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가 사위에게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기가 막힌다. 세상이 흉포해졌다는 체감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심지어 대낮에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무고한 시민이 피해자가 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이제 한두 사람 피해를 당하는 것은 뉴스감으로 와 닿지 않을 정도로 감각이 무디어져 가고 있다. 실제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하는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라는 이야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찾는다.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누군가는 차량에 위험한 도구까지 싣고 다닌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문제는 단순히 범죄의 증가에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 체계는 원칙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과잉 방어’라는 기준이 엄격하게 작동한다. 그 결과 위협에 대응한 피해자조차 가해자로 전환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는 시민들에게 “차라리 피하라”는 메시지를 주며, 적극적인 방어 의지를 꺾는다. 더 나아가 타인을 돕는 행위마저 위축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개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법이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행동을 억제하는 족쇄로 인식된다면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의는 교과서나 영상 속 이야기로만 남고, 현실에서는 냉소와 방관이 자리 잡는다. 현행 법체계 아래에선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 국민의 정서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고 할 때도 아주 이성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오히려 범죄자로 몰린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에서조차 법을 믿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고 한발 더 나아가 법이 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이 알아서 복수한다는 개념의 사적 보복행위를 미화하는 것을 본다. 법이 물러터져 이런 형상을 가져오는 것일까? 잔인한 범죄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현재 이루어지는 법 집행에 많은 의문이 든다. 물론 법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과도한 자력구제는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선의의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양산될 위험이 크다. 정당방위의 기준을 현실적으로 재정립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시민이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 안전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 조건이다. 국민에게 ‘각자도생’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사회는 이미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법은 처벌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탱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더 강한 처벌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의의 회복이다. 그렇기에 명확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것이고 법률가들의 장난에 법이 훼손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판사, 검사 그리고 경찰이 가진 제대로 된 공권력을 보고 싶다. 그래야 국민이 진정 법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병철 수필가