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누군가 옆에서 프롬프트를 함께 써 주는 곳. 세대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AI를 처음 만나는 시민들의 ‘연습장’이 되고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이 작은 공간에서 축적된 사례들은 곧 포항시민의 AI활용 적극자산이 된다. 도시행정 역시 조용히 변할 수 있다. 민원요약, 회의정리, 자료검색 등 반복적인 업무에 AI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공무원들이 시민을 만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 AI는 행정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행정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보조수단이 될 터이다. 도시는 기술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술을 다루는 방식으로 평가받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AI가 압도하는 도시보다, 시민이 AI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 포항이 그런 도시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산업 유산이자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도시 자산이 될 것이다. AI가 존재하는 도시를 넘어, AI로 시민의 일상이 편해지는 도시, AI로 도시행정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AI친화도시 포항’을 제안하면서, 지역이 신생기술 AI와 함께 지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1-21

매일 버리는 힘

사회교육기관에서 글쓰기 강의와 인지력 강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인지력 강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질 좋은 수면과 식사, 운동,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다. 그중에서 나는 독서와 글쓰기로 진행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서도 치매 예방을 위한 세 가지 권장 사항 중에 글쓰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리정돈이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도 정리의 한 분야다. 물건을 정리할 때도 마음과 생각이 깊이 관여한다. 많은 사람이 정리정돈을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하니, 정리정돈을 못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마음과 생각이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정리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버리기가 필수다. 그러나 버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인지력 강화 교육에 참여한 분들 역시 버릴 수 없다고 난감해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버려왔지만, 아직도 뭔가 정리되지 않은 기분이 든다. 많이 줄였다는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지만 사실은 무엇을 남겨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년 9월 느닷없이 계단에서 낙상하여 어깨뼈가 골절된 후 불편한 상황을 겪으면서 무엇을 내게 남겨두어야 할지 기준이 세워지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골절된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한 달간 오른팔을 깁스한 후부터 건강 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10월 초에는 발가락을 집에 있는 실내자전거에 부딪혔는데 그게 골절이 되었고, 10월 중순부터는 왼쪽 다리에 통증이 와서 갖은 치료를 해도 제대로 걷지 못한 지 석 달이 되어간다. 이렇게 몇 달 동안 몸이 불편하다 보니 우울감까지 와서 그야말로 심신 모두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래도 다행히 일주일 전부터는 상태가 호전되어 가면서 여러 가지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있다. 특히 어떤 물건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정리하고 있다. 역시 내게 정리하기 가장 힘든 것은 책과 가방이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무거운 가방을 무슨 벼슬이나 되는 양 지고 다녔고 책 욕심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A4 파일과 책 한 권 들어가는 아주 가벼운 크로스 가방만 남겼고, 책 역시 매일 5권씩 버리고 있다. 이것은 다리 통증이라는 내 신체의 한계와 공간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구나 책에 대한 관심이 현실 도피일 수 있다는 깨달음은 책을 버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극적인 이슈가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다. 다만 평소에는 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그래서 생각정리나 물건정리가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각도 상실하게 만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한계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욕구는 인간을 나락에 빠트린다. 매일 버리는 힘은 인지력을 높이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1-21

밤에 자주 깨는 몸은 낮에도 회복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밤에 한두 번쯤 화장실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밤에 자주 깨는 일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기도 한다. 나이 들면 그렇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지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보다 보면 밤에 깨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몸의 회복력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당사자는 그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잠은 단순히 눈을 감고 쉬는 시간이 아니다. 몸은 잠을 자는 동안 낮에 사용한 에너지를 정리하고 근육과 신경을 회복시키며 자율신경의 균형을 다시 맞춘다. 낮 동안 쌓인 긴장과 피로를 정리하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바로 밤이다. 그런데 밤에 자주 깨게 되면 이 회복 과정은 계속 끊어진다. 잠은 잔 것 같지만 깊은 잠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몸은 회복을 시작했다가 다시 멈추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일어나도 피로하고 멍해진다. 이런 수면 부족은 낮 컨디션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평소의 통증이나 불편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특히 신경과 순환이 관여하는 증상은 이런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는다. 손발 저림, 어깨와 목의 뻐근함, 허리 통증 같은 증상은 밤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잠을 자느냐에 따라 회복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 낮에 치료를 꾸준히 받아도 밤에 몸이 계속 깨어 있다면 회복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 중 증상이 잘 낫지 않는 경우를 살펴보면 상당수가 밤에 잠을 자주 깨는 경우가 많다. 몸이 제대로 쉬지 못해 몸이 다시 긴장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치료 효과가 쌓이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데 몸이 회복할 틈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밤에 깨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소변으로 깨는 경우도 있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잠이 얕아 자주 뒤척이는 경우도 있다. 새벽녘에 꼭 한 번 이상 눈이 떠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밤에 반복해서 깨는 상태가 지속되면 몸 전체의 리듬이 흐트러진다는 점이다. 수면이 끊어지면 자율신경은 안정되지 못하고 그 여파는 낮까지 이어진다. 한의학에서는 통증이 있는 부위만 따로 떼어 놓고 보지 않는다. 손이 저리면 손만 허리가 아프면 허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밤에 수면이 얼마나 충실한가도 살핀다. 밤에 덜 깨고 깊이 잠들 수 있도록 몸의 균형을 잡아주면 낮에 나타나는 증상들도 자연스럽게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증이나 저림은 직접 치료하면서도 동시에 밤에 몸을 깨우는 요인을 함께 정리해 주는 것이 회복을 빠르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밤에 자주 깨는 몸은 낮에도 쉬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원래 잠이 얕아서 그렇다고 넘기기에는 그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 밤에 얼마나 잘 자느냐는 단순한 수면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낮의 통증과 피로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치료 방법만 바꿀 것이 아니라 오늘 밤 내 몸이 얼마나 깊이 쉬고 있는지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1-21

