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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탁발-옛날 중앙로 우체국 풍경

부처와 가섭 존자가 중앙로의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오늘 탁발한 것을 적당하게 분배하고 있다 가서 보니 기껏해야 햇빛과 먼지 몇 개의 동전과 비웃음 몇 줌, 생각해 보니 그 보시는 오히려 중생에게 강탈한 진짜 보리(菩提)였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헌신하자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주고받는 거 없어도 그냥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남는 장사라는 거, 부처와 가섭은 동의했다 하이파이브 했다 노동의 결실의 소주잔에 잠기는, 오늘의 노을이 좋다 카아, 목줄 땡기는 이런 소리는 아무나 뱉지 못한다 풍부한 하근기(下根機)에 배부르고 아늑하다. …. 무던하다고 섬세하지 않을 리 없다. 금(金)은 은(銀)을 이기지 못한다. 남몰래 벼린 칼날 초승달로 내뱉고, 생업(生業) 이루고 나서 돌아서서 말하리라. 참 따스한 세상이라고. 별로 내밀 거 없어도 나에게 헌신(獻身) 했다고 말하리라. 그 마음씀씀이가 너울물결로 이어졌으면 한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5-14

책임없다는 정부, 대법원은 응답하라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강타한 지진은 단지 한 도시의 재난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 중이던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도시는 깊은 공포에 빠져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소 시추작업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데 있었다.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정부는 지열발전소 시추 과정에서 고압수를 지하에 주입했고, 단층이 자극을 받아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사사례는 해외에도 있었고 국내 학계에서도 촉발 지진 위험이 수차례 경고된 바 있었다. 정부는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무너뜨린 재난이 무지나 실수를 넘는 정책적 책임의 결과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포항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최근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부정하며 ‘예측할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 판단은 타당한가. 이미 유사한 지열 사업에서 지진이 유발된 사례가 있었고 국내 전문가들 또한 가능한 위험을 경고해 왔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무시된 채 사업이 강행되었다면 이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예견된 결과에 가깝지 않은가.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삶의 토대를 잃고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이 침묵하고 있다. 어느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복구는 아직도 미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부정하는 모습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포항 시민들은 여전히 무너진 삶을 복구하지 못한 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역 경제는 장기간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짓는다면, 이는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국가인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국민의 삶을 인위적으로 뒤흔든 재난 앞에 ‘책임이 없다’며 뒷짐지는 모습은 모욕적이다. 법적 책임을 포함하여 도의적, 정치적 책임도 면탈할 수 없다. 정부가 연루된 인적 재해의 결과를 바로 보아야 하며 이에 관련된 책임을 분명히 감당해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만 남았다. 사건은 법리 다툼을 넘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어떤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헌법적 쟁점을 내포한다. 대법원은 사건의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상고심은 절차적 기회일 뿐 아니라 사법부가 사회적 정의를 최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는 정당한 권력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책임 있는 기반 위에 서야 하며 국민의 신뢰는 책임의 이행으로부터 비롯된다. 포항지진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당한 질문에 적절한 응답을 끝까지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실책에 관한 물음에 응답해야 할 시간이 이제 대법원 앞에 온 것이다. /장규열 고문

2025-05-14

벌써부터 더위가 무섭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국가’라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요즘엔 안 추우면 덥다. 이제 이 나라엔 겨울과 여름만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봄과 가을은 다람쥐 꼬리처럼 짧아졌다. 지난해 여름 극악했던 더위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6월 중순에 시작된 폭염이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말까지 계속됐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종일 돌아갔고, 냉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에 사는 취약계층은 무더위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으니 “더위가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기억하는 지인은 “시집 제목이 지난해와 올해 한국의 더위를 예언한 것 같다”는 농담까지 던진다. 실제로 그렇다. ‘올여름 더위도 무시무시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기상 전문가들은 초여름부터 끈적이는 땀을 쏟아지게 만들 무더위가 올 것이라 예보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인도 해양과 열대 서태평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 때문에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질 것이다. 서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면 한국 여름철 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한다. 그렇기에 이번 여름은 시작부터 폭염이 심할 것”이라 부연했다. 지난해 겪은 더위가 무서웠던 탓일까? 벌써부터 에어컨 구매를 예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은 5월 중순임에도 거리엔 반팔 셔츠를 입은 직장인과 반바지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다시 ‘공포스런 여름’이 오고 있다. 너나없이 모두들 준비 단단히 해야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4

장마철에 심해지는 관절통

비가 오거나 장마철이 오면 진료실엔 관절이 쑤시고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는 환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기압이 내려가면 바깥 공기가 팽창해 조직 내부의 액체가 상대적으로 밀려 올라오고, 이때 관절낭과 근막 사이에 미세한 부종이 생겨 신경 말단을 압박한다. 서양의학 연구에서도 10헥토파스칼 이하의 급격한 기압 하강은 관절통 발생률을 두 자리 수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고된다. 한의학은 이런 현상을 풍·한·습 사기가 기혈 순환을 막아 ‘비증(痺症)’을 일으킨 것이라 설명한다. 특히 여름 장마에는 ‘습’이 주도권을 쥐는데, 습기는 묵직하고 끈적거려 상하를 막고 근육을 곤하게 하며, 관절액과 윤활막에 고여 둔중한 통증을 만든다. 비가 올 듯 흐린 날에는 무릎뿐 아니라 손가락·발목처럼 작은 관절까지 욱신거린다는 호소가 잦다. 이는 외부 습기가 모공을 통해 몸속으로 스며들어 이미 존재하던 내부 습담과 뒤섞이며 배출 통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창출·강활·독활 등이 들어간 강활승습탕이 교과서적인 선택이다. 약재들이 풍·습을 몰아내 관절 주위를 말끔히 건조시키기 때문이다. 부종이 뚜렷하고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면 방기황기탕으로 기표를 열어 수분 배출을 도와주고, 관절액이 많아 뻣뻣하면서 무거운 경우에는 의이인과 창출·복령을 주약으로 한 의이인탕 가감으로 수분 배출을 돕는다. 이런 처방들은 몸의 수분을 배출시키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는 덤이다. 한약 처방만큼 중요한 것이 치료다. 장마에 고여 있는 습은 관절 주위 미세 공간을 막기 때문에 먼저 습부항으로 어혈과 습기를 제거해 아픈 부위를 풀어주고 관절에 침을 놓아 기혈 순환을 촉발하면 관절 내부 압력이 자연스레 떨어진다. 특히 초음파 가이드 약침으로 정확한 곳의 인대와 힘줄 근육을 풀어주면 무릎 통증엔 특히 효과적이다. 특히 반복적 부종으로 관절 간격이 좁아진 중증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겐 효과가 아주 좋다. 수술을 하기 전에 한번 시도해볼만한 치료다. 치료 효과를 오래 유지하려면 생활도 중요하다. 생강·대추·의이인을 넣어 은은하게 끓인 따뜻한 미음은 몸을 따듯하게 하고 습을 제거하니 아침 식사대용으로 먹을 만하다. 땀을 살짝 내는 것은 효과적이니 40도 이하의 반신욕으로 땀구멍을 부드럽게 열어 체표 습기를 날려주는 것도 좋다. 짠 음식은 조직액 저류를 악화시키므로 소금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다. 운동은 체내 펌프 작용을 유지하되 관절 압박을 줄이는 가벼운 걷기가 좋다. 이때도 땀을 살짝 내자. 날씨는 우리가 바꿀 수 없지만, 내부 습도 관리는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 장마철마다 찾아오는 묵직한 관절통은 기압 변화라는 자연 조건 위에 습기가 겹쳐 발생한다는 점을 이해하면, 치료의 관건이 ‘배수’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습을 걷어내는 한약과 습부항·침·초음파 가이드 약침을 활용하고, 생활 속에서 땀구멍과 소변·배변의 길을 활짝 열어주면 관절의 무게감과 통증은 눈에 띄게 가벼워진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내 몸속 물길부터 정비해 두면, 관절 건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5-14

