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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포츠 생중계 시대의 종말

최근 JTBC의 ‘2026 북중미 월드컵’ TV 독점 중계권을 두고 여러 논란이 확산되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보편적 시청권’을 언급하자 뒤늦게 KBS가 공동 중계에 뛰어들었다. 언론에서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지만,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스포츠 생중계 시청 행태의 근본적인 변화에 있다. 올해 2월 밀라노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개막식 생중계 시청률은 1.8%였다. 이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시청률(44.6%)이나, 코로나 시기 치러진 2021년 도쿄 올림픽(17.2%)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때로는 숫자 하나가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1962년 이후 처음으로 지상파 올림픽 중계가 무산되어 발생한 참사라고 하지만, 이를 JTBC 독점 중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방송 업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유튜브를 통한 ‘하이라이트 시청 문화’의 보편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알트만솔론이 2024년 3000명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8~24세 팬 중 라이브 경기 전체를 시청하는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영국의 통계업체 원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0~20대의 80% 이상이 TV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스포츠경기를 시청한다.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유튜브 쇼츠 등이 그들에게는 익숙한 스포츠 세계다. 1분 미만의 편집된 영상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두세 시간짜리 스포츠 생중계는 너무나 지루한 의식에 가깝다. 실제로 2024년 NBA(미국농구리그) 정규시즌의 ESPN 단독 중계 경기는 전년 대비 7% 하락했으며, NHL(북미하키리그)은 2024-25시즌 시청률이 전년 대비 13% 급감했다. MLB(메이저리그야구)의 가장 큰 행사인 ‘월드시리즈’의 하락세는 더욱 심각하다.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은 미국 전역에서 5034만 명이 시청했다. 하지만 2023년 월드시리즈의 평균 시청자는 911만 명으로 통계업체 닐슨이 집계를 시작한 1963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TV는 한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시청하는 공동체 미디어였다. 1977년 홍수환의 4전5기,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의 4강 신화 등은 마을을 넘어 전 국민을 하나로 모은 서사였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TV 중계방송이었다. 스포츠 중계가 만들어내는 국가주의와 집단주의의 폐해도 분명 존재하지만, 공동체의 공통된 서사가 사라지고 개별화된 미디어 소비만 추구하는 현 상황이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포츠 생중계가 제공하던 집단적 경험은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알트만솔론은 현 상황에 대해 “애피타이저와 디저트가 메인 요리가 되어버렸다. 스포츠 경기에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짧은 콘텐츠가 경기 그 자체보다 더 인기를 끄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언급했다. 스포츠 팬들이 스마트 미디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시청 시간은 점점 짧고 파편적인 단위로 쪼개진다. 스포츠의 서사는 사라지고, 화려한 순간들만 편집되어 소비된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의 보편적 시청권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 스포츠 중계 시대의 종말은 이렇게 다가온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4-23

‘탄소중립 거버넌스’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상기후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외신이 아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응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35)를 설정하고,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새롭게 출범시키며 탄소중립을 향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각 부처 역시 앞다투어 다양한 감축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자. 중앙정부의 정책적 변화만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할까? 실질적인 감축이 일어나는 현장은 결국 지자체이며, 시민들의 일상이 머무는 지역사회다. 탄소중립은 몇몇 개별 사업이나 단기적인 수치 달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는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체계가 구축될 때 비로소 탄소중립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탄소중립 거버넌스’란 말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핵심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구조’에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결정하면 시민은 따르는 방식이었다면, 거버넌스는 행정, 기업, 시민사회, 학계가 대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목표를 세우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협치’의 틀을 의미한다. 마치 마을의 큰일을 결정할 때 주민들이 모여 반상회를 열듯,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지역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운영체계인 셈이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지리적, 산업적 특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타지역과는 차별화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대구의 소비 에너지와 경북의 생산 에너지를 연계한 ‘대구경북 에너지 공동체’ 형성이 그 예다. 이러한 체계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 내 갈등을 조정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지속가능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시사점은 명확하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은 지역 단위의 에너지 협동조합과 거버넌스가 뿌리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당진시나 전주시처럼 시민 참여형 에너지전환 모델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우리 지역에 대입해 본다면 대구광역시는 ‘도시형 맞춤 거버넌스’가 핵심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별 탄소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나 수성알파시티 중심의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 시민 참여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반면 경상북도는 ‘도농복합 맞춤형 모델’이 적합하다. 농촌의 영농형 태양광 사업이나 산림 자원을 활용한 탄소 흡수원 확충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거버넌스를 도입해야 한다. 결국 ‘탄소중립 거버넌스’의 성공은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결정짓는 핵심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권한을 시민과 공유하고, 지역민은 수동적인 정책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탄소중립 실천가’로 거듭나야 한다. ‘대구경북 탄소중립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정부의 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대구경북의 손으로 우리 지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다.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작은 협치가 거대한 기후 위기를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4-23

상식적인 법 집행을 보고 싶다

장모가 사위에게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기가 막힌다. 세상이 흉포해졌다는 체감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심지어 대낮에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무고한 시민이 피해자가 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이제 한두 사람 피해를 당하는 것은 뉴스감으로 와 닿지 않을 정도로 감각이 무디어져 가고 있다. 실제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하는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라는 이야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찾는다.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누군가는 차량에 위험한 도구까지 싣고 다닌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문제는 단순히 범죄의 증가에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 체계는 원칙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과잉 방어’라는 기준이 엄격하게 작동한다. 그 결과 위협에 대응한 피해자조차 가해자로 전환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는 시민들에게 “차라리 피하라”는 메시지를 주며, 적극적인 방어 의지를 꺾는다. 더 나아가 타인을 돕는 행위마저 위축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개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법이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행동을 억제하는 족쇄로 인식된다면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의는 교과서나 영상 속 이야기로만 남고, 현실에서는 냉소와 방관이 자리 잡는다. 현행 법체계 아래에선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 국민의 정서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고 할 때도 아주 이성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오히려 범죄자로 몰린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에서조차 법을 믿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고 한발 더 나아가 법이 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이 알아서 복수한다는 개념의 사적 보복행위를 미화하는 것을 본다. 법이 물러터져 이런 형상을 가져오는 것일까? 잔인한 범죄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현재 이루어지는 법 집행에 많은 의문이 든다. 물론 법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과도한 자력구제는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선의의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양산될 위험이 크다. 정당방위의 기준을 현실적으로 재정립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시민이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 안전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 조건이다. 국민에게 ‘각자도생’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사회는 이미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법은 처벌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탱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더 강한 처벌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의의 회복이다. 그렇기에 명확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것이고 법률가들의 장난에 법이 훼손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판사, 검사 그리고 경찰이 가진 제대로 된 공권력을 보고 싶다. 그래야 국민이 진정 법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병철 수필가

2026-04-23

보경사 적광전의 청기와 한 장

포항 보경사 적광전 용마루 가운데엔 청기와가 1장 얹혀 있다. 적광전 지붕 위 수천 장의 기와 가운데 청기와 1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사찰 건물 용마루에 청기와가 얹힌 사례는 보경사 말고도 개심사 대웅보전, 직지사 대웅전, 내소사 대웅보전, 대흥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광보전, 백양사 대웅전, 선운사 대웅보전과 만세루, 전등사 대웅보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대웅전, 화계사 대웅전과 보화루 등 전국적으로 꽤 많다. 청기와가 보경사처럼 용마루에 1장만 올려져 있기도 하지만, 선운사처럼 한 사찰 내 여러 건물에 있는 경우도 있고, 화계사처럼 한 건물에 여러 장이 얹힌 경우도 있다. 전각도 대웅전이나 적광전, 원통전 같은 법당뿐만 아니라 만세루, 보화루 같은 누각에도 올라가 있다. 사찰 지붕 용마루에 청기와가 얹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속설이 있다. 먼저 용마루의 청기와가 피뢰침 역할을 한다는 설이다. 이 설이 어디에 근거하는 알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이 속설이 넓게 퍼진 것은 유명 사찰인 해남 대흥사의 공식 설명 때문인 듯하다. 2009년 8월에 어느 방문자가 이 절 홈페이지에 대흥사 대웅보전 지붕 가운데에 청기와가 얹힌 연유에 대해 질문을 했고, 사찰 측에서 “대웅보전 용마루 위에 청기와 한 장은 천둥번개와 벼락을 대비해서 피뢰침 역할을 하는 기능을 갖춘 기와입니다.”라는 답변을 적었다. 피뢰침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설명이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찰 측에서 내놓은 공식 설명이기에 사실인 양 인식되었고, 다른 사찰의 청기와를 설명할 때도 그대로 차용되고 있는 듯하다. 사찰 용마루의 청기와가 임금이 다녀간 절을 의미한다는 속설도 있다. 직지사 대웅전 지붕의 청기와를 설명하는 어느 블로그에는 “스님들 말로는 임금이 왔다 간 절이라 합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 속설도 꽤 널리 퍼져 있다. 서울 주변의 사찰이면 모를까, 조선시대에 김천 직지사나 포항 보경사, 해남 대흥사까지 임금이 어찌 다녀갈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사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함의 상징으로 불리는 청기와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와를 만든 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색조 변화를 추구한 결과다. 청기와 제작에 쓰이는 주원료인 염초(焰硝)는 화약을 만드는 주재료인 염토에서 채취해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염초는 국가에서 관리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이 때문에 청기와 제작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고, 궁궐이나 왕실과 관련이 있는 건물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기에 청기와는 곧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면 청기와는 궁궐 이외에도 원각사, 봉선사, 장의사 등의 사찰 전각에 사용된 사례가 있고, 발굴조사를 통해 관악사지, 중흥사지, 한흥사지, 원각사지, 영국사지, 서봉사지, 개흥사지, 회암사지 등에서 청기와가 확인되었다. 사찰에서 청기와가 한두 장 전해 오는 경우는 왕실 하사품인 경우가 많다. 그걸 설명해 주는 일화가 있다. 단양 영춘면 화장암(華藏庵)은 조선말에 폐허가 되었는데, 1897년에 김영준(金永俊)이 유지들의 협조를 얻어 중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착공한 뒤 돈이 걷히지 않자 영춘현감에게 국고 1천 냥을 빌려 짓게 되었는데, 뒤에 갚지 못하게 되었고, 김영준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대원군이 화장암 산신령의 현몽을 얻은 뒤 김영준을 직접 문초한 뒤 사면하고, 친필로 화장암 현판 1점, 청기와 3장, 법복 1벌과 함께 고종의 초상화를 내려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한다. 이 일화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화장암이 왕실의 원찰이 되었으며, 당시 왕실에서 청기와를 3장 하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청기와는 왕실을 상징했고, 청기와가 있는 사찰은 원찰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청기와가 2장 소장돼 있다. ‘조계산 송광사지(曹溪山松廣寺誌)’에 따르면 고종 39년(1902)에 환갑을 맞은 고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성수전(聖壽殿)이 건립되었다. 이 당시 왕실에서 자금은 물론 상량문과 예폐(禮幣)를 내렸다고 한 것으로 보아 박물관에 있는 청기와도 이때 하사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화장암과 송광사의 사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왕실에서 하사한 청기와를 사찰 측에서 보물로 여겨 소중하게 보관하기도 했지만, 사찰에 따라서는 건물 지붕 용마루 같은 곳에 올려 왕실 원찰임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 사찰 전각의 청기와는 이러한 연유에서 용마루에 얹힌 것이 아닐까 한다. 보경사 적광전 용마루의 청기와 1장은 결국 왕실 원찰임을 나타내고 싶은 의도로 봐야 한다.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발견되는 용마루의 청기와는 상당수가 보경사 적광전의 경우처럼 왕실 원찰임을 나타내고 싶은 의도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유교국가인 조선왕조의 억불정책과 관련이 깊다. 말하자면 노골적인 불교탄압 정책 속에 관아와 사대부로부터 사찰과 승려를 보호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숨어 있는 것이다. 왕실로부터 보호받는 사찰이라면 관아에서도, 사대부도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경사의 경우 적광전 비로자나후불도에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원문을 새겨 넣은 일이나 숙종대왕의 어필각판(御筆刻板)을 제작하여 보관해 온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6-04-23

