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별다른 용건은 없다. 그의 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 내 사무실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연말 퇴직한 그는 요즘 도서관 가는 일을 하루 일과처럼 삼고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는 같은 시간에 같은 걸음으로 이 길을 지난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고개만 까딱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물 한잔으로 숨을 고른다. 빈 종이컵을 쥔 채 내게 묻는다. 표적치료 보험은 들어 두었느냐고. 마치 안부를 묻듯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이 나이에 또 새로운 보험을 들어야 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암이 정복되는 시대라며 말을 이었다. 치료비가 워낙 비싸니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만든 보조기구만 있으면, 관절염으로 걷기 힘든 사람도 산을 오른다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며, 누군가는 로봇의 힘을 빌려 다시 걷는 연습을 한다고도 했다. 머지않아 장기 교체도 가능해질 것이고, 어떤 이는 200세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과장처럼 들리면서도 그렇다고 허황되지는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해 왔고, 앞으로는 더 빠를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더듬어 180세쯤 된 나를 떠올려 본다. 가진 것은 넉넉지 않지만, 그 시대에 맞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혼자서는 외출은커녕 차려진 밥상에 앉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내가 된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굳어가는 손끝, 그리고 말없이 길어지는 하루.
그렇다면 내 아들은 150세나 되었을까. 그 또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지 모른다. 120세가량 되는 손자는 로봇의 도움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을까. 사람보다 많은 기계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삭막함이 생활화 되었을까.
이미 로봇이 되어가는 90세쯤 되는 증손은 제 삶을 꾸리기에 바빠 제 아비를 돌아볼 겨를이나 있을까. 늦게 결혼해 마흔의 고손이라도 있다면, 그는 180세의 할미인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까. 나는 그의 존재를 알까. 핏줄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각자도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그려진다.
그때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건너는 하루는 창밖을 몇 번이나 바라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밀어내는 눈앞에 잠만이 왔다 갔다 한다. 그 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머님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장수라는 말이 더는 축복처럼 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음이 아니라, 버텨냄에 가까운 시간들. 누군가에게 기대어 이어가는 하루가 반복된다면, 그 시간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도 좋겠다. 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날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의지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보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말했다. 아프면 그냥 죽을 거라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만 오래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친구도, 대화할 그 누구도 없이 살아가는 일이 과연 삶일까. 후손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닥친 고통을 지켜보며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지만, 더 나이 들어 그러하다면 나는 자연에 순응하겠다고 했다. 말로는 쉽게 내뱉었지만, 그 말이 나를 향한 다짐인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못 믿겠다는 듯 웃었다.
“그 말, 나중에 바뀔걸요?”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단단하지 않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보다 버텨야 할 이유가 많아지는 날이 온다면, 나 역시 생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늘그막 눈서리 끝에 폭설이 올까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사는 일보다 오늘을 느끼며 사는 쪽을 택한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순간의 시간을 살아내는 일. 그 하루가 쌓여 삶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올 봄, 벚꽃이 유난히 예쁘다.
/윤명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