가난한 제자의 선물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단정하고도 조용하신 담임선생님은 피아노를 잘 치시는 음악선생님이셨다. 공부는 제법이지만 가난한 형편인 나를 무던히도 챙겨주려 애쓰셨다. 학급 간부임을 핑계로 학교 가까이 있는 선생님 댁으로 종종 부르시곤 하셨다. 학기 초에는 국어, 영어, 수학 선생님께 새로 나온 참고서를 얻어서 챙겨주셨다. 선생님 어머님께서 챙겨주신 귀한 귤과 크라운산도의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첫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를 차린다고 소리 내지 않고 녹여 먹으니 깨물어 먹어야 더 맛있다며 웃으시던 선생님이셨다.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월사금을 내지 못한 나였다. 가난한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속수무책이니 아침 조회시간에 이름이 불리면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에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그해 사월에는 3학년이 모두 수학여행을 갔으나 난 가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비용을 대 주시겠다고 했지만 아프다고 핑계댔다. 3박4일 수학여행 떠난 휑한 교실에 평소와 같이 왔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죽어라 공부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신 선생님은 날 부르시더니 그 부드럽고 고운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자그마한 거울을 쥐어주셨다. 그달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여 수학여행 못 간 부끄러움과 슬픔을 보란 듯이 상쇄했고 선생님께 환한 웃음과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개교 기념일 즈음이었을 것이다. 운동장 전교 조회 시간이었다. 내 이름이 크게 호명되자 얼떨결에 나갔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동창회장님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전과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장학금을 내게 주려고 교장 선생님께 여러 번 곡진한 부탁을 하시더라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훗날 들었을 뿐이었다. 고마우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밀린 1분기 월사금을 바로 낼 수 있었고, 그러고도 남은 돈을 엄마에게 드리면서 엄마의 눈물 바람을 슬쩍 훔쳐보았던 것도 같다. 아 그러나 그때 난 참으로 어리석었다. 한 달 뒤 스승의 날이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고, 선생님께 드릴 카네이션 한 송이 살 돈을 챙기지 못한 거였다. 스승의 날 아침,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서 모은 돈으로 산 선물을 들고 학교에 갔다. 개인적으로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자책으로 간밤에 잠을 설쳤기에 평소보다 일찍이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등나무 덩굴에 뒤덮인 쉼터가 있었다. 너무 이른 등교라 잠시 앉아도 되었다. 나무 벤치에 털썩 앉아 위를 쳐다보는데, 연보라색 등꽃이 포도송이마냥 주렁주렁 흐드러져 있었다. 예뻤다. 선생님같이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이었다. 벤치 위에 올라 까치발을 하고 꽃을 한 아름 꺾었다. 아찔하고 향긋한 내음이 교복에 묻었다. 교실에서 예쁜 꽃만 다시 추렸다. 선생님 책상 위 둥근 꽃병 가득 등꽃을 꽂았다. 축축 늘어져 처졌지만 꽃병을 가리고 덮을 정도로 가득 꽂으니 뭐 그런대로 볼만했다. 무엇보다 선생님 책상 주위에서 교실 전체로 번진 진한 향기가 선생님께 대한 미안함에 짓눌렀던 내 마음을 감추어 주는 듯했다. 교실로 들어오시면서 무슨 향기지? 라며 환히 미소 띠시는 선생님께 나는 꽃향기보다 더 짙고 진한 감사 인사를 마음속으로 올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5-14

삭발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좀 시원하네.” 손에 엉성하게 쥔 이발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선 어머니는 오히려 덤덤했다. 그날의 햇살이 괜스레 따뜻해서, 나는 어머니의 대머리를 보며 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강해 보여서가 아니라 그 덤덤한 미소가 너무나 익숙한 얼굴에 걸려 있어서. 강인한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느꼈다. 몇 해가 흘렀다. 어머니는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다시 예전처럼 꽃무늬 스카프를 매고 시장을 누비셨다. 어느 날은 나보다 더 바삐 돌아다녔다. 삶이 어머니를 다시 일으켰고 어머니는 그 안에서 늘 그렇듯 묵묵히 견디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내 아들이 거울 앞에 섰다. “좀 웃기지 않아?” 고개를 돌린 아들의 눈동자엔 어색한 웃음이 떠 있었다. 미용실에서 막 돌아온 아들의 머리는 말끔하게 민머리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머니와 겹쳐 보였다. 면도날을 따라 사라져간 머리카락들이 어딘가 아득히 먼 기억처럼 떠올랐다. 아들의 민머리를 보니 눈물이 났다. 말없이 아들을 쳐다보다가 어느새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은 당황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울어? 군대 가는 건 당연한 거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터질 것 같은 감정이 목구멍에 차올랐다.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어머니의 삭발 앞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아들의 삭발 앞에서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살아야 하기에 했던 삭발과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삭발. 그 무게는 다르지만 내게는 둘 다 불균형하게 무거웠다. 내가 엄마가 되고서야 어머니의 깊은 주름이 보였다. 주름 속에는 늘 눈물 한 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그 시절 삶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어온다. 어머니는 우연히 발견한 가슴의 혹이 악성으로 나와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항암 치료를 받은 어머니는 점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맞벌이로 바빴던 자식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늘 어머니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냈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이 도리어 아이에게 해로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머리를 밀었던 날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눈은 많이 부어 있었고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눈을 깜빡이면 물방울이 똑 떨어질 것처럼 하루 종일 물기가 가득했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머리는 또 기르면 된다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전했다. 병과의 외로운 싸움을 가족들은 알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를 밀고 들어온 아들의 머리를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샘처럼 터져 나왔다. 주위에서는 잘하고 올 아들이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엄마인 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들의 빨래를 개면서도, 아들 방을 청소 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몇 년 전 어머니의 민머리가 생각났다. 누구나 겪는 아들의 삭발을 보며 이리도 마음을 못 잡으면서 어머니의 삭발 앞에서 너무나 덤덤했던 나의 무관심이 죄스러웠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손익계산서는 언제나 적자다. 몸의 구석구석 하나씩 저당 잡히면서도 엄마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이익이 없다 해도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지출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엄마의 외사랑이 너무나 긴 세월이 지나고서야 자식의 눈에 들어왔고 자식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삭발은 단지 머리를 미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병과 싸운 세월이 있고, 홀로 서기 위한 의지가 있다. 누구는 그것을 담담히 이겨내고 누구는 그것 앞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말 안에 녹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때때로 머리카락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것을 얻게 한다. 그래서 그 빈자리는 아픔이 아니라 사랑이 머문 자리로 남는다. 부모가 없고서야 그 머문 자리를 깨닫는 자식은 결국 뒤늦게 사랑의 깊이를 배운다. 자신도 누군가의 머문 자리가 되어야 함을 알아가며. /김경아 작가

2025-05-13

츠타야 쥬자부로를 낳고 기른 요시와라 유곽

지난번에는 에도(도쿄의 옛날 이름)의 출판왕이었던 츠타야 쥬자부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데요. 고아같은 처지로 요시와라 유곽(吉原遊廓)에서 나고 자란 츠타쥬가 어떻게 당대 최고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을 거느리고 그토록 대단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츠타쥬는 다름 아닌 요시와라에서 나고 자랐기에 ‘에도의 출판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시와라는 분명 유흥가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습니다. 아사쿠사 북쪽의 밭 가운데에 흙을 쌓아 건설된 요시와라는 가로 약 360미터, 세로 약 270미터인 사각형의 인공도시였습니다. 요시와라 유곽 앞에는 新자가 붙기도 하는데요. 이유는 1617년 닌교초 부근에 처음 생겼던 요시와라 유곽이 화재로 인해 1657년 아사쿠사 북쪽으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대로에서 S자로 휘어 있는 90미터 길이의 고짓켄미치를 지나면 요시와라 정문이 나타났습니다. 요시와라에는 수천명의 유녀(遊女)를 포함해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으며, 유녀와 남성들을 연결하는 찻집과 유녀들이 머무는 기루 이외에도 각종 장신구나 화장품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요시와라는 에도에서 불야성을 이루던 유일한 곳으로서, 일종의 별천지였습니다. 이 곳에서는 각종 퍼레이드나 공연 등의 이벤트가 벌어졌고, 거리나 시설도 최고로 화려하게 꾸며졌습니다. 이 곳의 번성함은 당시 막부(무신 정권의 통치기구 또는 그 체제)가 에도에서 걷는 세수의 8%가 요시와라에서 나온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시와라에는 문학, 음악, 예능, 다도, 춤 등 에도 문화 거의 전부가 집결되어 있었으며, 그렇기에 호세이대학 총장을 지낸 다나카 유코는 ‘유곽과 일본인’(고단샤, 2021)에서 “요시와라 유곽의 소멸은 역시, 에도 문화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또한 요시와라는 살롱이 없던 에도에서 살롱의 역할을 떠맡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는 다이묘, 무사, 상인, 쵸닌과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에도 시대의 엄격한 신분 질서도 엄격하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요시와라말이 따로 있을 정도의 독특한 문화적 별천지였던 것입니다. 유녀들도 단순한 창부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전설적인 오이란(최상위 지위의 유녀)이였던 다카오를 모신 다카오이나리 신사가 지금도 도쿄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 요시와라에서 나고 자라며, 츠타쥬는 에도의 첨단적인 유행과 감각 등을 익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화의 첨단지 요시와라가 츠타쥬를 기른 것처럼, 츠타쥬 역시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요시와라의 이미지를 더욱 풍요롭게 창조했는데요. 츠타쥬는 1773년에 요시와라 정문 앞에 경서당(耕書堂)이라는 서점을 내고 처음에는 책 대여를 했지만, 곧 본격적인 출판에 나섭니다. 이 시절의 서점은 단순하게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의 출판, 유통, 판매를 모두 겸하는 일종의 출판사였습니다. 츠타쥬가 출판업에 처음 뛰어들어 만든 것은 요시와라 가이드북으로서, 츠타쥬는 이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의 안내서가 정보의 전달에만 치중했던 것과 달리, 츠타쥬는 요시와라 안내서에 약도 등을 집어넣어 현장감을 극대화하였으며, 첫번째 출판하는 책에서부터 다재다능한 유명인 히라가 겐나이(1728~1780, 에도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림)의 서문을 수록해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책에서는 최고의 화가를 고용하여 유녀들을 꽃으로 표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츠타쥬가 출판한 책으로 샤레본(洒落本)이 있는데, 샤레본은 요시와라에서의 놀이와 익살을 묘사한 풍속책이었습니다. 또한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인 우키요에가 가장 많이 제재로 삼은 것도 역시나 요시와라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요시와라가 이상적이거나 바람직한 공간일 수는 없습니다. 요시와라는 쿠가이(苦界, 괴로움이 끊임없는 세계)로 불렸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유녀들의 삶은 화려한 만큼이나 비참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녀들의 기본적인 고용조건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나는데요. 유녀들은 일단 업주들에게 거금의 빚을 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유녀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선지급된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유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 조건으로도 이들은 요시와라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요시와라를 벗어나기 어려웠숩니다. 요시와라에는 출입문으로 ‘요시와라 정문’ 하나가 있었을 뿐이며, 유곽 주변에는 높은 담과 해자까지 설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처우도 열악하여 영양실조나 성병으로 요절하는 유녀들도 많았습니다. 유녀들 사이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었으며, 화대의 차이도 아주 컸습니다. 그렇기에 유녀들은 자주 목숨을 건 방화사건을 일으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츠타주는 요시와라의 이러한 어둠까지 깊이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가 만들어낸 콘텐츠에는 사회를 향한 불만과 풍자도 적지 않습니다. 요시와라와 츠타쥬의 관계는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는 발터 벤야민의 명제를 곱씹어 보게 합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5-13