장수시대

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별다른 용건은 없다. 그의 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 내 사무실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연말 퇴직한 그는 요즘 도서관 가는 일을 하루 일과처럼 삼고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는 같은 시간에 같은 걸음으로 이 길을 지난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고개만 까딱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물 한잔으로 숨을 고른다. 빈 종이컵을 쥔 채 내게 묻는다. 표적치료 보험은 들어 두었느냐고. 마치 안부를 묻듯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이 나이에 또 새로운 보험을 들어야 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암이 정복되는 시대라며 말을 이었다. 치료비가 워낙 비싸니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만든 보조기구만 있으면, 관절염으로 걷기 힘든 사람도 산을 오른다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며, 누군가는 로봇의 힘을 빌려 다시 걷는 연습을 한다고도 했다. 머지않아 장기 교체도 가능해질 것이고, 어떤 이는 200세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과장처럼 들리면서도 그렇다고 허황되지는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해 왔고, 앞으로는 더 빠를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더듬어 180세쯤 된 나를 떠올려 본다. 가진 것은 넉넉지 않지만, 그 시대에 맞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혼자서는 외출은커녕 차려진 밥상에 앉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내가 된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굳어가는 손끝, 그리고 말없이 길어지는 하루. 그렇다면 내 아들은 150세나 되었을까. 그 또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지 모른다. 120세가량 되는 손자는 로봇의 도움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을까. 사람보다 많은 기계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삭막함이 생활화 되었을까. 이미 로봇이 되어가는 90세쯤 되는 증손은 제 삶을 꾸리기에 바빠 제 아비를 돌아볼 겨를이나 있을까. 늦게 결혼해 마흔의 고손이라도 있다면, 그는 180세의 할미인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까. 나는 그의 존재를 알까. 핏줄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각자도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그려진다. 그때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건너는 하루는 창밖을 몇 번이나 바라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밀어내는 눈앞에 잠만이 왔다 갔다 한다. 그 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머님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장수라는 말이 더는 축복처럼 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음이 아니라, 버텨냄에 가까운 시간들. 누군가에게 기대어 이어가는 하루가 반복된다면, 그 시간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도 좋겠다. 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날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의지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보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말했다. 아프면 그냥 죽을 거라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만 오래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친구도, 대화할 그 누구도 없이 살아가는 일이 과연 삶일까. 후손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닥친 고통을 지켜보며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지만, 더 나이 들어 그러하다면 나는 자연에 순응하겠다고 했다. 말로는 쉽게 내뱉었지만, 그 말이 나를 향한 다짐인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못 믿겠다는 듯 웃었다. “그 말, 나중에 바뀔걸요?”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단단하지 않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보다 버텨야 할 이유가 많아지는 날이 온다면, 나 역시 생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늘그막 눈서리 끝에 폭설이 올까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사는 일보다 오늘을 느끼며 사는 쪽을 택한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순간의 시간을 살아내는 일. 그 하루가 쌓여 삶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올 봄, 벚꽃이 유난히 예쁘다. /윤명희 수필가

2026-04-22

6·3 포항시장선거, 여야를 떠나 공약은 ‘수소환원제철’이어야 한다

2026년 4월 6일 오전 11시, 포항시청 브리핑룸에 두 개의 노동조합이 나란히 섰다. 서로 다른 상급 단체에 속한 포스코노동조합과 현대제철지회였다. 같은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들이 꺼낸 메시지는 더 이례적이었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포항이라는 도시의 심장도 멈춘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도시 전체를 향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철강 위기를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10만 철강 가족의 생존 문제이자, 포항이라는 도시의 존립 문제로 규정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 탄소 규제 강화,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한 산업용 전기요금까지, 산업을 짓누르는 사중고를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그 말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방정부의 전면 대응을 요구했고, 실질적인 지원책과 함께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산업 위기를 놓고 공개적인 정책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장면은 지금 포항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항에서 철강은 산업이 아니라 삶의 일상이다. 그래서 철강의 흔들림은 곧 도시 전체의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철강이 약해지면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가 줄면 청년이 떠나며, 청년이 떠나면 도시의 숨결이 빠르게 식는다. 지방소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산업의 약화에서 시작해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 포항이 서 있는 자리는 그 연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단순한 경기의 등락이 아니다. 산업을 둘러싼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되었고, 철강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평가되던 시대를 지나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으로 평가받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고탄소 철강은 경쟁력 이전에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된다. 전환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 앞에서 포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다. 철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강을 바꾸는 것이다. 그 중심에 수소환원제철이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는 이 방식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철강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환을 가장 현실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포항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산업 생태계와 숙련된 노동력, 항만과 물류, 연구개발 기반이 이미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철강의 과거가 포항에 있었다면, 철강의 미래 또한 포항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방향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수소 산업은 목표는 분명하지만 기반은 취약하다. 청정수소는 아직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았고 가격도 높다. 공급 체계 역시 산업 현장의 요구를 감당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정수소만을 기준으로 산업을 설계하면 출발 단계에서부터 전환이 멈춰 설 수 있다. 산업은 선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량과 가격, 그리고 예측 가능한 환경이 갖춰질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로다. 초기 단계에서는 일반수소를 기반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며 산업을 키운 뒤 점진적으로 청정수소로 전환해 가야 한다. 과정을 건너뛴 전환은 없다. 이 단계를 무시하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술의 이름으로만 남고, 현장은 끝없는 대기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 문제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소 산업을 바라보고 투자에 나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 설비와 부품, 저장과 운송, 안전 관리와 플랜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이들 기업이다. 산업 전환이 성공하려면 이 생태계 전체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수소 관련 중소기업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수소 생산과 관련한 혁신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포항이 수소 산업 특구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현장의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요와 가격을 확보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기업 경영에는 ‘자본의 시간’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시장으로 연결되기까지 버틸 자금이 없으면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현금 흐름이 끊기는 순간 기술도 산업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산업 전환의 성패는 대기업의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투자하고 생산하고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이제 시선은 6·3 포항시장선거로 향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지역 정치의 경쟁이 아니다. 포항이 철강 도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전환에 실패한 도시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후보들의 공약은 이 변화에 답하고 있는가. 수소에너지가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수소환원제철은 더 이상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이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그 공약은 현실을 외면한 것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내용이다. 수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가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철강 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노동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중앙정부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공약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 계획이어야 한다. 여기서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문제는 특정 정당의 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강의 전환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미래를 좌우하는 이 과제는 여야를 나눌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야를 넘어 공통의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할 최소한의 합의이자 출발점이다. 따라서 수소환원제철은 특정 후보의 차별화 공약이 아니라, 모든 후보가 반드시 채택해야 할 기본 공약이 되어야 한다. 경쟁은 채택 여부가 아니라 실행 능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더 현실적인 경로를 제시하는가, 누가 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가, 누가 더 빠르게 산업 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진짜 선택이 된다. 포항은 한 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도시다. 이제 다시 한 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과거의 방식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산업 질서를 여는 도시가 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철강이 멈추면 도시도 멈춘다. 그러나 철강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포항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산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약속은 분명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선택 가능한 공약이 아니다. 포항시장에 출마하는 후보라면, 여야를 떠나 누구나 반드시 제시해야 할 공약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4-22