다시 울퉁불퉁해지는 세계를 위한 UN의 역할

새해 벽두부터 기대와 희망보다 절망적 소식들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지난 3일 미국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포함한 주요 지역을 공습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부부를 납치해 미국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7일 트럼프는 66개의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고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8일에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자신에게 국제법은 필요 없고, 자신을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만의 생각뿐”이라며 그린란드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내었다. 국가 간 협력을 중심으로구축된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힘을 내세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제국주의로의 회귀 선언이다. MAGA(Make America Great America)와 함께 부활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전 세계는 자국의 국익만을 앞세운 ‘공격적 일방주의’와 ‘양자 협상’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하게 하고 있다. 극단적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어렵게 유지되어 온 전 세계적인 국제협력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다시 세계를 울퉁불퉁하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지구는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구와 GATT와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주의 무역시스템과 같은 국제 협약을 중심으로 비교적 평화롭게 유지되어 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기구의 필요성에 따라 1919년 창설된 국제연맹에 이은 제2차대전의 반성 속에, 1945년 탄생한 UN(국제연합)은 전쟁 없는 지구를 위해 실로 많은 일들을 해왔고 질서 있는 국제사회를 지탱해 왔다. 사실 지구상에서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전쟁 없는 지구는 역사적으로 실제로 실현된 사례는 매우 드물고 제한적이다. 역사적으로 유일한 사례는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약 200년간 로마 제국 내에서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로마 평화(Pax Romana) 시기 외에 뚜렷이 기록된 사례가 없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평화 구축, 외교, 국제법 등을 통해 전쟁 억제와 평화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완전한 전쟁 없는 지구 실현은 여전히 이상적 목표이다. 여러 지역에서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반복되는 다양한 갈등과 위기가 지구상에 늘 존재하지만,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중단과 소련의 해체의 ‘사회주의의 종말’ 이후 미국이‘유일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짧은 시기이었지만 전쟁 없는 지구의 Pax Americana가 실현되었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미국식‘자유민주주의’와‘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전파해 사실상 세계 지배를 실현한 것 같은 위장된 평화의 시기가 그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경제적으로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IBRD)과 같은 국제기구와 ‘관세와 무역에 관한 협정’(GATT), 우루과이 라운드(UR), 세계무역기구(WTO) 등 경제협정을 통한 이른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세계 체제를 뜻한다. 저명한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5년 자신의 저서‘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정보·자본·생각·사람의 이동이 자유롭게 되어 세상은 평평해졌다”고 했다. 즉, 미국 주도의 평평해진 세계화가 국경 이동의 벽을 사라지게 하면서 자유무역과 교류를 통한 자유로워진 인적·물적 왕래와 투자가 궁극적으로 전 세계 이익에 이바지하는 시대를 만든 것이다. 이 같은 평평해진 세계화를 통해 잠시나마 전쟁 없는 지구와 자유시장 경제체제와 민주주의의 확장을 주도하였던 미국의 변심이 세계를 다시 울퉁불퉁하게 하고 있다. 새해 벽두에 들려온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이제 세계는 ‘국제협력의 규범’이 아닌 ‘철저한 자국 이익’이 지배하는 정글로 변하고 있다. 경제·통상 분야에서 시작된 ‘미국 우선주의’ 관철이 이제 국가 간 정치와 외교의 장에서도 강자의 논리대로 마음대로 하겠다는‘미국 우월주의’로 확장되며 정복자의 가치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트럼프 2기의 국가정책은 국제사회의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에 중대하고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국제기구에 의한 협상·중재·조정의 질서보다 강대국 중심의 힘의 논리가 우선되는 식민지 시대로 회귀하는 분위기 속에 ‘국제기구 무용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분쟁과 국제 갈등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던 국제기구의 무능함이 트럼프의 일방주의식 힘의 논리 앞에 속수무책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의 잿더미와 분열로부터 지구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UN 설립을 주도하였던 미국이 국제기구를 불신하고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국제협력의 시대’가 지고‘제국주의 시대’의 부활이라는 우려가 높다. 특히 UN 산하 기구를 비롯한 66곳의 국제기구에서 탈퇴는 UN의 역할 축소와‘국제기구 무용론’에 더 힘이 실리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국제기구 역할의 필요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주의(Trumpism)가 더 강화될수록 UN의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해질 것이다. 트럼프주의(Trumpism)가 부른필연적 역설(Paradox)이다. 트럼프의 기행적 조치들에도 여전히 기후 변화 대응, 보건 위기, 인권 보호 등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주의 체제의 필요성은 상존한다. 다자간 협력의 붕괴는 전 지구적 위기 대응력을 불가능하게 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빠진 빈자리를 중국이 채우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유럽 등 전통적인 우방국들 또한 미국의 독자 행보에 강한 유감을 표하다 결국 외교적 마찰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버드대 그레이엄 앨리슨 석좌교수는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의 중요한 동력은‘계산 착오’이며 자신의 능력은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면서 비극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 이후 ‘공격적 일방주의’와‘양자 협상’이 지배하는 세상은 또 다른 전 지구적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 다시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협력하여 트럼프의 미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UN을 중심으로 세계인들이 지혜를 나눠야 한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1-21

82세 여성 사기꾼

이런 것을 두고도 ‘한 우물을 판다’고 할 수 있을까? 1980년대를 살아온 중년 이상 세대라면 ‘장영자’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1944년 태어난 장영자는 중앙정보부 간부였던 남편 이철희와 함께 64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어음 사기로 구속된 후 재판을 거쳐 수감된다. 1983년 일이었고, 그녀가 사기 친 금액은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1할에 해당되는 돈이다.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장영자는 형기를 5년 남긴 1992년 3월 가석방됐다. 하지만, 감옥생활은 그녀를 교화시키지 못했다. 석방된 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1994년 1월 또 다시 140억 원 차용사기 사건으로 재구속됐으며, 2000년에는 구권(舊券)화폐 사기로 재차 감옥에 보내졌다. 악행의 반복이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사기-구속-재판-수감’으로 허망하게 보낸 장영자는 이제 여든을 넘긴 노인이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그녀의 이름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인간에게 개과천선은 결코 쉽지 않은 모양. 최근 장영자라는 이름이 다시 신문에 오르내린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사기’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지난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 장영자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죄명은 사기. 2022년 경북 경주에서 피해자를 속여 억대의 돈을 편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판결에 불복한 장씨는 항소했다. 첫 사기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꽤 긴 세월이 흘렀다. 장영자는 여든두 살이 됐다. 그럼에도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그릇된 인생을 반복하고 있다니, 사람이 바뀌기란 참으로 어려운 모양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21