세월의 속도감 줄이기

연초록 위에 진초록 잎새가 겹쳐지며 신록이 짙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잎차례를 벌여가며 연록의 진영을 넓혀가더니 어느새 온통 초록의 숲을 이루고 있다. 마치 스밈과 번짐처럼 봄이라는 생장의 여울 속에 잎새들의 앞다투며 줄기차게 변화하는 양상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듯하다. 잎새뿐만 아니라 언덕배기의 풀이나 들판의 농작물들도 돌아서고 나면 아찔한 정도로 몸짓을 불려가며 빨리 자라 생동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 어느 때나 한결같고 공평한, 영원한 세월 속의 나그네(光陰者 百代之過客)일텐데, 유독 봄날만큼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며 발걸음이 빨라 보인다. 그것은 기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생기다 보니 봄날의 시간이 빠르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에서도 시간의 완급이 느껴지듯이, 외부의 환경이나 자극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껴짐은 대체로 보편적인 일로 여겨진다. 어릴 적에는 한 해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길게만 다가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빠르게 지나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것이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의 뇌가 시간 인식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비롯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신경 가소성(可塑性)이 줄어들고 뇌는 정보를 적게 처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 형성을 줄여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0대는 시속 10km, 60대는 시속 60km로 달려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어린 시절 대부분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아 신선함과 흥미, 긴장감을 일으키며 이러한 경험은 뇌가 더 많은 인식과 정보를 처리하도록 만들어 시간을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반면 성인이나 중년·노년기가 되면 새로운 경험보다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일상이 더 많아지면서 뇌의 활동량이 줄어들게 되어 시간의 흐름이 단조롭고 빠르게 느껴지게 된다. 어쩌면 이같은 일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경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도 세월을 더디 느껴지도록 하는 방법이나 루틴이 얼마든지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며 보다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거나 현재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시간의 흐름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일상의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취미나 학습, 봉사, 여행 등으로 낯선 곳과 마주하게 된다면 늘 흥미롭고 호기심 가득한 나날이 세월의 속도를 꾸준한 각도로 줄여줄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5-13

리더십과 소통이 성과를 결정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리더십이 필요하다. 좋은 리더십은 부드러운 조직문화와 성과를 말한다. 기업에서 보면, 인력, 설비, 자재, 시스템 등의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생산성, 품질, 납기, 비용 등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성과와 성장을 함께 이끌어내는 영향력이다. 단순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개인과 조직을 동기부여’ 시키며, ‘문제 해결 중심으로 이끄는 것이다. 기업의 생산관리 리더십 조건은 첫째, 공장의 장기적인 방향성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비전 제시 능력이다. 이것은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조건이다. 둘째, 생산, 품질, 공정, 설비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본질을 꿰뚫는 현장 통찰력과 문제해결력이다. 문제의 본질을 못 보면 의사결정에 오류가 생겨 시간이 지연되고 손실을 가져온다. 불량, 납기 지연, 원가 상승 등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현장 작업자부터 관리자까지 다양한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 관리, 데이터와 경험 기반으로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 능력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넷째, 기술력과 현장력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 팩토리, 자동화 등 변화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원칙과 일관성 있는 리더십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여 모범적인 태도와 신뢰를 얻는 행동력이다. 구성원에게 신뢰를 얻어야 리더십이 완성된다. 필자가 P사의 해외법인 태국을 지원할 때 일이다. 2개 공장의 공장장 리더십은 차이가 있었다. 언어 소통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A공장장, 통역을 거쳐 일을 추진하는 소심한 성격의 B공장장이다. 둘은 공장 생산관리 방식과 조직문화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B는 태국어를 몰라 상황 분석과 의사 결정력이 약하고 올바른 추진력과 직원과의 소통 및 공감대를 쌓아가는 것이 어렵게 보였다. 통역 없을 때는 오프라인 소통이 안 되어 일에 한계가 있었다. 이 후 공장장 대상 리더십 교육, 대화와 토론을 통한 올바른 상황 인식과 대안을 찾아갔다. 조직과 사람의 변화관리는 해당 나라의 종교, 사회 문화, 성격 등 국민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태국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자부심이 있고 인구 7천만명, 국민의 94%가 불교를 믿는다. ‘괜찮아, 문제없어’라는 ‘마이 팬 라이(Mai Pen Rai)’ 정신이 있어 작은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긍정적으로 넘기려는 태도가 있다. ‘미소의 나라’로 불리고, 사람들과 부드럽고 따뜻하게 소통한다.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실용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태국 문화를 이해하고 내 관리 스타일보다 상대 관점에서 문화의 차이를 인증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언어의 한계가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생각과 습관을 이해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오프라인 소통을 이어갔을 때 건강한 조직, 시너지를 창출하는 모습으로 거듭 난 것이다. 리더의 신뢰 수준만큼 조직문화와 성과는 달라진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5-13

빅텐트 成事, 김문수 후보 역량에 달렸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일요일(11일) 경남 창녕 전통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치는 이익을 노리고 막 움직이다 보면 반드시 걸려 자빠지게 돼 있다. 어느 집단을 보니까 그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말을 인용했지만, 누가 들어도 국민의힘 후보 강제 교체 과정을 비웃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당 대선후보를 김문수 후보에서 한덕수 전 총리로 강제 교체하려던 시도를 당원들이 바로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이 후보 말대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선주자로 확정된 김문수 후보가 당권을 잡자마자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당 이미지를 쇄신시킨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가장 주목되는 인사는 초선의 김용태 의원을 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하고, 자신에게 험악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권성동 원내대표를 유임시킨 것이다. 1990년생인 김 지명자는 당내 최연소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에도 참여했다. 지난 10일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는 7명의 비대위원 중 유일하게 한덕수 전 총리로 후보를 강제 교체하는 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가 개혁·포용 인사로 난국 수습에 나선 모습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워 당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포용력 있는 인사를 통해 당내 화합을 도모한 것은 국민의힘 이미지를 전격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금 국민의힘 중도층 외연 확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공식선거운동 직전까지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김 후보가 전면에 나서 이 후보 대세론을 깨야 한다. 그러려면 최우선 선결과제가 이번 조기 대선의 원인을 제공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대선이 민주당의 전략인 ‘윤석열과 이재명’ 대결 구도로 이어지면 국민의힘은 필패한다. 김 후보가 더 넓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윤 전 대통령 울타리 속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했던 양향자 전 의원이 말했다시피, ‘후보자와 배우자만 빼고 다 바꾼다’는 심정으로 당과 자신을 새롭게 변신시켜야 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이낙연 전 총리 등과의 빅텐트 추진도 당의 외연확장 후에나 가능하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10일 대선 후보로 가장 먼저 등록을 하고 부동층 지지자를 흡수하기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지금으로선 이 후보가 자진해서 빅텐트에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단일화 테이블에 앉히려면 우선 김문수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오는 29일이면 21대 대선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사전 투표일 전에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빅텐트가 구축되려면 18일, 23일, 27일 예정된 3차례 TV토론 등을 통해 김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수밖에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2025-05-13