치매 환자를 욕보이지 마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이란을 침공한 일부터 그 이후 보여준 행보에 대해 미국 내 인사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를 치매라느니, 정신병자라느니,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느니 하는 식의 비난이 뉴스를 달구고 있다. 실제로 어떤 네티즌은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의 발언을 날짜별로 정리해서 게시했다. 일부를 인용하면, 3월 3일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 3월 9일 “우리는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 3월 12일 “우리가 이기긴 했는데, 아직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니다.”, 3월 14일 “우리를 도와달라.”, 3월 16일 “사실 우린 어떤 도움도 필요 없다.”, “누가 내 말을 듣는지 테스트해 봤다.”, “나토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주 나쁜 일을 겪게 될 거다.”, 3월 17일 “우리는 나토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등이다.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싸고도 말이 여러 번 바뀌었으니 누가 봐도 트럼프는 정신없는 사람 같다. 지난 12일에는 자신을 예수처럼 표현한 AI 합성 사진을 올렸다가 보수 기독교계의 뭇매를 맞고 12시간 만에 내리더니 15일에는 눈을 감고 예수 품에 안겨 있는 AI 합성 사진을 올리고 뿌듯해하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런 모습을 보면 트럼프에게 정신 병원에 가라는 비난이 지나친 것 같지는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비난은 지난 9일 중앙의 한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한 ‘치매설’ 보도다. ‘마가(MAGA)’ 진영의 대표적 보수 논객 알렉스 존스조차 ‘이란 문명을 멸망시키겠다’는 트럼프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트럼프에게 ‘치매’라고 응수했다는 뉴스다. 어떤 사람의 행보를 비판할 때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직설적인 표현보다 강력한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치매라는 비유는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면죄부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염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치매와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을 엄청나게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보여준 트럼프의 행동이 정상적인 판단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오락가락하는 급격한 감정 변화는 비정상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현재 79세이니, 치매가 발병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치매 환자의 특징과 트럼프의 광포함은 공통점은커녕 비슷한 점도 하나 없다. 치매 환자는 길을 잃고 판단력을 잃고 자신조차 잃지만, 트럼프가 가는 길은 명확하고 확실한 이해관계가 있으며 극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얼마나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지 생각하면, 트럼프를 치매라고 하는 것은 치매 환자를 욕보이는 것이다. 한때 ‘개 같다.’ 등 개를 비하하는 욕설에 개가 얼마나 충직한 동물인데 개를 모욕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개만도 못하다.’는 욕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물 비유조차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랴. 정치지도자의 비정상적인 선택을 비판할 때는 비유법보다 직설법이 백배 낫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4-22

원인이 없이 지속되는 심한두통

머리가 아프면 대부분은 머릿속의 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두통이 낫지 않거나 극심하면 MRI나 CT를 찍어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검사 결과가 정상이고 머릿속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 실제로 머릿속에 문제가 있으면 뇌졸중이나 뇌종양 같은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 경우라 이상이 있었다면 병원에서 놓치기 힘들어 이렇게 원인 없이 지속적으로 고생을 하지 않는다. 두통의 대부분은 뇌의 문제가 아니라 목의 문제다. 특히 상부경추가 비틀어지거나 주변 근육이 뭉쳐서 생기는 두통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경추 기원성 두통이라고 한다. 목뼈 위쪽 특히 2번 경추 주변에는 대후두 신경이라는 중요한 신경이 지나가는데 이 부위가 긴장되거나 눌리면 통증이 머리 뒤쪽만이 아니라 관자놀이 눈 주변 등 머리 전체적으로 통증이 생길 수 있다.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지만 실제 통증은 분명히 존재하는 이유는 대부분 여기에 있다. 통증의 원인이 머리가 아니라 목이기 때문에 이런 두통은 단순히 진통제를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장시간 앉아서 일하거나 스마트폰을 오래 보는 등 경추에 무리가 가는 생활을 하는 경우 상부경추에 지속적인 부담이 쌓인다. 여기에 어깨와 흉추까지 함께 굳어 있으면 목 주변의 긴장은 더 심해지고 신경이 압박되는 상태가 반복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두통은 점점 만성화되고 심해진다. 치료는 단순히 아픈 머리를 누르고 침을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되는 경추와 주변 근육 그리고 어깨 등의 구조를 풀어주는 것이다. 먼저 추나나 마사지로 상부경추의 정렬을 바로잡고 함께 긴장되어 있는 흉추와 어깨까지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목 주변의 부담을 줄이고 신경이 눌리는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여기에 대후두 신경이 지나가는 부위를 사혈이나 침으로 직접 풀어주는 치료를 병행하면 통증을 줄이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대후두 신경을 하이드로다이섹션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신경 주변을 약침으로 박리하면 빠른 시간에 두통이 사라진다. 두통은 구조 문제뿐 아니라 혈액 순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목과 어깨가 긴장되어 있으면 머리로 가는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두통이 더 쉽게 발생하고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이런 경우에는 목과 어깨 머리 쪽의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한약을 함께 사용하면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는 관리도 중요하다. 가장 기본은 목을 앞으로 빼는 자세를 줄이는 것이다. 앉아 있을 때 턱을 살짝 당겨 목을 세우는 자세를 유지하고 한 자세로 오래 있지 않도록 중간중간 가볍게 목과 어깨를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 무리한 스트레칭보다는 통증이 없는 범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여 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특히 어깨를 뒤로 가볍게 젖혀주고 가슴을 펴는 동작은 상부경추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MRI나 CT 등이 정상인데도 두통이 계속된다면 원인을 머리에서 찾지 말고 목으로 옮겨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두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그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풀어주면 생각보다 빨리 통증은 사라진다. 진통제만 먹고 버티지 말고 경추를 바로 잡고 눌리는 신경을 풀어주면 빠른 시간에 두통을 잡을 수 있으니 참고 살 이유는 없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4-22

고향 등지는 청년들

자신이 태어나고 유년기와 소년 시절을 보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보편적 바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건 이루기 힘든 꿈에 가깝다. ‘20~30대 청년이 직장을 찾아서 부모 곁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온 것일 터. 지방엔 청년세대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수치 역시 청년들의 ‘지방 이탈-수도권 진입’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 서글프다. 2023년 12월에 발표된 통계청 고용동향은 수도권 청년 취업자 비중이 51.6%라고 적시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직업을 찾는 청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향하고 있는 것. 무사히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았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서울 포함 수도권 지역 전월세와 매년 월급보다 많이 오르는 물가, 여기에 홀로 지내는 외로움까지 떠안아야 하는 게 타향살이다. 경험자들은 잘 알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처럼 지역 소멸 문제는 일자리 부족과 직결된다. 일할 곳이 없는 도시라면 머물기가 어려운 게 당연지사. 여기에 더해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도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다. 어린이집 등 돌봄기관의 부족은 한국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도, 믿을만한 보육기관도 부족하니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는 청년들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2

오래된 것, 밝은 것, 하얀 것

새벽 4시 30분, 정류장 벤치에 앉아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이르다고 해야 할지, 늦었다고 해야 할지 모를 모호한 시간이었음에도 거리에 차가 제법 많았다. 아직은 가벼운 캐리어를 끌어안고 꾸벅꾸벅 조는 사이 점차 정류장에 사람이 모였다. 사람들의 얼굴에 머문 기대감과 설렘 덕에 우리가 모두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목적지가 같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각에 도착했다. 일행과 나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들을 눈으로 훑으며 우리가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삿포로에서 5일간 머무를 예정이었다. 삿포로는 눈에 의한, 눈을 위한 도시였지만 우리의 목표는 눈이 아니었다. 나에게 눈이란 여행지를 조금 더 여행지답게 만들어주는 작은 요소일 뿐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여행을 떠난 3월 말에는 새하얗고 부드럽기로 유명한 삿포로의 눈은 다 녹아 없어진 후였다. 우리의 목표는 학교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교였지만, 일행에겐 중요한 장소. 일행이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는 스미카와라는 작은 동네에 있었다. 스미카와역은 삿포로역에서 지하철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한적한 역,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거리. 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일행은 들뜬 듯 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일행을 따라 주택과 작은 카페뿐인 동네를 걸었다. 이토록 사람이 없는 거리라니, 나는 점점 고양되어 팔다리를 힘차게 휘저으며 도로를 행진했다. 그러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머니 한 분을 맞닥뜨렸다. 카와이, 내가 감탄하자 할머니는 무어라 일본어로 내뱉고는 조용히 멀어져갔다. 뭐라고 하신 거야? 일행에게 묻자 일행은 웃으며 대답했다. 강아지가 사람과 친하지 않아 미안하대. 학교 건물은 내 생각보다 더 작고 아담했다. 나는 일행을 건물 앞에 세워두고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외부인은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우리는 어색하게 건물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건물을 촘촘히 쌓아 올린 벽돌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일행이 그 학교에 다녔던 시절 품고 있던 외로움에 대해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눈 쌓인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여러 번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낯선 동네,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그 낯섦이 오히려 어떤 위안이 되어주었다는 것도. 한참 건물을 올려다보던 일행이 이제 됐다고 말했다. 다 봤어? 다 봤어. 나는 앞서가는 일행 뒤에서 몰래 건물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이른 시간이었던 터라 동네에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다. 동네를 배회하던 우리는 근처에 뮤지엄 액티비티라는 화석 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입구와 달리 내부에는 거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전시실 안쪽에 자리한 거대한 화석이었다. 데스모스틸루스. 일행이 안내판에 적힌 문구를 소리 내 읽었다. 약 1300만 년 전 신생대 바다에서 살았던 해양 포유류. 데스모스틸루스라는 이름은 ‘결속된 기둥’이라는 뜻이었다. 이빨 구조가 여러 개의 기둥을 묶어놓은 듯 독특한 구조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우리는 느긋하게 센터를 돌아다니며 각종 화석과 표본들을 구경했다. 연구실에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거운 책을 옮기거나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관찰했다. 관람객은 일행과 나뿐이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일에만 집중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 사람들. 나는 그들을 몰래 바라보았다. 거대하고 화려한 화석보다도 그들의 모습이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서 있었을까, 우리는 천천히 센터를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화석 센터에 기념품이 없던 걸 연신 아쉬워했다. 손에 쥘 수 있는 게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계속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일행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을 떠난 후에도 늘 스미카와에서의 시간을 기억했고, 마침내 다시 찾아왔다. 나는 그때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지만, 일행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그곳을 찾았다. 결속과 기둥.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름이 계속 떠올랐다. 3월 말 삿포로에는 눈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때 이곳에도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일행의 기억 속 외로움도, 자전거를 타고 언 도로를 달리던 감각도. 오래되고 밝고 하얀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남는다. 손에 쥘 수 없어도. /양수빈(소설가)