물건을 버리는 일

옷장 앞에서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15년 넘게 입어 낡고 헤진 검정 패딩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엄마 손을 잡고 지금은 구도심이 되어버린 시내에 나가 고민 없이 산 옷이었다. 입자마자 몸에 꼭 맞는 듯했고 두터운 두께 탓에 몸이 두 세배는 더 커 보이던, 투박하지만 무늬 하나 없이 깔끔한 검정 패딩이었다. 나는 그것을 고등학교 교복 위에 입었고 대학교에 가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이후 직장에서까지 꾸준히도 입었다. 나는 물건도, 옷도 잘 사지 않는 편이다. 새로운 옷을 사는 데에 피로감을 느낄뿐더러 어떤 스타일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타일 이랄 게 없는 깔끔하고 기본적인 옷을 주로 입는다. 무난한 기본 티셔츠나 바지를 발견한다면 색상별로 두 장씩 구비해 두곤 한다. 그리곤 옷을 더 이상 입지 못할 때까지 수선하다 결국 더는 입지 못할 때에 버린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혀를 내두르고 엄마는 내 옷장을 볼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다양하게 구비해놓기란 늘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옷의 개수도 자연스레 적다. 사계절을 모두 합쳐도 일반적인 옷장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다. 하지만 비슷비슷하게 정리된 옷들은 편안하고, 매일 아침 옷을 고를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에 좋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볍게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하루를 한결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달까. 처음부터 옷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기심 많던 직장인 초년생이던 시절, 형편에 맞춰 여러 저렴한 옷을 사 입었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거나 유행이 지나버리거나, 혹은 원단이 너무 저렴해 금세 보풀이 일고 망가지는 경험을 반복했다. 결국 몇 번 입지도 못한 채 옷을 버릴 때마다, 낭비에 대한 허무함과 소비 습관에 대한 실망감이 들었고, 더는 이러지 말자고 마음먹게 됐다. 또 신중한 성격 탓에 옷뿐만 아니라 물건을 살 때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고르게 된다. 무언가 필요하면 가격과 상세 페이지, 제품 후기 등을 여러 번 읽고 난 후, 장바구니에 며칠씩 담아두었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껴질 때쯤 구매한다. 그렇게 고른 물건일수록 후회가 적고 잘 골랐다는 뿌듯함과 기쁨에 더 오래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또 다시 맞이하는 겨울의 계절. 날이 추워지면 나는 익숙한 검정 패딩을 꺼내 입고선 잔뜩 움츠린다. 비록 보온성은 많이 떨어졌지만 15번의 겨울이라는 그 많은 시간을 함께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옷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다. 지퍼 부분은 이미 고장 나서 잘 잠기지 않고 벗어두면 안쓰러울 정도로 축 저진 모양새지만 유난스럽지 않고 과시 하지도 않는, 내가 추구하는 삶과 꼭 닮았기에 애정이 간다.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유행에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기본에 충실한 내 옷. 내 몸에 꼭 맞는 오래된 물건들은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묵묵히 굳건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오래된 물건은 조금 안쓰러운 구석이 있다. 15년 넘은 검은 패딩은 걸을 때마다 안감 속 솜털이 빠져 나오고, 10대 때부터 머리맡에 두고 있는 토끼 봉제 인형은 이곳저곳 꿰맨 자국과 거뭇한 얼룩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쓰임의 실용성은 잃고 숨만 겨우 붙은 채 명분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물건들을 쉽게 놓아주지 못한다. 오래된 물건에 애정이 쌓일수록 버리는 일에는 더 서툴러지는 것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정리해야 할 때면 오랜 시간 망설이고, 결국 물건이 초라해질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쓰임의 본질을 잃은 물건들은 생명을 잃은 식물과 닮았다. 오래된 물건들은 대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보기에 측은해지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오랜 시간 곁에 머물러 있어 당연히 여겨지지만 실은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오래된 물건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잠시 멈춰 진지한 이별 의식을 치른다. 그러고 나면 그 물건의 존재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해진다. 이미 내 손을 떠나보냈지만 기억으로 남아 내 곁을 머무는 물건들이. 물건을 버리는 일은 아직도 녹록치 않지만 어쩌면 오랜 물건과 잘 이별하는 것이 삶에서 필요한 한 과정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요즘의 겨울은 그런 이별들로 채워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6-01-21

코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요즘 조향이 유행이래요. 알고 계셨어요?” 한 출판사 편집자 선생님이 통화 중에 내게 물었다. “아뇨. 처음 들어요.” 정말 몰랐다. 변변한 취미 생활 없이 쉬는 날엔 그저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는 내겐 생소한 얘기였다. 조향, 그러니까 천연의 향과 인공적인 향 어떤 것이든 섞어서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나만의 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동네의 아담한 카페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을 맡으며 나는 향과 관련한 온갖 기억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글씨만 읽었는데 후각이 먼저 작동한 건 ‘향수’가 처음이었다. 결말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이름인 그루누이를 입에 담으면 코에 무엇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향은 이름에도 묻어 있는 걸까. 나에게 짙게 남은 향은 초등학교 옆 시장의 골목 초입에 있던 꽃집에서 늘 나오는 그 향이었다. 장미, 백일홍, 프리지아, 안개꽃 등이 공기 중에 마구 섞여 코끝을 찌르곤 했다. 강렬함이라고 한다면 꽃집 바로 근처의 분식집에서 우리를 유혹하던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 냄새를 말해야겠으나, 이상하게 아주 멀리서도 맡아지는 건 꽃집의 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을 꽃집이 아닌 시장의 향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또 얼마 후에는 동네의 향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유달리 공사장이 많고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문방구 외에는 딱히 없던 그 동네가, 꽃집의 향으로 내 안에 남게 된 것이다. 기묘하게도 비슷한 꽃들이 있는 꽃집이라도 그 꽃집과 향이 같지 않다. 그 향을 단지 장미 향이라거나 안개꽃 향이라고 부를 순 없다. 장미 21.6%, 튤립 16.3%, 안개꽃 15.2%, 거베라 11.5%, 수국 8.9%…. 내 안에는 이런 식으로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꽃집의 향을 다시 오롯이 맡는 것은 불가능할 일일 텐데, 지금도 가끔, 어느 꽃집을 지나다 맡게 되는 향기가 기억 속의 그 꽃집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향과 관련한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따로 있다. 친구의 생일이나 지인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자주 향을 선물하곤 했다. 향수, 향초, 디퓨저, 인센스, 핸드 크림과 같은 것들. 좋은 향으로 그때를 기억하라거나 더 좋은 일상이 되길 바란다는 등의 멋진 이유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이유까지는 없었다. 우선 가격이 괜찮았다. 오 만원 내외로도 충분히 있어 보이는 게 가능했다. 포장지까지 더하면 제법 예뻤다. 또 부피가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너무 큰 선물은 방에 두는 일만으로도 짐이 될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꽤 오래 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고기는 한 번 먹으면 사라지지만 향수나 디퓨저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으니까. 특별하지는 않아도 센스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일에 수많은 향수를 선물 받기 전까진. 그러니까 향을 선물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단 것이다. 모두가 향수와 디퓨저를 나쁘지 않은 선물로 여겼기 때문에, 서로서로 기념일에 향만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BEST가 붙은 향이나 ‘이런 숲속의 나무 향을 싫어할 리는 없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향을 고르곤 했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다. 향이야말로 취향이 아주 크게 나뉘는 장르라는 것을. 우드 계열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개인의 취향은 또 디테일하게 다르다는 것을. 당신 혹은 당신들에게 제대로 향을 선물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나는 코가 지닌 감각을 아주 단순하게만 사용해왔다. 상쾌하다, 맑다, 맵다, 시리다, 구리다, 아리다, 이런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물의 색이 단순한 파랑이 아니듯 집 앞 나무의 향 또한 하나가 아니다. 해가 떠 있는가 달이 떠 있는가에 따라, 겨울인지 봄인지에 따라, 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좋겠다. 단순히 모든 바닷가에서 전해지는 바다 냄새와 짭짤한 공기를 좋아했다기보단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에 앉아서 바라보는 일몰과 은은히 날아드는 밥 짓는 냄새, 새들이 날갯짓하며 떨어뜨리는 구름의 일부, 식어가는 캔맥주의 향이 한데 섞인 바다 냄새를 특별히 좋아했다. 마음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코끝으로는 조금 맡을 수 있는 것 같다. 가끔 어떤 향은 좋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향 하나가 잊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때로는 슬픔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게 아니라 코끝이 찡해서 슬픔이 오는 걸지도 모른다. /구현우(시인)