“전쟁은 이제 그만”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는 전 세계에 보내는 첫 공식 메시지로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자주 말했던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는 메시지로 그의 뜻을 전승했다. 1945년 종전된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군사전쟁으로 기록됐다. 전쟁으로 인한 직접 사망자가 5000만~5600만명, 전쟁관련 질병이나 기근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람이 추가로 1900만~28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뒤끝은 항상 눈물과 상처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란 말로 전쟁의 비극을 표현했다. 전쟁은 군사력을 동원해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권력을 잡은 자들의 욕심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반복 돼온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가 전쟁이다.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는 가장 원시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인류는 여전히 비극적 방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전쟁은 당사자 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 경제적으로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심각한 타격을 입게 하고 세계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간다. 가자지구 내 전쟁 또한 세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이 종전 협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닌 듯 하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지구촌에서 조각 조각 벌어지는 분쟁을 두고 “사실상 3차 세계대전 상태”라고 말했다. 영국의 한 여론조사 보도에 의하면 미국 등 서방국의 국민 45%가 5~10년 내 3차 세계대전 발발을 우려한다고 했다.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레오 14세 교황의 간절한 기도가 전쟁 종식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3

울릉도 어선조업·폐업도 못해 어민 빚만 늘어…정부 특단의 조치 마련해야

동해안에 오징어가 고갈되면서 90% 이상이 오징어 조업에 종사하는 울릉도 채낚기 어민들이 생계가 위협받고 있어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울릉도는 수년째 오징어가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울릉수협에 위판된 울릉도 어민들의 오징어 생산량은 예년에 채낚기 1척이 1년 동안 잡은 양에 불과한 2여억 원 정도다. 매년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오징어가 잡힌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울릉도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폐업을 통해 전업해야 하는 실정이다. 폐업을 하지 않으면 어선관리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1994년부터 수산자원에 맞는 적정 어선세력을 유지하고자 연근해 어선에 대한 감척 사업을 하고 있다. 수십 년간 어업에 종사한 어민들은 감척을 통해 부채청산도 하고 일부 생활비로 사용한다. 따라서 울릉도 채낚기 오징어 어선 어민들이 감척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울릉도 어민들에게는 간단하지 않다. 울릉도 오징어뿐만 아니라 동해 연안이 전체적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자 감척하려는 어민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 부족으로 감척이 쉽지 않아 울릉도는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또한, 감척 조건에 연간 조업일수가 60일이 넘어야 하기 때문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도 조업 일 수를 맞추고자 무조건 60일 이상 출어를 해야 한다. 이렇게 불합리한 조업 일수를 맞추고자 어민들은 소득 없이 유류대를 지출하는 2중 3중의 고충을 겪고 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조업일수 맞춰도 소용이 없다. 예산 때문이다. 올해 감척이 안 되면 내년에 또 60일 조업일수를 맞추고자 출어를 해야 한다. 울릉도 2024년 어선 감척 현황은 14척이 신청해 6척이 선정됐다. 2025년 26척의 어선이 감척을 신청했지만 몇 척이 될지 알 수 없다. 감척이 안 된 어선은 다음해 또다시 60일 출어일수를 맞춰야 한다. 울릉도는 조건불리지역이다. 조건불리지역은 ‘어업 생산성이 낮고 정주 여건이 불리한 도서 및 접경지역 등에 거주하는 어업인’이다. 직접지불제 지원으로 소득 보전과 어촌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제정됐다. 울릉도는 2018년부터 금징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어업조건불리지역이다. 오징어채낚기 어업에만 의존하는 울릉도어민을 위한 법이지만 그만큼 어업이 어려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선감척사업에 조건불리지역 어선에 대한 우선순위를 줘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의 설명이다. 어업 소득이 높지 않아 조건불리지역이 됐지만, 어업소득이 없으면 감척 지원금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울릉도 어민들은 3중 4중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울릉도 어민들의 사정을 고려해 특단을 조치를 취해 최소한 울릉도 어민들이 요구하는 감척에 대해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 울릉도 어민들이 생계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5-13

판사의 양심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양심에 따른 판결이란 주관적인 개념이어서 자의적인 판결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래서 법관의 양심은 일반 개인과는 달리 법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대법원은, “법관의 양심이란 개인의 주관적 도덕 감정이 아니라, 직업적 사명감과 책임감, 법에 대한 이해와 해석 능력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 판단이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고, 법관 윤리규정에도“법관은 공정하고 독립된 자세를 견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심리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더블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은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 저지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22년 9월 8일 기소되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일 때 개발사업 1차장이었던 고 김문기 씨를 몰랐다고 한 사실과, 경기도지사 시절 성남시 백현동 부지의 용도변경과 관련하여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발언한 것이 허위 사실 공표라는 혐의다. 법원은 1심은 6개월 이내,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 재판을 마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규정을 어기고, 2년 7개월이 지난 2025년 5월 1일에야 유죄취지 대법원 파기환송이 있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감안할 때, 만약 공직선거법의 강제 규정대로 신속하게 처리가 되었더라면, 이재명은 지난 총선의 출마뿐 아니라 이번 대선의 후보도 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이 내려진 사건을 2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도 1심 판결 취지를 그대로 인정하여 유죄 취지 파기환송 한 것일 터이다. 판사의 정치·이념적 성향에 따라 법 적용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은 여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을 했다. “명백한 정치재판이자 졸속재판”이라거나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것도 모자라 “극우 내란 세력의 역습”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사법쿠데타”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압박했고, 당 차원에선 조 대법원장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당초 2025년 5월 15일로 예정되었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대통령 선거 이후인 6월 18일로 연기했다.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이유였다, 이는 어처구니가 없는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피고가 후보의 자격이 있는지를 판결하는 것일진대 선거 후로 미룬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 판결이 난 후보의 공판을 선거 후로 연기하는 것은 선거의 당락에 따라 법적용을 달리 하겠다는 저의가 아닌가. 이는 명백히 법리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는 비양심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판사가 양심을 버리면 법치는 무너지고 만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5-12

무소유의 삶

소유하지 않음이 포기가 아니라 나를 더 잘살게 하는 선택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 길을 가겠는가. 소유함으로써 오히려 결핍되고,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충만해지는 길이 있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길. 무소유의 길이다. 무소유! 도대체 무엇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나의 답은 이렇다. “무소유란, 자신의 관념을 소유하지 않는 것” 우리는 무소유를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돈을 떠 올린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돈이 무슨 죄가 있으랴. 돈에 대한 직접적인 무소유는 무소유가 지향하는 넓은 의미 중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무소유는 돈 자체의 소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돈은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돈을 소유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돈을 버릴 이유도 없다. 돈에 관하여 우리가 소유하지 않아야 할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다.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내려 놓는다’는 의미에서의 무소유, 이것이 돈에 관한 참된 의미의 무소유다. 삶은 돈 이외에 수많은 요소들로 짜여져 있다. 건강, 권력, 명예, 사랑, 우정, 자유, 그리고 행복 등등. 이런 소중한 것들 위에 켜켜이 쌓인 관념들을 이제는 내려놓기로 하자. 내려놓고 다시 채우고. 또 내려 놓고 다시 채우고…. 이것이 무소유의 삶이다. 무소유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다. 무소유라는 ‘테크닉’을 잘 활용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소유의 삶은 자유롭다. 관념에 집착함이 없기 때문이다. 재물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재물에 집착하면 창고지기에 불과하다. 지식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지식에 집착하면 꼰대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사랑에 집착하면 불행하게 된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마음 상태이다. 내가 가진 멋진 차에 집착하여 안절부절하고 있다면 그 차는 애물단지가 되지 않겠는가. 물건조차 이럴진대 하물며 사랑이랴. 무소유는 단순한 금욕이 아니다. 나라는 생각조차 버릴 수 있는 해방의 길이요, 더 잘살 수 있는 실천철학이다. 때로는, 가지는 것보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 1976)에서 인간의 삶에는 ‘소유의 방식’과 ‘존재의 방식’ 두 가지 근본적 태도가 있다고 했다. 소유하려는 자는, 자기 중심적, 불안, 소외를, 존재하려는 자는, 기쁨, 자유, 타자와의 연대를 지향한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행위이다. ‘나는 너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할 때 사랑은 죽고,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라고 말할 때 사랑은 산다. 무소유는 존재론적 삶의 방식이다. 여기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사유하는 자는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 속에서 산다(수타니파타 5.13)’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마태복음 5.3)’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는 어떤 꿈들이 있습니까?