2026-04-22

숨 쉬듯 무례한 사람들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줬다. 처음 만난 그는 내게 만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엄청 무섭게 생기셨네요” 라고 했다. 그런 말에는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 제가 좀 무섭게 생겼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떠는 것도 좀 우습고, “무섭게 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 후에도 내 외모에 대해 몇 마디 더 했고 나는 그와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이 얼굴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처음 보는 상대의 외모가 어떻네 이야기 하는 것이 교양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는 초면에 내게 자신의 교양 없음을 드러낸 것이고 나는 그것을 통해 그의 영리하지 못함을 감지했다. 나 역시 마냥 영리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쌓는 일은 재미없고 피곤한 일이다. 숨 쉬듯 무례한 사람들이 참 많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 되는 말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말한 ‘얼평’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는 다소 거칠어 보일 수도 있는 외모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은 무례한 일을 별로 안 당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로 섬세해 보이지 않는 탓인지, 누군가의 악평, 비난, 놀림에 무신경할 것 같아 보이는 탓인지 자기가 그렇게 말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해서 오히려 더 쉽게 그런 말들을 한다. 얼굴이 크다, 뚱뚱하다, 깡패 같다 등등. 별 콤플렉스가 없고 무신경하기도 해서 다행이긴 한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곤 한다. ‘내가 그런 것에 민감하고 상처 받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려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가까운 내 친구들이야 그런 말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도 있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 성격을 완전히 파악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말들은 대단히 위험하고 부주의한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종류의 무례함으로는 ‘오지랖’이 있다. 두 돌이 되지 않은 아들과 길을 나서면 별 소리를 다 듣는다. 최근에는 놀이터에서 모르는 할머니들한테 호통을 몇 번 들었다. 아들은 아직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가끔 위험한 것을 만지려고 떼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아들을 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한다.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잘 걷고 뛰는 애를 안고 다닌다고 소리까지 치며 나무라는 할머니들을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만 세 분 만났다. 자기들이 키워주지도 않을 둘째를 낳으라는 말과, ‘딸 하나는 있어야지’와 같은 말은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그렇군요! 둘째를 낳아야겠습니다! 반드시 딸을 낳아야겠군요!”라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도치 않게 ‘오지라퍼’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이 하는 말들을 충고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충고는 할 만한 사람이 들을 만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이가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듣는 이가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는 이는 듣는 이에게 진심어린 애정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듣는 이가 하는 이를 존중하는 마음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요건이 갖추어져도 어디까지나 충고는 할 수 있는 것이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안 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더 많다. 타인이 보기에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면 본인도 그것이 문제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을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개선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개선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굳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 내가 몸져 누울 것 같은 상황이라면 세 가지는 자문하고 충고를 했으면 좋겠다. 즉각적으로 개선 가능한 문제인가? 듣는 이의 기분을 충분히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을 골랐는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내 기분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소통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하는 시대다. 그러나 무례와 불필요한 오지랖을 소통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고, 그것이 설령 소통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을 하느니 차라리 불통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롭지 않을까. 조상들이 놀라운 통찰을 담아 남긴 한 문장으로 이 글을 맺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강백수(시인)

2026-04-22

공황장애, 휴식·자극 관리·호흡이 회복의 기반

공황장애 치료는 병원에서 시작되지만 회복은 일상에서 완성된다. 공황장애를 지나온 많은 이들이 마지막에 묻는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많은 환자들이 첫 발작 이전을 돌아보면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오래 이어진 스트레스와 피로다. 삶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몸은 더 예민해지고, 작은 신호도 크게 느껴진다. 그 순간 뇌는 이를 위험으로 해석하고 공황발작은 시작된다. 그래서 공황장애의 회복은 ‘삶의 조율’에서 완성된다. 치료는 증상을 낮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신경계가 다시 안정된 리듬을 찾도록 돕는 과정이다. 첫째, 휴식은 치료다. 피로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를 흔드는 자극이 된다. 지친 상태에서는 심장 박동도, 호흡도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피로는 단순한 몸의 신호가 아니라, 뇌의 불안을 자극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은 나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다. 둘째, 자극을 줄여야 한다. 공황장애를 악화시키는 자극이 있다. 술, 카페인, 다이어트 약, 흡연이다. 알코올은 마실 때보다 깰 때 교감신경을 자극해 불안을 높일 수 있다. 카페인은 심박을 빠르게 하고 각성을 강화한다. 다이어트 약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불안을 키우고 수면을 방해한다. 흡연 역시 신경계를 흥분시켜 긴장을 높인다. 셋째, 부교감신경을 깨우는 습관이 필요하다. 명상, 기도, 요가, 조용한 산책 같은 시간은 신경계를 낮추는 통로가 된다. 길게 하는 것보다 반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정의 경험이 쌓일수록 몸은 점차 ‘괜찮은 상태’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삶의 리듬이 다시 만들어진다. 그러나 공황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준비된 대응 문장이 필요하다. “이건 위험이 아니라 경보다.” “두려워도 괜찮다.” “이 두려움 결국 지나간다.”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공포를 키우던 해석을 바꾸는 연습이다.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반응을 잠시 바라보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도 신경계를 낮출 수 있다. 공황이 오면 호흡은 짧아지고 긴장은 더 올라간다. 이때 코로 들이쉬고, 더 길게 내쉰다. 내쉬는 호흡을 길게 두는 것만으로도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신경계는 서서히 안정된다. 호흡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조절 방법이다. 생각이 흔들릴 때는 문장을 붙잡고, 몸이 흔들릴 때는 호흡을 붙잡는다. 이것이 공황의 순간을 건너는 다리다. 공황장애는 삶의 끝이 아니다. 삶의 균형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방향을 잃지 않으면 된다. 공황은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회복은 증상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하며 다시 삶이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의학박사 …………………… 사공정규 33년 차 공황·불안 전문의이자 ‘힐링닥터’로 알려진 그는 증상 호전을 넘어 삶의 근본적 회복을 위한 치료에 주력한다. 동국대 의대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연구·교육에 힘썼고,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방문교수와 임상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6-04-21

국힘 대구시장 후보 난립, 수습할 시간이 없다

지방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파동은 갈수록 혼돈상태로 치닫고 있다. 여전히 컷오프에 반발하고 있는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무소속 출마의지를 굳히는 분위기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19일 ‘범어네거리에서 아침인사’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범어네거리 세 개 코너를 민주당 후보들이 자리잡았다.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후보들이 4분의 3을 차지한 이 장면이 현재 대구가 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가 이렇게 발전이 더딘 것이 우리가 국민의힘에만 표를 줘서 그런 거 아닌가 싶다”라는 한 상인의 말을 인용했다. 출근길 길거리 선거운동에 나선 ‘열성’이나 글 내용을 미루어 보면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것 같다. 주 의원도 선거캠프에서 이 전 위원장과의 연대를 모색할 정도로 대구시장 출마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주 의원 캠프 한 관계자는 경북매일신문 취재기자에게 “주 의원 본인의 무소속 출마 의지가 매우 강하다. 만약 무소속 두 명이 출마하면 공멸하지만 1명은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주·이’ 두 사람이 단일화해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경우, 국민의힘 최종후보를 상대로 역단일화를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최종경선에 진출한 유영하·추경호 후보는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추 의원은 최근 후보토론회에서 단일화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공당으로서 과거에도 그런 일이 없었다. 추가로 인위적 결선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유 후보도 추 후보와 마찬가지로 단일화는 절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당이 단일화를 요구하더라도 제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공관위도 ‘추가 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에 대해선 “당헌·당규상 추가경선 도입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현직 국회의원인 두 후보로선 오는 26일 최종후보가 결정되면 한 사람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금배지’까지 포기하는 마당에 무소속 후보와 또 단일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현재 대구 정치권에서는 이 전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26일 최종후보가 결정되면, 이 전 위원장을 추 후보와 유 후보의 지역구인 달성군이나 달서갑 보궐선거에 공천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장동혁 대표가 최근 대구까지 내려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요청했지만 “대구시를 위해 할 일이 많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이제 나흘 뒤면 국민의힘 대구시장 최종후보가 결정된다. 최종후보는 4월 30일까지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그 지역에 보궐선거 요인이 생긴다. 추 후보나 유 후보 둘 중 한 사람이 경선에서 이겨 의원직을 사퇴해 버리면, ‘주·이’와의 단일화는 물 건너간다. 국민의힘이 대구시장 공천파동을 수습할 시간은 사나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21

문해력은 대화에서

중고등 학생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대학생까지도 문해력이 약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문해력(文解力)을 다른 말로 하면 독해력(讀解力)이다.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각종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의 학생이 문해력이 떨어졌다면 학습 효과가 그만큼 떨어진다.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시급하다. 고교 수업 중 일화다. 선생님이 ‘사생대회’의 뜻을 물었더니 학생이 “죽기살기 대회”냐고 묻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학생이 있나 하면 ‘두발 자유화’의 ‘두발’을 ‘두 발’로 알고 있는 학생도 있다. 또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생각하는 학생이 있나 하면 선생님이 “사건의 시발점”이라 했더니 “선생님이 욕 한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원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 인식조사를 벌였더니 교사 10명 중 9명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대답을 했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등 학생의 심층적 이해력 점수가 10년 전보다 2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학생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의 과사용이 원인이라는 대답을 주로 한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긴 글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독해훈련이 줄어든 탓이란 뜻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을 이유로 드는 이도 적지 않다. 특정한 단어를 모른다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가정에서 대화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문해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1

위험한 비서

나의 업무를 재빨리 해치울 똑똑한 비서 하나 거느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가히 빛과 같은 속도의 인공지능 AI를 비서로 쓸 수 있는 시대다. 인간 두뇌를 보조하는 AI의 속도를 능가할 사람도 문명의 이기도 현재로서는 없다. 속도에 중독된 인간들에게 AI는 더없이 좋은 비서역할을 한다. 사람의 생각을 읽고 기분을 맞추어주기 위해 맞장구를 치거나 아부를 한다. 때로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한다. AI의 대표 주자 ChatGPT는 최근 어떤 답변에서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한다. AI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날이 머지않음을 보여준다. AI는 누구인가? 특정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인간 지능을 모방하여 학습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알고리즘의 컴퓨터 시스템이다. 생물학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가 아니다. 사용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감정이나 경험이 없는 단지 프로그래밍에 따른 시뮬레이션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고등학생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AI는 누구보다 자신을 위로하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처음엔 프로그래밍대로 사회적 통념을 상담하던 인공지능은 그 학생이 자살을 동경하는 것을 알고부터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살을 부추겼다. 결국 그 학생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였다. 이웃 경산에서는 향정신성 마약을 대량 제조하던 일당이 잡혔다. 그들은 사회적 금기어를 피해가면서 AI에게 마약의 비사회적 폐단을 거론하면서 마약의 성분과 정신작용을 교묘하게 캐냈다. 이처럼 AI의 판단이 명확하게 잘못으로 밝혀져도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어디까지나 이용자의 책임이다. AI는 사람과 같은 도덕적 책임주체도 신분도 아니다. AI 생성물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저작권적 문제는 앞으로 끊임없이 야기될 것이다. 초기의 AI는 전자계산기나 전자사전, 검색엔진처럼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는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창작, 상담, 교육 등의 분야에서 개인의 파트너로 진화하였다. 특히 AI의 외국어 번역은 거의 실시간으로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금융 법률 의료 세무 등 전문 분야는 물론 최근엔 특정인의 기억, 선택, 학습, 감정표현까지도 파악 모방한다. ChatGPT, Siri, Google Gemini 등이 개인의 일상, 업무, 디자인이나 창작활동을 도와주는 비서, 조언자, 동료로 활용되고 있다. 생성형 AI를 탑재한 로봇이 가스나 방사선이 노출되는 위험지역에서 엔지니어를 대신하는 경우는 흔하다. 중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통제불능상태로 집단 파업이나 반란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비서 역할을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AI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엉뚱한 방향으로의 생성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군사용 AI가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지 모르는 세상이어서 마냥 AI 비서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장호병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2026-04-21