2026-01-21

K자형 경제회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작년보다 높은 1.8% 수준으로 전망하지만 특정 부문이 강한 회복을 보이는 K자형 경제 회복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K자형 경제란 경제 전체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나 계층과 산업별로 회복의 속도가 차이가 나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국내 주식시장이 지수 5000을 바라보는 호황국면을 자랑하지만 내가 느끼는 살림살이는 더 힘들어지는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똑같은 경제 상황에서 한쪽은 높은 성장을 하는데 다른 한쪽은 고물가와 고용불안으로 고통을 겪는 모순적 구조가 바로 올해 한국경제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K자형 경제는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던 용어다. 미국은 상위 10%가 주식 자산의 90%를 보유하고 소비도 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가 편중된 구조다. 미국경제가 회복되면서 고소득층은 경제회복과 자산 증가의 혜택을 누리게 되지만 자산이 없는 저소득층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최근 K자형 경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올 한국경제 회복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크다. 만약 K자형 경제로 흐른다면 서민들로선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반도체, AI 등 특정 분야 중심의 경제성장은 전통적인 서비스 산업에 의존하는 서민경제를 더 핍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부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져 사회가 안정된다는 뜻이다. K자형 경제보다 모든 계층이 고르게 경제효과를 보는 U자형의 경제성장이 서민에겐 더 좋을 수 있다. 경제문제는 늘 어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20

한동훈 사과로 ‘국힘 내분’ 출구 찾을까

‘당원게시판(당게)’ 사태로 촉발된 국민의힘 내홍이 지난 18일 한동훈 전 대표의 사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 전 대표는 이날 2분 5초 분량의 영상을 통해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국민과 당원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서 당을 이끌었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사과’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사실상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24년 11월 당게 사건이 불거진 지 14개월 만의 첫 사과다. 장동혁 대표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대여 투쟁 방식까지 택한 상황에서 내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변의 조언을 수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당 주류 측에선 ‘반쪽사과’라는 말이 나오지만, 한 전 대표가 공식 사과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국민의힘은 내분을 잠재울 여지가 생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전 대표가 용기를 내서 사과해 준 것은 다행”이라고 했고, 양향자 최고위원은 “사과조차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리 당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고 나라를 이끌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제 당내 갈등을 풀 열쇠는 장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지난 15일 단식에 들어간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의 사과에 대해 공식 입장을 아직 내지 않았다. 그는 단식현장을 찾은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서 한 전 대표와 휴전하고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하자, 웃으며 “예”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장 대표는 당게 사태를 징계가 아닌 정치적 해결로 풀어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한 전 대표를 ‘걸림돌’에 비유하며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했었다. 장 대표가 현재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징계 취소, 수위 조절, 제명 강행 3개 뿐이다. 오는 26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징계에 대한 최종 의결이 예정돼 있어, 장 대표는 남은 기간 여론 흐름을 보고 이 중 한 개의 카드를 선택해야 한다. 장 대표는 이 기회에 당게논란을 끝내야 내분을 추스르고 보수 야권 연대를 구축해 대여 투쟁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장 대표를 떠받치고 있는 강성 지지층들이다. ‘윤 어게인’ 스피커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들이 한 전 대표 사과의 진정성을 계속 문제 삼을 경우 가뜩이나 정치적 기반이 넓지 않은 장 대표로선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지방선거 공천을 의식하며 단식현장을 방문하는 정치인 대부분도 장 대표의 판단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지방선거가 불과 4개월 조금 더 남았다. 열흘쯤 뒤인 2월 3일부터는 시·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이 시작된다. 만약 한 전 대표 제명 논란으로 내홍이 더 커지게 되면 국민의힘은 선거 준비조차 힘들어진다. 당 내분은 여권발 악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어떠한 선거 캠페인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선거에 참패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당 지도부에게로 돌아간다. 장 대표의 정치생명이 걸린 것이다. 장 대표는 당이 공멸의 길로 가지 않는 정치적 해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20