2025-05-12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미국 부자

첨예화된 자본주의는 돈을 신(神)의 지위까지 끌어올렸다. 어느 국가라 특정할 것도 없다. 지구 위 대부분의 나라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부자”라고 답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친구와 선후배는 물론, 부모와 형제까지 돈 앞에선 낯빛을 바꾸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지저분한 사기 협잡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유산 싸움 이유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탓이다. ‘돈은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돈을 잘 쓰는 건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부자는 사회적 존경을 받게 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최근 “나는 부유하게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며 가진 돈의 사회 환원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00년 설립된 게이츠재단은 지난 25년 동안 140조원에 가까운 돈을 사회에 돌려줬다. 앞으로는 사회 환원을 더 빠르게,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게 빌 게이츠의 뜻이라고 한다. 그는 “향후 20년간 내 재산의 거의 전부인 99%를 임산부와 아동 사망률을 낮추고, 소아마비와 말라리아 등의 병을 해결하며, 빈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부하겠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사용될 돈은 대략 280조원. 지금까지의 기부금보다 2배 많은 수치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겠지만 ‘그는 부자로 죽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빌 게이츠의 선언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 돈은 때론 독(毒)이고, 때론 약(藥)이 된다. 어떻게 쓰여야 약이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2

6·3 대선의 시대정신

‘시대정신’이란 ‘오늘의 문제를 진단하고 내일을 모색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정신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게 해준다. 차기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확고한 시대정신이 있어야하는 까닭이다. 6·3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후보들은 저마다의 필요에서 시대정신을 말하지만, 국가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정신이다. 새 대통령이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두 동강 난 나라를 통합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이라고 천명한 나라에 ‘민주’도 ‘공화’도 모두 허울뿐이었다. 오만한 집행권력은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해서 탄핵되었고, 독선에 빠진 입법권력은 행정부의 무력화와 사법부 협박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인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있다. ‘여소야대’의 경우 정부와 국회가 충돌할 수 있고, 한 정파가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면 독재의 위험이 커진다. 6·3 대선이 끝나면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위험에 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치선진국은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그 위험성을 극복하지만, 정치후진국은 독선적 권력의 일방적 폭주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린다. 권력의 절제와 정치적 타협을 모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주의는 사망할 수밖에 없다. 한편 ‘공화주의 정신’은 어떤가? ‘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이 ‘분열의 아이콘’이 된지 이미 오래다. ‘우리’와 ‘저들’로 편을 나누는 진영정치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은 국가적 불행이다. 공화정(共和政)의 국헌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에게 ‘공화정신’이 없었으니 나라는 전쟁터가 되었다. 한 나라 두 국민, 적대적 진영정치, 심리적 내전이라는 ‘세계 최악의 문화전쟁’을 극복하려면 새 대통령은 반드시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겨냥해 ‘선거용 통합 행보’를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평소와는 달리 후보의 말 바꾸기 빈도와 그 폭이 크다면 선거용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선거 때의 공약(公約)은 대부분 공약(空約)으로 끝난다. 중요한 것은 통합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실천행동이다. 미사여구로 말만 떠벌리는 후보는 ‘유권자를 기만한 죄’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차기 대통령은 확고한 공화정신으로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나라의 사활이 걸려있는 민주와 반민주, 통합과 분열의 기로에 서있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새 대통령이 민주공화정에 걸맞은 ‘진정한 민주주의자인 동시에 공화주의자’인가에 있다. 이런 후보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그가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에 속지 말고 ‘평소의 행동’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치인의 말은 포장지에 불과하고 행동이 그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5-12

민주주의 위기에 맞서는 현명한 유권자의 자세

사람은 현재의 이익과 만족을 미래의 보상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고, 미래의 결과나 보상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현상을 행동경제학 용어로 ‘현재편향’이라고 한다. 현재와 가까운 보상일수록 감정적인 이율이 상승하며 현재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이율과 중요성을 낮게 여기는 현상으로, ‘과도한 가치 폄하’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유권자 개개인의 현재편향 오류에 더해, 선거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해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요소가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 바로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과거에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작년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유튜브·SNS 등에서 조회수·구독자수 확보 등 경제적 목적으로 자극적인 부정선거 컨텐츠를 양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모든 선거관리 절차는 철저한 적법 절차 하에 진행되며, 투표과정을 비롯해, 투표함 이송·보관 및 개표의 전 과정을 참관인이 지켜보고, 그러한 과정에 수 많은 투·개표 인력이 종사하므로 부정이 개입되거나 결과를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이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제기된 선거소송은 126건이었다. 이 중 단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총 35건의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29건이 진행중이기는 하나, 6건이 종결되었으며 그 중 인용된 사례는 없다. 132건의 선거무효소송에서 인용 사례가 1건도 없다는 것은 의혹의 실체가 없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확산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응하기 위해, 선관위는 투개표관리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했다. 제22대 국선 때부터는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를 24시간 공개하고, 개표과정에 수검표 절차를 추가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일반 국민이 궁금해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모든 선거관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정선거참관단도 운영한다.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의혹들에 현혹되지 않고 사회갈등과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음모론을 스스로 배격함으로써 훼손된 선거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제도를 신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1표의 미래 가치를 지향하며, 유권자 모두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빠짐없이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가 굳건히 바로 서길 기대한다.

2025-05-12

쿠데타 세력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김영삼 총재에게 집단지도 체제를내세운 이철승 의원이 도전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온건 노선인 이 의원을 지원했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해도 좋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20대 조폭 김태촌을 끌어들였다. 그의 조직원과 광주에서 고등학생 불량배들까지 불러올렸다. 수백 명이 각목을 들고 신민당사에 난입해 김 총재에게 “죽기 싫으면 당인을 내놓아라”라고 협박했다. 경찰은 방관했다.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한덕수 후보는 어디서 왔나. 지난 4월 8일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그는 트럼 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흘렸다. 누군가 시중에 그의 출마설을 퍼뜨려놓았다. 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존재감을 키운 셈이다. 그날 시작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지지도가 미미했다. 이재명 37%, 김문수 9%, 홍준표 5%, 한 동훈 4%, 그리고 한덕수 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예비후보 등록을 한 것은 그보다 일주일 뒤인 4월 15일이다. 두 번의 예비경선을 거쳐 5월 3일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를 선출했다. 경선 과정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은 “한덕수와 단일화할 거냐”라는 질문과 압박을 끊임없이 받았다. 입당도, 예비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한덕수 후보가 예비경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 그의 존재감을 키워줬다. 정작 그는 당 밖에서 정대철 헌정회장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전화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선된 국민의힘 후보가 양보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무엇을 믿었던 걸까. 많은 정치 분석가는 친윤 세력, 그 뒤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한다. 무리하게 후보 교체를 몰아간 권영세 비대위원장이나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친윤’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후보를 양보하지 않는 김문수 후보를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해…한심하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그렇게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자리인가. 원내대표가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허수아비쯤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사실 국민의힘 지도부나 한덕수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요구한 ‘단일화’는 ‘양보’다. 10일 밤 당원 투표로 김문수 후보로 정리된 뒤에도 권영세 비대위원 장은 “단일화 못 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로 단일화는 단일화가 아니 었다. 김 후보가 경질을 요구한 이양수 사무총장에게 ‘단일화’를 위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겼다. 경쟁 후보 중 한 사람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칼자루를 맡긴 꼴이다. 김 후보의 자격을 박탈한 뒤 모두 잠든 새벽 3~4시에 단일화 후 보 등록을 마감했다. 새벽 2시 30분에 공고해, 한 시간 반 만에 32가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도 있다. 한 후보는 새벽에 입당하고, 하버드대 졸업증명서까지 준비했다.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김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자마자 바로 그날 ‘단일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사퇴 요구다. 왜 한 후보를 바로 경선에 참여시키지 않았을까. 윤 전 대통 령이 싫어하는 한동훈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꼼수라고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 무리한 공작 탓에 시너지는커녕 갈등만 유발했다. 모든 경선 참여자가 반발했다. 한덕수 후보가 득표력이 더 있다는 근거는 중도 확장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선에 참여해야 했다. 한동훈·유승민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줘야 했다.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라도 망치고, 당도 망쳤다”라고 비난했다.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한덕수 후보를 내세운 친윤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라고 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 운동 때 등장한 ‘윤 어게인’(윤석열 복귀)이 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쿠데타를 반복하는 세력부터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11