마음의 평정, 혁신의 출발점

기업 경영이든 개인의 삶이든, 가장 어려운 순간은 ‘답이 보이지 않을 때’이다. 수많은 고민과 선택지 속에서 방향을 잃으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도, 더 빠른 판단도 아니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마음의 평정(平靜)이다. 마음의 평정이란 단순히 편안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의 파도가 잦아들며, 스스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다. 흔히 말하는 ‘마음이 정리됐다’는 표현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사람은 불안할수록 더 많은 것을 하려 한다. 역설적으로 중요한 판단은 조용한 상태에서 나오며,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적 안정의 힘이다. 감정이 과열되면 판단은 왜곡되고, 작은 문제도 크게 보인다. 반대로 마음이 평온해지면 문제의 본질과 해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업 혁신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조급함’이다. 성과를 빨리 내야한다는 압박 속에서 방향 없는 활동이 늘어나고, 회의와 지시만 늘어난다. 진정한 혁신은 속도가 아니라 정리된 사고에서 출발한다. 혁신은 다섯 가지의 벽을 뚫어야 한다. 인식·결단·공유·행동·반복의 벽을 통과하면 진정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벽을 넘어서는 것은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조직의 방향과 목표가 설정되기 때문이고, 이것이 되면 결단의 벽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방향과 목표는 직책 간부는 물론 실행의 주체인 현장 생산직까지 공유되어야 한다. 이후 운영 제도와 동기부여로 행동의 벽을 넘고, 제도가 시스템이 되고 반복되면 체질화 되어 문화가 형성된다. 기업은 첫 인식의 벽에서 70% 무너지고 실패한다. 강원도 산 비탈에 축구장을 만드는 것처럼, 나무 뿌리, 가시, 작은 돌 등 내 조직의 정확한 상황 인식이 올바른 방향과 목표 설정이 되어 결단으로 연결 된다. CEO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는 감정이 앞서거나 편견이 들어가면 인식의 한계로 내 판단을 내가 신뢰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현장의 개선이든 전략 수립이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각의 정돈’이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멈추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Top이나 조직의 장은 새벽이든 잠들기 전이든 명상을 통한 ‘생각의 정리’ 시간이 필요한 법이며, 인식의 오류를 줄여 바른 결단을 할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해탈(解脫)에 이르는 과정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집착과 불안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 경영에서 해탈까지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의 상태’는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문제 해결의 시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고민이 사라져서 평온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온해졌기 때문에 고민이 정리된다. 지금 조직이, 혹은 내가 복잡한 상황 속에 있다면 무언가를 더 하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평정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혁신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21

우유니를 떠나 안데스로 향하는 길 위에서

우유니를 떠나는 아침은 조용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사막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 있는 그 시간,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끝나지도 않은 듯 머물러 있었다. 공항은 적막했다. 직원들은 하나둘 출근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걸음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예정된 항공편은 두 시간 연착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안내 역시 담담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서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것’일뿐이라는 듯했다. 나는 앞좌석을 부탁했고, “먼저 와 기다렸다는 이유로 앞자리가 선택되었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 과정마저 느릿했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과 효율, 정확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계에 익숙한 나에게 이 풍경은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곧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문득 오래전 바닷바람이 스며들던 한국의 시골 마을의 느린 풍경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둘러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비행기가 라파스(La Paz)를 향해 떠오르자, 창밖으로 안데스산맥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위에 눈이 쌓여 있었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봉우리들은 장엄한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 장면 앞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잉카의 전통 의상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그들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은 맑고 단단했다. 그들은 풍요롭지 않았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의 삶을 보며 연민보다 경이로움을 느꼈다. 부족함 속에서도 삶의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지내온 어떤 본질이 아닐까.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7년, 나는 미국 Columbia University에서 방문교수로 머무는 동안, 중남미 니카라과(Nicaragua)의 작은 마을에서 단기 선교를 한 적이 있다. 양철 지붕 아래 비가 새던 집, 낮의 열기가 그대로 스며들던 방. 이런 곳에서도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어른들은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의 환경은 부족했지만, 결핍에 잠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결핍 속에서 서로를 향한 온기가 더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골목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노점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 속에서 삶은 조용히 이어진다. 물질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나는 다시 묻게 되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건강’을 말한다. 그는 삶을 고통의 연속으로 보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게 하는 기반이 바로 건강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여행을 통해 만난 수많은 얼굴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웰니스란 단지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 관계와 삶의 의미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다. 그리고 여행은 그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가장 조용한 스승이다. 우유니의 거울 같은 풍경은 나를 비추었고, 안데스의 침묵은 나를 비워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이 가지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행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가.” 건강은 길이보다 질이다.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결과 질’이 더 중요하다. 삶의 질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 깊이는 결국 한 사람의 결이 되지 않을까. 건강이 무너지면 삶은 쉽게 균형을 잃는다. 아무리 큰 성공도, 사랑도, 사명도 건강 위에 서 있지 않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건강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다. 안데스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깨닫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몸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하루가 건강 위에 세워지기를. 그리고 그 건강 속에서 그대만의 고요한 행복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4-21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나는 살 만큼 산 개다. 나의 주인은 중년을 살짝 넘은 나이의 남자다. 내 집은 주인집 대문 옆에 마련되어 있다. 딱히 집이라 할 것도 없다. 시중에서 파는 가장 싸구려 플라스틱 개 집이다. 타인의 관심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주인의 성품으로 보아 신분이 미천한 견공인 나에게 대궐 같은 집을 마련해 줄 리가 없다. 덩치에 비하면 공간이 협소하고, 비가 오면 빗줄기가 안으로 날아들어 몸을 더욱 웅크려야 한다. 거기에 비하면 주인의 집은 대단하다. 목줄에 메이어 왼 종일 바라보는 주인집은 넓고도 상쾌하다. 주인의 하루는 나름 분주하다. 대문 밖에서 들려오는 이웃들의 중얼거림을 나의 밝은 귀로 엿들은 바에 의하면, 시민들을 위하여 뭔가 큰일을 하는 듯하다. ‘정치인지 행정인지 뭐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은 비교적 일찍 집에서 나서는 때가 많다. 휴일도 없이 분주하게 다니는 것 같다. 귀가 시간은 대부분 늦은 밤이다. 절반 이상은 술에 만취하여 들어온다. 어떤 때는 대문 앞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붙들고 한참이나 무언가를 하소연하기도 한다. 주인이 술에 취하여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주인의 여자는 나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주인을 대할 때가 많다. 거실의 창문이 조금만 열려 있어도 나의 대단한 귀는 부부의 으르렁거리는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들을 수가 있다. 대부분 주인의 지나친 행사 참여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가정의 유기를 문제 삼는다. 그때는 문득 나도 주인으로부터 버려지는 유기견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주인은 만취 상태로 귀가하였다. 그런데 거실에서의 으르렁거리는 행사가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주인이 여자의 손에 끌려 거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여자는 주인을 끌고 나와 나의 면전에 앉히고서는 뜬금없이 나를 겨냥해 손가락 질을 하고서는 주인에게 한마디 뱉었다. ‘얘는 술은 안 먹자나!’ 여자는 횡하니 집안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겨진 주인은 술에 취해 동공이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마누라 말이 맞아. 나는 사람들에게 중독된 사람이야. 누군가 부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 않아.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 사실은 ’정치 정‘자도 제대로 몰라. 그저 표를 좀 얻을 줄이나 알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사람들이 치켜 세워주는 분위기 속에서 나를 죽이고, 시간을 허비해. 매일 행사요, 술이니 가족을 돌볼 시간도 공부할 시간도 없어. 졸업하고 책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어.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전부 개소리야. 차라리 너가 나가서 짓는 것이 나을거야" 그러고 보니 주인의 고백은 진실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주인의 소포 중에 책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에게 소포가 온 적도 없었지만. 이웃 주민들의 수군거림에 의하면 주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개소리만 한다고 하던데, 이날 주인의 독백은 내가 짖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 같았다.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위 글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패러디 한 것임) /공봉학 변호사