철강산업 위기, 질적 전환으로 돌파해야

‘산업의 쌀’로 불리며 국가 성장의 중추 역할을 해온 철강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 탄소 규제 강화, 미국 등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그리고 국내 건설업의 침체와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가 동시에 밀려오며 철강산업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중심인 포항철강산업단지의 실적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5년 11월 기준 생산은 12조6000억원으로 전년 누계 대비 6.6%, 수출은 28억6000만불로 6.5% 각각 감소했고, 고용인원마저 줄어드는 등 전반적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포항은 철강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도시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즉각 지역경제 전반에 큰 충격으로 이어진다. 협력업체와 자영업 등 지역 소상공인까지 확산되며 시민들의 일상과 삶의 터전 깊숙이 스며들어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세계 철강시장은 현재 구조적인 공급 과잉 상태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내수 둔화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생산 능력을 유지하며 저가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철강업체들은 수익성 악화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각종 관련 법 개정과 규제 등 기업 환경 여건도 좋지가 않다.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업체들의 투자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또한 철강제품 원가의 10%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요금이 최근 3년간 70% 이상 올랐다. 중국의 저가 철강 공습 속에 전기료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기업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철강은 여전히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에너지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가 흔들리는 신호탄이며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는 철강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철강산업 재도약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고부가가치 중심의 구조 전환이다. 자동차용 초고강도강, 전기차·배터리용 특수강, 에너지·방산 소재 등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로 집중해야 한다. 단순 건설용 범용재 비중을 줄이고 소재 경쟁력을 통해 가격 결정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 생산 중심 산업에서 기술·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변화해야 한다. 맞춤형 소재 솔루션, 디지털 기반 공정 최적화,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스마트 제조 역량 등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셋째, 국가 차원의 전환 전략도 요구된다. 저탄소 제철 기술은 국가 기간산업의 존속과 직결되는 사인임을 고려, K-스틸법을 통해 연구개발 투자, 실증 인프라 구축, 전력·수소 공급 체계 정비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포항 사회와 철강의 재도약을 위해선 완제품 생산업체 유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경기 회복과 인구 증가는 보다 많은 일자리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고부가가치 철강 완제품 생산기업이 올 수 있도록 파격적 인센티브 제공 등의 시책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협력업체를 통한 고용 창출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는 여성 일리자리 부족이라는 포항의 고질적 문제도 그나마 어느 정도는 해결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서둘러야 한다. 위기는 극복해야 하며 해결 방법은 여러갈래가 있다. 평생을 철강언저리에서 살아 온 필자가 생각할 때 지금 우리 철강분야에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을 통한 축소가 아닌 질적 전환을 통한 재도약이다. 철강산업이 다시 한 번 국가 경제의 버팀목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구조적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익현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2026-01-20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기업혁신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유교의 핵심 경전 7권을 묶어 부르는 말로, 개인의 수양에서부터 가정, 조직, 국가 운영의 원리까지 담고 있는 동양 전통 사상의 근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출발해 ‘조직과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는가‘까지 답하는 동양 최고의 경영·인문 고전이다. 많은 기업이 새 해가 되면 신년사나 취임사, 경영전략 등에서 혁신을 말한다. 스마트팩토리, AI, 자동화, ESG 경영까지 구호는 넘치지만 성과는 미미하고 오래가지 못한다. 수십 년간 반복된 이 실패의 원인을 최신 기술이 아니라 2000년 전 고전인 사서삼경에서 찾아보면 의외의 답이 보인다. 대학(大學)은 조직운영의 기본 구조를 제시한다. ‘명명덕(明明德), 사람 안에 양심·도덕성·인간다움을 깨우고 드러내는 것, 신민(新民), 타인과 사회를 함께 새롭게 성장시키는 것으로 인재육성, 조직문화 혁신, 고객가치 창출, 지어지신(止於至善), 가장 선한 경지에 이른다. 일시적 성과가 아닌 궁극적·지속적 완성 상태를 추구‘라는 삼강령(三綱領)과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이어지는 팔조목(八條目)은 혁신의 단계적 논리다. 오늘날 제조 혁신 언어로 바꾸면,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것으로 현장 문제를 정확히 보고, 치지(致知), 앎을 극진히 하는 원인을 규명하며, 성의(誠意), 뜻을 성실히 수행하는 진정성 있는 실행 의지를 세우고, 정심(正心), 사사로운 감정·편견을 배제한 공정한 판단, 수신(修身), 리더의 자기관리와 역량강화로 먼저 변하며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는 과정이다. 많은 기업이 격물과 치지를 건너뛰고, ‘치국‘, 즉 전사 혁신 선포부터 시작한다. 자사가 처한 대내외 상황 분석을 토대로 비전을 설정하고, 목표를 정하는 준비과정 없이 혁신 경영을 선포하는 것은 예고된 실패 결과다. 중용(中庸)은 혁신이 왜 지속되지 않는지를 정확히 짚는다. 중용은 타협이 아니라 최적의 균형이며, 일상 속에서 끊임없는 실천함이다. 제조 현장에서 중용은 품질, 원가, 납기, 안전 중 하나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것이며, 이벤트 혁신이 아닌 매일의 표준 준수와 작은 개선의 축적이다. 논어(論語)는 사람이 근본이며, 인(仁), 예(禮), 신뢰, 리더의 언행일치를 말한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처럼 사람을 단순한 도구로 대하는 조직에서 혁신은 자라지 않는다. 법과 처벌은 한계가 있고, 제도보다 인간의 마음이 중시될 때 자발적 동기부여가 된다. 맹자는 민본(民本)사상, 정의와 공정을 말한다. 현장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에 맞추고, 납득되지 않는 운영 제도와 평가 체계는 단기 성과는 가능하나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제조기업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원칙, 그리고 지속성이다. 대학은 혁신의 방향을, 중용은 혁신의 균형과 지속성, 논어와 맹자는 혁신의 인간적 토대를 제시한다. 고전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제조 혁신이 잃어버린 가장 근본적인 경영 교과서가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1-20

마스크 너머의 호흡

코로나라는 이름의 긴 계절을 우리는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건너왔다. 마스크는 어느새 외출을 위한 준비물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졌고 숨을 쉰다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조차 의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차 키와 휴대폰을 챙기듯 마스크를 집어드는 손놀림은 무심했고 자동적이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불편함이라 부를 새도 없이 우리는 하루를 살아냈다. 삶이란 대체로 그런 것이어서 견뎌야 할 것들은 늘 습관의 얼굴로 다가왔다. 마스크 안에서의 숨은 언제나 조금씩 모자랐다. 깊게 들이마셔도 폐 끝까지 닿지 않는 느낌, 내 숨이 다시 내 얼굴로 되돌아와 맺히는 습기, 말소리가 마스크에 걸려 흐릿해지는 순간들. 그러나 그 답답함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 시절 불평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모두가 같은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연대감을 만들었고 그 연대는 우리를 하루하루 앞으로 밀어냈다. 어느 순간, 마스크에서 해방되었다. 얼굴을 가린 막을 벗는 일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는 것, 공기가 폐로 곧장 흘러들어온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우리는 자유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깐의 해방감을 누렸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야 하늘의 높이를 실감하는 것처럼. 하지만 삶은 늘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최근 수업을 받던 아이가 독감에 걸렸고 다시 마스크를 꺼냈다. 둘 다 마스크를 쓴 채 마주했다. 예전보다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천이 두꺼워진 것도, 공기가 더 나빠진 것도 아닌데 유독 갑갑했다. 한 번 맛본 해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불편에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자유를 경험한 뒤의 제한에는 더 예민해지는 존재였나 보다. 마스크 너머로 아이의 눈만 보였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고 말소리는 마스크 안에서 부서졌다. 숨소리와 숨소리가 천을 사이에 두고 섞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문득 우리가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가린 채 살아왔던가. 서로의 표정에 어린 온기를 완전히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안도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답답함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들 때문에 더 답답해진 것인지 쉽게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마스크를 쓰고 지나왔다. 숨이 가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갔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금씩 희생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고 지금의 공기를 신선하게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을 삼키고 마음을 숨기며 숨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 답답함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필수적 거리다. 마스크는 얼굴에 붙어 있는 굴레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시적인 태도다. 견디지 않고서는 다음 계절로 갈 수 없고 더 넓은 호흡을 얻을 수 없다. 마스크는 영원한 감옥이 아니라 성숙을 향해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마쳤고 아이를 보낸 후 차가운 공기를 맞았다. 숨이 깊어졌다. 우리의 호흡은 당연하기 보다는 지나온 답답함의 총합이라는 것. 자유는 견딤의 반대편에서 비로소 도착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 또 다른 형태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숨이 막히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호흡을 되찾았다. 마스크 너머의 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 시간들이 남긴 사유는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문다. 숨이 막힐 때마다 그 끝에는 다시 맑은 공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간다. 삶은 늘 그렇게 답답함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깊은 호흡을 허락한다. /김경아 작가