안동 산불, 검게 그을린 숲에서 다시 피어나는 희망

“이번 산불로 많은 시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안동시는 현재 피해복구와 함께 생활 안정, 농가 지원, 산림 회복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시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반드시 안동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2025년 봄, 안동시는 대형 산불로 인해 유례없는 피해를 입었다. 순간 풍속 28㎧의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은 안동시 남쪽의 7개 면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숲은 검게 그을렸고 마을과 삶의 터전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안동시민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손길들이 하나둘 모였고, 이제 안동은 회복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디고 있다. 이번 산불로 안동에서 소실된 산림 면적은 2만6708㏊로, 여의도 면적의 92배에 달하는 규모다. 또한 사망 4명, 부상 6명 등 1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여기에 정부 재난관리시스템(NDMS)에 입력된 자료를 기준으로 안동시에서 이번 산불로 전소됐거나 반소 또는 일부가 소실된 주택은 모두 1379동에 이른다. 여기에 신고되지 않은 빈집 등을 포함하면 철거 대상은 1,700동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농작물 883㏊, 축사 231곳 등이 불길에 휩싸였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대피주민은 5300여 명에 달했다. 이 중 1000여 명은 여전히 선진이동주택과 대피소 등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는 산업 전반으로도 확산됐다. 남후농공단지 내 제조업체 26곳이 전소 또는 일부 소실됐으며, 스마트팜 시설과 식품업체, 건설업체 등 개별기업도 34곳이 피해를 입었다. 안동의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기반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린 셈이다. 산불이 진화된 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조속한 복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아 곧바로 피해복구에 나섰다. 현재 주거지원 분야에서는 68개 부지를 주택입지로 선정해 956동의 선진이동주택 공급을 추진 중이다. 5월 중순까지 전량 설치를 목표로, 현재 절반가량이 공급 완료됐다. 선진이동주택은 1세대(3인 기준)당 1동이 제공되며, 싱크대·옷장·신발장·에어컨·바닥난방 등 생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한 긴급 주거지원도 병행, 74세대의 이재민이 입주를 완료했고 모듈러주택에도 13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농업 분야의 회복을 위한 지원에도 나섰다. 5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트랙터, SS기, 승용제초기 등 장·단기 임대 농기계를 확충, 무상으로 임대하고 있으며 지원된 철거비 반납에 동의한 농가에 대해서는 농업시설 철거를 지원해 현재 90%가량 완료했다. 아울러 피해 사실이 확인된 농기계를 다시 구입할 경우 재난지원금을 포함해 최대 70%의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며, 응급복구용 농업용수 기자재를 지원하는 등 조속한 영농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산불로 48만t의 폐기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며 처리비용은 430억 원에 달한다. 우리시는 신속하고 안전한 처리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 현재 60% 이상의 처리율을 달성했다. 폐기물 임시 적환장도 5곳(일직면, 임하면, 길안면, 임동면, 기존 매립장)을 설치하고 반출된 폐기물은 전량 안동시에서 무상 처리할 계획이다. 아울러 건축허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친 농사용 창고와 비닐하우스 등 영농시설에 대해서는 재난지수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 철거비로 해당 농가에 지원되고 있다. 피해기업을 위한 지원책도 병행되고 있다.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과 공동으로 ‘원스톱 지원센터’ 설명회를 열고 참석 기업과 각 지원기관 간의 일대일 심층 상담 등을 진행했다.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1년간 운전자금 융자한도액 및 이자를 우대 지원해, 융자한도액을 최대 5억 원까지로 확대하고 이자도 5.5%까지 확대 지원키로 했다. 산불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지역사회는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안동시민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 발생 후 지금까지 83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주민들을 도왔으며, 경북공동모금회와 고향사랑기부 등으로 전해준 성금은 총 83억이다. 큰 금액이지만 피해가 워낙 컸던 터라 안동시는 주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성금을 모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산불은 삶의 터전을 불태웠지만, 안동은 무너지지 않았다. 잿더미 위에도 희망은 자라고 있다. 시민의 의지와 전국 각지의 손길, 행정의 신속한 대응이 어우러져 안동은 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더 푸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2025-05-11

“당신도 당해 보라고”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 파티마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 ―조성래,‘창원’부분 (‘천국어 사전’, 2024. 타이피스트) 읽던 시집에 얼룩이 번졌다. 단 한 방울이었는데 시집 한 권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이라 변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시집을 덮으며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조성래 시인의 이번 시집은 죄다 침수되었다고, 해서 시집이 소진되었다고. 가령 인용되지 않은 이런 구절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 한 인간이 하루 동안 생산해 내는 환상의 양은 옥상의 푸른 물탱크 하나만큼”이었다고 말이다. 또 이런 시편은 어떤가.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여자의 물탱크는 두 개, 그 어떤 누구의 미래와 희망, 천국도 결국은 물탱크 속에 갇힌 햇빛”, “그러나 어머니의 빈 탱크, 나 온통 젖은 몸으로, 타향으로 떠날 때, 어찌나 기뻤던지, 나의 자유가 어머니의 자유에 반하는 숙적이라는 사실을 무참히 깨달으며, 나는 사탕 빠는 고아처럼 잠시나마 기뻤”다는 내면의 고백말이다. 그것은“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는 언술처럼 비록 가까울지라도 먼 곳에 있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참담한 독해와 같을 것이다. 해서 시인을 통해 우리는 어떤 부끄러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자식은 죄책감이 들 때에서야 부모에게 전화를 한다”는 사사키 이타루의 말은 조성래 시인이 말한 세계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것이 시라는 화법과 유사하다. 흡사 이런 완전한 밀착의 순간에 와서야 사람의 영혼은 어떤 비밀을 깨닫게 되니까. 물론 그것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그래도“모든 이야기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관통하는 지점은 분명한 듯하다. 지극히 보편적인‘죽음’이라는 의식을 전제하지 않는 한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태어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우리가 이 세계를 다 믿지 못할지라도, 우리에게 어머니란 기표는 신앙이며 동시에‘천국어’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극도의 아름다움이 참담하게 슬픈 이야기를 태어나게 한다.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이희정 시인

2025-05-11

수염 기를 권리, 수염 안 기를 권리

나는 수염을 기른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어느 정도 길어지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니 정확히 말하면 마냥 기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완전히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0년에 나온 EP의 커버에는 수염이 없고 2013년에 나온 1집 앨범의 커버에는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이 있으니 그 사이 언제쯤부터 십 년 넘는 세월동안 수염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수염을 민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 쯤은 수염을 다듬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염을 밀어야 했고, 어느 기간 동안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수염을 밀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뵙던 날도 수염을 밀었다. 그런 날들을 제외하고 수염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심지어 내 결혼식장에서도. 예술인이라는 직업의 고충이야 많지만 특권은 드문데, 그 몇 안되는 특권 중에 하나가 수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 없이 누리고 싶었다. 수염은 당연히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탈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 없이도 부족하지 않게 수염이 난다. 이 역시 내가 누려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커보이게 하는 기능도 있고, 옷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나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요즘 ‘추구미’라는 말이 유행인데, 나의 추구미는 수염을 빼 놓고 상상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나는 정말로 나의 수염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별로 이성에게 인기가 없지만 다행히 나의 아내는 나의 수염을 존중해준다. 이 존중이라는 것이 내게는 참 중요한 것이다. 싫어한다고 밀어버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좋아해서 기르라고 떠밀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의 수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모든 이들이 다른 사람의 수염에 대해서 이러한 존중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기르건 말건 신경이나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수염에 대한 박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각종 참견은 물론이고 더럽다느니 게을러보인다느니 하는 혐오적인 발언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수염 기른 사람은 정말 더럽고 게으를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수염을 모두 제거하는 면도보다 일정한 모양과 길이를 유지하는 수염 관리가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관리를 해야 하므로 더럽거나 게으르다는 것은 분명 편견이다. 실제로 더럽고 게으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수염에 대한 박해는 단정치 못하고 불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남성 중 수염 없는 남성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단군할아버지도,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도, 말 목 자른 김유신장군도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 분들을 두고도 불량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굳이 역사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대 다른 국가를 향해서만 시선을 돌려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직자나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수염을 허용하지 않는 풍토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밴스 부통령부터 멋드러진 수염을 기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체육부(스포츠청)장관 무로후시 고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염 미는 문화가 서구권을 통해서, 혹은 주변국가를 통해서 양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허용되는 것이 우리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수염에 대한 박해, 차별, 탄압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공직자에게 존재하는 품위유지의 의무를 수염과 연관 짓지 않기를 부탁한다. 기업에서 수염 기른 사람에게 눈치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 수염이 있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위생이 중요한 업장에서 수염의 유무가 아니라 청결하게 관리되었는가의 여부를 체크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 ‘수염 안 기를 권리’가 생겨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수염 기를 권리’, ‘수염 기르고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5-11

사랑과 글쓰기, 기억과 해석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필립 빌랭이 실제 연인 사이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학 시절,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매료되어 팬레터를 보낸 것을 계기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에르노가 쉰넷, 빌랭이 스물넷이던 시절의 일이다. 필립 빌랭은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포옹’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에르노는 같은 관계를 ‘젊은 남자’라는 작품으로 다시 써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시선으로 쓴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언어로―그러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기록한 문학적 대화다. 내가 필립 빌랭의 ‘포옹’을 처음 읽은 건, 열다섯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전학생 신분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나름 우등생 소리를 들었지만, 새 학교에서 나는 어설프고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다들 나의 진가를 몰라주고 있다. 모두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내게 조언을 건네는 문학 선생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도서관 책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나를 건드려줄 문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랑스 문학 코너는 언제나 사람이 적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곤 했다. ‘포옹’은 매우 얇았다. 완독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지에서 설명하듯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소설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은 확실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에 관한 글쓰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너머 작가가 끊임없이 발화하고자 했던 것.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선명한 욕망.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삼십 대를 지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니 에르노에 관한 글을 준비하다가 자연스럽게 필립 빌랭의 ‘포옹’을 펼쳐 들었고 순간 열다섯 어느 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세계를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은 이 책은 어설프고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대목은 나의 미숙함과 똑 닮아 있어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젊은 남자’에서 말한다. 그와의 관계는 단지 열정의 시간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과 조우하는 계기였다고. 그녀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권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가 천착해 온 주제―여성의 몸, 욕망, 권력에 관한 문제―가 짧은 기록 속에서도 집요하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포옹’에서 보이는 감정의 분출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영역이며 어떤 면에서는 모종의 쓸쓸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열다섯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젊은 남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과거의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때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이제는 언어의 테두리 안에 천천히 포착된다. 세상과의 불화, 분투, 질투와 수치…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시선. 자연스레 재해석되는 세계. 그러니까 결국 하나의 사건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점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해석의 집합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고 그 변화 자체가 또 하나의 진실이 된다. 모든 사건은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연쇄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텍스트 그 자체로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해석이 얼마나 복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자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바라본다는 것. 내가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렌즈가 흐려지고 선명해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활자를 읽어가는 경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랑과 글쓰기는 여전히 내 삶에서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 /문은강(소설가)