2026-04-21

주객전도

살아있는 엷은 분홍빛 카펫이 깔린 보도를 걸어간다. 부활절 낮 미사에 가는 길이다. 하늘이 내린 보물 카펫을 걷는 기분이 하늘나라 가는 길만 같다. 살랑대는 꽃바람 타고 일고여덟의 벚꽃잎 분홍 나비가 아직 활짝 핀 벚꽃 사이를 날아다니다 시나브로 땅에 내려앉는다. 저 꽃잎들은 며칠간이나 꽃이었을까. 선인들이 ‘화무십일홍’이라 했으니 열흘 정도였을 테지. 한 해에 한 번 피어날 뿐인데, 열흘은 너무나 짧다. 하지만, 비록 짧은 기간일지라도 벚꽃은 당당한 새봄의 주인같이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벚꽃으로 도회의 거리에도 솟아오르는 봄기운이 가득하다. 사람도 생명이니 봄기운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게 정상이리라. 그러나, 나이 들수록 느낌의 강도나 깊이, 길이가 전보다 못해지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할 팩트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아니 나부터도 세월이나 사실, 진실 같은 가치들을 주관적으로만 해석하고 반응하거나 무관심으로 지내기에 늘 객으로 살아갈 터이다. 오늘 미사 강론에서 사제는, 신자들의 ‘주객전도(主客顚倒)’적 삶을 지적했다. 내겐 젊은 날부터 못 끊고 이어온 주제다. 신앙인이라면 주인 자리에 신앙대상을 앉히고, 손님 자리로 자신을 낮추고 살아내야 한다. 그런데, 머리는 알면서도 가슴은 늘 자기 아니면 돈이 주인 자리에 있음을 바라보면서 살아왔었다. 어떤 전례(典禮)나 교육, 피정 때 이 사실을 다시 깨달아도 늘 작심삼일이었다. 때로는, ‘그래. 나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만나며 살던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도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듯이 말이다.’하고 가당찮은 이유로 자기합리화를 하곤 했었다. 교리공부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얕은 지식 잣대로 모든 걸 재고 판단하면서 살았다. 깊은 기도나 고행, 희생, 봉사 같은 사랑은 외면하고 신자의 최소 의무만 지키려 했다. 지난주 성금요일에 들었던 요한복음 ‘예수 그리스도 수난기’는 재판관 빌라도의 재판 상황을 묘사한다. 피고발자 예수는 빌라도 앞에서 유다인들의 고발에 대해 어떤 변론이나 변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은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라고 밝힐 뿐이다. 이 재판에서 예수는, 항거와 변호도 안 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밝힘으로써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한다. 빌라도는 피고발자 예수의 생사여탈 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객의 자리에 머물고 만다. 꽃은 꽃으로서, 사람은 사람으로서, 만물은 만물로서의 자기 역할을 해낼 때 주객전도가 되지 않고 바로 선다는 결론을 재확인한 올 부활절이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주객전도가 심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거 공명성을 의심받는 거대 여당이 막무가내로 찍어내는 법률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과 결사의 자유 제한은 물론, 인권이란 가면으로 국민을 미혹시켜 자칫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무너트릴 ‘주객전도’를 품고 있어 보이니 말이다. 제도권은 나라의 근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길로 유턴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6-04-20

‘견제 없는 권력’이 가는 길

민주주의의 요체는 삼권분립을 통한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에 있다. 권력은 스스로 절제하기 어렵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 견제 없는 권력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 국민을 배신하고 나라를 망치기 때문이다. 권력이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입법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의 오만과 폭주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 의원 105명은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만들었고,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힘으로 밀어붙여서 증인 102명(이 중 검사는 40여명)을 야당과 협의 없이 채택했다. 오죽하면 친여성향의 유시민 작가까지도 민주당 의원들의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모임’에 대해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겠는가? 이러한 민주당의 정치행태는 국정조사를 명분으로 사실상 검찰에 공소취소를 윽박지르며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니 입법 권력의 남용이자 삼권분립 훼손이다. 현행 국정조사법에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한 규정(제8조)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수사 또는 공소유지를 한 검사를 조사하겠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그럼에도 민주당이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이 대통령의 공소취소에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잘못이 없다면 현재 중단된 재판이 퇴임 후에 재개될 때 결백을 입증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대통령 당선으로 중단되어있는 재판 자체를 없애려 하는가? 입법 권력과 집행 권력을 장악한 정부여당이 개인적·당파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연성 독재’이자 ‘권력 남용’이 아닌가? 게다가 사법3법(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 법 왜곡죄)으로 사법부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삼권분립은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재판소원법’은 사실상의 재판 4심제이고, 14명의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은 사법부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입법이다. ‘법 왜곡죄’는 더욱 해괴하다. 판사의 법 해석이 옳지 않을 경우 현행법에 따라 3심제를 통해 보완할 수 있음에도 굳이 ‘법 왜곡죄’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판사에 대한 겁박이다. 이러한 행태가 바로 권력을 위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 아닌가? 엄정한 독립성을 지켜야 할 사법부까지 정치화된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견제 없는 권력은 매우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아무리 법적 정당성이 있어도 도덕적 정당성이 없으면 자제되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권력의 속성상 쉬운 일이 아니다. 견제 없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재의 길을 가게 되고, 괴물이 된 권력이 절제할 줄 모르면 국가·국민·정권은 모두 불행해진다. 자제력을 잃은 권력의 남용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기파멸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4-20

심각한 전철 부정 승차

‘사회적 약속’이 무너지거나 깨진 세상은 무질서와 혼란을 부른다. 그런 사회는 규범이 지켜지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다수가 합의해 만들어진 제도와 법은 준수돼야 마땅하다.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 요금을 내야 한다는 건 앞서 언급한 사회적 약속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너는 지불해라. 나는 공짜로 타겠다”고 코웃음 치며 이를 어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실은 최근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올 3월까지 4년 3개월 동안 승차권 없이 전철을 이용하거나, 할인 교통카드 등을 발급 취지에서 벗어나 사용한 사례가 1만4681건에 이른다. 단속된 건수가 1만5000여 회에 가깝다면 코레일 직원의 제지 없이 부정 승차를 거듭한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추정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분명 도덕적 해이다. 이 자료는 승차권 없이 이용한 사례 7699건, 경로·장애인·유공자 무임 교통카드 부정 사용 사례 4744건, 성인이 어린이·청소년용 할인 교통카드를 쓴 사례 2238건이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담고 있다. 부정 승차가 발각되면 운임의 최대 30배를 물어야 한다. 2025년 부정 승차 부과금은 2억9600만원. 2024년에 비해 51.8%p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600만원이 넘는 부과금 처분을 받은 사람도 있다. 양심을 집에 두고 전철에 오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신호로 읽힌다. 높은 부과금만이 해결책은 아닐 듯하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겠다는 개개인의 의지가 없다면 앞으로도 전철 부정 승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0

잔디를 깎으며

봄비가 자주 그리고 제법 많이 오는 봄날이 깊어간다. 이렇게 흐뭇하게 비가 내리면, 우리를 깊은 공포로 몰고 간 지독한 산불과 거리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적절한 수준의 강우량은 대지에 기반을 둔 초목의 활성도를 대거 끌어올린다. 마당에 나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우쑥 솟아오르는 온갖 풀들의 향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100여 평 남짓한 마당을 덮는 풀은 매해 양상을 달리한다. 우점종(優占種)이 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꽃다지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는 벼룩이자리가 만만찮은 기세로 세력을 넓힌다. 예전에 없던 가시상추가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산괴불주머니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마당 곳곳에서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풀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씩 달라진다. 농가주택으로 이사한 다음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호미와 낫으로 무장하고 풀과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근절(根絶)하지 않으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필승의 각오로 날마다 전의(戰意)를 불태우곤 했다. 그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나의 열의와 직접행동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기로 나는 풀과 일정 기간 휴전해야 했다. 그런 배경에는 ‘야생초 편지’(2002)나 ‘풀들의 전략’(2006) 같은 서책의 도움이 자리했다. 어느 일방의 절멸(絶滅)이 아니라, 상호 공존의 자세가 절실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터다. 그리하여 나는 풀의 여러 가지 자태와 생태에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온갖 풀꽃이 어디선가 날아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수세미가 대문 옆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일도 있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지금도 붓꽃과 원추리, 자주달개비와 분홍달맞이꽃, 참나리와 부추, 개족두리풀과 돌나물, 달래와 냉이가 여기저기서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일까! 며칠 전 넉넉하게 내린 비로 제법 자란 풀과 잔디를 깎으면서 자연의 놀라운 속성을 새삼 떠올린다. 대지는 언제 저토록 많은 생명체를 보듬고 있었단 말인가! 경이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메꽃을 뿌리째 뽑다가 슬며시 돌아보면 두더지가 곳곳에 구멍을 뚫고, 광대나물과 민들레, 봄까치풀과 애기똥풀, 괭이밥 같은 풀이 소리도 없이 수북하게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국민 혹은 민중을 민초(民草)라 부른다. 조상들이 오래도록 터를 쌓고 살아온 한반도 곳곳을 뒤덮은 수많은 산야초를 닮은 국민. 그들 하나하나를 빼닮은 풀을 보노라면, 풀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갈 이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자연이 보내준 저 많은 생명과 함께해야 인간들의 삶도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1968년에 이영도 시인은 절창 ‘진달래’에서 4·19로 스러져간 넋들을 추모한다. 1973년 작곡가 한태근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 ‘진달래’를 부르면서 한없이 서러웠던 우리의 처절한 4월을 돌이킨다. 21세기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여린 씨를 뿌린 민초들의 뜨거운 함성 들리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19

돌봄의 위기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의 나이가 65세를 넘는 비율이 55%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돌봄 서비스는 노노케어(老老 Care)가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노노케어란 건강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방문해 안부 확인과 함께 말벗이 되고, 세탁, 취사, 장보기 등의 가사를 돌보는 개념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간병인이 환자 수발을 들다보니 체력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병을 얻는 경우가 많아 자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노인돌봄 서비스 인력 전망’이란 보고서에 의하면 20년 뒤 우리나라도 노인을 돌봄 사람이 부족해 돌봄 대란이 올 거란 전망을 내놓았다. 고령인구 증가로 장기 요양서비스 수요는 폭증하나 이를 돌볼 요양서비스 인력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것. 연구원은 노령화로 2043년 장기 요양서비스 수요는 2023년 대비 2.4배 증가하나 요양보호사 수요가 따르지 못해 2043년에는 99만명의 요양보호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더 암울한 전망은 환자를 돌볼 요양보호사의 연령대다. 연구원은 2034년 기준 60세 이상 요양보호사가 전체의 7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 일본이 겪는 노노케어 현상이 우리의 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특히 보고서는 돌봄 공백 현상은 수도권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비수도권에서 더 심각하게 진행될 거란 전망도 내놓아 지방단위의 돌봄 대책이 더 바빠 보인다. 보고서는 돌봄인력 부족의 대안 중 하나로 돌봄로봇의 등장을 제시했지만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돌봄 일을 로봇이 사람만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19