2026-01-20

음악은 감정의 보편적 언어

언어는 현대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지만, 음악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소리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고, 이는 문화별로 체계화되어 언어와 음악으로 분화되었다. 두 매체는 소리를 통해 소통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언어만으로는 감정을 완전히 전달하기 어려워 때로는 음악이 그 빈틈을 메운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면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되고, 일부 감정은 언어만으로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국적, 언어, 세대를 초월해 감정을 전달하는 보편적 언어로 작용한다. 가사 없는 클래식이나 영화 음악에서도 우리는 슬픔, 기쁨 등 뚜렷한 감정을 경험한다. 느린 템포와 낮은 음역은 고요함이나 슬픔을, 빠른 리듬과 밝은 화성은 설렘과 희망을 각각 연상시키는데, 이는 음악이 청자의 감정을 직접 자극하는 구조적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나 드뷔시의 ‘Rêverie’에서는 편안함 속의 우울이 느껴지고,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에서는 환희와 인간 존엄의 정신이 전달된다. 반대로 슈베르트의 ‘마왕’이나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에서는 긴장과 공포, 긴박한 서사가 음악적으로 구현된다. 음악의 이러한 영향력은 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음악을 들을 때 인간의 뇌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활성화되고, 기쁨을 느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증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로 위로받지 못할 때 음악에서 위안을 얻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음악을 통해 대신 경험한다. 음악이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이해가 아니라 공감에 있다. 역사적으로도 음악은 감정을 공유하는 도구로 기능해 왔다. 전쟁 중에는 군가가 두려움을 하나로 묶었고, 장례식에서는 애도의 음악이 슬픔을 함께 나누게 했다. 오늘날에도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콘서트장에서 같은 음악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서로의 언어는 달라도 감정은 음악을 통해 충분히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사의 초기에는 성악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는 음악에 언어가 포함되는 것이 당연했고, 기악은 ‘공허한 울림’이나 ‘소음’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점차 가사에 종속되지 않고 음악 자체의 논리로 감정과 사유를 표현하고자 하였고,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 기악음악의 힘은 강화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세기 감정미학은 음악을 이성을 초월한 세계를 드러내는 예술로 평가하였다. 니체는 음악을 무개념적 예술로 보았고, 바퇴는 음악을 ‘심장의 언어’라 불렀다. 쇼펜하우어 역시 음악을 세계를 능가하는 보편적 언어로 규정하며, 음악이 감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청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결국 음악은 인간 내면의 감정을 끌어내고 공유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듣는 행위는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개인을 넘어 집단적 공감을 형성한다. 음악은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게 하고,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게 만드는 인간의 가장 깊고 오래된 언어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1-20

포항, 글로벌 AI 심장으로 새로운 100년을 열다

지난 1월 19일 이강덕 포항시장은 광명일반산업단지에 조성 중인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현장을 방문해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총사업비 2조 원 규모로 3월 착공해 2027년 상반기 운영을 목표로 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포항의 미래 100년을 결정짓는 게임 체인저이다. 반세기 동안 ‘철강보국’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포항이 이제 AI와 첨단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철강 일변도의 산업구조, 청년 유출, 원도심 공동화라는 삼중고 속에서 포항은 지금이야말로 항로를 완전히 재설계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오픈AI와 삼성그룹, NeoAI Cloud가 포항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포항은 AI 데이터센터 건립의 ‘최적 3박자’를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포스텍과 한동대를 중심으로 한 우수한 이공계 인재, 3·4세대 방사광가속기, 극저온 전자현미경, 로봇융합연구원 등 타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첨단 연구개발 기반이 있다. 경북도의 전력 자립률은 262%로 전국 1위를 기록하며, 울진 원전과 연계된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망은 24시간 가동되는 AI 데이터센터의 필수 요건을 완벽히 충족한다. 철강·이차전지·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 현장에서 쏟아지는 고급 데이터는 AI 연구개발의 핵심 연료가 되어 신소재와 신약 개발 등 고부가가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것이다. 포항의 재도약을 위해 두 개의 명확한 성장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수소트램 구축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다. TX포항역에서 구도심을 거쳐 철강산단까지 연결되는 친환경 수소트램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침체한 구도심에 사람의 흐름을 되살리고, 죽도시장과 중앙상가를 다시 활기차게 만들 핵심 인프라다. 기존 도로와 철도 부지를 활용한 지상형 트램으로 사업비와 공사 기간을 최소화하며, 구도심에는 트램 순환역과 도심복합환승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해병대회관 유치다. 포항은 6·25전쟁 당시 학도병의 희생으로 지켜낸 도시이며, 해병대의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해병대회관을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해 국방관광과 지역 정체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이 두 축은 단절된 공간과 기능을 다시 연결해 포항에 지속 가능한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 전략이다. AI 데이터센터와 함께 오천 해병대 사격장과 전차대대 부지를 활용한 로봇·방위산업특구 조성도 추진해야 한다. 이곳을 무인·로봇 전투체계와 AI 기반 국방 플랫폼의 실증 거점으로 육성하고, 광명산단 AI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첨단 국방융합 산업단지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중입자 치료센터를 설립해 암 치료를 위해 서울로 떠나던 시민들이 포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방사광가속기 기술과 포스텍 의과학대학 설립을 연계해 포항을 바이오·의과학 혁신 도시로 도약시켜야 한다. 울산권 제조기업 유치, 철강산업의 친환경·고부가가치화, 해오름 동맹을 통한 초광역 혁신창업 생태계 구축으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다.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청년이 돌아오며, 청년이 머물면 도시는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특히 포항시 조직에 경제·산업·투자유치를 총괄하는 ‘경제부시장’을 신설하고, 기업투자국과 혁신산업국으로 분리해 투자유치 전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안승대 전 울산시 행정부시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20