2025-05-11

정치인들이여, 책을 읽어라

지난 금요일 내가 맡은 한 수업에서 어느 수강생이 ‘수업이 너무 좋아요. 머리가 명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한다. 그 수강생은 지난 10년간 종교 활동만 했더니, 인간관계나 생각하는 것이 너무 좁아져서 내 강의를 신청했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새로운 것을 접하면 뇌파가 달라져서 학습, 기억, 창의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 효과를 얻고 싶어 틈나는 대로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 올 5월에는 시 수업 두 개를 신청했다. 한강 작가의 초기 시를 읽는 수업과 김혜순 시집 12권을 읽는 수업이다. 두 작가의 시는 내게 난공불락의 요새라서 용기가 필요했으나 과감히 신청했다. 김혜순 시집 전작 읽기를 이끄는 S 시인은 시를 읽을 때는 표현에 주목하라면서 낯선 표현을 경험하는 것이 시를 읽는 효과라고 한다. 그동안 어려운 시들을 보면 도대체 왜 이런 시를 쓰고 읽는지 궁금했는데, 김혜순의 시를 같이 읽으며 낯선 표현에서 생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당이었던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을 보니 이해 안 되는 일이 많다. 정치 경력이 많은 사람도 있고, 서울대 졸업에 법조인 출신까지 이른바 ‘넘사벽’ 스펙의 소유자들이 후보로 나섰는데, 경선 토론회 수준이 기대 이하다. ‘왜 키높이 구두를 신으십니까?’ ‘내 지지율이 당신보다 7% 앞서니 사퇴하시죠.’, ‘당신은 전과 7범인데 다른 당 후보를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까?’ ‘나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같은 말들이 나온다. 그 정당의 비대위는 후보 선출 후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는 외부 인사를 데려와 정식 절차를 밟은 후보와 바꾸려고까지 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 많은 지인은 정치판에 들어가면 다 저렇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상당히 그럴듯하다. 매일 만나는 사람과 생각하는 일이 한정되어 있으니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자니, 바츨라프 하벨(1936~2011) 같은 정치인이 그리워진다. 하벨은 체코의 정치가인데, 극작가이자 수필가이도 하다. ‘녹색 평론’에서 하벨의 글을 읽고 무한 감동에 빠졌던 일이 생각난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두 나라로 분리되기 전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뉜 후 대통령 출마를 고사했지만, 연방 의회 의원들의 만장일치 의결로 추대되어 체코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정치를 하든 종교를 믿든 어느 한 가지 일만 오래 하다 보면 편협해지고 어리석어진다. 새로운 공부를 통해 주의를 자주 환기해주어야 한다. 주의를 환기하는 데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책을 읽어야 인식이 확장되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중에 시는 시간으로 보나 효과로 보나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정치인들에게 시 읽기를 권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5-11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경북과 경남지역 산불은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약 4만8천여 ㏊에 달하는 산이 잿더미로 변했으며 3천여 동의 집이 불에 타고, 30건의 국가유산과 2천여 건의 농업시설 피해를 보았다. 불을 끄고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대구에서 다시 산불이 났다. 대구 산불은 원인 규명 중이지만, 나머지는 사람이 불을 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의 상승은 산불 가능성을 높이고 태풍급의 바람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산불을 퍼뜨렸다. 산불로 인한 유독 가스의 발생은 대피하려는 주민들이나 불을 끄려는 소방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불완전 연소로 인한 연기는 불을 끄려는 헬리콥터 조종사의 시야를 방해했다. 태풍급의 바람에 실려 온 불길이 넓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차에 불이 붙을까 다급했던 이야기도 들린다. 빽빽하게 우거진 산림과 두껍게 쌓인 낙엽은 가뜩이나 힘든 산불 진화를 어렵게 했다. 우거진 산림은 헬리콥터가 뿌린 물을 막았고 떨어진 낙엽은 산불 진화를 방해했다. 낙엽 속에 남은 불씨는 다시 발화하여 수천 명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집마다 바쁘게 돌며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사람들과 그들의 긴박한 목소리. 제때 대피하지 못해 등이 탄 소를 보며 이번 사태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 전쟁보다 더한 처참한 산불에 할 말을 잃는다. 낮이나 밤이나 불길과 싸우는 최전선에서 여러 날을 집에도 가지 못한 채 불을 끈 소방대원들. 소방대원들에게 힘을 보탠 국군장병과 공무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더라면 불을 끄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나타난 불에 녹아버리는 헬멧 같은 소방 용품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 산불을 겪으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주거지와 산림층을 구분 짓는 방화선을 만들고, 산불 진화를 위한 임도 구축, 고령층 주민들의 빠르고 안전한 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화 방법으로는 대용량의 물로 한 번에 넓은 지역의 불을 끌 수 있는 대형 헬리콥터와 고성능 펌프를 장착한 산불 진화 차량이 더 필요하다. 목숨을 걸고 불을 끄는 이들에게 안전한 소방 용구의 공급은 우리가 준비해 주어야 할 기본이다. 이재민을 위한 구호 사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가축과 야생 동물의 사체와 생명을 잃은 나무들, 잿더미로 변한 산을 보노라면 그 피해를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구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도 불을 지피며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것도 모자라 불을 들고 산으로 들어간다. 기후 대응 협력 프로젝트 국제기구인 WWA(World Weather Attribution)는 340년 만에 한 번 있을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기후의 영향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대형 산불의 발화 가능성이 2배 더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대형 산불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불을 예방하자. 지구가 보내는 다급한 신호를 겸허히 받아들이자.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지구 환경을 살리는 일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5-11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

스승의 날이 만들어진 것은 학생들의 단순하고 순수한 생각에 의해서다. 1963년 충남 강경고 청소년적십자단 학생들이 병환 중이거나 은퇴한 스승을 찾아 위로 활동을 해보자는 것이 유래가 성립한 배경이다. 이 운동이 계기가 충청남도 은사의 날이 민들어졌다.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한참 이후인 1982년도의 일이다.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잡은 것은 민족의 스승이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년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엣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스승은 가르침을 받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존경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학에 등장하는 말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도 스승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스승에 대한 은혜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공자의 뛰어난 70명의 제자를 칠십자라 부르는데, 그들이 공자의 사상을 후대에 전하면서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한 사람의 훌륭한 스승이 미치는 영향력은 이렇게 큰 것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 마음으로 존경했던 선생님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그때처럼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단을 떠나가는 선생님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가장 선망의 대상이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다시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집단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범사회적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진다”는 가사처럼 그들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1