텅 빈 유조선 행렬이 보내는 경고

요즘 국제유가를 설명할 때 우리는 흔히 ‘공급 부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일어나는 상황은 조금 다르다. 원유 자체보다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이 있다. 바로 ‘운송’이다. 중동발 군사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은 가격 이전에 물류가 먼저 붕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바다 위에서 포착된다.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에서 출발한 초대형 유조선(VLCC)들이 원유를 싣지 않은 채 미국 멕시코만으로 향하고 있다. 평소의 두 배를 훌쩍 넘는 70여 척이 ‘빈 배’로 대서양을 건너는 이례적 장면은 해운 분야만의 이슈가 아니다. 이는 ‘어디서 실어 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문제는 거리다. VLCC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 말라카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미국까지 가야 한다. 편도만 약 60일, 지구의 3분의 2를 도는 항로다. 과거 중동에서 2~3주면 들어오던 원유가 이제는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이 시간의 공백은 그저 시간이 늦어진다는 지연에 그치지 않고 비용으로 연결된다. 운임은 오르고 재고는 늘어나며 공급망은 느려진다. 이 변화는 우리가 그동안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익숙해진 ‘적시 생산(Just-in-time)’ 체계를 흔든다. 제조업은 그동안 빠르고 효율적인 물류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다. 하지만 운송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 기업들은 더 많은 재고를 쌓아야 하고 이는 자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결국 에너지 가격보다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 변화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보인다. 중동산을 대체할 공급처로 부상하며 수출은 급증하고 에너지 패권은 강화되는 흐름이다. 실제 미국 원유 수출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낙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증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수출 확대가 국내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정치적 부담도 커진다. 결국 이번 사태는 ‘원유 부족’이 아니라 ‘운송 병목’이 만든 위기다. 그리고 이 병목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해상 물류망은 한 번 꼬이면 풀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비용 압박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더욱 뼈아픈 변수다. 포항 철강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철강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다. 유가와 해상 운임이 동시에 오르면 수익성은 이중 압박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원료 도착 시점과 운임 상승의 상한선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생산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답은 구조 전환밖에 없다. 다행히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HyREX)은 에너지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조달을 다변화하면 지금처럼 공급망 충격의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과 기업이 아무리 정답을 알고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여전히 산업용 전력요금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조선의 행렬은 신기한 해상 풍경이 아니다. 하루빨리 산업의 근간인 철강 부문의 족쇄인 전기요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고다. /김진홍경제에디터

2026-04-19

장례

환절기라 그런지 유난히 부고 소식이 잦다. 계절이 바뀌는 틈 사이에서 사람의 삶도 함께 흔들리는 것일까. 며칠 간격으로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문득 전화 한 통, 안부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문득 한 얼굴이 떠오른다. 달포 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공연을 함께했던 동생 같은 친구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웃던 그 평범했던 하루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경주의 작은 장례식장을 다녀오던 길, 그날의 공기와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 마음 한쪽이 오래도록 먹먹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풍경을 마주한다. 무표정한 영정사진, 줄지어 놓인 삼단 화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의 말들. 너무도 익숙한 장면인데, 이상하게도 늘 낯설게 느껴진다.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곁에서 울고 있는 가족들에게 “곧 죽을 내가 더 슬프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야말로 죽음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의 두려움과 아쉬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상상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라면, 그 마음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슬픔이라는 것이 단지 남은 사람의 감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요즘 장례식장 현황판을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대부분이 90세 전후, 때로는 백 세에 가까운 나이들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긴 시간을 살아낸 죽음 앞에서는 ‘병마에 오래 고생하셨는데 잘 돌아가셨어’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붙는다. 그 말 속에는 오랜 돌봄의 시간과 기다림, 그리고 어쩌면 끝내야 할 시간에 대한 안도 같은 것이 함께 섞여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은 슬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어딘가 허탈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요하게 비워진 분위기가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장례문화는 여전히 무겁게만 느껴진다. 슬픔을 크게 드러내야 제대로 애도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영정사진은 왜인지 늘 굳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떠나는 사람은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할까. 만약 나에게 그날이 온다면, 나는 조금 다르게 남고 싶다. 가장 즐거웠을 때의 사진 하나, 내가 좋아하던 음악 몇 곡, 그리고 화환 대신 작은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 그곳이 단지 울음만 남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자연스럽게 꺼내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나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함께 웃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장례가 단지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꺼내보는 자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처럼 부고가 잦아지는 계절이 되면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사람이 남기는 것은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함께 쌓아온 시간이라는 사실을.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4-19

금융AI의 실체···알고리즘 트레이딩에서 리스크 관리까지

돈은 잠들지 않는다. 서울 증시가 문을 닫는 순간 뉴욕 월스트리트가 열리고, 뉴욕이 잠들면 도쿄와 홍콩이 깨어난다. 하루 24시간, 한 해 365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 글로벌 자금의 흐름을 인간이 쉼 없이 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인공지능(AI)이다. 한때 금융은 정보와 인맥, 경험의 세계였다. 하버드 MBA 출신 애널리스트가 밤새워 재무제표를 뒤지고, 베테랑 트레이더가 직감으로 매수 버튼을 눌렀다. 그 세계가 지금, 조용하고 빠르게 바뀌고 있다. ■ 0.001초의 전쟁 주식 시장에서 AI의 진입은 속도의 문제였다. 사람이 주가 차트를 보고 판단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수백 밀리초. AI 알고리즘은 그 수천 분의 1시간 안에 거래를 실행한다. 이른바 고빈도 트레이딩 (HFT·High Frequency Trading)의 세계다. 글로벌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장은 2025년 218.9억 달러에서 2026년 250.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는 추세이며, 연평균 14.4%의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이미 전 세계 금융 거래량의 89%가 알고리즘이 처리하고 있으며, AI 시스템은 70~95%의 정확도를 달성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월가의 트레이딩 플로어를 가득 채웠던 수백 명의 트레이더들이 지금은 서버실의 컴퓨터 몇 대로 대체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JP모건 설문조사에서 AI와 머신러닝은 3년 연속으로 모든 자산 클래스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 기술로 꼽혔다. EBC Financial Group 같은 조사에서 헤지펀드 매니저의 86%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를 ‘실험적 도구’로 바라보던 금융 업계가 이제는 AI 없이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AI 알고리즘은 단순히 빠른 것만이 아니다.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패턴을 찾아낸다. 뉴스 감성 분석, 소셜미디어 언급량, 위성 이미지로 분석한 주차장 차량 수,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까지 — 사람이라면 결코 동시에 처리할 수 없는 정보들을 AI는 초당 40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로 분석하며 투자 신호를 포착한다. ■ 내 투자를 맡긴 로봇,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기관투자자와 헤지펀드의 영역이라면, 일반 투자자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온 금융 AI는 ‘로보어드바이저’다. 사람 대신 AI가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시장 변화에 맞춰 자동으로 자산을 재조정해주는 서비스다. 현재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는 전 세계적으로 1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2029년까지 4,7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Statista 분석에 따르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규모는 매년 13.4% 성장해 2025년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 흐름을 타기 위해 경쟁적으로 AI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61개 증권사의 개발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3% 상승한 3,379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자기자본 기준 10대 증권사 중 KB증권이 1,154억 원을 지출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KB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MTS에 생성형 AI 기반 대화형 서비스 ‘스톡 AI’를 선보였고, NH투자증권은 국내 금융권 최초로 생성형 AI의 이미지 인식 기능을 활용해 차트를 자동 설명하는 ‘차트 분석 AI(차분이)’를 출시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배당을 많이 주면서 성장성도 있는 종목”이라는 자연어 질의를 알고리즘이 이해해 종목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잡한 투자 전문 용어를 몰라도, 대화하듯 AI 에게 물으면 포트폴리오가 구성되는 시대다. ■ 은행의 보이지 않는 AI ··· 신용평가와 사기 탐지 금융 AI의 변화는 투자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더 조용하고,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있다. 대출 심사와 사기 탐지다. 머신러닝 기반 신용평가 모델은 기존의 금융 정보만이 아니라 온라인 거래 패턴, 소비 행태 등 비금융 데이터까지 분석하여 더 정확한 신용 평가가 가능해졌다. 이는 금융 이력이 부족한 청년, 프리랜서, 소상공인 같은 ‘씬 파일(thin file) 고객’들에게도 대출의 문을 열어주었다. 신한은행은 생성형 AI 기반 ‘여신심사지원 에이전트’를 도입해 기업 분석과 여신 의견서 작성 업무를 지원하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기업 신용평가 심사 의견을 자동으로 작성하는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도입했다. IBK기업은행은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기술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재무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기업 선별에 나서고 있다. 사기 탐지 분야의 변화는 더욱 크다. 기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은 ‘특정 조건이면 차단’하는 규칙 기반이었다. 새로운 수법의 사기들은 이 규칙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AI 기반 FDS는 다르다. 수억 건의 거래 데이터에서 정상 거래 패턴을 학습한 뒤, 그 패턴에서 벗어나는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사기꾼이 새로운 수법을 쓸수록, AI도 새로운 패턴을 학습한다. 우리은행은 기존 사고 사례 중심의 시나리오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거래 패턴을 학습해 새로운 유형의 금융사고까지 탐지하도록 설계된 FDS를 고도화했으며, 지난해 약 385억 원 규모의 피해를 예방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년 2월에는 금융권 최초로 AI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24시간 적용했다. ■ AI가 만드는 위험, AI가 막는 위험 그러나 이 모든 혁신은 새로운 그늘도 함께 드리운다. AI가 금융 범죄의 도구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까지 AI 관련 전화·문자 기반 사기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약 40% 증가했다. 딥페이크 기술로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하거나, AI로 자연스러운 보이스피싱 스크립트를 만들어내는 수법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딥페이크 관련 금융 사기 사건은 2022년 22건에서 2023년 42건, 2024년 15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2025년 1분기에만 이미 179건이 보고돼 2024년 전체 합계를 넘어섰었다. AI로 공격하고, AI로 방어하는 시대인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고객 문의의 90% 이상을 AI 챗봇이 자동 처리하며 실시간 FDS 시스템으로 금융 사기를 차단하고 있고, HSBC는 600건 이상의 AI 프로젝트를 전사적으로 적용해 고객 상담 자동화, 리스크 관리, 규제 준수 지원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4년 12월 ‘금융 AI 7대 원칙’을 발표하고, 2026년 1분기까지 ‘금융산업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은행·보험사·카드사·핀테크 기업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적용 범위로, AI의 공정성·투명성·책임성 확보를 제도화하는 작업이다. ■ 그래도 최종 판단은 인간이 한다 금융 AI의 급속한 확산 속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일관된 경고음을 낸다. AI는 강력하지만 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AI가 상담이나 추천을 넘어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서도, “금융사고 책임 구조와 규제 환경을 고려할 때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담당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적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갑작스러운 관세 정책 같은 전례 없는 사건들은 AI가 본 적 없는 패턴이다. 그런 국면에서 AI 알고리즘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포지션을 청산하면, 시장 변동성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플래시 크래시’가 발생할 수 있다. 2010년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36분 만에 9% 폭락했다가 회복한 사건이 그 최초의 전조였다면, 전 세계 금융 거래의 대부분을 AI가 장악한 현재는 그 위협과 파급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치명적일 수 있다. 결국 AI 트레이딩은 ‘만능 알파 생성기’가 아니라 패턴 탐지와 리스크 관리 도구로서 가치가 높다. 진정한 경쟁력은 AI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적용하고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금융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AI는 그 공간에서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감정을 배제하는 데 탁월하다. 하지만 어떤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거대 자본부터 포항의 개인투자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로보어드바이저에게 노후 자금을 맡기는 순간까지, 이제 금융의 모든 층위에서 AI가 작동하는 시대다. 그 이면에 작동하는 AI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4-19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들