문명의 몰락이 우리에게 던지는 침묵의 질문

아마존 정글에서 돌아온 다음 날, 몸은 휴식을 원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쿠스코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웅장한 대성당 석벽과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도시는 여전히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리마와 키토에도 같은 이름의 광장이 존재한다. 스페인 식민 시대, 도시 건설 당시 가장 먼저 조성된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르마스(Armas)’는 무기를 의미한다. 군사 훈련과 권력의 상징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대성당과 주교관, 통치 기관이 위치했다. 신과 칼, 믿음과 권력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그 이전 시대의 흔적 또한 간직하고 있다. 광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잉카 시대의 돌벽들이 곳곳에 말없이 서 있다. 손바닥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이 정교하게 맞물린 거대한 석벽 앞에 서면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문명을 아로새겼다. 말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벽이다. 잉카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제국을 통치했고, 도로를 건설하고 농업을 체계화하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여전히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문명은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붕괴했다. 마지막 황제의 죽음 이후 벌어진 형제간 권력 투쟁은 제국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내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낯선 언어와 무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외부 세력이 국경을 침범했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Pizarro)의 총칼은 이미 균열이 깊어진 제국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잉카의 몰락은 비극적이지만,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소통이 단절되고 신뢰가 무너질 때, 그 어떤 공동체도 오래 존속할 수 없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의 한계는 과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 역시 말은 넘쳐나지만, 진정한 소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듣기를 거부하는 귀, 확인하려 하지 않는 마음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도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 잉카를 붕괴시킨 것은 외부의 침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부 분열은 언제나 가장 파괴적인 요인이다. 공동체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는 선택, 미래보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판단은 제국을 내부로부터 갉아먹었다. 이는 과거 문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조직,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는 변화에 대한 자세이다. 잉카는 자신들의 방식이 완벽하다고 맹신했고, 외부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과 전략, 질병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문명은 결국 쇠락했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거부된 변화는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이 대목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떠오른다. 그는 잉카 제국의 멸망 원인을 특정 민족의 열등성이나 단순한 패배에서 찾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총과 쇠와 같은 군사 기술, 가축과의 공존을 통해 얻게 된 면역력, 그리고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역사는 개인의 역량보다 환경과 구조적인 차이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쿠스코의 돌벽 앞에 다시 서면, 또 다른 진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총, 균, 쇠와 같은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더라도 내부 결속력이 강했다면 몰락의 시기를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환경은 특정한 조건을 형성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공동체의 내적인 결속력과 성숙도에서 비롯된다. 쿠스코의 돌벽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은 텅 비어 있지 않다. 그 침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변화에 대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르마스 광장을 떠나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다.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잉카의 침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문명의 몰락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쓰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돌벽은 말이 없고, 시간은 흐른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잉카의 침묵은 질문이 되어,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린다.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는가? 넘쳐나는 말들 속에서 진실을. 개인의 욕망에 가려진 공동체의 외침, 외면하지 않았는가? 변화의 바람 앞에, 굳게 닫힌 문은 쇠락을 부른다. 총, 균, 쇠,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의 분열이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오늘, 우리는 어떤 문명을 써 내려갈 것인가?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1-20

권력과 정의

‘권력’과 ‘정의’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당위적으로는 ‘권력이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이 정의를 왜곡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파스칼(B. Pascal)이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갈파했듯이, 권력정치에서는 ‘권력과 정의의 동행’, 즉 ‘정의로운 권력 행사’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정의와 동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은 마약’과 같고, 마약에 취한 권력이 ‘정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왜곡’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말하는 정의는 이념적 성향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정의’로서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적 정의관’이 지배하는 권력의 세계에서 ‘정의는 강자의 전유물’이 되고 약자의 정의는 무시됨으로써 ‘정치는 전쟁’이 된다. 정의는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공리주의·자유주의·공동체주의 등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을 둘러싸고 끝없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물론 권력 자체는 정의도 불의도 아닌 중립적 개념으로서 천사 또는 악마가 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권력은 그 속성상 천사보다는 악마가 될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권력을 잡으면 ‘기존의 정의’를 뒤집고 ‘권력을 위한 정의’를 새로 만들어 ‘정의를 독점하는 정치’를 강행함으로써 ‘독재라는 괴물’이 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야의 정치행태는 과연 정의로운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정부여당은 정의부(ministry of justice: 사법부)를 겁박하고 법을 개정하여 삼권분립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으로 권력남용을 막고 정의를 수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무력화되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정의를 위하여 사법부를 개혁하겠다는 권력의 주장은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위한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야당의 권력 행사는 또한 어떤가?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야당의 책임이 막중한데, 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을 반성하고 혁신할 줄 모르니 앞날이 캄캄하다. 비상계엄이라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로 정권을 잃었으면서도 당 윤리위원회는 오히려 계엄을 막았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였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여당을 견제하기는커녕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야당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국민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은 그 속성상 스스로 정의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식인·언론·시민사회 등 깨어있는 주권자들이 두 눈을 더욱 부릅떠야 한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인간의 양면성’이요 ‘권력의 속성’임을 인식하고, 힘이 정의를 지배하지 않도록 정의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오직 정의로운 권력만이 나라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1-19