시와 정치의 상관성에 대하여

‘논어’를 읽다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온다. ‘정사(政事)’에 관한 ‘위정편(爲政篇)’에서 우리가 만나는 대목의 핵심은 기실 정치 행위가 아니라, 정치를 하려는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공자의 생각은 인륜 도덕과 예의범절, 효도와 학문, 말과 행동, 불의와 대면했을 때 응당 가져야 할 태도 같은 인간의 바른 자세에 집중돼 있다. 그 가운데서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두 번째 장에 나오는 짧은 언명(言明)이다. “'시경(詩經'에 들어있는 시 300편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생각에 사특(邪慝)함이 없다.” 정치인이 지녀야 할 덕목의 핵심 가운데 하나를 ‘시’로 지적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여러분은 시를 암송하거나 시를 읽거나 시를 쓰는 정치인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견문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것이나,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누군가가 아침저녁으로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고 시를 논한다는 얘기를 아직 들은 바 없다.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한국의 정치판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우리 정치인들은 마음 편히 혹은 여유롭게 시와 만나고, 시를 음미하고, 시를 기억할 최소한의 여유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정치와 시를 연계한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것은 ‘논어’ ‘계씨편(季氏篇)’에서 찾을 수 있다.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아버지한테 특별히 들은 게 없느냐, 하고 묻자, 백어는 아버지 공자를 인용한다.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식인이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올바르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시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엮은 ‘시경’에 포함된 305편의 시를 공부함은 시를 통째로 기억하여 일상적인 대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함을 뜻한다. 자연과 세상, 인륜과 풍속, 지난날과 당대의 세태, 각종 예법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시경’의 모든 시편을 암송함은 작은 백과사전을 머릿속에 내장하고 있음과 전연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의 생각을 단출하게 정리하면, 시로써 흥하고, 예의범절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예악사상의 첫 번째 단추를 공자는 ‘시’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정사의 요체로 시를 그토록 중시한 것일까? 정치인의 첫 번째 소양(素養)은 언어 구사 능력이다. 대중에게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설득력 있게 전달함이 무엇보다 긴요하기 때문이다. 잠시만 생각해 보시라! 고급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시편(詩篇)에는 인간의 거칠고 우매한 심성과 진창으로 더럽혀진 영혼을 세탁하는 강력한 세척력이 내장돼 있다. 어느 정치인의 언사가 시어(詩語)에 기초한 아름답고 세련되며 고매한 것으로 점철돼 있다면, 그것을 듣는 시민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자명한 결과가 여러분의 눈에 선하지 아니한가! 어느 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흙탕의 개싸움(泥田鬪狗)’과 일장활극(一場活劇)을 보노라니, 빈곤하다 못해 금수(禽獸)의 수준으로 타락한 그들의 언어로 오염되어 가는 우리 시민들과 어린 세대에게 부끄럽고 참혹한 마음 그지없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시를 공부하시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5-11

영덕국유림관리소, 산림을 지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경북 영덕군 칠보산 자연휴양림 인근 임도에서 발생한 원목 운반 차량 화재 사건을 접하고 한편으로는 충격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느꼈다. 사고는 겉보기엔 단순한 불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영덕국유림관리소의 관리 소홀과 법 무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은 말 그대로 산림을 지키기 위한 강제 법령이다. 산림 내 재선충병이 확산되면 피해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우리는 이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특별법에 명시된 이동 제한, 감염목 제거, 방제작업 등은 모두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강제 조치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영덕국유림관리소는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고 불법 원목 운반을 방치했다. 그것도 이동 제한기간 중에 말이다. 관리소의 방임으로 불법 반출 의혹까지 제기됐고, 주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법은 무슨 소용있냐”는 한 주민의 말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법과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행할 책임이 있는 관리소가 이를 무시하고 눈감았다. 이제 누구도 이 사건을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 사건은 단지 관리 소홀을 넘어 산림 보호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장 책임자 문책, 감사, 불법 반출 의혹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영덕국유림관리소가 얼마나 관리 소홀과 비리의 온상이었는지를 더욱 명백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산림청이 어떻게 이 사태에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건 발생 직후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잃고 더 나아가 국민 전체의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산림청은 이제 ‘조직 보호’에 급급해선 안 된다. 이 사건을 조직 개혁의 기회로 삼고, 투명하고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통해 지역민과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지역 산림을 지킬 책임은 관리소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지 산림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 사회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림 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5-11

철강 산업의 위기, 문제는 경제야!

최근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이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도 진영의 갈등으로 빚은 탄핵정국이 지도자를 잃은 채 대선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최첨단 산업은 한국의 반도체를 뒤로하고 AI와 로봇이 주도하고 있고, 중저가의 철강과 화학은 중국이 이미 한국을 따돌린 듯하다. 특히 탄소중립, 중국 저가 물량 과잉 공급과 고금리로 이어지는 내수 둔화로 위기에 빠진 철강산업이 설상가상으로 관세의 폭탄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바로 포항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포항은 철강산업이 73%나 되는 단일구조여서 철강이 휘청거리면 지역이 심한 몸살을 앓으며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곳간에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경제가 돌아가야 시민들의 얼굴이 펴질 것이다. 포항은 어떤가. 지역의 주축인 철강이 이런 마당이니 물어보는 것이 그저 민망할 뿐이다. 지금 지역 민심은 지도자들에게 과연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 후보 당시 내걸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요즘 새삼 생각난다. 실제 경제가 선순환 되면 서민들의 어깨도 올라갈 것이다. 필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기업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이는 기업을 잘 아는 강력한 추진력의 리더가 뒷받침 된다면 가능한 문제다. 여력도 있다. 수십조가 투자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사업을 조기 착공될 수 있게 하고 5000여 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도 설계조차 되지 않고 있는 영일만대교 강력 추진도 급한 대로 대안 중 하나다. 환호공원 내 스카이 워크처럼 외부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거시적 관광정책도 더 확대되어야 하며 보다 많은 특급호텔이 포항에 건립되어야 한다. 특히 포항 산업의 다변화를 위해 제대로 된 창업 기업들이 태동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철강 원자재 생산지에 그를 바탕으로 한 그럴듯한 소비제품 제조기업 하나 없다는 것은 포항 경제의 쇠약함을 보여주기 충분하다. 기업은 속성이 있다. 돈이 되면 어디든 달려간다. 따라서 지자체와 지도자들은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해 주면 된다. 그게 바로 ‘give and take’다. 해양관광의 기본적인 인프라이면서도 공익적인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마리나, 케이블카, 유람선 등은 관이 ‘give’해주면 기업이 관광으로 즉시 ‘take’해 줄 수도 있다. 포항은 시군 통합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싼 땅이 아직도 많이 있다. 장기면 등에 전국 최저가 민자 공단을 조성, 울산의 자동차, 조선, 화학 등의 공단을 유치해 보는 것도 고민했으면 한다. 그동안 앞선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일군 이차전지와 포스텍, 한동대를 위주로 한 R&D 구축과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 등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산업의 육성, 환동해 시대를 대비한 영일만 컨테이너 부두 등의 인프라를 이용한 물류산업도 보다 지속적인 투자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포항시가 ‘give and take’만 더 잘해도 기업이 들어오고 그러면 고용 증가로 인구가 늘어나고, 또 그 과실로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당연 시민들의 발검음도 가벼워 질 것이고.… /공원식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2025-05-08

한국인의 울화통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최근 설문 조사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특별히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관련한 조사를 해 보았더니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만성적인 울분상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특히 30대와 저소득층일수록 울분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의 70%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대답했으며, 공평에 대한 믿음이 낮을수록 울분 정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울분(鬱憤)이란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뜻하는데, 울화(鬱火)와 비슷한 표현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생긴 병을 울화병, 심화병, 속병이라 부른다. 여기서 나온 울화통은 몹시 쌓이고 쌓인 마음 속의 화를 속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내면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다. 특히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 살면서 제대로 표현도 못해 남성보다 속병을 앓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미국정신의학협회는 한국인의 울화나 화병 등은 한국문화와 연관된 특수한 질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증상이 지속될 경우는 정서 장애의 하나로 본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의미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이 만성 울화를 겪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나라와 국민을 안정시키는 일보다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 우리나라 3류 정치에도 책임이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08

대법원의 자기 얼굴에 침 뱉기

“변호사님 상고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의뢰인들이 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대법원까지 가 조금이라도 형을 줄여보고 싶다거나 결백을 입증해 무죄판결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 사실판단과 법률판단 모두를 할 수 있는 1심, 2심과는 달리 3심 상고심은 법률판단만을 할 수 있는 법률심이고 상고 사유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83조가 정한 상고 사유는 네 가지이다. 첫 번째,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때, 두 번째,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세 번째, 재심청구의 사유가 있는 때, 네 번째,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이다. 이 중 재심사유는 판결에 쓰인 증거가 위조되는 등의 극히 드문 경우이고, 사실판단이 잘못되었다거나 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상고하는 것은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만 가능하므로 결국 대법원이란 곳은 형이 무겁다고 상고할 수 없고, 나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1·2심 법원이 사실을 잘못 보았다는 이유로 상고할 수도 없는 법원인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 상고심의 벽은 매우 높은 산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 평생 자랑할 만한 성공 사례로 남기도 한다. 사실판단이나 양형문제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날 리가 없고 결국 매우 제한적 상고사유 중에서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 위반이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가 밝혀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판단과 법률판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말의 존재와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사실판단의 문제이고 그것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는 법률 판단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한 대선주자 정치인인 피고인에 대해 사실판단을 하며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피고인은 지난 대선기간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서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2심 법원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존재하는 말에 대한 해석은 사실판단의 문제이며 항소심 법원은 이 사실판단을 끝낸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것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다른 사실판단을 해버리더니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뒤엎었다. 사건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에 전원합의체 회부, 심리, 판결까지 끝내버리는 전례 없는 신속성까지 더해서 말이다. 대법원은 이렇게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만 다른 피고인들과 다른 법 적용과 속도· 절차로 재판해서 사법부가 선거에 개입한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대법원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법관들의 얼굴에도 먹칠을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대법원장이 픽한 특정 정치인만을 위한 대법원을 따로 만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까봐 겁난다. /김세라 변호사 ……… △포항여자고등학교 고려대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현재)한동대 겸임교수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