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걸어가는 두 남자의 머리 위로 꽃잎이 흩어진다. 모처럼만에 집에 온 아들과 보문호수의 밤 벚꽃 길을 걷고 있다. 지금, 내 눈은 꽃보다 그들의 뒷모습에 더 간다. 아들이 아빠의 어깨를 툭 치며 장난을 건다.
한때 우리 집은 말이 없었다. 유교 집안에서 자란 남편은 늘 예의 바른 쪽에 서 있었다. 하는 일까지 도면을 보고 기계를 제작해서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정확히 읽어내고, 오차 없이 맞춰내는 일에 익숙했다.
반면 아들은 매번 핀잔을 들을 만큼, 먼 곳을 보는 아이였다. 머릿속은 늘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즐거워하곤 했다. 무엇을 물으면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화에 집중 좀 해라” 아들을 향한 남편의 말은 대개 그렇게 시작됐다. 남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까, 그 걱정은 점점 간섭이 되어갔다. 유치원도 가기 전부터, 숟가락 똑바로 놔라 젓가락질 바로 하라는 말로 시작하는 밥상머리였다. 궁금한 것이 많아 입이 잠시도 쉬지 않는 아이를 숟가락 소리만 오가는 시간에 가두었다.
여행길의 마지막은 언제나 아들의 눈물바람으로 끝났다. 어떤 이야기든, 끝은 늘 예상 밖이었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아빠의 꾸지람에 아들은 억울해 했다. 언제나 한 단계 더 너머의 답을 하는 그를 남편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긴 질문에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말의 온도가 다른 그들의 대화는 겉돌았다. 남편이 다가가면 아들은 그만큼 뒷걸음질 쳤다. 방문을 두드려야만 나오는 일이 늘어났다. 결이 다른 그들 사이에 낀 나는 점점 숨이 막혔다.
어느 날, 출근길의 나는 차를 돌려 시어머니 댁에 갔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입을 여는 순간, 그동안 눌러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어머니, 저 도저히 같이 못 살겠어요.”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데리고 온 자식도 아닌데 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느냐는 말을 울면서 쏟아냈다.
그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면서도 서로를 이해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대며 아들은 학교 앞으로 방을 얻어 독립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입대를 앞두고 거제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아직 차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밥을 먹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별다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시계는 어느새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딸과 나는 먼저 자리에 누웠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둘에게 맡겨졌다. 닫힌 문 너머로 낮게 이어지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던 것 같다. 그저 오랜만에 둘이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아빠가 자신의 손을 잡더니 눈물을 쏟더라고.
“미안하다고 하시네.” 그 한마디를 꺼내는 아들의 표정이 담담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보지 않았기에 더 또렷하게 그려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술기운을 빌어 내 놓은 말, 힘겹게 내밀었을 손. 남편은 아들을 몰아세운 시간보다, 놓쳐버린 시간을 더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 앞에서 그동안 내 놓지 못했던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그 밤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들은 뒷말을 더 내놓지 않았다. 마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듯이 지난 일에 대한 어떤 말도 흘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둘 사이에는 조금씩 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직장인인 아들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며 아빠를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야 두 결이 엮어가는 시간을 보고 있다.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벚꽃 아래 두 남자가 웃으며 걸어간다. 내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자, 둘이 동시에 돌아본다. 그 순간, 아빠와 아들이 같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꽃잎이 가만히 그들 위로 내려앉는다.
/윤명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