편견

사람들은 편견 속에서 허덕인다. ‘그럴듯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정의라는 가면을 쓴 채, 괴로움이라는 달갑지 않은 속을 품고 있는 것이 편견이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충분한 근거 없이, 개인의 경험, 감정, 선입관에 따라 사물이나 사람을 한쪽으로 치우쳐 판단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두 가지, ‘공정하지 못하다’와 ‘한쪽으로 치우치다’ 개념 중,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다’ 에 이르면 편견이라는 개념의 속내가 복잡해진다.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편견 속의 괴로움을 들추기 전에, 공정하다는 것이 공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지 잠깐 살펴보자. 최근의 존 롤스, 로버트 노직, 마이클 샌달과 그 이전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임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고전 철학자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했으나, 시대적·맥락적 한계로 인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찾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이들의 정의에 관한 개념들은 그때는 맞았더라도 지금은 틀리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편견의 한 조건’은 사전적 의미에서 제거되어야 할지 모른다. ‘공정하지 못함’이라는 조건을 편견의 세계에서 제거하면, 남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침’이다. 사실, 어떤 견해이든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것은 견해가 갖는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다. 고로, 모든 견해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 견해가 비록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것은 편견이 되는 것이다. 견해는 드러내는 순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고, 편견이 되는 것이다. 이런 편견이 왜 괴로움이 되는가. 그것은 치우침의 ‘계속됨’ 때문이다. 견해 자체가 어떤 조건 지워진 상황에서 ‘일시적 치우침(견해)’이면, 그것은 편견이 아니라, ‘지혜’일지 모른다. 한번 멋지게 써먹고 버리면 그만인 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는 일이 허다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견해가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때, 편견은 ‘지혜라는 가면을 쓴 집착’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바른 견해일지라도 견해에 대한 집착이 계속되어 다른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견해는 괴로움이 되어, 나를, 나의 주변을, 힘들게 한다. 세상 만물이 변화하고 흐른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간사의 기본 도리이다. 노자의 ‘상선약수’,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그러하다. 고정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편견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지나 않은지. 편견 속에서 허덕이고 있지나 않은지. 편견의 노예가 되어 오늘도, 내일도, 여기서, 저기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밤낮없이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있지나 않은지. 하지만, 잊지 말자. 내가 쏜 편견이라는 분노의 화살은 상대에게 도달하기 전에 나의 심장을 먼저 관통한다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2026-01-19

불안을 넘어서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은 인간 존재의 그림자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며, 미래를 대비한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삶의 질을 높이고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불안과 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불의의 사고는 한순간에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결국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보다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안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한편으로 불안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신호이기도 하다. 불안이 없다면 미래를 대비할 이유도, 현재를 소중히 여길 동기도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건강한 삶의 출발점이다. 불안을 극복하려면 우선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낳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성숙한 이해다. 다음으로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다. 불안과 근심의 상당 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내일의 병과 사고, 노후의 불안까지 미리 끌어안고 오늘을 소진한다면 삶은 끝없는 걱정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감동과 기쁨, 일상의 노동과 휴식에 집중할 때 불안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 세 번째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모든 불안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할 때 불안은 견딜 수 있는 무게로 바뀐다. 건강한 공동체는 개인의 불안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삶은 불안에 잠식된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스스로 묻게 된다. 거기에서 내면의 힘과 회복탄력성을 길러진다. 건강한 삶이란 불안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함 속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는 노력은 계속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담대해져야 한다. 불안과 근심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계기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더 단단해지며, 더 인간다운 삶에 다가간다. 완벽하게 안전한 삶은 없지만,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고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삶은 가능하다. 근심의 안개 너머에도 여전히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내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딛는 정직한 한 걸음이다.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고 진정으로 건강한 생을 영위하는 길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1-19

위기의 포항, 경륜의 리더십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판단과 미숙한 처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경고다. 위기일수록 실험적 접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지금 포항이 처한 현실이 바로 그렇다. 위기의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라 검증된 해법이며, 경험 없는 처방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축적된 경륜이다. 지금 포항이 맞닥뜨린 위기의 중심에는 철강산업이 있다. 철강산업은 포항 경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기반이다. 철강산업의 침체는 단순한 업종 부진을 넘어 협력업체와 자영업, 고용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포항의 상당수 기업이 경영 압박에 직면했고, 이는 소비 위축과 지역경제 전반의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 경기 침체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도시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다. ◇기업의 위기는 기업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이 여파는 도심 상권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중앙상가를 비롯한 구도심 상권의 공실률은 30%를 넘고 있다. 공장 가동률 저하와 협력업체의 연쇄적인 경영난, 고용 불안이 겹치면서 포항의 경기는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풀 것인가다. 기업의 위기는 기업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현장의 사정을 모른 채 탁상공론에 머문 정책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 ◇긴급 경제 전략, 선택과 집중이 해법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필자는 얼마 전 ‘3·3·3 긴급 경제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단기적으로는 긴급 투자를 통해 산업과 기업의 숨통을 틔우고, 중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철강산업 정상화다.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자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해 부지 조성과 기반 구축, 수소환원제철 실증 사업과 에너지 전환 사업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 ◇실험이 아닌 검증, 경륜 있는 리더십이 위기를 넘는다 산업 회복과 함께 도시 구조의 전환도 병행돼야 한다. 블루밸리 국가산단과 영일만 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워터랜드 구상과 영일만 백리길 순환 힐링 로드를 통해 바다와 도시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질 때 중앙상가와 죽도시장 같은 구도심 상권도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 지금 포항의 위기는 개별 정책이나 단편적 처방으로 해결될 수 없다. 기업이 살아야 포항이 산다. 선무당식 실험이 아니라 기업을 알고 기업과 함께 숨 쉬어 본 경험, 타고난 추진력과 검증된 전략을 갖춘 지도자의 경륜만이 위기의 포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공원식 전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19

끊어야 할 악습 ‘공천 헌금’

‘헌금(獻金)’이란 특정 대상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걸 의미하는 단어. 그 앞에 ‘공천’이 붙으면 자신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해달라며 건네는 공천 헌금이 된다. 금전으로 벼슬자리를 팔고 사는 행위는 ‘매관매직’이라 칭하며,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악습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민주주의사회에서 이런 행태를 보여선 곤란하다. 선거 출마를 위해 힘 있는 권력자에게 몰래 거액을 전달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악습이 여전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당을 떠났다. 탈당의 이유는 공천 헌금을 수수했다는 의혹 탓이었다. 이에 앞서 언론사들은 강선우 의원 측이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는 정황을 녹취와 함께 보도했다. 파문은 갈수록 커졌고 결국 서울경찰청의 수사가 시작됐다. 이 사태와 관련해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19일 자신의 SNS에 공천 헌금 관련 글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홍 전 시장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04년에도 공천 헌금이 공공연히 오갔으며 그때 ‘(공천 헌금은) 광역의원은 1억 원, 기초의원은 5000만 원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홍 전 시장은 “지방의원,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는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사실상 공천권이 전속적 권한으로 되어있는 각 당의 공천 구조와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했다. 돈을 주고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자리에 오른 이들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까? 분명 지역민은 아닐 것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