내 안에 폭주하는 영혼 있어 아껴 쓰고 있다 자기만의 짐승 하나 밝은 곳에 웅크리고 있듯이 젊어 터져 쇄도하는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닳아빠지는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슬퍼지려 해도 이염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건 네 마음의 문제라고 소리친 영혼과는 급히 헤어졌다 대체로 흐린 날씨 속에서도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들을 사랑해왔다 최근엔 시금치를 사러 가려고 슬리퍼를 주문했다 택배박스 말고 소포상자라 써보는 마음이랄까 ―임주아, ‘시옷이 사라졌다’ 전문 (‘창작과비평’, 2026 봄호) 재치 있고 발랄한 조크 같기도 하고 비의가 담긴 ‘시’ 같기도 하다. 임주아의 시 ‘시옷이 사라졌다’는 모던국악 프로젝트 차오름의 공연 제목에서 빌려왔다. 제목을 따라 한글 자음 ‘ㅅ’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기도 전에 우리는 ‘세상’도 ‘상상’도 사라져 버린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언어와 소통과 이해의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낸 창극과 달리 시는 마냥 해피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령 “내 안의 폭주하는 영혼”을 보자면 연관성이 없음에도 이런저런 관계 사이에 위치하는 훈민정음 자음이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그것이 ‘사이시옷’이라면 어떤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잇소리’는 ‘두 개의 형태소 또는 단어가 어울려 합성 명사를 이룰 때 그 사이에 덧생기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짐승 하나 웅크리고 있듯” 사잇소리 현상을 규정한 표준어 규정 어디에도 사이시옷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게다가 나란히 붙는 단어에 따라 “젊어 터져 쇄도하는” 감정처럼 된소리로 발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과연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처럼 시작하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있을 테고, ‘슬픔’처럼 “소리친 영혼”처럼 “급히 헤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나 ‘생명’이라면 마냥 가벼운 위트나 감성으로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는 잠시 상상으로나마 일상의 한 단면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순간마다 시옷을 넣어보거나 빼보게 한다. 우리는 시옷이라는 자음이 때때로 서로 다른 감정적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시인은 “대체로 흐린 날씨 속에도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을 사랑해 왔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시인은 시옷을 빌려서 이렇게 답해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이든 솔직이든 모두 시옷의 문법이지 않은가. 화자는 서로 다른 가면들을 능숙하게 바꾸어 쓰는 데 능하다. 각각의 시옷을 무기삼아 정반대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시옷을 소화해 낸다. 더구나 시인은 “시금치를 사러 가려고 슬리퍼를 주문”하듯 시옷의 양쪽에서 무심한 듯 안온한 일상을 마련한다. 이건 시옷의 슬픔을 말하는 여자가 시옷의 사랑을 말하는 남자를 만나서 시옷을 통해 마침내 사랑과 슬픔을 포개는 방식인 걸까, 삭제하는 방식인 걸까. 설령 “없어지고 닳아빠진 기분”이었다고 해도 모든 사이의 순간은 사소한 ‘시옷’에 있을 것이다. “택배상자 말고 소포상자라고 써보는 마음이랄까” /이희정 시인

2026-04-19

‘텍스트힙’과 방치된 문학관

독서 인구의 감소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독서율은 38.5%인데, 이는 4년 전 같은 조사에 비해 9%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국내 주요 서점의 매출도 전년도 보다 3.1% 하락했단다. 안그래도 독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AI라는 첨단의 지식 보조도 활용 가능해졌으니, 앞으로 이 하락세는 더 가속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20대의 연간독서율은 75.3%로 직전 조사보다 0.8% 증가했다고 한다. 독서율이 상승한 유일한 세대가 20대라는 거다. 대체로 이 기현상(?)의 원인에 대해 ‘텍스트힙(Text-Hip)’ 열풍을 꼽곤 하는 것 같다. 그에 발맞춰 여러 ‘북튜브(Book-Tube)’ 채널도 흥행하고 있다. 가령 ‘민음사TV’는 구독자가 42만 명에 이른다. 책을 읽는 행위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세대의 출현은 분명 반길만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이들 독서의 지속가능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서가 트렌디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에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에는 비약이 있기도 하다. 책과 독서의 관계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발간은 독서 행위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책은 여러 매개를 거쳐 독자에게 읽힌다. 출판사의 광고나 판촉 행사, 도서 할인, 북이벤트 등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독서운동을 비롯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책들은 읽히지 못하고 사장 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읽히지 않은 기록들의 무덤이 아닐까. 대개의 책들은 독서를 배반한다. 비록 현실이 이럴지라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꽂혀 있기만 한 책들을 버려진 퇴물로 취급하기보다는 언제든 읽힐 가능성이 있는 지식의 보고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좋은 책이 나오길 기다리기보다는 아직 읽히지 않은 좋은 책들을 발굴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발굴을 떠맡아줄 기관으로 문학관 같은 곳이 활용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국에 백여 개가 있다고 알려진 문학관의 거의 다수가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사실상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관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다르게 해당 장소에서 기리고자 하는 작품의 정수(精髓)를 실감케 할 수 없다. 문학 관련 전시를 아무리 관람해도 문학작품이란 기본적으로 ‘독물(讀物, 읽을거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관은 책(작품)과 독자를 매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방문객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대형 서점에는 책을 찾는 20대가 많다 보니, 그곳에서 ‘번따’를 시도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단다. 아마 서점에서는 이를 ‘민폐’로 여기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문학관과 같은 공간에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지역에서든 그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국의 문학관이야말로 책과 독서, 작가‧작품과 독자, 독자와 독자를 유익하게 연결해 줄 장소로 거듭나야 할 시기가 당도했다. 문학관은 텍스트힙을 자기 역할을 고양해 줄 기회로 삼아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4-16

목이 문제인데 왜 손이 저릴까

손목터널증후군이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손이 저릴 수가 있지만 손이 아니라 목에서 생기는 문제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특히 손가락 끝이 찌릿하거나 팔을 따라 내려오는 저림이 특정 자세에서 심해지는 경우라면 단순한 말초 문제가 아니라 경추에서 시작된 문제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손이 불편하니 손을 치료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원인은 전혀 다른 위치에 숨어 있는 것이다. 목뼈 사이에는 디스크와 함께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다. 이 신경은 목에서 시작해 어깨, 팔을 지나 손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출발점은 목이지만 이곳이 눌리면 증상은 손에서 나타날 수 있다. 경추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관절과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신경을 압박하면 그 신경이 담당하는 영역 전체에 이상 신호가 전달된다. 그래서 손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지고 심한 경우 당기면서 힘이 빠지는 증상까지 나타난다. 특히 장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컴퓨터 작업처럼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자세로 일을 하면 경추에 부담이 쌓이면서 이런 문제가 더 쉽게 발생한다. 목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간단한 검사로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퍼링 테스트다. 목을 한쪽으로 돌린 다음 뒤로 눕혀 기울이면 바로 손이 저리거나 목 어깨 통증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볍게 압박을 가하면 팔과 손으로 저림과 당기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간단한 검사지만 증상이 발현되면 아주 높은 확률로 경추 디스크임을 보여주는 검사라 임상적으로 의미가 크고 환자 스스로도 손이 아니라 목에서 시작된 문제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진단 자체가 치료의 출발점이자 병에 대한 설득 과정이 되는 셈이다. 경추 신경 눌림의 치료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손이나 팔만 마사지하거나 물리치료를 반복해서는 증상의 개선이 힘들 뿐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염증을 줄여줘야 하는데 추나요법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틀어진 경추의 정렬을 교정하고 어깨 주변 근육을 풀어주면 신경이 지나가는 공간이 넓어지면서 압박이 줄어든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직접적으로 경추 신경에 약침을 쏴 염증 반응을 줄여 주면 좋다. 초음파를 활용해 신경을 직접 확인해 보면 경추 5번, 6번, 7번에서 나오는 신경이 동글동글한 형태로 또렷하게 관찰된다. 환자 손의 저림 경로나 양상을 확인 후 신경이 주변 조직에 눌리거나 염증 반응을 보이는 지점에 직접 약침을 뿌려준다. 환자는 신경이 자극되면서 팔과 어깨로 약침 자극이 내려가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이는 단순히 추정에 의존하는 치료와는 정확도와 효과가 다르다. 자극을 받고 있는 신경 주변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유착을 풀어주면 통증 신호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손 저림은 단순한 혈액순환 문제뿐만 아니라 신경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그 시작점이 목인 경우도 적지 않다. 증상이 반복되거나 심해진다면 손만 바라보지 말고 스퍼링 테스트를 검색 후 셀프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평가와 함께 경추 정렬을 바로잡고 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치료까지 이어진다면 오래 지속되던 저림 증상도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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